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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셰비키2016.10.1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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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레온 트로츠키 지음 <배반당한 혁명>
레온 트로츠키 지음<배반당한 혁명>/스탈린과 관료주의 맹비난
정운영 (경기대 교수·경제학) 1996.01.25


“이봐, 스탈린이 뭐 하는 작자야?” 그 자신이 스탈린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스클리안스키가 내게 물었다. “우리 당의 가장 탁월한 얼치기 녀석이지.” 트로츠키의 자서전 <나의 생애>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책의 프랑스어판(Gallimard·1953) 서문에서 알프레드 로스머는 ‘그에게 자서전은 30여 년의 정치 활동에서 한 번도 중단한 적이 없는 투쟁을 계속하는 수단이다’라고 썼다. 실로 집필이 정치 투쟁의 연장이라면, 여기 소개하는 트로츠키의 <배반당한 혁명> (갈무리)은 그 대표권을 주장할 만하다.

24년 레닌이 죽고, 권력 투쟁에서 패한 트로츠키가 27년 당에서 쫓겨나기까지 스탈린은 이론이나 투쟁 경력에서 그의 적수가 아니었다. 부하린·카메네프·지노비에프가 시세에 따라 스탈린과 손잡았다가 대들었다가 하며 추태를 부렸지만, 트로츠키는 반스탈린 진영의 맹주 자리를 의연히 지켰다. 29년 소련에서 추방된 그는 터키와 프랑스를 거쳐 노르웨이로 망명했다. 36년 여름 부하린·카메노프·지노비에프를 위시하여 그의 아들 세도프를 처형할 ‘모스크바 재판’이 시작되기 직전 트로츠키는 오슬로에서 이 책을 탈고했다. 집필 시기로 보아 스탈린이 만들어낸 ‘얼치기 사회주의’에 대한 고발과 회한이 전편에 배어 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만하다.

열한 장(章) 2백80여 쪽의 본문 가운데 관료라는 말이 빠진 페이지가 거의 한 곳도 없으리만큼 트로츠키는 배반당한 혁명의 암호를 푸는 열쇠로 관료주의를 지목한다. 유럽 혁명이 불발해 20년대의 국제 정세가 혁명의 휴지기에 접어들자 러시아만이라도 지키자는 ‘일국 사회주의’ 노선이 국가 기구 강화와 관료주의 확대를 가져왔다. 그리고 혁명 후의 공적 소유를 떠받치지 못하는 생산성 낙후 문제가 있다. 상점에 물건이 많으면 손님은 아무 때나 이용한다. 그러나 물품이 모자라면 줄을 서야 하고, 이 줄이 아주 길면 질서 유지를 위해 경관이 달려온다. 경관이나 그의 상사는 줄을 서지 않고도 물건을 사는 비결을 배우는데, 트로츠키는 이것이 관료 집단이 누리는 권력의 출발이라고 비판한다.


관료주의는 온갖 무지·오류·부패의 온상

그리고 사회주의, 경제 계획, 대외 정책, 사회적 관계, 문화와 예술에 이르기까지 소련 사회에 존재하는 온갖 무지와 오류와 부패를 모두 이 관료주의의 책임으로 돌린다. 과도기적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국가의 사멸을 독려하는 대신 관료 지배를 강화하고, 이 관료 집단이 ‘퇴보한 노동자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세계 혁명의 대의를 제국주의 세력에 팔아 버렸다고 매도한다. 그 대안은 물론 소비에트 민주주의이고, ‘연속 혁명’이고, 제4 인터내셔널이다.

60년 전에 집필된 이 책은 현재도 대단한 예지와 통찰력을 선사하는데, 사실 그런 매력 때문에 소련이 무너진 뒤에 트로츠키주의가 ‘자신감’을 회복한 것인지 모른다. 글쎄 탁월한 얼치기의 그 ‘탁월함’에 좀더 대비했더라면 과연 역사는 달리 흘렀을까. 더러 논리의 비약이 눈에 띄지만, 이것이 이론 서적이 아니라 투쟁으로 절절 끓는 혁명가의 정치 평론임을 감안하면 적당히 넘길 만도 하다. 트로츠키의 글을 읽는 ‘재미’는 시원한 레토릭에도 있는데, 이번 역시 ‘급진파 관광객을 위한 사회주의’ ‘고위 관리의 여동생을 장모로 두는 행동한 출세’ ‘경찰의 권한을 가진 성직자의 철학’ 등등 쉴새없이 야유와 독설을 뿜어낸다.

번역은 두 번 읽지 않아도 뜻이 통할 정도로 아주 부드럽다. 다만 몇몇 용어는 낯이 설었는데, 이를테면 ‘유럽식 공산주의’나 ‘레닌주의자 의무금’따위는 ‘유러코뮤니즘’이나 ‘레닌 추모 입당’처럼 ‘구시대’의 역어가 낫지 않을까. 레옹 블랭은 레옹 블룸이 맞는다. 끝으로 평자 개인으로는 30여 쪽의 ‘역자 서문’이 특히 흥미로웠는데, 그 내용이 내부 비판이라면 아주 반가우나, 어떤 분열의 조짐이라면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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