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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 2012’ 참관기 4: ‘오늘날 그리스의 경제·정치 위기와 저항’

by 볼셰비키-레닌주의자 posted Dec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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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 2012’ 참관기 4:

‘오늘날 그리스의 경제·정치 위기와 저항’

그리스의 격동과 자본주의 먹이사슬

2008년 시작된 경제위기 이후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의 역관계는 흔들리고 있다. 지배체제의 안정성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지배계급의 역량은 크게 위축되고 있다. 반면 지배체제의 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노동계급과 피억압인민의 저항은 활성화되고 있다. 미국, 튀니지, 이집트 등에서 들리던 파열음은 이번엔 그리스에서 울렸다.

그리스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 소티리스 동지의 강연(7월 28일 토요일 16:00~18:00)은 그리스 상황의 윤곽을 이해할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리스의 격동은 은폐되었던 세계자본주의의 먹이사슬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리스에서 그것은 ‘트로이카[(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로 표현되는 프랑스 독일 중심의 금융자본—그리스 정부—그리스노동계급’으로 표현된다. 노동계급을 착취하여 짜낸 이윤은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금융자본의 손아귀로 집중되고, 각국 정부는 그 착취의 중개자 역할을 한다. 각국 정부는 세계금융자본과 그 나라 노동계급 양쪽의 압력을 받으며 그 역관계 속에서 유지되거나 교체된다. 제국주의 시대에 각국 정부의 임무는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착취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불만이 축적되어 저항이 고조되고 그로 인해 그 ‘안정성’이 흔들리면, 교체된다. ‘안정’될 때까지. 그 사이 노동계급이 대안을 제출하지 못하면, 우여곡절을 거치다가 결국 착취질서는 다시 ‘안정’된다. 그 대안은 혁명정당만이 제출할 수 있다.

강연

강연은 통역을 통해 전달되었다. 훌륭했다. 강연자의 유머감각까지 통역되었다.

다음은 강연요지이다.

지난 6월 총선에서 신민주당이 승리했다. 1차 총선에서 신민주당은 19%를 얻었는데 이는 역대 최저였다. 2차 총선의 30%는 역대 두 번째로 낮은 득표였다.

이번 총선으로 등장한 사마라스 정부는 파업과 시위로 쫓겨난 파판드로우 정부보다 더 약한 정부이다. 파판드로우 정부는 12 개월 만에 하차했고 파파데모스 정부는 6 개월 만에 물러나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사마라스 정부가 3개월 만에 내려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연 4년 임기를 다 채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3 가지 약점이 있다. 경제 위기, 지난 2년간 20차례의 총파업으로 표현된 인민의 저항 그리고 혁명가의 힘이 최고조에 달해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공식 실업률이 23%이지만 실제로는 더 높을 것이다. 취업노동자에 대한 공격도 진행되고 있다. 공공노동자 임금이 30% 삭감되었고 연금도 깎였다.

그리스 자살률이 상승해서 매주 10명 이상 자살하고 있다. 75세 노인이 의회 앞에서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했다. 주머니에서 발견된 유서에서 그는 “쓰레기통 뒤지느니 죽는다.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죽이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참고: WHO가 집계한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일본 24.4(2009년), 미국 11.1(2005년), 한국은 OECD 최고수준으로 31.2명(2010년)이다. 그리스는 2008년에 2.8명으로 최저였으나 2010년 구제금융과 긴축으로 자살자 수가 급증하여 2012년 6월 한 달에만 350명이 자살을 시도하여 그 중 50명이 사망했다. 한국의 자살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2010년엔 매일 42.6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그리스 정부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소위 트로이카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그리스 노동자들에게 덮어씌우고 있다. “게을러서 그렇다.”는 것이다. 독일 총리는 그리스에 1. 모든 것 민영화 2. 공공부문 15만 명 해고 3. 연금, 임금 삭감을 숙제로 내주었다.

문제는 그리스의 경쟁력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그리스 아일랜드 등에 경제 기적이 일어났었다. 많은 유럽 자금이 몰려들었다. 직접 투자가 360억 유로에 달했다. 그리스 노동자는 보다 많이 노동한다. 독일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1400시간인데 그리스의 경우 2000여 시간에 달한다.

[참고: OECD Fact Book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연간 노동시간은 OECD 평균 1741시간, 가장 적은 나라 네덜란드 1378시간, 독일 1390 시간, 일본 1714 시간, 미국 1768시간, 한국은 35개국 중 가장 많은 2232시간이다.]

트로이카는 스페인, 포르투갈과 그리스는 다르다고 말한다. “전자는 은행 문제이고 그리스는 국가가 너무 퍼 줘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 GDP의 160%에 이르는 국가부채는 기업주와 은행가들에게 너무 퍼주어서 발생한 것이다. 2008년 10월 구제 금융을 280억 유로 받았는데 지금은 1천 억 유로가 되었다. IMF가 요구하는 양해각서는 국제은행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위기가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번질 가능성 있다. 그리스는 세계 경제에서 1.5% 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스페인 경제규모는 세계 4위이고 이탈리아는 3위이다. 이 두 나라에 위기가 발생하면 유로존이 붕괴할 것이다.

이번에 당선된 프랑스 사회당의 올랑드는 시리자(SYRIZA: 급진좌파연합) 지도자 치프라스와의 면담을 거절했다. 이것은 그리스인들에게 ‘투표 똑바로 하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치프라스는 ‘책임 있는’ 야당이 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7%를 득표한 황금새벽이 이민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그들은 준군사조직이며 나치 깡패들이다. 1930년대의 나치처럼 극심한 경제위기의 부산물이다. 국가와 정부는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1950년대에도 노동계급이 강력했다. 1965년 대학가와 노동현장에서 강력한 시위가 있었다. 2개월 동안에 정부 2개가 교체되었다. 그 당시 좌파들은 운동을 자제시키려 들었고 ‘책임 있는’ 야당이 되려했다. 좌파연합당에는 ‘진통제’라는 별명이 붙었다. 자본주의 근본 문제를 회피하고 사회증상을 그냥 완화시키려고만 들었기 때문이었다. 1967년에 쿠데타가 발생하여 상황이 정리되었다.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이 몸담고 있는 안타르시아(ANTARSYA: 반자본주의 좌파연합)의 핵심강령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것, 유로존을 탈퇴할 것, 대기업과 은행을 국유화할 것 그리고 모든 이민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할 것 등이다. 한편 시리자는 “너무 많은 이민자가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하며, 반파시스트 공동전선에 미온적이고, 디폴트 선언에도 반대하면서 “(부채를) 갚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안타르시아는 2009년 1월 7개 좌익 조직 7,000여명이 모여 창립했다. 안타르시아 내부 핵심 논쟁은 두 가지이다. 먼저, 황금새벽당에 대한 공동전선에 대해 대부분 미온적이다. 다음으로, 선거전술 논쟁이 있었다. 2차 선거 독자 출마에 대하여 한 조직의 지도자는 공식 기관지에 “우리는 결선투표에서 시리자를 지지할 것이다.”라고 발표하기도 했으나, SEK의 설득으로 독자 출마하게 된 것이다.

[참고: 각국의 국제사회주의자(IS) 조직들이 계급전선을 무시하고 ‘극우’의 집권을 막기 위해 그보다 ‘왼쪽’에 있는 부르주아 후보를 지지하는 ‘차악주의’를 선택해 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의 역대 선거들에서 그래왔고, 올해 6월 치러진 이집트 선거에서는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했다. 2000년 짐바브웨에서도 그러했다. 이명박과 새누리당을 ‘우파’라고 부르고 민주통합당까지 포함한 그 나머지를 ‘좌파’라고 칭하는 다함께의 말버릇으로 보아 이번 대선에서도 계급전선은 뒷전에 놓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에서 시리자보다 왼편으로 보이는 안타르시아를 지지한다는 것은 조금 의외이다. ]

 

청중토론과 문제제기

청중토론을 이용하여 다음과 같은 비판을 제기하였다.

우리는 그리스와 같은 준혁명적 상황에서 노동계급에게 ‘일상적 요구에 기초하여 혁명적 전망을 제시하는’ 이행강령을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사가 소개한 안타르시아의 강령은 일정하게 그 이행강령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기간산업과 은행의 국유화가 그러할 것이다.

민영화를 통한 노동계급의 착취는 남한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남한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한 맥쿼리가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서울 지하철 중 유일한 민영노선인 ‘서울메트로9호선’은 최근 요금을 50% 인상했다. 그 회사는 맥쿼리에 자본금을 빌렸는데 이자율이 18%나 된다고 한다.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율이다.

나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귀환—동아시아는 어디로?’라는 강연을 듣고, “올 초 세계은행(World Bank)은 『중국 2030』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에 경제에서 30%를 차지하고 국가소유 기간산업과 은행을 사유화(민영화)하라는 요구를 했다. 한편으로 미국-일본 등은 중국에 대하여 군사적 적대행위를 지속하며 그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아직 ‘사회주의적’ 소유 체제를 가지고 있는 중국에 대한 압박이며, 중국 사회에 자본주의 체제를 전면화하려는 자본주의 부활 책동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인 우리는 그에 반대해야 한다.”라고 질의/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연사와 다함께 활동가들은 답변을 통해 ‘중국 역시 제국주의이며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전형적인 제국주의 갈등이므로 둘 모두에 반대한다.’고 답변했다.

나는 그 답변이 연사인 소티리스 동지가 소개한 안타르시아의 강령과 모순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기업과 은행 국유화 요구 말이다. 중국이 현재 가지고 있는 기존 국유화의 성과를 제국주의의 자본주의 복귀 압박으로부터 방어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새롭게 제기되는 국유화 요구를 진지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청중토론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훼손되었나

발언 내내 마이크 옆에 앉아 손짓과 표정 등으로 압박을 가하던 ‘지도자’ 최○은 발언이 끝나자마자 자리로 돌아가는 나에게 “왜 왜곡을 해! 그러면 안 되지.”하며, 삿대질을 했다. 이미 두 번의 청중발언 기회를 이용했지만, 내 발언 직후 ‘지도자’ 최○은 또 다시 발언권을 요구했고, 중국 강연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예외적으로 허용되었다. 요지는 내가 다함께의 주장을 왜곡하고 있으며, 자신들은 항상 민영화 같은 신자유주의적 변화에 반대해 왔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도 동등한 시간의 반박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지체 없이 거절되었다. 그러자 최○은 갑자기 일어나 내 발언에 대해 ‘군중재판’을 시도했다. 최○은 청중석을 바라보며, “방금 저 동지의 발언은 우리 입장에 대한 왜곡이다. 그렇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달라.”고 소리쳤다. 지도자 근처에 앉아 ‘지도자’와 눈이 마주친 몇몇 회원은 영문도 잘 모른 채 쭈뼛거리며 손을 들어올렸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청중들은 그대로 있었다.

이어 연사는 청중발언을 통해 제출된 질문들에 대해 답변을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는, 의도치 않은 소란으로 인해 가장 인상 깊었을 터임에도, 답변하지 않았다.

 

‘정신으로 계승되는’ 트로츠키

그렇게 강연이 끝났다. 일어서서 나오는 길이었다. 다함께 동지 한 분이 내 쪽으로 왔다. 국유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 동지는 내가 다함께의 입장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였다. 일본 우정국 얘기를 꺼냈다.

강연장 문밖 로비에 있는 의자에 앉아 얘기를 나누려는 중 최○이 다가왔다.

“그냥 가자. 회의가 있다.”

“이 분하고 얘기하던 중이다. 마치고 가겠다.”

“그 사람하고 얘기할 필요 없다.”

“이것 보십쇼. 좀 무례하지 않나?”

“누가 무례해? 우리가 주최인데 왜 여기 와서 방해하는 발언을 하느냐? 왜 왜곡하느냐?”

“다함께가 행사 주최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행사를 소유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참가자는 주최 측 입맛에 맞는 발언만 해야 하나?”

“당신들의 행태를 잘 알고 있다. 당신들은 스탈린주의적이다.”

“뭐라고?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얘기하느냐?”

“당신들은 중국과 소련을 방어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이 바로 스탈린주의이다.”

“당신은 트로츠키의 『배반당한 혁명』 등을 읽어보지 않았는가? 소련방어노선은 트로츠키 정치의 핵심이다. 당신은 스스로 트로츠키주의자라고 칭하면서, 어찌 트로츠키주의의 핵심을 스탈린주의라고 말하는가?”

그러자, 뒤돌아 떠나면서 외쳤다.

“트로츠키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글자를 계승하지 말고.”

“……”

‘남한 최초의 트로츠키주의자’가 남기고 간 말이 쟁쟁하게 맴돌았다: ‘글자가 아닌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나는 이 궤변을 10 년쯤 전에도 들은 적이 있다. 그 때 역시 말문이 막혔었고, 이후 그 희한한 말의 출처를 늘 궁금해 했었다. 그런데 그 근원의 일단을 찾은 셈이다.

맑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의 ‘정신’은 그들이 남긴 저작을 통해 전해진다. 그들은 단지 천재 개인이 아니라 그 시대 혁명정신의 화신이었고, 그들의 저작들은 역사적 실천의 정수로 남아 있다. 소련에 대한 분석과 소련방어노선은 트로츠키가 남긴 업적의 핵심이다. 그런데 그것을 거부한다면, ‘트로츠키와 다른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옳다. ‘트로츠키주의는 말이나 문자로 표현되지 않고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라는 심심상인(心心相印)의 선문답일랑은 그만 두고 말이다.

 

[참고: ‘남한 최초의 트로츠키주의자’가 조직한 ‘남한 최초의 트로츠키주의 조직’인 다함께가 트로츠키를 얼마나 홀대해 왔는지를 지적하는 글로는다함께는 언급하지 않는다』와 『한국 IS 동지들에게 보내는 IBT의 공개 서한등이 있다.]

 

 

노동자 민주주의와 정치투쟁을 옹호하며

그 날 보인 ‘지도자’ 최○의 태도는 노동자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다. 이전에도 그가 노동자민주주의에 대해 스탈린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어야 했다.

노동자 민주주의는 정치투쟁을 보장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우리는 그 필요성을 『제4인터내셔널 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 강령안』 중 3항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3. 노동운동 내의 민주주의와 노동운동의 자본가 국가로부터의 독립

노동자당은 경쟁관계인 다른 정치조직이나 정당과의 공개적 정치투쟁을 옹호한다. 노동계급의 의식은 이러한 정치투쟁 속에서 또한 발전한다.

노동자당은 공개토론에서 다른 조직에 대한 배제와 폭력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욕설 등에 반대한다. 그러한 행위는 노동계급의 혁명의식 발전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의 정치의식 발전을 통해 혁명은 전진한다. 계급적 정치의식은 새로운 의식이 낡은 의식을 대체하면서 발전한다. 새로운 의식과 낡은 의식, 과학적 의식과 비과학적 의식, 노동계급의 혁명적 의식과 자본가계급의 노예의식은 ‘모든 곳에서 시시각각’ 충돌한다. 그 충돌 속에서 전자가 후자를 극복하고 제압할 때 혁명은 전진한다.

각 시기 구체적인 정치 상황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무엇이 올바른 인식인지를 다투는 정치투쟁은 그 의식의 발전을 추동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맑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 등으로 대표되는 선배혁명가들과 그 정당들이 해 온 작업의 핵심은, 바로 그들이 겪었던 구체적 역사와 그 정치상황에 조응한 정치투쟁이었다. 혁명 의지의 결합체인 혁명정당은 또한 그 정치투쟁을 통해서만 건설되고 성장한다.

따라서 진정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한다면 그러한 개인과 조직이라면, 정치투쟁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정치투쟁의 장에 나서야 한다. 그것을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자신과 자기조직의 안위를 위해 혁명의 안위를 외면하는 종파주의인 것이다.

다시 ‘거대담론’을 위하여

1990년대 초반 소위 ‘현실 사회주의 국가’ 중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은 노동계급 진영의 총체적 후퇴를 가져왔다. 노동계급의 사기는 급격히 저하되었고, 사회주의 이상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회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노동계급의 정치에 기회주의가 대거 침투했다. ‘포스트’라는 말이 유행했다. 혁명사상은 주변부화 되었다.

많은 구(舊) ‘운동권’은 부르주아 진영으로 투항하거나 운동에서 멀어진 일상인이 되었다. 나머지는 소련의 붕괴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달리 말해 사회주의적 전망을 가지지 않고도 운동할 수 있는, 노동자주의운동이나 부문운동으로 편입되었다. 노동자주의(조합주의) 운동이 대세가 되기 시작했다. ‘전망’이 거세된 운동판에서 ‘현장’이니 ‘실천’이니 ‘투쟁’이니 하는 말은 협소하고도 천박하게 이해되기 시작했고, 그러한 이해는 물신화되었다.

이러한 시대 흐름에 편승하여 자본가계급의 대리인들은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거대담론의 시대는 끝났다!” 소련의 붕괴로 인해 자본주의는 영구적으로 승리했으므로, 사회주의니 뭐니 바람 든 얘기 하지 말고, 자본주의 내에서 할 수 있는 소소한 얘기나 하라는 것이다. 그 동안 공산주의 유령에 꿈자리가 뒤숭숭했는데 앞으로 편안한 잠을 좀 자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러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그런데 노동계급은 다시 각성하고 있다. 결코 해결되지 않는 자본주의 모순은 노동계급의 ‘불온한 사상’을 잠들지 못하게 한다. 실업, 불평등, 전쟁, 학살, 환경파괴, 기아, 차별, 자살 등 자본주의의 모든 구멍으로 뿜어내는 오물은 자본주의적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체제 모순으로 인한 계급적 갈등은 세계정세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고열에 못 이겨 세계 이곳저곳은 뜨거운 공기를 내뿜으며 울룩불룩 솟고 터지고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다.

우리의 꿈은 소소하지 않다. 우리는 세계질서를 송두리째 뒤엎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이윤을 지상의 가치로 조직된 자본주의 질서를 갈아엎고 인간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사회를 기획하고 있다. 역사상 전례가 없는 대형 프로젝트이다. 이것보다 벅차고 거대한 꿈은 지금껏 존재한 적이 없다.

‘거대담론’은 다시 유행이 되어야 한다. 거대담론을 주고받는 정치투쟁은 골방에서 벗어나, 광장을 활보해야 한다. 치열하고 진지한 정치검증을 통해서 거대한 기획을 안내할 믿음직한 설계도가 마련될 것이다. 옥석이 가려질 것이다. 그 기획을 목표지점까지 일관되게 함께할 혁명 사령부는 오직 그 과정을 통해서만 마련될 것이다.

‘맑시즘 2012’ 참관기 1~4는 ‘거대담론’의 부활을 위한 시도 가운데 하나이다.

 

2012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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