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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BT 내부논쟁에 제출한 문서들

: 이집트, 브라질, 터키

 

2013년부터 2018년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 진행된 논쟁이어서 참여자와 제출된 의견서가 매우 많다. 그리고 상대방 즉, IBTBT는 논쟁의 결과 또는 일부분만 공개했다. 따라서 우리가 제출한 문서만 공개하고 나머지는 두 사이트의 관련 링크를 소개한다. 필요하다면, 앞으로 후속작업을 통해 보완하려 한다.

<3단체의 분립 관련 링크들>

볼셰비키그룹 영문 Collapse of the IBT

IBT Russian Imperialism and Other Disputes

BT Why Things Fell Apart

제출된 글은 볼셰비키그룹(당시 IBT 한국 지부)의 내부 논의를 정리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거나 로 표현되는 경우는 활동가 ‘M’을 지칭한다.

 

<차례>

1. 2013년 7월 3일 발생한 이집트 쿠데타의 성격과 노동계급의 대응

2013년 8월 23일: “무르시 정권은 단지”

2016년 5월 7일: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2016년 5월 10일: “분명하게 이집트는”

2016년 5월 11일: “무르시 정권은 물론”

2016년 5월 13일: “전략적 차이가 아니라 전술적 선택과 우선순위”

2016년 6월 2일: “브라질 상황보다는 이집트”

2016년 7월 9일: “H 동지는 무슬림형제단 정부가”

2016년 7월 19일: “H 동지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2. 2016년 7월 15일 터키 쿠데타 발발 이후

2016년 7월 26일: “지금의 터키 상황에도 적용되어야”

2016년 9월 11일: “우리가 만약 에르도안과 동맹을”

2016년 10월 9일: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2016년 11월 23일: “톰의 12월 19일 편지와 H의 12월 21일 편지는”

2016년 12월 27일: “RB 동지의 응답에 대한 몇 가지 논평”

2017년 4월 8일: “H와 톰의 문서 「에르도안 보나파르트 정권」은”



1. 2013년 7월 3일 발생한 이집트 쿠데타의 성격과 노동계급의 대응


2013년 8월 23일

(무슬림형제당)의 무르시정권은 단지 반동적이고, 친제국주의적이며 이슬람주의 정권인 것만이 아니다. 이 정권은 이집트 인민과 (미제국주의와 토착 하위파트너로 구성된) 지배집단 사이의 2011년 계급투쟁으로 조성된 역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무르시정권은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인민에게 무르시 정권은 2011이집트 혁명의 산물이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한 결과였다. 대통령 직선제 하나만 그 투쟁을 통해 획득되었다. 한편, 제국주의자에게도 무르시정권은 못마땅한 것이다. 내키지 않았지만, 2011년 투쟁으로 인해 마지못해 양보한 결과였다.

무르시정권 당시 격렬한 저항을 통해 보듯, 무르시정권은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이해를 방어하기에 매우 취약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무르시정권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더욱 감내할 수 없었던 것은 무르시정권 치하 끊임없는 대중적 저항이었다. 만약 그 저항을 제지하지 못한다면 그 저항은 이집트 사회에 근본적 문제를 제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평가 속에서 무르시에 대한 군사적 방어는 2011년 민주주의 투쟁의 성과를 방어하는 것이다. 마치 코르닐로프에 맞선 투쟁이 2월 혁명의 성과 방어였던 것처럼.

그래서 나는 군부독재 반대! 제국주의에 맞서 민주주의 성과를 방어하자!’가 우리의 핵심 구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브라질 노동자당 출신 룰라 대통령에 이어 당선된 호세프의 탄핵 사건 이후 논쟁이 재개되었다.]

 

2016년 5월 7일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선거는 부르주아 독재의 합리화이고 선거를 통해서 그 독재에 도전하는 길은 닫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첫째, 선거 이전,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프롤레타리아트의 대표가 국가권력에 도달하는 길은 각종의 장애물로 가로막혀 있다.

둘째, 선거 이후, 자신들(식민지에서는 제국주의 금융자본의)의 이해가 위협받거나, 이른바 민주주의적과정으로 인해 그들의 이해가 만족스러울 정도로 충족되지 못할 때, 지배집단은 그 결과를 뒤집을 수단을 가동한다. 그 수단은 대중매체를 이용한 괴롭히기에서부터 투옥이나 기소, 정당 해산, 탄핵, 암살, 파시즘, 반란군의 봉기, 쿠데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식민지 토착 지배자들은 대부분 매판집단이다. 그들은 제국주의의 현지 사업에 쓸모 있을 때만 지배집단의 일원이 되고 제국주의 지배의 하위파트너로 기능한다. 그들이 제국주의 금융자본에 맞서는 독립적 이해를 가지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대단한 채취 기술이 필요 없는 막대한 천연자원이 있는 나라가 그 자원을 제국주의에 약탈당할 때, 제국주의에 맞선 토착 부르주아의 적개심과 민족주의는 다른 곳보다 상승하게 된다.

-그러므로, 식민지에서 한편의 부르주아와 다른 한편의 갈등은 민족주의부르주아(또는 제국주의 이해를 거스르는 장애물)와 제국주의가 통제하는 하위 파트너(특정 경우 노골적인 용병) 사이의 갈등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부르주아 일파를 추종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약 부르주아 법질서 내에서 갈등이 발생하거나 물리적 충돌이 없거나 외부 제국주의 침략이 없거나 할 경우, 우리는 관여하지 않으며 중립을 지킨다.”라는 태도는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방어적이다.

-“전쟁(물리적 충돌)은 대단히 특별한 무엇이 아니고, 다른 방법을 통한 정치의 연장일 뿐이다.” [우리 볼셰비키그룹은 2011년 발생한 리비아와 시리아 사태가 제국주의가 배후에 선 정권교체 내전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IBT의 그 동안의 입장은 제국주의의 직접적인 군사침략이 없다면, 자국 내 두 부르주아 분파 사이의 갈등일 뿐이므로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였다. 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의 위 구절을 통해, ‘전쟁은 기존 정치적 갈등의 연속 속에서 그 극단적 표현/현상일 뿐, 새로운 정치적 본질이 등장하거나 기존의 본질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2016년 5월 10일

분명하게 이집트는 현재의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20138월 토론했었다. 오늘처럼, 당시에도 몇몇 동지들은 중립이 올바른 입장이라고 주장했고, 나를 포함한 몇몇은 무르시와의 군사적 동맹을 주장했다.

그러나 중립 주장의 근거는 오늘 브라질에 대한 것과 2013년 이집트에 대한 것이 사뭇 다르다. 오늘 톰과 빌은 부르주아 법질서를 중립의 근거로 지적한다: “법질서를 벗어나지 않는 한그리고 만약 그 권리가 부르주아 법질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러나 2013년 이집트에서 발생한 사건은 명백히 부르주아 법질서를 침해한 것이었다.

2. 사실, 만약 2013년 이집트 또는 군사쿠데타가 벌어지는 다른 곳에 상당한 세력을 가진 혁명조직이 있었고 그 조직이 중립입장을 취한다고 했다면, 그것은 의미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입장은 그 상황에서 단지 인민들에게 그들 모두 악일뿐 이라고 (우리는 매일 조금씩 먹는 독약머리에 겨눠진 총이 모두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르치는 것 외에 할 것이 아무것도 없거나, 또는 중립 입장으로 쿠데타 세력에 승리를 허용하여 그 조직은 곧 살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리고 우리는 어떤 양을 통해 (부르주아) 두 분파의 질적 차이를 판단할 것인가? 그 사건들을 되돌아보면 자명하다. 제국주의의 (이집트의 군사엘리트, 리비아 TNC, 시리아의 온건반군 등) ‘직접 도구로 쓰인 분파가 승리했을 때 특정 수치가 급격히 상승한다. 국가 재화의 유출, 학교/병원 등 사회시설의 파괴, 무고한 시민의 살해, 강간, 사형 선고(2014년 이집트에서 528명이 사형선고를 받음), 살해되거나 투옥된 활동가, 노숙자, 이민자, 지중해 익사자 등. 나는 이 숫자들이 두 분파의 차이 그리고 쿠데타 이전과 이후 상황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2016년 5월 11일

무르시 정권은 물론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노동인민에 의해 타도되어야 하는 반동적인 종교 정권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는 모두 그에 동의한다.

그러나 제국주의가 지원하는 군사쿠데타로 타도되는 것과 같은 것인가? 우리가 보는 것처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방어했어야 했던 것은 단지 무르시정권이 아니라, ‘군사쿠데타에 의해 타도되려는무르시정권이었다. 우리가 방어했어야 했던 것은 무르시가 뭔가 우리를 위해 선한 것을 할 것이라는 헛된 기대가 아니다. 우리가 방어했어야 했던 것은 그 지점에까지 이른 노동인민의 투쟁이었고, 동시에 사회주의 미래였다. 쿠데타가 벌어진 때에 우리가 방어했어야 했던 것은 무르시나 그의 정권 자체가 아니라, ‘베일’(이슬람 억압 문화 중 하나인)을 잠시 참아내면서, ‘무르시가 방어하고 있는 이집트 식민자본주의를 타도할 자원과 시간이었다.

무르시는 역관계에 따라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 놓인 장벽이었다. 두 진영 모두 그 장벽을 계속 온존시킬 생각은 없었다. 한편 그 장벽은 일시적으로 다른 편의 공격을 막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무르시 정권은 두 진영 모두 자신의 배타적인 이해를 안정적으로 관철하기 위해 무너뜨리기를 원하던 장벽이었다.

결정적 문제는 그 장벽이 어느 방향으로 무너지는가이다. 우리는 그것을 오른쪽 적진영으로 무너뜨리며 더욱 전진하기를 원하는 한편, 그 장벽이 오른쪽에서 (지배집단에 의해) 우리 진영으로 무너질 때는 그를 방어해야 한다.

중립입장은 단지 틀린 것만이 아니다. 위험한 것이다.

 

2016년 5월 13일

참고

우리(최소한 나 자신은)는 전략적 차이가 아니라 전술적 선택과 우선순위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전술이 특정 시점에서는 생사를 결정하는 치명적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아래의 인용이 우리 토론에 의미 있는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둔한 자들을 위해 예를 하나 더 들기로 하자. 적들 가운데 한 놈이 내가 매일 강제로 복용해야 할 소량의 독을 내 앞에 놓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놈은 나에게 곧바로 권총을 발사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우선 두 번째 적의 손을 쳐서 권총을 떨어뜨려야 한다. 그래야 첫 번째 적을 처치할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독이 권총에 비해 차선책인 것은 결코 아니다.”트로츠키, 반파시즘 노동자 공동전선을 위하여, (1931128)

 

질문

브라질 상황에 대한 중립입장의 근거로 동지들은 군사적 개입이 없었으므로”, “의회(절차)이므로”, “부르주아 법질서 내이므로”, “이집트와 다르므로등을 든다. 그러나 우리가 위의 논거를 적용할 수 있는 이집트에 대해 논의할 때에는 동지들은 다른 것을 중립의 근거로 댄다. 일관성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동지들 생각은 어떤가?

2. 중립을 주장하는 동지의 핵심 논거는 질적인 차이라고 생각한다. 내겐 그것이 상당히 추상적으로 들리는데, 그것을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는가?

   

2016년 6월 2일

나는 브라질 상황보다는 이집트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는 브라질에서의 탄핵은 현지 하수인 우익 분파와 미제국주의가 그들이 맞닥뜨린 장애물을 제거하고 자신의 이해를 최대화하기 위한 합동 작전이라고 믿는다. 현지 하수인은 수십 년 동안 제국주의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식민체제의 하위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작전은 노동계급의 이해에 반한다.

그러나 당분간은 이 문제를 유보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첫째, 브라질 상황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둘째, 우리가 입장을 취하는 것이 긴급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고, 셋째, 우리가 잘못된 노선을 취한다고 하여도, 희망하건대, 브라질 노동계급이 괴멸될 정도로 너무 치명적인 것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브라질 상황을 앞으로도 예의 주시하여야 한다.

이집트 문제로 돌아가자. 나는 톰과 H513일 이메일을 읽으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선, 나는 톰 주장엔 일관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브라질에 대한 중립노선의 근거로 군사적 개입이 없었으므로”, “의회(절차)이므로”, “부르주아 법질서 내이므로”, “이집트와 다르므로를 들었다. 그렇다면, 군사쿠데타가 발생한 이집트에서는 다른 노선을 취했어야 했다. 모든 축구경기의 규칙은 같아야 한다.

둘째, 우리가 알고 있듯, 군사쿠데타 이후에 이집트 피억압 인민은 상당한(동지들에게는 별것 아닐 수도 있겠지만) 후퇴를 경험해야 했다. BBC 2014324일 뉴스가 보도한 무르시 지지자 528명에 사형을 선고한 사실은 빙산의 일각이다. 톰 동지는 [513일 메일에서 인용한 트로츠키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이] “궁극적 승리를 위한 전제인 노동운동의 생존을 위해, 당장의 도살자에 맞서 개량주의자와 일시적 동맹을 맺는 것이 필요하다. 일시적 생존, 이것이 질적인차이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동지는 동시에 무슬림형제단과 군부 사이에 질적인 차이는 없다.”라고 주장한다. 한편 H무르시 방어를 통해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한다.

나는 스스로 물어야했다: ‘500명을 넘는 인민의 목숨이 가치 없다면 무엇이 방어할만한 것일까?’ 이 목숨은 제국주의의 손에 의한 인민의 무고한 희생과 커다란 후퇴를 의미한다. 그런데 동지들은 그것을 질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며 무시한다.

무르시 지지자들이 이슬람 규율을 강제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가? 차도르나 그와 같은 것들이 궁극적 목표를 위해 필요한 우리의 생존 시간마저 포기해야 할 정도로 감내하기 어려운 것인가?

남한에서 학살로 귀결된 군사 작전은 네 번 있었다. 1) (한반도 전쟁 이전인) 1946~1950, 2) (전쟁 중인) 1950~53, 3) 19604.19 혁명 1년 뒤 1961년 박정희의 쿠데타 4) 최소 수백 명의 광주 인민을 학살한 박정희 암살 이후 1979~80의 쿠데타. 이 사건들을 경험한 계급의식으로 각성한 노동자는 그러한 군사행동이 반인민적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 1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남고 노동인민 전체를 구하기 위해 그들은 즉각 군사쿠데타에 맞설 것이다. 그러나 동지들은 그들을 질적으로 아무것도 아님이라고 써붙인 가방에 던져 버린다.

 

2016년 7월 9일

H 동지

동지는 무슬림형제단 정부가 인민을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할 것이라는 환상을 누군가 가지고 있다는 전제 아래 논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군사쿠데타에 맞선 무슬림형제단 방어로 이집트 노동계급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나는 무슬림형제단이 질적으로 나은 것이나 방어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는 두 부르주아 반동 세력을 통해 얻을 것이 없다고 본다.”H, 727

나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511일 설명했지만, 오늘 다시 하고자 한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러한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런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볼셰비키당이 임시정부에 대해 비슷한 환상을 가졌던가? 그랬다, 4월 이전에.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4월 이후로. 우리가 알듯이, 레닌의 4월 테제는 임시정부에 대한 그와 같은 환상을 공격한 것이었다. 그리고 7월 무렵이 되어서는 페트로그라드 인민 대부분도 임시정부에 대한 그와 같은 환상을 버렸다. 물론 그 당시 임시정부(이집트 무르시정권에 비견되는)에 맞선 투쟁은 의심의 여지없이 대중적이었고 노동계급을 포괄했다(H, 727).” 쿠데타 직전 2013년 이집트 상황처럼. 그런데 왜 볼셰비키는 중립을 취하지 않고, 임시정부를 코르닐로프로부터 방어했는가? 임시정부가 뭔가를 해줄 것이라는 환상이 아직도 남아있어서였던가? 아니면 케렌스키가 코르닐로프보다 민주적으로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전혀 아니다. 볼셰비키가 임시정부를 방어했던 것은 그런 부차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 볼셰비키는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전략적 이유로 임시정부를 방어했다. 볼셰비키는 2월 혁명으로 조성된 역관계를 방어하기 위해 그리고 임시정부를 노동계급의 손으로 타도할 기회를 방어하기 위해 임시정부를 방어했다.

이집트로 돌아가서. 만약 우리가 무슬림형제단을 방어했다면, 우리는 1) 그것이 2011년 이집트 혁명으로 조성된 역관계 2) 이집트 자본주의를 지키는 (거의 마지막) 방어선인 그 정권을 노동계급의 손으로 타도할 기회를 방어하기 위함이었다.

 

2016년 7월 19일

H 동지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동지는 내 주장을 진지하게 읽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주장하지 않은 것을 반박하려고 드는 동지를 보며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동지는 무르시가 썩을 놈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든다. 하지만 나 역시 무르시는 타도되어야 할 반동정권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우리가 군사쿠데타로부터 방어할 것은 무르시가 아니라, 무르시정권으로 집약되고 동시에 무르시 타도의 기회가 되는 2011년 저항으로 조성된 역관계라는 점이라고 설명해 왔다.

그러므로, 무르시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를 설명하는 자료들(심지어 동지는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알시시만큼 나쁜 놈임을 증명하려고 든다!)은 어느 정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은 제자리걸음을 하며 허수아비를 공격하는 격이다.

동지가 전해준 뉴스 보도는, 무르시가 자신의 쿠데타를 음모했을 가능성을 언급한다. 그다지 놀라울 일은 아니다. 케렌스키 역시 그러했다. 그런 점에서 그 상황을 가정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만약 무르시가 2011이집트 혁명에 맞서 그 자신의 쿠데타를 기획했다면, 그것은 알시시의 쿠데타의 목표와 달랐을까? 우리는 무르시의 만약의 쿠데타에 반대했을까?

 

질문

동지는, 쿠데타의 궁극적 목표는 무르시가 아니라 수년 동안 이집트 지배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든 저항세력이라는 점에 동의하는가?

동지는 쿠데타 이후에 정권에 저항하는 거리의 인민들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는 것(‘목표인 무르시가 제거되었기 때문이라고 동지가 생각한다고는, 나는 믿지 않는다.), 노동운동을 포함하여 전제정권에 저항했던 세력이 심각하게 파괴되었고 이집트 혁명자체가 군사쿠데타에 의해 소멸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 * *

아래에 인용하는 논문이 우리 토론에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강조는 내 것)

기회주의 사상과 종파주의 사상은 다음과 같은 공통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 상황과 세력의 복잡성에서 자기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처럼 생각되는(물론 가끔 그런 경우도 있다) 한두 가지 요인을 뽑아내고, 이것을 복잡한 현실과 분리시키고는, 이것들에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좌익 중도주의자들이 혁명을 그 본래의 구조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 구조에 가둬두기 위해서 레닌을 이용한다면, 극좌파는 같은 레닌주의적 양자택일로부터 혁명의 실제적 발전과정을 모르는 체하거나 보이콧할 권리를 도출해내고 있다.

나는 미국의 동지들에게 답하여 이렇게 말했다. “네그린 정부와 프랑코 정부 사이의 차이는 쇠퇴하고 있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의 차이다.” 우리의 정치적 태도는 이런 기본적인 사고로부터 출발한다. 극좌파는 이렇게 외친다. 뭐라고! 우리를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의 선택으로 한정하고 싶은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순전한 기회주의이다! 스페인혁명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와 파시즘 사이의 투쟁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극히 사소한 해결책도 제공하지 못한다. 등등.

현재 스페인의 군사적 투쟁은 한편으로는 프랑코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스탈린-네그린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프랑코는 파시즘을 대표하는 반면에, 스탈린-네그린은 결코 사회주의를 대표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들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운동을 방해하는 "민주주의적" 제동기(brake)를 대표한다. 공산주의인가 파시즘인가 하는 역사적 양자택일은 아직까지 그 정치적 표현을 얻지 못했다. 어림도 없다.

스탈린-네그린 정부는 사회주의로 가는 길에 놓인 사이비 민주주의적 장애물이다. 그러나 이 장애물은 또한 파시즘으로 가는 길에도 놓인 그다지 믿을만하거나 견고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물이다. 내일이나 모레가 되면 스페인 노동자계급은 아마 이 장애물을 분쇄 하고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수동적이더라도 오늘 이 장애물을 파괴하는 것을 돕는 다면, 이는 파시즘에 봉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무는 단지 양 진영을 이론적으로 그 진정한 가치에 따라 평가하는 것만이 아니라, 앞으로 도약하기 위해 실제로 이들의 투쟁을 활용하는 것이다.

구제불능의 극좌파뿐만 아니라 좌익 중도주의자도 종종 케렌스키-코르닐로프 충돌 시에 볼셰비키가 취한 정책을 예로 들지만 정작 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이해하는 바가 없다. "그러나 볼셰비키당은 케렌스키와 함께 싸웠다"고 통일노동자당은 말한다. "그러나 볼셰비키당은 코르닐로프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케렌스키를 신뢰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극좌파는 대답한다. 양쪽 모두절반만 올바르다. , 양쪽 모두 완전히 틀렸다.”레온 트로츠키, 극좌 일반과 특히 구제불능의 극좌에 대해서, 1937928

 

2. 2016년 7월 15일 터키 쿠데타 발발 이후

 

2016년 7월 26일

나는 그동안 이집트에 대한 내 관점을 설명했다. 2013년 노동계급의 첫 번째 임무는 군사쿠데타를 저지하는 것이다. 1) 당시의 계급역관계를 방어하기 위해 2) 무르시정권을 타도할 기회를 방어하기 위해.

나는 이 접근이 지금의 터키 상황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2016년 9월 11일

우리가 만약 에르도안과 동맹을 수립했다면, 에르도안이 민주주의 방어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쿠데타보다는 느린 학살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양쪽 모두 한꺼번에 분쇄할 힘이 우리에게 있다면, 또는 노동계급이 이미 충분히 각성되어 있고 권력을 장악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동지의 슬로건이 제안하는 것처럼] 그와 같은 동맹을 구성할 필요가 없다. 그 경우 우리는 머리를 겨눈 권총매일의 독약양쪽 모두를 동시에 타격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경우, 심지어 내일의 혁명을 기다릴 필요조차 없다. 혁명은 오늘 있거나 아니면 심지어 어제 있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럴 경우라면, 쿠데타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럴 경우라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쿠데타 관련 논의조차 필요 없지 않았겠는가?

 

2016년 10월 9일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국내와 국제적인 역관계이다. 우리의 목표는 추상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구체적인 역관계에 있다. 공산주의자로서 우리의 목표는 민주주의의 성취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에게 유리한 역관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자기 자신의 힘으로 방어할 정치적 공간이고 그 궁극은 혁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상황에서 우리는 민주적영국에 맞서 파시스트브라질의 승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그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변화 발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관점에서 사물을 관찰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역관계의 변화로부터 떼어내어 사물의 고정된성격을 따지는 것은 형식논리이며 위험하다. 나는 에르도안에 대한 동지의 연구가 그와 닮았다고 본다.

7월 이전의 에르도안은 어찌되었건 그 당시 역관계의 반영이었다. 반면 쿠데타 세력은 제국주의 금융자본과 그들의 현지 하수인의 이익을 위해 급격한 변화를 원한 세력이었다.

쿠데타 이전과 이후 모두의 에르도안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세력이었다. 이 논의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이 점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쿠데타는 저지되었지만, 그 성과 대부분은 에르도안 정부가 가져갔다. 이것은 19179월 상황과 다른 것이다. 터키 노동계급이 그것을 차지할 만큼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쿠데타가 실패했어도, 쿠데타를 강제한 사회 압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압력은 에르도안의 지금의 행동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에르도안은 제국주의 금융자본과 그들의 현지 하수인들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 이해를 점진적으로때로는 급속히확대하고 있다. 그로 인해 노동계급의 정치적 공간은 축소되고 있다.

한편, 우리는 또한 8월 이전 케렌스키가 반민주적성격을 충분히 보여주었다는 것과 노동계급의 정치공간을 지속적으로 파괴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만약 10월 혁명이 실행되지 않았고, 코르닐로프의 격퇴 이후에 볼셰비키가 우물쭈물하며 시간을 보냈다면, 8월 이후의 케렌스키는 그 스스로 코르닐로프가 되었거나 ‘2차 코르닐로프가 등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아는 것처럼, 이중권력이라는 불안정한 상황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고, 사회는 안정을 추구하며 그 안정은 프롤레타리아트나 부르주아지 둘 중 하나가 헤게모니를 장악할 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에르도안의 반민주적성격은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에르도안의 반민주적조치에 당장 맞서야 하는가? 우리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리고 7월 쿠데타는 노동계급에게 불리한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나?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왜 우리는 그에 맞서지 않아야 하는가? 그러면 그 시도에 맞서 그 당시의 역관계를 방어하는 것은 정당한 것 아닌가? 노동계급에 불리한 상황을 급속히 조성하기 위한 전격적 타격에 맞서야 하는 것은 정당한 것 아닌가?

우리는 역사 비평가가 아니라 역사에 개입한 실천가이다. 즉각 대응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 몇몇 동지들은, 다들 그렇다고 인정하는, 에르도안의 반민주적성격을 굳이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다. 쿠데타가 일어난 7월 이후의 자료를 모아 우리가 7월에 중립입장을 취해야 했다는 걸 입증하려고 한다. 한편 우리는 그와 같은 기권주의는 잘못이라는 것을 2013년부터 주장해 왔다. 그러나 에르도안과 쿠데타 세력이 완전히 똑같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쿠데타에 맞서야 했다. 만약 1) 맞서는 것이 옳았고, 2) 그에 맞설 충분한 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 우리가 개입하지 않아서 그 쿠데타의 성공을 허용했다면, 1927년 중국, 1965년 인도네시아, 2013년 이집트처럼 그 결과는 참혹했을 것이다. 반면에, 만약 두 세력 모두 반민주적이라는 측면에서 완전히 똑같았다고 가정하면 무엇을 잃게 될 것인가? 이 물음에 대답해 보자. 정치적 명망 또는 정치적 자부심?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걸 수 있다. 그것은 재앙적이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곧 극복해 낼 것이다. 우리는 그 실천을 통해 엄밀한 교훈을 얻을 것이다. 그 경우 우리는 여전히 엄밀한 교훈과 강령을 실행에 옮길 조직적 역량(목숨과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2016년 11월 23일

톰의 1219일 편지와 H1221일 편지는 나에게 말한다.

쿠데타 당시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었는지의 우리 평가를 수용하지 않는 동지들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가 보고 전달한 기사들은 터키에 이렇다 할 민주적 공간이 정권 반대자들에게 존재하지 않았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편을 들기 위해선 (독일의 나치와 사회민주당 또는 칠레의 아옌데와 피노체트 사이처럼) 그들의 주장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존재해야 한다.하지만 동지들이 동의하지 않는 민주주의 방어라는 정식 이외의 이렇다 할 것이 보이지 않는다.”

“7월 터키에서 어떤 편을 들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하려면 방어할 만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 터키에서 쿠데타 이전 군사쿠데타에 비해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길 바란다. 진실은 항상 구체적이라고 내가 말했던 것처럼.”H

동지 관점에 따르면, 에르도안의 승리는 군사쿠데타에 비해 노동계급에 보다 이로운 상황을 낫는다. 에르도안이 쿠데타 이후 19개의 노동조합을 금지시키고 군사독재의 수단인 국가비상사태를 유지하는 것을 어찌 생각하는가?”H

두 동지는 나에게 쿠데타 세력과 당시 정권 사이의 질적 차이를 증명해달라고 요구한다. 이집트 쿠데타는 성공한 반면, 터키 쿠데타는 실패했다. 그리하여 터키보다 이집트가 쿠데타 이후에 역관계와 사회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기 쉽다.

나는 여러 기사들을 전달한 바 있다. 그 기사들은 528명이 사형선고를 받고, 41,000명이 투옥되었으며, 거리 시위대가 사라졌다고 보도한다. 그리고 2011(이집트 혁명으로) 투옥되었던 전 독재자 무바라크는 석방되었다. 이 일들은 쿠데타 발생 1년 사이에 발생한 것이고, 이로써 이집트에서 일어난 아랍의 봄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이 사실들이 쿠데타 저지의 정당성으로 충분히 구체적이지 않은가? 터키 인민들이 이집트에서 일어난 쿠데타 결과를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와 같은 쿠데타가 터키에서도 있어 왔기 때문에, 터키 인민들은 거리로 나와 쿠데타 저지에 그들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다.

그러나 동지들은 그 기사들을 읽고 나서는 말하기를 질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며, 방어할 것이 없고, 실질적으로 민주적공간이 별로 없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동지들이 얼마나 추상적으로 이 사회를 바라보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추상적 수준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지상으로부터 얼마나 높이 벗어났길래, 이집트 쿠데타 이후 발생한 (사형선고와 투옥 숫자 등) 그 구체적 사실들에 눈감고, 그 사실들을 질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소련의 붕괴를 질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게걸음일 뿐이라고 하는 클리프주의자들의 추상적 수준에 비견될 정도이다.

그리고 동지들은 어느 편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례로 독일 나치와 사회민주당의 차이를 말한다. 그 차이가 명백해 보이는 까닭은 우리가 충분히 날카로운 마르크스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건이 일어난 80년 후에 마르크스주의 교실에서 그 사실들을 접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압도적 다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질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그들은 말했다.

<이집트 관련 기사>

http://www.bbc.com/news/world-middle-east-26712124

http://www.reuters.com/article/2014/04/07/us-egypt-court-activists-idUSBREA360YL20140407

https://www.wsws.org/en/articles/2016/02/17/egyp-j01.html

 

* * *

그리고 동지는 말한다.

만약 두 착취 분파가 가하는 충격이 완전히 똑같다면 (우리는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둘 중 한 편을 드는 것 즉, 둘 중 한편을 반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19178월 케렌스키와 코르닐로프는 완전히 똑같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거의 같다라고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은 쿠데타를 공모했다. 그들은 부르주아지의 두 분파라기보다는 공모자에 가까웠다. 둘의 정치노선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 둘 모두 지배계급의 이해를 방어하고 러시아를 제국주의 세계대전의 체인에 묶어두기 위해, 노동계급의 정치적 진전을 되돌리고 볼셰비키당을 분쇄하려 했다. 무엇이 다른가? 거의 같다. 그들의 다른 점은 오직 전술, 시간 그리고 배짱의 차이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지들은 케렌스키와 동맹을 맺고 쿠데타를 저지해야 했던 이유로 이중권력을 든다. 그렇다면 동지들은 만약 이중권력이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코르닐로프가 페트로그라드로 진격하던 당시에 중립, 양쪽 모두의 패배 또는 집에 머무는 전술을 볼셰비키가 주장했을 것이라고 보는가?

* * *

그리고 동지는 말한다.

“4월 테제의 이른바 종파주의10월 혁명의 승리를 준비했다. 올바른 정책으로 대중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면 정치적 무장해제와 전위정당으로 고려할 가치가 없는 무능력한 당이 될 것이다.”

매우 올바르다. 우리는 4월 테제의 중요성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동의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전략과 전술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전략의 미덕은 올바른 목표와 방향을 가리키는 데에 있다. 그러나 구체적 정세 속에서 일직선의 진격은 거의 드물다. 교실에서가 아니라, 구체적 삶에서 길은 여러 우여곡절이 있고 이리저리 굽어 있다. 그러므로 특정 순간에는, 그것이 일시적일지라도, 역사의 전진 과정에 마치 거꾸로 가는 듯한 때가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것이다.

4월 테제는 너무도 옳다. 그것은 러시아 노동계급에 올바른 길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만약 4월 테제가 코르닐로프가 진격하던 8월에 레닌과 트로츠키의 전술과 결합되지 않았다면, 볼셰비키는 분쇄되었을 것이고 볼셰비키는 단지 나침반 하나만 지닌 채 오직 일직선으로밖에 갈 줄 모르는, 구제 불능의 종파주의자로 역사에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볼셰비키는 나침반뿐만이 아니라 상세한 지도와 구체적 경로를 찾아낼 능력 또한 가지고 있었다.

특정 상황에서 전술은 전략을 결정한다.

트로츠키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구제불능의 극좌파뿐만 아니라 좌익 중도주의자도 종종 케렌스키-코르닐로프 충돌 시에 볼셰비키가 취한 정책을 예로 들지만 정작 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이해하는 바가 없다. “그러나 볼셰비키당은 케렌스키와 함께 싸웠다.”라고 통일노동자당은 말한다. “그러나 볼셰비키당은 코르닐로프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케렌스키를 신뢰하려고 하지 않았다.”라고 극좌파는 대답한다. 양쪽 모두절반만 올바르다. , 양쪽 모두 완전히 틀렸다.”―「극좌 일반과 특히 구제불능의 극좌에 대해서

* * *

전술에 관한 레닌과 트로츠키의 자료들을 수집했고 첨부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동지들의 중립, 기권주의 또는 집에 머무는 전술를 지지할 내용을 찾지 못했다. 반면에 정답의 단지 절반밖에 기억할 줄 모르는 주장을 레닌과 트로츠키가 통렬하게 비판한 내용은 많이 발견했다.

 

참고자료 첨부

   

2016년 12월 27일

1212RB 동지의 응답에 대한 몇 가지 논평

그것[19178월의 격돌]은 볼셰비키가 이끄는 노동계급과, ‘민주적형식은 케렌스키로 극단적 반민주성은 코르닐로프로 표현된, 부르주아지 사이의 격돌이었다. 내가 이해하기로, 2016년 터키는 그와 다르다. 그것은 단지 두 부르주아 분파 사이의 투쟁이었을 뿐이다.”[RB]

[그렇지 않다!] 그 격돌은 [노동계급과 부르주아지 사이의 격돌인] 동시에, ‘19178월 러시아, 1920년대 중국, 1930년대 독일과 스페인처럼’, 부르주아 분파 사이의 격돌이었다. [삼각 갈등이었다.]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심각한 사회위기 상황이 되면, 부르주아 진영은 그 위기에 대한 태도 때문에 두 분파로 종종 갈라진다. 노동계급을 포함한 저항자들을 어찌 다룰지가 갈등의 핵심요인이었다. 그 점이 바로 그 갈등이 노동계급에 중요한 이유이다.

[RB 동지는 “‘민주적형식은 케렌스키로 극단적 반민주성은 코르닐로프로 표현된 것이라고 둘이 크게 다른 것처럼 말하지만] 케렌스키 또한 에르도안과 무르시처럼 극단적 반민주정권이었다. 트로츠키는 그를 사회파시스트라고 묘사한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파시즘 문제가 다시 제기된다. 극좌 관료집단의 어이없는 이 발명품은 현재 스페인에서 혁명으로 가는 길에 놓인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여기서 다시 러시아의 경험을 돌아보자. 권력을 장악하고 나서도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은 제국주의 전쟁을 수행하고, 자본가를 옹호하는 한편, 병사 농민 노동자를 박해하고, 체포했으며, 사형제도를 도입했다. 또한 볼셰비키 살해를 묵인하고, 레닌에게 지하생활을 강제했으며, 다른 볼셰비키 지도자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이들에 대해서 가장 비열한 중상을 유포시켰다. 이런 일들은 모두 지금 생각해보면, 이들을 사회파시스트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 말은 1917년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주지하는 바와 같이 볼셰비키당이 권력에 이르는 것을 막지도 못했다. 7월과 8월의 끔찍한 박해를 받고서도 볼셰비키당은 사회파시스트와 함께 코르닐로프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구성된 기구에 참여했다. 레닌은 9월 초, 비밀은신처에서 러시아의 사회파시스트에게 다음과 같은 타협안을 제의했다 : “자본가 계급과 단절하고 권력을 잡아라. 그러면 우리 볼셰비키들은 소비에트 안에서 평화적으로 권력을 잡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사모라-마우라를 타도하자!, 1931624

* * * *

동지가 승인하지 않는 민주주의 방어라는 정식

“M이 민주적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J는 언급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M동지는 모든 상황에서 쿠데타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심지어 두 분파 사이에 민주적 성격의 차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J와 다른 동지들은 그 당시 방어해야 할 어느 정도의 민주적 공간이 있었다고 주장해 왔고, 그것이 우리 주장의 기초이다. 그리고 이것이 의미 있는 차이이다. 나는 이 문제 해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민주적 차이라는 표현보다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공간또는 역관계라는 표현을 선호해왔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부르주아의 이해를 위한 것이므로 모든 민주주의를 지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일부만이 노동계급의 이해와 겹친다. 버넘이 이 문제를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는, 중년과 노년 사이보다 더 이렇다 할 근본적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다.지배계급이 일정한 양보를 통해 노동계급 내 분열을 조장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권력을 유지할 수 없을 때,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 억압 정책을 선택하며 자유주의 정책을 포기한다. , 민주주의 통치에서 반드시 파시스트 통치로 넘어가는 것이다.사회주의 혁명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 권력 아래 일부 존재하는 구체적인 민주적 권리들에 관심이 있다.지금 사용되는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두 가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먼저 그것은버넘, 인민전선: 새로운 배신

두 번째로, ‘역관계또는 노동계급의 정치공간이라는 표현은 정세에 대한 보다 계급적이고 역동적 관점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민주적 vs 비민주적이라는 틀은 정세를 계급 갈등 그리고 변화발전하는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은 비평가처럼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역사적 상황을 바라보는 수동적이고 형식논리적 관점의 표현인 것이다.

* * * *

동지는 얼마나 추상적 수준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지상으로부터 얼마나 높이 벗어났길래, 이집트 쿠데타 이후 발생한 (사형 선고와 투옥 숫자 등) 그 구체적 사실들에 눈감고, 그 사실들을 질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라고 항의한다. 우리 동지들은 이집트와 터키에서 신음하는 인민들의 고통에 전혀 무심하지 않다. 그러나 그 고통은 2013년 이전의 이집트와 2016년 터키 쿠데타 이전에도 있었던 것들이다.”[RB]

동지의 [쿠데타 이후 1년 사이에 사형선고 언도자는 528명으로 수감자는 41,000명으로 치솟은] 고통이 2013년 이전의 이집트에도 있었다는 응답은 참으로 놀랍다. 뒷받침할 근거가 있는가?

* * * *

“(M 동지는) “에르도안과 쿠데타 세력이 완전히 똑같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쿠데타에 맞서야 했다.”라고 주장했다. 아직도 이 입장을 고수하는가? 문제는 두 세력 사이에 차이가 없을 경우에도 왜 우리가 에르도안 편에 서야 하는가이다. 나는 이것이 모순적이고 혼란스럽게 느껴진다.”[RB]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동지는 매우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이 글에서 나의 그 말을 4번이나 반복 인용한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그 입장을 고수한다.

109일 메일에서 나는 즉각적으로 행동해야 할 필요성과 극단적 상황에 대한 행동의 지침을 설명했다.

1)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는 교실이 아니라, 마르크스 계급투쟁 현장에서는, 즉각 행동을 취해야 할 상황이 반드시 있다. 불이 났을 때 그리고 그 불이 우리 목숨을 위협할 때라면, 그 불의 성격과 의미에 대한 공부는 나중에 하고, 당장 대피하고 그 불을 꺼야 한다. 물론 우리가 그 불을 통제하고 있거나 우리에게 유리하거나 하다면 다른 문제이다.

2) 쿠데타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 쿠데타가 우리와 무관하다고 보증할 수 있는가? 그것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그 쿠데타가 몰고올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그 쿠데타를 저지하는 것이 이성적인 것이다. (목숨과 조직 등) 노동계급의 정치적 자원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정치 평판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다.

이것이 그 때 내가 설명하려 했던 것이다.

* * * *

동지가 1122일 인용한 트로츠키의 글은 제국주의와 식민지/반식민지 사이의 갈등 상황에 관한 것이다.”[RB]

그 인용문은 단지 제국주의와 식민지/반식민지 사이의 갈등 상황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1930년대 독일과 스페인, 1920년대 중국에 대한 인용은 그렇지 않다. 그 인용문들은 이른바 ‘a) 노동계급b) 지배계급 분파1(또는 제국주의)c) 지배계급 분파2(또는 식민지)’ 사이의 삼각 갈등에 관한 것이다. , 노동계급이 국가권력을 즉시 장악할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지배계급 두 분파가 갈등할 때의 노동계급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또 다른 유용한 글을 소개한다. (글 전체가 우리 토론에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용된 부분 이외에 다른 부분(영문)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가 없다.)

“(공화정 지도자) 네그린과 프랑코의 내전은 힌덴부르크와 히틀러의 선거 경쟁과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 힌덴부르크가 히틀러에 대해서 공개적인 군사 투쟁에 착수했다면, 힌덴부르크는 보다 작은 악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보다 큰 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작은 악을 선택한다. 그러나 힌덴부르크는 보다 작은 악이 아니었다. 그는 히틀러에 대한 공개적 투쟁에 돌입하지 않았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이러기를 바랐지만어리석은 소망이었다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파시즘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자가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히틀러에 대항하여 힌덴부르크를 지지하는 것은 정치적 독자성 포기를 의미했다. 스페인의 경우에서도 우리는 네그린을 정치적으로는 지지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국회의원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네그린의 군사예산에 반대 투표했을 것이다. 우리는 군사행동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네그린에게 지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손으로 군사행동을 수행할 수 있을 때까지는 파시스트 도당을 격퇴해야 한다.

프랑코에 대항하여 네그린 군대와 함께 투쟁하는 것이 히틀러에 대항하여 힌덴부르크에게 찬성 투표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의회백치병의 표현이다. ()파시즘 전쟁은 의회주의적 수단에 의해 해결될 수 없다. 왜냐하면 파시즘은 무력으로만 분쇄될 수 있는 반동의 군대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독일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정책, 히틀러에 반대하는 힌덴부르크와의 단순한 의회주의적 연합의 결성에 반대한 이유였다. 우리는 노동자 의용군 창설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우리는 파시즘에 대한 투쟁을 수행하고 있다. 분명히 민주주의군대의 총사령부는 내일 프랑코와의 휴전에 합의할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 사태를 간과할 수도 없다. 우리는 전술적으로 파시스트에 대한 공화주의자의 전쟁을 전략적 목적 즉,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위해서 이용해야 한다.”―「스페인에 대하여, 1937914

 

2017년 4월 8일

1)

H와 톰의 문서 에르도안 보나파르트 정권2016년 쿠데타뿐만 아니라 1908년부터의 터키 자본주의 발전 역사, 정치경제, 정치세력들과 그들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그 문서는 터키 사회 이해에 필요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긴 문서는 (단지 2016년 쿠데타뿐만 아니라) 터키에 대한 제국주의 개입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이 문서를 읽으면서, “터키는 식민지가 아닌가?”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의도하지 않았을 텐데, 이런 구절이 우연히 인용되어 있다: “1971년 무렵, 터키는 혼돈에 빠져 있었다. 대학들은 제 기능을 멈추었다. 학생들은 남미의 도시 게릴라를 흉내 내어 은행을 습격하고 미국 병사를 납치하고 미국 목표물을 공격했다.”

에르도안 보나파르트 정권에 인용된 이 구절에 따르면 터키 사회에 상당한 반미 정서가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서는 그 원인에 대한 설명을 전혀 하지 않는다.

M에 대한 H42일 응답을 포함하여, 그 동지들의 글들은, 마치 미국 변호인이나 된 것처럼, 미국이 [쿠데타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동지들은 미국이 무죄라고 확신하는가? [동지들은 미국이 쿠데타에 개입한 증거가 있냐고 나에게 줄곧 물어왔는데] 그들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는가? 그리고 동지들은 이집트 쿠데타에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2)

2016년 터키 쿠데타에서 (특정 편을 들지 않고) 중립을 주장하는 H와 톰의 논리는 이러하다: “에르도안 정부는 민주적정당성이 없다. 그 정부는 보나파르트 유사 독재정권을 수립하려 했고 그런 점에서 쿠데타 세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H 동지는 볼셰비키가 케렌스키를 방어한 것은 이중권력 존재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그 전술은 민주적 정당성이 없고, ‘보나파르트적이고 코르닐로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집트나 터키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트로츠키주의자로서, 트로츠키와 우리는, 케렌스키, 브뤼닝 그리고 차베스를 방어한다. 그들은 모두 반민주적이고 보나파르트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IBT, 차베스를 보나파르트 정권이라고 규정하면서도, 우익과 제국주의 상전으로부터의 군사적 방어를 주장했다.

정권 반대 세력이 우익 반동이라는 이유로 다수의 국제좌익들은 소환 국민투표에서 차베스를 지지했다. 그러나 차베스를 소환하고 대통령 선거를 새로 실시하자는 제안에 반대표를 던지는 것은 집권 부르주아 정부를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행위이다. 맑스주의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노동계급의 명확한 대안을 표명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계급의식에 투철한 베네수엘라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투표용지를 더럽혀 무효표를 만드는 것이었다. 동시에 우익이나 이들의 제국주의 상전들이 법의 한계를 무시하고 차베스 정권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때는 무기를 손에 들고 차베스 정부를 즉시 방어할 것이라는 점을 이들은 명확히 해야 했다.”―「베네수엘라: 국가와 혁명

부르주아 우파 반대자들과 그들의 제국주의 후원자들은 그것을 쿠바식 공산주의라고 비난했고, 대통령 임기 철폐를 통해 종신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고 주장했다.하지만 헌법개정안엔 지금 심각하게 제한당하고 있는 낙태를 비범죄화하는 조항이 빠져 있고, 비민주적인 개혁조치들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선포하는 국가 비상사태의 현재 180일로 되어 있는 제한을 없앤 것이나, 국민투표 발의를 유권자 20%의 서명에서 30%로 올린 것 등이 그것이다.헌법개정안 국민투표에서 찬성 입장은 차베스 보나파르트 정권에 대한 승인을 의미한다.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민주적인 개혁과 거대 자본가들의 특권을 방어하는 차베스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기권한 것이다.”―「맑스주의와 볼리바르 혁명: 베네수엘라와 좌익들

 

브뤼닝에 대한 트로츠키

그리고 독일에서 파시즘에 맞선 투쟁에서 따온 트로츠키의 가르침 역시 H와 톰 동지의 보나파르트주의, 반민주주의, 이중권력논리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이다. 모든 강조는 내 것이다.

이 스탈린주의 철학의 핵심은 아주 명확하다: ‘맑스주의가 절대모순의 존재를 부정하므로 모순 심지어는 상대적 모순을 일반적으로 부정한다.’ 이러한 오류는 속류 급진주의에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만약 부르주아 계급 지배의 형태에 있어서도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 조금의 모순도 없다면 이 두 지배형태는 당연히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논리라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사민주의는 파시즘과 동일하다.’

이 문제가 독일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파시즘이 승리해도 별 차이가 없다는 사고는 코민테른의 지부인 각국 공산당 내부에서 열렬히 선전되고 있다. 프랑스의 정기간행물 [볼셰비즘 노트](Cahiers du Bolshevisme)는 이렇게 말한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실제로는 브라이트샤이트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들은 그 유명한 사민주의 이론인 차선책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브뤼닝은 히틀러만큼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히틀러보다 브뤼닝 치하에서 굶주리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리크보다는 그뢰너에 의해 총살되는 것이 한없이 더 좋다는 것이다.” 이 글은 제대로 평가하자면 꽤 어리석은 문구이지만 가장 어리석은 문구는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스탈린주의자들은 히틀러와 브뤼닝 두 정권을 속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브뤼닝 정권을 형식적민주주의의 조건으로 바라본다면 논쟁의 여지없이 이런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자랑스러운 바이마르 헌법에서 남아있는 것은 뼈다귀와 껍데기뿐이다.’

브뤼닝이 히틀러보다 더 나은(어쩌면 더 나아 보이는 지)는 우리에게 전혀 관심 사항이 아니다. 파시즘이 아직도 독일을 정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주장하려면 현존하는 노동자 조직들의 명단만 보면 된다. 파시즘이 승리하기에는 아직도 거대한 장애물과 세력이 남아있다.

현 브뤼닝 정권은 관료적 독재체제 또는 좀더 확정적으로 말하자면 군대와 경찰력으로 유지되는 부르조아 독재체제이다. 노동계급 조직과 파시즘에 붙은 소자본가 계급 조직은 서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노동자들이 소비에트로 단결되고 공장위원회가 생산을 통제하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다면 현 상황을 이중권력(dual power)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분열되어 있으며 노동계급 전위의 전술이 무기력한 상황이므로 이중권력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특정 상황에서 압도적인 힘으로 파시즘을 격퇴시킬 능력이 있는 강력한 노동계급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히틀러는 정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관료적 국가기구는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다.

브뤼닝의 독재체제는 보나파르트 체제의 우스꽝스러운 형태이다. 그의 정권은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체제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브뤼닝, 세버링, 라이파트, 히틀러가 언제나 모든 조건 속에서 같은 편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재 이들의 이해는 엇갈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사민당의 과제는 노동자 혁명에 대항해서 자본주의의 기초를 방어하는 것보다는 파시즘에 대항해서 반()의회주의적 부르조아 체제를 방어하는 것이다. 이 적대관계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지독히 바보 같은 짓이다.

레닌은 [좌파 공산주의--소아병]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제 자본가계급을 타도할 목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아무리 일시적일지라도 적대 진영 내부의 적대관계를 활용하기를 거부하는 것; 아무리 일시적이고 동요하고 우연적일지라도 동맹이 가능한 세력과의 합의와 타협을 회피하는 것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리석은 행위가 아닌가?”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더 강한 적을 자신의 힘을 최대한 집중시켜 제압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아무리 작더라도 적들 간의 모든 분열을 가장 애써서 면밀하게 조심스럽게 기술적으로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

https://www.marxists.org/archive/trotsky/germany/1932-ger/next01.htm#s2

http://bolky.jinbo.net/index.php?mid=board_qWpn39&page=2&document_srl=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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