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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의 아프가니스탄 패전과 노동계급의 임무

by 볼셰비키 posted Sep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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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의 아프가니스탄 패전과

노동계급의 임무

 

아프간 전쟁에서 미제의 패전을 환영한다!/ 제국주의 대세적 불리 국면의 시작/ 탈레반 세력의 반동성/ 더 반동적이고 야만적인 제국주의/ 반제국주의 저항과 탈레반/ 1978년 인민민주당(PDPA) 정권 수립/ 미 제국주의의 ‘비밀작전’과 소련의 개입/ PDPA와 소련의 여성해방과 탈레반/ 제국주의의 위선적 동조자들/ 2001년 미제의 침공과 ‘반제국주의’ 탈레반/ 탈레반의 앞길/ 레닌과 트로츠키의 가르침/ 아프간과 세계 노동계급의 임무

 

아프간 전쟁에서 미제의 패전을 환영한다!

815일 카불이 함락되면서, 20년 동안의 아프간 전쟁은 제국주의 진영의 패배로 끝났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파이브 아이즈라고 불리는 영미 제국주의 동맹 등 내로라하는 포식자들이 군침을 흘리며 나선 전쟁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전비를 쏟아부었고, 무인전투기 등 최첨단 장비를 대거 동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변치 않은 장비로 무장한 토착 전투부대를 제압하지 못하고 패배했다.

이 뜻밖의 결말은 세계 정세에 큰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우선, 자본주의 세계 체제를 지탱하는 제국주의 진영은 이 어이없는 패전으로 자신감을 크게 잃었다. 이런 전쟁도 이기지 못한다면 앞으로 식민 지역의 초과이윤 수취는 결코 수월할 수 없을 것이다. 제국주의 무력에 크게 의존하는 각국의 식민지 괴뢰 정권들에게도 두려움이 엄습했다. 위기가 닥치자 제 안전만 챙겨 도망치는 모습을 본 식민지 하수인들은 제국주의 상전에 대한 믿음을 크게 잃었다. 둘 사이의 불신은 미래에 필연적으로 닥칠 위기의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될 것이다. 반면에 제국주의 초과착취와 초과억압에 신음하는 식민지 노동인민에게 제국주의의 이번 패배는 의미심장한 각성제가 되고 있다.


제국주의 대세적 불리 국면의 시작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 이후 제국주의 진영은 유례없는 호시기를 누렸다. 과거 자본주의에서 이탈했던 국가들이 다시 자본주의화되면서 초과이윤 수취 지역이 대거 확대되었다. 제국주의 사령부 나토(NATO)는 그 나라들에 고분고분한 하수인 정권을 속속 들어 앉혔다. 그러나 호시절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요즘 들어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지난 10년 동안 제국주의 초과착취의 정치적 인프라 구축 작업인 친제국주의 정권교체 작업은 계속 죽을 쒀왔다.

역시 20년 가까이 미군이 점령하고 있음에도 이라크의 하수인 정권은 계속 불안하다. 2011년 리비아에서 현지 하수인을 매수하여 내전을 일으키고 나토의 직접 폭격을 통해 민족주의 좌파정권인 카다피를 끌어내렸다. 하지만 혼란을 아직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방식을 동원한 시리아는 상황이 더 어렵다. 정권교체 대상인 아사드를 끌어내리지도 못했고, 러시아 그리고 이란의 지원으로 거의 패전 위기에 몰려있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지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집권 이후부터 줄곧 고분고분하지 않다. 경제봉쇄로 나라를 흔들고 2019년 친미 쿠데타를 또 다시 일으켰지만 요지부동이다. 수십 년 동안 침략 위협에 시달리는 북조선은 핵무기를 개발했다. 그것을 다른 침략대상들이 따라배우면 제국주의로서는 큰일이다. 그 핵무기를 내려놓게 하기 위해 2017년엔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으르대 보았다. 2018년에는 평화협정을 미끼로 달래도 보았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1979년 이후 미 제국주의에게 이란은 눈엣가시이다. 20201월 이란 최고 군지휘관을 암살하고, 항공모함 등 전략 자산을 총동원하여 협박도 하였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2019년 볼리비아에서 친미 쿠데타를 일으켰던 아녜스는 올 3월 도리어 감옥에 갇혔다.

이런 상황에서 미제의 이번 패전은, 제국주의 호시절이 끝나고 세계 노동인민의 대세적 유리, 제국주의의 대세적 불리국면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제국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 붕괴는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제국주의 초과착취는 전세계에서 더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제국주의가 뭔가 이루려면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도 자꾸 마가 낄 것이다. 지배계급 내부 분열은 더욱 노골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식민지 하수인 정권들은 더욱 큰 폭으로 동요할 것이다.


탈레반 세력의 반동성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승리한 탈레반은 반노동인민, 반여성, 반공주의 정치세력이다. 이들은 1978년 들어선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PDPA) 정권과 그 정권에 대한 소련의 지원을 교란하기 위해 미제가 훈련한 반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달러에 매수된 이 자들은 제국주의 편에 서서 사회진보 파괴와 동족 학살에 나섰다. 반민족적이고 부패한 세력이다.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이나 중동의 IS 세력과 유사하다.

1970~80년대에 아프가니스탄 인민은, 특히 도시 지역에서, 상당한 개혁조치를 경험했다. 특히 여성해방과 관련해서는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1992, 미제가 지원하는 무자헤딘에 의한 PDPA 정권의 붕괴로 그 조치들은 전부 물거품이 되었다. 여성에겐 다시 봉건의 굴레가 씌워졌다.


더 반동적이고 야만적인 제국주의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인민 다수는 탈레반을 지지하지 않는다. 미제가 군사침략을 개시한 초기엔 오히려 탈레반을 쫓아낸 미군을 환영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이내 달라졌다. 제국주의 군대의 아프간 인민에 대한 인격적 모욕과 야만적 폭력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프간 인민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개미처럼 밟아 죽였다.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흑인 노예 그리고 팔레스타인 아랍인처럼, 아프간 인민의 삶은 처참히 파괴되었다.

제국주의 군 주둔지에서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비전투 민간인에 대한 고문과 학살이 흔히 일어났다. 성인 여성뿐만 아니라 남녀 어린이에 대한 강간이 만연했다(Jacobin). 그러면서도 더럽고 위선적인 제국주의 언론과 지식인들은 아프간 여성과 어린이의 인권을 운운한다.

 

반제국주의 저항과 탈레반

아프가니스탄 인민이 반제국주의 저항에 나서게 된 배경은 바로 이런 것이다. 목숨이 개미처럼 다루어지는 끔찍한 삶의 파괴와 모멸 속에서 그들은 목숨을 던졌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싸움에 나섰다.

탈레반은 공산당 등 진보적 대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선 반동적 대안이었다. 소련은 아프간의 개혁조치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존재하지도 않는 진보적 자본가와의 공동정권 즉, ‘인민전선을 강요하며 현지 공산주의자들을 상당히 교란했다. 그러다가 1989년 철군하고 91년에는 붕괴되었다. 중국공산당의 노동계급 배신 정책은 훨씬 심각했다. 1960년 이후 소련과의 분쟁에 골몰하던 중국은 대소련 정책에서 미국과 실질적 동맹이 되었다. 미국과 더불어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반군을 지원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92PDPA 정권이 붕괴하자, 그나마 존재하던 공산주의자들은 괴멸되었다

 

1978년 인민민주당(PDPA) 정권 수립

아프가니스탄은 농업 중심적이고 봉건적이고 부족적이며 대다수 인구가 지방에 거주하는 분권적 사회였다. 1978년 당시 17백만 인구 가운데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35천 명에 불과했던 반면 사회에 기생하는 종교지도자는 25만 명에 달했다. 대지주와 부족장은 경작지의 42%를 소유했고 농민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었다. 기대수명은 40년이었고 유아 사망률은 25%에 달했으며 어린이 절반은 5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WV No 776).

이런 상황에서 영국과 미국 제국주의의 후견으로 유지되던 왕정과 친제국주의 정권은 아프간 인민의 비참한 삶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73년과 1978년 쿠데타를 거치며 차례로 전복되었다. 근대적 개혁을 강령으로 하는 PDPA 정권이 수립되었다.

노동계급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식민 지역에서, 지식인과 군인들이 사회 엘리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은 때로 반제국주의 · 반봉건적 쿠데타를 통해 근대적 진보를 선도하기도 한다. 이집트 나세르의 1952년 쿠데타, 리비아 카다피의 1969년 쿠데타가 그러한 사례이다. 실패했지만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1992년 쿠데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들어선 반제국주의 · 반봉건적 성격의 정권들은 수립 직후부터 제국주의와 그에 호응하는 봉건 세력의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미 제국주의의 ‘비밀작전’과 소련의 개입

아프가니스탄에 친소 성향의 PDPA 정권이 들어서자, CIA사이클론이라는 비밀작전을 모의했고, 지미 카터 정부는 이를 즉각 승인했다. 5억 달러가 그 작전에 배정되었고, 그 중 7천만 달러는 PDPA 정권의 반봉건 개혁조치에 반감을 가진 봉건종교집단 매수에 쓰였다(Counter Punch 2021/08/25).

미제의 막대한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받는 무자헤딘 반군의 파상적 공세에 시달리던 PDPA 정권은 소련에 군사지원을 요청했다. 비밀작전이 개시된 6개월 뒤인 197912, 소련은 그 치명적 내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PDPA와 소련의 여성해방과 탈레반

1978년 수립되어 1992년 붕괴되기 이전까지 PDPA 정권 동안, 아프가니스탄엔 유례없는 진보적 조치들이 실행되었다. 빈농의 가죽을 벗기던 농가부채가 탕감되었고, 대지주의 토지가 몰수되어 농민에 분배되었다. 사회의 진보성을 측정하는 핵심 지표인 여성해방 관련 조치들은 특히 눈부셨다.

PDPA 정권 이전, 여성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 여성은 봉건적 강제 속에 물건처럼 소유되었다. 교육과 사회활동은 금지되었다. 결혼은 가부장이 결정하였고 신부는 돈을 받고 팔렸다. 그러나 PDPA 정권이 들어선 이후, 여성 교육이 의무화되고, 여성 문맹퇴치 사업이 전국에서 벌어졌다. 그를 위해 수백 개의 학교가 세워졌다. 성과는 뚜렷했다. 1980년대 말 무렵, 대학생의 절반, 의사 40%, 교사 70%, 공무원 30%가 여성이었다(Counter Punch 2021/08/25).

봉건적인 대토지 소유주가 주도하는 무자헤딘은 PDPA 정권의 개혁조치에 반발하는 집단이다. 이 반동적 집단은 주로 여성해방 조치로 큰 위협을 느꼈다. 오랜 세월 유지되던 자신의 지배권이 파괴되는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여성해방을 필생의 수치로 여긴 이 봉건종교집단들이 CIA 지휘 아래 조직되었다. 이들은 중앙정부의 군사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서 PDPA 여성 교육 사업가들을 마을에서 추방하고 살해하는 것으로 자기 사업을 시작하였다.

1992PDPA 정권이 붕괴되었다. 그 후 부패한 무자헤딘 분파들 사이 내전이 벌어졌고, 1996년 탈레반 분파가 수도 카불을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의 해방은 일장춘몽처럼 사라졌다. 봉건적이고 야만적인 과거의 반동이 되살아났다. 여성은 학교와 사회에서 쫓겨났다. 다시 가정에 갇혔고 부르카로 포박되었다.



제국주의의 위선적 동조자들

그런데 2021년 미 제국주의가 패배하고 철군하자, 제국주의 미디어와 그에 장단 맞추는 지식인들은 갑자기 한껏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호들갑을 떤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비극을 운운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아프간 인민 24만 명이 죽고, 35십만 명이 제 고향을 떠나야 할 때에도 큰 걱정없이 잘 참아내던 그들이었다.

사실 그들 대부분은 여성해방을 아프간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으로 실현시킨 1978~1992년 동안에는 PDPA 정권과 소련에 반대했다. 그 대신 여성을 극도로 억압하는 무자헤딘 편에 섰다.

1977년 창립된 아프가니스탄여성혁명협회(Revolutionary Association of the Women of Afghanistan: RAWA)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겉으로는 아프간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고 하지만, 1973년 타도된 왕정의 복귀를 지지했다. PDPA 정권을 처음부터 반대했으며, 소련군이 개입하자 그 단체는 미 제국주의 편에 붙어 소련군 반대 캠페인에 나섰다. RAWA의 창시자인 미나 케시와르 카말(Meena Keshwar Kamal)당장의 적인 소련군을 몰아내기 위해 무자헤딘과 함께 싸울 것을 호소하였다(WV No 776).

 

2001년 미제의 침공과 반제국주의탈레반

토끼를 잡은 뒤엔 사냥개를 삶는 법이다. PDPA 정부와 소련군을 상대할 때, 탈레반은 유용한 도구였다. 그러나 그 둘이 사라진 뒤, 탈레반은 성가신 존재가 되었다. 그 자체로 자원의 보고이며,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이란을 잇는 위치의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에게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강력한 적수 소련은 붕괴되었다. 공산주의 유령은 퇴치된 듯 보였고 주먹을 쓸 때 눈치 볼 필요도 없다. 그리하여 미제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나섰다.

그러자 상황이 달라졌다. 탈레반은 다시 아프간 인민의 반제국주의저항의 결집점이 되었다. 앞에서 다룬 것처럼, 공산주의 등 다른 대안이 부각되지 못할 경우, 반동집단이 식민지 반제국주의 투쟁에 내몰리는 일은 역사에서 드물지 않다. ‘반제국주의성은 그들의 선택이 아니라 강제된 것이다. 1979~1983년 이란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 배경이나, 이집트나 터키,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에서 이슬람 정치세력이 여전히 일정한 지지를 얻는 이유 역시 그것이다.

 

탈레반의 앞길

그러나 2021년 미제의 패전으로 상황이 다시 바뀌었다. 제국주의 세력의 패전으로 탈레반의 일시적 진보성은 이제 그 실효를 다했다. 이제는 또 다시 자신의 반동성을 노동인민 앞에 숨김없이 노출하고 타도대상이 되는 것이 자기 운명이다. 러시아의 케렌스키나 중국의 장제스(장개석)처럼 말이다.

케렌스키 임시정부는 19177월 볼셰비키를 때려잡은 반동정권이었다. 그러나 8월 말,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 아래 코르닐로프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러자 케렌스키는 일시적으로, 더욱 큰 반동을 막는 방파제 같은 존재가 되었다. 볼셰비키는 케렌스키와 일시적으로 군사동맹을 맺어 코르닐로프 쿠데타를 격퇴했다. 그 후 10월 케렌스키는 타도되었다.

1927년 장제스는 상하이 쿠데타를 일으켜 중국공산주의자 수만 명을 학살하였다. 중국공산당은 장제스 군대에 쫓겨 변방으로 도망가 목숨을 부지해야 했다. 그런데 1937년 일본의 중국 본토 침공이 본격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자본가를 포함한 중국 인민은 장제스로 하여금 반일 항전에 나서도록 강제했다. 중국공산당과 2차 합작을 실시했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는 패망하였다. 그리고 4년 뒤인 1949년 패전한 장제스는 대만으로 도주하였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가르침

레닌과 트로츠키는 여러 저작을 통해 제국주의 vs 식민지 투쟁의 성격과 노동계급의 임무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레닌은 사회주의자의 임무를 이렇게 설명한다.

가령 내일 모로코가 프랑스에, 인도가 영국에, 페르시아나 중국이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한다면 이것은 선제공격을 누가 하든 정당하고’ ‘방어적인전쟁이다. 사회주의자라면 누구나 억압받고 종속된, 불평등한[약한] 나라들이 억압자이자 노예주이며 약탈자인 열강들에게 승리하기를 바랄 것이다.”-V.I. 레닌, 사회주의와 전쟁

트로츠키 또한 독재자들과 오슬로 고원(1936), 중일 전쟁에 대하여(1937), 반제국주의 투쟁이 해방의 열쇠이다(1938)등의 논문에서 제국주의반제국주의 · 비공산주의 세력노동계급사이의 삼각갈등에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그 중에서 특히 중일 전쟁에 대하여(1937)제국주의 vs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그리고 탈레반 vs 노동계급의 대결에서 요긴히 쓰일 아주 구체적 지침을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다소 길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노동계급 선진부위는 전체를 거듭 읽으며 깊이 있는 학습을 하길 간곡히 바란다.

일본의 전쟁은 제국주의적이고 반동적입니다. 중국의 전쟁은 해방을 위한 것이고 진보적입니다.

그러나 장개석(장제스)? 맑스와 엥겔스가 아일랜드와 폴란드 지배계급에 어떠한 환상도 가지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장개석과 그의 당 또는 중국 지배계급 전체에 대해 어떠한 환상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오늘 그는,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남은 중국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일본과의 싸움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내일 배신할지 모릅니다. 가능성이 있으며 아마 그럴 겁니다. 심지어 필연적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 싸우고 있습니다. 오직 겁쟁이나 무뢰한 또는 완전한 멍청이들만이 이 싸움에 참여하기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장개석이 승리를 보장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싸움을 시작하고 그것을 지금 이끄는 자는 그입니다. 그를 끌어내리기 위해 프롤레타리아와 군대 내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끌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허공에 떠도는 부유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외세 침략에 맞선 군사투쟁 속에서 명망과 영향력을 얻어내어야 합니다. 약점과 부족한 점 그리고 내부 배신에 맞선 정치투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미리 정할 수 없는 어떤 지점에서는, 이 정치반대파는 무장투쟁에 뛰어들어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내전은 전쟁 일반과 마찬가지로 정치투쟁의 연장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반대를 언제 어떻게 무장 봉기로 전환할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장개석에 충성하는것이 아닙니다. ‘장개석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의 독립에 복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당에 반대하는 선전은 장개석 타도를 교육하는 방편입니다. 불행하게도 그가 독립 전쟁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개석의 지휘 아래 참가하는 군사투쟁 속에서 장개석의 타도를 정치적으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혁명 노선입니다.”

 

아프간과 세계 노동계급의 임무

아프간 노동인민의 해방을 위해 탈레반은 즉각 타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세계 노동계급은 일국적 시야가 아니라 세계적 시야로 바라보는 연속혁명 강령 중심으로 결집해야 한다. 그렇게 결집한 국제정당과 아프가니스탄의 노동계급 전위는 사적소유 철폐와 더불어 다음 강령을 핵심으로 삼을 것이다.

탈레반 타도

봉건 잔재 척결

토지 몰수와 빈농에 재분배

여성의 사회진출을 가로막는 모든 억압의 철폐

소수민족 자결권 옹호

소비에트에 기초한 정교분리 공화정 수립

중국 노동계급과의 연대를 통해, 제국주의 침탈로부터 기형적노동자국가의 방어, 혁명의 성과를 갉아먹는 친자본주의 기생집단의 타도

세계 반제국주의 투쟁과의 적극적 연대

 

202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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