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아프리카

니제르 갈등에 대한 입장

by 볼셰비키 posted Aug 2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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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제르 갈등에 대한 입장

제국주의에 맞서 니제르를 방어하자!

말리와 부르키나 파소 등 ‘서아프리카 반제국주의 연대’를 구축하자!

 

‘초과 착취와 초과 억압’ 지역 니제르/ 2차 대전 이후 프랑스 제국주의의 시련/ ‘신’식민 통치로의 이행/ 신식민지 니제르/ 니제르의 제국주의 분리 통치/ 노동인민 vs 제국주의/ 1960년 독립 이후 프랑스 제국주의의 착취/ 프랑스 경제와 아프리카/ 바줌 정권/ 니제르 쿠데타의 성격/ 니제르 쿠데타와 러시아/ 우리의 요구

 

2023년 7월 26일 아프리카 중서부 니제르에서 바줌 대통령이 축출되는 쿠데타가 발생했다.

니제르는, 19세기 말 프랑스에 의해 발견된 이후 줄곧, 프랑스 식민지였다. 잔인하고 야만적인 제국주의 억압을 겪으며 초과 착취당해왔다. 이번 쿠데타로 축출된 바줌은 프랑스 제국주의의 이해를 현지에서 돕는 하수인이다.

압둘하마네 치아니(일명 ‘오마르’)가 이끄는 쿠데타 주도 세력은 권력을 장악한 직후, 프랑스 제국주의의 초과 착취와 정치적 영향력 차단 조치를 취했다. 8월 1일 프랑스에 우라늄 수출을 중단하고, 8월 4일엔 프랑스와 체결한 군사협정을 파기했다. 같은 날 프랑스 방송도 차단했다.

이러한 조치는 군부와 현지 노동인민 다수의 지지를 얻었다. 다수의 니제르 인민들이 거리로 나가 쿠데타 군부를 환영하며 새 정권의 반제국주의 조치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쿠데타 발생 4일 뒤인 7월 30일, 시위대는 프랑스 대사관에 불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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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를 타도하자!”

Niger coup: Thousands march to support junta 니제르 쿠데타를 지지하는 수천 명의 시위대

(BBC 2023년 8월 3일)

 

니제르와 국경이 접한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역시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이다. 이들 나라에서도 비슷한 반제국주의 정치 격변이 각각 2020년과 2022년에 있었다. 말리와 부르키나파소는 니제르에 연대 의사를 보냈다. 제국주의 군사개입에 맞서 니제르 방어 입장을 천명했다.

반면에, 프랑스와 미국 제국주의는 쿠데타에 즉각 적대했다. 제국주의는 은근슬쩍 뒤로 물러서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를 앞세운다. 자칫 아프리카 인민의 반제국주의 정서를 너무 자극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1975년 구성된 ECOWAS는 나이지리아, 세네갈, 기니비사우 등,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국가들의 조직이다. ECOWAS는 말리, 부르키나파소, 기니, 니제르 등 반제국주의 정권교체가 일어난 나라들의 회원 자격을 정지시켰다. 니제르에는 ‘기존 정권을 복구하지 않을 경우, 군사개입하겠다’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 * *

우리 볼셰비키그룹은, 2023년 7월에 일어난 쿠데타가 제국주의 침략으로 오랫동안 신음해 온 니제르 인민의 저항 의지의 반영이라고 판단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쿠데타와 그로 인한 정권교체는 반제국주의적이며 진보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한다. 그런 인식 위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니제르 갈등에서, ‘제국주의의 패배와 반제국주의 저항의 승리’를 지지한다.

 

‘초과 착취와 초과 억압’ 지역 니제르

니제르는 제국주의 초과착취 지역이다. 19세기 말부터 1960년까지, 니제르는 프랑스 제국주의의 직접 통치 아래 있었다. 프랑스는 니제르를 그 구성 일부로 하는 서아프리카 식민지 노동인민을 잔혹하게 억압하고 착취했다. 다음 기사를 통해 그 참혹상 일부를 엿볼 수 있다.

“서아프리카를 프랑스가 식민지로 만든 이야기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이야기 중 하나일 것이다. 프랑스인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극도로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방법에 의존했던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옷을 벗기고, 무거운 쇠사슬을 걸고, 신체 일부를 벽에 걸고, 그들의 여성과 아이들을 강간하고,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고문했다.

우리는 멀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알제리 사람의 뼈로 비누를 만드는 등 끔찍한 행위를 만날 수 있다. 최근에도 프랑스는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어려울 만큼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프랑스는 식민지 직접 통치 1세기 반 동안, 여러 이유로 수십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을 죽였다. 예를 들어, 1944년 12월 1일 아침, 프랑스 군대는 티아로예 대학살을 저질렀다. 그들은 2차 세계대전에서 싸운 후 집으로 돌아오는 수백 명의 세네갈 군인이 개인적 권리를 주장하고 봉급 지불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죽였다. 그것은 마치 세네갈 사람이 전쟁에서 프랑스를 위해 단순히 싸우고 죽는 것만을 영광으로 느꼈어야 했고, 그들에겐 어떤 요구도 허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주목할 점은, 프랑스가 저지른 비인간적인 범죄 중 어떤 것에 대해서도 보상금을 지급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인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자기 조상이 아프리카에 ‘문명’을 들여왔고, 아프리카 대륙 사람들이 더 ‘인간적’이 되도록 도와주었다고 칭찬할지도 모른다. 여러 저명한 작가와 역사학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비서구인이 더 열등하다는 관념은 유럽과 미국 전역에 여전히 만연해 있다.”—Niger coup: End of democracy or end of French colonialism? 니제르 쿠데타: 민주주의의 종식인가, 아니면 프랑스 식민지의 종식인가?

 

2차 대전 이후 프랑스 제국주의의 시련

제국주의 국가 사이의 이전투구인 2차 대전에 온 힘을 쏟은 프랑스 제국주의는 힘이 크게 약화되었다. 그로 인해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 있는 식민지 장악력도 크게 저하되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식민지배를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프랑스는 기존 식민지역에 군대를 끌고 되돌아와 주인 노릇을 계속하려고 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제국주의 장악력은 약화된 반면,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식민지 노동인민의 저항은 한층 거세졌기 때문이었다.

1954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는 베트남 인민과의 전쟁에서 대패했다. 프랑스의 패배와 베트남의 승리 소식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던 알제리 인민의 사기를 높였다. 알제리 인민은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며 더욱 거세게 투쟁했다. 1954년부터 알제리에서 반제국주의 내전이 시작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956년, 프랑스는 나세르 정권의 이집트를 상대로 영국, 이스라엘과 함께 제2차 중동전쟁을 벌였으나, 이 전쟁에서도 패배했다.

 

‘신’식민 통치로의 이행

제국주의 전쟁으로 타격을 크게 입은 프랑스는 베트남과 이집트에서의 패배, 그리고 알제리에서의 장기전으로 더욱 시달렸다. 제국주의의 일방적 통치가 허용될 수 없는 역관계가 조성되었다. 프랑스인 총독과 군대를 파견하여 직접 통치하는 방식 즉, ‘전통적’ 식민 지배는 불가능해졌다. 형식적이나마 식민지역의 정치적 독립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본질은 금융자본의 지배이다. 금융자본의 경제적 지배가 지속되는 한 제국주의 지배는 온존된다. 현지의 산업망을 움켜쥔 제국주의 금융자본은 자본의 힘을 이용하여 현지의 경제를 장악한다. 그리고 돈의 힘으로 현지의 정치 군사 문화 엘리트를 포섭하여 친제국주의 그물망을 조직한다. 이런 방식으로 금융자본의 이해를 위해 복무하는 현지 지배집단을 구축한다. ‘간접적 방식의 식민 통치’ 즉, ‘형식적인 정치적 독립은 허용하되, 자본의 힘으로 더욱 교묘하고 은밀하게 지배하는’ 소위 신식민지 통치의 시대로 이행했다.

1958년 이후 프랑스는 서아프리카 식민지들에 자치와 정치적 자립을 허용했다. 이 시기에 기니, 니제르, 오트볼타(지금의 부르키나파소), 말리 등 여러 국가가 독립했다. 8년간의 반제국주의 내전에서 승리한 알제리가 1962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신식민지 니제르

그러나 정치적 독립은 형식적이었다. 제국주의 초과착취와 초과억압의 사슬은 끊기지 않았다.

1960년 독립한 니제르의 첫 번째 대통령은 하마니 디오리였다. 그는 프랑스 제국주의 하수인이었다. 그는 매우 부패한 반인민적 친제국주의 정치집단을 대표했다. 인민들은 디오리에 분노했다. 이 분노로 1963년에는 쿠데타 시도가, 1965년에는 암살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둘 다 실패했다. 디오리는 학생과 노동자의 시위를 프랑스 제국주의 지원을 받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니제르의 제국주의 분리 통치

‘나누어 다스리기(분리 통치)’는 계급 지배의 기본기이다. 그것은 제국주의 식민 통치의 보편적 방식이기도 하다. 식민지배를 위해 제국주의는, 현지 역사와 문화를 꼼꼼히 연구한다. 이를 통해 ‘지역, 민족, 부족, 종교, 성별 등’ 피억압인민이 서로 싸울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찾아낸다. 그리고 그 갈등을 정치, 교육, 언론, 조작된 폭력 사태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부추긴다. 오랫동안 어울려 살던 서로의 ‘실금’ 같은 차이는, 그 과정에서,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처럼 벌어진다.

지배계급이 조성한 이 인위적 갈등을 통해 계급 지배와 제국주의 폭압을 뒤로 숨긴다. 지배계급이 파놓은 ‘이이제이’의 함정에 빠져 피억압 인민끼리 서로 험악하게 싸우는 동안, 지배계급은 저항의 창끝을 유유히 피한다.

프랑스 제국주의의 아프리카 통치도 마찬가지이다. 니제르 다수 부족은 하우사족이다. 하지만 프랑스 제국주의는 의도적으로 소수 부족인 제르마족, 송가이족, 모리족을 통치 파트너로 삼았다. 프랑스는 이 소수 부족으로 하여금 하우사족 등 다수를 억압하게 했다. 아프리카의 부족 간 갈등은 이러한 제국주의 지배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노동인민 vs 제국주의

제국주의에 영합하는 하수인의 정치는 필연적으로 인민의 지지를 상실한다. 제국주의 초과착취와 초과억압을 현지에서 집행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반인민적이며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자기 배만 불리는 부패집단이다.

노동계급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시기의 식민지역에서, 학생이나 군부 일부는 제국주의가 아니라 노동인민의 압력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 일부의 학생이나 군부는 사회를 진보적 방향으로 선도하는 정치엘리트를 자임한다. 리비아의 카다피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도 그런 경우이다. 니제르에서도 프랑스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쿠데타가 몇 차례 일어났다. 노동인민의 제국주의 초과 착취로 오랫동안 고통받는 니제르 노동인민은 그 쿠데타를 통해 자신의 정치 지향을 발견하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반제국주의 정권교체가 일어나면 프랑스 제국주의는 니제르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되찾기 위해 즉시 개입했다. 이기적이고 부패한 현지 하수인을 이용하여 친제국주의 정권을 다시 수립했다. 제국주의와 이에 저항하는 노동인민이라는 두 세력의 충돌과 역관계에 따라 아프리카 식민지역에서는 폭력적 정권교체가 수시로 일어났다.

 

1960년 독립 이후 프랑스 제국주의의 착취

니제르 국내 정치가 제국주의와 인민의 역관계 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동안에도, 프랑스 제국주의는 니제르 독립 이후에도 천연자원 수탈을 계속했다.

1978년 니제르에서 우라늄이 발견되었다. 니제르는 카자흐스탄, 러시아와 더불어 우라늄 공급 상위 3개국 안에 든다. 우라늄의 발견으로 니제르의 경제적 가치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우라늄은 프랑스 금융자본의 소유이다. 니제르 우라늄 채굴장 ‘소마이어’ 지분의 63.4%는 프랑스 원자력 기업 ‘오라노’의 것이다. 나머지 36.6%만이 니제르 정부 지분이다. 광물 자원에서 나오는 이윤 대부분은 프랑스 금융자본에게 흘러간다. 나머지 이윤 일부는 니제르의 소수 특권층 즉, 제국주의 하수인 매수에 쓰인다.

니제르 노동인민의 고달픈 삶은 여전하다. 노동인민 5명 중 2명이 하루 2.15달러(2,800원) 미만으로 생활한다. 반(反)프랑스 시위 참가자는 “니제르인은 프랑스의 약탈 때문에 하루 세끼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라고 말한다(한국일보 2023년 8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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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야 걱정하지 마. 다 먹으면 떠날게.”

 

프랑스 경제와 아프리카

유럽의 전력 생산 원전 비율이 25%인 반면, 프랑스는 70%이다. 그리고 프랑스 원자력의 최소 20%는 서아프리카에서 수탈한 우라늄을 원료로 한다. 제국주의 국가 모두가 그렇듯, 니제르, 말리, 부르키나파소 등이 프랑스 지배력에서 벗어난다면, 프랑스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Niger coup: End of democracy or end of French colonialism?).

프랑스는 ‘CFA(아프리카 금융공동체) 프랑’이라는 통화(通貨)를 서아프리카에 강제 했다. 기축통화로 강제되는 미국의 달러처럼, 이는 서아프리카 경제에 대한 프랑스 패권의 주요 수단이다.

“프랑스 식민주의 유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한때 프랑스 프랑에 고정되었고, 지금은 유로에 고정된 통화인 ‘CFA 프랑’이다. 그것은 니제르를 포함하여,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프랑스의 금전적 패권의 원천이다.

미국은 그러한 착취를 지지해왔는데, 냉전 동안 옛 프랑스 식민지들을 소련의 지정학적, 이념적 영향에 대항하는 보루로 보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아프리카의 헌병’ 노릇을 한다. 프랑스의 영향력은 에리트레아에서 니제르를 거쳐 세네갈에 이르는, 약 12개국에 걸친 광대한 사헬 지역을 포괄한다. 이 지역에서 프랑스는 알카에다 같은 테러리스트 저항자들에 맞서 싸운다.”—The Niger crisis shows France’s quasi-empire in Africa is finally crumbling 니제르 위기는 아프리카에서 프랑스의 제국적 지위 붕괴를 보여준다

 

바줌 정권

2023년 7월 26일 쿠데타를 통해 축출된 바줌 대통령은 프랑스 제국주의에 부역하는 현지 하수인이다. 바줌 대통령은 노동인민의 반제국주의 항쟁을 일관되게 적대하며 프랑스 제국주의의 이해에 복무했다.

노동인민은 프랑스군의 니제르 주둔을 반대했다. 하지만 바줌 대통령은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에서 철군한 프랑스군을 니제르에 재배치해달라고 프랑스에 요구했다. 니제르 노동인민은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정부는 시위 주도자를 ‘공공질서 교란’ 혐의로 9개월간 수감하는 등 강경 진압했다(한국일보 2023년 8월 2일).

 

니제르 쿠데타의 성격

2023년 7월 26일 일어난 쿠데타는 친프랑스 제국주의 바줌 대통령을 억류하고, 프랑스에 우라늄 수출 중단, 프랑스와의 군사협정 파기, 프랑스 방송 차단 등의 조치를 시행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쿠데타는 반제국주의적이다.

그러나 쿠데타 정부를 구성하는 압두라하마네 치아니 장군, 아마두 압드라마네 대령, 살리푸 모디 장군 등 군사 지도자들은 모두 친제국주의 정권하에서 복무한 이들이다. 친제국주의 정권이 인민의 지지를 잃어가자, 니제르 인민의 반제국주의 해방 열망을 이용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니제르 쿠데타 정부는 식민지에 종종 등장하는 민족주의 좌파 정부이다. 중국의 장개석, 이집트의 나세르, 리비아의 카다피, 이란의 호메이니 등과 같은 유형의 정치 세력이다. 이들은 제국주의와 현지 노동인민의 반제국주의라는 양쪽의 압력을 받아 그 힘으로 떠오르며 권력을 쥔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인민 사이의 균형점에 서서, 양쪽의 압력을 받는다. 정세와 역관계에 따라, 때로는 왼쪽 때로는 오른쪽의 압력을 대표하며, 그 압력을 반대편에 전달한다.

식민지 민족주의 좌파 세력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으로’ 현지의 반제국주의 열망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들은 일관되게 반제국주의적일 수 있는, ‘노동계급의, 사회주의적’ 지도부가 아니다. 부르주아적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반동은 필연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계급은,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는 국면인 지금, 이 세력과 함께한다. 하지만 동시에, 훗날 이들의 필연적 이탈과 배신을 배제하지 않는다. 지금 존재하거나 장차 구성될 노동계급의 사회주의 지도부는 이 세력에 대한 환상을 결코 갖지 않는다.

영상 : Burkina Faso President: 'Russia Is Family for Africa'(부르키나파소 대통령 연설/ 한글자막)

 

니제르 쿠데타와 러시아

러시아 정부는 ‘폭력 대신 대화로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라는 표현으로 제국주의 군사개입을 완곡하게 경고했다. 그러나 바그너그룹은 니제르 쿠데타를 ‘식민지 개척자에 대한 공격’이라는 보다 노골적 표현으로 니제르 쿠데타를 지지했다. 프랑스 대사관을 공격한 7월 30일 쿠데타 지지 시위에서는 “러시아 만세” “푸틴 만세”라는 구호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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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타도! 푸틴 만세!”

니제르 '반프랑스 시위' 거센 건 '과거사 아픔' 때문이었다

(한국일보 2023년 8월 2일)

 

그러나 러시아의 푸틴 역시 식민지 민족주의 좌파 정권이다. 노동계급이 아닌 자본가 정권이다. 이 점을 우리는 이전 글에서 여러 차례 설명했다.

“식민지 특히 방대한 천연자원이 있는 식민지의 경우에도,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하는 보나파르트주의 권력이 종종 등장했다.…차베스 이후의 베네수엘라, 카다피 시기의 리비아, 1979년 혁명 이후 이란, 아사드의 시리아 그리고 지금 푸틴의 러시아 정권이 이러한 식민지 보나파르트 정권이다. 이 정권들은, 한편으로 세계 자본주의 착취 체제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자원이 풍부한 자국의 이해를 제국주의로부터 방어한다.”—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회주의 그리고 노동계급

“푸틴 포함 러시아 자본가 계급은 친서방적이었고, 심지어 미국과 세계운영의 동반자가 되려는 순진한 환상마저 품고 있었다. 이러한 러시아를 결정적으로 각성시킨 것은 2013~14년 우크라이나 사태였다. 구 소련 영향권의 나라들이 미국 수중에 차례로 떨어진 뒤, 하나같이 러시아 적대국이 되는 것을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게 되었다.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상하자 치아가 무척 시려워진 것이다.

2011년부터 미국 주도 정권교체에 시달리던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요청에 2015년 러시아는 드디어 움직였다. 같은 처지에 시달리던 이란과 더불어 시리아에 군대를 파견하여 아사드 정권 방어에 나섰다. 치아를 지키려면 먼저 입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벨라루스 사태에 대하여

니제르 쿠데타를 지지하는 러시아에 대한 태도는 앞서 설명한 니제르 군부에 대한 태도와 동일하다. ‘지금 함께 싸우되, 환상은 금물이다. 이탈과 배신은 필연이며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은 사활적이다.’

 

우리의 요구

—제국주의로부터 니제르를 방어하자!

—말리와 부르키나 파소 그리고 니제르의 ‘반제국주의 연대’를 건설하고, 이를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대하자!

—제국주의로부터의 궁극적 해방은 사적소유를 철폐한 사회주의로만 가능하다. 반제국주의 승리로부터 ‘노동자정부 수립과 사적소유 철폐’로 나아가자!

—레닌과 트로츠키의 연속혁명 강령에 기초한 노동계급 혁명정당을 건설하자!

 

2023년 8월 25일

볼셰비키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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