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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민족주의

레온 트로츠키

 


150여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제국주의 체제는 제국주의 지역 노동계급을 국수주의로 오염시켰다. 그 동안 한번도 이렇다 할 위기에 처한 적 없는 영미 지역의 국수주의는 특히 심각하다. 이 국수주의는 자칭 트로츠키주의자를 포함하여 제국주의 지역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정치를 다양한 형태로 퇴보시켰다. 그 퇴보는 트로츠키 당대에도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존재했다. 여기 번역 소개하는 흑인 문제는 그 퇴보를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단서이다.



Leon Trotsky

On Black Nationalism

Documents on the Negro Struggle

1962 Introduction by George Breitman

서문 : 조지 브라이트먼 (1962년)

The Negro Question in America

1933 discussion in Prinkipo, Turkey between Leon Trotsky and Arne Swabeck

미국의 흑인문제

아르네 스와벡과 트로츠키와의 대화,

터키 프린키포, 1933

Self-Determination for the American Negroes

First of a series of discussions with C.L.R. James and other leaders of the US Socialist Workers Party in 1939

미국 흑인의 자결권

1939C.L.R 제임스 등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몇몇 지도자와의 연속토론 중 첫 번째, 1939

A Negro Organization

Second of a series of discussions with C.L.R. James and other leaders of the US Socialist Workers Party in 1939

흑인 조직

연속토론 중 두 번째

Plans for the Negro Organization

Third and last of a series of discussions with C.L.R. James and other leaders of the US Socialist Workers Party in 1939

흑인 조직을 위한 계획

연속토론 중 세 번째

List of supplementary readings from the Socialist Workers Party:

Subsequent convention resolution, statements and reports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관련자료 목록

총회 결의안, 성명서, 보고서 등



Leon Trotsky on black nationalism and self-determination: Breitman, George  - editor: Amazon.com: Books


1962년 서문

조지 브레이트만

 

이 문서들은 미국의 흑인 투쟁에 대해서 혁명적 사회주의가 어떻게 분석하고 강령을 발전시켰는지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여기에는 1933년부터 1950년까지 중요한 희귀 문서들이 있다. 이 문서들은 마지막에 나오는 1954년부터 1961년까지 더 최근 자료에 대한 배경지식을 제공한다.

제임스 P. 캐넌은 미국 공산주의 운동의 첫 10(The First Ten Years of American Communism)이라는 책에서, 러시아 혁명이 흑인 투쟁에 대한 미국 급진주의 운동에, 특히 신생 미국 공산당의 견해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었다. 캐넌은 미국 급진주의자들이 흑인 문제에 대해서 불완전한 이론, 잘못되거나 무관심한 태도, 급진주의 혹은 혁명 진영의 흑인 개인들에 대한 집착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태도와 무관심에 깔려있는 그 불완전한 이론은, 흑인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로, 노동자와 자본가의 투쟁의 일부라는 것, 이러한 차별과 불평등의 특수한 문제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의 사례와 압력 때문에, 초기 미국 공산주의자들은 느리게, 고통스럽게’ “그들의 태도를 바꾸는 법을 배웠다. 즉 흑인문제에 대한 이론을 이중으로 착취되는 이중 시민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 특수한 일부 집단의 요구에 대한 강령을 전체 강령의 일부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 흑인 문제에 대해 무언가를 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59년 여름, 국제 사회주의자 리뷰(Internatioanl Socialist Review)에 인쇄됨.)

우리의 오늘날 흑인 투쟁에 대한 생각과 태도는 러시아 볼셰비키의 이러한 긍정적 영향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코민테른의 스탈린주의적 관료주의에 맞서 좌익반대파 편에 섰다는 이유로 1928년 퇴출된 후 사회주의노동자당을 세운 사람들은, 그 이전에는 공산당 지도부 중 일부였기 때문이다. 이들을 통해서, 혁명적 이론과 실천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당 건설 이전에도 레온 트로츠키의 상담과 조언을 받았다. 트로츠키는 1929년부터 1940년 죽을 때까지 좌익반대파의 지도자였다. 트로츠키는 사회주의노동자당이 흑인 투쟁에 대한 견해를 형성하는 데 있어 두 번째로 주요한 외부영향이었다.

이 문서에서 트로츠키가 기여한 부분을 말하기 전에, 관련된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트로츠키는 위대한 맑스주의 지도자이자 이론가였으며, 러시아 혁명에서 레닌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였고 1938년 제4인터내셔널의 창시자였다. 하지만 그는 죽기 몇 년 전 멕시코에 망명하기 전까지는, 흑인 문제를 포함해서 미국 내 문제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얻거나 긴밀한 연락을 취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 뒤에 소개하는 것은 그의 문서와 편지의 세 단락이다.

1923, 트로츠키는 혁명적 흑인 시인 클로드 맥케이가 물어본 질문들에 답변하는 편지를 썼다. 그 편지는 <국제 기자 서신 International Press Correspondence>에 처음 실렸고 트로츠키의 책 코민테른의 첫 5(The First Five Years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1권에 실려 있다.

여기서 트로츠키는 처음으로, 노동관료층과 반동적 백인 노동자의 인종적 편견을 강력하게 강조했으며, 매우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이러한 편견이 흑인 대중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트로츠키가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트로츠키는 오로지 흑인만이 흑인 투쟁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편지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즉시, 젊고 각성한 그리고 헌신적인 흑인들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 수가 적다 하더라도, 그들은 흑인 대중 다수를 물질적 도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며, 동시에 흑인 대중의 이익 운명을, 전 세계의 대중의 그것과 연관지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흑인 선전가에 대한 교육은 현재 시점에서 극도로 시급하고 중요한 혁명적 과제이다.”

북미에서 이 문제는 노동계급 특권 상층의 끔찍한 둔감함과 계층적 편견 때문에 더욱 복잡하다. 그 특권층은 흑인들을 노동자와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로 인정하길 거부한다. 곰퍼스(AFL 의장)의 정책은 이러한 비열한 편견에 기초하고 있으며, 백인과 유색인종 노동자들 모두를 성공적으로 복종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 정책에 대한 투쟁은 여러 측면에서 행해져야 하고, 여러 방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갈등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의 하나는 미국 자본주의의 흑인 노예들 내에 인간 존엄의 감각을 일깨우고 혁명적 시위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의식을 계몽시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일은 자기 헌신적이고 정치적으로 교육된 혁명적 흑인들을 통해서 이루어 질 수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일은 흑인 우월주의 정신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흑인 우월주의는 단순히 백인 우월주의의 짝이 될 뿐이다. 이 일은 피부색에 대한 고려 없이 모든 착취받는 인민의 연대의 정신으로 행해져야 한다.”

미국 흑인 운동에 있어 어떤 조직형태가 가장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내가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나는 구체적 상황과 가능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동 의지가 충분하다면, 조직 형태는 곧 찾아질 것이다.”

미국공산당은 1928, 이른바 트로츠키주의자를 축출했다. 이들은 사회주의노동자당을 창립하고, 1929년 미국공산주의동맹(좌익반대파)으로서 첫 번째 총회를 개최했다. 당시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의해 추방되어 터키에 있었다. 그는 이 총회가 시작되기 전 그들과 연락이 닿았고, 그의 첫 번째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192951<투사The Militant>미국 반대파의 임무들(Tasks of the American Opposition)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트로츠키가 미국 반대파에 시급하게 부탁하는 사항이 많았지만, 트로츠키는 귀족적 편견에 저항할 필요성과 흑인을 시작으로사회의 가장 착취되는 부분에 다가갈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노동조합 관료들은, 잘못된 공산주의에 오염된 관료들처럼, 노동계급 상층의 귀족적 편견 속에서 산다. 만약 반대파가 이에 아주 조금이라도 감염된다면 비극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편견을 거부하고 규탄할 뿐만 아니라, 우리 의식에서 마지막 한 줌까지 모두 불태워 버려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버림받은 흑인을 시작으로, 가장 착취받는 프롤레타리아의 가장 어두운 계층에게 다가갈 길을 찾아야 한다. 흑인은 우리 안에서 그들의 혁명적 동지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 작업에 힘을 쏟고 헌신해야 한다..”

1932, 트로츠키가 지식인과 노동자를 구분지은 일이 있었다. 그 사건은, 흑인 노동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을 억압하지 않으며 혁명적 가능성을 가진 특수한 위치에 있다는 것에 대한, 트로츠키의 날카로운 인식을 보여준 것이었다. 24명의 남아공 흑인이 좌익반대파 강령에 대해 질문하며 가입을 신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트로츠키는 이에 대해 기사를 썼고, 그것은 <투사The Militant> 193272일 판에 유색인종 프롤레타리아에 더 가까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그 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설령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동지들이 가장 중요한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좌익반대파의 입장과 스스로를 가까이 할 가능성이 아직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과 최대한 가까이 하고 그들이 우리의 강령과 전술에 친숙하도록 돕는 것에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파리, 베를린, 뉴욕에서 여러 조직으로부터 온 열 명의 지식인들이, 스스로를 소개하며 우리 안으로 들어오고 싶다고 요청한다면, 나는 이러한 조언을 주겠다: ‘그들에게 강령의 모든 문제에 대해 여러 번 시험하고, 폭우에 흠뻑 적시고 땡볕에 바싹 말려라. 그리고 다시 조심스럽게 검증하라. 그 후 그들 중 한 명이나 두 명만 받아들여라.’”

대중과 연결된 10명의 노동자가 우리에게 온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소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조직에 대한 우리의 관계 차이는 자명하다. 하지만 만약 프롤레타리아 그룹이 다양한 인종의 노동자 구역에서 활동하면서도, 오직 특권층 노동자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나는 그들을 이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노동귀족을 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조직은 능동적 또는 수동적으로, 노예주의 편견에 중독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흑인 노동자 그룹이 다가온다면 매우 다른 문제가 된다. 아직 확정지을 수는 없더라도, 우리는 이미 그들과 합의를 이룰 것이라고 예단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전체적 위치로 인해 그들은 아무도 깎아내리거나, 억압하거나 권리를 빼앗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특권을 추구하지 않으며 국제 혁명의 길을 제외한 다른 방식으로는 상층에 오를 수 없다.”

우리는 흑인, 중국인, 인도인 노동자 등, 인간의 바다에서 억압받는 모든 유색인종의 의식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고 찾아야 한다. 인류 발전의 결정적 문제가 그들에게 달려 있다.”

5년간, 미국공산주의동맹은 그 자신을 공산당의 한 분파라고 생각하고 활동했다. 그 말은, 구성원들이 공산당에서 퇴출되었음에도, 공산당 개혁 즉, 공산당의 잘못된 정책을 바꾸고 공산주의동맹 구성원을 공산당원으로 다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활동은 이 목적에 의해 결정되고 정의되고 제한되었다. 흑인 투쟁에서 공산당과 미국공산주의동맹의 차이점은 주로 전술 문제에 있었고, 미국공산주의동맹의 강령이나 문서에는 차이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다.

1933년 초, 여행하는 동안 터키의 프린키포에 들른 미국공산주의동맹의 지도자 아르네 스와벡(Arne Swabeck)은 트로츠키와 토론했다. 1933228일 열린 토론 중에는 흑인 투쟁에 관한 것이 있었다. 그 문서는 미국공산주의동맹 내부 게시판에 미국 흑인 문제(The Negro Question in America)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그 문서엔 요약본이라는 메모가 적혔다. 그 뜻은 논의에 참가한 이들에 의해 원고가 교정되지 않았으며, 모든 문장이 완벽하게 정확하지는 않다는 의미였다. 여기에는 조금 교정되어 수록되어 있다.

이 논의를 통해 양쪽 모두는, 핵심 지식의 부재와 더불어, 흑인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확인했다. 이 문서는 흑인 문제에 대한 미국 운동의 특정한 단계 즉, 미국 운동이 강령을 아직 정식화하지 못했을 때를 보여준다. 또한 그 문서에는 트로츠키의 자결권문제에 대한 생각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한 생각은 미국 상황에 대한 연구에서가 아니라, ‘일반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었다. (러시아 혁명사3권의 민족문제장에 더욱 발전된 설명이 나온다.) 한 가지는 명확하다. 1933년에 논의되었던 여러 주장은 1960년대인 지금도 적절하고, 어떤 면에서는 지금 상황에 더 부합한다.

스탈린의 코민테른이 독일에서 반()나치 투쟁을 어떻게 배신했는지 평가한 후, 1933년 좌익반대파는 공산당 개혁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인터내셔널과 전 세계 [모든 나라에] 혁명정당 건설 필요성을 선언했다. 국내에서 새로운 당 건설 세력 규합 작업의 일부로써, 미국공산주의동맹은, 시선을 공산당에서 대중운동과 노동자 및 그 동맹자들의 투쟁으로 돌렸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이 1938년 건설되었을 때, 몇몇 지부는 실업자 운동과 공장 내 운동에서 흑인을 규합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운동의 전환점은 그 다음 해에 왔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당의 흑인 노동자 및 실업자 운동 내에서의 활동은, 흑인 투쟁의 성질과 방향에 대한 이론적 명확화를 강제했다. 또한 당 강령과 문서에 이 투쟁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구했다. 같은 시기 다행스럽게도, 흑인 투쟁에 대한 관심과 활동은 외부로부터 건강한 또 다른 자극을 받았다. 그것은 바로 제4인터내셔널(사회주의노동자당은 제4인터내셔널과 제휴하고 있었다)미국인 조직원, J. R. 존슨이 미국에 온 것이었다. 존슨은 혁명적 지식인으로서 흑인 투쟁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고 함께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존슨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다. 그는 1940년 색트먼-버넘 분립 당시 당을 떠났다가, 1947년 돌아왔다가, 1951년 다시 떠났다. 하지만 아무도 흑인 투쟁에 관한 당의 이론과 작업에 대해 그의 귀중한 기여를 부정할 수 없다. (존슨은 문서의 여러 곳에서 조지그리고 ‘J. 마이어라는 가명으로 나타난다.)

1939년 중에 열릴 사회주의노동자당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존슨은 당시 멕시코에 있던 트로츠키를 만나서, 44, 5, 11일 세 차례 토론의 기초로 예비 노트를 제출했다. 그들이 논의한 주제들은 자결권,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흑인 조직을 만드는 데 있어 다른 세력과의 협력 가능성, 그 조직을 위한 강령과 계획이었다. 그 문서들은 전국 총회 이전에 사회주의노동자당 회원들에 제출되었다. 그 문서들은, <4인터내셔널>19485, 19489, 19492월에 실린 대로, 여기에 다시 인쇄되어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속기사의 기록은 이 원고들이 참가자들에 의해 교정되지 않은 초고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회주의노동자당 대회는 뉴욕에서 193971일부터 4일까지 개최되었다. 77일 사설을 통하여 <투사>지는 “(흑인 투쟁에 대한) 논의가 가장 중요한 토론이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이번 총회뿐만 아니라 당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계속해서 흑인 투쟁을 무시하는 것이 당 자체에 무엇을 의미할지에 대한 트로츠키의 경고를, 대표자들이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동의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이 총회가 채택한 주 결의문에 분명히 나온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흑인 문제에 대한 태도가 앞으로 당의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까지 당은 특권층 노동자와 고립된 지식인 그룹에 기초해 있었다. 만약 당이, 흑인이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비특권층 대중을 향한 길을 찾지 못한다면, 연속혁명의 길은 공상으로 남을 것이고 당은 퇴보할 것이다.”

결의안과 권고안을 만들기 위한 12인의 위원회가 총회에서 선출되었다. <흑인 작업위원회>는 행동강령을 제출했고, 그것은 총회가 위임한 전국위원회가 실행할 것이었다. 위원회는 또한 사회주의노동자당과 흑인 작업이라는 결의안을 제출했는데, 그것은 당을 더욱 교육할 필요성, 정치적으로 선진적인 흑인 영입 계획, 그리고 새로운 전투적 흑인 조직 결성에 있어 당의 준비 정도를 다루고 있었다. 이 결의안은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여기에 다시 실렸다. (대회 이후, <흑인 작업위원회> 구성원과 당 결의안의 두 번째 문장에 과장이 있다는 것에 일반적 동의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역사적 과거가 미국 흑인을 바로 그 프롤레타리아 혁명 전위로 만들었다.” 대신, “바로 그 프롤레타리아 혁명 전위의 일부로 만들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결권에 대한 결의안에서는 <흑인 작업위원회>에서 의견 차이가 발생했다. 위원회의 다수파로서 존슨이 대회에 의견을 발표하고, 맥킨니와 라이트에겐 그들의 소수 의견을 보고할 시간이 주어졌다. 차이는 자결권 관련 결의안에 대한 그들의 수정안에 나타난다. 맥킨니의 수정안은 5번째 문단을 없애고 마지막 문단의 5, 6, 7번째 문장을 삭제하는 것이었다. 라이트의 수정안은 흑인 전체와 흑인 프롤레타리아의 관계를 다루는 절 앞부분에. ‘만약 흑인 노동자의 결정적 다수가 제4인터내셔널에 획득된다면, 그것은 이 문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라는 내용을 추가하라는 것과, “반혁명 위기의 발전이 미칠 영향을 다루는 절5번째 문단 3번째 문장 이후에 반혁명적 위기 속에서 흑인 국가에 대한 열망은 가비 운동[아프리카 흑인 이주 운동]보다 더 반동적인 성격을 띠게 될 것을 배제할 수 없다.”라는 구절을 추가하자는 것이었다.

자결권 문제 관련 세 가지 발의안이 제기되었다.

맥킨니의 발의안: “총회는 <전국위원회>, 미국 내 흑인에 대한 정치적 결의안을 준비하고 그 결의안의 한 부분은 자결권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권고한다. 결의안은 당에 발표된 이후 60일 내에 당 전체투표를 통해 채택되어야 한다.” (다음 발의안으로 인해 기각됨)

라이트의 발의안: “자결권에 대한 결의안은 최종안의 기초로 채택되어야 한다. 모든 개정은 <전국위원회>에서 논의될 것이다.” (채택됨)

<흑인 작업위원회>의 발의안: “흑인 작업위원회는, 앞으로의 <전국위원회>가 최대한 빨리 미국 흑인 문제 결의안을 준비할 것을 전국총회가 지시할 것을 제안한다. 이 결의안은 문제 전체를 다루고, 문제의 모든 측면을 가장 넓은 관점으로 다루어야 하며, 그 문제에 대한 당의 기본 문서로서 기능해야 한다. 그 결의안은 그 자체로 올바른 전망을 제시하고 민족자결권으로 대표되는 문제로 사안을 집약시킬 것이다. 일반 결의안이 완성되면, 당이 그 기초 문서를 최대한 빨리 채택하도록 즉시 당내 토론에 착수할 것을, 총회는 앞으로의 <전국위원회>에 권고한다.” (채택됨)



미국의 흑인문제

 

스와벡[아르네 스와벡(Arne Swabeck): 1890년 덴마크 출생, 미국 공산당 창립에 기여했고 스탈린주의 퇴보에 맞서 좌익반대파로 활동, 1928년의 미국공산당 트로츠키주의자 숙청으로 제명당함, 1938년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과 제4인터내셔널 창설에 기여]: 우리 미국공산주의동맹에는 흑인 문제를 둘러싼 주목할 만한 의견대립이나 완성된 강령이 없다. 따라서 나는 동지에게 우리가 도달한 견해의 대강을 소개하려 한다.

미국 흑인은 민족인가, 인종인가? 이를 규정하는 것이 우리 강령의 가장 중요한 문제다.

스탈린주의자들은 흑인의 자결권을 핵심구호로 내걸고 있으며, 그에 따라 흑인의 독립국가 건설과 블랙벨트[흑인이 많이 사는 남부 지역] 거주 흑인들의 시민권을 요구하고 있다. 그 요구의 실제 적용은 상당한 기회주의를 드러내내고 있다. 그러나 여러 오류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은 흑인 속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예를 들어, 남부의 섬유파업에서 파업 노동자들은 인종차별의 장벽을 허물었다.

내가 이해하기로, 와이스보드[알버트 와이스보드(Albert Weisbord): 1900년 미국 출생, 1917년 미국 사회당 가입, 1924년 탈당 후 미국 공산당 가입, 1926년 아내 베라 와이스보드(Vera Weisbord)와 퍼세익(Passic) 섬유노동자 파업 지도, 1930년 공산당 탈당 후 좌익반대파의 공산주의동맹(Communist League) 합류, 1931년 공산주의동맹 탈퇴 후 공산주의투쟁동맹(Communist League of Struggle) 창립, 트로츠키주의자를 자처했으나 1934년 트로츠키와 공개적으로 결별]자결권과 더불어 독립 국가를 가질 권리에 동의한다. 그 동지는 그것이 연속혁명 이론을 미국에 적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구체적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재 미국에는 약 1,300만 명의 흑인이 살고 있으며 그들 중 대다수는 남부 주()(블랙 벨트)에 살고 있다. 북부 주() 흑인들은 대개 공업노동자로, 공업지구에 모여 산다. 남부 흑인들은 대개 소작농이다.

트로츠키: 남부의 흑인들은 국가의 땅을 부치나 아니면 개인의 땅을 부치나?

스와벡: 백인 농부와 대농장주의 땅을 부친다. 그리고 자기 땅을 가진 흑인도 일부 있다.

북부 흑인들은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고, 남부 흑인들은 짐 크로우 법[1828년 미국 배우 토마스 라이스(Thomas Rice)가 얼굴을 검게 칠하고 연기한 흑인 가상인물 짐 크로우(Jim Crow)에서 유래, 1865년 남북전쟁 종전 후 남부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자 흑인 해방노예 및 백인 동조자를 대상으로 한 남부 백인의 테러 폭증, 1877년 공화당 정부가 남부 백인의 지지를 얻기 위해 남부에 주둔하며 인종주의 테러를 제재하던 북부 연방군 철수 결정, 미국 민주당이 장악한 남부 주들이 흑인의 투표권을 박탈하고 흑백분리를 강제하는 여러 법률 제정, 해당 인종차별법은 이른바 짐 크로우 법이라 불림, 심지어 백인이 재미삼아 흑인을 목매달아 죽이거나 산채로 태워 죽이는 린치'도 비범죄화됨, 1965년에 와서야 흑인해방운동으로 폐지됨]의 억압 아래 있다. 그들은 주요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다. 남부 흑인의 북부 이주는 1차 세계대전 발발 이래 크게 증가했다. 그 결과 약 400만에서 500만 명의 흑인이 북부에 살고 있다. 북부 흑인의 절대 다수는 프롤레타리아이고 남부에서도 프롤레타리아화가 진전되고 있다.

오늘날 남부의 어느 주에서도 흑인은 인구의 다수가 아니다. 다수의 흑인이 북부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흑인은 민족적 소수인가 아니면 인종적 소수인가? 흑인은 완전히 동화되어 미국화되었으며 미국에서의 삶은 흑인들의 옛 전통을 밀어내고 그것을 수정 변화시켰다. 흑인은 고유의 언어가 없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흑인은 민족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흑인은 고유의 민족적 관습이나 문화 또는 종교도 없으며, 소수민족으로서의 특수한 이해관계도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그들이 소수민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흑인은 그 지위와 이해가 미국의 계급 역관계에 완전히 종속된 인종적 소수이다.

우리에게 있어 흑인은 미국의 계급투쟁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흑인은 미국의 계급투쟁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거의 결정적인 요소일 것이다. 그들은 미국 프롤레타리아의 중요 부위다. 미국엔 흑인 소부르주아지도 있지만, 그들은 (식민지) 피억압민족의 소부르주아나 부르주아 같은 힘이나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스탈린주의자들은 흑인을 동맹으로 획득해야 할 소수민족으로 규정한다. ‘자결권구호의 토대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우리는 그와 같은 토대 위에서 흑인을 동맹으로 삼아야 하는가? 흑인 프롤레타리아와 흑인 소부르주아 중 누구를 획득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보기에 이 [자결권] 구호는 대개 소부르주아만 끌어들일 것이다. 따라서 이런 방식으로 흑인을 동맹으로 획득해서는 안 된다. 빈농과 소작인은 프롤레타리아의 가장 친밀한 동맹이다. 그러나 그들을 계급투쟁으로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 이러한 원칙에서 벗어날 경우 소부르주아 동맹을 프롤레타리아와 빈농보다 앞세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특정한 발전 단계가 존재하고 그에 맞는 구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스탈린주의 구호는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계급의식을 토대로 흑백 노동자의 단결을 이뤄야 한다. 물론 인종 문제를 인지하고 계급구호와 더불어 인종구호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흑인의 사회 정치 경제적 평등을 핵심구호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구호는 스탈린주의자들의 구호, 소수민족 자결권과 확연히 구별된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이 구호 위에서만 흑인 노동자와 농민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처음에 이 구호는 전국의 흑인을 상대로 선전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남부에서만 선전되고 있다. 이들과 달리 우리는 계급적 기초 위에서만 흑인 노동자를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우리는 현 발전 단계에 필요한 인종 구호 역시 제기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 가난한 흑인 농부도 우리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흑인 문제를 다루는 구호의 문제는 현실적 강령의 문제인 것이다.

트로츠키: 미국 동지들의 관점은 내게 잘 와닿지 않는다. ‘민족자결은 민주적 요구다. 미국 동지들은 이 민주적-자유주의적 요구에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 민주적 요구는 복잡한 의미가 있다. 동지가 말한 정치적 평등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사회적 평등은 도대체 무엇인가? 모두가 법의 평등한 보호를 받자고 여론에 호소하자는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곧 정치적 평등이다. 이처럼 사회 정치 경제적 평등은 의미하는 바가 모호하고 오해하기도 쉬운 구호다.

동지는 미국 흑인을 민족이 아닌 인종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민족은 일정한 조건하에 놓인 인종에서 형성된다. 아프리카의 흑인은 아직 민족이 아니다. 그러나 민족으로 발전해가는 단계에 놓여있다. 미국 흑인은 문화적으로 훨씬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미국 내 억압에 시달리는 동시에, 아프리카 흑인의 발전에 흥미를 보이고 있다. 미국 흑인은 아프리카의 지도자를 길러낼 것이다. 확신하건데, 그것은 다시 미국의 정치의식 발전에 영향을 줄 것이다.

물론 우리는 흑인에게 민족이 되도록 강요할 의무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민족이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이제 의식 즉,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추구하는지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만약 흑인들이 그리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제국주의에 맞서 함께 싸울 것이다. 그 투쟁을 통해, 흑인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미국 어느 곳의 땅 한 조각을 떼어내 독립할 권리를 획득할 것이다.” 오늘날 흑인이 미국의 어느 주()에서도 인구의 다수가 아니라는 사실은 중요치 않다. 우리의 고려사항은 흑인이지 주() 정부가 아니다. 흑인이 압도적 다수인 지역에 백인도 산다는 사실이나, 분리 이후 흑인이 백인을 박해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다. 우리의 이러저러한 생각과 상관없이 흑인 억압은 그들을 정치적 민족적 단결로 내몰고 있다.

자결권구호가 노동자 대신 소부르주아만 끌어들일 것이라는 동지의 주장은 동지의 평등 구호와도 부합한다. 현재 사회적으로 주목 받는 흑인(사업가, 지식인, 법조인 등)이 흑인 노동자보다 불평등에 맞서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런 점을 볼 때 민주적, 자유주의적 요구는 먼저 소부르주아를 나중에 노동자를 끌어들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지금 미국에 백인 노동자와 유색인종 노동자의 단결과 계급적 우애가 이미 존재한다면,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동지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동지의 주장이 어느 정도 일리 있었을 것이며, ‘자결권구호가 유색인종 노동자와 백인 노동자를 분리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흑인과 관련된 백인 노동자는 억압자이거나 비열한 자들이다. 그들은 흑인과 황인종을 박해하고 린치를 가하거나 모욕한다. 흑인 노동자가 오늘 그들의 소부르주아와 손을 잡는다면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기본적 권리를 방어할 만큼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부 지역 노동자에게 사회 정치 경제적 평등이라는 자유주의적 구호는 틀림없이 진보적 의미를 띨 것이다. 그러나 자결권구호는 훨씬 더 진보적이다. 반면 사회 정치 경제적 평등구호는 (이 평등 관련 동지가 소개한 법에 따르면) 그들을 훨씬 쉽게 오도할 것이다.

장래에 흑인들이 자치를 요구할 날이 올 것이고 흑인들은 미국 제국주의에 정면으로 맞서 싸울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노동자는 소부르주아보다 훨씬 더 결연하게 투쟁에 임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는 소부르주아들이 무능한데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백인 공산주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지지하며 투쟁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흑인 노동자는 공산주의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흑인의 자결권이 미국 연속혁명 문제라는 와이스보드의 말은 타당하다. 흑인들은 의식의 각성을 통해, 자치 요구를 통해, 그리고 자신의 힘을 민주적으로 결집시키는 행동을 통해 계급적 토대를 자각할 것이다. 흑인 소부르주아는 사회 정치 경제적 평등’’자결권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투쟁에서는 완전히 무능할 것이다. 흑인 프롤레타리아는 소부르주아를 제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향해 전진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그들이 겪을 수밖에 없고 겪어야만 하는 중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왜 우리가 자결권을 요구해선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흑인들이 남부에서도 자기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 지금 흑인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언제든 린치 당하기 때문에 자기 언어를 사용을 꺼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흑인이 자유를 쟁취한다면 흑인 언어는 다시 되살아날 것이다. 나는 미국 동지들이 남부의 흑인 언어를 포함한 흑인 문제 일반을 매우 진지하게 연구할 것을 권한다. 지금까지 논의한 모든 것을 놓고 볼 때, 나는 공산당의 입장으로 기울게 된다. 물론 나는 이 문제를 연구해본 적이 없고 나의 발언은 어디까지나 일반적 고려에서 출발한 것이다. 나는 미국 동지들이 제시한 주장만 검토했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미국 동지들의 주장은 불철저할 뿐 아니라 미국 국수주의에 일정하게 굴복한 것으로 보이기에 아주 위험하다.

우리가 자결권을 요구한다고 해서 잃을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당장 그렇게 한다고 해서 흑인들이 잃을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그들에게 분리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흑인들이 원한다면 그들은 완전한 자결권을 획득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지지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 권리 실현을 방어할 것이다. 우리가 모든 피억압민족을 방어할 때처럼 말이다.

스와벡: 동지의 주장은 설득력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받아들일 수 없다. 남부에서 흑인 언어가 아직 사용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미국 흑인은 대체로 영어를 사용한다. 그들은 완전히 동화되었다. 그들의 종교는 미국 침례교이고 그들이 교회에서 쓰는 언어도 영어다.

우리가 말하는 경제적 평등은 법적인 의미가 결코 아니다. 북부와 남부 모두, 흑인은 백인 노동자보다 오래 일하지만 임금은 더 낮다. 이런 관행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게다가 흑인에겐 모두가 기피하는 일을 맡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흑인 노동자의 경제적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흑인의 자결권에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와 스탈린주의자들의 의견 불일치는 여기에 있지 않다. 우리는 흑인 대중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결권구호가 적절한지를 문제 삼을 뿐이다. 지금 흑인들의 소망은 무엇보다도 사회 정치 경제적 평등을 향해 있다. 공산당도 자결권구호를 남부에서만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북부 산업지대의 흑인들은 남부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으며 이와 비슷한 징후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와 반대로 그들의 암묵적 요구는 삶의 필요에서 제기된 사회 정치 경제적 평등이다. 그리고 남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호가 중요한 인종 구호라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는 흑인이 식민지 피억압민족처럼 민족적 억압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탈린주의자들의 구호가 흑인들을 계급적 기초가 아닌 인종 문제에 집중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가 그 구호를 반대하는 핵심 이유이다. 우리가 제기한 인종 구호가 그들의 계급적 자각을 즉시 촉발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프랭크: 지금 미국에 특기할 만한 흑인 운동이 있는가?

스와벡: 몇 개 있다. 먼저 마커스 가비의 아프리카 이주 운동[마커스 가비(Marcus Garvey)는 자메이카의 흑인 민족주의자로 백인의 흑인 착취와 억압에 맞서 카리브 제도, 미국, 아프리카의 흑인이 공동의 조상을 가진 형제로서 단결해야한다고 주장, 1914년 세계흑인지위향상협회(UNIA) 설립 후 카리브 제도와 미국에서 흑인 억압을 비판하는 대중연설로 수백만 흑인의 지지를 받음, 동시에 골수 반공주의자 겸 흑백분리주의자로 공산주의를 흑인의 단결을 방해하는 백인의 사상으로 규정하고 흑인이 백인과 분리되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을 떠나 아프리카에 나라를 세워야한다고 주장, 1919년 아메리카 대륙의 흑인을 라이베리아로 이주시키는 아프리카 이주 운동을 기획하고 이주민을 수송할 여객선 회사 검은 별 해운’(Black Star Lines) 설립, 1922년 가비를 감시하던 FBI 국장 에드가 후버(Edgar Hoover)가 검은 별 해운 관련 사기죄로 기소, 같은 해 가비는 KKK단과 짐 크로우법의 흑백분리에 동조하는 연설로 흑인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KKK단 지도자 에드워드 클라크(Edward Clarke)를 만남, 미국 흑인 사회와 UNIA 내부에서 가비 퇴진 운동이 촉발되고 1923년 사기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1925~27년 수감, 미국 흑인 사회에서 가비와 UNIA는 사기꾼 겸 KKK단 협력자로 간주되어 지지 상실]을 꼽을 수 있다. 이 운동은 한때 많은 추종자를 끌어 모았지만 사기로 드러나면서 파산했고, 지금은 남은 것이 별로 없다. 그 구호는 아프리카에 흑인 공화국을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그 외에 주목할 만한 운동은 사회 정치적 평등 요구에 기초해 있는데, <전국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를 꼽을 수 있다. 이 단체는 인종운동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트로츠키: 나 또한 사회 정치 경제적 평등구호의 중요성을 인정하며 이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것이 실현되지 못한 만큼 이 구호는 진보성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 평등에 관한 스와벡 동지의 설명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민족문제와 같은 흑인의 운명 문제를 매듭지을 수 없다. 미국 동지들의 주장에 따르면, 벨기에도 민족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벨기에인의 다수는 카톨릭을 믿고 프랑스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와 같은 주장을 하면서, 프랑스가 그들을 병합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스위스 사람은, 비록 언어와 종교는 각기 다르지만, 공통된 역사를 근거로 자신을 한 민족으로 여긴다. 민족의식에 있어, 인민의 느낌과 열망으로 표현되는 역사의식은 추상적 기준보다 결정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연히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제반조건 속에서 형성된다. 그러므로 독자적 종교의 유무는 민족의식의 유무와 완전히 무관하다. 그리고 흑인들이 믿는 침례교는 록펠러가 믿는 침례교와 이름만 같을 뿐 사실상 별개의 종교다.

자결요구를 거부하는 정치적 주장은 교조주의이다. 우리는 자결문제에 대한 그와 같은 말을 러시아에서 여러 번 들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험은 고유의 특성, 관습, 언어 등을 유지하는 농경민 집단이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시 (민족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결구호가 계급적 각성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주장은 백인 노동자들의 생각에 굴복한 것이다. 흑인은 백인 노동자가 계몽되어야 계급적으로 각성할 수 있다. 결국 식민지 인민의 문제는 우선적으로 제국주의 본국 노동자의 발전에 달려있다.

미국 노동계급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반동적이다. 사회보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못할 정도이다. 이 때문에 미국 공산주의자들은 개량적 요구를 제기할 의무가 있다.

오늘날 흑인이 자결을 요구하지 못하는 것은 백인 노동자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구호를 아직 제기하지 못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이유이다. 흑인의 검고 위축된 머리는, 감히 흑인이 자신을 위해 (미국의) 땅 한 조각을 떼어내 강대한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백인 노동자는 당장이라도 흑인들을 만나 여러분이 분리를 원한다면, 우리는 여러분을 지지할 것이라고 반드시 말해야 한다. 그리고 체코 노동자의 경우, 그들은 자기 국가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난 뒤에야 공산주의로 넘어왔다.

나는, 전대미문의 정치 이론적 후진성과 전대미문의 경제 발전이라는 모순으로 인해, 노동계급의 각성이 그만큼 급격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낡은 이념적 외피가 터지면서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제기될 것이다. 이 나라의 고도로 발전된 경제와 그 수준을 맞춰야 할 필요성 때문에, 정치적 이론적 수준이 급격히 상승할 것이다. 이때에 흑인은 노동계급 내에서 가장 선진적인 부위가 될 것이다.

러시아에서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있다. 러시아인은 유럽의 흑인이었다. 흑인들은 자결권 투쟁을 통해, 큰 걸음을 디디며 나아갈 것이고, 백인 노동자들보다 먼저,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상에 도달할 것이다. 그 때에 흑인은 미국 노동계급의 선봉에 설 것이다. 그리고 나는 흑인 노동자들이 백인 노동자보다 훨씬 잘 싸우리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공산당이 흑인의 민족적 편견이 아니라 백인 노동자의 견고한 인종차별 의식에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며 그 어떠한 경우에도 이를 용납하지 않을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스와벡: 그렇다면 동지는 자결권구호가 흑인을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으로 이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트로츠키: 사실 흑인들은 강력한 미국에 맞서 자신의 국가를 세울 수 있고, 백인 노동자의 지지 속에서 그들의 의식이 급성장할 것이다.

수정주의자들과 개량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아프리카를 문명화시킨다는 글을 줄곧 써 왔다. 예를 들어 만약 아프리카 인민이 자립한다면, 최소한 법의 보호를 받는 지금보다 더 자본가에게 착취당할 것이다 같은 내용이었다.

이 주장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문제는 유럽 노동자이다. 그들의 해방 없이는 진정한 식민지 해방은 불가능하다. 백인 노동자는 압제자로 행동할 때, 식민지 인민 해방은커녕, 스스로도 해방시킬 수조차 없다. 식민지 민족의 자결권은 특정 시기에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국에는, 반제국주의 투쟁과 식민지 민족의 해방으로 이끌 것이다.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특히 레너[Renner, Karl (1870-1950) 오스트리아 사회민주주의 지도자. 1차대전에 사회국주수의가 되어 오스트리아 대통령을 지냄])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에 소수민족 문제를 추상적으로 다룬 적이 있다. 그들은 스와벡 동지와 마찬가지로 자결권구호가 노동자들을 계급의식에서 멀어지게 할 뿐이며, 소수민족 국가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의 주장은 적절했는가? 아니다. 그건 현학적이었다.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은 소수민족들이 민족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어떠한가?

(합스부르크 왕조가 묶어두었던 옛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소수민족들은,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기는 하지만, 실존한다. 러시아의 볼셰비키는 완전한 독립의 권리를 포함하여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위해 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결권을 획득한 소수민족들은 소련에 남는 길을 택했다. 만약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이 이 문제에 올바른 입장을 채택했다면, 그들은 소수민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여러분에게는 완전한 자결권이 있다. 우리는 여러분을 합스부르크 왕정의 손아귀에 붙들어 놓을 생각이 없다.” 만약 이랬다면 그들은 혁명 후 대()다뉴브 연방을 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발전의 변증법은 완고한 중앙집권제가 국가를 산산조각 내는 한편, 완전한 자결권이 진정으로 하나 된 국가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흑인문제는 미국에서 매우 중요하다. 공산주의동맹은 내부회보 등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에 착수해야 한다.

Prinkipo, Turkey

February 28, 1933

 

미국 흑인의 자결권

 

193944

트로츠키: 존슨 동지가 세 번에 걸친 흑인 문제 토론을 제안했다. 이번 시간에는 강령적 문제로서 흑인 자결권을 다루면 될 것 같다.

존슨: (이 글에 실리지 않은 통계자료를 제시한 뒤) 우리 모두 흑인 문제에 대한 기본적 입장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의견이 일치되지 않은) 자결권 문제만 다루면 된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흑인의 자결권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지지할 것인지에 대해선 이견을 보이고 있다. 나는 아프리카와 카리브 제도의 자결권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인민의 대다수가 자결권을 원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인민대중은 자결권을 독립으로 받아들인다. (노예로 끌려왔다는 점에서) 미국 흑인과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는 카리브 제도에서는 민족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이곳에서 흑인은 인구의 다수를 점한다. 카리브 제도에서 의식이 가장 발전된 민족은, 대영제국이 그들에게 완전한 시민권을 제안해도 이를 거부하고 완전한 자유와 독립을 추구할 것이다. 이는 진보적이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다. 우리의 적은 약화될 것이고 노동자들은 사회주의를 향해 큰 발걸음을 디딜 것이다.

미국 상황은 다르다. 흑인은 필사적으로 미국 시민이 되려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나라가 세워질 때부터 이 땅에 살면서 모든 일을 다 했다. 그러나 우리보다 늦게 이주한 유대인, 폴란드인, 이탈리아인, 스웨덴인 등이 우리보다 더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다. 너희(미국 정부)는 일부 독일계 미국인을 독일 첩자로 여긴다. 반면에 우리는 누구의 첩자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너희는 우리를 군대에서 배제하고 우리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있다.”

폴란드와 카탈로니아는, 경제 · 정치적 억압에 맞서 인민을 진보적인 자결권 투쟁으로 결집시킬, 언어와 문화적 전통 및 역사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흑인은 다르며 그들의 발전 과정에서 일어난 주목할 만한 사건들이 이를 입증한다.

마커스 가비는 아프리카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그를 따르는 대다수의 흑인들은 진짜로 아프리카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카리브 제도의 가비 추종자들은 아프리카로 돌아갈 생각이 조금도 없었지만 그를 전투적인 지도자로 반겼다. 그리고 노면전차에서 자신을 무례하게 밀친 백인 여성에게 한 흑인 여성이 다음과 같이 말한 사례가 있다. “마커스가 권력을 잡으면 너희 백인들은 대가를 치를 거다.” 가난한 아프리카는 그녀의 머릿속에 없다.

1919년에 시작된 아프리카 이주운동은 백인 노동자들의 의식이 후진적이었기 때문에 주목받을 수 있었다. 그때는 흑인과 백인의 단결을 요구하는, 영향력 있는 정치조직이 존재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서 돌아온 흑인 병사들은 상당히 급진적이었으나 그 어느 조직도 이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협소한 문제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는 시카고 고용주들이 1919년 인종주의 폭동을 사주한 사건에 주목해야 한다. 폭동이 일어나기 직전, 흑인과 백인 육류 포장 노동자들은 함께 파업에 돌입했고 흑인 거주지를 행진했다. 흑인 주민들은 백인 파업노동자에 환호를 보냈고 백인 노동자도 환호로 응답했다. 자본가들은 이를 매우 위험하게 여겼고 즉시 인종갈등을 부추겼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한 무리의 백인들이 흑인 거주지에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자본가 언론은 흑인에 대한 편견과 폭력 분위기를 조장했고, 급기야 폭동의 불꽃을 당겼다. 폭동은 시카고 주민을 분열시켰고 흑인을 고립시켰다.

대공황 시기에 흑인 민족주의 운동이 부활했다. 미국 남부에 흑인의 49번째 주()를 세우자는 운동과 라이베리아 이주 운동이 크게 성장했다. 이러한 운동들은 1934년까지 상당한 세를 불렸다.

그러다 1936년 산별노조협의회(CIO)가 창립됐고 초대 위원장 존 L. 루이스는 조합 내에 흑인 부서를 설치했다. 뉴딜정책은 흑인들에게 우호적 손짓을 보냈다. 흑인과 백인은 여러 투쟁에서 함께 싸웠다. 흑인 민족주의 운동은 흑인이 조직 노동자와 함께 싸우며 성과를 내자 소멸하기 시작했다.

자결권을 옹호하고 이를 흑인에게 주입하는 것은 남부의 노동계급을 분열과 혼란에 빠뜨릴 위험이 크다. 남부의 백인 노동자는 수백 년 묵은 편견에 찌들어있다. 그러나 오늘날 치솟는 투쟁의 물결 속에서 그들이 낡아 빠진 편견을 극복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남부 소작인 동맹의 흑인과 협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흑인 스스로도 원치 않는 흑인 국가를 백인 노동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다. ‘부채 탕감’, ‘대지주 몰수같은 구호는 흑인과 백인을 경제 투쟁에서 단결시킬 것이고 이를 통해 사회적 차별 철폐 투쟁에서도 그들을 단결시킬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첫째 우리는 자결권을 지지한다. 둘째 우리는 자결권 요구가 반드시 제기되어야 할 때 이를 지지할 것이다. 셋째 우리는 이 구호를 제기함으로써 (사회주의로 향하는) 길에서 이탈하거나 우리와 사회주의 사이에 불필요한 장애물을 놓지 않을 것이다. 넷째 우리는 마커스 가비 운동, 49번째 주() 운동, 라이베리아 이주 운동에 대해 연구할 것이다. 이를 통해 어떤 사회집단이 그 운동을 지지했는지 그리고 흑인이 자결권을 얼마나 지지하는지를 밝혀낼 것이다.

카를로스: 내가 보기에 그 문제는 여러 단계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자결권의 경우, 우리 모두 독립을 포함한 자결권 일반을 지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립을 무조건 지지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지지하는 것은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특정 사건으로, 그곳 주민이 독립할지 잔류할지, 혹은 다수 민족의 정부와 어떤 협정을 체결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자결권이 반드시 반동적이라는 주장은 내가 보기에 약간 억지스러운 것 같다.

여러 민족과 집단의 자결권은 세계의 사회주의적 미래와 대립하지 않는다. 나는 이 문제가 레닌과 퍄타코프의 논쟁에서, 러시아 지배하에 있는 민족들의 자결권 옹호와 동시에 통일 국가 건설의 관점 하에 다뤄졌다고 생각한다. (자결권과 사회주의) 사이에 필연적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사회는 예속된 민족이 아닌 자유로운 민족의 손으로 세워질 것이다. 자결권의 반동성과 진보성은 그것이 사회혁명을 촉진하는가에 달렸다. 이것이 판단 기준이다.

대중이 원치 않는 것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는 틀렸다. 우리는 대중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지지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의 기초적 문제도 여기에 해당된다. 미국에서 사회주의를 원하는 사람은 극소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회주의를 지지한다. (상당수의 미국인이) 전쟁을 원할 수 있지만 우리는 반대한다. 우리가 풀어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과연 그것이 미국 제국주의를 파멸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가? 만약 그러한 운동이 등장한다면 과연 사태가 전개됨에 따라 인민이 지지할 것인가?

당신이 소개한 민족주의 운동 모두 지난 몇 년간 소수의 사람이 투쟁을 주도했지만 사회적 위기의 순간에 대중이 그 운동에 결집하였다. 흑인 자결권의 경우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소위 블랙 벨트라고 불리는 지역은 미국 경제에서 초과착취를 당하는 부위이다. 그곳은 제국에 정복당한 지역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이곳에는 극심한 가난과 정치적 불평등이 만연해있다. 이 지역은 (식민지와) 동일한 금융구조 즉, 월스트리트가 소부르주아를 착취하고 소부르주아가 가난한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지역은 이윤을 추출하는 단순 투자처로서, 식민지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곳의 백인조차 금융자본에 반감을 느끼는 것은 이것이 본질적으로 지역 차원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또한 흑인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연구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흑인들은 미국에 끌려온 뒤 수백 년간 남부에 살았다. 세계대전이 터지자, 많은 흑인이 북부로 이주해 프롤레타리아의 한 부위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런 추세는 더 이상 진전될 수 없다. 자본주의는 더 이상 예전처럼 팽창하지 못한다. 오히려 대공황 시기에 많은 흑인이 농장으로 돌아갔다. 따라서 흑인이 북부로 이주하는 대신 남부에 머무는 경향이 강해질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요인도 있다. 수천 명의 노동자를 실직시킬 면화 수확기가 그것이다.

자결권 문제로 다시 돌아와서, 사회적 위기의 순간에 급진화가 두 국면을 거쳐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먼저 경제 · 사회적 평등을 위한 투쟁이 일어나고 자기 국가에 대한 요구가 나타날 수 있다. 심지어 러시아에서 볼셰비키의 집권은 폴란드 인민에 대한 억압의 종식을 의미했지만 그들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권리를 요구했다. 같은 일이 남부에서 일어날 수 있다.

이러저러한 문제들도 중요하지만, 민족은 반드시 독자적 언어와 문화와 전통을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흑인은 일정하게 독자적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공공도서관에서 새로운 인종적 정서를 표현한 소설과 문집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 볼 때, ‘블랙 벨트의 이탈은 거대한 투자처의 상실과 미제국주의의 약화를 의미한다. 이는 미국 노동계급에게 이로운 한 방이 될 것이다.

내 생각에 자결권은 사회 · 정치 · 경제적 평등을 위한 투쟁과 대립하지 않는다. 북부에서 후자는 긴급한 투쟁이며 그 필요 또한 날카롭게 제기된다. 경제 · 정치적 평등은 북부의 일상적 문제를 다루는 선동구호이다. 실천적 관점에서, 어느 누구도 자결권 구호를 당장 선동하자고 주장하지 않으며, 장래에 선동할 수도 있는 강령적 문제로 제기할 뿐이다.

또한 심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만약 흑인들이 자결권을 그들에 대한 차별로 받아들인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신할 때까지 그 구호를 보류해야 한다.

트로츠키: 나는 존슨 동지가 우리 강령에서 흑인의 자결권 구호를 없애자고 제안하는 것인지, 아니면 흑인들이 자결권을 원할 때 그들을 위해 모든 걸 다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을 하지 말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자결권을 강령에서 삭제할지 말지는 당 전체에 중요한 문제다. 흑인이 원할 때 그들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 당은 흑인의 의사결정에 전적으로 중립을 지킬 것이다. [자결권이] 반동적일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아니, 반동적이지 않다. 우리는 그들에게,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백인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므로, 나라를 세우라고 말할 수 없다. 이는 국제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경제적 진보를 희생시키더라도 미국에 남으라.”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어떻게 할지는 여러분에게 달렸다. 만약 여러분이 이 땅의 일부를 차지하길 원한다면 우리는 이를 지지한다. 그러나 결정은 우리가 아닌 여러분이 한다.’

나는 카리브 제도, 카탈로니아, 폴란드와 미국 흑인의 상황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폴란드의 자결권을 부정했다. 그는 자결권이 반동적인 데다 날아다닐 권리를 요구하는 것만큼 환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문제에 필히 요구되는 역사적 상상력이 부족했다. 폴란드 지주와 지배계급의 대표도 자기만의 이유로 자결권을 거부했다.

존슨 동지는 자결권, ‘지지’ ‘옹호그리고 주입이라는 세 개의 동사를 연결시켜 사용한다. 나는 흑인이 원할 때 자결권 투쟁을 지지해야 할 의무가 당에게 있음을 말할 뿐이지, 당이 자결권을 옹호해야 한다거나 주입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우리 흑인 동지들만의 것이 아니다. 이는 1,300~1,400만 흑인의 문제다. 그들 중 대다수는 매우 후진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그때 그들은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가비 운동에 대한 동지의 설명은 흥미롭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현상에 매이지 않고 이 문제를 신중하면서도 넓게 바라보아야함을 일깨운다. 흑인 여성이 백인 여성에게 마커스가 권력을 잡으면 너희 백인들은 대가를 치를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단순히, 자기 나라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것이다. 미국 흑인들이 아프리카 이주운동에 모여든 이유는 그 운동이 자기 나라에 대한 열망을 채워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짜로 아프리카에 가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백인 지배에서 벗어나, 흑인 스스로 자기 삶을 결정할 안식처에 대한 열망을 신비주의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자결권에 대한 소망이었다. 그 소망은 한때 종교적 형태로 표현되었으나 지금은 독립국가에 대한 열망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곳 미국에서 백인은 막강하고 잔인한 데다 부유하기까지 하다. 따라서 가난한 흑인 소작농은 스스로에게조차 감히 이 나라의 일부를 떼어내 자기 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가비는 흑인의 소망이 아름다운 것이며 멋지게 실현될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정신분석가라면 누구나, 이러한 소망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자기 나라에 대한 열망이라고 분석할 것이다. 그 사상을 주입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흑인이 자기 소망을 보다 현실적 형태로 만들 가능성을 내다보자는 주장인 것이다.

일본이 미국을 침공하고 흑인이 그 싸움에 소집된 상황을 가정해보자, 아마도 흑인들은 양측 모두에 위협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각성한 흑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너희 중 누구의 승리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국가를 세울 것이다.”

그러나 흑인 국가는 [북아메리카] 연방에 합류할 수 있다. 미국 흑인이 자기 나라를 세우는 데 성공한다면, 독립의 기쁨과 자부심의 몇 년이 지난 뒤, 연방 합류 필요성을 느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는 카탈로니아도, 비록 고도로 산업화되고 발전된 지역이기는 하나, 독립 쟁취 뒤에 [이베리아] 연방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유대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독일 국수주의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중 최악은 사민당원이자 아르바이터 자이퉁 지의 편집장 프리드리히 아우스터리츠였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져서, 히틀러는 유대인이 독일 국수주의자가 되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그리하여 이제 그들 중 다수는 시온주의자 겸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 겸 반독일주의자가 되었다. 나는 최근, 한 유대인 배우가 미국에 도착해 땅에 입을 맞추는 역겨운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아마 이런 부류들은, 미국에서도 파시스트의 주먹에 얻어맞은 뒤 팔레스타인 땅에 가서 입을 맞출 것이다.

혁명의 성공 대신 다른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파시즘이 인종주의 억압과 참주선동을 일삼으며 집권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흑인은 인종적 독립으로 기울 것이다. 미국 파시즘은 유대인과 흑인을 표적으로 삼을 것이며, 특히 흑인을 가장 끔찍하게 다룰 것이다. 미국 백인 노동자들은 흑인의 희생으로 특권적 지위를 누리게 될 것이다. 흑인은 미국의 일부가 되기 위해 심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 그에 대한 흑인의 반작용은 혁명기에 그 위력을 틀림없이 보여줄 것이다. 그들은 백인을 불신하면서 혁명에 참가할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중립을 지키며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독립국가를 원한다면, 이를 무조건 지지할 것이라고 약속해야 한다.

내가 아는 한, 이 구호를 명령하는 공산당의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이는 마치, 백인이 흑인에게 따로 나가 살아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는 분별력 없는 잘못으로, 흑인들의 혐오감만 살 뿐이다. 흑인은 이를 백인이 자신들을 분리시키려는 시도로 받아들일 것이다. 물론 우리 흑인 동지들은 흑인의 의식 발전에 보다 깊이 개입할 권리가 있다. 우리 흑인 동지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독립을 원한다면, 4인터내셔널은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우리를 도울 것이다. 그러나 선택은 오로지 우리의 몫이다. 하지만 제4인터내셔널의 흑인 회원으로서 내 의견을 밝히자면, 나는 우리가 백인과 같은 나라에서 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흑인의 정치 · 인종적 사상 형성에 참여할 수 있다.

존슨: 나는 여러분과 오늘 이 자리에서 토론하게 되어 너무 기쁘다. 왜냐하면 당신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공산당이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는 미국에서 그 사상을 옹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지는 흑인이 자결권을 원하게 될 가능성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당신의 생각에 나도 100% 동의한다.

트로츠키: 나는 반동적이란 단어가 거슬린다.

존슨: 그 구절을 인용해보겠다. “만약 흑인이 자결권을 원한다면, 다른 모든 측면에서 그것이 아무리 반동적일지라도, 혁명 정당은 그 구호를 제기해야 한다.” 나는 이러한 분리가 사회주의 사회에서 한 발짝 후퇴한 것이란 생각에 그렇게 쓴 것이다. 만약 백인 노동자가 흑인에게 손을 내민다면 흑인은 자결권을 원치 않을 것이다.

트로츠키: 그 말은 너무 추상적이다. 동지의 가정은, 백인의 지배가 종결되었다고 1,300~1,400만 흑인이 느낄 때만 실현될 수 있다. 독립 국가 쟁취 투쟁은 커다란 도덕 · 정치적 각성을 의미한다. 이는 대단한 혁명적 성취이다. 이러한 발전은 즉시 최상의 경제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카를로스: 나는 대토지 집단화와 분배 문제가 이 문제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대토지를 잘게 분할하는 것이 반동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이 문제는 농민들이 땅을 집단적으로, 혹은 개별적으로 경작하길 원하는가에 달렸다. 우리는 농민들에게 조언할 뿐, 어떻게 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결정은 그들에게 달렸다. 혹자는 대토지를 잘게 분할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반동적이라 말하겠지만, 이는 옳지 않다.

트로츠키: 그 혹자가 바로 로자 룩셈부르크였다. 그녀는 자결권이 대토지를 분할하는 것처럼 반동적이라고 주장했다.

카를로스: 자결권 문제는 토지 문제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있다. 따라서 정치적 측면뿐 아니라 경제적 측면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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