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수자 해방운동

‘맑시즘 2012’ 참관기 2: ‘맑시즘,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해방’

by 볼셰비키-레닌주의자 posted Dec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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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 2012’ 참관기 2:

‘맑시즘,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해방’

 

시리아/리비아 강연

같은 시간 다른 강의실에서 ‘시리아, 리비아 그리고 인도주의 개입의 신화’라는 주제의 강연이 있었지만, 7월 26일 목요일 두 번째 강연은 ‘맑시즘,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해방(4시 50분~6시 10분)’을 선택했다.

시리아/리비아 사태는 초미의 관심사이며, 이 문제는 누가 진정한 맑스주의자인지를 묻는 2011-12년판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2011년 4월 23일 ‘리비아 사태: 무지와 맹목, 혼돈에 빠진 ‘사회주의자’들’이라는 글을 발표한 바 있고, 그 글에서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는 리비아 반군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민주주의 혁명세력’이라고 지지하며, 궁극적으로 리비아의 반동으로의 복귀와 제국주의 재식민지화에 기여한 다함께 등을 비판한 바 있다. 거의 대부분의 언론이 제국주의자들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상황에서, 지금 시리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쉽지 않지만, 외신이 전하는 것처럼 단순히 ‘자국민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정부에 민주주의 세력이 맞선 투쟁’으로 일축할 수는 없다.

여성 문제를 선택한 이유

갈등을 겪다가 ‘맑시즘,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해방’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 강연 제목 그대로 여성해방에 대해 맑시즘과 페미니즘이 어떻게 다른지, 진정 여성해방을 위해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특히 페미니즘이 마치 ‘변혁운동’의 한 조류인 것처럼 대접 받는 요즘의 남한 운동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개인적으로, 십여 년 전 IBT의 논문을 읽고, 여성 문제에 대한 시각을 정립할 수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논문의 제목은 이번 강연 제목과 똑같은 ‘맑시즘,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해방’이었다. 당시는 남한 여성운동이 계급적으로 분화되어 있지 않았고(적어도 당시의 내 눈엔), 여성운동이라면 무조건 ‘진보운동’의 일부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몇 년 뒤 2004년 말, 소위 ‘진보운동’을 합네 하던 ‘여성주의자’들 대다수가 ‘진보의 옷’을 입은 채 부르주아 정당들과 손을 잡고 ‘여성억압의 원인을 남성 일반에게 전가하고, 하층 여성을 ‘여성 자매’의 울타리 밖으로 몰아내며, 온갖 범죄의 근원인 자본주의 국가에 도덕적 심판자의 망토를 입히는’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주도하고 지지했다. 그 논문은 그러한 사태에 대해 정당하게 분개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분노를 진전시켜, 사회주의 운동과 부르주아 여성운동(페미니즘)과의 단절을 촉구하는 성매매방지법과 노동계급(2005년 4월)을 썼고, 이후 노동계급의 여성해방운동을 위하여(2007년 6월)라는 글로 발전되었다.

많은 참가자와 잘 조직된 행사

이 강연을 선택한 참가자가 상당히 많았다. 자판기 냉음료를 뽑아들고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냉방이 신통치 않은 어지간히 큰 강의실을 참가자들이 절반 이상 채우고 있었다. 눈짐작으로 50명이 넘는 듯. 대다수가 여성이었지만, 남성도 1/4이 넘는 듯 보였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잘 조직되어 있었다. 강의실 문 안과 밖에서 참가자를 안내하고 주변적인 일들을 통제하는 두 명의 안내자, 강연의 시작을 알리고 청중토론을 단정하게 이끄는 사회자, 정해진 강연시간(40분)-청중토론(20분?)-연사정리발언(20분?)과 그것을 거의 지키는 진행, 청중 토론 시 발언자들에게 주어지는 3분 30초와 시간을 넘기면 꺼지는 마이크, 다함께에 대한 비판적 발언이 있을 때 연사를 도와 반박할 수 있는 중견 회원의 배치 등 세세한 목적의식이 눈에 들어왔다. 능숙하고 효율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이런 점들은 다른 조직들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연사든 청중 발언이든 시간의 엄수 문제.

강연 요지

사회자의 소개 발언 이후, 강연이 시작되었다. 다음은 그 요약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훨씬 열악한 처지에 있다. 각종 통계 자료들은 여성의 억압상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엥겔스의 『가족, 사적소유 및 국가의 기원』은 여성 문제에 대한 연구에 크게 기여한 저작이다. 엥겔스는 “계급사회의 등장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를 낳았다.”라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노동력의 안정적 재생산을 위해 여성을 억압한다. 자본주의는 여성을 해방시킬 의지도 없고, 자본주의 하에서 가능하지도 않다. 누군가가, 영국 의회에서 지금 속도로 남녀평등을 향해 나아간다면 20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달팽이가 만리장성을 완주하는 시간과 같다.

여성의 궁극적 해방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러시아 혁명은 자본주의 체제를 종식시킨 세계 최초의 노동자 혁명이었다. 러시아 혁명은 사적 소유를 철폐했고, 여성 해방에 커다란 성과를 낳았다. 이혼 절차가 간소해졌고,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이 실현되었고, 낙태가 합법화되었다.

1960~70년대 미국 등에서 발전했던 페미니즘은 사회주의 운동 쇠퇴의 반영이었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이론에 입각해 있다. 그리하여 “지배계급인 남성이 여성을 억압한다.”라거나 “남녀관계는 곧 노자관계이다.”와 같은 반동적 입장을 설교하며, 남성우월을 초역사적인 것으로 바라본다. 계급적 구분을 뛰어넘는 자매애를 중요시한다. 계급적 구분을 뛰어넘는다면 인종적 형제애 강조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오바마나 그 부인 미쉘이 하층 흑인이나 하층 여성의 이해에 동조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하층 흑인과 하층 여성의 이해를 침해하며 권리를 탄압한다. 이마트와 신세계를 경영하며 여성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이건희의 딸들도 마찬가지이다.”

청중토론과 발언

발언권을 신청해서 질문과 발언을 했다. (여기 요약 정리하는 발언에 대한 입장은 참관기1에서 밝힌 것과 같다. 즉, 핵심 내용의 변화는 없지만, 실제 발언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다.)

“훌륭한 강의 잘 들었다. 나 역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래서 관련된 글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연사의 강연 내용에 대해 거의 대부분 동의할 수 있다. 여성 억압의 근원은 성별이 아니라, 계급적 장벽 때문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철폐할 때만이 궁극적 해방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연사의 견해에 적극 동의한다.

그러나 강연을 들으면서 잠깐 읽어보았는데, 『마르크스 21』 13호에 실린 연사의 논문 중 첫 번째 소제목으로 쓰인 “여성의 노동자화”라는 표현은 좀 의아하다. 그 소제목은 강연내용과 달리, 모든 여성의 이해가 같다는 것으로 느끼게 할 여지가 있다. 과거 ‘빈곤의 여성화’라는 분리주의적이고 어색한 조어를 연상케 한다.

연사는 재미있는 비유를 들었다. “지금 속도로 영국 의회에서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200년이 걸린다. 그것은 달팽이가 만리장성을 완주하는 시간과 같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이 비유를 지지하면서, 덧붙이고 싶다. 만리장성 완주에 대한 달팽이의 의지를 믿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본가계급에게 남녀평등의 의지가 있다는 것은 결코 믿을 수 없다. 여성억압은 자본주의 계급억압에 기초해 있다. 따라서 단순히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연사는 또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은 후진적인 러시아의 여성해방의 수준을 한 순간에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만들었다.” 그 지적 또한 동의한다. 그러면서 덧붙이고 싶다. 러시아의 여성해방은 레닌이나 트로츠키 등 혁명지도자들이 ‘착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여성억압의 ‘물적 토대’인 자본주의 즉,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철폐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적소유의 철폐는 여성해방으로 나아가기 위한 결정적이며 핵심적인 교두보’이다.

그런데 사적 소유의 철폐와 그로 인한 여성해방의 급신장은 러시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2차 대전 직후 동유럽과 북한 그리고 1949년의 중국, 이후 쿠바 베트남 등에서 기존 제국주의 지배자들의 패배나 게릴라 전쟁 결과 제국주의 하수인 정권이 패배하고 자본가 권력이 붕괴되었을 때, 그 나라들에서도 생산수단의 사적소유가 철폐되었고, 러시아 혁명 때와 비슷한 여성해방의 성과들이 달성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동유럽과 소련이 붕괴되었다. 사적소유가 복귀되었고 자본주의가 부활했다. 그 사건은 모든 인민들에게 특히 여성들에게 재앙이었다. “의식주가 안정적으로 해결되고 무상교육과 무상의료가 제공(유엔 자료)”되던 사회에서 자본주의가 복귀되자, 인구증가율은 –5.8%가 되고, 자살률은 2배로 증가했다. 남성의 평균연령은 63세에서 58세가 되었다. 2003년 당시 남한의 자살률이 OECD내 1위였다는데, 세계를 통틀어 살피면, 러시아가 1위이고 헝가리 폴란드 등 자본주의가 되살아난 지역 나라들이 그 뒤를 따른다. 가정폭력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이 급격히 증가했다. 범죄에 희생되는 여성들이 크게 늘었다. 매춘이 대규모 부활했다. 하층 여성들이 전세계로 팔려 나갔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여성 억압의 근원을 계급적 차이가 아니라 성별에서 찾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체제의 한계를 넘어 여성해방을 진전시키려는 맑스주의자라면, 사적소유의 철폐를 추구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루어낸 그 성과들을 방어해야 한다. 우리가 진정한 여성해방주의자라면, 소련을 포함하여 위에서 언급한 사회들의 성격과 그에 대한 태도 문제가 여성문제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청중토론 이후 연사의 정리발언

대여섯 명이 청중토론에 참여했고, 이후 정리발언을 했다.

“‘맑시즘은 계급환원론이다’라는 오명은 스탈린주의 때문이다. 그들에 의해 혁명의 성과를 빼앗겼다. 혁명의 성과는 오랫동안 유지되지 못했다. 스탈린 집권 이후 많은 것이 후퇴했다. 그런데 사회주의는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전제로 한다. 여성해방 역시 마찬가지이다. 레닌은 그러한 후퇴를 ‘사회주의적’이라고 미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탈린은 그랬다. 스탈린의 집권은 이전과 엄청난 단절을 의미한다. 새로운 종류의 자본주의 국가를 건설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도 일정한 의의가 있고, 우리(다함께)는 그들과 공동 활동과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낙태문제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계급적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낙태가 불법이 되었을 때 모든 여성들이 고통을 겪었던 것은 아니다. 상층 여성들은 어떻게든 돈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낙태로 죽은 여성들은 주로 흑인이나 제3세계 여성들이었다. 미국 페미니즘이 성한 것은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침체 때문이었다. 미국 페미니스트들은 주로 민주당에 의존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한편 민주당은 공화당과 타협했다.

중국, 북한, 쿠바 등을 사회주의라고 말하는데, (“사회주의라고 말하지는 않았고, 노동자국가라고 했다.”라고 하자) 그러면 조금 헷갈린다. 어쨌든 나는 사적소유가 철폐된 사회라고 해서 사회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많은 기업을 국유화한 박정희 정권이 사회주의정권인가?”

몇 가지 쟁점들

1. 스탈린관료집단은 혁명의 성과를 ‘모두’ 훼손했고, 그로 인해 소련은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으며, 여성해방의 성과는 혁명 이전으로 되돌아갔는가?

물론 1924년 레닌 사후 권력 투쟁에서 트로츠키 좌익반대파에 승리하여 스탈린관료집단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소련 사회는 크게 후퇴했다. 그렇지만, 혁명의 성과를 완전히 뒤엎고, “새로운 종류의 자본주의 국가”가 된 것은 아니었다. 철폐된 사적소유가 부활되지 않았고, 사적소유 철폐를 통한 성과는 유지되었다. (사회성격 문제를 ‘전면적으로’ 따지는 것은 오늘의 논점이 아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참고자료 하나만 소개한다. 소부르주아 사회주의와 ‘국가와 혁명’: 국가자본주의론 비판)

여성 문제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났다. 스탈린 관료집단은 여성문제를 크게 훼손했다. 이 후퇴와 그 원인 그리고 그 후퇴에 대한 관료집단의 대응에 대해 트로츠키는 이렇게 지적한다.

“불행하게도 소련 사회는 너무 가난하고 문화수준이 낙후했다. 국가의 실제 자원은 공산당의 계획이나 의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가족은 “철폐”될 수는 없으며 더 좋은 형태로 대체되어야 한다. 여성의 실질적 해방은 “일반화된 궁핍” 하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 이미 80년 전에 마르크스가 정식화한 이 엄격한 진실은 경험에 의해 입증되었을 뿐이다.…

참기 어렵고 모욕적인 가정생활의 어려움이 사회 전체의 노력에 의해서 제거된 진정한 사회주의 가족은 어떤 강제적 통제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자유로운 가정 내에서는 낙태법과 이혼법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매춘굴이나 인간 제물 사원을 생각하는 것만큼 끔찍스러울 것이다. 10월 혁명의 법률들은 이러한 가족을 창조하기 위해 대담한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경제적·문화적 후진성은 잔악한 반동을 초래했다. 테르미도르 반동의 법률은 이제 부르주아 법 모델로 후퇴하고 있다. 그리고 이 후퇴는 “새로운” 가족의 성스러움에 대한 거짓 연설로 위장되어 있다. 이 문제에서도 사회주의 건설의 실패자인 소련 지배층은 위선적 품위로 자신을 위장하고 있다.”–『배반당한 혁명』 제7장 소련의 가족, 청년, 문화

크게 후퇴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혁명 이전으로 즉, 자본주의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1917년 혁명의 성과는 1991년 붕괴 직전까지 뚜렷이 남아있었다.

“1990년대 이전에 중동부 유럽 그리고 구소련(지금의 독립국가연합) 국가들은 높은 수준의 기본적 사회보장을 인민에게 제공하여 주목을 받았다.…완전 평생 고용이 보장되었다. 현금 수입은 적었지만 안정적이고 변동이 없었다. 수많은 기본 소비재와 서비스는 국가 보조금을 받아 공급이 규칙적으로 유지되었다. 의식주 문제는 안정적으로 해결되었다. 교육과 의료는 무상으로 보장되었다. 퇴직자들에게 연금이 보장되었고 많은 종류의 사회보장 프로그램으로 이들은 정기적인 혜택을 누렸다.”–[유엔개발프로그램]의 1999년 연구보고서–IBT, ‘러시아 자본주의 생지옥’에서 재인용

토니 클리프 등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1991년에 ‘국가자본주의가 사적자본주의로 바뀐 게걸음이 있었을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 반혁명이었고 재앙이었다.

박노자는 인민에게 닥친 그 재앙을 이렇게 증언한다.

“자본화된 러시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분노밖에 없습니다. 과거 소련에선 학교 옆에 유도 도장, 그 옆에 역도 도장, 그 옆에 도서관이 있는 식으로 공공시설이 많았어요. 독서문화가 활발했고, 가난해도 서로 비슷한 처지여서 행복했죠. 그런데 지금 러시아는 지옥입니다. 사람 살 곳이 못됩니다. 제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연금으로 생활합니다. 연금이라고 해봐야 ‘고기 한 점 살 수 없는’ 수준이고, 언제 수돗물이 끊길지 모르는 슬램 아파트에서 연명하는 신세예요. 이런 나라를 보고 정말이지 실탄이라도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경향신문, 2010년 11월 15일

자신들의 잘못된 도그마를 위해, 버젓이 살아있는 이런 구체적 현실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2. 중국, 북한, 베트남 등에선 여성해방에 진전이 있었는가?

국가자본주의론은 ‘사적소유가 철폐된 자본주의’ ‘상속할 수 없는 사유재산’ ‘개인적으로 처분할 수 없는 사유재산을 가진 자본가계급’ 등 비과학적 주장을 늘어놓게 한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사유재산, 계급, 자본가 등 맑스주의 핵심 개념들을 수정하고 왜곡한다. 이 소위 ‘이론’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성적 인식을 저지하고 마비시킨다.

여성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국가자본주의론을 고수하기 위해서, 북한 중국 쿠바 베트남 등에서 일어난 사건은 ‘아무것도 아니어야’ 한다. 실증적이던 연구자는 국가자본주의론이라는 도그마 앞에 서자 갑자기 구체적인 현실을 외면하면서 도그마의 컴컴한 그림자 뒤로 숨어버린다. “사적 소유의 철폐가 그 나라들에 있었고, 그로 인해 여성 해방에 커다란 진전이 있었다.”라는 객관적 사실에 대해, ‘그럴 리 없다.’며 눈과 귀를 가리고 막무가내로 도리질을 한다.

중국과 관련해서만, 몇 개의 글을 소개한다. ‘1949년 중국 혁명-여성해방-시장 개혁’ 이 세 가지의 상관관계를 엿볼 수 있는 글들이다. ‘중국, 남녀평등’으로 구글링하면 첫 번째나 두 번째 페이지에 뜨는 글들이다.

“1949년 마오쩌뚱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이 집권한 후, ‘하늘을 떠받치는 절반 인구 여성’의 지위향상을 사회주의 건설의 주요 정책으로 설정하고부터 중국여성의 지위는 획기적 발전을 이루었다.…양성평등의 간판 아래 시행된 여성정책이 중국여성의 지위를 크게 향상시켰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성평등을 위해서는 제도개선과 더불어 사회구성원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지만 현실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중국의 경우, 남성의 61.6%, 여성의 54.8%가 전통 성별분업을 당연시 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주목할 것은 이 수치가 2000년도에 비해 각각 7.7%와 4.4%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계획경제 시기에 양성평등 정책의 보호 아래 고용과 임금에서 실현되던 뿌리 없는 형식적 평등마저 자유경쟁 체제에서 후퇴하고, 이에 상응하여 사람들의 의식도 전통으로 회귀한다는 것이다.”–중국여성 10명 중 9명, “남성도 당연히 가사노동 해야”, 페미니스트 웹진 이프, 이영자, (강조 추가, 이후 마찬가지)

이 글에 따르면, 1949년 중국공산당의 집권 이후 “중국여성의 지위는 획기적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낮은 생산성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데에 실패하자 ‘개혁 개방’ 정책으로 돌아섰고 체제 내 자본주의적 요소의 성장은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자, 위 글의 필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계획경제 시기에 양성평등 정책의 보호 아래 고용과 임금에서 실현되던 뿌리 없는 형식적 평등마저 자유경쟁 체제에서 후퇴하고, 이에 상응하여 사람들의 의식도 전통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여성신문도 1949년 혁명 이후의 중국과 여성해방의 진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국 사람들은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라서 여러 가지로 안 좋다고 말하지만 남녀평등에 있어서는 오히려 중국이 한국보다 앞선다.…사회주의화 후 중국에서는 ‘여자는 하늘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말이 일반화되어 한국보다 여성의 권리를 더 인정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양성평등, 한국이 중국에 뒤져’, 박혜영, 여성신문, 2010년 8월 20일

오마이뉴스의 2001년 3월 8일 기사 ‘3.8세계여성의 날을 계기로 보는 중국여성들의 현황: 중국여성들은 새로운 ‘평등과 자유’를 원한다(박현숙)’를 통해서도 비슷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그 글은 여성해방과 관련하여, 1949년 이후 중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949년 사회주의 신중국 건립 이후, 새로운 ‘혼인법’ 반포를 시점으로 해서 이들 중국여성들은 구시대에서 받아왔던 온갖 억압과 불평등에서 벗어나 사랑과 결혼의 자유를 비롯해서 여성들의 자주적인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법적으로 보장된 형식적인 남녀평등의 논리에 비추어보더라도 이들 중국여성들이 누리고 있는 평등의 정도는 세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전혀 손색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개혁 개방 정책’은 지난 30여 년 간 ‘사회주의적’ 소유를 갉아 먹어 “1980년대에는 국영기업이 중국의 비(非)농업생산을 거의 전부 차지했지만 지금은 그 비중이 30%로 하락했다(붕괴의 벼랑으로 향하는 중국, IBT).” 그 반대급부로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급증하였다. 그러자 남녀평등은 크게 후퇴했다. 그 변화의 일단을 위 글은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90년대 이후 중국에서 가정폭력이 눈에 띄게 빠르게 증가하고…이것 역시 무슨 ‘개혁개방의 부작용’이라고 해석해야 할까?

…위에서 든 가정폭력의 문제 외에도, 개혁개방 이후 증가하고 있는 여성의 ‘성상품화’ 경향, …다이어트 열풍 등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무언의 사회적 압력들은 현재 중국사회의 여성상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더군다나 최근 몇 년 사이 국유기업에 대한 개혁이 강화되고 시장화 경제정책이 추진되면서 소위 샤강(下岡, 강제해직) 대상자들의 1순위가 바로 40세 이상의 여성들이 되었다고 하니 이들 중국여성들도 더 이상 법적인 평등권 보장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같은 글

이러한 내용들은 ‘여성 해방은 자본주의적 소유양식이 철폐될 때 급신장된다. 반면, 자본주의적 소유가 부활되거나 증가될 경우 크게 후퇴한다.’라는 명제가 올바르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 주고 있다.

결과로서의 남성우월주의를 그 원인인 생산관계와 동렬의 것으로 취급하는 페미니즘의 반동성도 문제이지만, 국가자본주의론으로 인해 기껏 물려받은 맑스주의의 유산을 가지고 절반만 옳은 소리를 하는 것도 역시 안타까운 것이다.

2012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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