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래퍼 꿈꾸던 청년, 테러리스트로 생 마감한 까닭

by 볼셰비키 posted Jan 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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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72016


테러리스트는 <샤를리 에브도> 신문사가 있는 골목까지 왔으나 처음엔 건물을 착각했다. 그 다음에는 그 건물의 코드를 알지 못해 막 출근하려는 직원을 붙잡고 코드를 누르게 해 건물에 들어갔다. 도주 중 버리고 달아난 차 안에는 조심성 없이 놔두고 간 신분증이 있었다.

이런 일련의 행각은 두 명의 테러 용의자가 전문적인 테러리스트는 아니라는 심증을 굳히게 만들었다. 이들이 예멘의 알 카에다 조직에서 훈련을 받았다는 얘기가 언론에서 흘러나왔을 때, 오히려 그 정보가 꿰어 맞추기를 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본인들 입으로 예멘의 알 카에다 조직의 지시를 받은 전사라고 언론(BFM)에 전화로 말했고, 미 정보부도 형 사이드가 4년 전, 예멘에서 훈련 받은 적이 있음을 파리 검사에게 전했다고 한다. 이 두 테러리스트의 예멘 알 카에다 연루설은 인정한다 치자.

그러나, 이들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거의 프랑스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프랑스인들이다. 지난 10일, 생드니 지역 대학의 교수('professeur'는 대학교수와 중등교사 모두를 포함하나, 통상 교수로 번역-기자 주) 4명이 함께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에 프랑스인들을 향한 편지를 기고했다. 이 글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새삼 프랑스인들은 다음과 사실을 환기했다. "프랑스의 아이들이 그들의 형제를 죽인 것"이다.

두 형제가 아랍어를 배운 것도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에 빠져들기 시작한 20살 이후였다. 프랑스인들이, 그들의 심장부에서, 작은 언론사 <샤를리 에브도>의 언론인들을 사살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이슬람 세계와 프랑스가 벌인 대격돌로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상 학교 교육을 통해 공화국의 가치를 공유하는 프랑스인이 된다. 이 가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설득력 있게 흡수한다. 안타깝게도 프랑스 정부가 두 용의자를 사살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해 버린 탓에, 우리는 그들이 테러를 저지르게 된 동기들을 세세히 헤아려볼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그들이 지내온 삶의 여정을 들여다보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삶의 궤적은 지난 8일,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에 실린 내용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방황하던 청년의 일탈... 문명의 격돌로 위장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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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파리 경찰청이 지난 8일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테러 용의자인 사이드 쿠아치(34)와 셰리프 쿠아치(32) 형제의 사진을 공개했다.
ⓒ 프랑스 파리 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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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사만평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 들어가 테러를 저지른 두 청년, 셰리프와 사이드. 겉으로 이 사건은 이슬람 세계와 프랑스 간의 불화가 들끓다가 결국 폭발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방황하던 젊은이들이 마약처럼 빨려 들어간 이슬람 근본주의 세계에서, 그들을 조종하던 구루(스승)의 지시에 따라 저지른 극단적 일탈 행위에 가깝다.

학교와 부모, 미래로부터 밀려난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베'가 되어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지원을 받는 작은 악마들이 된다. 이번 테러는, 일베가 된 한국의 젊은이들이 사람들에게 혐오를 주며 위악을 저지르다가 영웅이 되려고 하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의 용의자였고, 추격 중 사살된 쿠아치 형제는 파리에서 알제리계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두 형제를 기를 여력이 없다 판단하고, 두 형제를 고아를 돌보는 시설에 보내 버린다. 이후 형제는 철저하게 고아로 자라난다.

형제가 각각 11살, 13살에 엄마에게 버림 받았다. 이 형제가 과연 어떤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을까? 이슬람 근본주의의 광기가 스며들 수 있는 정신의 파열은 바로 이 순간에 결정적으로 이뤄진 게 아닐까. 둘은 파리에서 프랑스 서쪽 끝 브르타뉴 지방에 있는 시설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지낸다. 돌봐주는 부모도 없고, 학교 수업에 대한 대단한 흥미도 못 갖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특별히 반항적인 구석도 없고, 학교의 모든 활동에 빠짐없이 참여하며, 나름의 소소한 미래를 키워가던 이들이었다. 그들이 지내던 시설에서 두 형제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언제나 밝고 조용했으며 한 번도 말썽을 피운 적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20대가 되어 다시 돌아온 파리. 셰리프는 래퍼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그의 현실은 피자 배달을 하며 동네 양아치 노릇을 하던 게 전부였다. 셰리프는 19구에 있는 이라크 계의 근본주의 조직에 발을 담그게 된다. 거기서 그는 소위 계파의 '두목'을 만난다. 비로소 동네 건달의 희망 없는 인생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위대한 인생의 길을 열어주는 듯한 구루를 말이다.

구루는 셰리프의 어깨를 어루만져주며, 그의 잠재적 가치를 일깨워줬다. 셰리프 입장에서는 이 구루에게서 신과 부모 그리고 인생의 사명을 한꺼번에 만난 셈이었다.

구루와의 만남, 헤어 나올 수 없었던 이슬람 근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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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를리 에브도>의 다른 풍자 만평. 근본주의자들에 지친 마호메트가 "멍청한 녀석들의 사랑을 받는 건 너무 힘들어"라고 말하고 있다.
ⓒ 샤를리 에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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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가게에서 해고되고, 조직에 대한 그의 충성은 더욱 가열된다. 그는 구루와 함께 이슬람 사원에 다니고, 아랍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조직원들끼리 모여 훈련을 받았다. 그는 위대한 지하드(성전) 조직원이 되어 순교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들의 조직은 지난 2005년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를 했으나, 결국 공항에서 발각돼 체포됐다. 그 일로 셰리프는 3년 징역형에 18개월의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라크에 가지 않게 되어서 안심했다고 당시 변호사는 전한다.

조직에서 일탈한 것처럼 보이거나, 용기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그는 가고 싶지 않았던 두려운 길에 떠밀렸던 것이다. 차라리 공항에서 발각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나 변호사에 따르면, 셰리프는 "당장 지하드의 일원이 되어 유태인 가게 하나 때려 부수고 싶다"고도 말했다.

감옥에서 나와 그는 슈퍼마켓 생선코너에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며, 평온한 삶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그가 감옥에서 만난 인연, 1995년 파리 생미셸 지하철의 테러리스트였던 벨카셈이 그를 일상으로부터 '위대한 전사의 꿈'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2010년,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조직의 프랑스 간부를 맡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다시 그는 프랑스 정보부의 레이더망에 오르게 됐고, 벨카셈 탈옥 시도 사건에 연루돼 다시 한 번 감옥에 갈 뻔한다. 그러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미국 정보부가 프랑스 검찰에게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비교적 조용한 삶을 보내던 그의 형 사이드는 2011년 예멘에 있는 알 카에다 조직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사 훈련을 받고 왔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두 형제는 2015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테러리스트가 되어 등장한다.

이 어설픈 형제 테러리스트들은 마호메트를 모독한 그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샤를리 에브도>의 언론인들 12명을 사살한다. 사살한 직후, 그들은 거리에 나와 외친다.

"우리가 <샤를리 에브도>를 죽였다."
"신은 위대하다."
"마호메트의 원수를 갚았다."

그리고 이틀 뒤, 파리 외곽 동부의 한 인쇄소에서 그들은 뜻대로 순교자가 되어 삶을 마감한다.

사악한 카리스마는 불안한 영혼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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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과 유대교, 이슬람교가 함께 샤를리 에브도에게 "샤를리 에브도를 가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샤를리 에브도 표지 그림.
ⓒ 샤를리 에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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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프랑스에 비해 지금의 프랑스는 훨씬 불안하고 암울하다. 실업자는 늘어나고, 정부는 매년 더 단단히 예산을 긴축한다. 지난 7일, <르 쁘앵>(le Point)의 보도에 따르면 탈진 증후군(Burnout Syndrome,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무기력해지며 일상과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증후군) 상태에 이른 프랑스 직장인이 전체의 17%에 이른다고 한다.

이 와중에,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억만장자가 될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얼빠진 인간(엠마누엘 마크롱)이 사회당 정부의 재경부 장관이 되어 판친다. 프랑스에서 부의 재분배를 위한 통로가 이토록 심각하게 차단되었던 시절은 일찍이 없었다. 계층 간의 소득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젊은층의 무력감은 기록적인 수준이다.

종교적 힘의 확산은 사회의 불안에 비례하는 법이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프랑스는 지독히 무신론적인 사회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머리에 부르카를 둘러쓴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경제가 추락하고, 사회불안이 가중될수록, 종교의 힘은 눈에 띄게 확대됐다. 사람들은 점점 더 종교에 머리를 기대게 되었다. 이제 눈을 뜨면 한 명 더 늘어난 부르카, 히잡을 거리에서 만난다. 가톨릭보다 한결 발랄한 개신교의 확산도 두드러진다.

부모도 없고, 이렇다 할 학위도, 기댈 사람도 없는 두 청년에게 이슬람 근본주의는 그들이 빠져들 수 있는 완벽한 마약이었다.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은 미국과 이스라엘, 더 나아가 서방세계 전체에 대한 적개심으로 충전된 불쏘시개들을 필요로 해왔다. 이 두 청년은 완벽한 먹잇감이었다.

그들의 눈빛을 바라보며, 지하드 조직을 이끌어갈 아주 쓸 만한 재목이 될 거라고 부추겨 주던 두목을 위해, 두 청년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꿈도 뿌리도 잃은 프랑스의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이 마약처럼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에 빠져들어 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우리의 형제를 죽인 것은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4명의 교수가 프랑스인들을 상대로 쓴 편지에서 눈물겹게 환기 시키고 있는 대목도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가 프랑스의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버려진 이 아이들을 끔찍한 수렁에 방치했다는 것, 그러므로 프랑스인들은 바로 그 사실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

테러리스트를 양성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은, 표창장을 주고 특강에 초청하는 식으로 '일베'를 양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과 유사하다. 미제국주의자들의 지배에 신음하는 불쌍한 남조선 동포들을 구한다며 인민들의 위대한 희생을 강요하는 북한노동당과도 닮아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대다수의 이슬람교도들이 말하듯, 코란을 배반하고 그것을 이용해 이슬람교에 먹칠을 하는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분열이 필요하고, 공포가 필요하며, 테러가 필요하다. 그것이 자신들이 그 동네에서 패권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프랑스의 이슬람 신도들이 <샤를리 에브도>의 만화에 불쾌감을 느꼈을 수 있다. 때로는 이들의 조롱이 도를 넘어선다 싶을 때도 분명히 있었다. <샤를리 에브도>는 위선과 권위주의를 유머로 분쇄해온 68혁명의 총아였고, 그 악동들이 그려낸 그림들이 분란과 소송과 논쟁을 일으켜 온 것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유태인 교단이 그랬고, 가톨릭 교단, 그리고 정치권력자들이 그들의 펜 끝 앞에서 발끈해왔다. 그러나 그 불쾌함을 테러로 응징할 수 있는 태도는, 테러를 위한 좋은 먹잇감을 찾아온 근본주의자들만이 할 수 있는 짓이다.

재정난으로 폐간되었다가 다시 창간된 1992년 이후 지금까지, <샤를리 에브도>는 15번의 법적분쟁에 휘말렸다. 그중 14번이 가톨릭 근본주의 교회, 1번이 이슬람 교단에 의한 것이었다. 이번 테러로 희생되기 얼마 전, <샤를리 에브도>의 전 대표이자 편집장이었던 샤르브(스테판 샤르보니에)는 이같이 밝힌 바 있다.

<샤를리 에브도>는 위선적 권위를 발가벗기는 자신들의 사명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샤를리 에브도>는 혁명 이후 프랑스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에게 익숙했던 반교권주의(Anticlerical)의 가장 래디컬(급진적)한 실천가였다. 그들에게는 송사가 그들의 생명력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언제나 풍성한 유머와 두터운 휴머니티(인간성)가 함께 있었다. 바로 그 점이 이 짓궂은 악동들을 오랜 세월 프랑스 사람들이 사랑해 왔던 이유였다. 그들이 죽었을 때, 한줌의 광기가 언론의 자유를 살해했다는 명징한 사실을 프랑스 사람들이 아무 설명 없이도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던 이유이다.

프랑스를 전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저 모래바람 가득한 사막의 전사가 프랑스 땅에 잠입하여 그들에게 총을 겨누었던 것이 아니다. 만평을 들여다 보며 자란 프랑스의 아이들이 허물어져 내려가며, 이들에게 물든 광기가 바로 <샤를리 에브도>를 살해한 것이다.

프랑스 정보국이 확보하고 있는 지하드 연계 세력이 프랑스에만 3000여 명에 이른다. 청년들은 무력감과 우울증에 빠져 있다. 이들은 위대한 전사가 되어 그들을 알아주지 않는 이 세계에 총을 난사할 기회를 제공하는 광적인 폭력집단의 사악한 손에 언제든지 사로잡힐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가, 세상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테러범이 되는 것. 그 또한 자신을 구현하는 방법이라 믿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길 잃은 프랑스 공화국의 아이들이 많이 양산되지 않도록 하는 것?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 길이 너무 멀고, 험해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들의 아까운 청춘을, 그 소중한 삶을 허무하고 처참하게 날려버린 두 청년에게 명복을…, 끝없이 산자들의 삶을 삼키고 그것으로 자신들의 생명을 연장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악한 종교들에게는 저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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