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과 혁명정당

불철저한 노동조합지도부에 대한 단상

by 볼셰비키 posted Oct 2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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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삶의 여건을 계속 하락시켜 자신들의 이득을 방어하고 확대하려는 자본가들의 행동은 불가피합니다. 노동자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고 기존의 삶의 조건을 방어하고 나아가 개선하려고 하기 때문에 저항합니다. 이러한 두 가지 의지는 서로 상반되고 그리하여 파업을 낳습니다. 파업은 상반된 의지의 충돌입니다.


노동자의 객관적 이해를 온전히 이해하고 그것을 온전히 실현시키려고 하는 혁명적 지도부와 달리, 객관적 이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며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 온전한 실현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심지어 방해하는 노동 지도부를 보통 노동관료라고 칭합니다.


그 노동관료는 해당 노동자들의 저항의지라는 압력을 받기 때문에 투쟁에 나서지만, 자본가들의 압력을 결사적으로 돌파할 의지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계급 적대와 해당 투쟁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본가의 압력에 굴복한 결과입니다. 관료 개인의 입신출세를 향한 열망, 명예욕 등이 그러한 굴복을 더 부추깁니다.


관료는 노동자들의 압력과 자본가들의 압력 사이에 끼어 서로의 압력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전동벨트입니다. 전자의 경우 투쟁적으로 보이지만, 후자의 경우 배신자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하여 파업은 결의되고 시작되지만, 조금 진행되면서 자본가들의 압력이 본격화되면 관료들은 곧 사기를 잃고 꼬리를 감추며 정리할 기회를 찾기 시작합니다. 민주당 등 자본가 정당에 기대어 국회에서 해결해 달라는 청원은 파업 종결의 그럴듯한 명분이었습니다. 예나 이제나 자본가 정치에 대한 의존은 노동계급 해방을 막아서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입니다. 이 장애물은 노동운동 내 친자본주의 하수인들의 도움을 통해 작동합니다.


그 동안 이렇게 파업이 종결된 사례는 너무 많을 테지만, 2013년 철도파업과 2015년 연금개악에 반대한 공무원노조의 투쟁은 최근의 전형일 겁니다. 두 파업 또는 투쟁은 상당한 열기로 시작되었고 지속되었습니다. 특히 전자는 당시 ‘안녕하십니까 운동’과 결합되어 파업 날짜가 길어질수록 오히려 상승되는 국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부는 전망을 잃고 더 강력한 투쟁을 벌일 의지를 꺾고 투항했습니다. 20일이 넘게 지속된 투쟁으로 인한 아무런 성과도 없이, 게다가 파업을 빌미로 가해진 징계와 벌금 등에 대한 어떤 양보조치도 얻어내지 못한 채, 철도의 미래를 국회에 맡긴다고 백지 합의해 준 2013년의 12월 30일의 합의서는 가장 치욕적 문서 중 하나로 노동운동 역사에 기록될 겁니다.


만약 이번 투쟁이 패배로 끝난다면 그것은 성과연봉제 실시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20만이 참여할 정도로 저항이 거셈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는 눈에 띄는 실익이 없어 보이는 듯한 성과연봉제를 이 정부가 기어코 성사시키려는 까닭은 해당 공공기관들을 사유화(민영화)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인민 전체의 삶을 일거에 하락시킬 공공기관 사유화를 단번에 진행할 경우 너무도 저항이 클 것이기 때문에 성과연봉제로 한 번 김을 빼고 가려는 것입니다. 예측하다시피,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사업장 내 각종 이간질이 난무하여 노동자의 사기를 하락시키고, 불신을 만연시키고 노동조합을 약화시킬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해당기관 사유화의 일차 고발자이자 저지선인 노동조합이 무력화되겠죠.


지난 여름 우리는 전기요금 때문에 심장을 졸였습니다. 앞으로 공공기관이 차례로 사유화되면, 가스 요금, 지하철요금, 도로 요금, 병원비, 철도 비용, 공항 이용비 등 역시 상당히 오를 겁니다. 그래야 그 기관들에 투자한(할) 국내외 금융자본가들의 배를 두둑히 불릴 수 있을 테니까요.


이미 충분히 지옥인데, 불쌍한 남한 노동인민은 당분간 더 심한 지옥 맛을 보게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