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조직'들에 대한 분석/평가

자본주의 통치 ‘야바위놀음’과 노동계급 내 ‘자본주의의 벗’

by 볼셰비키 posted Jul 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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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통치 ‘야바위놀음’과  

노동계급 내 ‘자본주의의 벗’ 

 

속임수/ 부르주아 독재: “사람이 누구로 바뀌든, 정부 조직, 당이 어떻게 변화하든”/ 야바위놀음/ ‘양당’ 야바위놀음/ 자본주의 리버럴 분파의 ‘마르크스주의’ 우군/ ‘자본주의 정당이지만, 야당일 때는 우군이다.’/ 윤석열이 당선된 까닭/ 자본주의 두 분파의 도긴개긴 지지율/ 친민주당 지도부가 이끄는 윤석열 반대 투쟁/ 2017년, 민주당 정권에 대한 기대/ 2022년, 민주당 집권 5년이 남긴 것/ 민주당 정권의 반노동 행각/ ‘계급협조주의’의 배경과 근원/ 노동자연대와 노정협의 계급협조주의 합리화/ 노정협의 파시즘론: ‘민주당과 더불어 싸우는 통일전선’을 위하여: •민주당과의 평화 연대? ••민주당의 존립이 위험하다? •••노정협의 “높은 정치의식”/ 파시즘/ 식민지 ‘유사(類似) 파시즘’/ 계급협조주의와 광의의 파시즘론/ 자본가가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인민전선’: 체제 위기 극복의 또 하나의 수단/ 계급의 눈을 부릅뜨자 

 

속임수 

속임수는 착취와 억압을 유지하는 계급 지배의 기본기 중 하나이다. 폭력만으로는 계급 지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 폭력은 피억압 인민의 적개심을 지나치게 자극하고, 지배의 실체를 위험한 수준으로 노출한다. 폭력 집행 기구는 비대해지고 오만방자해진다. 지배계급 내부 갈등 수위도 불필요하게 높인다. 그리하여 안정적 지배를 위한 에너지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그리하여 속임수가 필요하다.  

사적소유와 계급사회는 인류의 본원적 특성이 아니다. 인류 역사 끝무렵에 나타났을 뿐이고, 곧 사라져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인류가 영속한다면, 사적소유와 계급 적대로 인한 사회적 고통이 사라진 사회 속에서,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수준의 문화를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사적소유와 계급적대의 폐지는 그러한 미래를 위해 가장 결정적 필요조건이다. 

착취 계급에게 이러한 사실은 불길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허위의식으로 사회구성원을 세뇌하며 과학적 사실에 눈뜨지 못하게 한다. 즉, 온갖 사회적 고통의 근원인 ‘사적소유와 계급 적대가 애초부터 있었던 자연스러운 것이고 앞으로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라는 허위의식이다. 불평등, 가난, 차별, 전쟁, 괴롭힘, 학살, 환경재앙 등 사회적 고통의 근원이 계급 적대에 있다는 것을 감춘다. 사적소유에 기초한 계급 적대라는 진짜 적을 감추고 인종, 성, 지역, 민족 등 가짜 적을 던져준다. 가짜 적을 향한 싸움에 골몰하게 한다. 진짜 적은 그 뒤로 슬쩍 숨으며 잔명을 이어간다. 

 

부르주아 독재: “사람이 누구로 바뀌든, 정부 조직, 당이 어떻게 변화하든” 

주로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복수 정당 체제는 허위의식을 자아내는 핵심 수단이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는 양당 체제를 이용한 부르주아 권력 독점의 상투적 구호이다. 못 살겠기 때문에 벗어나고 싶고 갈아보고 싶지만, 특정 개인이나 정당의 변화만으로는 고통의 근원인 계급 지배가 거의 타격받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인민은 자신이 겪는 고통이 마치 자기 자신의 이전 선택 때문이라고 여기게 한다. 

계급 적대의 국가가 가지고 있는 이 비밀을 레닌은 이렇게 설명한다. 

“민주공화국에서 ‘부(富)’의 무한한 힘이 보다 명료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그 부의 힘이 이제 더 이상 정치적인 기구의 결함이나 자본주의의 정치적 외피의 결함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공화국이야말로 자본주의에게는 가장 좋은 정치적 외피이며, 더욱이 한때 자본은 이러한 최상의 외피를 가져본 적이 있기 때문에 자본은 이제 자신의 세력을 아주 확실하고 견고하게 구축하는 바, 부르주아 민주공화국에서는 사람이 누구로 바뀌든, 정부조직, 당이 어떻게 변화하든 이제 더 이상 그것들이 자본을 동요시킬 수 없는 것이다.”—『국가와 혁명』 

 

야바위놀음 

주로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복수 정당 체제는 관광지 양아치들의 야바위놀음과 닮았다. 야바위꾼은 어느 컵에 공이 들었는지 맞혀보라며, 두세 개의 컵을 이리저리 섞는다. 하지만 실제로 공은 어느 컵에도 없다. 공은 오직 꾼이 필요할 때만 나타난다. 그런데 어리숙한 호구는 그 속임수에 넘어간다. 애초에, 컵의 움직임을 아무리 집중하여 노려봐도 그 공은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집중하여 선택한다면 언젠가는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호구는 믿는다. 

그런데 꾼 혼자서는 이 놀음을 완성할 수 없다. 군중 속에 협조자가 필요하다. 바람잡이 또는 자발적으로 게임에 나서는 적극적 호구가 그들이다. 이들의 도움이 있을 때 비로소 야바위 놀음은 활기를 띠며 완성된다. 

 

‘양당’ 야바위놀음 

계급 지배의 속임수 역시 마찬가지이다. 피지배계급이 “부르주아 민주공화국에서는 사람이 누구로 바뀌든, 정부조직, 당이 어떻게 변화하든 이제 더 이상 그것들이 자본을 동요시킬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몰라야 한다. 사회적 고통이 자본주의 체제 때문이 아니라, 지금 집권하고 있는 개인이나 정당이 문제라는 인식에 피지배계급이 사로잡혀 있어야 계급 지배를 유지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공화당과 민주당, 한국의 경우 민주당과 극우당(자유당, 공화당, 민자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국민의 힘 등)이 야바위놀음에 쓰이는 한 쌍의 두 패이다. 지배계급은 두 패를 들고 있다가, 상황에 따라 이것 빼들었다 저것 빼들었다 하면서 노동인민을 똥개 훈련시키며 기만한다. 서로 번갈아 가며 집권하는 방식으로 피지배계급의 적대로부터 근본 원인을 은폐한다. 4~5년마다의 투표를 통해, ‘집권자를 바꾸거나 집권 정당을 바꾸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는 환상으로 사회구성원을 길들인다. 

 

자본주의 리버럴 분파의 ‘마르크스주의’ 우군 

쳇바퀴 속 다람쥐처럼 노동인민을 자본주의 틀 속에 가두어 길들이는 이 자본주의 야바위놀음도 노동인민 속 ‘의식적 그리고 무의식적 협조자’의 도움을 통해 유지된다. 그 협조자들은 ‘고통은 지금 집권하고 있는 개인이나 개별 정당 때문’이라는 자본주의 허위의식에 동조한다. 그래서 ‘집권 여당과 경쟁하고 있는 자본주의 분파와 더불어’ 현 집권자와 정당을 바꾸자고 노동인민을 꼬드긴다. 노동인민 속에 있기 때문에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마르크스주의자의 임무는 노동계급의 계급적 각성을 돕는 것이다. 그 각성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투쟁 속에서 진행된다. 그 일상적 사안에 배어 있는 계급적 함의를 포착하여 그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제공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임무이다. 

지금의 윤석열 퇴진 투쟁에서 그 임무는 ‘윤석열은 지금 시기 자본주의 얼굴마담이라는 것, 이전 당번이었던 민주당은 그와 한패이고 공범이라는 것, 윤석열을 폭로하고 그를 끌어내리는 투쟁을 해야 하지만 그 투쟁은 자본주의 타도를 향한 방향성 위에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 자본주의 야바위놀음의 한 패인 리버럴에 면죄부를 주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적 시기에 노동계급 대다수는 각성되어 있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의 작업은 더디고 인기가 적다. 그러자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일부는 대중의 일상적 정서를 추종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 분파를 우군으로 끌어들이며, 실제로는, 자신들이 계급적 선을 넘어 친자본주의로 나아가며 ‘노동계급 내부 자본주의의 벗’이 된다. 

지금 윤석열 퇴진 투쟁을 핑계로 민주당과 어깨를 엮어 걸고, 노동계급에 계급협조주의를 교육하는 ‘마르크스주의 표방’ 단체로는 노동자연대와 노정협이 대표적이다. 

 

‘자본주의 정당이지만, 야당일 때는 우군이다.’ 

전자는 트로츠키주의 방계, 후자는 스탈린주의를 내세우지만, 두 단체의 논리 구조와 표현은 거의 흡사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윤석열 퇴진 투쟁은 친민주당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직접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은 자본주의 정당이기는 하나 집권하고 있지 않은 야당이다. 그러므로 민주당은 우군이 될 수 있다.’ 

 

 

노정협 

노동자연대 

‘친민주당 세력이 반윤석열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맞다.’ 

현재 윤석열 퇴진 투쟁은 ‘촛불행동’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정치적 성격이나 요구로 볼 때 이들은 중간계급의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투쟁의 주요 기획자들, 참여자들은 민주당은 아니다. 2023.02.23 

퇴진 집회 측 조직자들이 친민주당 사회운동가들이긴 하지만, 민주당 자체가 이 집회를 주도하는 것은 아니다. 2022. 11. 11 

‘그러나, 민주당은 야당이므로’ 

문재인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 시점에까지 민주당을 주된 투쟁 대상으로 돌리는 것은 명백한 좌편향 2022.10.24 

그러나 현재 민주당은 야당이 됐다. 그리고 윤석열 퇴진 집회는 윤석열 정부의 우경적 공세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열렸다. 22.10.25 

민주당은 자본주의 체제의 수호를 명백히 하는 자본주의 정당이지만, 현재 집권당이 아니라 야당이다. 22.11.11 

‘민주당은 우군이 될 수 있다.’ 

파시즘을 향해가는 윤정권에 대해서는 이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 정치세력들을 총결집시켜 싸워야 합니다. 민주당도 이 투쟁에 동참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2022.12.24 

지금 윤석열 정권 하에서 국민의힘, 민주당 양당을 다 적으로 돌려서 노동자계급이 더 많은 적을 양산해 고립을 자처하는 게 우리에게 유리한가? 아니면 윤석열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다 포괄하여 맞서고 그 투쟁을 노동자 진보진영이 주도하여 윤석열을 분쇄하는 것이 우리한테 유리한가? 진보진영이 정권타도를 외치고 전쟁반대와 노동자 투쟁에 우호적인 이 세력들을 외면해서 좋을 게 하나라도 있는가? 2023.02.23.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힘과 민주당은 다를 바 없다고 일축하는 것은, 당면한 적에 맞선 투쟁의 힘을 분산시킬 것이다. 

 

윤석열 정부 반대 진영의 전열이 흩어져 우파 정부가 그 틈을 비집고 운동을 각개격파하는 것을 막기 위한 당면 전술일 뿐이기 때문이다. 22.11.11 

 

그리고 이들이 주장하지 않는 주장이 더 중요하다. 이 두 단체는 윤석열 반대 투쟁에 나서면서, ‘민주당 정권의 반노동, 반평화, 미국과 일본을 향한 친제국주의적 성격과 그로 인한 실정과 학정’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이 두 단체는 ‘자본가계급, 노동계급’ 등 선명한 과학적 단어보다는 모호한 말로 계급적 선을 얼버무린다. 먼저, 노정협은 지금까지의 반윤석열 집회 지도부를 “중간계급”이라는 애매한 말로 표현한다. 민주당을 배척하지 말라고 호소하면서 그들을 “전쟁 반대와 노동자 투쟁에 우호적인 세력”이라는 놀라운 표현까지 쓴다. 한편 노동자연대도 민주당과 국민의 힘에 대한 계급적 규정을 가능하면 피한다. 윤석열 정권을 그저 “우파 정부”라고 부른다. 민주당을 “좌파”니 “개혁”이니 하고 부르며 같은 편으로 끌어당기기 위해서이다. 물론 실제로는 끌어당긴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진영으로 스스로 끌려간 것이다. (노동자연대의 계급전선 교란: 정의당 성격 규정을 중심으로 참고) 

 

윤석열이 당선된 까닭 

국민의 힘의 현 대통령 윤석열은 개인적 매력이 역대 가장 떨어지는 인물일 것이다. 매사 교양 없고 깔보는 말투에다 심각한 말실수가 잦다. 가랑이를 쩍 벌려 앉고 말할 때 계속 도리질하는 경박한 몸짓을 가지고 있다. 툭하면 새벽까지 술판을 벌여 벌건 얼굴로 나타난다. 처와 장모는 현직 대통령의 힘으로써만 막을 수 있는 각종 추문과 비리 덩어리다. 게다가 윤석열 가족의 멘토 역할을 한다는 ‘천공’은 박근혜 시절 최순실보다 못하지 않은 희비극적 인물이다. 

이렇게 매력 없는 인물이었음에도 대통령에 용케 당선되었다. 자기가 잘 나서가 아니라 상대가 못나서였다. 오직 집권 5년 동안 노동인민의 인내를 바닥까지 털어먹은 민주당 문재인 정권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다.  

민주당은 박근혜퇴진투쟁의 어마어마한 에너지에 힘입어 대통령 자리를 줍듯이 얻었다. 그러나 180석이라는 다수 의석의 지원까지 받는 임기 5년 동안 ‘박근혜퇴진투쟁’의 열기를 차갑게 식혔다. 박근혜를 끌어내린 승리의 기쁨과 자부심은 냉소와 환멸로 바뀌었다. 

그런 점에서 2022년 3월 대선에서 윤석열 당선은 그의 승리라기보다는 ‘그래 알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라는 깊은 배신감의 결과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자본주의 두 분파의 도긴개긴 지지율 

윤석열 지지율은 50%를 넘겨본 적이 거의 없다. 집권 초기 ‘허니문’도 누려보지 못했다. 첫 서너 주 동안 간신히 50%를 넘겼을 뿐, 그 후부터는 줄곧 30~40% 언저리이다. 심지어 정권 출범 1년도 못 가서, 임기 말에나 볼 수 있는 20%대까지도 내려갔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사이 민주당에 대한 깊은 실망이 사라지고 지지율이 회복된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정권의 지지율은 골골하면서도 30~40%대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 지지율도 30~40%대에서 골골한다(헤럴드경제 2023년 7월 2일). 

 

친민주당 지도부가 이끄는 윤석열 반대 투쟁 

윤석열 반대 투쟁은 2022년 5월 윤석열 임기 개시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지난 1년 사이 윤석열 정권은 줄곧 헛발질을 일삼았다. 스스로와 주변의 추문과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반노동 정책을 노골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진집회의 세는 그다지 상승하지 않는다.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윤석열 퇴진 투쟁은 사실상 친민주당 집회이다. 노정협과 노동자연대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이전의 ‘조국 수호 투쟁’을 벌이던 친민주당 단체들이 주도한다. 이재명 등 민주당 인사가 빈번히 무대에 오르고, 모든 악은 윤석열과 자본주의 우익 분파의 잘못으로만 설명된다. 한편 민주당은 선하고 정의로운 정치세력으로 우러러지며, 민주당 비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윤석열 퇴진 이후의 현실적 대안으로 민주당이 유일하고, 집회는 그 이상을 선동하지 않는다. 

민주당 비판을 그 집회가 어떻게 다루는지 노동자연대는 이렇게 전한다. 

“당장에 우리가 바로 지난 호 신문에서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기에 대해서 혹독하게 비판했어요. 그것 때문에 우리가 윤석열 퇴진 집회에서 우리의 신문을 판매하고 리플릿을 반포하는 데 큰 방해를 받았습니다.”—좌파적 포퓰리즘, 무엇이 문제인가? 

 

2017년, 민주당 정권에 대한 기대 

2016년 10월부터 2017년 4월까지 20여 주 동안 매 주말마다 수십 만이 모여 얻은 가장 뚜렷한 성과가 민주당의 문재인 정권이었다. 1960년 이후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자부심이 컸다. 그런데 매서운 추위와 싸우며 주말을 광장에서 보낸 것은 단지 민주당 정권을 바란 때문이 아니었다. 각자의 삶 속에서 각종 불의를 겪던 노동인민이었다. 그 울분으로 그 자리에 모였다. 박근혜 정권이 퇴진하면 각자의 삶에서 겪던 고통이 크게 누그러질 것을 기대했다. 

‘만연한 청년실업, 사회 붕괴 수준의 출산율과 그 원인인 박약한 복지, 세월호 침몰과 진상규명 부재, OECD 최고 수준의 산업재해 사망, 주로 중국을 겨냥한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사드 배치, 40%에 달하는 비정규직과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 사망자만 1만4천 명으로 추산되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헌법재판소에 의한 통합진보당 해산, 민주주의와 인권을 침해하는 테러방지법, 삼성의 비리와 최순실 커넥션’ 등. 

2016여론조사.png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부동층이 크게 늘어난 것이 이번 여론조사에서 확인됐다.…새누리당을 이탈한 지지층이 민주당 등 야당으로 흘러들지는 않았다. 민주당 지지율은 29.5%에서 26.3%로…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일보 2016년 12월 12일 

 

2022년, 민주당 집권 5년이 남긴 것 

민주당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위 사안 중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다. 게다가 문재인 정권은 자칫 1980년 광주 학살과 비슷한 결과를 낳았을 2017년 기무사의 쿠데타 음모도 조사하지 않고 뭉갰다. 민주당 정권은 임기 내내 한국인의 반일 정서를 부추기며 대규모 반일 캠페인을 장기간 벌였다. 그러나 오직 관심 돌리기용일 뿐이었다. 그래 놓고도, 야당 시절 소리 높이 반대하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을 은근슬쩍 추인하였다. 

민주당 정권의 임무는 노동인민의 소망 실현이 아니었다. 2016~17년 투쟁으로 고무되었던 노동인민의 진출을 체계적으로 뒤돌려 세우고, 자본주의 우파의 치명상으로 훼손되었던 양당 통치를 안정적으로 복원하는 것이었다. 민주당 문재인 정권은 이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다. 

무명소졸(無名小卒)이었던 윤석열을 연거푸 승진시킨 것도 문재인이었다. 조국 스캔들로 언론을 여러 해를 달구면서 그를 유력한 정치인사로 만들었다. 그렇게 키워, 허약하던 자본주의 우파 정당에 분양했다. 

이와 더불어, 민주당 문재인 정권은 ‘나누어 다스리기’ 아이템 하나를 제도화한 정권이기도 하다. 남녀를 서로 적대하게 만드는 소위 ‘여성주의’가 그것이다. 약화되어 가던 지역 적대를 효과적으로 보완했다. 

(참고 20대 대선에 대한 입장 : 자본주의 정치 시소 놀음을 거부하자! 노동계급의 두 후보에게 투표하자!/ 2020년 4.15총선에 대한 입장: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에 투표하자!) 

 

민주당 정권의 반노동 행각 

놀랍게도 노정협은, 민주당을 “노동투쟁에 우호적인 세력”이라고 묘사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금의 윤석열 정권과 다를 바 없는, 반노동 행각을 일삼던 정권이다. 시간이 지난 상처는 지금의 고통에 밀려 덜 아팠던 것처럼 느껴지고 잊혀지기도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지금과 유사한 굵직한 몇 가지만 추려보자. 

-2017년 6월 14일 경찰은 건설노조 간부의 노조활동을 불법으로 몰면서 구속했다. “세종시 건설현장 원·하청에 8시간 노동을 요구하고, 비산먼지 발생사실과 건설기계 임대차계약서 미작성을 지자체와 국민신문고에 신고한 것을 공동공갈 행위”로 몬 것이었다(문재인 정부 출범했는데도 건설노동자 탄압 '여전') 

-2019년 12월 1일, 그 해 11월에 있었던 전국노동자대회가 불법하다며 민주노총 조직실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文정부 민주노총 탄압 계속…조직실장 자택 압수수색) 

-2021년 9월 2일 새벽 문재인 정권은 경찰 2천 명을 동원해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하여 양경수 위원장을 연행하고 구속했다(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구속에 “문재인 정권의 전쟁 선포”) 

 

‘계급협조주의’의 배경과 근원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무산자(無産者) 노동계급은 사적소유제를 철폐하고 인류를 해방시킬 역사상 최후의 혁명 계급이다. 그러나 언제나 혁명적인 것은 아니다. 

모든 사물이 그렇듯 노동계급도 대립물의 통일 즉, 모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현실성으로서의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임금노예이다. 반면 미래의 가능성으로서의 노동계급은 계급 철폐를 이끌 지도계급이다. 

이 두 가지 대립적 속성은 노동계급의 현재 의식에 영향을 주며 정치적으로 표현된다. 전자는 현 체제에 굴종하게 하고 자본주의 현실에 안주하게 한다. 한편 후자는 근본적이고 역사적 시각으로 세계를 조망하며 사회주의로 나아간다. 

전자의 압력을 반영한 노동계급 내 정치 조류가 ‘개량주의, 노동자주의, 사회민주주의’이다. 이 정치 조류는 노동계급 상층의 압력을 받는다. 격변과 위험을 회피하고 체제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근본적으로 적대하지 않으며, 자본주의 분파 중 하나 즉, ‘부르주아 좌파/ 자유주의/ 리버럴 분파’와 우호적 관계를 추구한다.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단체 중 노동자연대와 노정협 등의 친민주당 우호 노선의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서로가 대척하는 것처럼 자기 정치를 내세우지만, 자본주의 우파 앞에서는 거의 비슷한 논리를 펴는 것이 그 까닭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윤석열 퇴진 투쟁은 친민주당 세력이 주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직접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은 자본주의 정당이기는 하나 집권하고 있지 않은 야당이다. 그러므로 민주당은 우군이 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리버럴 분파 지지’가 떳떳하지 않고 뭔가 켕기는 기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급협조주의 비판에 대해, ‘종파주의’니, ‘초좌익’이니 하는 막무가내 비난도 매우 닮았다. 

 

노동자연대와 노정협의 계급협조주의 합리화 

민주당과 국민의 힘은 자본주의 지배계급이 들고 있는 ‘한 쌍의 두 패’ 또는 ‘한 얼굴의 두 표정’이다. 정세에 따라 선택을 달리하고 기분이 바뀔 뿐이다. 그런데 노동자연대와 노정협은 이 둘의 차이를 과장한다. 자신의 계급협조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서이다. 

노동자연대는 윤석열 퇴진 투쟁이 “더 급진적이고 더 큰 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집회는, 노동자연대 스스로 고백하듯, 김남국 코인 비판도 적대시할 정도이다. 더 급진적 운동을 희망하는 노동자연대는 김남국 코인 비판을 우쭐해한다. 그것을 근거로 자신을 향한 ‘민주당 지지 혐의’는 터무니없는 비방이라고 꾸짖는다. 

한편, 노정협 등은 예의 파시즘론을 또 들고 나왔다. 노정협과 노사과연 등은 자본주의 우파(이명박, 박근혜, 윤석열)가 집권하면 늘 그 정권의 성격을 파시즘이라고 규정해 왔다. 이들에 따르면, 한국엔 5~10년마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 파시즘이 등장한다. 그 파시즘은 또 5~10년마다 선거를 통해 군소리 없이 물러난다. 

 

노정협의 파시즘론: ‘민주당과 더불어 싸우는 통일전선’을 위하여 

윤석열 집권 이후 발표한 노정협 대부분의 글은 ‘윤석열은 파시즘이므로 민주당 등 자본가 리버럴 분파와 더불어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구축하자.’라는 주장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렇게 ‘파시즘을 폭넓게 해석하고 자본주의 세력과의 계급협조를 주장하는 것’은 한국 좌익 ‧ 노동 정치 지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실과 대조를 통해 그 주장이 옳은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     *     * 

•민주당과의 평화 연대? 

노정협은 윤석열 정권이 박근혜보다 더한 파시스트 정권이며, 그에 맞서기 위해 민주당과 연대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 연대는 남북 긴장완화를 위해 효용이 있을 것이라 여긴다. 

“민주당이 권력을 잡았을 때는 4.27판문점 선언과 같은 남북문제에서 한시적으로 상층통일전선이 가능합니다.…파시즘을 향해가는 윤정권에 대해서는 이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 정치세력들을 총결집시켜 싸워야 합니다. 민주당도 이 투쟁에 동참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노정협, 2022년 12월 24일 

“박근혜 정권보다도 더 가혹하게 파시스트적으로 무장하여 노동자 민중을 탄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일 전쟁동맹을 숭배하고 대북 적대시에 이어 대중, 대러, 대이란 적대시로 총체적 파탄에 이르면서 퇴진투쟁을 자초”—노정협, 2023년 5월 12일 

그러나 민주당 역시 미제국주의 금융자본의 현지 하수인 중 하나일 뿐이다. 주인의 뜻을 거슬러 스스로 평화를 추구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과의 갈등을 치명적으로 고조시킨 사드 배치를 임기 내내 밀어붙였다. 야당일 때는, 집회장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반대한다고 공언했던 사드 배치였다. 그러나 임기가 시작되자 표변했다. 민주당 정부는 사드 배치를 강행했다. 망설인 적이 없다. 노무현 정권 시절, 부안 핵폐기장 건설이나 대추리 사태에서처럼, 수천 명의 경찰을 동원하여 군사작전 같은 폭력적 방식으로 현지 시위대를 진압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평화국면이 문재인 정권 때 있었다. 그러나 그 기간은 2018년 2월 평창올림픽부터 2019년 2월 하노이회담 북미회담까지 1년 남짓한 기간 뿐이었다. 그 전과 후의 문재인 임기는 남북간, 북미간 극단적 대결국면이었다. 임기가 시작된 2017년엔 당장 핵전쟁이라도 터질 듯한 숨 막히는 긴장이 한반도를 덮었다. 2019년 2월 하노이회담을 끝으로 대화국면이 종료된 이후, 미제는 표정을 바꾸어 적대를 다시 고조시켰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문재인 정권이 뭐라도 하길 기대했지만 덧없는 일이었다. 한미군사훈련 축소 약속 불이행이나 대북한 전단 살포 방관 등을 거치며, 민주당 정권에 대한 기대는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2020년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분노의 극단적 표현이었다. 

다음 김천일보와 오마이뉴스의 기사들은, 노정협의 주관적 기대와 달리, 문재인 정권이 ‘미일 전쟁동맹’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도한다. 

“참수작전은 주로 박근혜 정부 때 거론되었지만, 그 군사적 능력은 문재인 정부 들어 구비되었다. 유사시 북한 전쟁지도부 제거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임무여단'은 2017년 12월 1일 창설됐고 첨단무기로의 무장화도 가속화되었다. 북한 지도부 참수작전 및 북핵 선제타격의 핵심전력으로 거론되었던 F-35 40대 도입도 박근혜 정부 때 결정되었지만 도입 및 전력화는 문재인 정부 들어 본격화되었다.”—김천일보, 2022년 7월, 한미연합군사훈련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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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작전계획 및 연합훈련에는 한반도 유사시 무력 통일까지 추구하려는 목표도 내재되어 있다. 그런데 이에 필요한 개념 및 전력도 문재인 정부 때 크게 증강되었다.…문재인 정권 하에서 이뤄진 군비증강과 국방예산 팽창은 '힘에 의한 평화'라는 문 대통령의 시대착오적인 낡은 안보관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그런데도 군비증강에 매달리는 것은 군 통수권자의 '힘에 의한 평화'라는 안보 이념과 몸집 불리기로 기득권을 유지, 확대하려는 국방부와 군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북한 위협을 과도하게 부풀리는 데 그 원인이 있다.”—오마이뉴스,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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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존립이 위험하다? 

민주당을 우군으로 여기는 노정협의 마음은 진심이다. 윤석열이라는 ‘무시무시한 파시즘 정부’로 인해 “민주당의 존립조차도 위협” 받고 있다고 진지하게 걱정한다. 

“통일전선은 일정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과거 불문하고 지금 우리의 당면한 절박한 정치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윤석열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남김없이 이 투쟁에 끌어들이는 것이다.…이 투쟁의 중심은 기층 노동자 민중이 될 것이지만, 민주당도 이 투쟁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때에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면서도 부르주아 야당에 대해서까지 위협적인 공세를 가하지는 않았으나 이제는 민주당의 존립조차도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노정협, 2023년 5월 12일 

총선에서 200만 표 이상을 얻은 통합진보당은 2013년 ‘내란음모조작사건’을 겪으며 이석기 의원 등이 구속되는 시련을 당했다. 이듬해엔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었다. 이때 민주당은 적극 동조하거나 방관했다.  

혹시나 노정협은, 통합진보당이 겪었던 그런 일을 민주당이 당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일까? 그런데 이심전심이었는지, 민주당 역시 존립 위협을 느끼고 있다(“이러다 다 죽는다”···민주당 지도부 성토장 된 ‘끝장’ 의원총회, 경향신문, 2023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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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의 “높은 정치의식” 

계급적 각성 즉,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중심으로 무산계급과 유산계급의 이해관계는 서로 적대적이고, 노동계급이 스스로 권력을 장악할 때에만 문제가 해결된다는 의식으로의 각성’이 혁명의 시작이자 그 끝이다. 이 ‘계급 대 계급 정치의식’의 성장 과정이 곧 혁명의 과정이다. 실천적으로는, 러시아 혁명이 보여줬던 것처럼, 자본가 정치세력에 대한 믿음과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ML주의를 지향하는 노정협은 크게 다르게 생각한다. 

민주당에 대해 불신을 갖고 배척하는 것은 그다지 높은 정치의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투쟁이 승리하기 위해 광범위한 반윤석열 통일전선을 구축하고 이 투쟁의 요구와 내용을 주도하고 정권퇴진 투쟁으로 이 사회를 대폭 변화시키고 근본개조하는 계기로 삼는 것은 훨씬 더 고도의, 보다 높고 세련된 정치의식을 필요로 한다.” 

절망적 인식이다. 물론 마르크스-레닌-트로츠키주의 관점으로 볼 때 절망적이라는 뜻이다. 노정협은 궁극의 인식을 “그다지 높은 정치의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민주당과 더불어 “광범위한 통일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훨씬 더 고도의, 보다 높고 세련된 정치의식”이라고 말한다. 

 

파시즘 

파시즘은, 체제 위기에 몰린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이 투쟁으로 성취한 합법적 권리까지 극단적 폭력으로 파괴하며,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정치 행위를 말한다. 이는, 절망에 빠진 소부르주아와 사회 하층으로 구성된 의회 밖 정치 깡패의 도움을 통해 수행된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검은셔츠단, 갈색셔츠단, 남한 서북청년단 등. 

그런 점에서, 파시즘이 성립하기 위해선, ‘1) 경제적 위기를 넘어선 체제 위기, 2) 지배계급의 고육지책 선택, 3) 파탄에 몰린 소부르주아와 사회 하층의 광적 지지’ 등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역사 속에서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 독일 히틀러의 나치당이 전형적 사례이다. 

 

식민지 ‘유사(類似) 파시즘’ 

식민지엔 쿠데타가 빈발하고 군부독재 등 폭압 정권이 흔히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형적 파시즘과 다르다. 

식민지의 경우, 현지가 아니라 외국에서 넘어온 제국주의 금융자본이 지배계급의 주력이다. 그런 점에서 현지의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돌격대를 구성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제국주의 금융자본이 돈과 무기 등을 제공하여 현지 정치 깡패를 고용하는 방식으로, 현지 돌격대를 구성한다. 이러한 형태의 ‘유사(類似) 파시즘’은, 해방 직후 남한이나 지금의 우크라이나에서처럼, 식민지에서 주로 나타난다. 

한국의 경우 체제가 위기에 몰릴 때 이러한 ‘유사 파시즘’이 여러 번 등장했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 1960년 4.19혁명의 진출 이후 5.16 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1980년 민주화의 봄 이후 전두환 쿠데타 등. 

이 시기 민주당들은, 그 ‘유사 파시즘’에 맞서 싸운 적이 없다. 자유당 시기 한민당, 5.16쿠데타 이후의 윤보선 ‧ 장면 등은 그에 맞서 싸우지 않았다. 유사파시즘을 방조하거나 차라리 그 쿠데타를 안정화시키는 관리자 역할을 했을 뿐이다. 2013~14년 통합진보당 해산까지 당시 민주당이 그랬던 것처럼. 

 

계급협조주의와 광의의 파시즘론 

파시즘은 지배계급의 고육지책이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극단적 선택이다. 사회 안정성이 깨지며 내부 적대와 긴장이 고도로 높아진다. 폭력기구가 비대해지고 폭력 사태가 빈발하면서 폭력 관리비용이 지나치게 상승한다. 

그렇기 때문에 파시즘은, 노정협 등의 생각처럼 5~10년마다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선거를 통해 등장했다가, 선거를 통해 퇴장하는 조신한 파시즘은 없다. 민주당 정권에서 겪었듯, 자본주의 계급독재 자체가 폭력적이다. 자본주의 폭력을 파시즘으로 호도하면 안 된다.  

자본주의 폭력에 맞서 싸우자는 호소는 백번 옳다. 문제는 그것을 빌미로 계급협조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자본가가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가 계급은, 계급 지배 앞에서 납작 엎드려, 하라는 대로 다 하는 온순한 노동계급을 원한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은 전능하지 않다. 자기가 원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가 누리는 합법적 정치 공간과 권리는 자본가가 거저 준 것이 아니다.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싸워서 얻어낸 투쟁의 결과이다. 힘과 힘이 맞부딪쳐 만들어진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역관계는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역관계가 현저히 바뀌어야 파시즘 통치가 가능하다. 지배계급의 선택만이 아니라, 절망에 몰린 사회 하층의 광적 지지 그리고 노동계급의 투쟁 의지 상실이 있어야 파시즘이 가능한 역관계가 조성된다. 

그러한 역관계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1930년대 독일 파시즘의 성장과 승리에서 보듯, 노동계급 내부 기회주의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도부의 몰계급적 태도와 계급협조는 노동계급이 방향을 잃게 만들고 사기를 바닥까지 떨어뜨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인민 일부가 극단적 반대편인 극우로 몰려가면서 파시즘적 역관계가 조성된다. 

 

‘인민전선’: 체제 위기 극복의 또 하나의 수단 

그런데 자본주의가 체제 위기를 넘기는 방식은 파시즘만이 아니다. 파시즘은, ‘인민전선’이라고 불리는, 계급협조주의와 짝을 이루며 성장한다. ‘당근과 채찍’처럼 둘은 위기를 넘기는 한 쌍의 아이템 묶음이다. 

단호하게 결단하고 미리 대비하고 있는 상대로는 폭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못한다. 상대를 호락호락 제압할 수 없고, 실패 가능성이 높으며, 실패했을 때 자칫 치명적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의 계급적 안목이 흐리멍덩할 때, 파시즘이 성장하고 자리잡는다. 자본주의 지배계급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파시즘이라는 무기를 선택한다. 그런데 그때, 계급협조주의가 활약한다. ‘또 다른 자본주의 일파와 연대하여’ 맞서자고 선동한다. ‘당근과 연대하여’ 채찍과 싸우자고 선동한다. ‘일요일 아침 웃는 표정과 연대하여’ 월요일 저녁 화난 표정에 맞서 싸우자고 선동하는 꼴이다. 

이런 계급협조주의 선동에 마취되어 노동계급이 잠들면, 그 자본주의 리버럴 분파는 파시즘에 뒷문을 열어준다. 혁명 승리를 눈앞에 두고도 결국 처절한 패배로 끝난 수많은 역사적 격동이 대부분 이런 패턴이었다. 

 

계급의 눈을 부릅뜨자 

우리는 윤석열 퇴진을 위해 투쟁한다. 그가 민주당보다 뭔가 더 악(惡)해서가 아니다. 그가 자본주의의 현 집행자이고 제국주의의 지금 하수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 그리고 장차의 당번인 민주당에 어떠한 환상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악행의 공범이지만, 착하지 않은 정책을 펴면서 착한 표정 짓기에 조금 더 능할 뿐이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노예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야바위놀음을 경고한다. 그 놀음을 부추기는 노동계급 내 협조자를 경계한다. 

계급의 눈을 부릅뜨자. 계급 전선을 항상 응시하자. 누가 계급 전선을 침탈하고, 누가 그 선을 흐리는지, 누가 계급의 방어선을 허물고 적을 이쪽으로 들이는지 주시하고 기억하자! 

 

2023년 7월 11일 

볼셰비키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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