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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애국주의로의 한 걸음

전쟁과 파시즘에 대한 제4인터내셔널의 입장

 

<차례>

1. 해제……볼셰비키그룹

2. 1939년 7월호 <새로운 인터내셔널>지 편집부 서문

3. 사회애국주의로의 한 걸음……트로츠키

 


1. 해제

볼셰비키그룹

 [역주]

193811, 4인터내셔널을 지지하는 영국 식민지 팔레스타인[여기에서 팔레스타인은 국가나 팔레스타인 지역 아랍인이 아니라, 지중해 동쪽에 맞닿은 지금의 이스라엘, 가자지구, 서안을 포괄하는 중동 지역의 땅을 의미한다.]의 유대인 트로츠키주의자 조직, <팔레스타인 볼셰비키-레닌주의자 그룹>실수가 아닌가?라는 글을 트로츠키에게 보냈다. 영국과 프랑스 등 비록 제국주의 국가일지라도 파시스트 국가와 대립하는 나라의 노동계급은 레닌의 자국 패배주의를 보류해야 한다는 것이 그 글의 요지였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쟁에서 각국 노동계급이 자국 부르주아의 패배를 위해 투쟁하는 자국 패배주의는 레닌주의와 사회애국주의를 첨예하게 가른 선이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그룹의 제안은 이 선을 넘어 사회애국주의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었다. 트로츠키가 답장에 사회애국주의로의 한 걸음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이런 까닭이었다. 그는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그들이 사회애국주의로 탈선하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다.

팔레스타인 그룹의 오류는 일회적 실수나 성장과정에서의 시행착오가 아니었다. 비록 트로츠키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모든 기회주의가 으레 그렇듯이 사회의 반동적 압력에 굴복한 결과였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상당수는 나치의 박해로 고향을 등진 난민이었다. 따라서 다가오는 전쟁에서 나치와 대립하는 영국의 전쟁수행을 도와야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는 부차적 요인이었다. 더 근본적 원인은 영국 제국주의의 하수인 노릇하는 팔레스타인 유대인 사회의 반동적 성격에 있었다.

팔레스타인 유대인은 토착 아랍인의 저항을 약화시키려는 영국 제국주의의 의도 하에 대거 이주할 수 있었다. 이주를 조직한 시온주의 정당들은 영국의 환심을 사, 유대인 수를 불리고 아랍인을 축출함으로써 전자가 후자를 지배하는 국가를 세우고자 했다. 팔레스타인 유대인 노동자 절대다수는 시온주의의 대의에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민족 자본가와 단결해, 아랍 노동자와 농민의 생계수단을 빼앗고 인종차별을 자행했다. 그 대가로 그들은 사회경제적 특권을 누렸고 아랍인의 보복을 두려워하며 영국 제국주의의 아랍인 억압을 도왔다.

팔레스타인 유대인 사회 전체의 특권과 안전은 영국 제국주의의 안위와 묶여 있었다. 따라서 영국의 패배를 주창하는 유대인 트로츠키주의자는 식민당국과 이주민 사회의 박해를 받아야 했다. 팔레스타인 그룹은 이러한 압력을 이겨내고 레닌주의를 사수할 배짱과 기개가 없었다. 이미 굴복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실수가 아닌가?가 발표된 11, 그룹의 젊은 지도자 이가엘 글룩스타인[국가자본주의론과 국제사회주의경향(International Socialist Tendency) 창시자 토니 클리프(Tony Cliff)의 원래 이름]유대-아랍 갈등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서는 영국의 식민통치 이래로 가장 크고 격렬한 아랍인민의 반란이 진행 중이었다. 반란의 불을 당긴 사건은 19377월에 발표된 영국의 팔레스타인 분할안으로, 북서부 지방을 유대국가로 독립시킨 뒤 그곳의 아랍인을 추방하는 계획이었다. 팔레스타인의 거의 모든 아랍인이 영국 제국주의와 유대인에 맞서 들고 있어났고, 반대로 거의 모든 유대인은 영국을 도와 아랍인을 진압했다.

이때 글룩스타인과 팔레스타인 그룹의 의무는 아랍 반란군의 승리를 지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글에서 글룩스타인은 당장 일어나고 있는 반란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아랍 민족주의 운동을 반유대주의 운동으로 매도하고 유대인 사회가 영국의 하수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현 아랍 민족주의 운동은 유대인에 대항하는 배외주의 정신에 물들어 국수주의적 파시즘과 반유대주의를 배양하고 있다. [영국 제국주의와 팔레스타인 유대인의 관계에 대한 두 가지 견해 중하나는 유대인이 제국주의 진영의 완전한 일부라는 것이다. 첫 번째 견해는 틀렸다. 왜냐하면 유대인은 식민모국의 착취적 이해를 대변하는, 소수의 특권층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제국주의 진영의 완전한 일부가 아니다.”―「유대-아랍 갈등(The Jewish-Arab Conflict), 이가엘 글룩스타인(Igael Gluckstein), 193811

동시에 글룩스타인은 아랍인민의 반시온주의 투쟁이 가진 진보성과 유대인 사회의 반동성을 인정하며, 자신의 기회주의를 숨기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아랍인민의 반시온주의 투쟁이 반유대주의로 호도되었으므로, 시온주의와 아랍 민족주의 모두 반동이라는 기회주의적 결론을 내렸다.

비록 아랍 상류계급의 유대인 적대는 반동적이지만, 시온주의에 대항한 아랍 인민의 투쟁은 완벽하게 진보적이다. 오늘날 상류계급은 유대인 사회의 압도적 다수가 시온주의자라는 사실을 이용해 인민의 민족주의 투쟁을 반유대주의로 호도하는 데 성공했다. 제국주의와 시온주의의 영향을 받아 그들[유대인들]은 이 나라의 독립과 민주화를 쟁취하려는 모든 시도를 적대한다. 따라서 아랍-유대 갈등은 (시온주의 대() 봉건()부르주아 아랍지도부의 충돌과 시온주의에 대항한 아랍인민의 투쟁으로 구성된) 두 배외주의 민족운동의 충돌이다.같은 글

만약 1938년 글룩스타인이 영국 제국주의에 맞선 아랍 반란군의 승리를 지지했다면, 영국군과 시온주의 민병대가 그의 집에 들이닥쳤을 것이다. 그는 양비론을 폈고, 그로써 그는 곤란을 모면할 수 있었다.

글룩스타인의 기회주의는 제4인터내셔널 남아프리카 연방[영국의 반식민지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신] 지부, 남아프리카노동자당(Workers Party of South Africa; WPSA)에 포착되었고, WPSA는 이를 묵과하지 않았다. WPSA는 글룩스타인의 양비론을 비판하는 두 편의 글, 시온주의와 아랍의 투쟁(Zionism and the Arab Struggle)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반박(Rebuttal on the Palestine Question)<새로운 인터내셔널>지에 기고했다. WPSA아랍 자본가와 성직자 지도부의 배신을 경고하면서, 영국 제국주의와 그 시온주의 하수인에 대항한 아랍인민의 반란을 지지해야 한다.’라는 올바른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글룩스타인의 주장을 중도주의적 모순이라고 정확하게 못 박았다. 글룩스타인은 여기에 반박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그런데 두 번째 제국주의 전쟁이 다가오면서, 글룩스타인과 팔레스타인 그룹은 피치 못할 어려움에 직면했다. 마땅히 견지해야 할 자국 패배주의는 아랍 반란군의 승리 지지와 마찬가지로 영국 제국주의 패배를 위해 투쟁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노선을 견지할 경우, 식민당국과 유대인 사회가 혹독한 박해를 가할 것이 분명했다. 제국주의와 시온주의 압력에 이미 기가 꺾여있었던 글룩스타인과 팔레스타인 그룹은 결국 자국 패배주의를 외면했다. 그렇게 그들은 자국 제국주의 압력에 맞서지 않는 사회애국주의로 나아갔다.

실수가 아닌가?사회애국주의로의 한 걸음은 반대파 회보[Opposition Bulletin, 19297월부터 19418월까지 국제좌익반대파와 제4인터내셔널이 소련 내 선전을 위해 발행한 러시아어 신문] 3-4월 합본호에 처음으로 게재되었다. 같은 해 사회애국주의로의 한 걸음은 영문으로 번역되어 미국사회주의노동자당 이론지 <새로운 인터내셔널(The New International)> 7월호에 게재되었다. 아래의 서문은 <새로운 인터내셔널> 편집부가 실수가 아닌가?의 핵심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한 것이다.

 

 

2. 1939년 7월호 <새로운 인터내셔널>지 편집부 서문

 

우리는 제4인터내셔널의 전쟁 테제를 승인하며 글을 시작하는 팔레스타인 동지[이가엘 글룩스타인(토니 클리프) 지도하의 <팔레스타인 볼셰비키-레닌주의자 그룹>]들의 편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다음 시기 혁명 정당의 성공여부는 무엇보다도 전쟁문제에 대한 그들의 정책에 달렸다.” 계속해서 그들은 전쟁에 대한 혁명적 입장이 이를 실천에 옮기고 구체적 구호로 제기할 때 나타날 수 있는 혼란과 동요의 가능성(4인터내셔널에 있어 이러한 문제를 둘러싼 이론적 혼란은 특히나 위험하다)을 사전에 방지할 만큼 완벽하게 명료하다.”라고 말한다.

저자들은 뮌헨 위기[1938년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의 독일인 우세지역 주데텐란트 침략을 시도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맞대응하며 고조된 전쟁 위기. 930일 체결된 뮌헨 협정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의 요구를 수용하며 일단락]를 파시즘과 수명이 다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그리고 제2, 3인터내셔널의 역할 및 이들의 '인민전선' 정책에 대한 제4인터내셔널의 평가가 옳았음을 보여주는 최신의 실례였다고 지적한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이 구체적 상황에서 제4인터내셔널의 구호는 어떠해야 했는가? 과연 당시의 구호는 표현 상 명료했는가? 그리고 지금껏 항상 그랬듯이, 과연 올바르고 날카로운 구호였는가? 전쟁문제에 대한 [4인터내셔널의입장은 해당 사건에 비추어 볼 때 지나치게 도식적이지 않았는가?”

편지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제국주의 나라에서 자국 패배주의는 일반적 원칙이다. 패배주의는 레닌의 정의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바에 따르면, 자국의 패배를 추구하며 이에 복무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이 구호는 모든 제국주의 국가의 모든 전쟁에 적용될 수 있는가?”

저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적용될 수 없다.

그들은 가상의 두 진영을 상정한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이 한편에 있고, 반대편에 체코슬로바키아, 소련, 스페인, 중국, 프랑스, 영국 그리고 미국이 있다.

물론 이렇게 [국가들이조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완전히 무시될 수는 없으며 노동계급은 이에 대비해야 한다. 지난 세계대전과 다가오는 전쟁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동지들은네 가지 차이점을 제기한다.

“(1) 지난 전쟁은 완전히 제국주의적이었다. 세르비아 문제는 부차적이었다. 우리가 예측하는 전쟁에서 두 진영 모두 제국주의적이지는 않다. 세르비아와 소련의 차이는 너무도 명백하다. (2) 만약 우리가 당시의 군주정과 현재의 파시즘이라는 국제적 반동의 경중을 평가할 때, 양자가 세계노동계급에게 있어 대동소이할지라도, 지난 전쟁 당시 두 진영의 [제국주의적구성을 고려할 때, 예를 들어 프랑스 노동자들이 호엔촐레른 왕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투쟁할 이유 따윈 없었다. (3) 그러나 자본주의 상승기에 군주정이 수행한 역사적 역할과 파시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4) 1차 세계대전 당시 모든 나라에는 혁명운동과 자국 패배주의 정책을 수행할 객관적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런데 파시즘은 급격한 변화를 불러왔다. 파시즘은 레닌의 패배주의 정책을 위한 세 번째 조건을 따르지 못할 만큼 노동계급을 옥좼다. 또한 혁명적 개입의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4번 조항에 달린 주석은 다음과 같다.

레닌은제국주의 전쟁에서 자국정부의 패배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국주의 전쟁에서 자국정부의 패배라는 구호를 부정하려는 자는 다음 세 가지 사실 중 하나라도 증명해야 한다. (1) 1914~1915년의 전쟁은 반동적이지 않다는 점. (2) 이 전쟁과 관련하여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점. (3) 모든 교전국에서의 혁명운동이 상호 호응하고 협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

그들은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한다.

따라서 우리는 해당 국가가 제국주의라는 사실만으로는, 모든 전쟁에서 특히 자국 패배주의의 수단과 구호로 실행되는 혁명 정책을 집행할 충분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부터 저자들은 독일과 이탈리아에 대한 군사적 승리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오늘은 파시즘의 붕괴를 의미하고세계 파시즘을 뒤흔드는 모든 진지한 투쟁은 현대 자본주의 질서의 토대를 무너뜨린다.”라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자기들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인 19333월 트로츠키의 입장을 인용한다. (독자는 그 편지의 답장에서 이 점을 보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그들은 <노동자 투쟁(La Lutte Ouvrière)>1938923(뮌헨 위기 기간) 기사가 평화주의에 대한 양보를 의미한다고 비판한다.

이에 따라 [동지들의편지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4인터내셔널의 그 어느 지부도 애국주의적 일탈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 생각에 최근의 사건들은 평화주의로의 일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한다. 내부의 위험은 이제 정반대편[평화주의]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인식하고 볼셰비즘에 내재된 대담함과 솔직함으로 우리의 실수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이 문서는 193811<팔레스타인 볼셰비키-레닌주의자 그룹>의 명의로 공개되었다. 그리고 아래의 러시아 회보 기사[트로츠키의 사회애국주의로의 한걸음]는 이에 대한 답변이다.

 

3. 사회애국주의로의 한 걸음


트로츠키

우리 팔레스타인 친구들[이가엘 글룩스타인(토니 클리프) 지도하의 <팔레스타인 볼셰비키-레닌주의자 그룹>]이 사회애국주의로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명백하고도 극도로 위험한 양보를 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 논의의 출발점이 사회애국주의 반대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실수가 아닌가?라는 (그들의) 문서에서 가장 문제적인 부분만 지적할 것이다.

지난 세계대전 발발 이후 이십여 년을 지나면서, 제국주의는 훨씬 더 폭압적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그 영향력이 평시에도 전시 못지않게 막강하며, 여러 가지 정치적 가면 아래에서 훨씬 더 반동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패배주의정책[‘Defeatism’: 1차 대전 무렵 레닌 등 노동계급 혁명가들이 수립한 정책. 제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전쟁에서, 진정한 적은 상대 국가가 아니라 제국주의 금융자본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을 대포밥으로 내모는 자국의 부르주아 정부라는 것, 그리하여, 제국주의 각 나라의 노동계급은 주적은 국내에 있다라는 구호 아래에서 전쟁을 계급내전으로 전환시키고, 자국의 패배와 혁명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노선. 이하 자국 패배주의로 표기]의 모든 원칙들이 오늘날에도 전적으로 타당하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출발점이며, 뒤따르는 모든 결론은 여기에 종속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해당 문서의 저자들은 우리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두 가지 측면에서 지난 전쟁과 다가올 전쟁이 질적으로 다르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먼저, 지난 전쟁 참전국이 전부 제국주의 국가라고 단정 짓는다. 그리고 세르비아는 그 역할이 너무 미미해서 참전국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식민지와 중국의 참전 사실을 잊었다.) 그들은 세르비아보다 훨씬 존재감이 큰 소련이 다가올 전쟁에 참전할 것이라고 확언한다. [제국주의 국가들만 참전한 1차 세계대전과 소련도 참전할 2차 세계대전은 질적으로 다르기에 후자의 경우 혁명적 패배주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 하지만 중국과 식민지 그리고 세르비아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사실을 외면하고 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세르비아의 역할을 축소한 억지]

여기까지 읽은 독자는 편지 저자의 다음 논의의 초점은 소련 참전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문제를 빠르게 내려놓고, 그것을 파시즘의 세계적 위협이라는 주제의 배경으로 격하시킨다. 그들은 지난 전쟁의 반동 군주정이 호전적인 역사적 특성이 부재한 (구시대의) 잔재였던 반면에 오늘날의 파시즘은 모든 문명 세계에 대한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위협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반파시즘) 투쟁이 전시뿐 아니라 평시에도 국제 프롤레타리아의 과제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대목에 이르러) 한층 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혁명 과제를 축소시키는 것, (투쟁 목표를) 제국주의가 아닌 제국주의의 정치적 가면 중 하나인 파시즘으로 바꿔치는 것은 코민테른과 이른바 민주주의 나라사회애국주의자들의 전매특허이기 때문이다.

먼저, 전시 정책의 변화를 강제하는 새로운 역사적 요인인 소련과 파시즘이 반드시 하나의 동일한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자. 스탈린과 히틀러 혹은 스탈린과 무솔리니는 평시 혹은 전시에 같은 편이 될 가능성이 있다. 스탈린은 두 파시즘 정부 모두와, 혹은 둘 중 하나와 협정을 체결하여 짧고 불안정한 중립을 얻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 인지, 우리 저자들은 이러한 돌발적 가능성을 간과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원칙적 입장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정당하게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팔레스타인 동지들의 논증에서 소련 문제는 큰 의미 없이 다뤄지고 있다. 그들은 세계 노동계급과 피억압민족에 대한 즉각적 위협인 파시즘에 집중한다. 그들은 자국 패배주의정책이 파시스트 국가와 전쟁할 수도 있는 나라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논증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파시스트 국가와 민주/()민주 국가가 마치 화해할 수 없는 적대 진영인 것처럼 묘사한다. 이러한 편리한구분을 보증할 근거는 사실 그 어디에도 없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지난 전쟁에서 그랬듯, 다가오는 전쟁에서도 서로 적대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결코 배제될 수 없다. 이럴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로, 국가를 순전히 정치적 특성에 따라 구분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과연 폴란드, 루마니아, 오늘날의 체코슬로바키아, 그 밖의 이류, 삼류 열강은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는 독일과 전쟁을 벌였다. 이 글이 쓰인 1938년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는 독일의 동맹이었다. 동맹국과 적대국이 순식간에 뒤바뀌는 유동적인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이 문서 저자들의 주된 논조는 다음과 같다. ‘주요 파시스트 국가들(독일, 이탈리아)에서는 자국 패배주의노선을 견지하는 것이 의무인 반면, 주요 파시스트 국가들과 전쟁 중인 나라에서는, 심지어 그 국가에 민주주의가 있는지 없는지 의심스러울지라도, 자국 패배주의를 포기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이 문서의 대략적 주제이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되었고 명백한 사회애국주의이다.

현재 망명 중인 모든 독일 사민주의 지도자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국 패배주의자를 자처한다. 히틀러가 그들의 영향력과 수입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주주의적패배주의나 반파시즘패배주의는 진보적 성격이 거의 없다. 그것은 혁명 투쟁에 희망을 거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나 다른 제국주의 국가의 해방자로서의 역할에 희망을 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서의 저자들은 유감스럽게도 자신들의 의지에 명백히 반하는, 바로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애당초, 우리가 보기에, “패배를 이끌어내기 위한 특별하고도 독립적인 행동체계라는, ‘자국 패배주의에 대한 그들의 정의는 지나치게 모호하고 불분명하다. 아니, 그들의 정의는 틀렸다. 패배주의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정책으로, 전시에 특정 제국주의 나라의 국내에서 주적을 찾는 것이다. 반면 애국주의는 자국 바깥에서 주적을 찾는다. 자국 패배주의 사상이 현실에서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자국 부르주아에 맞서 비타협적으로 싸울 것, 혁명 투쟁으로 자국 정부가 패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유념치 말 것, 그리고 혁명 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 자국 정부의 패배는 차악이다.’ 레닌은 이외에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그러길 바라지도 않았다. 따라서 자국 패배주의에 대해 우리는 더 이상 왈가왈부할 권리가 없다. 파시스트 국가가 아닌 나라에서 혁명적 패배주의를 포기해야 하는가?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혁명적 국제주의의 생사가 여기에 달렸다.

예를 들어, 36천만 인도인이 자신의 해방을 위해 이 전쟁을 이용하면 안 되는 것인가? 전쟁 중에 일어난 인도 인민의 봉기는 의심의 여지없이 영국을 패배로 강하게 몰아칠 것이다. 더 나아가, 인도에서 봉기가 일어났을 때, 영국 노동자들은 (반대를 정당화하는 온갖 근거들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지해야 하는가? 아니면 반대로 파시즘에 대항한영국 제국주의의 성공적인 투쟁을 위해 인도 인민을 진정시키고 그들이 얌전해지도록 구슬려야 하는가? 어느 쪽인가?

“(내일은 또 다를 수 있으나) 현재로선 독일이나 이탈리아에 대한 승리가 곧 파시즘의 몰락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내일은 또 다를 수 있으나) 현재로선이란 구절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무엇을 전달하기 위해 위와 같이 말했는지를 저자들은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들의 주장이, 본인들이 봐도 일회적이고 불안정한데다 불확실한 것이기에, ‘내일에는 쓸모가 없어질 것임을 미리 암시한다. 그들은 자본주의 쇠퇴기에 정치체제의 급격한/부분적 변화가, 사회적 토대를 바꾸지도 자본주의의 쇠퇴를 억제하지도 못하지만, 상당히 갑작스럽고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쟁 같은 근본적 문제에서 우리의 정책은 정치체제의 형태 변화에 주목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형태의 정치체제가 공유하는, 그리고 그들 모두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에 맞서 단결시키는 제국주의의 사회적 기초에 주목할 것인가? 전쟁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근본적 전략의 문제이다. 그것은 일회적인 전술적 고려와 추측에 종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순전히 일회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앞서 인용한 구절의 생각은 틀렸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군대에 대한 승리는 단지 독일과 이탈리아의 군사적 패배를 의미할 뿐, 파시즘의 붕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저자들은 파시즘이 부패하는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산물이고,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제때 대체하지 못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부패한 민주주의 국가들이 독일과 이탈리아를 상대로 군사적 승리를 거둔다 한들 어떻게 파시즘이, 아주 잠깐 동안이더라도, 청산될 수 있다는 말인가? 만약 (지난 전쟁에서 본 것과 유사한) 새로운 승리와 약간 낡은 ‘(이탈리아가 빠진) 협상국이 상술한 기적을 일으킬 것이라 믿을 만한, 동시에 사회-역사적 법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근거가 있다면, (우리는) 그 승리를 소망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의 사회애국주의자들이 올바르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25년 전보다도 더 올바르지 않고,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훨씬 더 반동적이고 더 해로운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독일과 이탈리아가, 혁명운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패배하면서 파시즘을 무너뜨릴 기회가 생긴다면(이는 피할 수 없다), 동시기에 프랑스 노동계급의 정치적 지지로 일궈낸 프랑스의 승리가 무너져가는 (프랑스) 민주정에 최후의 일격을 가할 가능성은 훨씬 더 높아진다. 영국과 프랑스 제국주의의 강화 즉, 군부-파시스트 반동이 승리한 프랑스 그리고 인도를 포함한 여러 식민지를 강고히 지배하는 영국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사악하기 짝이 없는 반동을 지원할 것이다. 승리의 순간에, 프랑스와 영국은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이고, 이를 통해 혼란을 수습하려 할 것이다. 물론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혁명을 도와야지 방해해서는 안 된다. 독일과 전쟁을 치르는 나라에서 혁명적 국제주의 원칙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서 독일 혁명을 돕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문서의 저자들은 추상적 평화주의에 단호히 반대하는데, 이 점은 물론 옳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가 스스로 일으킨 전쟁이 아닌, 자신의 철천지원수 제국주의 정부가 일으킨 전쟁으로 위대한 역사적 과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그러나 어느 누군가는 이 문서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도 있다: ‘체코슬로바키아 위기 때 프랑스나 영국의 우리 동지들은 자국 부르주아지의 군사적 개입을 요구하고 그럼으로써 전쟁, 그것도 그냥 전쟁이나 혁명전쟁이 아닌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책임을 떠맡아야 했다.’ 이 문서는, ‘히틀러가 끔찍한 위협으로 대두되기 전인 1933년에 소련이 히틀러를 무찔러야 했다(1933321일자 반대파 회보).’는 트로츠키의 말을 인용한다. 그러나 이 말은 노동자국가의 진정한 혁명 정부가 마땅히 그렇게 행동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같은 요구를 제국주의 국가의 정부에 들이미는 것이 용납될 수 있는가?

우리는 스스로를 평화의 정권이라 부르는 정부에 대한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뭐든지!’는 우리 구호가 아니며, 우리들 중 그 어떤 지부도 그런 구호를 내걸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평화 이상으로 그들의 전쟁에는 더더욱 책임을 질 수 없다. 우리의 입장이 더 단호하고 확고하며 비타협적일수록,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전쟁 중에 대중들은 우리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롤레타리아가 자국 정부와 정부의 항복에 맞서 평화와 패배주의의 구호 하에 투쟁할 수 있었을까?”라고, 매우 구체적 문제를 매우 추상적 형태로 제기하고 있다. 당시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고(그리고 전쟁이 뒤따르지 않을 것이 명백했기에) ‘자국 패배주의가 제기될 여지가 전혀 없었다. 전반적 혼란과 분노로 얼룩진 결정적인 24시간 동안 체코슬로바키아 프롤레타리아트는 항복한정부를 전복하고 권력을 장악할 충분한 기회가 있었다. 이를 달성하려면 혁명적 지도부가 필요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권력을 잡은 프롤레타리아는 히틀러에 맞서 필사적으로 저항했을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는 프랑스와 다른 나라 노동인민의 엄청난 호응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상상하지 말자. 그러나 어찌 되었건 오늘날의 세계 노동계급에게 훨씬 더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우리는 혁명전쟁을 지지한다. 그러나 체코 노동계급은 파시즘에 대항하는전쟁의 지휘권을 의원 양반들에게 위임할 권리가 조금도 없었다. 자본가들은 불과 며칠 만에, 아무 탈 없이 파시스트나 유사 파시스트로 전향했다. 지배계급의 이러한 변신과 전향은 전쟁 시기에 소위 민주주의 국가모두의 필연적 모습이다. 이 때문에 프롤레타리아가 파시즘 지지파시즘에 맞서같은 형식적이고 불안정한 말에 근거해 노선을 결정하면 자멸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레닌이 열거한, ‘패배주의를 거부할 수 있는 세 가지 조건 중 세 번째 , “전쟁 중인 모든 나라의 혁명운동이 상호 지원할 가능성이 오늘날에는 낮을 것이라는 이 문서의 핵심 내용을 오류로 간주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들이 지금까지 알려진 전체주의 정부의 전능함에 압도되었음이 분명해진다. 사실 독일과 이탈리아 노동자를 무기력하게 만든 것은, 파시스트 경찰의 전능함이 아닌, 강령의 부재와 낡은 강령과 구호에 대한 불신 그리고 제2, 3인터내셔널의 매춘 행위이다. 오로지 이러한 정치적 쇠퇴와 환멸의 분위기 속에서 경찰기구가 그러한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인데, 안타깝게도, 이것이 우리 동지들 중 몇몇의 마음 속에 과장된 인상을 심어 주었다.

당연히 노동계급 조직이 아직 파괴되지 않은 나라에서 투쟁을 시작하는 것이 더 쉽다. 그러나 투쟁은 지금껏 그랬듯이 국내의 주적에 맞서면서 시작되어야 한다. 프랑스의 선진 노동자들이 독일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여러분이 파시즘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을 안다. 스스로 벗어날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정부를 도와 여러분의 히틀러를 물리치도록 할 것이다. , 독일을 새로운 베르사유 조약의 올가미로 옭아매 질식시키고 나서그리고 나서 우리는 당신들과 함께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이다.” 이런 제안에 독일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지난 전쟁 때 사회애국주의자들의 이러한 노래를 질리도록 들었고, 그 끝이 어땠는지도 잘 알고 있다.”라고. 이래서는 안 된다. 이런 방식으로는 혼수상태에 빠진 독일 노동자들을 깨어나게 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전쟁 중인 모든 국가에서 각자의 제국주의 정부에 맞서 동시에 투쟁하는 것이 혁명 정치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물론 이 동시성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혁명의 성공은, 어디에서 제일 먼저 터져 나오건, 모든 나라에서 저항과 반란의 정신을 고양시킬 것이다. 호엔촐레른 군국주의는 10월 혁명에 의해 완전히 전복되었다. 어느 선진국 한 나라에서 성공한 사회주의 혁명이, 제국주의 민주국가들모두의 군사력을 합한 것보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에게 훨씬 더 큰 위협이다.

부르주아와 그들의 전쟁 정책이 초래한 모든 위협을 회피하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을 프롤레타리아에게 맡기는 정책은 허망하고, 기만적이며, 치명적으로 위험하다. “하지만 파시즘이 승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련이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히틀러의 침공은 노동자들의 학살을 불러올 것이다!” 등등 핑계는 끝도 없이 많다. 물론 우리가 직면한 위험은 크다. 매우 크다. 이 모든 위험을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심지어 예견하는 것조차 어렵다. 그때그때의 일회적 위험을 좇느라, 프롤레타리아가 자기 기본강령의 선명성과 비타협성을 포기한다면, 정치적으로 파산하고 말 것이다. 전시에 전선은 시시각각 변화할 것이고, 군사적 승패가 교차할 것이며, 정치체제도 뒤바뀔 것이다. 노동자들은 역사적 과정을 관망하지 않고 계급투쟁에 직접 개입할 때에만, 이 거대한 혼란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수 있다. 오로지 상승하는 노동계급의 국제적 공세만이 일회적 위험뿐 아니라 그것을 야기한 계급사회도 끝장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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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 Trotsky: A Step Towards Social Patriotism (May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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