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아프리카

(IBT) 이라크: 크게 무리하고 있는 제국주의(27호, 2005)

by 볼셰비키-레닌주의자 posted Dec 24, 20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원출처 – 국제볼셰비키그룹(IBT)



이라크: 크게 무리하고 있는 제국주의

미/영 제국주의 군대를 이라크에서 당장 몰아내자!


“모든 대의는 무의미하다: 피의 웅덩이에 너무 깊이 빠져 있다.

 더 이상 이 짓을 하지 않고 되돌아가더라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맥베스] 제 3막 제 4장


위의 구절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의 일부이다. 여기서 충직한 장수였던 맥베스는 왕권을 탐하여 왕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자신의 행위를 반추하고 있다. 그리고 피의 웅덩이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이 모든 것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면서도 이 만행을 계속하는 것만이 난관을 헤쳐나갈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지배계급 역시 자신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저지르고 있는 만행에 대해 맥베스와 유사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세계 지배를 위한 이라크 정복은 거대한 피 바람을 동반하는 엄청난 도박이다. 그러나 이 도박은 지금 미국 군사력의 한계를 드러냈을 뿐이며 미국의 외교적 입지를 약화시켰다. 이로써 2001년 9월 세계무역센터에서 벌어진 끔찍한 테러의 피해자로 미국이 가지고 있었던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체제”라는 도덕적 자산마저 고갈되었다. 거대 제국 미국의 파괴행위에 대한 세계 인민의 분노 때문에 미국 제품은 세계시장에서 별로 인기가 없다. 한편 오사마 빈 라덴은 중동의 남자애들에게 졸지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자신을 공격하지도 않은 이라크에 대해 미국은 군사 공격을 감행했다. 그리고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에 대해서는 자기방어를 위해 선제공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공식적으로 합리화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이제 무지몽매한 이라크를 “해방”시키고 중동의 모든 인민에게 평화와 민주주의를 선사하겠다는 열망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한 진짜 이유는 언제나 명백했다. 이라크는 미국이 조종하는 중동의 소위 “민주주의” 국가들의 중심축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 국가들을 통해 미국은 중동의 석유를 장악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미국의 세기”에 도전할 모든 잠재적 경쟁 국가들을 제압하여 헤게모니를 확보할 생각이었다. 현재 미국은 이라크 전역에 영구 군사기지들을 건설하고 있다. 그리고 이라크의 미 대사관에 3천 여명의 요원을 고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이라크의 미 대사관은 미국의 해외 공관들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하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듯했다. 그러나 결국 나중에는 일이 꼬이기만 했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군대에 대해 미군은 재빨리 그리고 큰 희생이 없이 승리를 거두었다. 더욱이 1년 6 개월 전에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군사적으로 제압한 뒤 바로 연이은 승리였다. 이로써 미국은 자신의 위력을 세계에 인상적으로 각인시켰다. 물론 이것도 미리 계획한 것의 일부에 불과했다. 이라크에 대한 대대적인 파괴 및 살상은 미국에게 도전해야겠다고 맘을 먹었을 신식민지 지배자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한때 “중동의 미친 개”로 인식되던 리비아의 인민주의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현재 미국의 “테러대전”에 봉사하는 심부름 소년으로 바뀌었다. 리비아에 대한 경제 봉쇄가 풀리자마자 거대 석유회사인 로열 더치 쉘 (Royal Dutch Shell)은 재빨리 선수를 쳐서 리비아와 2억 달러 어치의 석유 탐사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옥시덴털 피츠로울리엄 (Occidental Petroleum)과 코노코필립스 (ConocoPhillips) 등 미국의 거대 석유회사들도 한때 자신들이 장악했던 리비아의 유전에 다시 모습을 나타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후세인 정권을 타도한 이후 제국주의 “해방군”에게 제대로 풀린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라크가 미국에게 즉각 위협이 될지 모른다는 등의 아주 기이한 거짓말들은 후세인 정권과 알 카에다 그룹이 연계되었다는 황당한 주장과 같이 틀렸다고 공식 발표되어야 했다. 미군에 대한 이라크 회교 반군의 저항은 미군의 이라크 점령 자체를 어느 정도 정당화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미국 내 과격파 기독교인들에게만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미국에게 위협이 되는 나라를 미리 골라잡아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이 소위 부시의 “족집게 전쟁”이다. 그러나 그의 전쟁에 대한 지지도는 전쟁이 계속되자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의 정책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상황을 잘 몰라서 그를 지지하고 있을 뿐이다. 2004년 11월 8일자 [뉴욕 타임즈]지는 매릴랜드 대학교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부시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의 3분의 2 이상은 사담 후세인이 오사마 빈 라덴과 협력한 “명백한 증거”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사실을 말하면 이 두 인물은 모두 미국이 길러내고 무장시킨 자들이었다. 이 공통점만이 이 두 인물을 연관시키고 있을 뿐이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될 시점에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은 미국 역사상 어떤 전쟁보다 컸었다. 이 점은 상당히 중요하다. 수천만의 미국인들은 이렇게 알고 있었다: 이라크에 대한 부시의 “전쟁”은 실제로는 잔인한 식민지 강탈이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는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군 사상자의 속출 때문에 이것은 황당한 주장이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전적으로 범죄적 성격이 짙은 이 정책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거세질 것이다.

모두 유엔의 지지를 받았던 1991년 이라크 전쟁, 1999년 유고슬라비아 공습,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에서 프랑스와 독일 지배계급은 미국의 군사적 공격에 반대하기보다는 함께 하는 것을 통해 얻을 것이 더 많다고 계산했다. 그러나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대해 이들은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군사적으로는 미국이 경쟁 제국주의 국가들보다 월등히 앞서고 있으나 미국의 경제적 지위는 하락하고 있다. 매년 6천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수지 적자와 매년 4천억 달러에 달하는 부시 행정부의 무분별한 재정 적자 등이 이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중동의 에너지 자원을 직접 장악하려는 시도가 실패할 경우 미국은 중대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 이 시도가 성공할 경우 미국의 부르주아 계급은 투자한 것에 비해 수십 배 또는 수백 배의 소득을 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를 제압하고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다른 제국주의 경쟁국에 대비된 미국의 하락세는 극적으로 가속화될 것이다.

현재 제국주의 국제질서의 모습은 1914년 제 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 이전의 상황과 더욱 유사해지고 있다. 그 당시 제국주의 주요 강대국들 사이의 경쟁관계는 서서히 가속화되다가 결국 2천만 명 이상의 사람을 죽인 야만적인 세계대전으로 폭발했다. 이 지옥과도 같은 유혈참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의 지도자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제국주의는 (1) 독점체와 금융자본의 지배가 확립되었으며 (2) 자본 수출이 대단한 중요성을 획득했으며 (3) 국제 트러스트들 사이에 세계의 분할이 시작되었고 (4) 거대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 세계의 영토 분할이 완료된 단계의 자본주의이다.”

[제국주의, 자본주의 최고의 단계]

제국주의가 단순히 “나쁜 정책”이라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영향권의 재분할 그리고 시장과 원자재와 값싼 노동력에 대한 접근을 둘러싼 경쟁은 자본주의 발전의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결과이다. 유엔, 국제통화기금,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 등 제 2차 제국주의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초국적 기구들은 민족국가들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그리고 제국주의 강대국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에만 작동할 수 있다. 자본주의 기업들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거의 예외 없이 이들은 한 국가에 본부를 두고 있다. 그리고 필요할 경우 관세, 보호무역 정책, 무역 전쟁 그리고 결국 군사적 전쟁 등을 통해 자신들이 대주주로 있는 자국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지원을 받는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이스라엘의 이해관계와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시온주의 신보수주의자들(neo-conservatives)의 사악한 집단에 의해 이 정책이 부시에게 강요된 것은 아니다. 아무리 허술하게 진행되고 있더라도 부시의 이라크에 대한 강도 전쟁은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의 오랜 정책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은 1998년에 바그다드의 “정권 교체”를 공식 정책으로 채택했다. 이때는 민주당의 빌 클린튼이 백악관의 주인이었다.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에 의해 미국 국내에는 공포심과 분노가 조성되었다. 이로 인해 후세인 타도 전략은 황금과 같은 기회를 제공받았다.

현재 이라크에는 열 몇 개의 미군 기지가 건설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 국방부는 중동 지역에서 군사 정책적 자율권을 완벽히 부여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구상은 미국의 군사적 자원 운용의 주요한 전환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동안 존재했던 서유럽 중심의 자원 운용 방식은 이제 중동에서 동남 아시아에 걸친 일련의 미군 기지들을 통해 주요 유전 매장지대들을 미국이 통제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중국의 기형적 노동자국가에 대한 미국의 포위망이 좁혀지고 있다.

미국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용하여 타지크스탄, 키르기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오랫동안 중동에서 미국의 하수인 역할을 해왔으며 현재 더욱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미국은 대부분의 군대를 철수시켰다. 대신 미국은 바레인과 카타르에 군사기지들을 운용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의 열성은 중동의 전제주의 정권들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파키스탄의 군사독재자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선거로 집권한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했는데 현재 이 지역에서 미국의 아주 중요한 동맹자가 되었다. 사실 미국은 자신에게 불쾌한 정책을 구사한 민주 정부 타도 공작에 대한 오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1953년 이란의 모사데크 정권부터 2002년 베네수엘라의 차베즈 정권에 이르기까지 여러 정권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라크 사람들은 우리를 증오한다. 이들은 우리를 죽이려한다.’

부시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 “군사적 임무 완료”라고 성급하게 선언했다. 이로부터 몇 개월 후인 2003년 7월 그는 자신 있게 이렇게 예상했다: 미국의 점령에 감히 도전하는 이라크의 “인간 망나니들”은 미군에 의해 즉시 제압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큰 소리쳤다: “덤빌 놈들은 나올 테면 나와 봐라!” 그의 소망은 달성되었다. 미군이 별로 없는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지역을 제외한 이라크 전역에서 미군 점령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운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곧 명백해졌다.

1991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유엔의 지원을 받아 미군보다 훨씬 열세인 후세인의 군대를 손쉽게 패배시켰다. 그리고 방어 능력이 전혀 없는 수만 명의 이라크 징집군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그는 지금 아들 대통령이 열성적으로 치르고 있는 비싼 점령 비용을 회피하기 위해 후세인의 바트당 정권을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다. 조금만 있으면 미국에 유순한 정권이 등장하고 후세인이 타도될 것으로 자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들의 압박, 여러 차례 시도된 미 중앙정보국 주도의 쿠데타, 다수의 어린이를 포함한 백만 명 이상의 이라크 인민을 죽인 10년 간의 유엔 경제봉쇄 등에도 불구하고 후세인은 권력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유엔 경제봉쇄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하나 생겨났다. 이라크의 석유는 미국의 통제권에서 벗어났고 프랑스와 러시아의 석유회사들이 바트당 정권과 이윤이 엄청난 계약을 체결했다. 이라크를 직접 장악하여 아버지의 계산 실수를 만회하려고 아들 부시가 일어났고 그는 곧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다.

이라크 인민의 “진정한 공감”을 얻고 제국주의자들이 수십 년 간 지지해온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이라크 인민을 “해방시킨다”는 것이 미국이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대 이라크 정책이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의 서막을 알리는 대대적인 바그다드 공습이 “충격과 공포”라는 이름으로 개시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 군사정책은 이라크 인민에게 테러를 가하는 것에 초점이 있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정책에 이라크 인민이 강제로 굴복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자행된 미군의 범죄적 포로 학대는 사진으로 찍혀서 미국 백악관의 전쟁 선전에 확실한 똥칠을 했다. 미국이 제네바 협약에서 이미 탈퇴했고 “불법 전사”라고 간주하는 자들에 대해 고문을 “합법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학대 사진들은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아부 그라이브 감옥의 학대 실태를 폭로한 미국의 기자 씨모어 허쉬는 이렇게 보도했다: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저질러진 만행의 뿌리는 몇몇 예비군들의 범죄적 성향에 있지 않다. 진짜 뿌리는 국방부 장관 럼스펠드가 작년에 승인한 결정들에 있다…

..녹슨 구리의 청색 등 여러 암호들을 통해 국방부의 포로학대 작업은 정보 당국 내부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 이 작업은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신체적 강제와 성적 모욕을 권장했다. 이를 통해 증대하고 있는 이라크 저항 세력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확보하려고 했다.”

[뉴요커]지, 2004년 5월 24일

이라크에 배치되기 전에 텍사스주의 포트 후드 기지에서 배운 것을 어느 미군은 이렇게 요약했다: “이라크 현지 문화에 대한 교육은 10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라크 사람들은 우리를 증오한다. 이들은 우리를 죽이려한다. 이 사실만 알면 된다”([토론토 스타]지, 2004년 6월 26일). “해방군”이 증오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명백하다. 20년 동안 지속된 전쟁과 제국주의 국가들의 잔인한 경제제재 등으로 이라크의 사회적 경제적 기초는 거의 대부분 파괴되었고 인민은 거지가 되었다:

“도시를 벗어난 많은 곳에서 토양의 염분화, 펌프 고장, 퇴적물로 막힌 수로 등으로 농업의 장기적인 위기는 악화되고 있다. 한편 농업과 관련된 물자들을 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증대하는 농촌의 실업 때문에 바스라, 바그다드 등 대도시의 빈민촌 인구는 급증했다. 북부 지역 이외의 대다수 도시들에서 중소기업들은 값싼 외국 제품의 유입 및 법과 질서의 붕괴로 크게 타격을 입었다. 1980년대 내내 지속된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이라크의 제조업 분야는 무기 생산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이렇게 해서 70년대부터 축소된 이라크의 제조업 대부분은 민영화가 아니라 폐쇄에 직면하고 있다. 이 결과 한때 숙련을 자랑했던 노동인구는  일이 없어 놀고 있다. 이라크 전쟁 이전의 노동력 가운데 3분의 2가 실업자일 수도 있다. 이라크의 선전 책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라크는 대(大)중동권을 위해 화물 운송을 맡는 거대한 두바이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라크는 미래 중동 지역의 무역 중심지로 부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자들이 제시하는 전망은 뻔하다: 이라크 인민은 먼 미래에 화물 처리 내지 창고 관리 일꾼으로서 세계 경제에 통합될 것이다. 매일 같이 제공되는 군사 공동성명서들은 깊어 가는 사회위기를 감추고 있다. 눈에 보이는 미군 점령군은 이라크 인민의 분노를 즉시 폭발시킬 대상에 불과하다.”

[뉴 레프트 리뷰]지, 2004년 7/8월 호

영국의 최고 의학 전문지 [랜씻]은 이렇게 보도했다: 2003년 3월 미군 침공 이후 1년 6개월 동안 최소한 10만 명의 이라크 인민이 사망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미/영 연합군의 공습 피해자였다. 후세인 정권보다 현재 이라크 민간인이 급작스럽게 사망할 위험도는 58배나 더 높다 ([가디언 주간지], 2004년 11월 5일).

경제 제재, 공습, 전쟁 등으로 이라크를 황폐화시킨 후 미국은 이라크의 석유 수출 대금에서 나온 190억 달러의 “이라크 개발 기금”과 미 의회에서 배정한 240억 달러로 이라크를 “재건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기금들의 대부분은 외국 특히 주로 미국 업자들에게 배당되었다. 2004년 10월까지 이 기금들의 아주 근소한 비율만이 용수, 방역, 보건, 교량, 도로 등에 쓰였을 뿐이다 ([가디언 주간]지, 2004년 10월 22일).

기금들의 대부분은 미군기지 건설에 쓰이고 있다. 점령군 당국의 최대 우선순위는 “보안”이었고 그 다음이 송유관 복구 공사였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 이전의 수준으로 전기 공급, 하수처리시설, 식수 공급 등을 회복시키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재건”에 대한 미국의 약속들은 쓰디쓴 농담이 되어버렸다.


공룡 미국에 도전하다

미국 정부는 이라크에서 완전한 군사적 승리가 임박했다는 발표를 공식적으로 되풀이했다. 그리고 “결정적 전환 국면”에 대해서도 공식 발표를 계속했다. 이것을 미국의 거대 언론들은 앵무새처럼 그대로 반복했다. 그러나 이제 서서히 입장을 바꾸어 이라크가 곧 제압될 전망에 대해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2003년 12월 사담 후세인의 생포로 저항 세력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러나 이 예상은 크게 빗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오랫동안 미 중앙정보국의 하수인이었던 아야드 알라위에게 공식적으로 “주권”이 이양된 후에는 무장 저항이 사그라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그러나 역시 이 예상도 크게 빗나갔다. 이라크의 소수 세력이 된 수니파는 미군 점령에 강력히 저항하면서 선거 불참을 선언했다. 이 상황에서  새로운 임시 괴뢰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2005년 1월의 선거 역시 근본적인 것은 하나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미 점령군에 대한 저항 세력의 정교하고도 치열한 공격은 미 제국주의의 군사적 모험의 대가를 꾸준히 높여왔다. 그리고 1991년과는 달리 이번에는 미국이 전쟁 비용을 경쟁국이나 괴뢰정권들에게 전가할 수가 없다. 애초에 국방부는 초전 박살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급격히 이라크 경제를 복구하여 이라크를 “해방시킨 자들”의 이윤 확보 기회를 최대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분배할 전리품이 당분간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지자 미국은 경쟁 강대국들과의 다자간 비용 분담에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몇 개월 동안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유럽국가들은 큰 소리로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반대하며 강력하고도 독자적인 유엔의 역할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이들은 달리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게 이 특별 군대를 위한 병력과 호위군을 제공하지 않았다. 유엔의 이 특별 군대는 초동 단계에는 1천 여명의 중무장한 병사들 그리고 60여명 이상의 가볍게 무장한 호위군이 필요할 것이다.”

[뉴욕 타임즈]지, 2004년 7월 20일

다른 강대국들이 미국의 중동 유전 장악 기도에 드는 비용을 분담하지 않으려는 것은 “달리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지는” 않다. 후세인 정권이 체결한 계약들을 무효화시킴으로서 미국은 프랑스와 러시아의 에너지 회사들에게 수 십억 배럴의 석유에 대한 접근을 차단시켰다. 그러나 미국이 기가 죽는 것을 고소하게 바라보면서도 미국의 경쟁국들은 세계경제에 어느 정도 질서가 유지되는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완전히 찌그러지는 것이 제국주의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불안 요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 점령군 당국은 “연합”군, 계약업자, 외국 용병 등에게 완전한 기소 면책 특권을 부여한다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것을 이라크 괴뢰 정권들은 옹호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저항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면책 특권을 부여받지는 못했다. 2004년 4월 팔루자의 저항군은 4명의 미국 흑수(黑水) 보안 용병들을 살해했다. 그리고 이들의 시체를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자 제국주의 선전가들은 이 “민간인들”에 대한 극악무도한 취급에 대해 열을 올리며 비난했다. 그러나 미군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팔루자를 공격하여 600여명의 주민을 살해했을 때 이들은 분노 비슷한 것도 표현하지 않았다. 한편 아랍 전역에 미군의 잔인한 학살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으로 방송되자 이라크에는 수니파 시아파 할 것 없이 미군에 대한 증오심과 저항의 파도가 크게 상승했다.

이라크의 다수파인 시아파는 미군 점령에 대한 저항의 수위를 높였다. 그러자 이에 놀란 미군 당국은 점령군에 대한 주요 반대자인 모크타다 알 사드르를 침묵시키려는 엉성한 시도를 했다. 이라크 괴뢰정부가 그의 신문을 폐간시키고 그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하자 사드르의 “마디 군대(Mahdi army)”가 무장 저항을 시작했고 시아파의 성지 나자프와 바그다드의 북적거리는 시아파 빈민굴인 “사드르 시” 등을 장악했다. 일부 경우에는 사드르의 무장군이 수니파 저항 세력과 공동으로 미군에 저항했다:

“4월에는 이라크 전역에 미군에 대항하는 광범위한 봉기가 일어났다. 바쿠바에서는 수니파와 시아파가 연합하는 드문 경우가 발생했다. 사드르의 시아파 추종자들은 관공서를 습격했고 수니파 전사들은 미군과 교전을 벌였다.”

[뉴욕 타임즈]지, 2004년 6월 28일

2004년 4월 미군은 나자프와 팔루자를 공격했다. 이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너무 커서 미국이 직접 선정한 이라크 임시정부의 제국주의 하수인들조차 미국을 비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중의 봉기가 대대적으로 폭발할 가능성에 직면하자 미국은 군대를 철수시키고 두 도시를 저항 세력에게 넘겨주었다. 사드르는 미군과 마주 겨룬 직후 인기가 치솟았다. 이것은 점령군에 대한 시아파의 분노를 나타내는 아주 의미심장한 징후였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이라크 인민의 1% 정도만이 사드르를 지지했다. 그러나 4월 후반에 이라크의 조사 및 전략 연구소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이라크 인민의 32%가 그를 강력히 지지했고 35%는 어느 정도 그를 지지했다.”

[글로브 앤드 메일]지 (토론토), 2004년 6월 1일

미군이 나자프에 대해 피비린내 나는 공격을 가한 직후인 2004년 8월에 사드르의 전사들은 이 도시에서 철수하는 문제에 대해 미군과 협상에 나섰다.

나자프를 장악한 후 미군의 다음 목표물은 수니파의 아성인 팔루자였다. 냉소적으로 “정밀 폭격”이라고 불린 극악한 공습이 몇 개월 계속되자 10월 중순 팔루자의 주민 대부분은 집을 버리고 피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부터 몇 주일이 지나고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 미군은 이 도시에 대한 지상 공격인 “유령의 분노” 작전에 들어갔다. 저항 세력에 대한 결정적인 타격으로 선전되었으나 이 공격의 진짜 목표는 점령에 반대한 것에 대해 주민들을 징벌하는 것이었고 미국 공룡에 저항하는 끔찍한 대가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미군은 저항 받거나 패배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광범위한 파괴를 가져오더라도 어쩔 수 없다.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팔루자 주민 대다수는 이미 피신했다. 남아있는 자들은 나름의 선택을 한 것이다. 테러 분자들을 가차없이 추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살해를 의미한다…세계의 유화 세력들이 우리의 포로 학대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데 이 잔소리를 더 들을 필요가 없다. 테러 분자들은 폭탄이 터지는 먼지 속에서 죽어야한다. 세계는 이들의 시체를 볼 필요가 있다.

        .     .     .

팔루자가 카르타고처럼 완전히 초토화되어도 이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의 의지력을 세계에 증명하고 미친놈들이 미국에 대적할 때 그 결과는 오직 하나 뿐이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뉴욕 포스트]지, 2004년 11월 4일

이렇게 기사를 쓴 자는 랠프 피터즈인데 그는 호전광으로 30만 주민들 가운데 피난을 하지 않고 남아있는 주민은 죽어도 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아있기로 작정한 주민들은 대개 너무 연로하거나 병이 심하여 이동을 할 수 없는 노약자들과 이들을 돌보기 위해 남아있던 사람들이었다. 미국의 언론 대부분은 피터즈처럼 무지막지하지는 않았으나 이들의 결론은 그와 마찬가지였다. 1999년 나토군이 공습을 하기 직전 수만의 알바니아계 소수민족이 코소보를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그리고 이것은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의 “인종 청소”와 “민족 학살” 정책의 증거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미군이 팔루자 주민 대부분을 피난민으로 만들었을 때 이것은 미국의 거대한 전쟁 기구의 “인도주의”를 증명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미군의 첫 번째 목표는 팔루자의 병원이나 의료기관들을 점거하거나 파괴하는 것이었다. 2004년 4월에 그랬던 것처럼 민간인 사상자들의 사진이 유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 결과 민간인 사망자의 수가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은 미국의 전쟁 범죄자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미군은 팔루자의 많은 곳을 초토화시켰다. 그러나 체첸의 수도인 그로즈니를 초토화시킨 러시아군들과 똑같은 결정적 승리를 미군은 얻어낼 수 없었다.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저항군은 대부분 도시를 빠져나간 뒤였다. 뒤에 남은 투사들은 자신들의 전과를 잘 전해주었다. 몇 주일동안 미군 70명 이상이 살해되었고 300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오랫동안 후세인 정권의 탄압을 받아왔던 인구의 대다수 시아파와 지금은 정권에서 밀려난 수니파의 미/영 제국주의 연합 점령군에 대한 증오심은 너무 크다. 이 결과 점령군 당국은 조금이라도 치안 장악력을 발휘할 이라크 경찰 및 군대를 구성할 수 없었다. 점령군의 하수인 역을 맡고 있는 보안 기관들에 입사하는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은 가난한 실업자들로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남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당연히 점령군이나 저항 세력에 대한 전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2004년 4월 팔루자 공격에 동원된 다수의 이라크인 보조 병력은 결국 저항군에 합류했다. 그리고 상당수가 11월에 경찰과 군대 대오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보안 기관 내부에는 저항 세력의 동조자들이 곳곳에 퍼져 있음이 명백하다. 과도정부의 수상이었던 알라위는 한때 이렇게 암시했다: 이라크 정부군의 많게는 5% 가량이 저항 세력의 동조자일지도 모른다. 인구의 압도적 다수는 점령군이 물러가기를 원한다. 이 때문에 저항 세력은 협조자들을 찾아내고 일을 시키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알라위의 내무부에 의하면 2004년 마지막 4개월 동안 약 1천3백 명의 이라크 괴뢰 경찰이 저항 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라크를 장악할 임무를 담당한 자는 미국 대사 잔 네그로폰티이다. 그는 1980년대에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온두라스 특사로 파견되었다. 니카라과의 민족주의 좌파 정권인 산디니스타 정부에 대해 살해를 일삼는 반군을 조직하는 중심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그였다. 테러, 잔혹한 탄압, 경제제재 등을 동원하여 미국은 산디니스타 정권을 쫓아내고 엘살바도르의 대규모 좌익 봉기군을 진압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앙아메리카와 지금 이라크는 아주 결정적인 측면에서 전혀 판이 다르다. 좌익에 대한 미국의 전쟁에 대해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과 자본가 계급은 열성적으로 찬동했다. 그러나 지금 이라크에서는 수니파든 시아파든 미국의 이라크 석유자원 강탈을 도우려는 의미 있는 세력은 없다.


‘그럴싸한 선택들은 없다’

부시의 이라크 모험에 계획을 제공한 미국의 신보수 (neo-conservative) 모사꾼들은 쿠르드족, 시아파, 수니파를 서로 이간질시키고 민주적 외양을 갖춘 후 영구 점령을 합리화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은 “정권 교체”를 계획한 매파 똘마니들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인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현재는 인구의 소수파인 수니파가 미군 점령에 가장 적대적이다. 그러나 미국은 분리 독립하려는 쿠르드족을 의심하고 있으며 인구의 다수파인 시아파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 확대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렇게 주장하면서 자기의 이라크 정책을 결정하고 있는 근거 없는 희망을 간략하게 표현했다: “1월에 있을 제헌의회 선거는 테러 분자들이 외국 군대의 점령에 저항하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없앨 것이다. 또한 테러 분자들이 실제로는 이라크 인민의 의지에 저항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각인시킬 것이다”([뉴욕 타임즈]지, 2004년 12월 8일). “이라크 인민의 의지”는 외국 점령군을 쫓아내는 것에 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없어진 것은 미국의 군사력이 무적이라는 잘못된 생각이다. 현재 이라크의 다수 지역은 미군 저항 세력에 의해 장악되었다. 육상 도로에서의 사상자 수는 너무 많다. 2004년 12월 15일자 [뉴욕 타임즈]지의 보도에 따르면 “한 달에 약 100여명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다수 지역에서는 식수를 포함하여 점령군의 핵심 보급품은 비행기로 날라야 한다.

부시 일당은 공식적으로는 이라크 사태를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보 당국의 전망은 상당 기간 일관되게 비관적이었다. 클린튼 전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시드니 블루멘썰은 2004년 9월에 이렇게 말했다:

“국가안보기구 의장을 역임한 퇴역 장군 윌리엄 오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시는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알카에다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패배했다. 중동에 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할 것이라고 그는 계획했다. 그러나 이 목표도 패배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정책은 빈 라덴의 목표를 대신 달성시켜주고 있다.’

해병대 사령관과 미국 중부사령부 사령관을 역임한 퇴역 장군 조지프 호어는 이렇게 말했다: ‘부시와 그의 측근들이 계획한 대로 이라크 사태가 풀릴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 웃긴다. 그럴싸한 선택들은 없다….’

공군 전쟁 대학교의 전략학 교수 제프리 레코드는 이렇게 말했다: ‘밝은 빛이 한 줄도 보이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났다. 독일과 일본에서 제 2차 세계대전을 치른 이후 우리가 누렸던 장점들과 지금의 이라크 상황 사이에는 어떤 비교도 불가능하다.’”

[가디언]지 (런던), 2004년 9월 16일

2004년 11월 22일자 [뉴욕 타임즈]지 사설은 이렇게 불평했다: 팔루자 공격이 결론이 나지 않은 후 “작년의 ‘전쟁 임무 달성’은 ‘임무 달성 불가능’인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 부르주아 계급은 이라크 정복에 너무 많은 것을 투자했다. 따라서 실패할 경우 파생될 결과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어느 분파도 아직은 이라크에서의 군대 철수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미국 군사력의 피로 징후

미국 국방부는 저항 세력에 맞설 의지와 능력이 있는 이라크 하수인 군대를 아직 조직하지 못했다. 그리고 “기꺼이 미국을 따르려는 연합국” 보조 군대는 자국 철수 등으로 녹아 없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미 지나치게 임무의 부하가 늘어난 병력을 더 조이는 것이 국방부의 유일한 방안이다. 현재 미국의 “스스로 지원하는 군대(자원군)” 가운데 수천 명은 더 이상 자원 복무자가 아니다. 복무 만료 시점이 가까워진 일부 병사들은 복무 연장 계약에 합의하든가 즉시 이라크로 발령이 나든가를 선택하도록 강요되고 있다. 한편 다른 병사들은 “병력 손실 막기(stop loss)” 명령에 따라 복무 연장 계약에 도장을 찍고 있다. 어느 하사는 이렇게 불평했다: “군 당국이 골대를 자기 마음대로 옮기고 있다” ([뉴욕 타임즈]지, 2004년 10월 1일).

동시에 국방부는 국민방위군(National Guard)과 예비군 등 시간제 계약 병력을 크게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직업군인이 아니다. 이들은 가끔 주말에 숲 속에서 병정놀이를 하면서 용돈이나 벌기 위해 계약서에 서명했을 뿐 머나먼 외국에서 살해되거나 병신이 되기를 원치는 않는다. 이들 가운데 다수는 일년이나 그 이상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으로 배치되어 근무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이교도들에게 “자유”를 확산시킨다는 번지르르 하면서도 냉소적인 말들을 일삼고 있다. 그러나 이 말들은 몸이 성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는 행운을 누리더라도 직업 경력과 결혼 생활이 파괴되는 이 병사들에게는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민간 분야로 들어가 병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왔다.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 근무하는 37명의 포로 심문자들 가운데 27명은 개인 사업자인 씨에이씨아이 인터내셔널 회사의 직원들이었다. 정규군보다 몇 배 많은 돈을 버는 “민간 군사업체”의 직원 2만 여명은 국방부가 아니라 이라크 “재건” 예산에서 봉급을 받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인종적 계급적 불평등은 제국주의 군대 내에서도 재생산되고 심화되고 있다. 이 점을 맑스주의자들은 잘 인식하고 있다. 제조업 기반이 해체된 미국 중부 지방에 살고 있으며 노동계급, 흑인, 라틴 아메리카 계통 등의 청년들 다수는 대학교에도 갈 수 있고 평생의 저임금 단순노동 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군 복무에서 찾고 있다.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 병사들은 이라크 민간인들을 살해하면서 전쟁을 수행해야하는 끔찍한 현실에 처해 있다. 그리고 이뿐이 아니다. 강제로 군 복무 계약이 연장되고 보수도 그리 높지 않으며 생명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미군의 사기는 크게 처져 있으며 군대 지원자도 크게 줄었다. 또한 간간이 명령 불복종 사건도 발생한다. 가장 잘 알려진 명령 불복종 사건은 2004년 10월 제 343 병참 중대의 병사 18명이 “자살 행위와 같은 임무”를 거부한 경우였다. 이들은 “수니파 삼각지대”(수니파 저항 세력의 아성)에 위치한 미군 기지에 제트기 연료를 수송하는 임무를 명령받았다. 그러나 저항 세력의 로케트 포탄이나 도로에 설치된 다이너마이트에 의해 작살날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수행할 수 없는 임무였다. 주요 사회 위기가 폭발할 경우 미국의 지원군들은 각자 소속된 사회계급에 따라 분열을 겪기 시작할 것이다. 월남전이 끝나갈 무렵인 1970년대에 징집된 미군들은 대규모로 장교들의 명령을 거부하고 이들을 총살한 적이 있었다. 이 급격한 규율 와해 현상에 겁을 먹은 군 당국은 결국 월남에서 군대를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점을 찍어 놓고” 이라크에 전쟁을 걸었다. 자기 방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전쟁을 벌인 경우가 아니다. 따라서 너무 대가가 클 경우 미국 부르주아 계급은 타월을 링 안에 던져 기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할 경우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은 스타일을 크게 구기게 될 것이다. 1983년 10월 “회교도의 성전”이라고 자처한 한 집단이 트럭으로 자살 폭탄 공격을 감행하여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위치한 제국주의 군대의 병영을 초토화시켰다. 이로 인해 미 해병대와 프랑스 공수부대의 300여명이 살해되었다. 그러자 제국주의자들은 꼬리를 내리고 레바논에서 황급히 철수했다. 이 군사적 패배와 이로부터 10년 뒤에 소말리아에서 일어난 유사한 사건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되고 있다.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유세 도중에 부통령 딕 체이니는 레이건 및 클린튼 행정부가 테러 분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친 것을 비난했다:

“‘이들은 우리를 공격하고도 보복 당하지 않았다’,'우리를 충분히 강하게 타격하면 이들은 우리 정책을 변경시킬 수 있다.’ 레이건 제 1 임기 중인 1983년 베이루트에서 미 해병대 병영이 공격당한 사건과 1993년 소말리아에서 미군들이 살해된 사건들을 체이니씨는 언급했다….”

[뉴욕 타임즈]지, 2004년 9월 7일

제국주의 강도 군대가 이라크에서 패배할 경우 부시 행정부의 위세는 크게 약화될 것이다. 그리고 부시 일당이 대표하고 있으며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등 대단히 악독한 사회 기생 집단인 미국 부르주아 계급도 세력이 약화될 것이다. 이 결과 미국 노동자들은 연금, 생활 수준, 민주적 권리 등을 방어해 내기가 그만큼 더 쉬울 것이다. 모든 제국주의 군대가 이라크에서 즉시 철수할 것을 혁명가들은 촉구한다. 또한 이라크 저항 세력이 점령군과 그 하수인들을 공격하는 것을 모두 옹호한다.

영국, 미국 그리고 기타 제국주의 국가의 계급의식이 있는 노동자들은 이라크의 저항 세력을 군사적으로 지지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 저항 세력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반동 분자들에게 정치적인 지지는 결코 보낼 수 없다. 바트당에 속했던 이 저항 분자들은 후세인 정권 당시 수천 명의 정치적 반대자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살해했으며 쿠르드족과 시아파를 잔인하게 탄압했다. 그리고 수니파든 시아파든 회교 근본주의자들은 더 문제가 많다. 팔루자, 나자프, 사드르 시 등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서 이들은 영화관, 미장원, 씨디 가게 등을 골라서 불을 질렀다. 또한 술을 판매하는 등의 “범죄”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채찍질을 가하는 일들을 자행했다. 쿠르드족이 사는 곳 이외 지역에서 이들은 강제로 여성에게 베일을 뒤집어쓰도록 했다. 그리고 이들이 장악한 지역에서는 기독교인과 다른 소수민족에 대한 극악한 공격뿐 아니라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여성을 살해”하는 등 여성 비하 행위가 크게 증가해왔다:

“바그다드 남부의 디얄라 다리 건너편에 살고 있는 집시들은 과격한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를 크게 두려워한다. 이들의 가옥은 그의 민병대 추종자들이 공격하지 않은 몇 개 남지 않은 가옥들이다. 바그다드의 다른 지구들과 이라크 남부 지방에서는 등산용 곡괭이를 들고 설치는 근본주의자 공격 부대들이 수백 가구의 집시들을 몰아내고 이들의 자동차와 모아 놓은 현금을 훔쳤으며 이들의 주택을 완전히 파괴했다. 이 모든 행위는 시아파의 종교 권위자 하즈와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또한 그의 시아파 알라 특공대들은 집시 소녀들을 붙잡아 머리를 완전히 밀어버렸다.”

[이코노미스트]지, 2004년 7월 24일

계급 노선과 제국주의 반대

미 제국주의는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혁명가들은 임박한 제국주의 공격에 대해 이라크를 방어할 것을 이미 요구했었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세계의 조직들 대부분은 노골적인 자유주의/평화주의에 기초하여 “광범위한” 연합 조직을 수립하려고 애를 썼다. 영국에서는 국제사회주의자들의 본부 격인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전쟁중지연합(Stop the War Coalition, StWC)”을 수립하였다. 이 조직은 대규모 시위를 개최하면서 종교가, 노동조합 관료, 각종 소부르주아 개량주의자들에게 연단을 내주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공식적으로는 혁명 조직을 자처한다. 그러면서도 “광범위한 단결”을 위해 전쟁중지연합(StWC)의 집회나 시위에서 부르주아의 자유주의 분파가 받아들일 수 있는 노선만 표명되도록 의도적으로 조치들을 취했다. 현재 이 연합의 가장 주요한 요구는 “군대를 귀국시켜라”이다. 물론 혁명가들은 이라크에서 모든 제국주의 군대들이 즉각 무조건 철수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오직 군대 철수만을 외칠 뿐이다. 이들이 진정 혁명 조직이라면 이렇게 선언해야한다: 전쟁이 없는 세계를 꿈꾸는 평화주의 동지들의 소망은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그리고 전쟁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제국주의체제를 전복시켜야만 성취될 수 있다.

미국의 자칭 혁명조직들 대부분도 반전 투쟁을 자유주의/평화주의에 기초하여 조직했다. 이를 통해 민주당이 미 제국주의의 정책을 좀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끌도록 압력을 가하려했다. 그러나 이라크와 중동의 석유를 둘러싼 인종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대해 민주당과 공화당은 실질적인 차이가 조금도 없다는 것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맑스주의” 조직들은 자유주의적 제국주의 “본당”인 민주당에게 호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조직 회원들은 이 황당한 노선에 대해 대단한 관용 능력을 갖추어야할 것이다. 마오쩌둥주의를 추종하는 혁명공산당(Revolutionary Communist Party, RCP)이 한 예를 제공하고 있다. 이 조직은 “아주 매혹적이지만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차선책의 논리를 이렇게 비난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 논리는 이미 여러 차례 시도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똑같이 형편없었다. 이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배자들의 ‘좀더 이성적인’ 분파는 약간 우려를 표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이들도 지배계급의 핵심 부위와 같은 계급적 이해관계와 이에 합당한 전략 목표를 갖는다. 그래서 이들은 그냥 지배적 분파와 공동 보조를 취한다. 그러다가 너무 거센 저항에 직면하면 그때가 되어서야 이들은 지배 분파와 갈라선다. 월남전 또는 나치 독일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 점은 쉽게 이해가 된다.”

[혁명 노동자]지, 2004년 8월 29일

그러나 이 신문의 같은 호에서 이 그룹은 민주당 정치인들에 대한 투표는 사소한 전술적 문제에 불과하다고 독자들을 안심시킨다: “정말 그래야 한다고 느끼면 케리에게 표를 던져라. 그러나 결국 제국주의의 자유주의 분파와 지배 분파가 분열하도록 노력해야한다.” 이 “혁명공산당”에게 운동은 모든 것이고 계급 노선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그룹의 반전 연합인 “우리 이름으로는 절대로 안된다(Not In Our Name)”는 일상적으로 데니스 쿠씨니치 같은 반전 민주당 인사를 초청하여 자기가 조직한 집회에서 연설하게 만든다. 자신이 시작한 “백만 개 지구본 캠페인(Million Globes Campaign)”을 선전하면서 이 그룹은 자유주의 애국자들과 연대하려는 자신의 욕구를 이렇게 확실히 표현했다: “우리는 이 캠페인을 광범위하게 추진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미국 국기를 어떤 경우에도 게양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물론 ‘미국 국기를 깨끗하게 간직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평화는 애국이다”라고 외치는 군중과 함께 있을 때에는 혁명공산당은 자신의 소위 혁명 원칙들을 조심스레 숨긴다.

부시가 재선되자마자 이 그룹은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평가한 후 공포에 질려 이렇게 선언했다: “부시와 그의 일당은 보통 공화당원이 아니다….이들은 기독교 파시스트들이다….” 미국의 국가기구를 파시스트들이 장악할 경우 문제는 심각해질 것이다. 그러나 [혁명 노동자]지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안심시킨다: “그러나 이 나라가 결코 본 적이 없는 그리고 혁명으로 사회를 쇄신할 강력한 투쟁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는 존재한다. 그 지도자는 바로 혁명공산당 의장 밥 어베이키언이다.” 그리고 혁명공산당은 진지한 모습으로 현재 제기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슈는 바로 이것이라고 제안한다: “부시와 어베이키언의 청사진 가운데 어느 것이 승리할 것인가?” 어베이키언 추종자들과 미국 국기를 깨끗이 간직하는 자들 사이의 연합은 진풍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이 연합이 인류의 근본 문제들을 해결할 기구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과 함께 하다가 지금은 떨어져 나간 미국의 국제사회주의조직(International Socialist Organization, ISO)은 민주당과의 야합과 “혁명” 공문구 남발을 혁명공산당과는 약간 다르게 결합시킨다. 이 그룹은 이렇게 요구했다: “케리는 입장을 분명히 해라: 미군을 지금 귀국 시켜라!” 그러면서 동시에 이 그룹은 이렇게 선언했다: “이라크의 회교 저항 운동은 미국 반전 운동의 무조건적 지지를 필요로 한다. 반전 운동은 이 저항 운동의 성격이나 특성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따지는 어떤 행위도 거부해야한다”([국제사회주의평론], 2004년 7월/8월).

바트당 분자들이나 여성을 혐오하는 회교 광신도들의 반(反)노동계급적 성격에 대한 비판은 이 그룹에게는 “시시콜콜하게 따지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혁명가들은 이들과 태도를 달리한다. 우리는 노동자와 피억압 인민에 의한 그리고 이들로 구성된 정부를 원하며 바트당 지배가 회복되거나 회교 신정(神政)체제가 강요되는 것에 반대한다. 노동계급의 이해는 소부르주아 민족주의자, 부르주아 “민주주의자”, 회교 성직자 등의 이해와 정반대이다. 이 점을 우리는 공개적으로 말한다. 이 그룹이 이라크 저항 세력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이들을 길러낸 토니 클리프의 국제사회주의경향이 25년 전에 아야톨라 호메니의 “회교 혁명”을 무조건 지지하면서 회교 반동들에게 굴복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라크 저항 세력의 반동 지도자들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노동계급을 무장 해제시킬 뿐이다. 그리고 이란에서 있었던 피비린내 나는 재앙을 반복할 뿐이다. 당시 이란에서 호메니는 권력을 확실히 장악한 후 자기를 지지했던 좌익 응원 부대들을 감옥에 가두고 살해했다.

상호 배타적인 정치적 입장을 모두 수용하는 습관이 있는 영국의 노동자권력(Workers Power, WP) 그룹은 사람들을 혼동에 빠뜨리는 전문가 집단이다. 이라크에 대해서도 이들은 전형적인 자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쟁중지연합 지도부에 대표를 파견한 이 그룹은 영국 반전운동을 지배해온 평화주의 노선에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 신문에는 좀더 좌익적인 포즈를 취하려고 애쓴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노동자권력 그룹은 이라크 노동자들의 독자적 정치 세력화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동시에 회교도/바트당 저항 운동을 “이라크 혁명”의 화신(化身)으로 간주한다:

“팔루자를 후세인 지지자, 회교 근본주의자, 알카에다가 파견한 ‘외부’ 투사 등의 아성이라고 미국과 영국의 언론은 묘사한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다. 팔루자 투쟁은 미국 주도 점령군에 대한 대중적 저항투쟁이다. 이것은 민족해방투쟁 즉 이라크 혁명의 일부이다.”

“제국주의자들의 팔루자 학살”, 2004년 11월 9일

팔루자 저항 운동에 대중이 참여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운동의 지도부는 바트당 분자들과 회교 근본주의자들이다. “이라크 혁명”이 진정한 사회혁명이라면 노동계급은 국가권력 장악 투쟁에 독자적으로 개입해야한다. 바트당 분자들과 회교 반동들의 군사 동맹이 “이라크 혁명”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은 위험천만할 뿐더러 혼란스럽다.

중동 전역에는 제국주의 강도들에 대한 엄청난 분노가 들끓고 있다. 이 분노를 혁명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에 뿌리를 둔 전위당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것은 점령군에 대한 저항을 노동계급이 지배하는 평등한 사회체제를 위한 투쟁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이라크에는 이러한 당의 맹아조차도 없다. 그러나 이라크 노동계급은 아랍 세계에서 가장 전투적이고 가장 조직력이 강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라크 노동계급은 아직까지는 혁명의 강력한 요인이다. 대대적인 실업과 가열되고 있는 게릴라 전쟁으로 인해 이라크 노동계급은 그 수가 크게 줄었다. 그러나 점령군 지배 하에서도 이들은 여러 번의 투쟁을 벌였다. 예를 들어 바스라에서는 노동자 총파업이 세 번이나 일어났다. 이 투쟁은 대부분 부르주아 언론에 의해 무시되었다. 그러나 2004년 6월 28일자 [네이션]지의 한 기사는 이렇게 보도했다: 이라크 남부에서 벌어진 2004년 1월의 석유 노동자 파업은 임금을 삭감하려는 연합군 임시정부의 기도를 성공적으로 분쇄했으며 핼리버튼 주식회사가 현지 노동자를 외국 노동자로 대체하려는 계획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2004년 9월 30일자 [가디언]지의 보도에 따르면 같은 해 8월 남부석유회사 노동자들은 미군의 나자프 공격에 항의하기 위해 석유 수출을 잠시 중단시켰다.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이 투쟁들은 이라크 노동자들이 반제국주의 투쟁의 결과를 결정적으로 규정할 역량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라크공산당(Iraqi Communist Party)의 한심한 스탈린주의자들은 역대 이라크 노동운동의 지도부가 되어왔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부터 점령군에게 열성으로 협력했다. 이 정당의 당원들은 미국이 임명한 과도정부위원회에 입각했다. 또한 2004년 6월 “주권 이양”의 웃기는 작태가 연출된 후 과도정부위원회의 대체 기구인 소위 임시회의에도 입각했다. 이라크공산당이 잔인한 후세인 정권 하에서 극악하게 탄압 당했다는 사실은 쓰디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모스크바의 지령을 받은 공산당은 노동자 혁명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충분했던 1958년 투쟁을 가라앉히면서 후세인의 바트당 정권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1917] 제 26호 “이라크 역풍”을 참조하시오).

점령군의 하수인 역할을 자청한 이라크공산당과는 달리 이라크노동자공산당(Worker-Communist Party of Iraq)은 점령군에 반대할 뿐 아니라 점령군 하수인들을 비난하고 있다. 이 정당의 중핵들은 회원수 15만 명이라고 주장하는 이라크실업자연합(Union of the Unemployed in Iraq)을 건설하는데 기여했다. 실업자연합은 항의투쟁, 농성투쟁, 파업지원투쟁 등을 다수 조직해왔다. 그리고 노동자공산당 소속 조직가 수십 명은 감옥에 갇혀왔다. 그러나 이 중요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공산당의 활동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다. 회교 저항 세력을 제국주의 점령군과 같은 부류로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회교 정치 집단들은 국제 테러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테러의 다른 한 축인 제국주의에 대항하고 있다. 이들은 이라크에서 전개되고 있는 암흑 시나리오의 한 축이다. 암흑 시나리오의 첫 장들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은 이라크 대중에 대한 미국의 전쟁이다.”

[이라크 인민에 대한 회교 테러 집단들의 만행에 항의하는 이라크노동자공산당의 성명서], 2004년 10월 26일

이라크 저항 세력과 제국주의 점령군 사이의 군사 충돌에서 노동자공산당은 중립을 지키고 있다. 이것은 후세인 정권이 너무 반동적이므로 영국과 미국의 침략에 대해 이라크를 방어할 수 없다는 이전의 입장과 동일선상에 있다.

제국주의 점령군에 대한 투쟁을 내외 자본에 대한 몰수 강령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만 중동의 인민들을 제국주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 레닌주의 전위당은 제국주의 군대를 몰아내기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다. 또한 점령군에 대한 투쟁에서 모든 정치적 색채의 저항 부대들을 군사적으로 방어할 것이다. 특히 그동안 억압당해온 쿠르드족의 분리독립권을 포함하여 이라크의 인종적 종교적 소수파들의 권리를 옹호할 것이다. 더욱이 여성의 평등권과 정교 분리를 위해 투쟁하면서 폐쇄경제에 입각한 신정체제보다 훨씬 나은 미래상을 제시할 것이다. 이를 통해 제국주의 살인마 점령군이 자행하는 파괴와 살상에 치를 떨고 있는 수백만의 이라크 인민을 투쟁으로 분기시킬 것이다.


제국주의: ‘노동계급의 철천지원수’

미국의 지배계급이 이라크에 개입하면서 얻은 가장 주요한 교훈은 전쟁 기구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인 것 같다. 총알 밥과 대포 밥이 될 병사들을 더 모집할 경우 이들의 봉급과 수당으로 지출되는 비용은 상당히 늘어날 것이다. 징병제를 다시 도입하는 것은 미국의 지배계급에게는 너무 큰 정치적 도박이다. 무한정 계속되고 있는 부시의 “테러대전”은 대외의 군사적 모험 확대와 대내의 경찰국가적 억압 강화를 계속할 수 있는 편리한 정치적 구실이 되었다. 그러나 늘어나는 전쟁 비용은 사회보장제도와 의료보험제도를 “개혁”하고 그나마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연방 차원의 사회복지 제도들을 쥐어짜야 나올 수 있다. “자유”를 방어한다는 미명을 통해 새로운 경찰국가의 계획자들은 인신보호법을 비롯한 민주적 권리들을 축소시키고 일반 시민들의 일상에 대한 정부의 사찰과 통제를 확대하는데 여념이 없다.

제국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는 자본주의는 피와 오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사회체제이다. 제국주의 지배 하에서 중동 인민 절대 다수의 미래는 강도 전쟁과 처절하고 절망적인 빈곤의 연속일 것이다. 제국주의 군대의 이라크에 대한 엄청난 파괴와 살상은 미래를 보여주는 불길한 징조이다. 현재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자기들은 깨끗하다는 듯이 “폭력”과 “테러”를 개탄하고 있다. 그리고 가공한 파괴력을 지닌 무시무시한 무기들을 갖추고 있다. 또한 제 3차 세계 제국주의 대전의 전초전에서 서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온갖 잔머리를 굴리고 있다.

이라크를 직접 통제하려는 미/영 제국주의의 모든 실패와 패배를 계급의식이 있는 전 세계 노동자들은 환영한다. 그러나 단순히 제국주의 지배를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인류의 근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착취 받고 억압당하는 노동자와 인민이 토착 아랍 지배자들과 제국주의 상전들의 생산수단을 혁명으로 몰수해야 중동의 풍부한 석유자원은 국제 석유 카르텔 및 이들과 연결된 지역 거간꾼들이 아니라 이 지역 인민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다.

사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대중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혁명적인 새로운 사회체제의 건설은 1958년의 이라크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대단히 큰 전망이었다. 그러나 그때에 부족한 것이 있었다. 화해할 수 없는 계급투쟁 강령으로 무장하여 스탈린주의 사기꾼들을 정치적으로 패배시킬 수 있으며 대중을 국가권력 장악 투쟁으로 올바로 인도할 레닌주의-트로츠키주의 전투 정당이 바로 이것이었다.

국제 노동계급의 세계 역사적 임무는 자본의 학정을 타도하고 국제적 규모에서 사적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위해 집단적 계획경제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현재 제국주의자들의 학살과 회교의 반동이 판을 치고 있는 중동에서 이 전망은 대단히 먼 것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 전망은 빈곤, 기아, 억압이 없는 미래를 향한 유일한 길이다.

이라크의 천연자원을 장악하려는 미국 주도의 침략 전쟁이 패배할 경우 세계의 정치 지형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 제국주의 경쟁국들에 대한 미국의 우위를 확보시키는 대신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모험은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쇠퇴를 가속화시키는 무분별한 도박이 될 것이다. 미국은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 그러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저항 세력에 대해 전술적 승리 이상을 거두지 못했다. 이것은 모든 최첨단 병기 그리고 죽음과 파괴를 가져오는 엄청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미국의 전쟁 기구는 결코 전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중동의 유전을 장악하려는 미/영 제국주의의 축이 무너질 경우 이것은 이 지역 인민뿐 아니라 제국주의국가 노동계급의 승리를 의미할 것이다. 이들 대다수는 이 점을 인식하기에는 아직 정치 의식이 부족하다. 그러나 위대한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이 세계를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마지막 생존 국면이자 최고의 단계인 제국주의는 모든 나라 노동계급의 철천지원수이다.”

“둘 중의 하나”, 1916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