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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출간 90주년에 부쳐

 

트로츠키의 이 저작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용어 가운데 하나인 아프리칸스어로 번역된 공산당 선언서문으로 쓰인 것이다. 한국어로는 카피레프트가 번역하여, 선언 150년 이후: 공산주의당 선언 150주년 기념 파리국제학술대회 기고 논문 선집<도서출판 이후>의 부록에 실렸다. 그 번역을 토대로 전산화했지만, 꽤 많은 부분을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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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이하 선언) 100주년이 10년밖에 안 남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세계 문학의 어떤 작품보다도 심오한 천재성을 보여주는 이 소책자는 그 신선함으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경탄케 한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은 마치 어제 막 쓰인 것처럼 보인다. 확실히 이 젊은 저자들(마르크스는 29살이었고 엥겔스는 27살이었다)은 그들 이전의 그 누구보다도, 그리고 어쩌면 그들 이후의 어떤 이들보다도 더 장구하게 미래를 전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1872년 판의 공동서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선언의 부차적 일부는 낡은 것이 되었지만, 그 사이 25년간의 세월 동안 이 책이 이미 역사적 문헌이 되어버린 한, 자신들이 더 이상 원래의 텍스트를 고칠 권리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천명했다. 선언의 일부는 계속해서 과거의 것이 되어갔다. 우리는 이 [남아공의 아프리카어로 번역된 공산당 선언] 서문에서, 오늘날에도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는 선언의 사상과, 중대한 정정이나 확대를 요구하는 사상 모두를 간결히 정리해보려 한다.

 

1. 마르크스에 의해 근래에야 발견되었고 선언에서 놀라운 솜씨로 응용된 유물론적 역사 개념은 현실의 검증과 적대적 비판들을 충분히 견뎌냈다. 오늘날 이는 인류의 가장 소중한 사상적 수단 중 하나가 되었다. 역사 발전에 대한 여타의 모든 해석들은 과학적 의미를 잃어버렸다. 우리 시대에는 유물론적 역사 해석을 소화하지 않고서는 혁명 투사뿐만 아니라 박학한 정치 평론가조차도 될 수 없다.

 

2. 선언의 첫 장은 다음 문장으로 시작된다.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400). 유물론적 역사 해석에서 도출된 가장 중요한 결론인 이 명제는 즉각 계급투쟁의 쟁점이 되었다. ‘공공 복지’ ‘국민 통합’ ‘불변의 도덕적 가치등이 아니라, 물질적 이해를 둘러싼 투쟁이 역사의 추동력이라는 이 이론에 맞서, 반동 모리배, 자유주의 공론가, 민주주의 관념론자들이 몰려들어 악의에 찬 공격을 가했다. 이후 노동운동의 대오 자체에서 나온 소위 수정주의자들 즉, 계급협조와 계급화해의 정신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재검토하자는 (‘수정하자는’) 주창자들이 이들에 합류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시대에는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의 경멸할만한 아류들(스탈린주의자들)이 사실상 동일한 노선을 따르고 있다. 소위 인민전선정책은 전반적으로 계급투쟁 법칙의 부정에서 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사회모순을 가장 극명하게 만드는 제국주의 시기로서, 선언의 이론적 승리를 확인하고 있다.

 

3. 사회 경제발전의 특수한 단계인 자본주의 해부는 마르크스의 자본(1867)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선언에서도 훗날 있을 분석의 주요 방향들이 짜임새 있게 스케치되어 있다. 노동력 재생산 비용과 등가인 노동력 지출, 자본가의 잉여가치 전유, 사회관계의 기본 법칙으로서 경쟁, 중간계급들 즉, 도시 소부르주아지와 농민층의 파멸, 한편에서는 전례 없는 극소수 자산가들의 수중에 부의 집중 다른 한편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적 증대, 사회주의를 위한 물질적 · 정치적 전제조건의 준비 등이 그것이다.

 

4. 선언중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낮추고 심지어는 이들을 극빈자로 전락시키기도 하는 자본주의 경향에 관련된 부분은 혹독한 집중사격을 받곤 했다. 목사, 교수, 장관, 언론인, 사회민주주의 이론가, 그리고 노조 지도자들은 소위 궁핍화 이론에 대항한 전선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하나 같이, 노동귀족을 프롤레타리아트라고 속이거나, 일시적 경향을 영원한 것이라고 간주하면서, 노동자들 사이에서 재산이 증가하고 있다는 조짐을 발견해 냈다. 하지만 세계 최강의 자본주의 즉, 미국 자본주의조차도 수백만의 노동자를 연방정부나 주정부, 혹은 개인들의 자선행위를 통해서만 연명할 수 있는 극빈자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5. 수정주의자들은, 더욱 더 확대되기만 하는 일련의 파국들로 상업과 산업상의 위기를 묘사하는 선언에 반대하면서, 각 나라와 국제적 신용의 발전이 시장을 통제하고 점차 위기를 없앨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지난 세기와 현 세기의 교체기엔 위기가 단지 우연적정지처럼 보이게 할 만큼 자본주의가 역동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지나가 버렸으며 돌아올 수도 없다. 최종 분석에 따르면 이 문제에 대해서도 진리는 마르크스 편임이 드러났다.

 

6. “현대의 국가 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처리하는 하나의 위원회일 뿐이다”(402). 이 간결한 정식을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은 일종의 저널리즘적 역설로 간주하지만, 사실 이는 국가에 대한 유일한 과학적 이론이다. 부르주아지에게 맞추어진 민주주의는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가 생각처럼 누구나 방해받지 않고 어떤 종류의 계급적 내용이든 채울 수 있는 빈 주머니가 아니다. ‘인민 전선정부는 그것이 블룸(Blum)이나 쇼탕(Chautemps)에 의해 주도되든, 카발레로(Caballero) 혹은 네그린(Negrin)에 의해 주도되든 간에, 단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처리하는 하나의 위원회일 뿐인 것이다. 위원회가 업무를 형편없이 처리할 때마다 부르주아지는 이를 걷어차 쫓아내버린다.

 

7.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 투쟁이다,” “프롤레타리아가 계급으로 조직되는 것은 곧 정당으로조직되는 것이다”(409). 한편의 노동조합주의자와 다른 한편의 아나코-생디칼리스트는 오랫동안 이러한 역사 법칙을 이해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지금도 그런다. ‘순수노동조합주의는 이제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미국이라는 방패막 안에 숨은 상태이다. 아나코-생디칼리즘은 최후의 거점인 스페인에서 회복 불가능한 패배를 겪었다. 여기서도 선언은 그 올바름을 입증한 것이다.

 

8.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가 수립한 법적 테두리 안에서는 권력을 장악할 수 없다. “공산주의자는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 질서를 폭력적으로 타도해야만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433). 개량주의자들은 선언의 이러한 공리를 당대 운동의 미숙성과 민주주의의 불충분한 발전이라는 견지에서 설명하려 한다. 이탈리아, 독일, 그리고 수 많은 다른 민주정(民主政)’들의 운명은 미숙성이야말로 개량주의자 자신의 두드러진 특성임을 입증해준다.

 

9. 사회의 사회주의적 변혁을 위해서, 노동자 계급은 권력을 자신의 수중에 집중시켜서 새 체제로의 길을 가로막는 각각의, 그리고 모든 정치적 장벽들을 분쇄해야만 한다. “지배 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420), 이것은 독재이다. 동시에 이는 유일하게 참다운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이다. 그 넓이와 깊이는 구체적인 역사 조건들에 달려 있다. 보다 많은 수의 국가들이 사회주의 혁명의 길을 걸을수록, 독재는 보다 자유롭고 유연한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며, 노동자 민주주의는 보다 확대, 심화될 것이다.

 

10. 자본주의의 국제적 발전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국제적 성격을 운명 짓는다. “적어도 문명국들 내에서의 단결된 행동은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의 첫 번째 조건들 중의 하나이다.”(418). 이후의 자본주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의 모든 부분들, ‘문명지역미개지역모두가 참으로 긴밀하게 엮였기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국제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소비에트 관료집단은 선언의 이 근본적 문제의식을 청산하려고 시도했다. 소비에트 국가의 보나파르트주의적 퇴보는 일국 사회주의 이론의 오류를 너무도 뚜렷이 보여주는 것이다.

 

11. “발전 과정 속에서 계급적 차이들이 소멸되고 모든 생산이 연합된 개인들의 수중에 집중되면, 공권력은 그 정치적 성격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420~421). 다른 말로 하면, 국가는 사멸한다. 사회는 구속복(strait-jacket)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는 사회주의 이외에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이 정리를 뒤집어 본다면, 소련(USSR)에서 국가 폭압이 괴물처럼 증대되고 있다는 사실은 [소련] 사회가 사회주의로부터 이탈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12. “노동자들은 조국이 없다”(418). 선언의 이 문구는 단순한 선동적 언사일 뿐이라고 속물들이 평가하곤 했다. 사실 이들은 자본주의 조국이라는 문제에 대한, 설득력 있는 유일한 지침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제2인터내셔널이 이 지침을 위반함에 따라, 유럽이 4년간 폐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은 세계 문화의 침체 또한 야기되었다. 3인터내셔널의 배신이 열어준 임박한 새 전쟁의 시점에서 선언은 오히려 지금 더욱 자본주의 조국문제에 대한 가장 신실한 조언자이다.

 

*       *      *

 

따라서 두 젊은 저자들의 이 길지 않은 공동저작은 해방 투쟁의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들에 대해 계속해서 귀중한 지침들을 제공해준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다른 그 어떤 책이 과연 멀리 떨어져서나마 선언과 비교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는, 생산력의 전례 없는 발전과 엄청난 사회적 투쟁들이 벌어진 뒤임에도 선언이 정정되거나 보충될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혁명 사상은 우상숭배와 닮은 구석이 있을 수 없다. 강령과 예측은 인간 이성의 최고 기준인 경험에 따라 시험받고 교정된다. 선언도 교정과 보충이 필요하다. 하지만 역사 경험 자체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 대로, 이러한 교정과 보충은 선언자체가 기초한 방법에 따라 이루어져야만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우린 몇 가지 가장 중요한 사례들을 통해 이를 시도해보려 한다.

 

1. 마르크스는 어떠한 사회 체제도 그 창조적 잠재력을 다 소진하기 전에는 역사의 무대로부터 퇴장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선언은 자본주의가 생산력 발전을 지연시킨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당시뿐만 아니라 그 이후 수십 년 동안에도 이러한 지연은 본질적으로 상대적인 것이었다. 만약 19세기 후반에 사회주의 경제 조직이 가능했다면, 그 성장 속도는 훨씬 더 빨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반박될 수 없는 이런 공리가, 세계대전 때까지 생산력이 전세계적 차원에서 줄곧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무효화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기술의 최첨단 성과에도 불구하고, 격심한 침체와 더 나아가서 세계 경제의 몰락이 시작된 것은 단지 최근 20년 전부터이다. 인류는 축적된 자본을 소모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전쟁은 다가오는 수년 내에 바로 그 문명의 토대 파괴를 위협하고 있다. 선언의 저자들은, 상대적 반동 체제에서 절대적 반동 체제로 변형되기 훨씬 전에 자본주의가 극복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변형이 바로 현 세대의 눈 앞에서 완성된 모습을 드러낸 것이고, 그것은 우리 시대를 전쟁과 혁명 그리고 파시즘의 시대로 만들었다.

 

2. 이후의 역사 진행과 관련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범한 오류는,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미래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한 데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성숙도를 과대평가한 데에서 연유한다. 1848년 혁명은 선언이 짐작한 것과는 달리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화되지 않았으며, 독일에게 장래의 거대한 자본주의적 성장의 길을 열어주었을 뿐이다. 파리 꼬뮌은 단련된 혁명당이 앞장서지 않을 경우,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잇따른 자본주의 번영기가 계속 되면서 혁명 전위의 교육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귀족층의 부르주아적 타락이 초래되었고, 이는 다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주된 장애물이 되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선언의 저자들이 이러한 변증법을 쉽게 예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3. 선언에서 자본주의는 자유경쟁의 왕국이었다. 비록 자본의 집중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선언, 우리 시대의 지배적 자본주의 형태로서 사회주의 경제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 된 독점에 관해서는 필요한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이후 자본에 이르러서야 자유경쟁으로부터 독점으로의 전환 경향을 분명히 했다. ‘제국주의라는 정의를 통해 독점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성격 규정한 것은 바로 레닌이었다.

 

4. 선언의 저자들은 영국 산업혁명의 사례에 기반하고 있었던 탓에, 중간계급의 소멸과정을 장인, 소상점주, 그리고 농민층의 완전한 프롤레타리아화라고 너무 일방적으로 묘사했다. 경쟁의 기본적 영향력이 진보적이면서 동시에 야만적인 이 과업을 완수하리란 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본주의는 소부르주아지를 프롤레타리아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이들을 파멸시켰던 것이다. 더 나아가 부르주아 국가는 오랫동안 소부르주아 계층의 인위적 유지를 위한 정책을 의식적으로 지향해왔다. 그 반대편에서는 기술의 성장과 대규모 산업의 합리화가 만성적 실업을 낳고 소부르주아지의 프롤레타리아트화를 방해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본주의의 발전은 기술자, 관리자, 상업 피고용인 즉, 소위 신중간계급의 성장을 극도로 촉진시키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선언이 그 소멸을 분명하게 언명한 중간계급들은 독일처럼 고도로 산업화된 나라에서조차 인구의 반 정도를 차지한다. 하지만, () 소부르주아지 계층의 인위적 보존은 결코 사회 모순들을 완화하지 못하며, 오히려 모순들을 악성 종양으로 만들면서 영구적인 실업자 군()과 함께 자본주의 부패의 극악한 표현을 이룬다.

 

5. 혁명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선언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기에 조응하는 10가지 요구를 제시한다(2장 끝부분). 1872년 서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요구 중 일부는 낡은 것이 되었고 아무튼 이것들은 부차적 중요성만을 지닐 뿐이라고 천명했다. 개량주의자들은 이러한 평가를 포착하여, 혁명적인 이행 요구들이 사회민주주의의 최소강령잘 알려진 대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지 않는에 영원히 그 자리를 물려주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데 이를 활용했다. 사실, 선언의 저자들은 꽤 정확히 자신들의 이행 강령의 주요 정정 지점을 지적했다. , “노동자 계급이 기존의 국가 기구를 단순히 장악하여 그것을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운영할 수는 없다”(370). 다른 말로 하면, 이 정정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물신주의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후에 마르크스는 꼬뮌 유형의 국가를 자본주의 국가에 대립시켰다. 그 후 이 유형은 소비에트라는 훨씬 더 생생한 모습을 취하게 되었다. 나머지에 대해 더 말하자면, 평화로운 의회 활동 시대에 낡은것으로 보였던 선언10가지 요구는 오늘날에는 그 참다운 의의를 완전히 되찾았다. 반면에 사회민주주의적 최소 강령은 속절없이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6. 선언, “독일 부르주아 혁명은 단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직접적 서곡이 될 수 있을 뿐”(433)이라는 기대에 기반하여, 17세기의 영국과 18세기의 프랑스에 비하여 훨씬 더 진전된 유럽 문명의 조건들과 훨씬 더 거대하게 발전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예측에 내재한 오류는 단지 시대를 앞질렀다는 차원이 아니다. 1848년 혁명은 [선언출간 후] 수개월 안에, 바로 그보다 진전된 조건들 하에서는 어떤 부르주아 계급도 혁명을 끝까지 완료할 수 없음을 드러내주었다. 대부르주아지와 중간 부르주아지는 지주들과 너무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대중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다. 또한 소부르주아지는 너무나 심하게 분열되고 있고, 그 최고 지도부는 대부르주아지에게 너무도 의존하고 있다. 이후 유럽과 아시아의 전체 발전 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난 대로, 부르주아지 자신에 의해 수행되는 부르주아 혁명이란 전반적으로 더 이상 달성될 수 없다. 봉건적 쓰레기를 사회로부터 완전히 추방하는 과업은 오직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 정당의 영향에서 벗어나, 농민을 이끌며 혁명적 독재를 수립하는 조건에서라야 착수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부르주아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의 첫 단계와 얽히게 되고, 그 이후에는 후자 안에 용해되게 된다. 일국 혁명은 그에 따라 세계 혁명의 고리가 된다. 경제적 토대와 모든 사회 관계의 변혁은 연속적(부단한) 성격을 띠게 된다.

 

아시아,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 후진국들의 혁명정당에게는 민주주의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그리고, 그에 따른 국제 사회주의 혁명사이의 유기적 연관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사활적 문제이다.

 

7. 비록 자본주의가 후진국과 야만국들을 자본주의 소용돌이로 어떻게 몰아넣는지에 대해 묘사하고 있긴 하지만, 선언은 식민지와 반()식민지의 독립 투쟁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적어도 문명국들 내에서의 사회혁명을 이후 몇 년 안의 문제로 바라봤기 때문에, 그들에게 식민지 문제는 피억압 민족들의 독립 운동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식민종주국 프롤레타리아트 승리의 결과로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무엇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식민지 및 반식민지 나라들의 혁명 전략 문제는 선언에 의해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이 문제들은 그만의 해결책을 요구한다. 가령 조국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가장 해악적인 역사적 장애물이 되었지만, 후진국들에서는 여전히 자주성 쟁취 투쟁을 강제하는 상대적으로 진보적 요소라는 것이 분명하다.

 

선언공산주의자들은 어디서나 현존의 사회 정치 상태를 반대하는 모든 혁명 운동을 지지한다.”(433)라고 천명한다. 제국주의 억압자들에 대항하는 유색인종의 운동은 현존 질서에 대항하는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운동 중 하나이며, 따라서 백인 프롤레타리아트 진영의 전적이고 무조건적이며 무제한적인 지지를 요구한다. 피억압 민족 혁명전략을 발전시킨 영예는 누구보다도 레닌에게 돌려져야 한다.

 

8. 선언에서 가장 낡은방법과 관련해서가 아니라 내용과 관련해서부분은 19세기 초반의 사회주의문헌에 대한 비평(3)과 다양한 경쟁 정당과의 관계 속에서 공산주의자의 위치를 규정한 대목(4)이다. 선언에 언급된 운동과 정당들은 1848년 혁명과 그 직후의 반()혁명에 의해 너무도 철저하게 소멸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이름을 찾으려면 역사 사전을 들여다보아야만 할 정도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선언은 이전 세대보다도 지금의 우리에게 더 가깝게 다가오는 것 같다. 2인터내셔널 개화기에는 전()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 사상들[공상적 사회주의]이 결정적으로 과거사가 되어버린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었다. 오늘날 상황은 그와 정반대이다.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계속 부패하게 되면서 엄청난 이데올로기적 퇴행이 발생하고 있다. 망령든 사상은 유치한 수준이 되었다. 몰락의 시대에 모든 이를 구원한다는 공식을 찾는 예언자들은 다시금, 과학적 사회주의가 오래 전에 매장한 교조들에서 이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경쟁 정당의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서 지난 수십 년의 세월로 인해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 옛 정당들이 새로운 정당들에 의해 대체되었다는 의미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정당들의 성격과 이들 상호관계가 제국주의 시대라는 조건 하에서 급격히 변해버렸다는 의미에서도 그러하다. 따라서 선언은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의 첫 4개 대회의 가장 중요한 문건, 볼셰비즘의 핵심 문헌, 그리고 제4인터내셔널 대회 결의문들을 통해 보강되어야 한다.

 

우리는 위에서 이미, 어떠한 사회 질서도 그에 내재한 잠재력들을을 다 소진하지 않고서는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언급을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이미 낡아빠진 사회 질서조차도 저항없이 새로운 질서에 자리를 물려주지는 않는다. 사회 체제상의 변화는 계급투쟁의 가장 격렬한 형태 즉, 혁명을 전제한다. 만약 프롤레타리아트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이유로, 수명을 다한 부르주아 질서를 대담한 일격으로 전복시키지 못한다면, 금융 자본은 자신의 불안정한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파멸시켜 의기소침해진 소부르주아지를 다시 파시스트 학살군으로 재편하는 수밖에 없다. 사회민주주의의 부르주아적 타락과 소부르주아지의 파시즘적 타락은 원인과 결과로 서로 연관되어 있다.

 

현재 제3인터내셔널은 제2인터내셔널보다 더 왕성하게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를 기만하고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모스크바의 고삐 풀린 하수인들은 스페인 프롤레타리아트 전위를 학살함으로써 파시즘에 승리의 길을 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파시스트들의 노고를 상당히 덜어주기까지 했다. 국제혁명이 계속 연장된 위기는 인류 문화를 더욱 위기로 몰고 있는데, 이는 결국 혁명 지도부의 위기로 수렴된다.

 

선언이 가장 중요한 일부로 자리하고 있는 위대한 전통의 상속자로서, 4인터내셔널은 숙원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중추를 교육하고 있다. 이론은 현실의 일반화이다. 사회 현실을 바꾸려는 열망은 혁명이론에 대한 성실한 태도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검은 대륙 남부에서 선언을 아프리칸스어로 번역한 첫 번째 사람이 우리의 동지라는 사실은, 오늘날 마르크스주의 사상이 제4인터내셔널 깃발 아래서만 살아있다는 사실의 또 하나의 생생한 예증이다. 여기에 미래가 달려 있다. 선언100주년이 기념될 때에는 제4인터내셔널이 이 세계의 결정적 혁명 세력이 될 것이다.

 

19371030

 

Ninety Years of the Communist Manifes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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