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조직'들에 대한 분석/평가

(IBT) 토니 클리프파의 계보: 트로츠키 대 부하린(6호, 1989)

by 볼셰비키-레닌주의자 posted Dec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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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출처 – 국제볼셰비키그룹(IBT)



토니 클리프파의 계보: 트로츠키 대 부하린


다음의 글은 <국제볼셰비키그룹(International Bolshevik Tendency)>의 기관지 <1917> 제 6호(1989년 여름)에 실린 기사(“Tony Cliff’s family tree”)를 번역한 것이다.

 

 

트로츠키주의와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가자본주의론’을 정치이론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그룹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ocialist Workers Party: 이하 SWP/B라고 칭함)>인데 이 그룹은 영국에 거점을 두고 토니 클리프에 의해 지도받고 있다. SWP/B의 창건자들은 1950년대 초 한국전쟁과 함께 나타난 맹렬한 반공 히스테리의 압력 하에서 트로츠키주의 운동으로부터 이탈했다. 토니 클리프는 소련이 ‘자본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미 제국주의와 그 연합국들에 대항하여 (그에 의하면 중국과 북베트남처럼 ‘국가자본주의’ 국가인)북한 기형적 노동자국가 방어를 거부했다. 하지만 15년 후, 미제가 베트남을 침공하였을 때, (베트남 역시 ‘자본주의’ 국가로 보던) 클리프주의자들은 조금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고, 당시 대세인 베트남과 단결을 호소하는 조류에 편승하였다. 트로츠키가 말하였듯이, 기회주의자들은 항상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어느 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지에 대해 아주 민감하다.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토니 클리프의 ‘이론’은 적어도 자신의 그룹이 취한 입장과 모순되고 있다.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그의 주요 저술인 <러시아의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 in Russia)>에서 토니 클리프는 가치 법칙이 소련의 생산을 지배하고 있지 않으며 모든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적 성격이라 할 수 있는 상품으로서의 생산수단과 노동력 그리고 과잉생산의 주기적 위기 등이 소련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리프와 그의 추종자들은 소련이 “자본주의” 국가라고 주장한다. 산업 역량(industrial capacity)을 “축적”하려는 운동과 서방제국과 군사적으로 “경쟁”하려는 필요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때때로 클리프 추종자들이 1920년대 스탈린에 대향한 좌익반대파(Left Opposition) 투쟁을 입으로는 칭찬하지만, 사실 “국가자본주의” 소련에 대한 그들의 비난은 레닌 사후 소련 내에 존재한 부하린의 우익반대파에 더 가깝다. 1920년대 당시 트로츠키가 이끈 좌익반대파는, 농촌의 소경영 자본주의를 부흥시킴으로써 “달팽이 걸음으로” 사회주의로 나아간다는 스탈린과 부하린의 지도노선을 비판하고, 그 대신 주로 상층 부농 착취를 통해 재정을 확보하는 산업화 정책을 옹호하였다(참고 1927 “반대파 강령”).

1928년 좌익반대파를 무너뜨린 후, 스탈린은 그의 예전 동업자 부하린을 공격하고, 이후 원래 트로츠키와 프레오브라젠스키에 의해 옹호된 산업화 정책의 관료적 변형을 조야하고 무자비한 방식으로 수행해 나갔다. 트로츠키에 따르면, “산업발전에서 소련의 성공은” 관료적 명령주의의 비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적 경제 방식에 고유한 엄청난 가능성들을 실재로 증명하는” “전 세계의 역사적 중요성을 획득하고 있다.”(<경제적 무분별성과 이의 위험>, 1930). 반면 클리프에 따르면, 이 첫 번째 5개년 경제계획의 도입과 1928년 소련 산업화의 시작은 러시아에서 “국가자본주의”가 시작되는 출발점을 의미한다.

SWP/B의 이론적 기관지인 국제사회주의(International Socialism)의 기고자 마이클 헤인은 클리프주의자들과 우익반대파 사이의 명확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내용을 담은 <니콜라이 부하린 &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전환>이라는 책을 1985년에 썼다. 그는 “부하린의 국내정책이 좌익반대파 특히 프레오브라젠스키의 정책보다도 훨씬 더 연속혁명론의 정책에 근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주장한다. 클리프와 헤인 등 국제사회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주어진 진짜 문제는 자본주의적 사회 조직과 계급들을 재생산하지 않고도 지속적인 축적이 가능한가 여부”인데 그들의 대답은 하나같이 “불가능하다”이다.

SWP/B의 월간지 사회주의노동자평론(Socialist Worker Review) 7-8월 호에 실린 편지에서 마이클 헤인은 “너무 자주 우리는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분석을 일반적으로는 좌익반대파, 특히 트로츠키가 주장한 정치적 논리에 쉽게 부가될 수 있다는 듯한 인상을 줄 때가 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는 결론짓기를, “만일 우리가 (소련의) 퇴보에 관한 문제를 정면으로 대하지 못하고, 이에 관한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 논리의 취약함을 지적하는 한편 우리 분석의 장점을 표현하는 데에 보다 대담해지지 않는다면, 이는 비극이 될 것이다.” 클리프의 캐나다 자매단체 멤버인 폴 켈로그는 다음 호에서 헤인에게 답하며, 소련에 관한 트로츠키의 정책은 사실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트로츠키의 국제 정책은 적어도 부하린보다 우월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좌익반대파의 국내정책과 국외 정책은 서로 불가분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반대파 강령”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일국사회주의 경제이론에 대한 확고한 거부는, 다음 몇 해 동안 만에도, 더욱 합리적인 자원 이용, 더욱 빠른 공업화 그리고 잘 계획된 우리 기계공업의 강력한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될 것이다.” 좌익반대파에 의해 제시된 공업화 정책은 소련 프롤레타리아의 힘을 강화하고, 농민과 이에 상응하는 도시 소자본가인 네프(NEP)맨들 내에 있는 친자본주의적 쿨락(kulak) 요소의 성장을 막기 위하여 계획된 것이었다. 이는 또한 제국주의자들의 필연적 공격에 대비하여, 고립된 소련 노동자 국가를 군사적으로 강화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단 한 가지 점에 있어서만큼은 마이클 헤인이 옳다. 트로츠키주의 운동과 현재 클리프의 <국제사회주의> 경향 사이에 근본적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근본적 불일치는 곧바로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클리프 조직의 정치는 좌익반대파가 옹호한 그 모든 것과 이질적이다. “제3진영” 기회주의자들 중 적어도 일부분이나마 이 점을 공공연히 밝힐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환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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