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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혁명에 관한 세 가지 사상


[이 논문은 트로츠키의 레닌 전기에 부록으로 실리고, 미완성작인 스탈린에 포함된 것입니다. 이 논문은 러시아혁명에 대한 플레하노프, 레닌, 트로츠키의 전망을 대조적으로 설명합니다. 2003년 출판된 역사의 대안트로츠키주의/풀무질에 실린 번역을 뼈대로 했으나, 상당한 수정을 거쳐 다시 게재합니다.볼셰비키그룹]

 

 

1905년 혁명은 1917년 혁명의 리허설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러시아 정치의 기본적 세력들이 형성되는 하나의 실험실이기도 했다. 러시아 마르크스주의 내 모든 경향들과 미세한 차이들이 드러났다. 물론, 논쟁이나 의견 차이의 핵심에는 러시아혁명의 역사적 성격과 장래의 발전경로에 관한 문제가 있었다.

혁명사상이나 정치적 예측을 둘러싼 논쟁은 스탈린이라는 인물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그는 분명한 자기 입장을 갖고 논쟁에 참여한 적이 없다. 이 주제에 대해서 그가 쓴 몇 안 되는 선전문들은 이론적인 면에서 볼 때, 일고의 가치도 없다. 많은 볼셰비키 당원들이 문필활동을 통해 혁명사상을 보급했다. 모두들 스탈린보다는 훨씬 나았다. 볼셰비키의 혁명사상에 대해서는 당연히 레닌이 가장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론들은 저마다 다른 운명을 갖고 있다. 1차 혁명(1905년 혁명)으로부터 1923년에 이르기까지, 혁명이론은 현실에 맞게 다듬어지고 적용되어왔다. 이 기간에조차 스탈린은 무엇하나 독자적 입장이 없었다.

1924년에 상황이 급변했다. 관료적 반동이 일어나면서 과거에 대한 극단적 재평가가 시작되었다. 혁명의 필름이 거꾸로 돌아갔다. 낡은 이론이 재평가되고 새롭게 해석되었다. 이리하여 트로츠키주의모든 오류의 원천으로, ‘연속혁명사상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일견, 뜻밖의 일이었다. 그 후로 여러 해 동안, 연속혁명 사상에 대한 비판은 스탈린과 그 협력자들의 모든 이론적 글들의 중심 내용이 되었다. 기만이 그 글들의 주목적이었다. 이론 수준에서 모든 스탈린주의1905년 공식화된 연속혁명 이론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나왔다. 연속혁명 이론은 멘셰비키나 볼셰비키의 이론과는 다르다. 그런 점에서 이 이론에 대한 설명은, 비록 부록의 형태일지라도, 이 책에 실릴 필요가 있다.

 

러시아의 결합발전

무엇보다도 그 후진성이 러시아적 발전의 특징이다. 그러나 역사적 후진성은 선진국의 발전과정을 1~2백 년 늦은 시점에 단순 반복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역사적 후진성은 오히려 완전히 다른 요소들이 결합된사회구성을 낳는다. 봉건적, ()봉건적 사회관계에 통합된 자본주의 기술과 조직의 최신 성과는 낡은 사회관계를 변화시키고 종속시키며, 독특한 계급관계를 만들어낸다. 사상에서도 동일한 일이 일어난다. 바로 그 역사적 후진성 덕분에 러시아는, 부르주아혁명에 앞서서 마르크스주의와 사회민주당이 강력히 발전한, 유럽 내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때문에, 러시아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상호관계 문제가 격심한 이론적 시험대에 올랐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주로 인민주의자[나로드니크]인 관념적 민주주의자들은 미신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임박한 혁명을 부르주아혁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혁명의 사회적 성격이 안팎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당면 혁명에 민주주의적이라는 모호한 꼬리표를 붙였다. 그러나 1880년대부터 인민주의에 맞서 투쟁해온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 플레하노프는 이미 다음과 같은 정식을 세운 바 있다. , ‘러시아가 제 홀로 독특한 발전경로를 걸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다른 보통국가들처럼, 러시아는 자본주의라는 연옥(煉獄)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길을 거쳐, 노동계급은 사회주의를 목표로 한 자신의 지속적 투쟁에 필수불가결한 정치적 자유를 움켜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