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와의 이행 강령 토론(1938)

by 볼셰비키-레닌주의자 posted Dec 2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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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인터내셔널 창립대회가 1938년 9월 개최되기 몇 개월 전 트로츠키는 사회주의노동자당(Socialist Workers Party) 지도부와 이행 강령에 대해 토론을 했다. 이행 강령은 창립대회의 강령적 문건으로서 트로츠키는 이것이 대회에서 채택된 것을 레닌 사후 세계혁명운동의 가장 중요한 성취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 소개되는 대담 자료들은 이행 강령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차례>

 

강령을 완성해서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에 대해

이행 요구들에 대한 개략적 설명

미국노동자들의 정치적 후진성

노동자 농민 정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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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을 완성해서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에 대해

1938년 6월 7일

 

트로츠키: 강령의 의의는 당의 의의와 같다. 당은 계급의 전위이다. 당은 가장 의식이 투철하고 선진적이며 가장 헌신적인 분자들 가운데에서 선정된다. 당은 그 구성원의 숫자와 무관하게 아주 중요한 역사적 정치적 역할을 한다. 규모에 비해 훨씬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05년 첫 러시아혁명에서 볼세비키 분파는 1만명 멘세비키 분파는 1만명에서 1만2천명 정도였다. 당시 이들은 같은 당에 속해 있었으며 당은 2만에서 2만2천명 정도의 규모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당은 올바른 정책과 응집력을 과시하여 전국의 소비에트를 지도했다. 러시아 노동계급은 노동조합 즉 보수적 개량주의의 전통이 없이 성장한 아주 활기있고 신선한 세력이었기 때문에 혁명을 성공시켰다고 반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지도가 필요했고 실제로 지도를 원했던 젊고 신선한 노동계급이었다. 당은 전부 합쳐 보아야 2만 2천명이 채 되지 않았는데 2천 3백만 노동자들을 투쟁과정에서 지도했다.

그렇다면 당은 무엇인가? 당의 응집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응집력은 계급투쟁 과정에 존재했던 사건들과 자신의 임무에 대한 공통된 인식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당 강령이다. 원시인이나 현대 노동자나 도구 없이 일할 수 없다. 당에게 강령은 이 도구이다. 강령이 없으면 모든 노동자들은 투쟁의 무기를 임시변통으로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임시변통된 도구들을 가지고 사용해야 하는데 이것들은 서로 모순을 일으킨다. 공통된 인식에 기초한 조직된 전위가 있을 때에만 정치적 행동이 가능하다.

지금에야 강령을 갖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전에 이미 정치적 행동을 했다. 이 강령은 다른 논문들과 다른 결의문 등등에 이미 표현되었던 것이다. 이 의미에서 이행 강령 초안은 새로운 발명품도 아니고 어느 한 사람의 작품도 아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집단적 정치 행동의 집약판이다. 그러나 동지들에게 상황을 이해시켜 공통의 인식에 도달시키기 위해서는 이같은 집약판은 절대 필요하다. 소부르주아 무정부주의자들이나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은 당에게 공통의 사상과 태도를 부여하려는 노력을 두려워한다. 이 대신 이들은 도덕론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강령은 공통 경험의 산물이다. 이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강요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원들은 자발적으로 강령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와 연관시켜 필요에 대비되는 개념인 자유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자유로운 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소부르주아의 생각인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이것은 허구이며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형이상학적 의미의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맥주 한잔을 마시고 싶을 때 나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이렇게 행동한다. 그러나 나는 맥주에 대한 욕구를 발명하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몸이 가진 욕구이다. 나는 이 욕구를 행동에 옮길 뿐이다. 그러나 몸의 욕구를 인식하고 이 욕구를 의식적으로 충족시키는 한에서 나는 자유롭다고 느낀다. 이것은 필요를 인식하는 데에서 나오는 자유의 느낌이다. 여기에서 몸의 욕구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동물에게 주어진 유일한 자유이다. 그리고 인간은 일종의 동물이다. 계급에게도 사정은 같다. 계급의 강령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필요를 인식하는 지점까지 도달해야 한다. 전자는 나의 몸의 욕구를 인식하는 것이고 후자는 사회의 욕구를 인식하는 것이다. 강령은 이 필요를 명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 필요를 인식하는 법을 우리는 배웠다. 이 필요는 계급 구성원 모두에게 전부 같은 것이므로 우리는 임무를 공통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필요의 인식이 바로 강령이다.

또한 더 나아가 우리 당의 규율이 아주 엄격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의식하고 있는 적들의 엄청난 연합에 대항하는 혁명정당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부르주아 계급뿐 아니라 부르주아 하수인들 가운데 가장 극악한 스탈린주의자들의 공격도 받고 있다. 따라서 절대적으로 엄격한 규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공통의 인식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외부에서 강요되는 것이라면 족쇄에 불과하다. 올바른 인식에서 나오는 규율은 개성의 표현이다. 그렇지 않다면 족쇄에 불과하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규율은 나의 자유로운 개인적 존재의 표현이다. 개인의 의지와 당 사이에는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자유의지를 통해 당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강령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진짜 제대로 이해할 때에만 이 강령은 확고한 정치적 도덕적 기초 위에 설 수 있다.

이행 강령 초안은 완전한 강령은 아니다.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데 빠진 것도 있고 들어가서는 안되는데 들어간 것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강령에 포함되지 말아야할 것은 논평이다. 이 강령은 구호 뿐 아니라 논평 그리고 적들에 대한 논쟁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강령은 아니다. 완벽한 강령은 제국주의 단계의 현대 자본주의 체제를 이론적으로 표현해야한다. 경제위기의 이유, 실업의 증대 등이 설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강령 초안에는 이 분석이 제 1장에 짤막하게 요약되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이 분석 내용들은 논문, 단행본 등의 형태로 이미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와 관련된 글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작성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목적을 위해서는 이 강령 초안의 내용만으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견해가 같기 때문이다. 강령의 첫 부분은 완벽하지 못하다. 그리고 제 1장은 힌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강령의 끝부분도 완벽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사회혁명, 봉기를 통한 국가권력 장악,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계급 독재로의 변모, 노동계급 독재의 사회주의 체제로의 변모 등을 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강령은 독자들을 서론까지만 인도한다. 오늘부터 사회주의 혁명이 시작될 때까지만을 다루는 행동 강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적 관점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계급의 각기 다른 계층을 사회혁명의 길로 지도하는 방법이다. 지금 뉴욕의 동지들이 이 초안 강령을 연구하고 비판할 뿐 아니라 이 강령을 대중에게 제시하기 위한 방법과 수단을 정교화 하기 위해 써클을 조직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당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 강령은 최초의 개략적 요약에 불과하다. 국제대회에 제출되기 때문에 이 강령의 내용은 너무 일반적이어서 세계 자본주의의 일반적 경향을 표현할 뿐이다. 반식민지와 식민지 국가들, 파시스트 국가들, 소련 등에 대한 짤막한 장이 있다. 전 세계가 제국주의 경제의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세계 정세의 일반적 경향은 공통적이다. 그러나 모든 나라들은 나름의 독특한 조건을 가지고 있고 진정한 살아있는 정치행동은 모든 나라 모든 지역의 독특한 조건 속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 강령에 대한 매우 진지한 접근 태도가 미국의 모든 동지들의 첫 번째 의무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강령을 정교화하는 과정에서 두가지 위험이 있다. 일반적 추상적 수준에 머물러 각 지역 노동조합과 진정한 연관을 맺지 못한 가운데 일반적 구호를 반복하는 것이 첫 번째 위험이다. 다른 위험은 이와 정반대이다. 지역의 조건에 너무 매몰되어 일반적 혁명 노선을 놓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두 번째 위험이 더 크다고 생각된다. 특히 노동계급의 무장과 무장 파업방위대 등의 문제에서 이 위험성이 있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이 구호가 피부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등의 우려를 일부 동지들이 나타냈다.

지난 며칠동안 나는 이탈리아 파시즘의 등장에 대해 어느 이탈리아 노동자가 쓴 프랑스어 책을 읽었다. 이 저자는 기회주의적이다. 그는 이탈리아사회당 당원인데 흥미로운 내용은 그의 결론이 아니라 그가 제시하는 사실들이다. 특히 그는 1920년과 1921년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상황을 잘 그리고 있다. 이들은 강력한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사회당은 의회 의원을 무려 160명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지방자치단체는 무려 3분의 1을 넘게 장악하고 있었다. 노동계급의 아성인 이탈리아의 가장 중요한 지역들은 모두 사회당의 손에 있었다. 자본가도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는 고용과 해고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상황은 공업노동자 뿐 아니라 농촌노동자에게도 해당되었다. 사회의 49%는 노동계급 독재체제가 지배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소부르주아 계급과 예비역 장교들의 반응은 이 상황에 치명타를 가했다. 장교들의 주도 하에 소부르주아 계급이 주축이 된 파시스트 깡패들은 소규모 모임을 만들어 버스를 타고 전국으로 흩어졌다. 사회당이 장악한 1만명 단위의 도시들에서 이 소모임들은 도시 중심부로 진입해 관공서와 가옥을 불태우고 노동계급 지도자들을 암살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자본가 지배체제를 강제했다. 이와 똑같은 상황이 수만의 도시에서 일어났다. 무시무시한 테러 분위기와 체계적인 행동으로 파시스트 소모임들은 노동조합을 철저히 파괴하고 이탈리아의 주인이 되었다. 이들은 극소수의 집단이었으나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선언했다. 그러자 파시스트들은 버스에 깡패들을 실어 보내 지역의 모든 파업을 파괴하고 소규모 조직을 통해 노동자 조직을 전부 쓸어버렸다. 그리고 선거가 실시되었다. 테러 분위기 속에서도 노동자들은 전과 같은 수의 의원들을 의회에 보냈다. 의원들은 의회에서 테러에 항의했으나 의회는 곧 해산되었다. 형식적인 권력과 실제 권력의 차이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회당 의원들 전부는 자기들이 권력을 장악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잘 조직된 1만명 정도의 파시스트들은 희생정신과 우수한 군사 지도자를 무기로 역시 희생정신으로 구축된 이 거대한 노동운동을 분쇄하고 흔적도 없이 쓸어버렸다.

미국은 상황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 임무는 같다. 파시스트 헤이그의 전술에 대해 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것은 파시스트들의 국가전복 행위를 예행 연습하는 것이다. 그는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분노한 소기업 사장들을 대표한다. 그는 헌법에 완전히 위배되는 깡패집단을 소유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전염성이 강하다.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이 현상은 미국 전역에 퍼질 것이다. 그러면 아주 훌륭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자인 루즈벨트도 "맞아, 파시즘이 유일한 해결책이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이탈리아에서 수상은 사회당에게 입각을 제안했다. 그러나 사회당은 거부했다. 그러자 그는 파시스트들에게 입각을 제의했다. 사회당의 영향력을 중화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파시스트들은 이 수상마저 박살내버렸다. 뉴저지주의 뉴워크시는 아주 중요한 예를 제공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활용해야한다. 파시스트들의 승리를 분석한 글들을 특별시리즈로 신문에 실을 것을 나는 제안한다. 우리도 파시스트들의 방법을 이용하면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규모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소규모 무장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최상의 규율과 조직 노동자와 정당방위대 등을 보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압살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 동지들은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파시스트들의 광풍은 2년 또는 3년 후에 휘몰아칠 수 있으며 최상의 노동자 지도자들은 미국 남부지방의 흑인들처럼 최악의 방식으로 린치를 당할 것이다. 미국의 테러는 가장 끔찍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소박하게 정당방위대를 시작으로 방어를 조직하는 일을 즉시 착수해야 한다.

 

질문: 실제로 정당방위대를 어떻게 수립할 수 있을까요?

트로츠키: 아주 단순하다. 파업할 때 파업방위선(picket line)을 구축하지 않는가? 파업이 끝나면 노동조합을 이 파업방위선으로 영원히 방어해야 한다고 말하면 된다.

 

질문: 당도 당원으로 정당방위대를 수립합니까?

트로츠키: 동조자들과 우리를 방어할 노동자들이 있는 지구에서 당의 구호들이 제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은 독자 정당방위대를 수립할 수 없다. 우리의 임무는 노동조합에 이것을 수립시키는 것이다. 높은 수준의 규율을 가진 동지들의 모임을 규합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임을 적들이 자극하기 쉬우므로 쉽게 적들의 책동에 말려들지 않는 훌륭하고 조심스러운 지도자들이 있어야 한다. 내년의 주요한 임무는 분쟁과 유혈충돌을 피하는 것이다. 파업 중이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소수이므로 무력충돌 상황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파시스트들의 집회를 막기 위해서는 역량이 결집되어야한다. 우리 혼자는 힘이 부족하다. 우리는 공동전선을 제안하여 이 투쟁에 노동계급 전체의 역량을 결집시켜야한다.

히틀러는 자기 성공담을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세력은 막강했다. 이들의 집회에 그는 루돌프 헤스를 두목으로 하는 깡패집단을 보냈다. 집회의 말미에 그가 보낸 30명의 깡패들이 모든 노동자들을 집회장 밖으로 몰아냈는데 이들은 전혀 저항을 받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승리를 예감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조직의 노동자들은 회비를 내기 위해 모인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다른 임무를 위한 준비가 전혀 없었다. 우리는 히틀러가 한 일을 거꾸로 해야한다. 40명 내지 50명 정도의 노동자들을 보내 파시스트들의 집회를 해산시켜야 한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은 강철같이 단련된다. 이들은 승리의 나팔수가 된다. 소부르주아 계급은 이 노동자들이 진지하다고 생각한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성공이다! 인구의 대다수는 맹목적이고 후진적이고 억압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성공의 사례를 통해서만 각성된다. 우리는 전위만을 각성시키면 된다. 그러면 전위는 대중을 각성시킨다. 다시 반복하건데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주 능력있는 미니애폴리스 동지들이 파시스트들에 대한 투쟁을 모범적으로 수행하여 미국 전역에 희망을 불어 넣어야 한다.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짤막하게 처리된 초안의 한 부분에 대해 토론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일반 이론 부분이다. 사회 일반을 분석한 이 강령의 이론 부분에 충분한 지면이 할애되지 않고 간단한 힌트 정도로 처리되었다고 지난 번 토론에서 내가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이 강령은 혁명, 노동계급 독재, 혁명 이후 사회의 재건 등을 다루지 않고 있다. 이행의 시기만 다루어 지고 있다. 우리는 강령을 특정 정세나 현재 대중의 사고나 정서에 맞추지 않는다. 사회의 경제 계급적 구조가 드러내는 객관적 상황에 강령을 맞출 뿐이다. 이것이 우리 활동의 과학적 성격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반복한 바 있다. 대중의 사고는 후진적일 수 있다. 당의 정치적 임무는 이 후진적 사고가 객관적 현실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이 객관적 임무를 인식한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후진성에 강령을 맞출 수 없다. 후진적 사고나 정서는 부차적 요인일 뿐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객관적 현실이다. 강령의 일부가 현재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과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곳에서 나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묻는다. 우리 강령을 객관적 상황에 맞출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들의 정서에 맞출 것인가? 이 강령이 미국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모든 동지들에게 나는 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강령은 과학적 강령이다. 객관적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한 결과이다. 따라서 노동자 전체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 다음 시기에 전위가 이 강령을 이해하고 노동자들에게 "파시즘으로부터 여러분들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객관적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사회혁명의 객관적 조건들을 분석해야한다. 이 조건들은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에 나와 있으며 지금까지 그 핵심은 그대로 적용된다. 우선 맑스는 한 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모든 사회는 자신의 가능성들을 소진시키지 않고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사회를 주관적인 의지로 제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블랑끼주의자들처럼 소수의 음모가들이 봉기를 일으키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능성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회가 사라진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사회가 자신의 생산력을 발전시킬 능력이 있는 한 그리고 나라를 더 부유하게 만들 수 있는 한 이 사회는 강력하고 안정적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가 전부 이러했다.

전에 나는 [공산당 선언] 서문을 분석한 적이 있는데 지금 논의와 관련하여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맑스와 엥겔스는 평생 혁명을 기다렸다. 특히 1848년에서 1850년까지 이들은 사회혁명을 기대했다. 왜 그랬는가? 사적 이윤에 근거한 자본주의체제가 생산력의 발전에 제동을 걸고 있다고 이들은 말했다. 이 견해는 올바른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노동자들이 19세기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권력을 장악했다면 생산력의 발전은 더욱 급격했을 것이며 나라는 더 부유했을 것이다. 이 의미에서는 이들의 견해는 맞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시대의 임무에 부응할 능력이 되지 않아 자본주의는 위기와 그밖의 온갖 모순을 안은 채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그러나 일반적 경향은 생산력 발전의 상승 곡선이었다. 지난번 전쟁(1914-1918)은 이 사실을 보여주었다: 세계시장은 생산력 발전을 도모하기에는 너무 협소하다; 각국은 딴 나라들을 희생시켜 자기 이익을 위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이들을 배제할 노력을 경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으며 이제 자본주의 사회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전쟁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전쟁은 사회가 자신의 가능성들을 소진시켰다는 사실의 결과일 뿐이다. 전쟁은 더 이상 생산력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할 뿐이다. 전쟁 후에 역사적 위기는 더욱 깊어만 갔다. 모든 곳에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 결과를 합계하면 여전히 생산력은 상승세였다. 그러나 지난 세계대전과 함께 우리는 생산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이 사회가 자신의 내적 가능성들을 소진시켰으며 따라서 새로운 사회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는 그리이스와 로마 사회가 가능성들을 소진시키고 새로운 지배계급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야만 상태(역자 주: 암흑시대, Dark Ages,를 의미한다. 로마제국이 망한 서기 476년에서 서기 1,000년까지 유럽은 정치적 혼란과 문화의 쇠퇴를 경험했다. 봉건제도의 정착으로 이 암흑시대는 끝났다.)로 추락한 것과 같은 운명을 겪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이것이며 이 문제는 특히 미국에서 심각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새로운 사회의 첫 번째 요건은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하여 더 높은 수준의 사회를 탄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생산력은 충분히 발전했는가? 그렇다. 이미 19세기에 지금 만큼은 아니지만 이미 충분히 생산력은 발전했다. 만약 미국의 생산력이 그 잠재력을 발휘한다면 현재의 수준보다 생산력은 두배나 세배로 커질 수 있다. 능력 있는 통계 전문가는 누구든지 이 점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동지들이 통계 조사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회의 두 번째 요건은 자신의 의지를 사회에 강요할 수 있을 정도로 숫자나 경제적 영향력이 충분한 새로운 진보적 계급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계급은 바로 노동계급이다. 이 계급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거나 다수를 지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국의 경우 노동계급은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다. 러시아에서 노동계급은 소수였지만 빈농을 지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서 노동계급은 최소한 인구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농민들을 지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 요건은 주관적 요인이다. 노동계급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인식하고 자신의 조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역사적 관점에서 결여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현대 사회는 사회주의로 나아가거나 야만 상태로 퇴보하든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역사적 순간에 있다.

헤이그는 자기 도시에 중세 봉건체제가 존재한다고 상상하는 어리석은 노인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토론에서 말한 바 있다. 그는 미국 자본가 계급의 선발대이다.

소설가 잭 런던은 [강철 군화]라는 소설책을 썼다. 이 책은 1907년에 쓰여졌는데 일독을 권한다. 당시에는 이 소설이 무시무시한 악몽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되었는데 지금 이 악몽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무시무시한 억압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자본가 계급을 미국 계급투쟁의 전개 과정으로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파시즘을 묘사하고 있다. 그가 소설 속에서 제시하는 이데올로기는 히틀러의 것과 같다. 아주 흥미로운 소설이다.

뉴워크시에서 시장은 헤이그를 모방하고 있으며 사람들도 헤이그와 대자본가들을 존경하고 있다. 이제 이 위기에서 민주적 수단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루즈벨트는 판단할 것이 절대적으로 확실하다. 그는 스탈린주의자들이 1932년에 주장한 파시스트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노동자들은 불만이다. 대자본가들도 불만이다. 그는 임기 말까지 요런 저런 술수나 부리며 권력을 지탱하다가 안녕을 고할 것이다. 루즈벨트가 3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뉴워크시 시장이 파시스트들을 모방하는 행위는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2년이나 3년이 지나면 미국판 파시즘이 강력하게 대두될 지도 모른다. 헤이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는 무쏠리니나 히틀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다만 미국의 파시스트일 뿐이다. 그는 왜 행동으로 나섰는가? 왜냐하면 사회가 더 이상 민주적 수단으로 운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히스테리를 일으켜서는 절대 안된다. 노동계급이 사태의 발전에 뒤쳐질 위험은 의문의 여지 없이 존재한다. 그러나 올바른 혁명적 구호들을 통해 우리의 행동을 정열적으로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통해서만 이 위험에 대처할 수 있다. 우리의 능력 범위를 넘어서는 황당한 시도들은 절대 금물이다.

민주주의는 대자본가들의 통치를 의미할 뿐이다. 런버그는 자신의 책에서 60대 족벌이 미국을 통치한다고 말했다. 이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어떻게 통치했는가? 지금까지는 민주적 수단으로 통치를 했다. 이들은 중간 계급, 소부르주아 계급, 노동계급으로 둘러싸인 극소수 집단이다. 이들은 중간 계급을 체제 내에 동화시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중간계급은 절망해서는 안된다. 노동계급도 최소한 상층부는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자신의 지위가 도전받을 경우 하층민의 혁명 가능성들을 분쇄할 수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가장 귀족적인 통치방식이다. 이것은 부유한 나라에게나 가능한 방식이다. 영국의 민주주의자들 모두는 식민지에서 일하는 노예들을 10명 정도 거느리고 있다. 고대 그리이스 사회 역시 노예에 기반한 민주주의 사회였다.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은 직접 통치하는 식민지는 없지만 중남미를 자기 세력권으로 가지고 있다. 어쩌면 전세계가 미국의 식민지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미국은 가장 자원이 풍부한 대륙을 지배하고 있으며 중세 봉건사회의 전통이 없이 발전하고 있다. 역사적 의미에서 미국은 특권을 누리는 나라이다. 그러나 특권 자본주의 국가는 위기가 지연되고 있다는 의미에서만 "거지" 자본주의 국가와 다를 뿐이다. 거대 자본주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탈리아가 먼저 파시스트 국가가 되었다. 독일은 식민지나 자원이 풍부한 종속국을 거느리지 않은 취약한 상태에서 모든 가능성들을 소진했으며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계급을 대체해 새로운 지배계급이 될 수 없었다. 이 결과 독일도 파시스트 국가가 되었다. 이제 식민지가 있는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미국이 파시스트 국가가 될 차례이다.

우리 당의 임무는 모든 미국 노동자들을 잡고서 그가 상황을 인식하도록 10번 정도 잡아 흔드는 것이다. 지금의 위기는 일시적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이다. 우리 당은 아주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거의 전통과 위선의 무거운 공기를 숨쉬고 있는 젊은 당은 혁명적 구호를 내세우기가 어렵다. "너무 황당하다.", "미국에는 맞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강령의 혁명적 구호들을 제출할 때가 되면 이 상황은 바뀔 것이다. 우리에 대해 웃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적 용기는 총살을 감수할 뿐 아니라 사회의 다수인 어리석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아준다. 그러나 이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헤이그의 파시스트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으면 정당방위대를 수립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것이며 그 비웃음은 사라질 것이다.

 

질문: 노동자들의 후진적 의식 역시 객관적 현실의 일부가 아닌가요?

트로츠키: 우리 극소수 혁명 집단에게는 노동자들의 정서를 포함해서 모든 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선전으로 바뀔 수 있는 요인과 그렇지 않은 요인들을 분석하고 분류해야 한다. 강령이 객관적 현실의 근본적이며 안정적인 요인들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임무는 대중의 정서를 이 근본적인 객관적 요인들에 일치시키는 것이다. 대중의 정서를 바꾸는 것은 교육적 과업이다. 따라서 우리는 참을성을 가지고 끈기 있게 설명해야 한다. 사회 위기가 우리 활동의 기반이다. 대중의 정서는 우리 정치활동의 장이다. 우리는 이것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대중에게 사회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맑스주의와 개량주의의 차이이다.

개량주의자들은 노먼 타머스(Norman Thomas)처럼 대중이 원하는 것을 잘 냄새 맡는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준다. 그러나 이것은 진지한 혁명활동이 아니다. 우리는 "당신은 바보요.", "당신은 어리석군요.", "저들은 당신을 배신할 것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인기를 잃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가끔 열정적으로 우리의 사상을 펼치면서 평지풍파를 일으켜야 한다. 노동자들을 뒤흔들고 설명하고 다시 뒤흔드는 것이 가끔 필요하다. 이것은 다 선전술의 일부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중의 정서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과학성을 갖추는 것이다. 우리는 가장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노먼 타머스의 웅변으로도 변할 수 없는 현실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즉시 대중을 설득하는 일에 성공하면 우리는 대중의 물결을 타면 된다. 이 물결이 바로 혁명이다.

 

질문: 때때로 우리 지도자들도 이 문제들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트로츠키: 아마도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인식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근육과 근섬유로 느끼는 것이다. 정치활동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인식이 깊이 박힐 때가 필요하기도 하다. 이것은 대중의 문제일 뿐 아니라 당의 문제이다. 당의 문제일 뿐 아니라 지도자의 문제이다. 우리는 토론을 하면서 견해 차이를 드러내었다. 같은 결론을 동시에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항상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이것은 불가피하면서도 필요하다. 강령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토론을 촉발시킨다.

 

질문: 지도자들 사이의 이 토론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려야 합니까?

트로츠키: 말하기가 어렵다. 많은 요인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도 없다. 새로운 전술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것은 새롭기도 하고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과거의 모든 활동들에 기초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장을 열기도 한다. 오류, 갈등, 투쟁에도 불구하고 지금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으며 우리는 좀더 열정적으로 우리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한다. 강령이 명확히 확립되면 구호들의 성격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기술적으로 요리하여 전국 모든 곳에서 모두가 동시에 같은 구호를 사용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3천명의 역량이 1만5천명이나 5만명의 역량이라는 인상을 줄 수가 있다.

 

질문: 동지들이 추상적으로 강령에 동의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중에게 구호들을 제출할 경험있는 동지들이 있습니까? 추상적으로 동의할 수는 있지만 각자 소속된 노동조합의 후진적 노동자들에게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트로츠키: 우리 당은 미국 노동계급의 당이다. 강력한 노동계급 혁명은 고사하고 강력한 노동운동도 미국에 없었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러시아 혁명의 경우 1905년 혁명이 없었다면 1917년 혁명의 승리는 불가능했다. 우리 세대는 아주 젊었다. 12년에 걸쳐 우리는 패배들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것들을 교정하여 승리할 아주 좋은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도 새로운 관료집단에게 패배했다. 우리 당이 미국 노동계급을 직접 혁명 승리로 지도할 것인지를 알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애국적이고 생활수준이 높은 미국 노동자들이 반란과 파업을 일으킬 가능성은 있다. 한 쪽에는 파시스트 헤이그가 있고 반대 쪽에는 광산노조 위원장인 노동관료 루이스가 있다. 이 상황은 상당히 오래 갈 수 있으며 이때 우리 동지들은 자신을 단련시켜 자신감을 높일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들은 길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전쟁만이 전쟁 영웅을 만들어낸다. 우선 우리에게는 뛰어난 분자들이 있다. 아주 훌륭하며 진지하고 교육 받은 좋은 부대이고 결코 작은 부대가 아니다. 좀더 일반적인 의미에서 나는 전적으로 낙관적이다. 그리고 미국 노동자들의 정서 변화가 아주 빠른 리듬을 탈 것으로 믿는다. 무엇을 할 것인가? 모두는 불만을 느끼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 이 상황은 혁명적 선전에 아주 유리하다.

우리는 귀족 분자들뿐 아니라 빈곤층 분자들도 기억해야 한다. 교양이 있는 미국 노동자들은 영국의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스포츠는 아주 좋기도 하지만 동시에 노동자 투쟁을 억압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혁명적 에너지가 모두 스포츠로 소모된다. 이것은 가장 똑똑한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이 갈고 닦은 것이다. 스포츠는 혁명 교육의 일환으로 노동조합이 장악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누릴만큼 여유가 있지 못한 청년들과 여성들이 대다수이다. 우리는 사회의 가장 깊은 부분까지 침투하는 촉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질문: 지난번 열린 대회 이래 당은 큰 발전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트로츠키: 아주 중요한 전술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제 이 무기에 집중된 행동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분산된 일반적 선동은 교육받지 않은 대중의 마음 속으로 침투하지 못한다. 그러나 같은 구호들을 반복해서 상황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가르침의 어머니인 반복이 정치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지식인뿐 아니라 노동자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고 믿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열정을 가지고 반복하고 매일 모든 곳에서 반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이 강령 초안의 임무이다. 즉 동질적인 인상을 남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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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 요구들에 대한 개략적 설명

1938년 3월 23일

트로츠키: 지난 번에 진행된 여러 번의 토론 가운데에서 일부 동지들은 내가 제안한 이행 요구들이 일부는 기회주의적이며 일부는 너무 혁명적이라 객관적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 두 극단이 결합된다면 참으로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겉보기에 모순적인 이 요구들을 옹호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과 전세계를 규정하는 일반적 상황은 무엇인가? 경제위기는 유례가 없이 심각하다. 각국의 금융위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다. 이것은 유례가 없는 사회위기이다. 지난 칠팔구년 동안 우리는 미국 자본주의가 위기에 좀더 강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미국 자본주의 즉 뇌졸증 자본주의가 다른 나라보다 더 붕괴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진실을 이런 저런 사실들이 보여주었다. 미국의 위기는 사회위기이며 일시적인 위기가 아니다. 불황이라고 불리는 이 사회위기는 대단히 격심한 측면들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이 불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당연히 국민은 대단히 부유해서 국가는 국민들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금융위기의 기초 위에 국가의 위기가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배계급의 정치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 호황은 끝난지 이미 오래 되었으며 어느 누구도 이것이 다시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실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위기에 반영된다. 지배계급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며 새로운 강령을 찾고 있다. 루즈벨트의 뉴딜 강령은 자본주의의 관점으로 보면 모험주의적일 뿐 아니라 실험적이다. 따라서 혁명적 상황의 대단히 기본적인 전제가 마련되었다. 이것은 전세계 그리고 특히 미국에 해당된다.

문제는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도 크게 변하고 있다. [사회주의 호소]와 [새 인터내셔널](역자 주: 전자는 1938년에서 1941년까지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공식 신문이었으며 이후 투사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후자는 1938년부터 1940년까지 이 정당의 월간지였으며 이후 제 4 인터내셔널 그리고 국제사회주의평론으로 이름이 각각 바뀌었다.)의 일부 논문에서 나는 흥미와 즐거움으로 이 사실을 접했다: 자신이 노동자라는 인식이 미국 노동자들에게 점점 커지고 있다; 자신이 일시적인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옛날 개척민의 인식이 아니라 자신이 영원히 노동자이며 심지어 영원히 실업자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이 인식은 다른 모든 상황 전개의 기초가 된다. 그리고 공장 점거 파업이 일어났다. 이것은 미국 노동운동사에서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이 운동의 결과 산업별노조회의(CIO)가 창립되어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당을 건설하려는 경향(LNPL)이 생겨났다.

과거와 현재의 미국 노동운동을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이 점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1924년의 운동은 지금보다 더 강력했으나 혁명의 사회적 조건은 지금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성숙했다. 노동당의 의의가 지금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모든 조건들이 같은 정도나 수준으로 발전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모순, 미국 자본주의의 지위, 위기와 실업, 미국 경제의 표현인 미국 국가의 지위, 미국 부르주아 계급의 지위, 지배계급의 정치적 심리, 지배계급의 혼란, 노동계급의 지위 등을 모두 고려한다면 혁명의 전제조건들이 지금 더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본 전제조건에서 상부구조인 정치로 넘어가면 정치는 그리 성숙되지 않았다. 위기와 실업으로 대표되는 미국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은 미국 노동자들의 의식이라는 혁명의 주관적 조건보다 객관적 조건을 더 성숙시켰다. 이것이 상황을 결정하는 두 잣대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8년이나 9년 전에 예측하지 못한 혁명을 위한 객관적 전제조건들의 과도한 성숙성이 현재의 특징이다.

반면에 미국의 물질적 조건의 급속한 해체에 비해 대중의 의식은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대중의 의식, 혁명정당의 성장 등 주관적 조건이 혁명의 기본적 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것은 객관적 상황에 종속된다.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주관적 요인 자체는 객관적 조건에 달려있다. 그러나 이 의존관계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아주 복잡한 과정이다.

지난 해에 프랑스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 터졌으며 이것은 미국 동지들에게는 아주 유익하다. 당시 프랑스의 객관적 상황은 미국만큼 성숙해 있었다. 노동운동은 엄청난 추진력을 부여받았다. 7개월 동안 조합원수는 1백만 미만에서 5백만으로 성장했다. 프랑스의 공장 점거 파업은 미국의 경우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강력했다. 노동자들은 혁명을 원했다. 그러나 인민전선이라는 술수가 혁명을 막았다. 처음으로 우리는 코민테른이 저지른 배신행위의 역사적 의의를 증명할 수 있었다. 몇 년간 코민테른은 자본주의 유지의 버팀대였다. 그런데 혁명의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조건의 불균형이 날카롭게 드러나자 대중의 거대한 혁명적 열기를 식히는 가장 커다란 수단인 인민전선이 등장했다. 이것으로 인해 혁명의 전진은 어느 정도 가로막혔다. 내일은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지만 현재 프랑스의 대중운동은 저지당했다. 이 결과 운동은 우경화되었다. 블룸은 지도자가 되어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전쟁을 위한 신성동맹을 맺는다. 그러나 이것은 부차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전세계적으로나 미국에서나 객관적 요인과 주관적 요인의 불균형이 가장 중요한 정세의 결정요인이다. 그리고 이 불균형은 어느 때보다 더 심각하다.

현재 미국에는 이 불균형을 극복하려는 대중운동이 존재한다. 그리고 보수적 노조관료 그린(Green)에서 전투적 노조관료 루이스(Louis)로 보수적 민주당 뉴욕시장 워커(Walker)에서 진보적 민주당 뉴욕시장 라가디아(La Guardia)로의 움직임이 있다. 이것은 근본적인 모순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다. 미국공산당은 프랑스공산당과 같이 투쟁에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을 후자보다 좀더 온건하게 하고 있다. 루즈벨트의 정책은 프랑스의 인민전선을 대신하고 있다. 이 조건 속에서 우리 당은 노동자들이 이 모순을 극복하도록 돕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략적 임무는 무엇인가? 대중의 정치적 심리적 정서를 객관적 현실에 조응시키고 이들의 편견을 불식시켜 이들의 정서가 사회위기의 객관적 상황에 일치되도록 돕는 것이다.

산업별노조회의(CIO)의 건설과 공장 점거 파업으로 보아 우리의 전략과 전술은 좀더 낙관적이고 공격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모험주의가 아니라 미국 노동계급의 어휘에 없는 구호들을 제출하는 것이다.

이행 강령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을 행동 강령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전략적 개념에 따르면 이것은 이행 강령이다. 이것은 대중이 구습으로 물려받은 사고, 방식, 형식 등을 극복하고 객관적 현실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이행 강령은 가장 단순한 요구들을 포함해야 한다. 공장의 특수한 상황에 맞는 노동조합적 요구들이 노동자 소비에트 수립의 구호로 나아갈지를 누가 알겠는가.

이행 강령을 발전시켜 대중이 혁명적 국가권력 장악의 사상을 갖도록 가교를 건설하는 임무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우리는 경제주의적 요구와 혁명적 요구의 양 극단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일부 요구들이 노동자들의 현재 정서에 맞추어져 있어 기회주의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일부 요구들이 대중의 실제 정서보다 객관적 현실을 좀더 많이 반영해 너무 혁명적으로 비추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객관적 요인들과 주관적 요인들의 간극을 될 수 있으면 줄이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이행 강령의 중요성을 아무리 과대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부 동지들은 이렇게 반론을 제기할 지 모른다: 운동의 리듬과 템포를 예측할 수 없으며 어쩌면 부르주아 계급이 정치적 지배를 연장시킬 기회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 가능성은 배제될 수 없다. 이 경우에는 전략적으로 후퇴해야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략적으로 후퇴할 것이 아니라 공세를 취해야 한다. 노동자 소비에트 수립의 사상을 노동자 농민 정부 수립의 사상으로 연결시켜 전략적 공세를 지향해야 한다. 소비에트 구호를 즉시 제출하라고 제안하지는 않겠다. 러시아 노동자들에 비해 미국 노동자들이 이 단어의 의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공장 점거 파업처럼 소비에트와 같은 조직형태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유사한 조직에 다른 이름을 부여하여 우리의 임무를 시작할 수도 있다. 어떤 시점에는 소비에트를 공장위원회로 대체할 수도 있다. 그리고 지역적 규모에서 전국적 규모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다음 시기에 우리의 전략적 방향은 소비에트 수립이다. 이행 강령 전체는 지금의 현실과 내일의 소비에트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섁트먼: 국제 전쟁의 발발 가능성을 미국과 연관시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트로츠키: 지금까지 얘기한 전략적 전망을 가지면 레닌이 말했듯이 전쟁은 운동을 엄청나게 가속화시킨다. 미국이 전쟁에 개입할 경우 우리는 처음에 대중으로부터 고립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번 세계대전처럼 수년이 아니라 수개월 동안만 그럴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에 대한 엄청난 동조의 물결이 우리 당을 짧은 시간 내에 전국적 혁명의 구심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이 의미에서 다가오고 있는 전쟁은 준혁명 상황의 기본적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며 6년 이상 우리가 활동을 통해 바꿀 대중의 정서를 6개월만에 바꿀 것이다. 우리가 전략적 관점을 가지고 전쟁을 예측하고 중핵들을 준비시키고 자질구레한 문제들에 우리의 관심을 소모시키지 않는다면 전쟁은 우리에게 대단히 유리한 조건들을 조성할 것이다. 우리가 노동조합에 뿌리 박고 있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세계 전략 노선을 상실하지 않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모든 지역적 부분적 경제적 요구를 이행 강령의 일반적 요구에 접근시켜야 한다. 어제 말했듯이 군수산업에 대한 노동자 통제와 노동자 농민의 무장 등 전쟁과 관련된 문제들은 특히 우리의 임무를 위해 중요하다.

 

섁트먼: 두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다. 농민과 우리는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그리고 도시 중간계급과 당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트로츠키: 노동자들에게 농민의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가 농민의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야한다. 우리는 현재 역량을 직접 농민에게 투여하기에는 너무 허약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농민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의 이행 강령과 연관된 농민의 이행 강령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농민에게 집단화를 강제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의 장점을 설득하고 싶다고 설명해야 한다. 농민들이 자영을 원하면 우리는 신용대부를 통해 이들을 도울 것이다. 그리고 독점 트러스트가 아니라 농민의 이익을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구호를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권력을 장악한 이후 여러분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원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이 설명은 농민의 현 상황을 농업의 집단화로 연결시키는 가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야 한다: 여러분이 집단화를 원할 때까지 우리는 기다릴 것이다.

도시의 중간 계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접근이 필요하다. 상업에 종사하는 소규모 사업자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러분은 독자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 지금 여러분은 독점 트러스트에 종속되어 있다; 그러나 혁명 후 국가가 여러분이 판매할 상품을 제공할 것이다. 여러분의 상점을 국영상점으로 전환시키고 싶으면 우리가 일을 처리해 줄 것이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선택할 시간을 줄 것이고 이 시간은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국가는 대자본의 이익에 봉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인민을 위해 봉사할 것이다. 미국에서 여러분은 당분간만이라도 사회적 특권을 유지할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기술자들에게 기술관료가 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새로운 귀족층을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리베라: 엔지니어들 사이에도 계층 구분이 있습니다. 이들은 미장이들보다 돈을 더 적게 법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단순 노동자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더 좋습니다.

트로츠키: 직업의 계층화는 대단히 중요하다.

 

캐넌: 전쟁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섁트먼: 미국이 참전하지 않는 유럽의 전쟁이라면 어떨까요?

트로츠키: 그 경우에 미국 경제의 붕괴는 지연될 것이다. 전쟁에 참여하는 나라들의 경우 경제 붕괴는 4년이나 6년 후가 아니라 6개월에서 12개월 후에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적으로 자본주의 국가들은 1914년 당시보다 더 부유하기는 커녕 더 가난하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이들은 더 발전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경우보다 파괴를 위해 4배, 5배 아니 10배의 비용을 쓸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지난 전쟁이 파괴를 끝낸 지점에서 다시 파괴를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전쟁에 참여했던 구 세대는 아직도 살아 있으며 지난 전쟁의 전통도 지금 그대로 살아있다. 이것이 심리적 요인이다. 어느 누구도 이 전쟁이 행복, 완전한 권리, 군국주의의 일소 등을 가져올 것으로 믿지 않는다. 그리고 생산이 인류를 위한 것이라고도 믿지 않는다. 이 교훈들은 심지어 신세대에게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들의 참을성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혁명은 4년 후가 아니라 훨씬 일찍 즉 몇 개월이 지난 후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이 전쟁에서 조직적으로 단련된다면 그리고 우리가 첫 시기의 장애물들을 용기를 가지고 극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사태를 결정하는 세력이 될 것이다.

 

캐넌: 자본가의 생산수단을 몰수하는 것이 개량주의자들이 얘기해왔던 국유화와 같은 것일까요?

트로츠키: 국가권력이 루즈벨트의 손에 있다면 우리에게는 국가권력이 없다. 이것을 강조해야 한다. 매번 계급적 요소를 강조해야 한다. 우리의 강령을 개량주의자들의 것과 대비시켜야 한다. 국유화라고? 그러나 누구의 손에서 진행되는 국유화인가?

 

캐넌: 미국이 얼마나 오랫동안 전쟁에 불참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트로츠키: 미국은 전쟁 초기에는 참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뿐 아니라 일본과 영국의 태도에도 달려있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전쟁보다 미국은 더 빨리 참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전쟁에서는 전쟁 발발 후 2년 반이 지나고 나서야 미국은 참전했다. 지금은 2년 반을 기다렸다가는 모든 것이 완전히 붕괴할 것이다.

전쟁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할 경우 미국은 더 빨리 개입해야 할 것이며 개입의 규모도 유례 없이 엄청날 것이다. 그리고 유럽뿐 아니라 모든 곳에 개입해야 할 것이고 윌슨이 동원했던 군사력보다 10배나 많은 군사력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다. 지난 전쟁 때에 미국 내에 실업자는 1천만명을 넘지 않았다. 현재 엄청난 수의 실업자들은 전쟁 산업에 흡수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나라의 모든 부를 소모시키는 엄청난 펌프가 될 것이다.

 

섁트먼: 소련이 한 제국주의 국가를 다른 제국주의 국가에 대항하도록 술수를 펼칠 것 같습니까? 아니면 제국주의자들이 히틀러가 소련의 서부를 공격하고 일본이 소련의 동부를 공격하도록 허용할 것 같은가요?

트로츠키: 제국주의자들이 그렇게 합리적인 계획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전쟁 초기에 소련은 제국주의의 한쪽에 붙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계속 진행되는 동안 혁명이 터지지 않을 경우 제국주의자들은 적국을 통해서든 우방국을 통해서든 소련을 분쇄할 것이다.

 

섁트먼: 그렇다면 영국의 정책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역자 주: 영국이 독일과 이탈리아에 대해 유화조치를 시도한 것을 가리킨다. 이 결과 뮌헨 조약이 체결되고 독일의 인접국들은 독일의 손에 들어갔다.)

트로츠키: 영국뿐 아니라 이탈리아에게도 평화조약은 아주 중요하다. 이 조약이 체결되면 평화가 3개월 이상 지속할 수 있을지 또는 이탈리아가 지난 번 전쟁처럼 참전을 미루면서 더 강한 세력에 붙을 것인지 등을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나는 부르주아 신문에 글을 써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 가능한 동맹과 연합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나 이 글은 실리지 않았는데 우리 신문이 아마 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섁트먼: 당의 반전투쟁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전쟁이 터지면 미국 노동자들은 거대한 국수주의 물결에 휩쓸릴 것이고 우리 당은 불법화될 것입니다. 지난 전쟁 당시 러시아 볼세비키당은 어떻게 비합법으로 활동했습니까? 그리고 어느 선에서 합법활동을 시도했습니까?

트로츠키: 당시에 당은 의회 의원단이 있었으며 이것은 아주 중요했다. 의원단은 전쟁 시작 당시에 별로 좋지는 않았으나 점차 레닌의 압력과 당원들의 점증하는 불만 때문에 더욱 혁명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이들은 당국에 체포되었다. 이때가 1915년 초였다. 따라서 이들은 전쟁 발발 후 6개월에서 8개월 동안만 활동할 수 있었다. 미국의 당은 의원단이 없다. 그러나 비합법 활동에 대한 준비는 노동조합과 관련되어 이루어진다. 비합법 활동의 가장 좋은 학교는 노동조합이다. 미니애폴리스의 우리 동지들은 어느 정도 좋은 조건에 처해 있으며 "정직한 개량주의자들"과 연합을 체결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다가오면 "정직한 개량주의자들"은 가장 국수주의적이 되고 우리 동지들은 조심하더라도 이들에게 공격당할 것이다. 이들은 우리와의 동맹을 깨고 스탈린주의자들과 연합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동지들이 독일과 일본의 첩자라고 비난할 것이다.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하여 미니애폴리스 만큼 좋은 상황은 없을 것이다. 다른 곳의 노동조합에서는 우리 동지들을 제거하려는 압력이 가해질 것이다. 지금부터 노동조합에서 합법 비합법 활동을 조직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관료들을 몰아내기 위한 중핵을 조직하려면 우리 동지들이 어느 정도 비합법 상태를 유지하면서 제 4 인터내셔널 회원임을 숨겨야 한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어쨌든 상황이 더 악화되어 우리 동지들이 제거되면 새로운 동지들이 이들을 대신하기 위해 노동조합에 남아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활동은 비합법 활동을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가 된다.

우리가 비합법 활동을 위한 특수 학교를 수립할 수 없느냐고 동지들은 묻는다. 그러나 이런 식의 학교는 너무 인위적일 것이다. 현재 우리의 가장 중요한 활동은 공산당 내에서의 활동이고 심지어는 이 정당의 정치국에 침투하는 것이다.(역자 주: 트로츠키는 사회주의노동자당이 공산당에 침투하여 스탈린주의자로 굳어지지 않은 분자들을 트로츠키주의로 획득하기를 원했다.) 노동조합에 공개적으로 제 4 인터내셔널을 지지하는 동지들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동지들은 전쟁이 임박하거나 시작되면 관료집단의 첫 번째 타격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경찰 당국은 노동조합 관료들이 우리 동지들을 축출하도록 내버려둘 것이다. 따라서 연설을 잘 하지 못하지만 조직을 잘하는 젊은 동지들에게 비합법 활동을 준비시켜야 한다. 이들은 정체를 숨긴 채 활동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러시아보다 미국의 동지들은 더 유리한 조건에 있다. 왜냐하면 미국 정부는 노동조합을 결코 불법화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노동조합 관료들의 협조를 얻으려고 노력할 뿐이므로 우리가 숨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동조자들을 조직할 수 있다. 그리고 엄마들이 전쟁터에서 죽은 아들을 애도하는 물결이 크게 일 것이다. 이 정서는 노동조합의 정서에 반영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전쟁의 본질을 미리 경고한 적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전쟁 초기에 우리는 공격적으로 나올 수 없다.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 동지들이 국수주의 물결에 투항하지만 않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섁트먼: 그러면 당 중앙위원회는 어떻게 됩니까?

트로츠키: 일반 상황으로 결정되기에는 너무 구체적인 질문이다. 동지들의 권위와 생활조건에 달려있다. 중앙위원회 일부는 즉시 지하로 숨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부분은 아주 조심하면서 비합법 연결선을 즉시 확립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섁트먼: 다른 각도에서 질문해 보고 싶습니다. 당 중앙위원들은 공개 선언문을 발표해야 합니까?

트로츠키: 일부는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변호사와 문구를 상의하여 군사재판에 회부될 빌미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선언문은 나중에 대중에게, "우리는 전쟁의 해악을 미리 경고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도록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담아야 한다. 그리고 이 선언문은 당의 이름으로 나오는 좀더 명확한 내용의 선언문들과 비합법 유인물 등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중앙위원 일부는 체포되어 당의 공개활동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섁트먼: 신문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트로츠키: 이름 없는 신문을 내야한다. 논조가 전쟁을 반대할 뿐 완전히 전개되지 않더라도 이 신문은 노동자들이 결집할 구심이 될 것이다.

 

캐넌: [사회주의 호소]가 이 논조를 펴야 합니까? 아니면 이 신문을 숨기고 다른 신문을 제작해야 합니까?

트로츠키: [사회주의 호소]를 숨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 신문이 금지되지는 않더라도 다른 신문이 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섁트먼: 볼세비키들은 전쟁 중에 어떻게 선전물을 배포했습니까?

트로츠키: 불법적으로 배포했다.

섁트먼: 당연히 그랬겠군요.

트로츠키: 불법 출판물들이 배포되었다. 그래서 신문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등사기를 가지고 있으면 운이 좋을 것이다.

 

카스너: 그런 때에는 문화단체들이 아주 유용하지 않습니까?

트로츠키: 그렇다. 그리고 제일 먼저 유용한 것은 노동조합이다.

 

[속기자의 주: `노동조합이 통제하는 무장 노동자' 구호에 대해 섁트먼이 논의를 촉발시켰다. 지금의 계급역관계에서 이 구호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허약하다고 그는 말했다. 이 구호가 노동조합에 의해 채택될 경우 군대와 우리 당이 대결하는 상황이 될 것이며 정부뿐 아니라 노동조합 관료들도 같은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 것이다. 트로츠키는 이 구호가 노동조합 관료들에 의해 채택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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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동자들의 정치적 후진성

1938년 5월 19일

트로츠키: 강령 일반에 대한 일부 견해들을 명확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강령은 어떻게 일관되게 제정될 수 있는가? 이 강령 초안의 일부분이 미국 노동자들의 정서에 제대로 부합하지 않는다고 일부 동지들은 말한다. 강령이 노동자들의 정서에 부합해야 될지 아니면 나라의 객관적인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 부합해야 하는 지를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모든 사회 계급의 정서는 객관적 조건, 생산력, 경제 상황 등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객관적 상황이 정서에 즉시 반영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정서는 경제적 상황보다 뒤처지고 지연된다. 이 지연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경제과정이 느리게 전개되는 평상시에는 이 지연이 재앙을 불러오지는 않는다. 크게 보면 이 지연은 노동자들이 객관적 조건에 의해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위기의 상황이 되면 이 지연은 치명적인 재앙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노동계급이 부여받은 역사적 임무의 성취가 지연되면서 파시즘이 등장했다. 노동자들이 권력 장악에 실패한 결과 받는 벌이 바로 파시즘이다.

이제 미국도 유럽과 유사한 상황과 위험에 놓여있다. 나라의 객관적 상황은 모든 측면에서 유럽보다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에 더 무르익었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그렇다. 미국 노동계급의 정치적 후진성은 대단하다. 이것이 우리 정치투쟁의 출발점이다. 강령은 노동자의 후진성보다 노동계급의 객관적 임무를 표현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후진성보다 사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 강령은 후진성을 극복하고 제압하는 도구이다. 미국을 포함하여 자본주의 위기의 심각성 전체를 우리 강령에 표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맘대로 할 수 없는 객관적 조건을 연기시키거나 수정할 수는 없다. 대중이 위기를 해결할 것을 보증할 수 없다. 다만 상황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 이것이 강령의 임무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 강령을 노동자들에게 제시하는 방법이다. 실제 현실을 노동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교육적인 임무이며 어휘 선택의 문제이다. 생산력 즉 생산력의 높은 수준, 자본주의 소유형태에 의한 생산력의 마비, 가장 커다란 사회적 해악인 점점 더 깊어가는 실업 등에 부합하여 우리의 정치투쟁이 진행되어야 한다. 생산력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과학 기술은 발전하지만 물질적 힘은 쇠퇴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가 더욱더 빈곤해지고 실업자의 수는 점점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의 고통은 깊어만 가고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갈수록 커진다. 부르주아 계급은 파시즘 이외에 다른 해결책이 없다. 위기의 심화는 부르주아 계급이 민주주의의 잔재를 청산하고 대신 파시즘을 도입하도록 강제할 것이다. 미국 노동계급은 응집력, 의지력, 용기의 부족 때문에 파시즘이라는 학교에서 20년에서 30년간 벌을 받을 것이다. 쇠줄로 된 채찍으로 부르주아 계급은 미국 노동자들이 완수하지 못한 임무를 가르쳐줄 것이다. 미국은 유럽의 경험이 대대적인 규모로 반복되는 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인식해야 한다.

동지 여러분,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것은 미국 노동자들의 전망의 문제이다. 히틀러가 승리한 후 트로츠키가 [프랑스는 어디로]라는 글을 쓰자 프랑스의 사민주의자들은 웃어버렸다. "프랑스는 독일이 아니다."라고 이들은 말했다. 그러나 히틀러가 승리하기 전에 트로츠키는 팜플렛들을 통해 독일 노동자들에게 경고했다. 그러자 사민주의자들은 "독일은 이탈리아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이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제 프랑스는 매일 파시즘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완전히 똑같다. 미국은 배가 부른 나라이다. 그래서 루즈벨트는 뉴딜이라는 실험을 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 가지는 못한다. 미국 노동자들은 소부르주아적 심성을 가지고 있으며 혁명적 연대의식이 부족하다. 그리고 높은 생활수준에 익숙해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 노동계급의 정서는 지금의 현실이 아니라 과거의 현실을 반영한다.

이제 상황은 급격히 바뀌었다. 이 상황에서 혁명정당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선 객관적 상황을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도출되는 역사적 임무를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임무를 완수하기에 성숙한 정도와 아무 관계가 없다. 우리의 임무는 노동자들의 태도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강령이 선진노동자들에게 제시하고 표현해야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일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강령은 과학적 강령이다; 이것은 객관적 현실과 일치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이 강령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강령을 거부한다는 것은 노동자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만 이 위기는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자가 제 때에 이 강령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파시즘의 강령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강령을 가지고 노동계급 앞에 나타날 때 이들이 우리의 강령을 인정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 우리는 우리 자신을 책임질 뿐이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최상의 분자들을 획득할 것이다. 이 최상의 분자들이 노동계급을 지도하여 국가권력 장악의 길로 인도할 지는 나도 모른다. 그렇게 하기를 희망하지만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현재 가지고 있는 정신과 위력을 충분히 동원하지 못해 파시즘에게 희생되는 최악의 경우에도 최상의 분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당이 우리에게 경고했다. 이 당은 좋은 당이다." 그리고 위대한 전통은 노동계급 내부에 계속 살아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최악의 경우이다. 강령이 노동자들의 정서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강령을 제시할 수 없다는 모든 주장들이 틀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주장들은 모두 객관적 현실 앞에서 두려움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내가 현실에 눈을 감으면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장미빛 강령을 작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강령은 현실에 부합해야 한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 노동계급 대중의 정서는 후진적이지만 이 정서는 공장, 광산, 철도 등과 같이 불변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 수백만의 실업자가 발생하는 객관적 위기의 고통 앞에서 이들의 정서는 급격히 바뀔 수 있다.

현재 미국 노동계급은 정치적 후진성 때문에 장점을 일부 누리고 있다. 약간 역설적으로 들릴지는 몰라도 이것은 완벽히 올바르다. 유럽 노동자들은 오랜 기간 사민주의와 코민테른의 전통에 물들었다. 이것은 보수적 힘으로 작용한다. 여러 정당들이 자신들을 배신해도 노동자들은 이들에 충성한다. 자신을 처음 각성시키고 정치교육을 시킨 정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황이 급변하여 완전히 방향 전환을 해야할 때에 약점으로 작용한다. 절대다수가 정치적으로 조직되지 못했고 이제서야 노동조합으로 조직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노동자들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위기의 고통 속에서 혁명정당은 이들을 결집시킬 수 있고 이것을 막는 보수적 전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 노동자들의 정서가 급변할 속도는 얼마나 빠를 것인가? 아무도 예견할 수 없다. 다만 그 방향을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방향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강령을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 있다. 이것은 당연히 매우 중요하다. 정치를 대중심리학 및 대중교육학과 접목시켜 대중의 정서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미국의 이 지역 저 지역에서 어떻게 이 임무를 완수할지는 오직 경험만이 말해줄 것이다. 당분간 우리는 임금 및 노동시간 연동제에 노동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미국 노동자들의 경험주의 때문에 단일 세금제나 금은본위제 등과 같은 한 두 개의 구호로 정당들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들은 또 다른 만병통치약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우리 강령의 일부이며 객관적 현실에 총체적으로 부응하는 정직한 구호를 우리는 제출할 수 있다. 우리는 대중을 우롱하는 만병통치약을 제시하지 않는다. 공식 통계에 의하면 실업자의 수는 1천3백만 또는 1천4백만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1천6백만에서 2천만에 이른다. 그리고 청년들은 완전히 고통 속에 내버려져 있다. 루즈벨트씨는 공공사업을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광산 채굴, 철도 건설 등과 함께 이 공공사업이 모든 실업자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모두가 지금보다 더 저하되지 않는 품위 있는 생활수준을 누릴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일할 능력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좋은 임금을 받으며 일할 수 있는 공공사업 프로그램을 루즈벨트의 참모들이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임금 및 노동시간 연동제로 가능하다. 모든 곳에서 우리는 이 사상을 모든 지역에 맞게 제시하는 방안들을 토론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강령임을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집중된 선동 캠페인을 시작해야 한다.

이 구호로 우리는 노동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다. 당연히 이것은 하나의 관심사에 불과하다. 처음에 이 구호는 상황에 전적으로 부합한다. 그러나 상황이 전개되면서 다른 구호들이 결합될 수 있다. 노조관료들이 이것에 반대할 것이다. 이 구호가 대중에게 인기를 얻으면 파시스트 조직들이 이에 반대하여 조직될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정당방위대 조직의 필요성을 구호로 제시한다. 처음에는 임금 및 노동시간 연동제 구호가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 구호는 무엇인가. 실제로 이것은 사회주의 사회의 노동제도이다. 전체 노동시간에 전체 노동자수를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주의 체제를 일관되게 전체적으로 제시하면 보통 미국 노동자들은 이것을 유토피아이며 유럽에서 건너온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회위기 상황에서 대중이 의식주를 확보하는 기본 권리를 보장받는 해결책으로 이 구호를 제시한다. 이것은 사회주의 강령이되 아주 대중적이고 단순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질문: 그러면 이 캠페인을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까요?

트로츠키: 이런 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예를 들어 미니애폴리스에서 선동을 시작한다. 이 강령으로 한 두 노동조합을 획득한다. 이 노동조합과 연관되는 노동조합에 대표를 파견한다. 당에서 노동조합으로 이 사상을 전파되는 순간 우리 임무의 반은 이미 성취되었다. 그리고 뉴욕, 시카고 등의 관련 노동조합들에게 이 사상을 전파한다. 이 임무가 일부 성공하면 특별임시총회를 개최한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관료들이 이 사상에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입장을 제출하도록 강제하는 선동을 펼친다. 이렇게 되면 선전활동을 펼칠 멋진 기회가 열린다.

 

질문: 이 구호를 진짜 실현시킬 수 있을까요?

트로츠키: 자본주의에서 이 요구를 실현시키는 것보다 자본주의를 전복시키는 것이 더 쉽다. 우리 요구들 어느 것도 자본주의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 이것들을 이행 요구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들은 노동자들의 정서에 다리를 놓아 사회주의 혁명으로 가는 물리적 다리를 건설한다. 문제는 이 투쟁을 위해 어떻게 대중을 결집시키는 가에 있다. 현업 노동자와 실업자를 분열시키는 문제가 생긴다. 이 분열을 극복할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실업자 계급 또는 부랑자 계급이라는 사상은 파시즘을 준비하는 사상에 불과하다. 노동조합에서 이 분열을 극복할 수 없다면 노동계급은 파멸할 수밖에 없다.

 

질문: 이 구호들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많은 동지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트로츠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이 강령은 한 사람의 발명품이 아니라 볼세비키들, 혁명가들의 오랜 집단적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오랜 원칙들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시킨 것이다. 무쇠처럼 고정된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적용될 수 있는 신축성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개량과 성과들은 모두 혁명 투쟁의 부산물이라는 것을 혁명가들은 언제나 인식하고 있다. 지배계급이 줄 수 있는 것만 요구하겠다고 말하면 지배계급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의 10분의 1만 주거나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우리의 요구들을 강제할 수 있으면 저들은 최대한을 줄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의 투쟁의지가 더 확대되고 강할수록 더 많은 것이 요구되고 얻어진다. 이행 요구들은 무미건조한 구호들이 아니다. 부르주아 계급을 압박하는 수단이요 즉시 가능한 최대의 물질적 성과들을 제공할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가 상승하던 시기에 미국 노동자들은 경험적인 투쟁이나 파업 등을 통해서만 개량을 획득했다. 이들은 아주 전투적이었다. 자본주의는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본가 계급은 노동자들을 만족시키는데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자본가들은 번영을 누릴 가능성이 없다. 많은 수의 실업자들 때문에 이들은 파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강령이 현업 노동자와 실업 노동자를 모두 포괄하고 단결시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임금 및 노동시간 연동제가 바로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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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농민 정부를 위하여

1938년 7월 29일

질문: "노동자 정부"와 "노동자 농민 정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좋은 구호입니까?

트로츠키: "노동자 농민 정부" 대신 "노동자 정부"를 구호로 받아들인 것은 아주 중요한 오류이다. 이 오류의 근원은 반 정도 종파주의적 오해에 있다. "노동자 농민 정부"에 반대하는 주장을 "노동자 정부" 구호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린과 루이스가 정부의 수반이 되어도 우리의 정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린과 루이스 그리고 소부르주아 및 농민의 대표인 라폴렛(LaFollette)을 합쳐 놓아도 우리의 정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자 정부" 구호는 충분히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할 수 있다. "노동자 농민 정부" 구호와 마찬가지로 이 구호도 비판받을 수 있다. "노동자 정부" 구호를 채택한다면 우리의 다른 모든 구호들과 전략 전술 등은 이 구호에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이 구호는 대중적 인기를 얻고 명확성을 획득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린과 루이스를 정부에서 제외시키는 강령을 채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빈농들에게 "이 노동자 정부는 여러분의 정부이기도 하다"라고 말할 기회를 우리 스스로 박탈하게 될 것이다.

농민은 미국에서 매우 중요하다.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농민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노동자 농민 정부"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농촌에서 "이 정부는 여러분의 정부입니다"라고 말할 가능성을 왜 스스로 박탈하는가? 이것이 진보에 기초한 우리의 운동이다. 농민 여러분이 반대하는 점이 어떤 것인가? 여러분의 제안은 무엇인가?

 

질문: 이 오해는 이행 강령 자체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우리의 구호를 노동자 농민 정부에서 노동자 정부로 제한하는 이유는 농민과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 아닙니까? 결국 다른 이해는 충돌하게 마련이니까요.

트로츠키: 물론 노동자 일반과 농민 일반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다. 농민은 계급이 아니라 반(半)노동자 분자에서 착취자인 대농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노동자 농민 정부" 구호는 농민 전부를 포함하지 않는다. 우리의 구호는 부유한 농민에 대항해 빈농을 지지하는 정치적 분리선을 명확히 긋는다. 파시스트들 뿐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도 농민을 하나의 단위로 설정하고 완전히 부르주아인 농민 상층부를 통해 하층 농민들을 장악하는데 관심이 있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농민층에 쐐기를 박아 하층부를 상층부로부터 분리시키는데 관심이 있다. 우리가 선전을 통해 "노동자 농민 정부"를 말할 때 우리는 착취당하는 농민을 포함한다고 언제나 덧붙인다. 농업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농민은 우리의 동맹세력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활동이 잘되면 잘될수록 노동자와 하층 농민 사이의 동맹은 더 강화될 것이다.

일부 문제들에 대해 중간 농민들이 우리를 지지할 수도 있다. 일부 상층 계급들도 우리를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특히 권력 장악처럼 우리의 조치들이 급진성을 띠면서 이들은 우리와 거리를 두게 될 것이다. 그러나 권력 장악 직전이나 직후에 우리의 활동이 급진성을 띨 때 중간 농민들도 일정 기간 동안 우리와 거리를 두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농민들의 동요는 폭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노동자들에게 반대할 수 있다. 그리고 오직 이 동요를 통해서만 우리는 착취당하는 농민 계층을 확실히 획득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동맹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구호를 역동적 전망 속에 이해해야 한다. 정해지지 않은 기간에 특정 계급과 합의하는 정도로 이 구호를 바라보면 안된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다음 사항을 이해시켜야 한다: 노동자 농민 정부를 통해서만 착취당하는 농민들은 완전한 파멸, 타락, 사기저하로부터 구원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노동계급 독재이며 노동자 농민 정부의 유일한 형태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농업 노동자와 반(半)노동자적 농민에게 자신들의 정부는 라폴렛이나 다른 부르주아들에 의해서 장악될 수 없으며 오직 혁명적 노동자들만이 이 정부를 운영할 수 있음을 이해시켜야 한다.

농민들 스스로는 정부를 절대로 가질 수 없다. 중세부터 지금까지 이 사실은 역사에 의해 증명되어 왔다. 언제나 이들은 도시의 상공업자 또는 급진 상공업자 계층에 의해 지도받는다. 농민들이 운동을 시작했을 때 이것은 지역적 운동에 지나지 않았다. 오직 도시 상공업자들만이 종교개혁에 전국적 특성을 부여했다. 모든 농민들은 지역의 종파에 불과했다. 농민 정부도 정치적으로는 마찬가지였다. 자코벵파의 지도를 통해서만 봉건제도는 프랑스에서 제압당했다. 자코벵파는 도시 소부르주아 계급이었다. 러시아에서도 사정은 같았다. 승리는 오직 노동자들에 의해 확보되었다.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히틀러는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을 동원하여 농민의 지지를 획득했다. 농민들은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의 지도를 따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구원을 기다렸다. 결국 히틀러가 더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운동은 도시의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금융자본의 지원을 받아 권력을 장악했다.

중세 생산체제의 유물을 경제적으로 대표하는 농민층이 정치에서 지도적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 이들은 도시를 통해서만 정치행위를 할 수 있다. 더욱이 노동자들을 통해서만 지도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구호를 농민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맹자로 부르주아 계급이 아니라 형제인 노동자들을 선택해야 한다고 이들에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이 정부는 노동자와 빈농의 정부로 그들의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질문: "몰수(expropriation)"보다 "국유화(nationalization)"를 용어로 채택하는 것이 미국에서 더 적합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물론 국유화는 보상 없는 국유화입니다."국유화" 용어는 흔히 쓰는 용어이고 노동자 운동에 의해 강조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광산 노동자들은 "광산의 국유화" 강령을 내걸었고 철도 노동자들은 "철도의 국유화" 강령을 내걸었습니다. "보상 없는 국유화" 강령으로 이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트로츠키: 강령에 나오는 "몰수" 구호는 보상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종종 몰수와 보상을 대비시킨다. 압수(confiscation)는 보상을 배제하지만 몰수는 보상을 포함한다. 얼마나 많이 보상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예를 들어 선동 과정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이제 어떻게 할 것입니까? 권력을 가졌던 자들을 부랑아로 만들 것입니까? 아니다. 우리는 이들이 노동에 종사할 수 없는 노년일 경우 생활에 필요한 적정 수준의 보상을 해줄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를 모방할 필요는 없다. 러시아는 수많은 자본주의국가들의 개입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이 결과 보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배제되었다. 미국은 부자 나라이다. 우리가 권력을 장악할 경우 우리는 노년층에게 보상을 해줄 것이다. 따라서 보상이 없는 압수를 구호로 제출하는 것은 좋을 것이 없다. 압수보다는 몰수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 몰수는 압수와 같을 수도 있지만 일부 보상조치를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수심에 가득한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야 한다. 미국에서 진정한 문제는 물질적 발전 가능성이다. 우리는 자본가 계급을 개인적으로 파괴시키지 않을 것이다. 몰수와 국유화는 다 같이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다. 몰수는 혁명적 의지를 표현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말이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어야 할 생산수단을 자본가들이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생산수단을 몰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유화는 영국의 광산이나 프랑스의 군수산업처럼 소유주와 정부 사이의 자발적 합의이다. 소유주들은 국유화된 재산의 운영에 참여한다. 그리고 프랑스처럼 이들은 국유화 이전보다 더 부자가 된다. 파산의 위험에서 구제되었기 때문이다.

선동 과정에서 몰수와 국유화를 같이 사용하되 몰수라는 단어에 강조를 두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광산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여러분들은 국유화를 원한다. 좋다, 그것은 우리의 구호이다. 문제는 국유화의 조건이다. 국유화 재산이 과거 소유주의 부채로 과도하게 부담이 될 경우 여러분들의 상황은 지금보다 더 나쁠 수 있다. 소유주와 국가 사이의 자유로운 합의에 기초한 문제 해결은 노동자들의 파멸을 가져온다. 이제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정부를 운영하면서 이들의 생산수단을 몰수해야 한다. 좋다. 우리는 자본가들을 거지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먹고 살 수 있는 뭔가를 주겠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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