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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국가(소련/중국/북한 등)의 사회성격
2022.04.04 08:28

중국의 사회성격과 노동계급

조회 수 1324 댓글 10

중국의 사회성격과 노동계급

 

중국 문제는, 자본주의 반혁명 이전 소련이 그러했듯, 이 시대 혁명의 첫 번째 주제이다. 세계 최대 인구가 거주하는 거대 국가 중국은 미국 중심 제국주의 진영의 핵심 공격 대상이다. 그런 이유로 세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갈등에서 미국과 더불어 중국은 거의 항상 연관된 핵심 참여자이다. 이런 점에서 혁명으로 나아가는 세계 노동계급은 중국의 사회성격과 그 정치적 동기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 문제를 중심으로 혁명과 반혁명의 바리케이드가 갈린다.

우리는 중국에 관한 입장을 기회 있을 때마다 발표했다. 기존에 발표된 다음 문서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중국 사회성격에 대한 메모: 중국은 이미 자본주의가 되었는가?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에 대한 입장

중국은 자본주의가 아니며, 제국주의도 아니다

맑시즘 2015 참관기 1: ‘중국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소련 중국 북한 등 노동자국가들의 사회성격 논쟁

맑시즘 2012’ 참관기 3: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귀환동아시아는 어디로?’

(IBT) 붕괴의 벼랑으로 향하는 중국(26, 2004)

(IBT) 중국은 어디로? : 정치혁명과 반혁명의 갈림길(31, 2009)

 

이번 글은 중국 문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2022년 시점에서 총괄하는 의미가 있다. 이 문서는 세계 공산주의 운동 지도부가 견지해야 할 핵심 강령에 대한 제안으로 제출한다.

 

<차례>
Ⅰ. 1949년 혁명에서 1978년 '개혁 · 개방’까지

노동자국가 중국의 탄생/ '신민주주의론': 중국식 계급협조/ 관료집단의 계급협조주의와 '일국사회주의론’/ 스탈린의 중국 견제: 중-소 분쟁의 씨앗/ ‘계급 공존'에 대한 환상/ 미제와 국민당의 정치의식/ 연속혁명의 실현/ 혁명의 성과/ 생산력 증진의 세 가지 길/ 1) 생산력 증진의 첫 번째 길: 혁명을 성취한 선진국의 도움/ 생산력과 연속혁명/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후속 혁명' 불발/ 중-소 분쟁과 경제 협력 파탄/ 중-소 분쟁에 대한 마오의 평가/ 고립된 중국/ 2) 생산력 증진의 두 번째 길: '대약진 운동’/ 대재앙, 마오의 실각, 우선회/ 류사오치와 덩샤오핑 지도부의 정책/ 마오쩌둥 분파의 권토중래(捲土重來): ‘문화대혁명’/ 신격화된 권위/ 공황 상태의 중국: 문화대혁명의 배경/ '삼국'관계의 변화/ 미제의 소련봉쇄를 돕는 중국/ 마오의 사망과 '실용주의 분파'의 집권/ '개혁 · 개방’의 길


Ⅱ. ‘개혁 · 개방' 결과로서 중국사회의 변화

1. 생산력의 괄목할 성장

1) 국내총생산(GDP): 한국 · 인도와의 비교/ 경제위기와 중국/ 2008년 대공황/ 노동계급에 떠넘기기/ 중국의 위기 대응/ 1인당 GDP

2) ‘세계 500대 기업’:

3) 달러와 금 보유량: 중국의 달러 보유량/ 패권 통화 달러의 갑질/ 중국의 금 보유량

4) 절대빈곤 감소


2. 중국 내 친자본주의 세력의 위험한 성장

노동자국가의 '자본주의적 양보’/ ‘자본주의적 양보'에 대한 레닌과 트로츠키의 분석/ 중국의 ‘자본주의적 양보’/ 중국의 '억만장자’

1) 국유기업 ‘민영화’: ‘민영화’ 두 가지 방식과 단계/ 소련과 중국의 '사유화’/ 관료적 방식과 공유자산 약탈/ 벼락부자의 시대/ 사유화 허용의 후과(後果)/ ‘국진민퇴(國进民退)’/ 엎질러진 '사유화’

2) 첨단기술과 IT 등 신생 산업의 '억만장자들’: 중국의 '억만장자’들

3) 관료집단 내 친자본주의 분파: 특권과 부정부패/ 특권의 상속/ 관료집단 내 친자본주의 분파

4) 부동산 사용권 매매 허용과 대중적 사유화 지지층: 중국 토지제도와 그 변화/ 토지·주택 사용권 매매와 연장의 귀결점/ 부동산 가격의 급등/ 사적소유 지지층의 양산/

5) 중국에 촉수를 뻗은 제국주의 금융자본: 중국공산당과 '월가’/ 제국주의 자본의 중국 투자/ 세계은행과 중국 국무원의 공동보고서/ 관료집단의 이중성과 시진핑 정부


3. 중국의 소유관계: 여전히 지배적인 국가소유 체제


중국과 좌익

중국과 세계 노동계급의 임무

 

 

Ⅰ. 1949년 혁명에서 1978년 '개혁 · 개방'까지

* * *

노동자국가 중국의 탄생

1949101, 미제국주의가 지원한 자본주의 구심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한 중국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했다. 이렇게 세계 인구 약 1/4이 거주하는 광대한 지역에 사적소유를 철폐한 또 하나의 노동자국가가 탄생하였다.

 

‘신민주주의론': 중국식 계급협조

격렬한 혁명적 분출이 있던 1925~27년 시기, 국민당과의 합당이라는 재앙적 계급협조주의 정책으로 중국공산당은 괴멸적 타격을 입었고, 도시 지역을 잃고 변방으로 쫓겼다. 그 이후로 중국공산당은 도시지역 노동계급의 조직적 기반을 거의 상실하였다. 중국공산당이 기사회생한 정치적 배경은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적 침략과 도탄에 빠진 빈농들의 지원이었다. 항일 민족해방투쟁으로 결집하여 승리로 이끈 홍군(紅軍)은 대부분 농민 자제들로 충원되었다.

마오와 중국공산당이 사적소유를 철폐하는 사회주의 혁명을 구상하지는 않았다. 공산당과 국민당의 반제 공동전선을 그대로 이어가서,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이후 노동자와 자본가계급의 공동정부, ‘공산당과 국민당의 공동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 몽상적이고 재앙적인 구상은 <신민주주의론>으로 불렸다.

지금은 아직 사회주의를 실시할 때가 아니다. 지금 중국혁명의 임무는 반제, 반봉건이며 이 임무가 완수되기 이전에는 사회주의를 논의할 여지가 없다. 중국혁명은 두 단계를 거치지 않을 수 없는데, 첫걸음은 신민주주의, 두 번째 단계는 사회주의이다.

중국의 민족자산계급은 식민지, 반식민지적 국가의 자산계급이며 제국주의의 억압을 받고 있기 때문에혁명성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 창건하려는 중화민주공화국은 오직 무산계급 영도 하에서의 반제, 반봉건적인 연합독재 민주공화국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즉 신민주주의 공화국이며 또한 진정한 혁명적인 3대 정책을 실시하는 신삼민주의 공화국이다.”마오쩌둥 연설, 194019, 모택동선집 2범우사

멘셰비키의 러시아혁명 구상이었던 계급협조주의 단계론과 똑닮은 이 신민주주의론은 마오의 독창적 구상이 아니었다. 러시아 10월 혁명의 성과와 퇴보의 응고물 스탈린 관료집단의 이른바 일국사회주의론의 중국식 표현이었다.

오성홍기와 중국:   중국 공산당, 작은 별들은 각각 노동자, 농민, 소자산계급, 민족자산계급


관료집단의 계급협조주의와 '일국사회주의론’

러시아 10월 혁명으로 노동계급은 지배계급이 되었지만 후속 혁명의 불발로 그 기세가 이어가지 못하고 주춤했다. 바로 그 지점에 관료집단이 자리잡았다. 모스크바의 관료집단은 세계 혁명의 이해와 부분적으로 겹치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관료집단은 10월 혁명에 한편으로 의존하며 방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배신하며 반혁명의 토대를 닦는다. ‘일국사회주의론은 바로 이러한 관료집단의 단기적 이해와 모순의 응고물이다. 일국의 혁명으로 부상(浮上)하여 출세한 관료집단의 이해에 세계 각 지역 노동계급 전체의 역사적이고 장기적 전망을 굴종시키는 이론이다.

각 지역 노동계급의 혁명적 전진이야말로 소련을 방어하는 가장 근본적 수단이다. 10월 혁명을 타고 앉은 크렘린의 관료집단은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근시안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다. ‘언 발에 오줌누기식 대응으로 일관했다. 소련 국경을 당장 위협하는 독일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그와 경쟁하는 미국 영국 프랑스 제국주의에 아부하는 정책을 취했다. 1943년엔 세계 노동계급의 공산주의 지도부 코민테른 해체를 선물했다. 각 나라 노동인민의 혁명적 진출을 주저앉히고 그 나라 지배계급과 화해하는 계급협조주의 정책을 강요했다.

결국 계급협조주의는 몰락 직전의 자본주의 세력을 지탱하고 회복을 도왔다. 회복한 그들은 이내 반격하여 혁명적으로 진출한 그 나라 노동계급을 궤멸시켰다. 이러한 역관계 속에서 결국 동유럽과 소련 노동자국가는 자본주의 반혁명으로 내파되었다.

 

스탈린의 중국 견제: 중-소 분쟁의 씨앗

모스크바의 스탈린 지도부는 차라리 중국 혁명을 부담스러워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중국혁명이 2차 대전에서 막강한 힘을 보여준 미제국주의의 분노를 자칫 자극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혁명 이후 중국이, 유고슬라비아 티토 정부처럼, 모스크바의 스탈린 지도부에 순종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일국사회주의론에 빠진 관료적 걱정 때문이었다.

현상유지를 옹호하는 스탈린 지도부는 국민당과의 공동정부 구성을 끝끝내 고집했다. 국민당에게 결정타가 될 최종적 진격을 가로막았다. 홍군의 장강 도하를 만류했다. 이는 일국사회주의론이라는 관료집단의 사고체계가 얼마나 재앙적인지와 더불어 중-소 분쟁의 단초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사건이었다.

관련된 대화 몇 개를 소개한다.

소련 동부지역에 거대한 공산국가의 출현은 우리에게 일련의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방대한 영토와 인구를 가진 중국은 공산당이 원한다 할지라도 소화’(통일)하기 어렵다. 미국인들이 중국에 계속 물자와 돈을 쏟아 붓도록 내버려두자이는 그들을 더욱 약하게 만들 뿐이다.”주중 소련대사 니콜라이 로쉰(Nikolai Roschin)과 인도사절단 차크라바티의 대화, 194918

스탈린은 중국에 대하여 일련의 잘못을 저질렀다.... 해방전쟁 시기에는 우리에게 혁명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만일 내전이 발발하면 중화민족은 멸망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내전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우리의 승리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승리 후에는 우리의 승리를 티토식 승리라고 의심했다.”마오쩌둥, 중공정치국 확대회의 발언, 1956425, 김동길 역사학보 202, 2009219

(장강) 도하 직전에 모스크바로부터 아나스타스 미코얀이 시바이포에 도착하였다. 그는 스탈린을 대표하여 중국혁명의 형세와 우리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왔다. 당시 군사적, 정치적 상황은 우리에게 매우 유리하였고 우리는 장강을 넘어 전 중국의 해방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은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에게 내전 중지를 요구하고 실질적인 남북조 상황을 만들어 두 개의 중국을 만들려고 기도하였다.”저우언라이, 주소련 중국대사 부임하는 류샤오(劉曉)를 접견하며, 1955, 같은 논문 219~220

중국 인민해방군이 남하한 후 영국과 미국의 군대가 인민해방군 후방에 상륙할 위험성이 현저히 높아졌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성급히 남하해서는 안 된다.”스탈린의 서한, 1949423, 같은 논문 240

 

‘계급 공존'에 대한 환상

이처럼 모스크바의 관료집단은 자본과 노동두 계급 연정을 중국공산당에 지시했고, 마오가 이끄는 중국공산당은 이를 신민주주의론으로 체화했다. 스탈린과 마오의 이 노동자본의 연립정부구상은 비()마르크스주의적 몽상이었다. 공산당과 국민당으로 결집된 두 계급이 일시적이고 우연적으로 이루고 있던 균형이 지속되리라는 비과학적 환상에 기초한 구상이었다.

역사 속에서 적대적 두 계급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는 이중 권력이라는 불안정한 상황은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지배계급이 되고자 하는 두 적대 계급의 공존은, 마치 같은 극의 자석이 서로를 미는 것처럼, 불안정한 정세를 조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중 권력 정세는 매우 일시적으로만 나타난다. 안정을 찾기 위해 사회는 요동친다. 그러다가, 자본가계급 또는 노동계급 중 하나가 다른 계급을 폭력적으로 제압하며 이중 권력 정세는 종료된다.

191710월 노동자혁명 이전까지 약 8개월 동안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케렌스키가 7월 볼셰비키 지도자를 가두고 모든 활동을 불법화한 것이나, 8월 말 코르닐로프의 쿠데타는 자본가 계급이 주도하는 안정화 시도였다. 볼셰비키는 10월 봉기를 통해 노동계급이 지배하는 사회 안정을 이루었다.

일시성과 우연성 그리고 불시에 닥칠 폭력적 격돌의 필연성은 혁명적 시기 나타나는 이중 권력 정세의 본질이다. 이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연적 균형이 지속될지 모른다는 환상은 계급협조를 낳고 끔찍한 재앙으로 귀결된다. 근현대 역사 속에서 그 재앙의 피해자는 대부분 계급적 각성이 늦은 피착취계급쪽이었다. 1937년 스페인, 1965년 인도네시아, 1973년 칠레는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미제와 국민당의 정치의식

미 제국주의와 국민당 자본가계급은 몰계급적이지 않았다. 중국 노동인민의 깊은 환멸과 적대에 시달릴지언정 그들의 계급본능은 투철했다. 중국과 세계 노동계급에 매우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몽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두 계급 연정을 거부했다.

미 제국주의는 광대한 중국 지역이 자칫 노동자국가 지역으로 넘어갈 불안을 용납할 수 없었고, 국민당은 공산당을 완전히 궤멸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항일 전쟁 시기나 국공내전 시기 군사적으로 불리할 때에만, 잠시 시간을 벌 요량으로 공동전선(‘국공합작’)이나 평화협정 등에 응하는 척했지만, 상황이 유리해지면 기존 약속을 번번이 저버리며 배신했다. 그때마다 방심하고 있던 공산당군을 기습하여 깊은 상처를 입혔다.

 

연속혁명의 실현

미제와 국민당군은 결국 정세를 사생결단의 지경으로 몰아갔고 그 판가름의 내전에서 패배해 대만으로 도주했다. 이는 현지 인민의 이해에 철저히 반하는 제국주의의 패배, 부패한 현지 하수인 정권의 패배였다. 반면에, 노동인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통해 초기의 군사적 불리를 극복한 공산당의 최종 승리였다.

이것이 두 계급 공동정부를 추구한 코민테른과 중국공산당의 의도와 달리, 사적 소유가 철폐된 기초 위에 노동자국가가 수립된 역사적 배경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형태로 수립된 노동자국가를 기형적 노동자국가라고 부른다. 이로써 중국엔, 1917년 혁명으로 수립된 노동자국가 소련의 영향력 아래, 동유럽 북조선에 이어 기형적노동자국가가 탄생하였다. 수많은 희생으로 이루어낸 세계 노동인민의 빛나는 승리였다.

또한 중국 혁명은 일국의 혁명이 일국의 경계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사적 성숙과 국제적 역관계에 따라 그 성격이 형성된다는 것을 또 다시 보여주었다. 자본주의 미성숙 지역의 반제국주의 해방투쟁으로 성장했지만, 1917년 혁명 성과와 결합하면서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갔다. 소련, 동유럽, 북조선에 이어 연속혁명의 또 하나의 역사적 실천 사례가 되었다.

 

혁명의 성과

오랫동안 아시아의 병자로 모욕당해 온 중국이었다. 사적 소유를 철폐하는 것만으로도 혁명은 중국의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공업 총생산이 38, 중공업생산이 90배 증가했다. 1952~1977년 사이 연평균 11.3%씩 증가한 공업생산은 근대 세계 역사에서 비슷한 시기의 다른 어떤 나라에서 이룩한 것보다도 훨씬 빠른 공업화 속도였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면, 중국은 이미 제트기, 중형 트랙터, 근대적인 원양어선, 핵무기와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제작했고, 1970년엔 인공위성을 쏘아올렸다.

혁명 이전엔 인구의 대다수가 문맹이었지만 혁명 이후 절대다수가 교육혜택을 받았다. 종합적인 보건의료제도가 도입되었다. 평균수명이 거의 두 배로 늘어 1949년 이전 35세에서 1970년대 중반 65세가 되었다.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모리스 마이스너)

혁명 이전 전족여아살해’, ‘매매혼’, ‘축첩등으로 억압당하던 중국 여성이었다. 혁명으로 중국 여성의 지위는 급신장하였다. 낮은 생산력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생산수단과 가사노동 사회화 그리고 여성의 사회참여의 결과였다.

“2010년대 중반, 한 사회학자가 1950년대생 중국여성에게 마오쩌둥 시대로 돌아가고 싶으냐는 질문을 하였다. ‘가난이 싫어서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답한 뒤 여성은 묻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27년생인 그녀의 어머니는 공산당에게 감사해야 돼. 해방이 되지 않았더라면 네 아버지는 분명 첩을 여럿 들였을 거야.”라고 늘상 이야기하면서 문맹 교육반에 열심히 나가는 며느리가 못 마땅해서 대문을 잠가버린 시어머니 얘기를 하고는 공산당이 옳아. 엄마는 예전엔 글을 몰랐지만 해방 후 문맹교육 덕분에 지금은 책도 신문도 읽을 수 있단다.”라고 하였다.”―『현대 중국 여성해방 100년의 변천, 그 독법김미란

한국 사람들은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라서 여러 가지로 안 좋다고 말하지만 남녀평등에 있어서는 오히려 중국이 한국보다 앞선다.사회주의화 후 중국에서는 여자는 하늘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말이 일반화되어 한국보다 여성의 권리를 더 인정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양성평등, 한국이 중국에 뒤져, 박혜영, 여성신문, 2010820

“1949년 사회주의 신중국 건립 이후, 새로운 혼인법반포를 시점으로 해서 이들 중국 여성들은 구시대에서 받아왔던 온갖 억압과 불평등에서 벗어나 사랑과 결혼의 자유를 비롯해서 여성들의 자주적인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법적으로 보장된 형식적인 남녀평등의 논리에 비추어보더라도 이들 중국 여성들이 누리고 있는 평등의 정도는 세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전혀 손색이 없는 듯하다.”―「‘3.8세계여성의 날을 계기로 보는 중국 여성들의 현황, 오마이뉴스, 200138

 

생산력 증진의 세 가지 길

() 자본주의적 생산력을 가진 후진국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이 그 혁명 성과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생산력의 증진이 사활적이다. ‘쌀밥에 고깃국이라는 상징적 표현처럼, 안정적인 생활조건이 보장되어야 자신이 속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유지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