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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le1917@gmail.com

Marxist Internet Archive( www.marxists.org ) 편집자 주: 이 글은 트로츠키가 1940 년 스탈린의 자객에 의해 사망하기 거의 1년 전인 1939 년 4 월에 작성되었다. 따라서 혁명적 맑스주의에 대한 그의 확신을 담은 최후의 저작에 속한다. 이 글은 오토 륄러 (Otto Ruele)가 맑스의 자본론 제 1권을 축약하여 출판했을 때 이 판본의 서문으로 작성되었다. 나중에 이 글은 팸플릿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원래 이 팸플릿은 In Defense of Marxism(www.marxist.com) 웹사이트에 게재되었으며 이 사이트의 허가를 받은 후 Marxist Internet Archive의 트로츠키 관련 항목에 추가되었다.


<차례>

 

맑스의 방법론 / 맑스주의와 공인 과학 / 노동가치 법칙 /

불평등과 착취 / 경쟁과 독점 / 부의 집중과 계급갈등의 성장 /

맑스의 사상은 시대에 뒤떨어졌는가? / 궁핍 심화 이론 /

산업예비군과 실업자라는 새로운 하층 계급 / 중간계급의 쇠퇴 / 경제공황 /

“붕괴 이론” / 자본주의의 쇠락 / 파시즘과 뉴딜 정책 /

비정상인가 정상인가? / 사법적 투쟁이라는 엉터리 치료 / 과거로 돌아가자 /

밀리컨과 맑스주의 / 생산력의 발전의 가능성과 사적 소유 / 사회주의의 불가피성 /

사회주의 혁명의 불가피성 / 미국의 맑스주의 / 자본주의를 들여다볼 이상적 거울 /

제국주의 모국과 식민지 / 세계 차원의 계획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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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륄러는 맑스의 자본론 제 1권을 축약하여 출간했다. 맑스주의 경제 사상의 근본원리들을 맑스 자신이 함축하여 설명한 것이 이 책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노동가치론을 맑스 자신보다 더 잘 설명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오토 륄러씨는 아주 세심하게 그리고 자신이 하는 작업의 성격을 아주 잘 이해한 채 맑스주의 경제학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자본론 제 1권을 축약했다. 이미 시효가 지난 예들과 설명들이 제일 먼저 원본에서 삭제되어야 했다. 지금은 역사학자들에게나 관심을 끌 저작들로부터 따온 인용문들과 이미 잊힌 저자들과의 논쟁들이 그 다음으로 삭제되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영국 의회의 법률들, 공장 검열관의 보고서등 많은 문서들이 삭제되어야 했다. 이 문서들은 해당 시대를 이해하는 데에는 중요해도 역사적 목적보다는 이론적 목적을 가진 축약본에는 설 자리가 없다. 동시에 륄러씨는 자본론 제 1권의 논리적 통일성과 과학적 분석의 전개 양상을 축약본에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했다. 이 때문에 본 저작의 논리적 추론과 변증법적 전개 양상은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 축약본은 심사숙고하면서 정독되어야 마땅하다. 독자들을 배려하여 오토 륄러씨는 간략한 소제목들을 글 중간중간에 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가장 어려운 제 1장을 포함하여 맑스의 주장 일부는 처음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너무도 논쟁적이고 너무도 세세하게 파고들며 너무도 “형이상학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이 느낌은 너무도 일상적인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습관의 결과이다. 상품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너무도 넘쳐나고 있어서 습관적으로 익숙해져 버렸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현실에서 전혀 쓸모가 없는 금과 은의 자그마한 동전을 받는 대가로 삶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물건들을 타인에게 넘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문제는 상품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시장경제의 기본 개념들인 모든 범주들은 마치 자명한 듯이 그리고 인간관계의 자연적 토대인 양 아무 분석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경제과정의 현실체들은 인간노동, 원자재, 도구, 기계, 분업, 노동과정의 참여자들에게 완제품을 분배할 필요 등이지만 “상품”, “화폐”, “임금”, “자본”, “이윤”, “세금” 등의 범주들은 인간이 이해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경제과정의 다양한 측면들이 인간의 의식에 반 정도 신비하게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 이것들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철저한 과학적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백만 달러를 소유한 사람을 백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나라에서는 시장의 개념들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깊이 뿌리 박혀있다. 아주 최근까지 미국인들은 경제관계의 성격에 대해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다. 경제체제가 가장 강력한 나라에서 경제이론은 대단히 척박한 상태를 유지해왔다. 현재 드러난 미국경제의 심대한 위기를 통해서만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문제들이 일반에게 무지막지하게 제기되었다. 어쨌든 경제과정의 이념적 반영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본주의의 기본 세포인 상품의 핵심적 성격을 맑스의 방식대로 논리적으로 추적하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든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첨예한 사회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맑스의 방법론


인간은 자연현상이 객관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을 인식한 후 이것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체계화했다.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지속적으로 자신을 과학으로부터 배제한 후 감각을 초월한 힘과 소위 대화를 나눈다(종교) 시간을 초월한 도덕적 관념들과 대화를 나눈다(관념론)는 등의 특권을 자기 스스로 누려왔다. 맑스는 인간에게서 이 혐오스러운 특권을 확실히 그리고 영원히 박탈해버렸다. 즉, 인간을, 물질로 이루어진 자연에서 진행되는 진화과정의 필연적 고리로 파악하고, 인간사회를 생산과 분배의 조직으로 파악했으며, 자본주의를 인간사회 발전의 한 단계로 파악했다.

 

경제의 “영원한 법칙”을 발견하는 것은 맑스의 목적이 결코 아니었다. 아니, 그는 이런 법칙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인간사회의 발전사는 나름의 법칙에 따라 작동되는 다양한 경제체제가 연속적으로 존재한 역사이다. 한 경제체제에서 다른 경제체제로의 이행은 언제나 생산력 즉, 노동기술과 노동조직의 성장에 의해 결정되었다. 일정 시점까지 사회변화는 양적인 성격을 띠면서 사회의 토대 즉, 지배적인 소유형태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에는 성숙한 생산력이 과거의 소유형태 안에 더 이상 가두어지지 않는 시점이 다가온다. 이때에는 사회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면서 사회적 격동이 닥친다. 원시공동체는 노예제로 대체되었고 이것은 다시 봉건적 상부구조를 가진 농노제에 의해 대체되었다. 유럽의 봉건 도시들이 상업을 통해 발전하면서 16 세기에 유럽은 자본주의체제가 되었다. 이 체제는 이후 여러 단계들을 거쳤다. 자본론에서 맑스는 경제일반이 아니라 나름의 법칙을 가진 자본주의 경제를 연구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들을 해명하기 위해 그는 다른 경제체제들을 여기저기에서 언급할 뿐이다.

 

자급자족경제체제를 이룬 원시공동체 농민의 가계는 “국가경제”가 필요 없었다 [역자 주: 그동안 남한 좌익은 political economy를 정치경제학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political의 명사는 polity이지 politics가 아니다. Polity는 원래 그리스어로 완결된 정치지배질서 즉, 국가를 의미했다. 따라서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국가경제 또는 국가경제학이 올바른 번역어가 될 것이다. ] 왜냐하면 이들은 한편으로는 자연력에 의해 또 한편으로는 전통의 힘에 지배당했기 때문이었다. 노예노동에 기초한 그리스와 로마의 자족적 자연경제체제는 노예 소유주의 의지에 지배받았다. 후자의 “계획” 은 물론 자연과 반복적 관습의 법칙에 지배받았다. 농노를 거느린 중세의 장원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경우들에 있어서 경제관계는 원시적인 조야함으로 인해 명백하고 투명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경우 사태는 완전히 달라진다. 과거의 자족적인 연관과 물려받은 노동양식은 파괴되었다. 새로운 경제관계는 도시와 농촌마을, 지방과 나라 전체를 연결시켰다. 분업은 세계를 포괄했으며 전통과 반복적 관습을 해체시켜 버렸다. 그러나 이 연관은 명확한 계획을 수립하기는커녕 인간의 의식과 선견지명에 역행했다. 마치 인간의 등 뒤에서 이들을 조종하는 것 같았다. 분업이 조성한 인간 개인, 집단, 계급, 국가 등 사이의 상호의존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지도되거나 관리되지 않았다. 인간은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서로의 필요를 추적하지 않은 채 자신들이 조성한 경제관계가 스스로 알아서 관리되기를 희망하면서 또는 확신하면서 노동관계를 유지했다. 대체로 이것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자본주의 사회의 반복되는 현상들을 사회성원의 주관적 의식 즉, 이들의 의도나 계획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들은 과학이 이것들을 진지하게 연구하기 이전에 형성되었다. 지금까지도 인간의 압도적 다수는 자본주의 경제를 지배하는 법칙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경제현상에 대한 맑스의 방법론이 가지고 있는 힘은 일부 개인들의 주관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객관적 관점을 통해 경제현상에 접근한다는 데에 전적으로 기인한다. 이것은 실험에 의존하는 자연과학자가 벌집이나 개미집을 연구하는 방법과 완전히 동일하다.

 

경제학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기 행위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는 바가 아니라 이들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하느냐에 있다. 인간사회의 토대는 종교나 도덕이 아니라 자연과 노동이다. 맑스의 방법론은 유물론에 입각해 있다. 왜냐하면 존재를 통해 의식을 추적할 뿐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맑스의 방법론은 변증법에 입각해 있다. 왜냐하면 자연과 사회를 움직이는 과정으로 간주하며 이 과정 자체를 서로 반대되는 힘들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맑스주의와 공인 과학


맑스에게는 선배들이 있었다. 아담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 등의 고전 국가경제학은 자본주의가 노쇠하고 내일을 두려워하기 이전에 전성기를 맞았다. 이 두 위대한 경제학자들에게 맑스는 깊은 감사를 담은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고전 경제학의 근본적 오류는 자본주의를 사회발전의 한 단계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대신 인류의 영원한 정상적 존재양식으로 파악한 데에 있다. 맑스는 이것을 비판하기 시작했고 자본주의의 모순뿐 아니라 이 경제학의 오류들을 폭로했으며 자본주의 붕괴의 불가피성을 증명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아주 적절히 말했듯이 맑스의 경제사상은 고전 경제학의 산물인 바 후자를 죽이면서 탄생했다.

 

은둔자처럼 폐쇄된 학자의 연구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사회를 통해 과학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사회를 산산조각 내는 이해관계와 격정들은 전부 , 과학 특히 부와 빈곤의 과학인 국가경제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노동자들의 자본가에 맞선 투쟁은 자본가 계급 이론가들로 하여금 착취 체제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등을 돌리게 했다. 그 대신, 경제적 사실들을 무미건조하게 묘사하거나 과거의 경제사 연구에 몰두하게 했다. 훨씬 더 나쁜 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실제를 노골적으로 왜곡하는 일에 열중했다는 것이다. 공인된 학문기관에서 전수되고 있으며 부르주아 언론에서 선전되고 있는 경제 사상은 중요한 사실들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경제과정 전체를 포괄하여 그 법칙과 전망을 발견하는 데에는 전혀 무능하다. 또한 그럴 의지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공인 국가경제학은 사망했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진정한 지식은 맑스의 자본론을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

 

 

노동가치 법칙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는 교환이다. 교환과정에 나온 모든 노동생산물은 상품이 된다. 맑스는 제일 먼저 상품을 연구했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세포를 통해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교환을 통해 객관적으로 형성된 사회관계들을 유추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만 다음과 같은 근본 수수께끼를 해결할 수 있다: ‘자기 개인만을 생각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을 영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경제의 각 분야들이 어떻게 상대적인 비율을 찾아가는가?’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 농부는 자신의 생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고 대금업자나 은행가는 돈을 빌려주며 가게주인은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고 제조업자는 공장을 지으며 투기꾼은 주식과 채권을 사고판다. 각자는 임금이나 이윤에 대한 자기 자신만의 생각과 계획과 걱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개인들의 목적과 행위들이 난무하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경제체제가 수립된다. 이 체제는 조화를 이루기는커녕 서로 모순적이면서도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할 가능성을 부여한다. 결국 이것은 혼란스러운 상황이 결코 혼란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 체제는 의식적이지는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통제된다. 경제의 각기 다른 부문들이 상대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객관적 법칙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임금, 가격, 토지, 임대료, 이윤, 이자, 신용대부, 증권거래소 등 자본주의 경제의 다양한 영역들을 지배하는 법칙들은 물론 수도 많고 복잡하다. 그러나 결국 이것들은 맑스가 발견하고 탐구한 하나의 법칙 즉, 노동가치 법칙으로 수렴된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 경제를 기본적으로 지배하는 법칙이다. 이 법칙의 핵심은 간단하다. 인간사회는 자신이 운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노동력의 일정량을 보유하고 있다. 자연에 적용할 경우 이 노동력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생산물을 만들어낸다. 독자적인 생산자들 사이의 분업을 통해 생산물은 상품의 형태를 띤다. 상품들은 처음에는 직접 그리고 나중에는 금이나 화폐의 매개를 통해 특정 비율로 서로 교환된다. 상품의 기본 성격은 특정 관계를 통해 서로 동등한 자격을 획득하는 바, 이것이 바로 상품 생산에 소모된 인간노동으로 추상적 노동 또는 노동 일반이 된다. 바로 이것이 가치의 기초이자 척도가 된다. 서로 흩어져 있는 수백만의 생산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분업은 사회를 해체시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품들은 상품에 소모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따라 교환되기 때문이다. 교환의 장소인 시장은 상품들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을 통해 이 상품들이 자체 내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결정하고 이를 통해 사회에 필요한 상품들이 교환되는 비율을 결정한다. 결국 이를 통해 각 업종별로 노동력이 배분된다.

 

시장이 작동하는 실제 과정들은 지금 몇 줄의 글로 여기에 표현된 것보다 한없이 복잡하다. 이렇게 노동가치를 두고서 등락을 하는 과정에서 가격은 이 가치의 상당히 위 또는 아래로 요동친다. 이 요동의 원인들은 맑스가 자본론 제 3권에서 완벽히 설명하고 있다. 소위 “전체적으로 바라본 자본주의 생산과정”이 묘사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개개의 경우에 상품의 가격과 가치 사이에 아무리 차이가 크게 나더라도 모든 가격의 총합은 모든 가치의 총합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결국 인간노동에 의해서 창조된 가치만이 사회에 의해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격은 이 한계를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독점체들의 독점가격도 마찬가지이다. 인간노동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않은 경우에는 심지어 막대한 부의 소유자 록펠러조차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

 

 

 

불평등과 착취

 

그런데 그 속에 담겨있는 노동량에 따라 상품이 서로 교환된다면 어떻게 이 평등 속에서 불평등이 생길 수 있는가? 모든 상품 속에 기본적으로 들어 있는 상품 즉, 노동력의 특이한 성격을 파헤치는 것을 통해 맑스는 이 수수께끼를 해결했다. 생산수단의 주인인 자본가는 노동력을 산다. 다른 모든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노동력은 이 속에 들어있는 노동의 양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 물론 이 가격은 노동자의 생존과 자손번식에 필요한 생필품의 양이다. 이 특이한 상품인 노동력은 일을 통해 소모되고 이 일을 통해 새로운 가치들이 생산된다. 이 가치들의 양은 노동자가 받아서 자신의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가치의 양보다 크다. 결국 자본가는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이것을 산다. 불평등의 근원은 바로 이 노동력 착취이다.

 

노동자의 생존을 위해 들어가는 생산물의 부분을 필요생산물 그리고 이 이상으로 노동자가 생산하는 것을 잉여생산물이라고 맑스는 부른다. 잉여생산물은 노예에 의해 생산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노예 소유주가 노예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잉여생산물은 농노에 의해 생산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농노제는 토지귀족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임금노동자는 노예나 농노들보다 상당히 많은 정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잉여생산물을 생산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본가가 노동력을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계급투쟁은 결국 잉여생산물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일 뿐이다. 잉여생산물을 차지하는 자는 사회의 주인이 되어 재산을 소유하고 국가를 소유하며 교회, 법정, 과학 그리고 예술을 차지하는 열쇠를 갖는다.

 

 

경쟁과 독점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들 사이의 관계는 경쟁에 의해 결정된다. 경쟁은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오랫동안 그 위력을 발휘해왔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비해 기술, 금융, 조직, 경제, 그리고 특히 정치 면에서 우위를 점한다. 더 많은 수의 노동자들을 착취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대자본은 경쟁에서 승리한다. 바로 이것이 자본의 집중과 편중의 변함없는 토대이다.

 

기술의 발전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경쟁은 서서히 중간 자본뿐 아니라 자신마저 잡아먹는다. 중소자본가들의 크고 작은 시체 위에는 더욱 더 작은 수의 거대하고 강력한 자본가들이 우뚝 선다. 결국 “민주”, “진보” “개선”의 모습이던 경쟁은 되돌이킬 수 없이 “해로운”, “기생적인”, “반동적인” 독점을 탄생시킨다. 1880년대에 독점은 사회적 지배력을 획득하여 1900년대 시초에 명확한 모습을 갖추었다. 이제 부르주아 사회의 가장 공식적 대표들은 독점의 승리를 공공연히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법무장관이었던 호우머 커밍즈씨는 이렇게 불평한다: ‘한때 사회를 규제하는 힘으로 작용했던 경쟁은 서서히 대체되면서 대규모 경제 분야들에서는 이제 “과거의 그림자”로만 남아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내적 경향으로부터 독점 현상을 맑스가 최초로 도출했을 때에도, 부르주아 세계는 경쟁을 자연의 영원한 법칙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독점이 경쟁을 제거하면서 자본주의 사회는 자신의 해체를 시작했다. 경쟁은 자본주의의 창조적 원동력이었으며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사회지배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는 방편이었다. 이와 똑같은 의미에서 경쟁의 배제는 주주들을 사회의 기생충으로 변모시켰다. 경쟁은 어느 정도의 자유, 자유로운 분위기, 민주적 정부, 상업적 국제주의를 필요로 했다. 그런데 독점은 가능하면 더욱 권위주의적 정부, 관세 장벽, “자기자신의” 원자재 공급원이자 상품판매처인 식민지를 필요로 한다. 독점자본이 사회를 해체하는 막판에 파시즘이 등장한다.

 

 

부의 집중과 계급갈등의 성장

 

세금 관리뿐 아니라 일반인의 눈으로부터, 부가 얼마나 집중되는지를 숨기기 위해 자본가들과 이들의 옹호자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명백히 보이는 현상을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부인하면서 부르주아 언론은 자본주의 하에서 투자가 “민주적으로” 분배된다는 환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맑스주의자들의 지적을 부인하면서 뉴욕타임스지는 이렇게 지적한다: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사업가들의 수가 3백만 명에서 5백만 명에 이른다.’ 물론 주식회사는 3백만에서 5백만에 이르는 고용주들보다는 자본의 집중도가 더 크기는 하지만 미국은 “50 만개의 주식회사들”밖에 없다는 식이다. 이렇게 수치를 뭉뚱거리고 평균 수치를 들이대는 수작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숨기기 위해서 동원된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부터 1923년까지 미국의 공장 수는 지수 100에서 지수 98.7로 떨어졌다. 반면에 공업생산량은 지수 100에서 지수 156.3으로 증가했다. 1923년부터 1929년까지는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대단한 호황기였다. 이때 공장의 수는 100에서 93.8로 떨어진 반면, 공업생산량은 100에서 113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때 무거운 자재들에 묶인 공장들의 집중도는 자본 소유자들의 집중도에 훨씬 못 미쳤다. 뉴욕타임스지가 제대로 말한 대로 1929년에 실제로 미국에는 주식회사가 30만 개 이상 존재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200개의 주식회사들 즉, 전체의 0.07%를 차지하는 이들이 주식회사 전체 자산의 49.2%를 직접 통제했다. 이로부터 4년 후 이 비율은 다시 56%로 상승한다. 물론 루즈벨트 대통령 임기 시에는 이 비율이 더욱 상승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200대 주식회사 내에서도 실제 경영권은 아주 적은 소수에게 집중되었다. 1937년 2월 미국 상원의 어느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지난 20년 동안 12대 주식회사의 결정들은 미국 공업 대부분에 대한 지시사항에 해당되었다.’ 이 거대 주식회사들의 이사장 숫자는 미국의 행정부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 위원들의 숫자와 거의 같다. 그러나 이 이사장들은 당연히 국무회의 위원들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파워가 막강하다.

 

은행업계과 보험업계에서도 똑같은 과정이 관찰될 수 있다. 미국의 5대 보험회사들은 다른 보험회사들은 물론 은행들까지 집어 삼켰다. 주로 소위 “합병”이라는 형태로 흡수되면서 은행의 전체 숫자는 줄어들었다. 총매출액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은행들의 머리 위로 초거대은행들의 과두제가 우뚝 솟아올랐다. 은행자본은 공업자본과 합병하여 초거대 금융자본이 되었다. 실제로 공업과 은행의 집중 속도는 더 증가하고 있지만 지난 25년간 같은 속도를 유지한 것으로 가정할 경우 앞으로 25년간 독점자본가들은 아예 미국 경제 전체를 깡그리 자기들 손아귀에 집어 넣을 것이다.

 

미국의 통계를 제시하는 이유는 이 수치들이 좀 더 정확하고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핵심적으로 집중 과정은 국제적 성격을 띠고 있다. 자본주의의 다양한 단계들, 경기 순환의 전 단계들, 모든 정치체제들 그리고 전쟁시기와 평화시기를 막론하고 모든 거대 기업들이 집중과정을 거쳐 더욱 적은 수의 자본가들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며 이 과정은 끝없이 진행될 것이다. 제 1차 세계대전 동안 여러 나라들은 빈사상태가 되었고 부르주아 계급의 국가기구는 전쟁 부채의 무게에 짓눌렸으며 재무구조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중간계급들을 함께 늪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러나 이때조차 독점자본가들은 유혈과 오물로부터 유례없는 이윤을 자기들 것으로 했다.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의 가장 강력한 기업들의 자산은 두 배 세 배 네 배 아니 그 이상 증대되었으며 이들의 배당금은 3배 4배 9배 아니 그 이상 증가했다.

 

맑스와 엥겔스가 공산당선언을 발표하기 8년 전인 1840년에 유명한 프랑스의 저술가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자신의 저서 미국 민주주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거대한 부는 사라지고 소규모 부는 증대하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미국을 언급하며 그리고 나중에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신흥 민주주의 국가들을 언급하며 이 견해는 수없이 반복된다. 물론 그의 견해는 그의 당대에도 이미 오류였다. 그는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사망했는데 이 전쟁 직후부터 부의 거대한 집중은 시작되었다. 20세기 초에 미국 인구 2%는 나라 전체의 부 절반 이상을 이미 소유했다. 1929년에는 이 2%가 나라 전체의 부를 60%나 소유했다. 이때 부유한 3만 6천 가문은 1천 1백만 중소 가문들과 같은 소득을 올렸다. 1929년부터 1933년까지의 공황기에 독점체들은 일반인의 자선에 호소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와 반대로 이들은 국가 경제의 전반적인 쇠락 위에 우뚝 솟아 부를 자랑했다. 이 시기 직후 뉴딜의 경기부양 정책으로 위태롭게 경기가 살아나고 있을 때 독점체들은 다시 경기회생의 과실을 대부분 걷어갔다. 이때 실업자의 수는 2천만 명에서 1천만 명으로 줄어들었으나 6천 명도 채 되지 않는 사회의 최상층은 엄청난 배당금을 챙겼다. 이 사실은 법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독점금지 운동을 주도한 로버트 잭슨(Robert H. Jackson)이 직접 증명했다.

 

학자적 양심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보수적인 경제학자였던 페르디난트 룬트베르크(Ferdinand Lundberg)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큰 소동을 일으켰다: “90 개도 채 되지 않는 부유 가문에 의해 지지를 받으면서 60 대 거대 부유 가문이 현재 미국을 소유하고 지배하고 있다.” 1년에 10만 달러가 넘는 소득을 챙기는 아마 150대 3류급 부유 가문들도 거대 부유가문들을 지지하고 있다고 그의 말에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1류급 60대 거대 부유 가문은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며 시장뿐 아니라 주요 국가기구의 지위를 지배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달러 민주주의 체제에서 돈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진짜 정권이다.

 

이렇게 해서 “독점 자본”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피와 살을 부여받고 생생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결국 친족 관계와 공동의 이해로 묶인 채 독점적인 자본주의 과두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한 줌의 가문들이 거대한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부를 행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 집중에 대해 맑스가 발견한 법칙은 아주 잘 실현되었다고 인정해야하지 않겠는가!

 

 

맑스의 사상은 시대에 뒤떨어졌는가 ?

 

경쟁, 부의 집중, 독점 등의 문제는 자연히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연결된다: ‘우리 시대에 맑스의 경제이론은 , 예를 들어 아담 스미스의 이론처럼 , 역사학자의 관심거리에 불과한가 아니면 지금도 실제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는 기준은 단순하다: ‘만약 그의 이론이 다른 이론들보다 경제의 진전 과정을 더 올바로 측정하고 예측한다면 그의 이론은 수십 년 전에 나왔다 할지라도 우리 시대의 가장 선진적인 이론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유명한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 (Werner Sombart)는 초창기에는 거의 맑스주의자였으나 맑스 경제이론의 혁명적이며 특히 부르주아 계급에게 가장 거북한 내용들을 이후 수정했다. 그는 학자로서 수명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1928년에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저작을 통해 맑스의 자본론을 반박했다. 그의 저서는 다수의 외국어로 번역되었으며 최근 부르주아 계급의 경제학 변명 가운데 아마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맑스 경제이론의 기본원리들에 대해 추상적인 찬사를 늘어놓은 후 그는 동시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칼 맑스는 이렇게 예언했다: ‘첫째, 임금 노동자들의 궁핍이 심화된다, 둘째, 수공업자와 농민 계급이 사라지면서 전반적인 ‘집중현상’이 일어나며, 셋째, 자본주의는 재앙을 맞이하여 붕괴한다.’ 그런데 이런 일은 하나도 발생하지 않았다.” 좀바르트는, 이 잘못된 예측에다 자신의 “엄밀하게 과학적인” 예측을 대비시킨다: “전성기에 시작한 변모과정과 같은 방향으로 자본주의는 계속 내적인 변모를 겪을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 체제는 더욱 침착하고 안정되고 합리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재앙을 예측한 맑스와 부르주아 경제를 대변하여 상황이 “침착하고 안정되고 합리적인 모습으로” 적응될 것이라고 약속한 좀바르트 가운데 누가 옳은지 기본원리들만을 토대로 확인을 해보자. 이 문제가 주목할 가치가 있다는 것에 독자들은 동의할 것이다.

 

 

궁핍 심화 이론

 

좀바르트보다 60년 전에 맑스는 이렇게 말했다: “한쪽에서 부가 축적될수록 자본의 형태로 생산물을 만드는 계급 반대쪽에서는 궁핍, 노동의 고통, 노예상태, 무지, 폭력, 정신적 타락 등이 동시에 축적된다.” 특히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발전하여 특히 상층 노동자들에게 어느 정도 양보를 했던 1896년부터 1914년의 시기에 민주적이고 사회민주주의적인 개량주의자들로부터 궁핍 심화 이론은 끊임없이 공격을 받았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의 전쟁범죄와 10월 혁명에 겁을 먹고 사회 개량을 선전하는 길로 나섰다. 그러나 이 개량조치들도 인플레와 실업으로 무력화되고 있었다. 이때 개량주의자들과 부르주아 교수들에게 자본주의 사회의 진보적인 변모 이론은 완전히 입증된 것처럼 보였다. 1928년에 좀바르트는 이렇게 우리에게 확신시켰다: “임금 노동의 구매력은 자본주의 생산의 확장과 정비례하여 증대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경제적 모순은 자본주의가 가장 번성할 때에도 더욱 심화되었을 뿐이었다. 이때 노동자 일부 계층의 생활수준은 상당히 올라갔지만 국가의 부 전체 가운데 노동자들의 몫은 피상적인 관찰자들의 눈에 드러나지 않았다. 경기가 완전히 가라앉기 직전의 시기인 1920년부터 1930년까지 미국의 공업생산량은 50% 증가했다. 그러나 임금으로 지불된 총량은 30%만 증가했다. 이것은 좀바르트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나라 전체의 부 가운데 노동계급의 몫이 크게 떨어졌음을 의미했다. 1930년에 실업이 불길하게 증가하더니 1933년에 실업자들은 어느 정도 체계적인 실업 대책 지원을 받았지만 이들은 자기 임금의 반도 채 되지 않는 지원금을 받았을 뿐이었다. 모든 계급들이 중단없이 “전진”한다는 환상은 조금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중의 상대적인 생활수준 하락은 절대적인 하락으로 이어졌으며 노동자들은 쥐꼬리 만한 오락도 절약하고 이어서 의복 구매도 절감한 후 결국 식량 구매도 절감하기 시작했다. 보통 수준의 물품들은 엉터리 수준의 물품들로 대체되었으며 엉터리 수준의 물품들은 다시 최악의 물품들로 대체되었다. 노동조합들은 급격하게 하강하고 있는 에스컬레이터에 가까스로 몸을 부지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인구의 6%를 차지하면서도 세계 부의 40%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루즈벨트 자신이 인정하고 있듯이 미국 사람의 3분의 1은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면서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보다 못한 나라들은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진행된 자본주의 국가들의 역사는 소위 “궁핍 심화 이론”의 올바름을 논란의 여지없이 입증시켰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능력이 있는 통계전문가들뿐 아니라 산수의 기본규칙을 기억하는 부르주아 정치꾼들도 지금 인정하고 있다.

 

파시즘 체제는 제국주의 단계에 들어선 자본주의에 내재한 쇠락과 반동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정치체제이다. 그런데 지금, 자본주의의 퇴보가 노동계급 생활수준 향상의 환상을 유지할 가능성을 완전히 뭉개버린 지금, 체제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수단이 되었다. 파시즘 독재체제의 등장은 궁핍 심화 경향이 공개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좀 더 부유한 제국주의국가들은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이 경향을 은폐하려고 할 뿐이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자신들의 독재체제가 맑스주의 경제이론의 예측을 가장 참혹하게 입증하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맑스주의를 그렇게 증오하며 탄압하고 있다. 괴링(Goering)은 그에게 특이하게도 사형집행인과 광대가 결합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버터보다 총포가 더 중요하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깔리오스트로-카사노바-무솔리니는 이탈리아 노동자들에게 검은 셔츠를 졸라 맨 허리띠를 더 단단히 조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자 소위 문명세계는 분노하거나 분노하는 척 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들의 민주주의 체제도 상황은 매 한가지 아닌가? 모든 곳에서 버터는 총포에 기름칠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프랑스, 영국, 미국의 노동자들은 검은 셔츠는 입고 있지 않지만 허리띠를 졸라매는 법을 배우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에서 수백만 노동자들은 연방정부, 주정부, 시정부 또는 개인들이 베푸는 자선에 의존하여 연명하는 거지들이 되었다.

 

 

산업예비군과 실업자라는 새로운 하층 계급

 

공장 창고의 기계류와 원자재 그리고 상점의 완제품 등과 똑같이 산업예비군 즉, 실업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체제의 필수품목이다. 노동력의 저장창고인 실업자들 없이는 자본주의 생산의 일반적 팽창과 자본이 경기순환의 밀물과 썰물에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노동력인 가변자본을 희생시키며 기계류와 원자재인 불변자본이 증대되는 자본주의 발전의 일반적 경향으로부터 맑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사회의 부가 커질수록 실업자 수는 늘어나고 잉여인구의 수가 늘어나고 공식 극빈자층은 늘어난다.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 축적의 절대적 일반법칙이다.”

 

“궁핍 심화 이론”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수십 년간 “과장되었으며”,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고”, “참주선동적인” 사고라고 비난당해온 이 테제는 현재 자본주의의 반박할 수 없는 이론적 이미지가 되었다. 현재의 실업자 군대는 더 이상 “예비군”이라고 부를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의 대부분은 취업 상태로 복귀할 희망을 더 이상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이들은 계속 생산되는 실업자층의 끊임없는 대오에 의해 그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해체되고 있는 자본주의는 한번도 일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으며 그럴 희망도 없는 새로운 청년 세대를 배출했다. 노동계급과 반(semi) 노동계급 사이에 새로 생긴 이 하층 계급은 사회 전체의 비용으로 살아가도록 강제되고 있다. 1930년부터 1938년까지 9년 동안에 실업은 미국경제로부터 4천 3백만 노동 년 (labor man-year)을 빼앗아갔다. 번영의 절정이었던 1929년에 미국에 실업자가 2백만 명이었으며 이 9년 동안 잠재 노동자의 수가 5백만 명 증가했다고 가정하면 손실당한 노동 년의 수는 비교할 수 없이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역병으로 망가진 사회체제는 사망 직전의 환자와 같다. 그런데 이 재앙적 질병은 이 질병이 세균의 상태에 불과했던 거의 80년 전에 맑스에 의해 올바로 진단이 내려졌다.

 

 

중간계급의 쇠퇴

 

자본의 집중 현상을 증명하는 수치들은 생산과 부의 점유율 면에서 중간계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끊임없이 하락해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소기업들은 대기업에 의해 완전히 집어 삼켜지거나 비중이 줄어들고 독립성을 박탈당하면서 견딜 수 없는 노동과 처절한 결핍의 표상에 불과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본주의의 발전은 기술자, 관리자, 서비스 종사자, 사무원, 변호사, 의사 등 소위 “신중간계급”의 전문집단을 상당히 증대시켜왔다. 이 계층의 증대는 맑스도 이미 주목한 바 있는데 이 계층은 자신의 생산수단을 소유함으로써 경제적 독립의 실질적인 보장을 받았던 구 중간계급과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신중간계급”은 노동자들보다도 자본가들에게 더욱 직접적으로 종속되어 있다. 대체로 이들은 노동계급을 자본가의 입장에서 가혹하게 부리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 계층마저도 상당히 과잉 증대가 이루어져 이 계층의 사회적 지위 하락이 드러나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으며 어느 누구만큼이나 맑스주의와 거리가 있는 미국의 전 법무장관 호우머 커밍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믿을만한 통계에 의하면 아주 많은 제조업체들이 완전히 사라졌으며 소기업인들이 더욱 더 경제활동에서 밀려나는 현상이 미국에 정착되었다.”

 

그러나 좀바르트를 비롯하여 그의 선후배들 다수는 맑스의 올바른 진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반박하고 있다: “수공업자와 농민이 사라지면서 자본이 집중화되는 현상”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이 주장 가운데 무책임성 아니면 양심 불량 중 어느 것이 더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는 말하기가 어렵다. 모든 이론가들과 마찬가지로 맑스도 기본 경향들을 순수한 형태로 추출하는 것으로 자신의 연구를 시작했다.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운명을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맑스 자신은 구체적 분석을 통해 다양한 역사적 요인들이 집중된 결과인 사회현상을 관찰할 능력을 완벽히 가지고 있었다. 낙하하는 물체들의 속도가 각기 다른 조건에서 상이하며 행성들의 궤도가 교란된다는 사실이 뉴턴의 법칙들을 무효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소위 중간계급의 “끈질긴 생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유념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간계급의 몰락과 이 몰락 계급이 노동계급으로 변모하는 두 경향들은 같은 속도나 같은 정도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노동력에 비해 기계가 더욱 생산과정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로부터 다음의 결론이 도출된다: ‘중간계급의 몰락은 진행되면 될수록 이들이 노동계급으로 변모하는 속도를 더욱 앞지른다.’ 특정 시점이 되면 후자의 현상은 완전히 중지하여 몰락한 중간계급은 오도가도 못하면서 적체될 것이다.

 

생리학의 법칙들은 성장하는 유기체와 죽어가는 유기체 사이에서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이와 마찬가지로 맑스의 경제법칙들도 상승하는 자본주의와 하락하는 자본주의 사이에서 다른 결과를 드러낸다. 이 차이는 도시와 농촌의 상호관계에서 특히 명백하게 드러난다. 미국 전체 인구보다 증가율보다 더딘 미국의 농촌 인구는 1910년까지는 절대적으로 계속 증가해왔으며 그 수가 3천 2백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때 이후 20년간 미국 전체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지만 농촌인구는 3천 4십만으로 줄어들어 1백 6십만 명이 감소했다. 그러나 이 인구는 1935년에 다시 3천 2백 80만 명으로 늘어나 1930년에 비해 2백 4십만 명이 늘어났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놀라운 이 역전 상황도 농촌인구를 희생하여 도시인구가 늘어나는 경향이나 중간계급이 원자화되는 경향을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 이 현상은 자본주의 체제 전체의 해체 경향을 아주 뚜렷이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1930년부터 1935년까지의 격심한 공황기에 농촌인구가 증가한 현상은 거의 2백만 명에 달하는 도시인구 또는 좀더 요점에 근접하여 말하면 거의 2백만 명의 굶주리는 도시 실업자들이 농촌으로 이주하여 농민들이 버리고 간 땅이나 친인척의 농장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단순히 설명할 뿐이다. 이들은 사회가 거부한 자신들의 노동력을 생산적인 자연경제에 투입하고 아주 굶주리느니 반만 굶주리는 삶을 연명하기 위해 이러한 선택을 한 셈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소농, 수공업자, 상점주인 등이 안정적으로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상황이 전혀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미래를 약속하는 징표이기는커녕 중간계급은 과거의 불행하고도 비극적인 유물에 불과하다. 자본주의는 이 몰락 계급을 완전히 없앨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을 극도의 타락과 고통으로 내모는 데 성공해왔을 뿐이다. 농민은 자기 땅에 대한 임대료와 자기가 투자한 자본에 대한 이윤뿐 아니라 자기의 임금까지도 상당 부분 박탈당했다. 이와 비슷하게 도시의 서민들도 경제적인 생존과 사망 사이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거지가 되었기 때문에 중간계급은 노동계급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 점에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주장을 늘어놓는 것만큼이나 맑스에 반대되는 주장을 늘어놓는 것은 어렵다.

 

 

경제공황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 사이에 자본주의는 엄청난 발전을 했다. 이 때문에 경기순환에 따른 경제공황은 “우연한” 골칫거리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자본주의에 대한 낙관론이 거의 보편적이었던 이 시기에 맑스를 비판하는 자들은 이렇게 우리에게 확신시켰다: 트러스트, 신디케이트, 카르텔 등 독점체들은 시장에 계획에 입각한 통제장치를 도입시켰다. 그리고 이들은 자본주의가 경제공황에 대해 최종적으로 승리했다고 예언했다. 좀바르트의 말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작동원리 자체에 의해 전쟁 전에 이미 공황은 “제거되었다”. 이 결과 “공황의 문제는 우리하고는 전혀 무관하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말한 후 10년 밖에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그의 견해는 공허한 웃음거리로만 들린다. 이와 반대로 지금만 하더라도 맑스의 진단은 그 비극적인 일관성을 있는 그대로 우리 앞에 보여주고 있다. 패혈증에 걸린 생물에게는 병이 날 때마다 고질병이 된다. 독점자본주의라는 썩어가는 생물에게 공황은 특히 악성질병이 되었다.

 

독점체의 존재 자체를 엉거주춤 부인하려고 애쓰는 부르주아 언론은 이제 자본주의의 무정부성을 부인해 보려고 독점체를 들먹인다.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뉴욕타임스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말한다 : ‘60대 거대 부유가문이 미국의 경제를 통제하고 있다면 “이것은 미국 자본주의가 ‘무계획성’을 보이기는커녕 대단히 깔끔하게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주장은 논점에서 한참 빗나가 있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경향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완전하게 발전시키지 못했다. 자본의 집중 경향이 중간계급을 철폐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독점은 경쟁을 철폐하지 못할 뿐 아니라 경쟁을 짓눌러 찌그러트릴 뿐이다. 60 대 거대 부유가문들의 “계획” 하나하나 만큼이나 이 계획들의 온갖 변종들도 경제의 각 분야들을 계획을 통해 통제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을 뿐더러 다른 파벌과 나라 전체를 희생시키면서 자기 독점파벌의 이윤을 증대시키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런 계획들을 잡종교배시키면 결국 국가경제 전체의 무정부성은 심화될 뿐이다. 독점체의 독재체제와 무정부성은 서로를 배제하기는커녕 서로를 보완하고 키우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과학”은 공황의 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고 좀바르트가 선언한 지 1년만에 1929년 미국에서 공황이 터졌다. 유례없는 호황의 정상에 올라있던 미국경제는 무시무시한 무기력의 나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맑스가 살아있던 당시 어느 누구도 이런 규모의 경제적 곤두박질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총소득은 1920 년에 처음으로 6백 9십억 달러로 상승하더니 바로 다음 해에 5백억 달러로 27%나 하락했다. 그리고 다음의 몇 년간 호황의 덕분에 1929년에 총소득은 8백 10억 달러로 기록을 갈아치우더니 1932년에는 400억 달러로 무려 50%가 넘게 곤두박질쳤다. 이후 1930년부터 1938년의 9년 동안 실업자가 2백만 명 “밖에” 되지 않았던 1929년을 기준으로 약 4천 3백만 노동 년과 국가 총소득 중 1천 3백 3십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무정부성이 아니면 이 사실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붕괴 이론”

 

맑스가 사망한 때부터 제 1 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까지의 시기에 자본주의는 엄청난 발전을 했다. 이 때문에 중간계급 지식인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은 자본주의의 경이로움에 지성과 혼이 거의 완벽하게 나가버렸다. 자본주의가 서서히 발전(“진화”)할 것이라는 사고는 영원히 확보된 것처럼 보였다. 반면에 사회주의 혁명으로 자본주의가 대체될 것이라는 사고는 야만적 과거의 유물로 간주되었다. 격화되는 자본의 집중, 계급 모순의 악화, 공황의 심화, 자본주의의 재앙적 붕괴 등에 대한 맑스의 예측은 부분적으로 교정되고 보다 정교화되는 대신 좀더 균등한 부의 분배, 계급 모순의 완화, 자본주의의 점진적 개량 등 질적으로 반대되는 예측으로 반박되었다. 이 고전적 시대의 사회민주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재능이 뛰어난 장 조레(Jean Jaures)는 정치민주주의에 평등이라는 사회적 내용을 서서히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했다. 바로 이 사고에 개량주의의 핵심이 담겨 있었다. 맑스주의에 반대하는 미래에 대한 대안은 이러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우리 시대의 독점자본주의는 공황으로 점철되어 있다. 개개의 공황은 그야말로 재앙이다. 관세 장벽, 인플레, 정부의 지출과 부채의 증대 등을 통한 이 부분적 재앙들로부터 탈출해야 한다는 필요는 부가되는 그리고 더 심화되는 그리고 더욱 만연하는 공황들의 토대가 될 뿐이다. 상품 시장, 원자재, 식민지 등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은 군사적 재앙들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혁명이라는 궁극적인 재앙을 준비할 뿐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자본주의가 더욱 “침착하고 안정되고 합리적인 모습”을 띨 것이라는 좀바르트의 견해에 동의하기는 진정으로 어려울 것이다. 어쨌든 “붕괴 이론”이 평온한 발전 이론에 승리해왔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쇠락

 

시장을 통제하는 것이 사회에게 아무리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대체로 제 1차 세계대전 직전 단계까지 인류는 부분적이고 일반적인 공황들을 경과하면서 사회를 발전시키고 부강하게 만들었다. 이 시대에 생산수단이 개인의 소유가 된 것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요인이 되어왔다. 그러나 가치법칙의 보이지 않는 사회 통제는 더 이상 보탬이 되지 않는다. 인류의 진보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최근의 기술적 개가들에도 불구하고 물질적인 생산력은 더 이상 증대하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가 쇠락하고 있다는 가장 명확하고 완벽한 증상은 경제의 기초분야들에서 신규 투자가 중단되면서 건설산업이 세계적으로 정체하고 있다는 현상에서 드러난다. 자본가들조차 자기들의 사회체제에게 미래가 있다는 신념을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정부가 부양하는 건설 공사는 세금의 증가와 “ 무제한적인 ” 나라의 부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정부의 새로운 건설공사들이 주요 부분 전쟁 목적을 위해 직접 계획되어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인간의 활동분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인간의 기본적 생존의 필요에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분야는 농업이다. 특히 이 분야에서 자본주의의 쇠락은 대단히 악성적이며 인간을 타락시키는 성격을 띠고 있다. 소농 체제는 사적 소유의 가장 반동적인 형태가 농업의 발전에 제기하는 장애물이다. 그런데 자본가 정부들은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법과 행정력을 동원하여 빈번하게 생산을 인위적으로 축소시키고 있다. 이 행위는 길드(동업조합)으로 조직된 수공업자들이 자신들의 쇠퇴기에조차 경악했을 그런 조치이다. 농민들의 파종을 축소시키는 것을 통해 즉, 이미 떨어지고 있는 나라의 소득을 더욱 인위적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의 정부가 농민들에게 지원금을 제공했다고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이런 조치들의 결과는 자명하다. 경험과 과학에 의해 확보된 생산력 발전의 거대한 가능성들이 존재하면서도 농업 경제는 쇠락의 공황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 굶주리는 압도적 다수의 인구는 지구의 인구 증가보다 더 빨리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파괴적 광란으로 추락한 사회질서를 방어하는 것이 합리적인 정치행위라고 보수주의자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이 광란에 대항하는 사회주의자들의 투쟁을 파괴적인 공상이라고 비난한다.

 

 

파시즘과 뉴딜 정책

 

역사적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한 두 방법들이 현재 세계무대에서 서로 경쟁하면서 다양한 모습들을 드러내고 있다. 바로 파시즘과 뉴딜 정책이다.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이 부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파시즘은 노동운동 조직들의 궤멸, 사회 개량 조치들의 분쇄, 민주주의 권리들의 완전한 파괴 등을 그 강령으로 하고 있다. 파시즘 국가는 쇠퇴하는 자본주의치고는 거창하게 “국가”와 “민족”의 미명 하에 노동자들의 퇴화와 중간계급의 몰락 등을 공식적으로 합법화하고 있다.

 

노동과 농민 귀족들에게 떡고물을 제공하면서 제국주의의 민주주의 체제를 구하려는 뉴딜 정책은 아주 부유한 나라들이나 채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따라서 미국의 정책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 정책을 펴는 데 드는 비용의 일부를 독점자본가들에게 부담시키면서 이들에게 임금을 올리고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대중의 구매력을 증대시키고 생산을 확충하자고 권고해왔다. 레옹 블룸은 이 설교를 프랑스라는 난장이 나라의 정책으로 번역하려고 했으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미국에서나 프랑스에서나 자본가들은 생산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윤을 위해서 상품을 생산한다. 나라의 소득 전체에서 자기 몫으로 차지할 수 있는 양을 늘릴 수 있다면 이들은 생산을 축소하고 완제품을 폐기 처분할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다.

 

결핍보다는 풍요가 장점이 있다는 것에 대해 자본의 총수들에게 설교를 늘어놓으면서도 정부는 생산을 축소하라고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뉴딜 정책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이 보다 더 큰 혼란이 가능한가? 정부는 자신의 정책을 비판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도전한다: ‘당신은 더 잘 할 수 있어?’ 이것은 결국 자본주의는 영 가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1933년부터 시작하여 즉, 지난 6년 동안 연방정부, 주정부, 시정부 등은 실업자들에게 거의 150억 달러의 실업 수당을 제공했다. 이 액수는 코끼리 비스킷에 불과하며 실업자들이 잃어버린 임금의 극히 적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하락하고 있는 나라 전체의 소득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비교적 경제가 살아난 1938년 동안 미국의 빚은 20억 달러가 증가하여 38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 액수는 제 1차 세계대전 직후에 기록했던 부채 최대치를 120억 달러가 초과한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는 어떤 일을 해야하는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정부의 부채는 물론 후세들의 부담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뉴딜 정책 자체는 과거 세대들이 축적한 막대한 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뿐이다. 오직 대단히 부유한 국가만이 이렇게 흥청망청 돈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유한 나라도 과거 세대들을 희생시키며 무한정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성취한 것은 없으면서 부채를 잔뜩 진 뉴딜 정책은 제국주의의 극악한 반동과 폭발적인 파괴를 피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면 파시즘의 정책과 똑같은 길로 들어서고 있다.

 

 

비정상인가 정상인가 ?

 

미국의 내무장관 해럴드 아익스(Harold L. Ickes)는 미국이 민주주의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독재체제인 것이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기이한 비정상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다수가 지배하는 나라이면서 최소한 1933년까지는 (!) 독점체들에 의해 통제되었으며 한편 독점체들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적은 수의 주주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이 진단은 올바르다. 다만 루즈벨트 정권의 등장으로 독점의 사회 지배는 중단되거나 약화되었다는 암시는 틀렸다. 그러나 그가 말한 바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기이한 비정상 가운데 하나”는 사실 자본주의의 의문의 여지없는 정상 상황이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극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고 착취자가 노동자들을 지배하는 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기본 법칙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다른 점은 미국 자본주의의 모순들이 그 규모나 잔악함에 있어서 훨씬 스케일이 크다는 것뿐이다. 봉건제 역사의 부재, 풍부한 천연자원, 활력이 있으며 기발한 사고를 하는 인민 등 한마디로 민주주의의 중단 없는 발전을 기약하는 모든 전제조건들이 실제로는 부의 놀랄만한 집중을 초래했다.

 

이번만은 독점체들에 대한 투쟁을 승리로 이끌겠다고 약속하는 아익스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선배들인 토마스 제퍼슨, 앤드루 잭슨, 아브라함 링컨, 시어도어 루즈벨트, 우드로우 윌슨 등으로 무자비하게 회귀한다. 1937년 12월 30일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 “미국의 위대한 역사적 인물들은 몇몇의 손아귀에 부와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을 막고 통제하기 위한 끈질기고도 용감한 투쟁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 자신의 논리를 따르면 “끈질기고도 용감한 투쟁”의 결과는 부호들이 민주주의를 완전히 지배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이번에는 민주주의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아익스는 생각하고 있다. 다만 투쟁이 “뉴딜 정책과 보통의 깨인 사업가들 사이가 아니라 뉴딜과 미국의 나머지 사업가들 전부를 자신들의 지배의 공포로 몰아넣은 60 대 거대 부호 가문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민이 이해할 때에만 승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위압적인 대변인은 어떻게 60대 “거대 부호가문들” 이 민주주의와 “위대한 역사적 인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깨인 사업가들을 어떻게 지배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코르테즈가 멕시코를 침략한 것처럼 록펠러, 모건, 멜런, 반더빌트, 구건하임, 포드 등의 거대 부호 가문들이 외부에서 미국을 침략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인민”으로부터 아니면 좀 더 엄밀히 말해 “깨인 실업가와 사업가들”로부터 유기적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맑스의 예측대로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최고봉이 되었다. 절정기의 젊고 강력한 민주주의조차 단지 시작 단계이었던 때의 부의 집중을 막을 수 없었는데, 쇠퇴하는 민주주의가 최고 높이에 이른 계급 갈등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단 1분 동안이라도 믿을 수 있겠는가? 어쨌든 뉴딜의 경험은 이런 낙관에 근거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정부에 대한 대기업의 공격을 반박하며 행정부의 고위관리인 로버트 잭슨은 수치들을 들이대며 이렇게 증명했다 : ‘루즈벨트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독점재벌들의 이윤은 후버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자신들조차 꿈꾸지 못한 엄청난 수위에 도달했다.’ 이로부터 결론은 자명하다: ‘독점재벌들에 대한 루즈벨트의 투쟁은 그의 선배들의 투쟁들과 똑같이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자신들이야 자본주의의 토대를 방어하기 위해 부름받았다고 믿을지는 몰라도 이들 개혁가들 (reformer를 개량주의자가 아니라 개혁가로 고쳐야함. 앞 절을 다시 한 번 확인할 것) 은 자신들의 성격상 경찰국가의 경제조치들을 통해 자본주의의 법칙들을 통제하는 데 전혀 능력이 없음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설교를 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있는가? 여타 국무위원들 및 뉴딜 선전가들과 마찬가지로 아익스씨도 독점자본가들에게 품위와 민주주의의 원칙들을 잊지 말라고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호소가,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드리는 것과 조금이라도 다른가? 생산수단의 소유주에 대한 맑스의 견해는 당연히 훨씬 더 과학적이다. 자본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본가는 단지 자본의 인격체에 불과하다. 그의 영혼은 자본의 영혼이다. 자본은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유일무이한 목표로 삼는다.” 자본가 개개인의 영혼적 속성이나 내무장관의 서정적 감정분출의 속성에 의해 자본가의 행동이 결정된다면, 평균 가격이나 평균 임금은 물론 장부 정리나 자본주의 경제 전체는 성립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장부 정리는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으며 유물사관을 지지하는 강력한 주장을 제공하고 있다.

 

 

사법적 투쟁이라는 엉터리 치료

 

1937년 11월에 미국의 법무장관을 지냈던 호머 커밍스는 이렇게 말했다 : “우리가 독점을 파괴하지 않으면 독점이 우리의 개혁 대부분을 파괴하여 결국 우리의 생활수준을 하락시키는 길을 찾아낼 것이다.” 그는 “부와 경제력의 과도한 집중 경향은 오류의 여지없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놀라운 수치들을 인용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독점체들에 대한 입법적 사법적 투쟁은 이렇다 할 결과를 가지고 오지 못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렇게 불평했다: “문제가 ‘경제적 결과’일 경우에는 사악한 의도는 밝혀내기가 어렵다.” 그의 생각이 바로 나의 논점이다! 더 큰 문제는 독점체에 대한 사법적 투쟁이 “지독한 혼란만” 가져왔을 뿐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 표현은 맑스주의 가치법칙에 대한 민주적 사법정의의 투쟁이 무기력하다는 것을 아주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커밍스 씨의 후임인 프랭크 머피 씨가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좀 더 운이 좋을 것이라고 희망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문제를 이런 식으로 제기하는 것 자체가 경제사상 분야에서 도저히 희망이 없는 돌팔이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점을 증언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자

 

루즈벨트 행정부에서 예산국장을 지냈던 루이스 더글러스 교수는, 정부가 “한 분야에서는 독점을 공격하면서 다른 분야들에서는 독점을 키우고 있다”고 비난했다. 우리는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물의 성격상 이런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맑스의 말에 따르면 정부는 지배계급의 집행위원회이다.

 

현재 독점 자본가들은 지배계급의 가장 강력한 부위이다. 정부는 독점 일반에 대항하여 투쟁할 위치에 있지 않다. 이들의 의지에 따라 통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점의 한 측면을 공격하면서도 정부는 다른 측면들과 동맹하지 않을 수 없다. 은행과 경공업 등과 동맹하여 정부는 중공업 독점체들을 공격할 수 있다. 그렇다고 후자가 이것 때문에 엄청난 이윤을 챙기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루이스 더글러스는 과학에 대항하여 공식 돌팔이 치료법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돌팔이 치료법을 제시할 뿐이다. 그는 독점의 근원을 자본주의가 아니라 보호무역에서 찾고 있기 때문에 사회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사적 소유를 철폐할 것이 아니라 관세를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예측한다. “시장의 자유가 회복되지 않을 경우, 기업, 언론, 교육, 종교 등이 자유를 누리기 어려울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국제무역의 자유가 회복되지 않으면, 어떤 곳에 어떤 상태로 존재하든, 민주주의는 혁명독재나 파시즘 독재에 굴복해야 한다. 그러나 국제무역의 자유는 국내무역의 자유 즉, 경쟁이 없이는 생각할 수도 없다. 그리고 경쟁의 자유는 독점이 지배할 경우는 생각할 수도 없다. 불행하게도 더글러스 씨는 아익스, 잭슨, 커밍스, 그리고 루즈벨트 씨들처럼, 독점 자본주의에 대한 그리고 이 결과 발생할 혁명이나 전체주의에 대한 처방을 아직 제시하지 않았다.

 

무역의 자유는 경쟁의 자유 , 중간계급의 번영 등과 같이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 과거를 다시 돌려달라는 주문은 자본주의 민주 개혁가들의 유일한 처방책이다. 중소 실업가와 사업가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돌려 달라, 이들을 위해 화폐 및 신용 체제를 바꾸어 달라, 시장을 독점체들의 지배로부터 자유롭게 해 달라, 증권거래소에서 전문투기꾼을 제거하라, 국제무역의 자유를 회복시켜라 등등 이들의 요구는 끝이 없다. 심지어 이들은 기계사용을 제한하고 기술발전을 금지시킬 꿈까지 꾸고 있다. 이것들이 사회 균형을 교란시키고 많은 걱정거리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느 지도적인 미국 과학자는 쓰디쓴 냉소와 함께 이렇게 말했다: ‘인류가 행복한 아메바 시절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만족한 돼지로 돌아갈 때에 사회가 안정될 것이다.’

 

 

밀리컨과 맑스주의

 

그러나 불행하게도 바로 이 과학자 양반도 시각은 앞이 아니라 뒤로 향해 있다. 1937 년 12 월 7 일 과학을 옹호하는 연설에서 로버트 밀리컨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 “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과학이 가장 급격하게 실생활에 적용된 지난 50 년간 전체 인구에 대한 ‘ 소득 창출 고용 ’ 인구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했다.” 과학을 옹호한다는 미명 아래 이렇게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행위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바로 지난 50 년 동안에 “시대의 흐름이 단절되고” 경제와 기술의 상호관계가 급격하게 변화했다. 밀리컨이 지적한 시기는 자본주의의 번영이 정점에 달했고 그 쇠락이 시작된 시기이다.

 

세계 차원에서 시작된 이 쇠락에 침묵하는 것은 자본주의 옹호자로 나서겠다는 것과 같다. 헨리 포드조차 삼갈 주장들을 이용하여 , 밀리컨 박사는 사회주의를 가볍게 부정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생산을 확대하지 않을 경우 어떤 분배 체제도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 의심의 여지없이 올바른 생각이다! 그런데 이 유명한 물리학자는 나라의 부를 증대시키기 위해 수백만 미국 실업자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개인의 창의력과 높은 노동생산성이라는 구원의 소리를 추상적으로 설교해도 실업자들에게 일자리가 돌아가지는 않는다. 또한 예산 적자도 메우지 못할 것이며 나라의 경제를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오게 하지도 못할 것이다.

 

천재적인 넓은 시야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현상들과 과정들을 그들의 내적 연관에 따라 이해하는 능력이 바로 맑스의 뚜렷한 특징이다. 자연과학의 전문가도 아니면서 그는 이 분야에서 성취된 위대한 발견들의 의의를 인정한 최초의 인물에 속한다. 예를 들면 다윈의 진화론이 그렇다. 지성보다는 방법론이 그를 빛나게 했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사회주의를 초월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밀리컨의 경우는 사회학 분야에서 이들이 전혀 가망이 없는 돌팔이들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시켰을 뿐이다. 이들은 맑스로부터 과학적 사고를 배워야 한다.

 

 

생산력의 발전의 가능성과 사적 소유

 

1937년 초 루즈벨트 대통령은 의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나라의 부를 900억 또는 1000억 달러로 끌어올리려는 희망을 표현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명시하지 않았다. 자체로 보면 그의 계획은 지극히 소박하다. 실업자가 약 2 백만이었던 1929년에 나라의 총소득은 810억 달러였다. 현재의 생산력을 작동시키면 루즈벨트는 자신의 계획을 상당히 초과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생산품에 대한 대중적 수요는 물론이고 기계, 원자재, 노동자 등 모든 것을 미국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실현 불가능하다. 이유는 무엇인가? 단 하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소유체제와 생산을 확장하려는 사회의 요구가 화해할 수 없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주한 유명한 전국잠재생산능력조사(National Survey of Potential Production)는 이렇게 결론내렸다: ‘1929 년 생산과 서비스의 총비용은 소매가 기준으로 거의 940억 달러였다. 그러나 실제 생산능력이 모두 활용된다면 이 수치는 1350억 달러로 상승할 것이며 한 가구당 생산능력은 일 년에 4370달러일 것이다.’ 이 액수는 품위 있고 안락한 생활을 보장하는 데 충분할 것이다. 이 조사의 수치는 미국의 현재 생산조직에 기초한 것으로 자본주의 무정부성의 결과이다. 만약 통일된 사회주의 계획에 기초하여 생산 장비들이 재조직된다면 수치는 상당히 상승할 것이고 높고 안락한 생활수준이 모든 사람에게, 그것도 대단히 적은 노동시간으로 확보될 것이다.

 

따라서 사회를 구원하기 위해서 기술 발전을 저지하거나 공장을 폐쇄하거나 영농을 축소하라고 농민에게 지원금을 제공하거나 노동자 3분의 1을 거지로 만들거나 미친놈들에게 독재자가 되라고 말할 필요가 전혀 없다. 사회의 이해에 충격적으로 위배되는 이런 조치들은 단 하나도 필요 없다. 시급히 그리고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은 생산수단을 현재의 기생적 소유주들로부터 분리시키고 사회를 이성적 계획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그러면 즉시 사회의 모든 질병들이 제대로 치유될 것이다.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일자리를 갖게 될 것이고 노동시간은 서서히 축소될 것이다. 사회성원 모두의 필요는 더욱 더 많이 충족되고, ‘재산’, ‘공황’, ‘착취’ 등의 단어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인류는 마침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진정한 인간성을 획득할 것이다.

 

 

사회주의의 불가피성

 

맑스는 이렇게 말한다 : “끊임없이 줄어드는 거대 자본의 수와 함께 고통, 억압, 노예상태, 타락, 착취 등의 총량은 증대된다. 그러나 이와 함께 노동계급의 반란도 빈번해진다. 이 계급은 언제나 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자본주의 생산과정에 의해 규율과 통일성과 조직성을 갖춘다. 생산수단의 집중화와 노동의 사회화는 마침내 자본주의의 외피와 화해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결국 이 외피는 폭발한다. 자본주의 사적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수탈자는 수탈된다.”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 혁명이다. 맑스에게 사회 개조는 그의 개인적 취향에 의한 처방이 아니라, 역사의 필연이라는 철칙에 따르는 것이다. 그 필연은 우선 강력하게 성숙한 생산력에서, 또 한편으로는 이 생산력을 가치법칙으로 억압할 수 없는 사정에서 나온다. 맑스의 가르침과 달리 일부 지식인들은, 사회주의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가능할 뿐이라고 열심히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내용이 전혀 없다. 사회주의가 인간의 의지와 행동 없이 자동적으로 등장한다는 우스꽝스러운 주장을 맑스가 늘어놓은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의 발전은 경제 붕괴를 초래할 수밖에 없으며(우리 눈앞에서 이 현실이 지금 목격되고 있다)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그가 주장했을 뿐이다. 바로 이것이 맑스의 예측이다. 생산력을 새로 조직할 새 주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기 때문에 오류와 패배의 비용을 지불한 후 노동계급은 실제 상황을 이해하고 조만간 실제적 결론에 반드시 도달할 것이다. 맑스는 이 점을 확신했다.

 

자본주의가 창조한 생산수단이 사회화될 경우 엄청난 경제적 이득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론으로 증명할 수 있다. 또한 나름대로 한계가 있지만 소련이라는 실험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 반동들은 스탈린주의 체제를 사회주의 사상에 대항하는 허수아비로 사용하는 술책을 부린다. 사회주의가 단 하나의 나라에서 그것도 후진국에서 성취될 수 있다고 맑스가 말한 적은 없다. 소련 대중의 계속되는 궁핍, 이 궁핍 위에서 군림하는 특권 관료집단의 도전받지 않는 권력, 이들이 무지막지하게 휘두르는 폭력 통치 등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결과가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에 둘러싸인 소련의 고립과 후진성의 결과이다. 대단히 불리한 이 조건 속에서 계획경제가 반박하기 어려운 장점들을 증명해왔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민주주의든 파시즘이든 자본주의를 구원하려는 자들은 “수탈자에 대한 수탈”을 막기 위해 최소한 위장술로나마 거대 자본의 사회지배를 제한하려 한다. 자본주의를 개량하려는 자기들의 시도가 실패할 경우 사회주의 혁명이 필연이라는 진실을 이들은 모두 인정하고, 그 중 다수는 공공연히 인정한다. 이들은 모두 자본주의를 구하려는 자기들의 처방이 반동적이며 무기력한 돌팔이 처방이라는 것을 증명해왔다. 따라서 사회주의가 불가피하다는 맑스의 예측은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들로 인해 완전히 확인되었다.

 

 

사회주의 혁명의 불가피성

 

1929부터 1932년까지의 대공황기에 인기를 누렸던 “전문기술체제 (technocracy)” 강령은 올바른 전제에 근거했다: ‘과학의 결정체인 기술과 사회에 공헌하는 정부가 결합해야 경제는 합리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 기술과 정부는 사적 소유라는 노예체제에서 해방되어야 이 결합은 가능하다. 위대한 혁명 과업은 이 결론에서 출발한다. 기술을 사적 이해의 파벌들로부터 해방시키고 정부를 사회의 종으로 삼기 위해서는 “수탈자에 대한 수탈”이 필요하다. 자신의 해방에 관심이 있으며 독점 수탈자들에 반대하는 강력한 계급만이 이 과업을 달성할 수 있다. 노동계급 정부와 협력해야 전문기술자 계층이 진정으로 과학적이고 진정으로 전체 국민을 위한 체제 즉,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할 수 있다.

 

이 목적을 평화롭게 서서히 그리고 민주적으로 성취하는 것이 물론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시효를 다한 사회질서는 저항 없이 다음 질서에 자리를 넘겨주지는 않는다. 젊고 강력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극소수 거대 자본들이 부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렇다면 노쇠하고 무너지고 있는 민주주의가 60대 거대 부호가문들이 무제한 통치하는 사회질서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사회체제의 이행은 계급투쟁의 최고 형태인 혁명이 전제된다고 이론과 역사가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노예제도를 철폐하는 데에도 내전이 필요했다. “폭력은 새로운 사회를 잉태한 모든 낡은 사회의 산파이다.” 계급사회를 연구하는 과학에서 맑스의 이 기본 명제를 반박할 수 있는 자는 아직까지 없었다. 오직 사회주의 혁명만이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

 

 

미국의 맑스주의

 

미국은 생산 조직 및 기술 분야에서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 전진했다. 미국인뿐 아니라 모든 인류가 이 기초 위에서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사회발전 단계들은 구체적 역사적 조건에 따라 그 발전의 리듬을 달리한다. 미국은 기술에서 엄청난 우위를 누리고 있지만 경제사상에서는 우익과 좌익을 막론하고 대단히 뒤처져 있다. 존 루이스[John L. Louis, 미국광산노조위원장]는 루즈벨트와 거의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의 역할을 고려하면 루이스의 사회적 기능은 루즈벨트보다 반동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비교할 수 없이 보수적이다. 미국 일각에서는 이러저러한 급진 이론을 단순히 “비(非) 미국적”이라고 낙인찍으면서 조금의 과학적 비판도 없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미국적이고 비미국적인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기독교는 수학의 로그, 셰익스피어의 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사상 그리고 기타 중요한 인간 사고의 결과들과 함께 미국에 수입되었다. 맑스주의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농업장관 헨리 월러스는 필자가 “대단히 비미국적인 얄팍한 교조주의”를 지니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러시아의 교조주의에 제퍼슨의 기회주의 정신을 대비시켰다. 제퍼슨은 자신의 반대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화해적 태도는 비물질적 민족정신의 기능이 아니라 물질적 조건의 산물이라는 점을 월러스 씨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급격하게 부를 축적한 나라의 경우 적대적 계급이나 파벌들이 화해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사회 갈등이 격화되면 타협의 여지는 사라진다. 미국에 “얄팍한 교조주의”가 없는 이유는 개척되지 않은 넓은 땅, 고갈되지 않은 풍부한 천연자원,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무제한적인 것 같은 기회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조건 속에서도 때가 왔을 때 남북전쟁은 결국 터졌다. 어쨌든 “미국주의”의 토대였던 물질적 조건은 더욱 더 과거지사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전통 이데올로기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맑스의 가치법칙이 모든 사람들의 두뇌를 작동시켰을 때에는 때때로 당면한 임무를 해결하는 데 한정되었던 경험주의적 사고는 우익뿐 아니라 좌익 내부에서도 모든 것을 해결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재 바로 이 가치법칙이 화해할 수 없이 자기와 충돌하고 있다. 이 법칙은 경제를 전진시키는 대신 자기 토대를 무너뜨리고 있다. 실용주의로 그 정점에 도달한 화해적이고 절충적인 사고는 전혀 소용이 없게 되었다. 한편 맑스주의 “교조” 에 대한 적대적 냉소적 태도는 더욱 더 무의미하고 반동적이며 노골적으로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주장과 반대로 오류와 혼란만을 가져다주면서 무기력하고 화석화된 “교조”가 되어버린 것은 바로 “미국주의” 전통이다. 동시에 맑스의 경제사상은 미국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 특유의 생생함과 날카로움을 획득했다. 맑스의 자본론이 주로 영국의 국제적 자료들을 이론적 근거로 이용했지만 이 저서는 순수 자본주의, 자본주의 일반, 자본주의 자체를 분석한 것이다. 개척지이며 전통이 없는 미국에서 성장한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추상적 유형에 가장 가깝다.

 

월러스 씨의 주장과 달리, 미국은 제퍼슨의 원리가 아니라 맑스의 원리에 따라 경제가 발전했다. 이 점을 인정한다고 해서 미국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지는 않는다. 그것은 뉴턴의 법칙에 따라 미국이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미국에서 맑스가 무시될수록 그의 가르침은 더욱 힘을 발휘하고 있다. 자본론은 미국의 질병을 오차 없이 진단하고 있으며 미국의 미래를 대체할 수 없이 예측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맑스의 가르침은 후버, 루즈벨트, 그린, 루이스 등의 사고보다 훨씬 새로운 “미국주의”로 충만하다.

 

미국경제의 위기를 다루는 독창적 저술들이 미국 내에 넘쳐나는 것은 사실이다. 양심 있는 경제학자들이 미국 자본주의의 파괴적 경향들을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는 이론적 전제가 대체로 결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맑스의 이론을 직접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저자들이 명확한 결론을 유보한 채, 어두운 전망을 “국민이 이해해야 한다.”, “여론은 확실히 고려해야 한다.” 등의 진부한 언사로 자신들의 태도를 고집스럽게 한정할 때, 미국의 보수적 전통은 여실히 느껴진다. 이 저서들은 날이 서 있지 않은 칼 또는 바늘이 없는 나침반과 같다.

 

미국에도 과거에는 맑스주의자들이 확실히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이상한 맑스주의자들이었다. 여기에는 세 부류가 있었다. 우선 유럽에서 미국으로 추방당한 망명자들이었는데 이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어떤 반응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두 번째로 드 리온(Daniel de Leon) 등과 같은 고립된 그룹들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정치상황이 전개되면서 그리고 자신들의 오류 때문에 종파로 전락했다. 세 번째로 러시아 10월 혁명에 감화를 받고 미국과는 전혀 무관한 이국적 사상인 것으로 맑스주의를 파악하고 이에 공감한 아마추어 맑스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이제 미국 노동계급에게는 독자적 계급운동 그리고 진정한 맑스주의의 새로운 시대가 밝았다. 여기에서도 미국은 몇 번 도약을 한 후 유럽을 따라잡고 추월할 것이다. 사상 영역에서도 진보적 기술과 사회구조가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맑스주의의 최고 이론가들이 미국에서 등장할 것이다. 맑스는 미국 선진노동자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이들에게 오토 륄러의 자본론 제 1권 축약판은 맑스를 완전히 이해하고 체현할 첫걸음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를 들여다볼 이상적 거울

 

자본론 제 1권이 출판되었을 당시 영국 부르주아 계급의 세계지배는 아직 도전 받지 않고 있었다. 상품경제의 추상적 법칙들은 자본주의가 최고로 발전한 즉, 과거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나라 영국에서 가장 완벽하게 실현되었다. 자신의 분석을 주로 영국에 의거하면서도 맑스는 영국뿐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 전체를 염두에 두었다. 그는 다만 당대의 영국을 자본주의 최상의 거울로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영국의 세계지배는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자본주의를 가장 먼저 상속한 장점은 이제 거꾸로 약점이 되었다. 영국의 기술적 경제적 구조는 낡아 빠졌다. 이 나라는 활발한 경제 잠재력보다는 과거의 유산인 식민지 제국들을 통해 자신의 세계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모든 사람들을 너무도 놀라게 한 파시즘의 국제조폭 행태에 분노하며 영국 수상 체임벌린이 보인 기독교적 자비심은 이것으로 설명된다. 자신의 경제적 쇠락이 자신의 세계적 지위에 전혀 걸맞지 않으며 새로운 세계대전이 영국의 제국을 몰락시킬 것이라는 점을 영국 지배계급은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의 “평화주의”도 그 경제적 기초는 영국과 근본적으로 같다.

 

이와 반대로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완벽한 기술로 무장하면서 역사적 후진성의 장점들을 급격한 자본주의 발전에 활용해 왔다. 국가적 토대가 협소하고 천연자원이 없는 독일의 역동적 자본주의는 소위 세계 세력균형의 가장 폭발적인 요인이 되었다. 히틀러의 간질 환자와 같은 이데올로기는 독일 자본주의의 간질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은 무한한 장점들을 제공하는 역사적 특성, 독일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광활한 영토, 역시 비교할 수 없이 무진장한 천연자원 덕분이다. 영국을 한참 앞서나간 미국은 20 세기 초에 세계 부르주아계급의 가장 강력한 요새가 되었다. 이곳에서 자본주의에 내재한 모든 가능성들은 최고조로 발현되었다. 달러 공화국을 초월할 수 있는 부르주아 계급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결국 미국은 20 세기 자본주의의 가장 완벽한 거울이 되었다.

 

맑스가 자신의 연구를 위해 영국의 통계, 영국 의회 보고서, 영국 정부 보고서 등에 의거한 것과 같은 이유로 필자는 주로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경험에 의거하여 오토 륄러가 출판한 자본론 축약본의 길지 않은 서문을 작성했다.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의 역사에서 이와 유사한 사실들과 수치들을 인용하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핵심내용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결론은 같을 것이며 드는 예들만이 덜 뚜렷할 것이다.

 

프랑스 인민전선 정부의 경제정책은 프랑스의 어느 금융가가 적절하게 표현했듯이 미국의 뉴딜정책을 “소인국” 에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 이론적 분석을 위해서는 소인들보다는 거인들을 동원하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이 편리하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다. 루즈벨트의 경제 실험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한 만큼 기적만이 세계자본주의를 구원할 수 있다는 점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기적을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한다. 주문과 기도를 아무리 되뇌어도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혹시 자본주의 회생의 기적이 어디서 일어난다면 그것은 미국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회생은 성취되지 못했다. 거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소인들이 성취할 리 만무하다. 미국경제를 다룬 이유는 바로 이 단순한 결론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제국주의 모국과 식민지

 

자본론 제 1권 제 1판 서문에서 맑스는 이렇게 말했다 : “공업이 더 발전한 나라는 덜 발전한 나라의 미래상을 보여줄 뿐이다.” 이 견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결코 안 된다. 생산력 증대와 사회 모순의 심화가 자본주의 발전의 길을 걷는 모든 나라의 운명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각 나라가 보여주는 역사적 자연적 이유로 인한 발전 속도와 조건의 차이는 자본주의에 들어와 특히 격심해졌을 뿐 아니라 각기 다른 경제 유형의 나라들 사이에 종속, 착취, 억압의 복잡한 상호의존 관계를 발생시켰다.

 

오직 소수 국가들만이 수공업, 가내공업, 공장제 공업의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완벽한 단계들을 밟았다. 이 과정을 맑스는 자세하게 분석했다. 상업, 공업, 금융 자본들은 후진국들을 침략하여 토착경제의 원시 형태들을 파괴하고 이들을 서방의 국제 공업 및 은행 체제에 부분적으로 종속시켰다. 제국주의 채찍질을 통해 식민지 반식민지들은 중간단계들을 무시하고 한 단계에 고착될 것을 강요당했다. 인도는 영국의 발전과정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차라리 영국 모델의 부록이었다. 그러나 인도와 같은 후진 종속 국가들의 결합 발전 유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발전과정으로부터 맑스가 추출한 고전적 유형을 언제나 유념할 필요가 있다. 노동가치 법칙은 런던 금융가 투기꾼의 계산에서나 하이더라바드[인도 남부의 도시]의 가장 한적한 구석의 환전거래에서나 똑같이 작용한다. 다만 후자의 경우 그 형태가 좀 더 단순하고 조잡할 뿐이다.

 

경제발전 과정의 차이는 선진국들에게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이들은 후진국을 착취하고 자신의 식민지로 삼고 식민지가 자본주의 귀족체제에 진입하지 못하게 만들면서 각기 다른 정도로 계속 발전했다.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의 막대한 부는 자국 노동계급의 잉여노동 그리고 자국 소부르주아 계급의 파괴뿐 아니라 해외 식민지의 체계적 약탈을 통해 획득되었다. 식민지 착취를 통해 계급 착취가 보완되었고 그 강도가 증대되었다. 제국주의 모국의 지배계급은 식민지에서 획득한 초과이윤의 일부를 자국 노동계급 특히 그 상층부에 떡고물로 제공하여 이들에게 특권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었다. 이런 것이 없다면 안정적인 민주주의 체제는 전혀 불가능할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확대되었으며 가장 상층의 가장 착취를 잘 하는 나라들에게나 가능한 정부형태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노예제에 기초했다면 현재 제국주의 모국의 민주주의는 식민지 착취에 기초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공식적으로 식민지가 거의 없지만 역사상 최고의 특권국가가 되었다. 유럽의 활발한 이민자들은 대단히 부유한 대륙을 손에 넣고 토착민들을 전멸시키고 멕시코의 가장 좋은 부위를 차지했으며 세계의 부 대부분을 손에 넣었다. 이렇게 축적된 지방 덩어리는 자본주의 쇠퇴기에 민주주의의 기어와 바퀴에 기름칠을 하는 데 아직까지 유용하다.

 

민주주의 체제의 발전과 안정의 정도는 계급 갈등의 강도에 반비례한다. 이론적 분석뿐 아니라 최근의 역사적 경험은 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한편으로 러시아 또 한편으로 독일과 이탈리아는 특권을 덜 누린 나라들인데 이 때문에 다수의 안정적인 노동귀족층을 양성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들 나라에서의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나마 결코 발전할 여지가 없었고 상대적으로 손쉽게 독재체제에 굴복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마비상태가 계속되면서 가장 특권적이며 부유한 나라들의 민주주의도 똑같은 운명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빠르고 늦다는 것뿐이다.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통제할 수 없이 악화되고 있어서 부르주아 계급이 대중에게 부르주아 의회체제라는 제한된 틀 내에서나마 정치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갈수록 불가능해지고 있다. 파시즘이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명명백백한 과정을 이와 다른 이유로 설명하는 것은 현실을 관념적으로 날조하는 기만 또는 자기기만일 뿐이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모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면서 동시에 후진국의 민주주의를 봉쇄한다. 새로운 시대에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들 가운데 단 하나도 특히 농업관계에서 민주주의 혁명을 완성하지 못했다. 이 사실은 전적으로 제국주의 때문이다. 제국주의는 경제적 정치적 발전의 가장 주요한 장애물이다. 후진국의 천연자원을 강탈하고 이들의 독자적 공업발전을 의도적으로 억제시키는 것을 통해 독점재벌들과 그 정부들은 식민지 토착 착취세력의 가장 반동적이고 가장 기생적이며 반봉건적인 집단들을 금융, 정치, 군사 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보존되는 농업 야만체제는 현대 세계경제의 가장 불길한 역병이다. 자신의 해방을 위한 식민지 인민의 투쟁은 중간단계들을 생략한 채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변모한다. 이를 통해 이들은 제국주의 모국의 노동계급 투쟁과 연대한다. 한편 식민지의 봉기와 전쟁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자본주의 세계의 기초를 뒤흔들면서 자본주의의 회생이라는 기적을 어느 때보다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 차원의 계획 경제

 

기술발전의 수준을 높이고 세계 구석구석을 경제적 상호관계로 묶은 점에서 자본주의는 역사에 두 가지 공헌을 했다. 이를 통해 지구의 모든 자원들을 체계적으로 활용할 물질적 전제조건을 마련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 시급한 과업을 달성할 위치에 있지 않다. 세관과 군대를 갖춘, 한계가 뚜렷한 민족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가 달성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생산력은 이미 오래 전에 민족국가의 테두리를 넘어섰으며 한때 역사의 진보적 요인인 민족국가를 참을 수 없는 족쇄로 변모시켰다. 제국주의 전쟁은 생산력이 자신을 너무도 옥죄이는 국경에서 폭발하는 현상에 불과하다. 소위 자급자족 강령은 자족적 폐쇄경제로 돌아가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것은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일국적 토대를 건설하는 것과 같다.

 

제 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한 베르사유 조약 체결 이후 세계의 재분할이 아주 잘 마무리 되었다고들 믿었다. 그러나 최근의 사건들은 아직도 약탈이 되지 않거나 덜 된 땅덩어리가 있다는 것을 주지시켰다.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짓밟았고 일본은 중국을 차지하려고 한다. 자신의 과거 식민지들을 다시 차지하는 데에 실패한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탈리아는 알바니아를 침공했다. 발칸반도의 운명이 이제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은 “외부 세력”이 남미에 다가서는 것에 긴장하고 있다.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제국주의 단계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세계가 아무리 철저히 분할되어도 이 과정은 끝이 없으며 제국주의 세력들 간의 변화된 역관계 속에서 세계 재분할이 다시 일정에 오른다. 재무장, 외교적 마찰, 전쟁을 위한 동맹관계 등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임박한 제국주의 전쟁을 민주주의와 파시즘의 대결이라고 설명하려는 자들은 돌팔이 약장수이거나 청맹과니이다. 정치형태는 바뀌어도 자본주의의 욕심은 그대로이다. 내일 당장 영국해협의 어느 쪽에서든 파시즘이 등장할 경우(그 가능성을 감히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파리와 런던의 독재자들은 무솔리니나 히틀러만큼이나 식민지에 집착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사망 직전의 위기에 몰리면서 새로운 세계 분할을 위한 격렬한 광기의 절망적 싸움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부분적 개혁이나 미봉책은 소용이 없다. 대중의 직접 개입만이 반동의 족쇄를 분쇄하고 새로운 질서의 기초를 놓을 수 있다. 역사 발전은 이 결정적인 단계에 이미 도달했다. 생산수단에서 사적소유를 철폐하는 것은, 처음에는 일국적 차원에서 그리고 결국 세계적 차원에서 계획경제 즉, 인간관계의 영역에 이성을 도입하는 첫걸음이다. 일단 시작할 경우 사회주의 혁명은 파시즘이 지금 퍼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한 힘으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확산될 것이다. 선진국의 모범과 지원을 통해 후진국들은 사회주의의 큰 흐름에 휩쓸릴 것이다. 철저히 썩어빠진 세관의 관문은 무너질 것이다. 유럽과 세계를 폭발시키는 모순들은 사회주의연방의 틀을 통해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해방된 인류는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실현할 것이다.

 

 

 

코요아칸, 멕시코

 

1939 년 4 월 18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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