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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회주의 그리고 노동계급 :‘제국주의 질서의 요동과 국제지도부의 재편’

by 볼셰비키 posted Mar 0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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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기회주의

그리고 노동계급

:‘제국주의 질서의 요동과 국제지도부의 재편

 

<차례>

전쟁의 배경/ 러시아의 군사적 목표/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는 러시아/ 미제의 의도/ 갈등의 뿌리/ 동진(東進)의 제국주의적 동기/ 제국주의자의 약속과 실제/ 나토 동진 30년/ 2004년 오렌지혁명/ 제국주의 하수인들/ 야누코비치의 재선/ 오렌지혁명 2탄: '유로마이단'/ 유로마이단 정부의 성격/ 키예프 정권의 인종주의 정책/ 오데사 학살/ 돈바스의 독립 운동/ 아조프 부대/ 민스크 협정/ 우크라이나공산당의 투쟁/ 푸틴의 반공주의/ 푸틴 정부가 원했던 것/ 미제의 도발/ 러시아 푸틴 정권은 신식민지의 민족주의 보나파르트 정권이다/ 푸틴의 부상(浮上)/ 전임자 옐친/ 러시아는 제국주의인가?/ 우크라이나와 좌익/ 1)러시아를 침략자로 규정하며 우크라이나와 나토 승리 지지/ 2)러시아를 제국주의로 규정하며 쌍방 모두의 패배 주장/ 3)제국주의는 아닐지 모르지만, 러시아도 반동이므로 중립/ 4)미국 중심 서방 제국주의의 동진(東進)으로 인한 '제국주의 vs 식민지의 싸움' 그러므로 돈바스와 러시아의 승리/ '세계 노동인민의 대세적 유리, 제국주의의 대세적 불리' 국면/ 일극 체제의 균열/ 우크라이나 전쟁과 계급 역관계/ 우리의 임무

 

작년 이맘 때인 2022224, 2014년 제국주의 정권교체 쿠데타로부터 시작되었던 내전에 러시아가 개입했다. 이로써 이 갈등은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

우리는 확전 이틀 뒤인 226일 입장문을 냈다. 이어 몇 번에 걸쳐 우크라이나 갈등의 성격과 올바른 입장을 설명한 바 있다. 지난 1년여의 사건 전개는 우리 입장이 옳음을 거듭 증명하고 있다.

도네츠크, 루한스크, 헤르손, 자포리자의 민족자결을 지지한다! 2022101

<‘마르크스주의자의 호소: 우크라이나 전쟁 200토론회> 2022912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한 노동절 국제공동성명 2022418

러시아의 공격은 제국주의 하수인 키예프 정권의 도발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다 2022226

우크라이나에 대한 단상 2014226

내전이 국제전으로 확전된 지 1년이 넘어가는 지금, 우리의 입장을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전쟁의 배경

2022224일 러시아의 참전은, 우크라이나 모든 지역이 러시아를 겨냥한 제국주의의 전진 기지가 되는 것을 막고, 러시아 접경지인 동남부 거주 러시아어 사용자들의 원조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지역 거주민 중 약 1/3 가량인 29.6%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인식한다. 이들은 주로 동남부 지역에 거주한다. 2004년의 조사에 따르면, 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 주()72%, 도네츠크 주의 93%, 루한스크 주의 89%, 자포리자 주의 81%, 오데사 주의 85%, 하르키우 주의 74%, 미콜라이프 주의 66%가 러시아어 사용자이다.

1_language_map_of_ukraine.png

우크라이나 언어지도(PDF)

 

그중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는, 키예프에 친제국주의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선 직후, 독립을 선포했다. 20222월 러시아군이 개입한 이후, 친제국주의 도구인 파시스트 군대를 몰아낸 헤르손과 자포리자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기존 우크라이나 지역의 도네츠크, 루한스크, 헤르손, 자포리자에서 5일 동안 실시된 주민투표를 통해 4개 지역은 각각 99% 98% 87% 93%의 찬성으로, ‘우크라이나로부터 벗어나 러시아로의 합병을 결의했다.

 

러시아의 군사적 목표

당초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 전쟁과 같은 전개를 예상하고 기대했을 것이다. , 접경지에 자국을 극단적으로 적대하는 친제국주의 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막고 친러시아 또는 중립 완충 지대를 만들어 러시아의 국가 안보를 확보하는 것.

그러나 그 정도를 넘어, 우크라이나 전체를 무력으로 제압하여 복속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자살 행위이다. 만약 그랬다면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정의로운 전쟁이 아니라, 서쪽 지역 우크라이나인의 민족자결권을 무력으로 억압하는 반인민적 침략 전쟁이 되었을 것이다. 제국주의 깡패 도당 나토에 명분을 주어 전면적으로 상대해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러시아 개입 이틀 후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만약 러시아 군대가 과욕을 부려 군사적 점령을 지속하여 친러시아 정권을 세우려 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도박이며 노동계급에 이롭지도 않다. 그것은 우크라이나 인민의 민족자결권에 대한 침해이다. 서쪽 우크라이나 지역 노동인민의 우익적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여 러시아와 민족주의적 대립을 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소련과 동구권 붕괴 이후 지속된 나토 제국주의의 세력 확대 동진(東進) 전략의 침략성이 그로써 감추어지게 될 것이다.”2022226일, 러시아의 공격은 제국주의 하수인 키예프 정권의 포격 도발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다

그러나 러시아에겐 이를 현실화할 국력이 없을 뿐 아니라 그럴 의지도 없다.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해외에서 초과이윤을 수취할 능력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제국주의적 동기가 없다.

이렇듯 우크라이나 전체를 제압하는 것이 러시아의 참전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군사 활동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런 까닭에 수도 키예프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서부는 전쟁의 포화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서쪽을 제압할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젤렌스키나 바이든은 키예프 거리를 마음 놓고 활보한다.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는 러시아

1년이나 끌고 있는 이 전쟁은 러시아에게 엄청난 부담이다. 서방의 언론은 러시아군의 사망자가 10만을 넘었다고 주장하고, 러시아 정부의 재정 적자가 “25년 만에 최대 규모로 치솟았다(조선일보 202329).”라고 보도한다. 구체적 수치는 과장되었을 것이므로 검증이 필요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은 분명하다.

러시아 접경인 동남부를 확보한 러시아는 전쟁 직후부터 평화협정을 제안해오고 있다. 그러나 나토의 현지 대리인 젤렌스키의 거부로 작년 4월을 마지막으로 협상 테이블은 열리지 않고 있다.

1주년이 다가오던 지난 220일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키예프를 방문하여 미국은 언제까지고 계속 우크라이나 곁에 서 있을 것이라며 탱크, 미사일, 장갑차 등 5억 달러 규모의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

 

미제의 의도

젤렌스키는 그저 광대처럼 미디어 활동에 열심일 뿐, 군 통수권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주인은 나토이고 그 중심엔 미 제국주의 금융자본이 있다. 젤렌스키는 안전한 후방에서 세계 인민을 호도하고 서방 큰손들의 후원을 구걸하는 콘텐츠 찍기에 열중이다.

전쟁은 제국주의 금융자본에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 그리고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최종 먹잇감은 러시아이다. , 러시아에 친제국주의 정권을 앉혀 러시아의 광대한 천연자원을 자기 것으로 삼키는 것이다. 결정적 순간, 몸통에 발톱을 찔러 박고 목줄기를 물어뜯기 위해 러시아를 가능한 더욱 지치게 하려 한다. ‘러시아 괴롭히기는 미제의 전술 지침이다. 랜드연구소의 러시아 흔들기: 유리한 곳에서 싸우기(20194)는 이 속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벨라루스 사태에 대하여(20211)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분석 설명한 바 있다.

 

갈등의 뿌리

2022224일 국제전으로 확전되었지만, 이 전쟁은 2014년 유로마이단 쿠데타로 인한 내전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리고 이 갈등의 뿌리는 1989~1991년 동유럽과 소련 등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붕괴 이후 진행된 미제와 나토의 동진(東進)이다.

벨라루스 사태에 대하여(20211)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동유럽의 현대사: 자본주의 반혁명과 NATO의 동진(東進)

191710월 혁명은 러시아와 인근 지역에서 인류 최초로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노동자국가를 수립했다. 2차 대전 결과, 소련 승전 지역과 민족해방 투쟁이 승리한 일부 지역에서 자본주의를 떠받치던 핵심 폭력인 제국주의가 타도되었다.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10월 혁명의 성과가 확대되었다. 낮은 생산성과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노동자국가는 동유럽 북한 중국으로, 그 후엔 쿠바와 베트남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가 분석하고 예측한 바, ‘선진자본주의 국가로의 혁명 확산 불발, 스탈린주의 사회기생 집단의 부패와 무능력, 저열한 생산성 수준 등의 모순은 그 지역 내 자본주의 회귀 요인을 제거하지 못했다.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의 약점을 자양분 삼아 자본주의 요소는 점점 자라났다. 급기야 1989~1991년 소련과 동유럽에 자본주의 반혁명이 일어났고,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성채의 한 축이 무너져내렸다.

권력은 자본주의 회귀 세력에 넘어갔고, 붉은 깃발은 내려졌다. 사적소유와 부르주아 국가 깃발이 다시 게양되었다. 국가 권력을 장악한 자본주의 집권당은 곧이어 사적소유 전면화를 진행했다. 19918월 자본주의 반혁명 지도자 옐친에 조아려 연단이 되었던 탱크는 199310월 국가소유 해체에 반대하는 최고 소비에트 건물을 포격하였다. 러시아와 동유럽 인민의 생활수준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소련권 붕괴 이후,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제국주의 기둥인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의 NATO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그 영향력을 넓혀갔다.”

 

동진(東進)의 제국주의적 동기

소련과 동유럽의 자본주의 회귀 이후, 미국과 유럽 제국주의 세력은 동유럽과 러시아 시장을 장악하는 일에 적극 나섰다. 그러나 사적소유가 회복되고 자본주의 국가가 들어서는 것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는다. 그곳에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명령을 고분고분 이행하는 친제국주의 정권이 들어설 때 자신의 이익이 극대화된다.

금융자본은 당연히 종속된 나라와 민족에게서 정치적 독립까지 박탈하는 종속형태를 가장 유리한것으로 여기며, 그것으로부터 가장 많은 이윤을 뽑아낸다. 이러한 점에서, 반식민지국은 중간 단계의 전형적인 예인 것이다. 따라서 나머지 지역들이 이미 모두 분할되어 버린 금융자본의 시대에 이들 반종속국을 둘러싼 투쟁이 특히 격화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레닌, 제국주의론

지난 30여 년 동안 동유럽에서 진행된 색깔 혁명, 친제국주의 정권교체 작업은 바로 이러한 사회동학의 결과이다.

 

제국주의자의 약속과 실제

1989년 동독 붕괴 이후 동서독 통합 과정에서 소련은 새로운 안보 환경에 불안해했다. 다 된 밥에 재뿌릴 위험 요소를 없애기 위해 미국은, 동독에 주둔군을 지닌 소련을 안심시켜야 했다. 29일 조지 베이커 국무장관은 당시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에게 나토는 1인치도 동진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했다.

1989년 동유럽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반혁명 해일은 1991년 러시아도 덮쳤다. 자본주의 반혁명으로 권력을 쥔 옐친도 자국 안보를 걱정했다. 동유럽 국가 나토 가입 반대 뜻을 미국에 알렸다. 그러자 19931022일 옐친과 만난 자리에서, 미 국무부 장관 워런 크리스토퍼는 동유럽은 나토가 아닌 평화를 위한 동반자 관계 Partnership for Peace에 들어올 것이고 그것은 러시아도 포괄할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그러나 1999년 체코 헝가리 폴란드가, 2004년에는 불가리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이, 그 뒤는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등 동구권 국가 대부분이 나토에 가입했다.

엄폐와 기만은 포식자의 기본기이다. 입에 발린 달콤한 약속은, 설령 그 당시엔 진심이었다고 하더라도, 포식자의 본성을 제어하지 못한다. 피식자들은 늘 이것을 깨닫지 못해 환상에 빠져있다가 당하는 것이다.

 

나토 동진 30년

소련이 붕괴한 1991년부터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제국주의 세력은 소위 색깔 혁명을 통해 친제국주의 정권교체를 단행하면서 동진해왔다. 2000년 유고슬로비아 불도저, 2003년 조지아 장미,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 2005년 키르기스스탄 튤립, 2006년 벨라루스 청바지 혁명 등이 잘 알려진 사례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지난 30여 년간 미제가 지휘하는 나토는 러시아를 최종 목표로 하여 동쪽으로, 동쪽으로전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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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친제국주의 정권교체가 일어난 나라는 예외 없이 나토에 가입하고 대() 러시아 포위망에 합류했다. 그리고 이들 나라에는 어김없이 미군기지가 건설되어 일차적으로 현지 노동계급의 저항을 제압하고 다음으로 반()식민지 러시아와 노동자국가 중국을 포위하는 초과착취 그물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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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71019

 

2004년 오렌지혁명

제국주의 동진(東進)은 러시아 턱밑 우크라이나에 다다랐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장악을 위해 막대한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며 시민사회에 개입했다. 미국민주주의기금(NED), 미국국제개발처(USAID) 등 정부기관들, 민주당의 국가민주연구소와 공화당의 국제공화연구소, 프리덤하우스,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의 열린사회연구소 등이 그것을 주도한 기관들이다. 2004AP 통신은 부시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야당을 돕기 위해 6,500만 달러 이상을 지출했고, 유셴코가 미국 지도자들을 만나도록 비용을 지원했다라고 보도했다.

이들 작업의 성과는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났다.

서방이 파견한 선거참관인 감시 아래 진행된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친제국주의 빅토르 유셴코를 누르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시 미 국무부 장관 콜린 파월은 신뢰할 만한 사기와 권력 남용 보고를 언급하며 우크라이나 대선 결과를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물론, 서방의 선거참관인들은 프리덤하우스와 민주당의 국가민주연구소 지원으로 조직된 이들이었다. 그들은 아예, 유셴코 지지를 뜻하는 오렌지색 옷을 입고 선거에 참관했다. 심지어 그중 한 명은 유셴코 지지 연설도 했다(CNN, 20041125, Powell: 'Fraud and abuse' in Ukraine vote)

이어서 서방 제국주의 지원을 받는 시민단체들이 선거 결과 불복 시위에 나섰다. ‘포라는 이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였는데, 책임자 중 한 명인 블라드 카스키프는 조지 소로스의 열린사회연구소에 고용된 자였다. 그는 후일 대통령이 되는 유셴코의 보좌관이 된다. 결국 2주 뒤 대법원은 선거 결과를 뒤집었고 재선거가 실시되었다. 다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친서방 후보 유셴코가 기어이 당선되었다.(CanadianDimension 2022317, Revisiting our secret role in Ukraine’s 2004 Orange Revolution, TheGuardian 20041126, US campaign behind the turmoil in Kiev)

 

제국주의 하수인들

제국주의의 식민지 하수인 집단은 현지 인민의 이해에 반하여 제국주의 상전을 섬기는 자들이다. 그 본성 탓에 그들은 한결같이 반인민적이고 부패한 자들이다. 서방의 억지와 강압으로 당선된 유셴코 역시 그러했다. 자기 편이 보아도 역겨울 정도였다. 유셴코의 비서실장 올렉산드르 진첸코는 자기 직책을 걸고 페트로 포로셴코를 포함한 대통령 측근 여럿을 부패 혐의로 고발했다. 의회의 여당 지도자 미콜라 마르티넨코는 국유기업 공금 대규모 유용 혐의를 받았다. 유셴코의 또 다른 측근들은 밀수, 무기 수출등 불법적 사익 추구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의 아내 카테르냐는 2006년 등록한 자선 재단을 통해 1,800만 달러 이상을 모금했는데,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소명되지 않았다(EurasiaNet 2020528, A brief history of corruption in Ukraine: the Yushchenko era).

 

야누코비치의 재선

썩은 내 나는 부패에 지친 우크라이나 인민은 야누코비치로 다시 돌아섰다. 2006년 총선에서 야누코비치가 이끄는 우크라이나지역당이 원내 제1당이 되며 승리했다. 4년 뒤인 2010117일 진행된 대선에서 야누코비치는 경쟁자 율리아 티모셴코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야누코비치 정권은, 2004년 이른바 오렌지혁명으로 들어선 이전 정권과 달리, 유럽과 러시아 양쪽 모두에서 이익을 취하려 했다. 러시아는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않는 조건으로 150억 달러 원조, 국제가에서 1/3 인하한 가격으로 가스를 제공했다. 러시아와 EU 사이에서 눈치를 살피던 야누코비치는 2012년부터 진행되던 EU 가입을 망설였다.

 

오렌지혁명 2탄: '유로마이단'

이러한 행동은 서방 제국주의자의 노여움을 샀다. 이들은 준비해오던 계획을 실행했다. 친서방 시민단체들은 20131121EU 가입 촉구 시위에 돌입했다. EU 가입 지지 시위라는 뜻으로 유로마이단이라 불렸다. 시위대는 스보보다’, ‘우익 섹터같은 파시스트 조직들이 주도했고, 이들은 다시 미 제국주의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악명 높은 ISIS의 배후로도 유명한(the Guardian 201516) 존 매케인 상원 의원이 유로마이단 시위가 한창인 20131215일 키예프를 방문했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던 극우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스보보다 당수와 함께 집회 연단에 오른 매케인은 우크라이나 인민 여러분! 미국은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미래가 바로 여러분 손에 달려 있습니다. 자유세계가, 미국이 그리고 나는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라고 기염을 토하며, 파시스트가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대의 기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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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ardian 201516

 

미 국무부 유라시아 담당 차관보 빅토리아 눌런드 역시, 사람들 눈을 의식하지 않고 활발하게 움직였다. 유로마이단 시위가 시작되던 시기에만 집회 현장에 세 차례나 나갔다. 시위대에 과자를 나누어주며 미국의 지지를 전했다. 아직 야누코비치 재임 기간임에도, 눌런드 등 미제 금융자본의 모사꾼들은 이미, 야누코비치 후임을 논의하고 있었다(Channel4 20131216, Far-right group at heart of Ukraine protests meet US senator, Sen. John/NPRnews 20131215, McCain Addresses Anti-Government Protesters In Kiev/ CATOinstitute 201786, America’s Ukraine Hypocrisy).

5_Oleh_Tyahnybok_Vitaly_Klitschko_and_Arseniy_Yatseniuk.png BBC 201427

뒷줄 왼쪽부터: 올레흐 탸흐니보크(스보보다 대표), 비탈리 클리치코(전직 권투선수, 키예프 시장, 유로마이단 지도자), 아르세니 야체뉴크(우크라이나 총리, 스보보다 지도자, 유로마이단 시위 지도자)

사진 가운데 미 국무부 유라시아 담당 차관보 빅토리아 눌런드

 

유로마이단 정부의 성격

의회가 시위대에 점령되었고, 2014222일 야누코비치가 탄핵되었다. 26일 임시정부가 설립되었는데 이 정부에 파시스트 다수가 들어와 여러 직책을 맡았다(RadioFreeEurope 2014227, Who's Who In Ukraine's 'Kamikaze' Cabinet)

525일 페트로 포로셴코가 대통령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포로셴코 정부의 임무는 우크라이나에서 미국 금융자본의 이해를 확고히 하는 것이었다. 빅토리아 눌런드와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 제프리 피야트 사이 전화통화에 따르면, 마이단 쿠데타 이후 그들은 클리시코, 아르세니 야체뉴크 그리고 네오나치 정당 스보보다의 지도자 올레 티아니북 중 누가 후임으로 적합한지 논의했다. 실제로 이들 중, 눌런드가 적임자로 추천한 야체뉴크는 총리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포로셴코 내각에는 미국과 긴밀한 연결 고리가 있는 장관들이 입각했다. 세 명의 외국인 출신이 장관에 임명되었는데, 셋 모두 미국 유학 경험이 있다는 사실은 이 정권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BBC 2014125, Foreign-born ministers in Ukraine’s new cabinet).

나탈리에 야레스코 Natalie Jaresko, 재무장관, 미국에서 태어난 우크라이나계, 하버드 대학교와 케네디 정치대학원에서 공부, 1992년 우크라이나 독립 직후 키예프로 이주, 미국 대사관 근무

아이바라스 아브로마비치우스 Aivaras Abromavicius, 경제무역장관, 리투아니아 태생, 미국 일리노이주 위스콘신 콩코디아대학에서 공부, 미국무부 관리, 1996년 발트해 연안 Hansabank에 입사한 뒤 몇몇 은행에서 동유럽 포트폴리오 관리

알렉산더 크비타슈빌리 Aleksandre Kvitashvili, 보건장관, 조지아 출신, 1993년 뉴욕대학교 석사, 조지아로 돌아와 사카슈빌리 정부에서 노동의료사회보장 장관

그리고,

발레리아 혼타레바 Valeria Hontareva 우크라이나중앙은행장, 네덜란드 ING은행 1996년 입사 2001년 부사장 2007년 사장

포로셴코에 이어, 20195월 대통령이 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역시 친미 하수인 정권이다. 반노동계급적이며 반민주적이며 인종주의적이다. 그는 2021년 인터뷰에서 돈바스는 곧 우크라이나 영토가 될 것이다. 자신이 러시아인이라고 생각하는 돈바스 주민은 러시아로 떠나라라고 말했다.

 

키예프 정권의 인종주의 정책

키예프에 들어선 친미 파시스트 정권은 우크라이나 지역 내 1/3이 모국어로 사용하는 러시아어를 억압했다. 2015년에 탈러시아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안은 소련 시절에 제정된 지명, 도로명 등을 개정하고 공항, 도로, 철도 등의 정보를 우크라이나어와 영어로만 표시할 수 있게 했다. 2017년에 제정된 교육법은 소수 민족 학생들이 원래 사용하던 언어 교육을 특별 수업으로 축소시켰다. 이 법에 따르면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은 두 개 이상의 과목을 유럽연합 국가 언어로 배울 수 있지만, 러시아어는 배제되었다. 2019년에 제정된 언어법은 의회, 공공부문 노동자, 의사, 군인, 교사의 우크라이나어 사용을 의무화했다. 이 법에 따라 정치 활동, 행정 과정을 비롯해 광고, 간판, 방향 표지판 등 공개적으로 제공되는 정보들은 우크라이나어로만 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유로마이단 폭동으로 등장한 인종주의 정권의 러시아어에 대한 난폭한 억압 정책은 러시아어 사용자의 미래를 어둡게 했다.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고 반인민적이고 인종주의적 정책에 분노했다. 저항을 낳았고 이는 우크라이나 파시스트들과 충돌하며 여러 유혈사태를 일으켰다.

 

오데사 학살

오데사 노동조합 건물 방화 사건은 이 와중에 발생한 대표적 비극이다. 오데사는 우크라이나 서남부 흑해에 맞닿은 항구 도시이다. 1백만 가량의 인구 중 60% 이상이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이들은 러시아어 억압 조치에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데사 노동조합 건물 가까이 있는 쿨리코보 광장은 유로마이단 사태 이후 친러시아 시위대와 좌익 정치인들의 주요 집결지였다. 이들은 러시아어 방어, 러시아인과 러시아어 사용자가 다수인 동부 지역의 경제적 자주권 보장이라는 요구를 내걸었다. 러시아를 적대하는 친제국주의 파시스트들에겐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3월과 4월 동안 동부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는 친나토 우크라이나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무장봉기가 발생했다. 이렇게 긴장이 고조되던 52, 파시스트 단체 우익 섹터를 포함하여 무장한 유로마이단 활동가들이 오데사에 도착했다. 이들은 총기와 화염병을 사용하며 친러시아 활동가들과 무력 충돌을 일으켰다. 갑작스런 공격과 수적 열세로 밀린 반()유로마이단 시위대는 노동조합 건물로 피신했다. 파시스트들은 그 건물에 불을 질렀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에 갇혀 다수가 죽었고 불과 연기를 피해 도망쳐 나온 일부는 기다리고 있던 파시스트들에 맞아죽었다. 이 사태로 48명의 반유로마이단 활동가가 사망했다(RT 202252, Burned alive: How the 2014 Odessa massacre became a turning point for Ukraine)

 

돈바스의 독립 운동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러시아어 사용자들은 키예프 정권의 인종주의 정책에 반발하며 연방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키예프 정부는 이러한 요청을 묵살했다. 그러자 돈바스 지역 러시아어 사용자는 독립 운동에 나섰다.

201447, 도네츠크에 수천 명이 모여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 요청 시위를 열었다. 경찰이 진압에 나섰지만 진압 경찰을 뚫고 시위대는 주 정부 청사에 들어갔다. 그들은 도네츠크공화국을 선포했다.

뒤이어 48일에는 루한스크에서 시위대가 의회를 점령하고 루한스크공화국을 선포하고, 러시아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키예프 정부는 군대를 파견하여 이들을 진압하였다. 그러나 427일 시위대는 결국 진압군에 맞서 승리했고 독립을 선언했다.

 

아조프 부대

루한스크공화국과 도네츠크공화국이 독립을 선포하자, 키예프 정권은 대한 군사적 억압을 개시하였다. 악명 높은 아조프 부대가 그 탄압의 주축이었다. 아조프 부대는 20145월 우크라이나 동남부 도시 마리우폴에서 극우파 인사 안드레 빌레츠키를 수장으로 하여 창설되었다.

빌레츠키는 2010우크라이나 국가의 임무는 유대인이 이끄는 운터멘쉬[Untermenschen 열등인종]에 대항하는 최후의 십자군 전쟁에서 세계 백인의 승리를 이끄는 것이라고 선언했다(TheGuardian 2018313 Ukraine’s National Militia: ‘We're not neo-Nazis, we just want to make our country better’).

아조프 부대는 20146월 돈바스 반군이 점령한 마리우폴 탈환을 시작으로 돈바스 지역 억압 선봉에 섰다. 같은 해 11월 이 노골적인 파시스트 군대는 우크라이나 군에 공식 편입되었다. 이후 더 원활하고 풍요로운 지원을 받으며 그 규모를 더욱 빠르게 늘렸다.

이 부대의 잔인성과 야만성이 문제가 되자, 미국 정부는 2015년 잠깐 제재하는 척했지만, 그 겉치레 제재마저 곧 풀었다. 한편 유엔인권사무소는, 이 부대가 돈바스 지역에서 고문과 민간인 약탈 등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고발했다.

리비아, 시리아를 비롯 수많은 정권교체 작전에서 그러했듯, 우크라이나의 이 현지 무장세력 역시 미군이 훈련시킨 자들이었다. 2016년 우크라이나 내무장관 아르센 아바코프는 우크라이나 서부 기지에서 미군이 여러 부대를 훈련할 것이고 아조프 대대는 그 중 하나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약 290명의 미국 낙하산병과 900명의 우크라이나 방위군이 참여할 것라고 밝혔다(DigitalJournal 2016131 U.S. to train alleged neo-Nazi Azov Battalion in Ukraine).

SNS를 통한 지지 호소가 주업무인 젤렌스키는, 남한 정부처럼, 군 통수권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2019년 대선에서 젤렌스키는, 전쟁광처럼 보이는 지금의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러시아와의 긴장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자였다. 취임 직후 젤렌스키는 돈바스 최전방으로 가서 아조프 부대를 만나 긴장 완화를 호소했다. 그러나 아조프 부대 지휘관들은 대통령 젤렌스키의 요청을 거부했다. 오히려 병력을 증파하겠다고 협박하였다(GrayZone 202234 How Ukraine’s Jewish president Zelensky made peace with neo-Nazi paramilitaries on front lines of war with Russia). 심지어 이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민스크 협정에 따라 평화협상을 하고자 하는 경우, 그를 끌어내려 죽이겠다고까지 위협하였다(FairObserver 2022311 The Presence of Neo-Nazis in Ukraine). 영리한 개는 사료를 누가 주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민스크 협정

민스크 협정은 돈바스에서 발생한 내전을 멈추자고 약속한 평화협정이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그리고 도네츠크공화국과 루한스크공화국 대표가 참여하여 20149월과 20152월 두 차례에 걸쳐 체결되었다. ‘양자 간 휴전도네츠크 주와 루한스크 주의 자치권 보장이 중심 내용이다. 그러나 휴전 협정 체결 직후에도, 나토 제국주의 지원을 받는 아조프 부대 등 우크라이나 군은 돈바스 지역에 대한 공격을 쉬지 않았다.

나토 제국주의는 협정의 본질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 포로셴코와 독일 전 총리 메르켈이 각각 20226월과 12월에 인정하듯, 민스크 협정은 평화에 뜻을 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러시아를 교란시켜 돈바스에 대한 무장 지원을 늦추고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준비를 위해 시간을 벌겠다는 심산이었다. 한편 나토의 그 속셈을 러시아가 온전히 알아차리는 데엔 8년이 필요했다.

친미 하수인 정권과 그 행동대 아조프 부대는 2014년부터 약 8년간 돈바스를 공격하였다. 이 공격으로 2014년부터 2022년 초까지 14,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죽었고, 사망자 대부분은 돈바스 거주민이었다. 750개 이상의 교육 시설이 파괴되었다. 145개 병원이 폭격당했다. 방송국과 발전소도 폭격 대상이었다.

 

우크라이나공산당의 투쟁

우크라이나공산당(KPU)은 자본주의 반혁명으로 소련공산당(CPU)이 해체된 후, 1993년 우크라이나에서 창당하였다. KPU2014년 유로마이단 쿠데타 이전까지, 대선과 총선에서 20~40% 득표할 정도로 유력한 정당이었다.

2013년 야누코비치를 끌어내리기 위한 유로마이단 시위가 벌어지자, KPU는 이 시위를 친제국주의 정권교체 쿠데타라고 규정하고 이에 반대했다. 유로마이단에 맞서 야누코비치와의 공동전선을 주장했다. 올바른 노선이었다. 이어서 돈바스 지역이 독립을 선언하자, 용감하게도 KPU는 그 독립과 방어 전쟁을 지지하였다.

2014년 유로마이단 쿠데타 이후 키예프 지역이 제국주의 하수인들에 장악되고 국제 전쟁으로 갈등이 심화되자, KPU는 고립되면서 매우 위태한 정세를 맞았다. 친미파 파시스트의 노골적 표적이 되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친나토 의회는 20155월 탈공산화 법을 통과시켰다. 공산주의 상징물과 선전을 금지했다. 페트로 시모넨코가 이끄는 KPU의 선거 참여와 공식 출판물 라보차야가제타가 금지되었다. 당원 다수가 감옥에 갇히고 극우 단체의 린치에 직면했다.

그러나 KPU는 굴복하지 않았다. 이러한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탈공산화, 친기업적 토지 개혁, 신나치 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 전기료와 수도세 인상, 나토 확장 등에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PeoplesDispatch 202276, Ukrainian court upholds ban on Communist Party).

역경 속에서 참모습이 드러나는 법이다. 우크라이나공산당(KPU)의 원칙적이고 용감한 투쟁은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돈바스지역 인민의 마음에 들어왔다. 돈바스에 친공산주의와 반자본주의 정서가 다시 일어났다.

 

푸틴의 반공주의

러시아의 푸틴 정부는 노동자국가 소련 전복 뒤 등장한 자본가 권력의 집행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에서 다시 술렁거리는 친공산주의 분위기가 탐탁지 않았다. 자칫 러시아 본토로 친공산주의 물결이 범람하면 큰일이었다. 그리하여 푸틴 정부는 돈바스 지역에서 공산당 세력의 성장을 견제하였다. 돈바스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므로, 돈바스 지역에 자신의 정치적 요구를 강제하기에 충분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도네츠크공화국 건설에 공산당은 크게 기여했다. 이 때문에 2014112일 열린 총선에서 공산주의자가 상당한 의석을 얻을 것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대로 버려두지 않았다. 총선에 입김을 불어 넣었다.

러시아 대통령 수석 보좌관이자 선거 전문가인 수르코프를 파견했다. 공산당이 정당으로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막고, ‘도네츠크공화국 운동이라는 사회 운동의 후보자 명단에 쿼터를 받아 입후보 할 것을 요구했다. 도네츠크공산당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공산당은 3석밖에 얻지 못하였다(The First Four Years of the Donetsk People’s Republic/PDF 202112).

 

푸틴 정부가 원했던 것

러시아는 2014년 동부 키예프에 친미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222월 참전까지 8년 동안 머뭇거렸다. 전쟁이 일단 개시되면,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해야 하고, 후방의 영국, 프랑스, 독일을 위시한 나토 제국주의 국가 모두를 적으로 돌려야 한다. 쉬운 결단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토 제국주의와의 직접 대결을 최후까지 피하려 했다.

2014년에 동남부의 러시아어 사용지역 가운데 돈바스 지역이 독립하여 도네츠크공화국과 루한스크공화국을 수립했다. 20222월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 이후 수복된 헤르손과 자포리자도 주민 투표를 통해 우크라이나부터 독립하여 러시아로 합병을 결정했다.

그러나 지금의 이 결과는 러시아의 푸틴 정부가 애초에 희망했던 것이 아니었다. 푸틴은 이러한 수준의 분리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돈바스 인민들의 의사와는 달리, 두 지역이 민스크협정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남아있기를 바랐다. 러시아어 지역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면, 우크라이나의 유권자 분포가 급격히 바뀌어 친러시아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체가 이전처럼 친러시아 또는 중립 지역으로 남아 완충지가 되어주기를 바랐다(The First Four Years of the Donetsk People’s Republic/PDF 202112).

그리하여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에 대한 군사적 지원에 주저했다. 민스크 협정에 매달려 제국주의 하이에나들의 식성이 바뀌기를 헛되이 기다렸다. 심지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직접 개입하기 직전까지도 이와 같은 협정협상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2022년 전까지 돈바스에는 러시아 군이 거의 배치되지 않았다. 무기 지원도 없었다. 돈바스 지역 두 공화국의 무장은 대부분 우크라이나 군의 무기를 노획하거나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우크라이나 부대가 반군 쪽으로 넘어간 덕분이었다(MonthlyReview 2022410, The military situation in the Ukraine).

 

미제의 도발

그러나 제국주의 지배자들은 달랐다. 환상도 망설임도 없었다. 20211월 취임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견제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공식 천명하고 나섰다. 취임 직후인 2021226,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우크라이나 편에 서서 러시아의 크림반도 공격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미국은 결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다. 주인의 굳은 의지와 뒷배를 확인한 우크라이나 키예프 정권과 파시스트 무장 깡패들은 더욱 사나워졌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나토 제국주의와 우크라이나의 의지는 곧 행동으로 옮겨졌다. 러시아 개입 직전인 202223일에 우크라이나 군대 3분의 2 정도에 달하는 약 15만 명의 병력이 돈바스 지역 에 배치되었으며, 215일부터 포격을 동반한 우크라이나 군의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연합뉴스 202223 우크라군 15만명 돈바스 전선 배치군대 3분의 2” 반군 주장, 뉴데일리 218 우크라이나가 선제공격, 러시아인 학살도우크라·가짜깃발 작전).

이렇게 돈바스 지역이 함락 직전에 몰린 222일에 이르러서야 러시아는 결심을 굳혔다. 도네츠크 공화국과 루한스크공화국을 승인하고 개입하기 시작하였다(한겨레 2022222 푸틴 도네츠크·루간스크 공화국 독립 승인 후 러시아군 진입 명령).

 

러시아 푸틴 정권은 신식민지의 민족주의 보나파르트 정권이다

보나파르트 권력이란 적대하는 두 세력이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는 균형 상태에서, 두 힘이 밀고 당기는 그 접점 위에 위치하여 양쪽 힘 모두에 의해 떠받들려 부양(浮揚)되는 일시적이지만 강력한 권력을 의미한다.

이 보나파르트주의 권력을 레닌은 엥겔스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외적으로 적대적인 계급들이 아주 밀접하게 상호균형을 이루어서, 순간적이지만 현상적인 매개자로서 국가가 양 계급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갖게 되는 시기그 예로서는 17·18 세기의 절대군주제를 들 수 있는데, 프랑스에서의 제1차 제정과 제2차 제정 시의 보나파르트주의 그리고 독일에서의 비스마르크정권이 바로 그것케렌스키 정부소비에트는 이미무력해졌지만 부르주아지가 아직소비에트를 해체시킬 만큼 강하지 못했을 때—『국가와 혁명

식민지 특히 방대한 천연자원이 있는 식민지의 경우에도,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하는 보나파르트주의 권력이 종종 등장했다. 이를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산업이 뒤처진 나라에서 외국 자본은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하여 노동계급에 비해 토착자본가들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 상황은 국가권력에 특수한 조건을 형성한다. 정부는 외국과 국내 자본 그리고 약한 국내자본과 상대적으로 강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이런 상황은 그 정부에 보나파르트적 성격을 부여한다. 즉 계급들 위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실제로 경찰독재의 사슬에 노동계급을 묶어두고 외국 자본의 기구로 통치하거나, 노동자와 일정한 타협을 하며 외국자본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자유를 획득하기도 한다. 멕시코정부의 현 정책은 두 번째 상황이다. 그 가장 커다란 성과물은 철도와 석유 산업을 몰수한 것이다.”트로츠키, 국유화된 산업과 노동자 통제, 1938

차베스 이후의 베네수엘라, 카다피 시기의 리비아, 1979년 혁명 이후 이란, 아사드의 시리아 그리고 지금 푸틴의 러시아 정권이 이러한 식민지 보나파르트 정권이다. 이 정권들은, 한편으로 세계 자본주의 착취 체제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자원이 풍부한 자국의 이해를 제국주의로부터 방어한다.

식민지의 보나파르트 정부는 노동계급을 착취 억압하며 사회주의적 진출을 억압하지만, 현지 자원에 대한 제국주의 약탈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현지 노동 인민은 식민지 보나파르트 정부에 한편으로 저항하지만, 다른 한편 제국주의 침탈에 맞서는 국면에서 그 정부를 지지하기도 한다.

실제로 1979년 이후의 이란, 차베스 이후의 베네수엘라, 푸틴의 러시아는 제국주의 초과착취에 부분적으로 저항하면서 그 일부를 복지에 투여했다. 1999년 푸틴 집권 이후 교육 보건 주택 농업 개선을 목표로 집행한 국가 우선과제 프로젝트(National Priority Projects)’가 그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로 평균수명 교육 출산율 절대빈곤 자살률 등에서 의미 있는 개선을 낳았다. 베네수엘라 차베스가 2003년부터 추진한 볼리바르 미션과 유사한 것이었다.

 

푸틴의 부상(浮上)

푸틴은 노동자국가 붕괴와 급격한 자본주의화, 러시아 자본주의의 성장, 제국주의 약탈 등 격변기 러시아가 선택한 정치인이다.

푸틴은 1952년 레닌그라드(자본주의 반혁명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1975년 소련국가안보위원회(KGB)에 입사했다. 동독에서 근무하다가 1989년 동독 붕괴 이후 레닌그라드로 귀환했다. 훗날 레닌그라드의 반혁명 지도자가 되는 아나톨리 솝차크의 보좌관이 된다.

19918월 쿠데타 시기 푸틴은 관성적으로 그 쿠데타를 지지했지만, 패색이 짙어지자 큰 갈등 없이 위치를 바꿔 친자본주의 진영으로 넘어갔다.

푸틴은 이런 사태는 조국을 분할시키려는 시도이며, 쿠데타 지도부는 이를 막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쿠데타의 명분이 합당했다고 생각했다.그는 전날 밤 소련의 대통령 대행으로 나선 야나예프의 기자회견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았다. 푸틴은 그 장면을 보고 쿠데타가 실패로 끝날 것임을 알았다고 말했다.마침내 사직서를 썼다.그는 솝차크 시장에게 KGB 사직 사실을 보고했다. 그의 편이 되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스티븐 마이어스, 뉴 차르

푸틴은 199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으로 임명되었고, 사유화를 진두지휘했다.

1993년 급격한 사유화 정책을 주도하던 옐친이 그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농성하던 의사당을 탱크로 포격할 때 솝차크와 옐친 편에 섰다.

19966월 대선에서 옐친은 공산당 후보 주가노프를 간신히 꺾고 승리했다. 푸틴은 옐친의 두 번째 정권에 합류한다. 1997년 정부 부처를 감독할 권한을 지닌 요직 중앙통제국장에 임명된다.

자신의 옛 주인 솝차크가 부패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 푸틴은 그를 파리로 도피시킨다. 퇴임 이후를 걱정하던 옐친은 푸틴의 이 충성심에 감동했다고 한다.

푸틴이 소브차크를 해외로 빼돌렸다는 말을 듣고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큰 위험을 스스로 무릅쓰고 일을 저질렀다. 그래서 나는 그가 한 행동을 대단히 높이 평가한다.”같은 책

19987, 푸틴은 연방보안국(FSB) 국장으로 승진했다. 19988월 러시아 디폴트 사태가 발생하며 공산당이 주도하는 두마가 옐친의 탄핵을 추진하는 등 정세가 불안해졌다. 푸틴은 헌법을 위반하고 러시아 국가체제를 반헌법적 방법으로 해치려는 세력은 그에 상응하는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라며 철벽처럼 대처했다. 옐친과 지배계급은 푸틴의 이런 카리스마에 더욱 호감을 느꼈을 것이다.

19995월 옐친 정권의 총리 프리마코프가 옐친 탄핵을 주도하자 해임하고 8월 푸틴이 총리로 임명된다. 이 시기 차기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서 옐친은 6%에 이를 정도로 바닥을 친다(UPI 199945, Yeltsin's popularity in single digits). 옐친은 결국 1231일 사임을 발표하고 푸틴은 대통령권한대행이 되었다.

20003월 치러진 선거에서 푸틴은 드디어 대통령이 되었다.

 

전임자 옐친

푸틴의 부상(浮上)은 전임자 옐친에 대한 환멸의 결과였다. 옐친은 서방 제국주의 자본주의화를 현장에서 실행한 매판 정치인이었다.

자본주의 반혁명 직후부터, ‘충격요법이라고 명명된 대규모 사유화는 그 이름만큼이나 급격한 속도와 강도로 진행되었다. 미국 금융자본의 설계와 지휘에 따른 것이었다. ‘충격요법을 설계한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제프리 삭스(Geffrey Sachs)는 옐친의 대표적 경제 고문이었다.

국유자산의 해체와 사유화의 부활은 노동계급에게 재앙을 안겼다. 인구 평균수명 자살률 범죄 매춘 등 삶의 수준을 측정하는 모든 수치는 수직으로 추락했다. (소련 사유화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분석은 소련 붕괴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참조)

국유 체제의 해체로 큰 충격을 받은 사회는 저항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노동계급은 혁명적통찰력을 가진 지도부가 없었다. 199310월 의회 의사당 건물을 점거하며 옐친과 맞섰던 루츠코이나 히스블라토프 등은 이미 버림받은 과거에 대한 잔상만 있을 뿐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었다.

서방의 재정적 정치적 지원과 반대파의 무능 등의 도움으로 옐친은 그 대결에서 승리했지만, 서방 제국주의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옐친에 대한 믿음은 점점 엷어져 갔다. 무엇보다도 소련으로부터 물려받은 막강한 군사력이 무력화되고, 러시아의 광대한 천연자원이 제국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보며 러시아 자본가들과 노동인민은 분통이 터졌다.

그러한 압력 속에서 러시아 사회는 민족주의 방향으로 약간 왼쪽으로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10년가량 성장한 러시아 자본가들과 인민은 혼란한 사회를 안정시키고 제국주의 약탈에 맞설 지도자를 갈망했다. 이러한 역관계의 중심점에 푸틴이 있었다.

 

러시아는 제국주의인가?

러시아는 영토 인구 자원 군사력 등에서 대국이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는 힘이 센 나라 즉, 열강(列强)이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아니다. 비슷한 범주로 브라질, 인도, 이란 같은 나라가 있다. 한편 벨기에나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군사적으로 약소국이라고 볼 수 있지만 세계 경제체제에서 초과이윤을 수취하는 제국주의 국가이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는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최고 단계로 규정한다. 그것은 단순히 힘이 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제관계 속에서 초과이윤 수취 능력을 가진 국가를 의미한다.

아래는 20211월의 글 벨라루스 사태에 대하여중에서 이 주제 관련 부분의 발췌이다.

* * *

러시아: ‘자본주의 열강이지만, 제국주의는 아니다’

미국과 더불어 러시아는 동유럽과 벨라루스 정세에 결정적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러시아 사회성격 분석은 의미가 크다.

러시아는 1991년 이후 자본주의 국가로 되돌아갔다. 자본주의 러시아는 광대한 영토, 엄청난 천연자원, 막강한 군사력, 낙후한 생산성등을 특징으로 한다. 앞의 3가지 특징은 소련의 후광을 이으며 강대국 즉, 세계 열강 중 하나로 행세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선진 제국주의에 비해 큰 격차를 보이는 생산성은 제국주의 즉, ‘초과이윤 수취를 동기로 하는 금융자본의 식민주의의 반열에 들지 못하게 한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팽창 정책은 그 나라 자본가들의 주관적 소망 때문이 아니다. 이윤 최대화를 지향하는 자본의 본성적 요구에 이끌린 결과이다. 제국주의 팽창정책은 초과이윤(“자국 노동자들로부터 착취하고 있는 이윤 이상의 이윤”/레닌) 수취라는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자기 본성의 실현이다.

그런데 2020년 기준 러시아의 월 최저임금은 12,130루블(한화 약 23만원/)에 불과하다(러시아, 2020년 최저임금 인상). 이 상황에서 자본이 러시아 해외로 나가 자국 노동자들로부터 착취하고 있는 이윤 이상의 이윤을 얻어내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게다가 해외의 착취구조를 현지인민과 제국주의 라이벌로부터 방어하고 착취한 물자나 이윤을 본국으로 안전하게 가져오는 군사 비용 등까지 고려하면 타산이 전혀 맞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는, 러시아 자본가 계급의 주관적 자기 정체성이 어떠한가와 관계없이, 제국주의 국가가 될 수 없다. 육식을 소화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포식자가 될 수 없다.

경제적으로 러시아는 자국의 노동으로 생산한 가치의 일부가 상품 교환, 외자 융자, 직접 투자 등으로 제국주의 국가로 유출되는 나라 즉, 식민지이다. 한편 정치적으로 러시아는 자주권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는 반()식민지국가이다.

한편 러시아는 자원부국이다. 러시아 자본가들은 정치적 결정권을 잃고 서방 제국주의의 마름으로 전락되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제국주의 군대가 진주하여, 자기 마당의 자원을 제 것마냥 퍼날라 탕진하는 것을 뒷전에 서서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사회적 지위는 형편없이 쪼그라들고 비굴한 자세로 부스러기 수준의 이윤만 얻어먹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옐친 이후 2000년부터 지금까지, 러시아 자본가계급이 푸틴을 중심으로 강력한 보나파르트 민족주의 정권을 유지하는 배경이다. (자원부국이면서 보나파르트 민족주의 정권이 들어선 베네수엘라, 이란, 카다피 시절의 리비아 등과 같은 사정이다.) 옐친은 자본주의 정권으로 갓 태어나 러시아 내부 국유화 해체 반대파에 맞서야 했다. 내부 지지가 취약했고 서방에 기대어야 생존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 10년 사이 자본가 권력은 훌쩍 컸고, 제법 굵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제 땅에 지닌 노다지 같은 천연자원은 서방 제국주의에 마냥 굴복할 수 없는 강력한 동기를 주었다. 소련으로부터 물려받은 막강한 군사력은 자기 목소리를 지킬 배짱을 가지게 했다.

러시아는 그동안 미국의 질주에 수동적이고 방어적이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강력한 경쟁자가 사라진 세계 무대에서 미제국주의는 거칠 것이 없었다. 과거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던 나라들을 경제 군사 정치적 방법을 동원하여 하나 둘 복속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1992년 소말리아, 1999년 세르비아, 2001년 아프가니스탄, 2003년 이라크, 2011년 리비아와 시리아 등을 직접 침공하거나, 그 지역 친미 집단을 지원하여 내전이나 쿠데타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친미 정권을 세웠다. 그러면서 점점 가장 탐스런 먹잇감인 러시아에 다가왔다.

푸틴 포함 러시아 자본가 계급은 친서방적이었고, 심지어 미국과 세계운영의 동반자가 되려는 순진한 환상마저 품고 있었다. 이러한 러시아를 결정적으로 각성시킨 것은 2013~14년 우크라이나 사태였다. 구 소련 영향권의 나라들이 미국 수중에 차례로 떨어진 뒤, 하나같이 러시아 적대국이 되는 것을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게 되었다.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상하자 치아가 무척 시려워진 것이다.

2011년부터 미국 주도 정권교체에 시달리던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요청에 2015년 러시아는 드디어 움직였다. 같은 처지에 시달리던 이란과 더불어 시리아에 군대를 파견하여 아사드 정권 방어에 나섰다. 치아를 지키려면 먼저 입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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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와 관련하여 몇 가지 자료를 덧붙인다.

1) 러시아 총 GDP: 러시아 GDP는 한국보다 낮은 11위이다. 러시아 인구는 146백만 명이고, 한국은 러시아의 약 1/351백만 명이다. 러시아 GDP는 인구 33천만인 미국 GDP의 약 7.6%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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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인당 GDP

WorldBank에 따르면 주요국의 20211인당 GDP는 다음과 같다. 미국의 대략 1/6 한국의 1/3 수준이며, 중국과는 거의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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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계 500대 기업

포춘이 작성한 세계 500대 기업(2018)이 많이 있는 나라 10위 가운데 러시아는 없다. (Fortune Global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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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기준 500대 기업에 드는 러시아 기업은 4개이다. 그 중 3Gazprom · Lukoil · Rosneft Oil,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에너지기업이고, 나머지 하나 SberBank는 국영은행이다(FortuneKorea 202292)

 

 

우크라이나와 좌익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세계 좌익의 입장은 4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1)러시아를 침략자로 규정하며 우크라이나와 나토 승리 지지(RCIT )

2)러시아를 제국주의로 규정하며 쌍방 모두의 패배(IST/노동자연대, IBT 잔류파, 노사과연 등)

3) 제국주의는 아니지만 러시아도 반동(레프트보이스, ICL)

4) 미국 중심 서방제국주의의 동진(東進)으로 인한 제국주의 vs 식민지의 싸움 돈바스와 러시아의 승리(볼셰비키그룹과 MSO 소속 단체들)

 

1)러시아를 침략자로 규정하며 우크라이나와 나토 승리 지지

RCIT는 러시아를 침략자로 규정하며 나토 제국주의 꼭두각시인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주장한다. RCIT는 국제전으로 발전한 2022224일 당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푸틴의 제국주의 전쟁을 타도하자!우리는 러시아의 침략에 대항하여 우크라이나 인민과 그들의 저항 투쟁을 지지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RCIT는 홍콩, 미얀마,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대만 등 미제국주의가 원인이 된 대부분의 갈등에서 그 사안들의 책임을 제국주의 중국또는 제국주의 러시아에 묻거나 미 제국주의와 중국/러시아 제국주의모두의 문제라는 양비론에 서 왔다. 심지어 신식민지 한국마저 제국주의로 격상시킨다. 이런 식으로 미 제국주의를 주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항상 조심한다.

최근에는, 제국주의 일본에 맞선 중국 군사적 지지 입장을 설명한 트로츠키의 1937년 입장을 교묘히 왜곡하여, 자신의 친제국주의 입장에 마르크스주의 색채를 입힌다.

현 우크라이나 전쟁과 1937~41년 중일전쟁 간의 유사성을 인식하기란 어렵지 않다. 두 경우 모두 반()식민지 나라 (각각 우크라이나와 중국)가 제국주의 열강 (각각 러시아와 일본)에 의해 공격받았다. 두 경우 모두 피억압국의 저항이 배신적 부르주아 세력 (각각 젤렌스키와 장제스)에 의해 주도되었다. 두 경우 모두 민족해방전쟁이, 긴장 고조와 경제 제재를 가져온 강대국들 간 제국주의 패권경쟁 (각각 나토 대 러시아와 미국 대 일본)과 결합되었다.

두 경우 모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강대국들 간의 충돌에서 혁명적 패배주의 입장을 취하면서 피억압 인민의 정당한 방어 전쟁을 지지했다.”RCIT, 우크라이나 전쟁과 2차 중일전쟁: 역사적 유추

이런 방식으로 RCIT는 늘 그랬듯, 미제에 면죄부를 준다. 식민지 러시아와 돈바스지역 인민의 정당한 자기방어를 도리어 제국주의 행각으로 규정한다. RCIT는 매우 해롭다.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노동계급 선진부위가 이 점을 빨리 알아채기를 바란다.

 

2)러시아를 제국주의로 규정하며 쌍방 모두의 패배 주장

국제사회주의경향(IST)와 그 한국지부인 노동자연대가 기회주의적 제국주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 점을 여러 차례 설명해 왔다(레닌주의 제국주의론 vs 클리프주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들의 중립노선은 그 논리적 귀결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봐야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무자비한 공격을 벌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과 서유럽 강대국들도 제재와 무기 지원 등을 통해 이 갈등의 중요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서방 옹호만큼이나 러시아 옹호 입장도 잘못된 입장이다. 적의 적을 무조건 친구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미국과 러시아 둘 모두에 반대해야 한다.많은 좌파들은 제국주의를 (미국 같은 특정) 강대국의 약소국 지배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이처럼 식민주의로 환원될 수 없고, 강대국들 간의 세계적 경쟁 체제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과 서유럽 강대국들처럼 분명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동유럽을 놓고 서방과 쟁탈전을 벌이는 제국주의 국가이고, 세계적 수준에서도 점점 더 그러고 싶어 한다."노동자연대 202238일,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와 전쟁

2018년까지 우리와 함께 싸웠던 IBT 잔류파 동지들은 지난 2008년부터 줄곧 러시아가 제국주의라고 주장해왔다. 이제 클리프주의와 거의 비슷해졌다. 그럼에도, 제목에서는 갈등의 주원인이 나토제국주의라고 말한다. 뭔가 부끄러움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의 벼랑 끝 전술을 비난하고 수억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군사 충돌을 반대한다. 미국/나토와 러시아의 무력 충돌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양쪽 모두의 패배 입장을 취해왔다.”202221, 나토제국주의가 우크라이나 위기를 고조시키다 NATO Imperialists Escalate Ukraine Crisis

이른바 스탈린주의로 분류되는 조직 중 다수도 러시아를 제국주의로 규정하며 미국과 나토 제국주의에 면죄부를 주거나, 최소한 전쟁 주범으로서의 죄를 감경해주는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스공산당과 한국 노사과연이 그러하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의 근원은 시장의 분할, 전략적 중요성이 있는 자원과 지역에 대한 통제를 둘러싼 경쟁입니다. 그것은 부르주아지에 의해 수행되고 있고 이끌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양쪽 세력 모두에서 제국주의적입니다; 그것은 그 지역의 인민들에 반대하여 수행되고 있으며 그것이 확산된다면 심지어 핵무기의 사용을 가져올 수 있는 커다란 위험이 있습니다.”노사과연 번역 그리스 공산당: 하바나에서 열린 제22차 공산당 노동자당 국제회의 기고

노사과연은 그리스공산당을 소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러시아가 제국주의이며(심지어 중국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잘못이라는 글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발표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제와 나토의 제국주의적 야욕, 우크라이나 지배계급의 이해관계 및 동부 지역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그리고 러시아 지배계급의 이해가 충돌하며 발발한 제국주의 대 제국주의의 전쟁입니다. 전쟁의 책임은 미국과 나토의 제국주의자들,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의 지배계급 모두에게 있지만, 결국 모든 희생은 노동자 인민대중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2022421일 정세와 노동

 

3)제국주의는 아닐지 모르지만, 러시아도 반동이므로 중립

레프트보이스, IST/노동자연대와 달리, 러시아를 제국주의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러시아 역시 반동적이므로, 노동자계급이 양쪽 모두에 맞서 싸워야 한다라는 비현실적이고 초좌익적 입장을 내놓는다. 또한 키예프 정권의 민족주의와, 그들에게 억압당하는 러시아어권의 민족주의를 동일시하면서 전자가 후자에 가하는 민족적 억압을 무시한다.

오직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독립 정책을 통해서만 제국주의, 푸틴의 반동 정책, 우크라이나를 분열시키는 반동적 민족주의(우크라이나 정부를 지지하는 신나치 친서방 민족주의 조직이든, 친러시아 민족주의 조직이든)에 맞설 수 있다.노동자계급 주도 아래 노동자계급사회주의 우크라이나로 나아가는 오직 이 길을 통해서만, 외국 기업들과 올리가르히에 의한 조직적 약탈을 종식시키며, 모든 민주적, 민족적 권리의 존중을 보장할 수 있다.”노동해방투쟁연대 번역 2022311경제 제재는 노동자 민중을 공격하는 제국주의의 도구다

ICL 역시, ‘러시아가 제국주의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싸우고 있을 뿐이라는 해괴한 궤변을 늘어놓는다. 레프트보이스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노동자들은 양쪽 모두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초좌익적 결론을 낸다.

노동자들은 러시아 편을 들어야 하는가? 일부 좌파들은 러시아가 제국주의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대러시아 쇼비니즘에 대한 굴복이다. 러시아는 제국주의와 전쟁 중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정부와 전쟁 중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제국주의와 싸우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전략은 러시아 지지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노동자들 공동의 혁명 투쟁에 있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예속시키는 것은 민족적 적대감을 더욱 자극하여 우리 앞길을 심각하게 가로막을 것이다.”2022227나토/EU의 도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다 NATO/EU Aggression Provokes War in Ukra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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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shevik Tendency(BT)의 위선은 따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 BT2014년 제국주의 정권교체 작전인 유로마이단쿠데타 당시, 민주적 선거로 당선된 야누코비치와 미제의 하수인 티모센코를 동일시하며 중립을 주장했었다. 그러다가 2022년 전쟁이 발발하자, 갑자기 혁명적인 체하며 러시아와 돈바스 방어를 주장했다.

누구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잘못을 깨닫고 올바른 입장으로 돌아온다면 칭찬받고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툭하면 중립을 취해왔던 자신의 고질병은 없던 것처럼 덮어두고, 갑자기 주제넘게 나서서 중립 입장을 취하는 다른 조직들을 호되게 야단친다는 점이다(영국과 나토는 러시아 영해에서 물러가라!: 중립은 제국주의에 대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지지와 다르지 않다 UK/NATO: stay out of Russia’s territorial waters! Neutrality equals ‘conscious or unconscious’ support for imperialists).

전쟁은 정치의 연속일 뿐이다. 2022년 전쟁은 2014년의 갈등과 다르지 않다. 그 연속선 위에 있다. BT2014년에 자신이 취했던 제국주의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지지인 중립입장을 먼저 고백하고 반성했어야 했다. 하지만 BT는 그러지 않는다. 우리의 노동계급 최악의 적” : 제국주의 투항과 중립 그리고 BT은 바로 그 이중잣대와 위선에 대한 것이다.

BTMSO에 들어와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공동성명이 치머발트 선언(1915)처럼 공동행동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BT는 생각을 달리하는 것 같다. MSO의 공동성명에 한 차례도 함께 하지 않았다.

물론 같이 하지 않을 수 있다. 의견이 달라 불참하는 것만으로 계급 대의를 배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BT의 문제는 자신들도 동의하는, 러시아와 돈바스의 승리 주장으로 결집한 MSO의 존재조차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계급의 역사적 대의를 앞세워 헌신하지 않고, 자신을 그 대의 앞에 세우려 드는 것을 종파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세계 노동계급은 BT의 위선과 이중잣대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단결을 훼방하는 종파주의 또한 기억해야 한다.

 

4)미국 중심 서방 제국주의의 동진(東進)으로 인한 '제국주의 vs 식민지의 싸움' 그러므로 돈바스와 러시아의 승리

볼셰비키그룹은 전쟁 발발 이틀 후인 2022226러시아의 공격은 제국주의 하수인 키예프 정권의 포격 도발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다: 나토 제국주의의 식민지 팽창정책에 저항하자! 돈바스 지역의 민족자결권을 방어하자!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입장을 가진 국제조직을 수소문했다. 그리하여 3월 경 브라질, 호주, 미국, 그리스, 영국, 코스타리카, 아르헨티나, 동티모르 등 여러 나라의 좌익조직들과 결합했다. Class Conscious, Liaison Committee for the Fourth International(LCFI), Socialist Fight 등이 대표적 조직이다. 이들은 Marxist Speak Out이라는 이름으로, 5월 공동성명(노동절 국제공동성명) 등 공동행동을 꾸준히 조직하고 있다.

세계 노동자의 단결을 상징하는 노동절인 51, 아래 서명한 단체와 개인은 한 목소리로 세계 노동계급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인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우리의 저항을 선언한다. 우리는 러시아에 대한 세계 제국주의의 전쟁 기도를 묵과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오늘 다음과 같이 우리의 깃발을 내걸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제국주의 NATO의 대리전을 격퇴하자!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러시아의 권리를 옹호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 제국주의는 세계 대부분의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맞서 러시아와 돈바스 승리 지지 입장은 강력한 사회 압력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소수이다. 마치 1차 대전 발발 직후, 혁명적 입장을 견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거의 있으나 마나 할정도로 소수였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치머발트 회의로 결집한 그 소수는 혁명사상의 연속성을 지켜내었다. 러시아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자랑스런 국제지도부 제3인터내셔널을 건설했다.

MSO에는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진 다양한 단체들이 소속되어 있다. 이 시대 핵심 사안인 중국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갈래의 이견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MSO에 모인 조직들은 최소한,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 정세에서 가장 강력한 압력을 이겨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MSO는 치머발트회의와 마찬가지로, 혁명의 국제지도부 건설을 향한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세계 노동인민의 대세적 유리, 제국주의의 대세적 불리’ 국면

제국주의 진영의 중심축 미국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11년 카다피 제거, 2013년 이집트 군부쿠데타, 2014년 유로마이단 등이 마지막 성공 사례일 것이다. 반면에 실패 사례는 더욱 쌓이고 있다. 2011년 시리아에서 정권교체 반란을 일으켰지만, 아사드는 여전히 집권 중이다. 2016년 튀르키예 에르도안 제거 쿠데타는 실패했다. 2017년 핵과 ICBM을 개발하는 북조선을 상대로 으르댔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2019년 베네수엘라에서 일으킨 친미 쿠데타도 최종적으로 실패했다. 20201월에는 이란 최고 군지휘관을 암살하는 등 이란을 몰아붙였지만 응징하지 못했다. 2019년 볼리비아에서 친미 쿠데타를 일으켰던 아녜스는 20213월 감옥에 갇혔다. 20208월 벨라루스, 20211월 카자흐스탄의 반정부 무장폭동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연쇄적 실패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것은 20218월 미 제국주의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패전이다. 미국 입장에서 20년 동안 공들인 전쟁이었다.

지난 10년간의 국제정세는 제국주의 호시절이 끝나고, ‘세계 노동인민의 대세적 유리, 제국주의의 대세적 불리국면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제국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 붕괴는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제국주의 초과착취는 전세계에서 더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제국주의가 뭔가 이루려면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도 자꾸 마가 낄 것이다. 지배계급 내부 분열은 더욱 노골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식민지 하수인 정권들은 더욱 큰 폭으로 동요할 것이다.

 

일극 체제의 균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미국은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길 희망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독일 · 프랑스 · 영국 제국주의 동업자들은 이미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전쟁이 이런 강도로 장기화하면, 우크라이나의 손실은 견딜 수 없게 된다. 크림반도까지 회복할 수 있다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라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이다(한겨레 2023228, ··, 우크라이나에 평화협상 촉진 위한 방위 협정 제안).

심지어 설설 기며 복종하던 인도 · 사우디아라비아 등도 중국 · 러시아 등과 거리낌 없이 거래한다. 달러가 아닌 위안이나 루블화 등으로 무역하며 달러패권을 교란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계급 역관계

우크라이나 전쟁은 거스를 수 없는 제국주의 본성의 표현이다. 이 전쟁으로 제국주의와 노동계급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만약 제국주의가 승리한다면, 러시아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질 것이다. 미국을 리더로 하는 제국주의는 1990년대 자본주의 반혁명 이후처럼 새로운 에너지를 얻으며 회춘할 것이다. 중국 역시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군사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돈바스와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그것은 세계 노동인민의 대세적 유리, 제국주의의 대세적 불리국면을 가속할 것이다.

반제투쟁에 대한 트로츠키의 설명은 언제 보아도 명쾌하다.

지금 브라질은, 혁명가라면 누구나 증오할 수밖에 없는 유사파시즘 체제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령 내일 당장 영국이 브라질을 군사적으로 공격한다고 한다면, 이 전쟁에서 노동자 계급은 어느 편에 서야 할까요? 나의 견해를 말하자면, 이 경우에는 민주주의 국가인 영국에 맞서 파시즘 국가인 브라질의 편에 설 것입니다. 어째서일까요? 이들의 대립은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국이 승리한다면 브라질 수도 리우 데 자네이로에 또 다른 파시스트를 들여앉힘으로써 브라질에 이중의 족쇄를 채울 것입니다. 반대로 브라질이 승리한다면, 브라질의 민족주의 · 민주주의 의식을 엄청나게 자극함으로써 바르가스[당시 브라질 대통령] 독재정치가 전복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동시에, 영국의 패배는 영 제국주의에 타격을 입히고 영국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운동을 자극할 것입니다.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군사적 충돌과 적대를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투쟁으로 인식하는 자들은 정말로 천치들입니다. 가면 뒤에 숨은 착취자, 노예 주인, 강도들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합니다.”반제국주의 투쟁이 해방의 열쇠다! 1938

 

우리의 임무

-미국 주도 나토 제국주의와 키예프 현지 하수인 정권의 패배를!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는 러시아와 돈바스지역의 승리를!

-제국주의 노예 사슬의 첫 번째 고리인, ‘사민주의, 사회애국주의, 부르주아 평화주의, 영미 국수주의를 타도하자!

-노예의 사슬을 끊어내고 혁명적 국제정당을 건설하자!

 

202338

볼셰비키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