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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에 관한 소고:

민족문제와 청년당원의 교육 문제에 대하여

 

이 논문은 트로츠키가 레닌과 더불어, 스탈린과 오르조니키제 관료집단의 러시아 국수주의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1923년 작성되었다. 이미 레닌의 반스탈린 투쟁에 실린 이 논문은 공산주의자가 피억압민족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에 대한 모범답안이다. 매끄럽지 못한 구절들을 수정하여, 독립된 문서로 다시 소개한다.볼셰비키그룹

오래전에 괴테는 낡은 진리는 계속해서 새롭게 정화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각 개인, 당 그리고 모든 계급에게 적용됩니다. 우리 당은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 국가 발전 계획에 대해 새로이 사고하고, 실천경험 속에서 의식적으로 그것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당의 국내정책과 대외정책은 모두 2개의 기본 축, 즉 서유럽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계급운동과 동양의 혁명적 민족운동에 의해 결정됩니다. 청년당원의사실은 당 전체의교육과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실제과정을 강력하고 생생하게 연결 지어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개인에 대한 교육과 마찬가지로, 당에 대한 교육도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배웁니다.) 여기서 민족문제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당의 방향성과 자기교육을 위해 적잖이 유용한 정치적 훈련이 된다는 것을 강조해 두고자 합니다. “적잖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습니다. 결국 서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는 투쟁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인데 반해, 동양에서는, 일반적으로, 문제는 농민이 지배적 다수인 민족을 외국의 멍에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과업입니다. 물론 추상적으로 생각하면 이들 두 개의 운동은 상이한 사회발전단계에 속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들은 같이 연결된 것이며, 단일한 강력한 적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의 두 측면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민족혁명의 엄청난 중요성과 폭발력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영원히는 아닐지라도 긴 세월 동안 서유럽의 혁명운동 및 그와 함께 우리 자신에 대한 신뢰를 절망적으로 손상시킬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혁명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올바른 관계, 즉 그들 계급의 역량과 전 세계적인 혁명운동의 발전과정에 조응하는 그런 관계의 중요성을 완전히 파악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조건에서도 연대(smychka)라는 개념을 적용시키는 법을 배웠는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때때로 아주 부적절한 곳에서도 우리가 이 개념을 적용시켜 왔다는 것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본문제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부가 까닭 없이 노동자와 농민의 정부라 불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혁명의 성패가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올바른 동맹에 달렸다면, 세계혁명의 성패는 무엇보다도 서유럽 프롤레타리아와 동양의 민족혁명적 농민의 올바른 연대에 달린 것입니다. 러시아는 프롤레타리아의 서구와 농민의 동양이 만나는 거대한 접합점인 동시에 실험장입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관계는 전혀 동질적이지 않습니다. 문제의 한 측면은 대러시아 프롤레타리아와 대러시아 농민 사이의 관계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순전히 계급적 내용에 있습니다. 이것은 과제를 추상화하고 단순화시킴으로써 그 해결을 쉽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 연방 국가에서 주역을 맡고 있는 대러시아 프롤레타리아와, 아제르바이잔 · 투르키스탄 · 그루지야(지금은 조지아로 불림) · 우크라이나 농민 사이의 관계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옛날에 억압받던 변경지대에서는 모든 사회적 · 계급적 · 경제적 · 행정적 · 문화적 문제들이 민족적 프리즘을 통해 첨예하게 굴절되어 나타납니다. 그곳에서 (지난 수년간 우리가 적잖이 보아 왔듯이)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불화는 불가피하게 민족적 색채를 띠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예전에 억압받던 민족의 프롤레타리아에게도 상당한 정도로 적용됩니다. 모스크바나 페트로그라드에서 보면, 중앙과 지방, 도시와 농촌, 섬유 노동자와 금속 노동자들 사이의 단순하고 실무적인 갈등으로 이해되곤 하는 것들이,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심지어는 우크라이나에서는 막강한 권력의 모스크바와 약소민족의 요구 사이의 갈등이라는 형태를 띨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실 그대로이며, 또 다른 경우에는 사실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첫째로, 그것이 사실이 되는 것을 막는 일이며, 둘째로 사실처럼 보이는 것을 막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법과 행정적인 수단, 무엇보다도 당()적 수단을 써서,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완수해야만 하는 매우 중대한 임무입니다.

농민에 대한 잘못된 정책이 가져올 위험스러운 결과는 어떤 것입니까? 농민이 프롤레타리아에 의해 지도받기를 그만두고, 부르주아의 지도 하에 들어갈 것이라는 사실에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은 제정으로부터 억압받던 작고 후진적인 민족의 농민대중(그리고 상당한 정도의, 아직 미성숙하고 유약한 프롤레타리아까지도 포함하여)의 문제일 때에는 열 배나 더 가중됩니다. 각 계급들 사이의 민족적 단결 또한 연대이며, 그것은 종종 역사상 매우 강력하고 완강한 연대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습니다. 조지아 멘셰비키, 우크라이나의 페틀류라파, 아르메니아의 다쉬나크당(Dashnaks), 아제르바이잔의 무사바트당, 그 외에 다른 당파들에 의해 흔히 악용되어 왔던, 고대로부터의 원한을 가진 인민들의 민족적 요구에 대해 우리가 올바르고 정중하며 예의바른 태도를 취함으로써 그 당파들을 하찮은 존재로 전락시켰습니다. 반대로 전에 억압받던 민족의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신뢰를 획득하는 일의 거대한 역사적 중요성에 대한 몰이해와 불충분한 이해는, 토착 노동대중의 모든 요구, 모든 원한과 모든 불만이 민족적 저항의 색채를 띠게 할 것입니다. 그러한 기초 위에서 민족주의 이념은 부르주아와 노동자 사이의 강한 연대를 창조했고, 더 정확히는 재창조했으며, 혁명에 대항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노동계급 독재는 역사상 처음으로 민족문제의 올바른 해결 가능성을 열어 놓았습니다. 소비에트 체제는 이를 위한 아주 유리한 국가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 소비에트 국가구조는 매우 탄력적이며 강력한 복원력을 가진 동시에, 언제나 수없이 많은 화해할 수 없는 적들에게 포위되어 있는 우리 혁명의 구심력이자 사회주의 경제계획의 필요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민족문제를 이미 해결했다고 자만한다면 조잡한 자기기만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종종 이러한 자만에는 강대국의 국수주의가 감추어져 있습니다.(심지어 그것은 우리 당의 평당원들 가운데서도 발견됩니다.) 그것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잠재되어 있으며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민족문제는, 모든 민족이 스스로 모국어라고 생각하는 언어로 세계문화에 제약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줄 때에만 그 해결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연방 전체의 거대한 물질적·문화적 진보를 전제로 하며, 우리는 아직도 그러한 전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한 진보가 이룩되는 시간을 자의적으로 단축하는 것은 우리 능력 밖의 일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만약 과거 제정에 의해 억압받던, 모든 후진적 약소민족들의 중요하고 무시할 수 없는 요구들이 충족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결코 무관심과 강대국적 이기심 때문이 아니라, 전체 연방의 공통된, 객관적 조건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들에게 입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강령적 선언이 아닌, 국가의 일상적 사업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과제, 즉 약소민족들의 전적이고도 무조건적인 신뢰를 획득이것은 약소민족의 경험에 의해 확증된다하는 일은 우리 당의 최대 과업입니다.

소비에트 연방에 살고 있는 수백만 인민의 의식 속에는 내전으로 말미암아 깊고 선명한 골이 패이게 되었습니다. 우리 당으로 말하자면, 이 전쟁의 동기나 목적에 민족주의 혹은 제국주의요소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계급혁명전쟁이었으며, 이런 형태로 구 차르 제국의 전 국토와 때로는 심지어 옛 국경을 넘어선 지역을 포괄하였습니다. 내전은 다른 각도에서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 민족집단을 구획했고, 때로는 현 연방의 일부에게 심한 고통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혁명을 수호하기 위한 이 매우 격렬한 투쟁기간 동안, 전쟁의 법칙이 다른 모든 법칙들에 우선되었습니다. 경제생활에 어떤 손상을 가져올 것인가에 관계없이 다리가 파괴되었습니다. 건물들은 군사령부와 병영으로 접수되었고, 학생과 교사들을 그곳에서 퇴거시켰습니다. 엄격한 군사체계는 문화생활 일반, 특히 민족문화에 심한 고통을 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경우에 적군(赤軍) 부대의 후진성과 그러한 부대 내 공산주의자 조직의 일부 불순한 의도를 가진 분자들, 관련 인민위원회의 부적절한 조치들이 민족감정과 정서를 무시하거나 심지어는 짓뭉개 버렸던 사실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부분적인 것일뿐더러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내전은 억압 계급에 대한 공동의 투쟁을 통해 모든 민족의 노동인민을 피로써 굳게 맺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내전은 그 본질상 일상적 공존과 협력의 학교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내전을 통해서는, 형식적·‘입법적원리들을 넘어서, 소비에트 연방에 속함으로써 확보될 수 있고 확보되어야만 하는 유무형의 그 모든 혜택들을 누리는 데에서 옛 지배민족 공민과 후진 소수민족 공민 사이의 실제적·물질적·정신적 평등으로까지 나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피억압민족의 민족적 원한과 분노는 과거 수십 년, 수세기를 두고 누적되어 온 것입니다. 따라서 여성들의 억압적 지위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유산은 단지 선언에 의해그것이 아무리 진실되고 법적으로 보장된다 하더라도처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성들에게는 일상생활 속에서, 매일 매일의 경험 속에서, 여성에 대한 외적 제한과 제약이 없어졌으며, 주위에서 여성을 겉으로는 존중해 주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경멸하는 태도가 사라졌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여성들은 권리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돕는 형제애적 협력이 그녀에게 주어지고 있음을 느껴야만 합니다. 지배민족의 의식 속에 근본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음을 약소민족이 느끼게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배민족 구성원이 실제적이며 도덕적인 평등과 생생하게 살아있는 민족적 형제애로부터 일탈할 때에는 언제나, ‘지배민족 스스로에 의해, 즉 그 민족의 지배계급에 의해 파괴와 배신행위로 간주되어 처벌될 것이라고 약소민족이 느껴야만 합니다. 경제적·문화적 측면에서 보다 조직적인 사업들이 착수됨과 동시에, 약소민족들은 틀림없이 소비에트 연방정부의 일반적인 경제·정치·법률·문화 정책들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즉 이 문제에 대한 우리 당의 기본 방침이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의깊게 지켜볼 것입니다.

우리의 적들은 이 영역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회를 잡고자 애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입니다. 멘셰비키를 조지아에서 축출한 것을 조지아 민족에 대한 억압으로 묘사하며 맹렬한 국제적 캠페인을 벌여왔고 여전히 벌이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조지아에서 제국주의 하수인 멘셰비키를 추방하는 것이 우리 혁명 전체의 생사를 가르는 문제이며, 또한 완전히 정당한 것임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그 목적과 결과에서 피억압 약소민족의 이익과 전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계속 진행 중에 있으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혁명은, 우리의 소망과 무관하게, 그 진행과정에서 민족적 이익과 감정에 상충될 수도, 이것들을 일거에 날려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조지아의 봉기를 지원하기 위한 적군의 침공은 국제 멘셰비키 허풍장이들에 의해 소비에트 국가의 약탈 정책으로 해석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조지아 농민, 심지어는 노동자들에게조차 그러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이해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와 견해들에 맞서 투쟁할 때, 혁명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던 세계 제국주의의 개입을 조지아 멘셰비키가 정력적으로 추진했다는 증거자료를 내보이는 것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불충분합니다. 적군에 대한 민족적 불신에 사로잡힌 조지아 노동인민의 후진적인 계층은 유럽 및 전 세계적 맥락에서 혁명적 사건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구별됩니다. 우리가 취해야 할 유일하게 설득력 있는 정책은, 과거에는 너무나도 자주 모욕당해 왔던 조지아 농민의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과 민족감정, 민족적 자존심이 오늘날의 객관적 상황에서는 완전히 충족될 수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과거에 억압받아 와 혁명을 요구하고 미래에는 어떤 종류의 민족적 불평등으로도 되돌아가지 않을 것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이는 완전히 정당합니다제 민족들 간에 민족적 감수성과 불신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예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약소민족의 공산주의자들 속에서 민족주의적 경향(대체로 방어적 민족주의)이 침투하거나 강화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러한 현상은 독립적 성격을 띠고 나타난 것이 아니라 반영적이며 징후적인 것입니다. 노동계급의 일각에서 표출되곤 하는 무정부주의적·모험주의적 경향이 노동자 조직 지도자들의 기회주의적 성격의 표징이며 결과였던 것과 같이, 소수민족 공산주의자들의 민족주의적 경향도 일반 국가기구에서 그리고 심지어는 집권정당 일각에서조차도 강대국주의(great-powerism)가 아직 근절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표징입니다.

대체로 당원 중 젊은세대가 민족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은 그만큼 더 큽니다. 제정 러시아 당시 이 문제는 혁명정당에게 불가피하게 민족적 억압이라는 형태로 제기되었으며, 우리의 일상적인 선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은 민족문제에 중대한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습관적인 위반의 사례가 드물지는 않았지만 고참당원들은 이 모든 것을 겪었습니다. 청년당원들은 민족적 억압이 없는 나라에서 정치적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공화국의 군사방위문제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경제문제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민족문제는 실제로 거의 직면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민족문제가 종교문제와 같이 이미 해결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해 다시 거론하고 생각해 볼 어떤 것이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후진적인 소수민족 내부에서도, 프롤레타리아를 포함한 보다 혁명적인 분자들조차 민족문제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젊고 성실하며 열렬한 이들 혁명가들은 러시아 공산당을 중심으로 집결하여 자신의 지평을 확대해 왔는데, 자신의 목전에 다가온 민족문제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지 않고, 뛰어 넘어야 할 단순한 장애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민족주의와의 투쟁은, 그것이 비록 이전의 억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모든 곳의 혁명가들이 수행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억압에 의해 배양되어 온 문제라는 점에서 이 투쟁은 끈기 있는 선전전의 성격을 띠어야 하며, 민족적 요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그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데 의거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오랜 동지들 사이에는 민족문제가 소위 우리의 나로드니키적농업강령 혹은 NEP(신경제정책)처럼 일시적인 양보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민족문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비교는 조건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민족문제에서 양보를 할 필요가 없다면, 물론 사회주의 건설이 보다 용이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 과거에 억압이 없었다면, 현재에 언어와 민족문화의 차이가 없다면 말입니다. 또한 수백만의 농민이 없었다면 사회주의 건설이 보다 용이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유럽처럼 아시아도 자본주의적 계급투쟁의 격전장이었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훨씬 유리했을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민족문제에 대한 무관심이나 경멸적인 태도는 역사에 대한 혼란스럽고 현실과 동떨어진 합리주의적 태도를 은폐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적 현실주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포착하고, 그것들을 실천적으로 혁명의 이익과 결합시키는 데 있습니다.

10월 혁명 직전에 우리가 농민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다면, 오늘날 사회주의에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을 것이고, 소비에트 권력도 세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10월 혁명 후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해 비로소 우리 당은 농민의 중요성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고참당원들은 이론적으로만 알았던 문제들을 실천적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실천적으로 그 문제에 직면했던 청년당원들은 이제는 이론적으로 그 경험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민족문제 분야에서 당 전체가 재교육 과정과 청년당원을 위한 입문과정을 의심할 나위 없이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적절한 시기에, 매우 엄격한 프로그램에 따라서 실시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민족문제를 무시하는 사람은 누구나 민족문제의 수렁에 빠지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민족적 요구에 대한 주의깊은 태도가 물론 경제적 분리를 장려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지방(‘민족’) 관료에게 유리할 수 있지만 대중에게는 유리하지 않습니다. 연방 전체에 걸친 집중화된 철도행정이 철도와 관련된 일상생활에서 민족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아님은 아주 당연합니다. 그리고 자치요구와 계획을 평가할 때, 정부 상급관리의 순전히 관료적인 위신·서열·겉치레와, 일상에서 사활적인 이해가 걸린 대중의 참된 요구는 엄격하고 주의 깊게 구별되어야 마땅합니다. 전자는 지방주민에 대해서는 극도로 러시아화된 중앙집권주의자들이며, 동시에 중앙에 대해서는 분리주의자들입니다.

민족적·생산기술적 조건이 집중화를 필요로 하는 한에서는, 민족문화 영역에서의 가장 광범위한 독립성의 유지는 원리상 경제 집중화와 완전히 양립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민족문화의 분권화와 경제의 집중화를 국가차원에서 조정하는 일은 실제로는삶에서는대단히 크고 복잡한 임무입니다. 이것을 집행하는 데는 심사숙고와 자제가 필요합니다. 과거에 억압받았고, 지금도 그 흔적이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민족들은 민족적 독립에 아무런 해도 없고 모두에게 행정적·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면서도 본질적으로 집중화될 수 있는 분야들에서 그것을 지지하는 태도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듯 불투명한 문제를 다루는 데는 최소한 후진 소수민족의 지도자들만이라도 집중화의 장점과 이익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대중으로 하여금 문제의 조치들이 중앙의 어떤 압력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모든 사람의 동의하에 실시되는 조치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정치적인 문제를 합리주의적으로 사고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민족문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더욱 그러합니다.

결론적으로 두 가지만 더 이야기합시다. 최근에 그렇게 어리지 않은 어떤 공산당원으로부터, 혁명에서 민족적인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곤혹스럽기는 하나 고백하건대) 멘셰비즘이요 자유주의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사물과 개념이 완전히 전도되었음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민족문제에 대한 멘셰비키의 태도는 바로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멘셰비키는 권력에서 배제된 동안에는 문제를 날카롭게 파악하지 못하고 민족적 감상에 빠지고 민주주의적 호소에 탐닉해 피억압민족의 폭동을 부추깁니다; 민족 부르주아가 위험에 빠지거나 멘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는, 부르주아에 의해 위탁된 강대국적 사명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의식으로 충만해 피억압민족의 민족주의를 비난하면서 억압적인 중앙집권화 정책을 지속합니다. 반면에, 볼셰비키는 계급적 관점에서 민족적 요인이 지닌 거대한 혁명적 의의를 잘 인식함으로써 민족문제에 대한 혁명적 통찰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볼셰비키는 이러한 정신과 방침을 따라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청년들을 교육해 나갈 것입니다.

1923년 3월 19일

[트로츠키, Pokolenie Oktyabrya(10월 세대) (모스크바, 1924), pp. 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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