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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사태에 대하여

자본주의 반혁명과 제국주의 정권교체 시도를 격파하자!

 

<차례>

벨라루스는 국가소유가 지배적인 체제이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는 나라이다/ 반정부 시위대의 성격/ 미국 랜드연구소의 보고서: 『러시아 흔들기: 유리한 곳에서 싸우기』 /4장 지정학적 수단…벨라루스 정권교체 조장/ 동유럽의 현대사: 자본주의 반혁명과 NATO의 동진(東進)/ 자본주의화를 비껴간 벨라루스의 역사/ 벨라루스는 어떻게 ‘자본주의화+친제국주의 정권교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나?/ 러시아: ‘자본주의 열강이지만, 제국주의는 아니다’/ 요약과 결론

 

지난 해 8월 벨라루스는 국제뉴스의 뜨거운 이슈였다. 대선 결과 불복으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절정에 이른 8월엔 하루 20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 4개월여 지나고 해가 바뀐 지금은 시위가 상당히 잦아든 분위기이다. 그러나 잠시 잦아들었을 뿐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다.

전면 사유화 반대를 내걸고 1994년 대선에서 처음 당선된 루카셴코는 대선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26년간 집권하고 있다. 2006년과 2010년 선거 당시에도 야권 주도의 시위가 있었고 그때마다 미국과 유럽 제국주의는 벨라루스 제재로 화답했다.

이런 갈등을 다루는 서방 대중매체의 통속적 시각은 ‘민주주의 대 독재’이다. 루카셴코 반대파는 번번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지만 그렇다고 이렇다 할 증거가 드러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 서방은 그 의혹을 즉각 기정사실로 확정했다. 제 모습은 생각도 않고 ‘유럽 최후의 독재’ 운운하며, 벨라루스에 대한 경제/외교 제재를 가했다.

벨라루스는 이전까지는 언론에 많이 노출되지 않은 나라였다. 특히 동아시아의 한국과 정치/경제적 접점이 많지 않았고, 언어 장벽도 있다. 우리는 지난 8월 벨라루스 사태가 벌어진 뒤부터 벨라루스의 역사, 시위 성격, 국가의 계급적 성격 등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 ‧ 분석했다.

지금까지의 연구분석 결과를 공유하고자 한다.

 

벨라루스는 국가소유가 지배적인 체제이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는 나라이다

소련 붕괴 후 대대적 사유화 광풍이 동반한 경제붕괴, 사회보장제도 철폐, 보건의료체계 붕괴 등은 노동인민에게 크나큰 재앙이었다.(「러시아 : 자본주의의 생지옥」 참조)

구 소련권 국가들이 미증유의 재난을 겪는 와중에, 벨라루스는 이러한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 벨라루스는 2015년까지 GDP가 연 10% 성장하는 유럽의 초고속 경제성장국이었다. 벨라루스는 구 소련권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르게 1991년 소련 붕괴 수준의 경제회복에 성공(2002년)했다. 반면에 러시아는 2006년이 되어서야 회복했고, 우크라이나는 아직도 회복 못하고 소련 말기의 65% 수준에 머물고 있다(「Guaido, President of Belarus」).

실업률과 실질임금에서 벨라루스는 ‘옛 공산권 국가’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REGISTERED AND LFS-BASED UNEMPLOYMENT IN BELARUS COMPARED TO OTHER POST-COMMUNIST COUNTRIES, 1991-2001. Notes: LFS-Labour Force Survey; PCC-post-communist countries. Sources: World Bank (1997); 'TransMONEE', Database of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 2005, available at: http://www.unicef-icdc.org/resources/transmonee.html, accessed 24 January 2006; 'TransMONEE', Database of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 2011, available at: http://www.transmonee.org/, accessed 29 September 2011.

표1) 벨라루스와 ‘옛 공산권 국가들’의 실업률 비교(PCC: Post Communist Countries 구 공산권 나라들 LFS: Labor Force Survey 노동력 설문조사)

INDEX OF AVERAGE REAL WAGES IN BELARUS AND OTHER POST-COMMUNIST COUNTRIES, 1990 ¼ 100. Sources: National Statistical Committee of the Republic of Belarus (2010); Rutkowski (1995); 'TransMONEE', Database of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 2005, available at: http://www.unicef-icdc.org/resources/transmonee. html, accessed 24 January 2006.

표2) 벨라루스와 ‘옛 공산권 국가들’의 실질임금 비교

 

1996년 503달러였던 평균 임금은 2010년 4.9배 늘어났고, 2010년 구매력 기준 1인당 GDP는 13,685달러가 되었다. 밀폐된 곳에서 진행되는 부패는 분명히 있지만, 우크라이나나 러시아에 만연한 길거리 범죄나 마피아에 의한 혼란은 없다. 민스크의 거리는 깨끗하고 겨울이면 쌓인 눈이 바로 청소된다(허승철 편역, 『벨라루스의 역사』 참조).

소련 붕괴 이후 자살률이 치솟는 등 재앙이 닥친 다른 국가들과 벨라루스의 결정적 차이는 소유체제에 있다.

옛 공산권에 속했다가 자본주의로 돌아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은 1994GNP50~55%를 사적 부문에서 생산했다. 이에 반해, 벨라루스는 GNP15%만이 사적 부문에서 생산되었다. 이 시기에 발트 3국은 시장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경계점(critical mass)을 넘어선 대신, 벨라루스는 역으로 회귀하여 2005년에는 사적 부문은 GNP8%로 줄어들었다.”―『벨라루스의 역사

벨라루스는 2003~2014년 유럽-중앙아시아 국가 중 빈곤 수치가 가장 많이 개선된 나라였다. 하루 구매력 10달러 미만을 기준으로, 벨라루스는 200382%에서 201410% 이하로 감소했다. 반면 유럽-중앙아시아에서는 73%에서 47%.2016년 세계성차별보고서는 벨라루스를 144개 국가 중 30(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 넣었다. 이러한 높은 순위는 양질의 교육과 노동 시장에서의 성과 덕분이다. 벨라루스는 교육의 여성 등록률과 여성 전문가와 기술자 비중에서 1위를 차지했다. 여성의 기대수명도 높은 편이다.국유의료기관이 지배적이고 무료로 제공된다. 자가 부담하는 의료비용은 이 지역에서 가장 낮은 수준(20%)이다. 게다가 의료 자체는 무상이기 때문에, 자가 부담 비용 중 70% 이상은 약값이다.다수(200360% 이상)가 여러 복지 혜택을 받는다. 대중교통, 의료, 난방 같은 중요 지출의 경우 원가 이하의 요금을 (201558%) 지불했다.”World Bank

 

반정부 시위대의 성격

사회운동의 성격은 그 운동에 참여하는 개별 대중 각자의 주관적 소망이 아니라, 그 운동을 이끄는 지도부의 지향으로 결정된다. 그리고 그 지향은 깃발이나 구호 등으로 표현된다.

깃발은 그 운동의 이념적 지향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다. 소련과 동유럽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1989~1991년 자본주의 복귀 이후 거의 대부분 혁명 이전의 깃발로 돌아갔다. 벨라루스와 비슷한 양상으로 국제 뉴스를 뜨겁게 달군 2019년 홍콩 시위에서,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던 시위지도부는 영국식민지 시대의 깃발이나, 미국 성조기 또는 영국 유니온잭을 들었다. (「홍콩 정세의 세 가지 축: 제국주의, 관료집단, 노동계급의 혁명전위」 참조)

홍콩과 벨라루스 시위대가 이전 체제의 깃발을 들고 나오는 것은 이들의 시위가 단순히 선거권이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시위가 아니라는 점을 반증한다. 궁극적으로 체제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을 그 깃발로 상징하는 것이다.

벨라루스 시위대가 들고나오는 백적백(白赤白)기는 노동계급 입장에서 그다지 상서롭지 않다. 역사적으로 백적백기는 반노동, 친자본, 반공산주의, 친나치의 상징이다. 1918년 백적백기는 독일 치하 벨라루스 인민공화국 깃발이었다. 이는 러시아 혁명에 반하는 반혁명의 깃발이었다. 벨라루스로 사회혁명이 확대되어 소비에트연방의 일부가 된 1919년 이후엔 백적백기는 자본주의 반혁명을 추구하는 망명정부 깃발이 되었다. 이 백적백기는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1943년~44년 사이 다시 벨라루스 영토에서 나부꼈다. 나치 점령에 동조하는 친나치주의자들의 깃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