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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들과 오슬로 고원

 

[이 논문은 특히 두 가지 쟁점을 담고 있다. 하나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사이의 갈등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취해야 할 입장에 관한 문제였고, 둘은 패배를 거듭하다 급기야 히틀러의 집권을 무능력하게 허용한 기존의 국제정당 코민테른의 정치적 파산 이후 제기된 제4인터내셔널 건설에 관한 문제였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은 193510월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다. 전형적인 제국주의 식민침략이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와 세계 노동계급은 무조건적으로 즉, 이탈리아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에티오피아의 누가 이끄는지와 관계없이, 이탈리아 제국주의의 패배와 에티오피아 승리편에서 싸웠어야 했다.

그러나 개량과 혁명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영국의 독립노동당은 중립입장을 취했다. 독립노동당 당수였던 제임스 맥스턴의 완강한 고집에 굴복한 결과였다. 이탈리아 무솔리니나 에티오피아의 셀라시에 둘 모두 독재자라는 형식논리에 기초한 기회주의적 태도의 전형이었다. 이로써 그는 제3의 독재자가 되었다.

당시 독립노동당에는 마르크스주의그룹이라는 혁명 분파가 있었다. 이 분파는 반제국주의 군사동맹과 제4인터내셔널 건설을 핵심 강령으로 제기했다. 1936412일 독립노동당 총회에서 맥스턴 분파는 애초에 제기한 자신들의 중립동의안이 부결당하자, 당수직을 사임하겠다고 윽박지르며 끝내 기회주의 결정을 강요했다. 더불어 당내 분파를 금지하는 결정을 주도했다. 독재적 당 운영의 본보기였다. 독립노동당이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결정에 이른 데에는 이탈리아-에티오피아 갈등에서 처음에 혁명적 입장을 취했으나, 지도부의 압력에 직면하자 이내 굴복한 페너 브록웨이 분파의 협력이 있었다.역주]

 

동지들

1936417일자 <새로운 지도자(New Leader)>지에 실린 독립노동당[Independent Labour Party: 1893년 창당, 노동당 내 좌익분파로 활동하다가 1932년 분립. 1차 세계대전 때 평화주의에 입각한 반전운동 조직, 독일 히틀러의 집권을 무기력하게 허용한 제3인터내셔널의 정치적 파산 이후, 기존의 인터내셔널도 트로츠키 좌익반대파의 제4인터내셔널 건설 운동에도 합세하지 않고, ‘3.5인터내셔널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런던사무국을 건설] 의 총회보고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독립노동당을 지도하는 평화주의적 의회주의자들에게 그 어떠한 환상도 없습니다. 하지만 총회에서 제기된 그들의 정치적 입장과 그들의 모든 행동은 예상 이상입니다. 저는 당신과 친구들이 이 문제에 대해 우리와 거의 동일한 결론을 내렸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약간의 분석을 덧붙입니다.

맥스턴[James Maxton (1885-1946): 영국의 사회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 1차 세계대전에 반대하는 반전활동 조직, 1916~17년 수감, 1922년 하원의원에 당선, 1926~31, 1934~39년 독립노동당 당수 역임]과 그 일파는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을 두 독재자의 갈등이라고 말합니다. 이 정치인들은 이로 인해 두 독재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할 프롤레타리아의 의무가 면제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두 독재의 사회적 기초에 대한 고려 없이 매우 피상적이고 인상주의적 방식으로, 국가의 정치적 형태에 근거하여 전쟁의 성격을 규정합니다.

그러나 올리버 크롬웰이나 로베스피에르 등의 예처럼 독재자는 역사에서 매우 진보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반면 전쟁 기간에 로이드 조지는 영국 민주주의 한복판에서 극도로 반동적인 독재를 수행했습니다. 만약 어떤 독재자가 영국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도 인민의 봉기를 지도한다면 맥스턴은 이 독재자에 대한 지지를 거부할까요, 거부하지 않을까요? 만약 거부하지 않는다면, 그는 왜 이탈리아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에티오피아 독재자를 지지하지 않는 것일까요?

무솔리니가 승리한다면 파시즘이 강화되고, 제국주의의 힘이 증대되며, 아프리카와 다른 식민지 인민들의 사기가 저하될 것입니다. 그러나 네구스가 승리한다면, 이는 이탈리아 제국주의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전체에 심대한 타격이 될 것이며 [체제에] 저항하는 피억압 인민들의 힘을 크게 자극할 것입니다. 완전히 눈이 멀지 않고서야 이것을 못 볼 수는 없습니다.

맥거번[John McGovern (1887-1968): 영국의 사회주의이자 평화주의자, 1차 세계대전에 반대하는 반전운동가로 활동, 1925년 독립노동당 입당 후 1930년 하원의원에 당선, 1941~47년 독립노동당 당수 역임]1935년의 불쌍한 에티오피아1914년의 불쌍한 벨기에와 동일시하면서 전쟁을 지지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말하는 불쌍한 벨기에는 아프리카에 천만 명의 노예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반면에 에티오피아 인민은 이탈리아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벨기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유럽 제국주의의 한 고리로 남아있지만 에티오피아는 제국주의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이 둘을 동일시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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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사열하는 무솔리니

반면에 이탈리아에 맞서 에티오피아 방어에 착수하는 것은 결코 영국 제국주의가 전쟁을 일으키도록 독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은 <새로운 지도자>의 몇몇 기사에서 입증되었습니다. “독립노동당이 독재자들끼리의 싸움과 거리를 두어야 했다.”라는 맥거번의 결론은 평화주의의 정신적, 도덕적 무기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러나 가장 부끄러운 일은 투표 직후에 벌어졌습니다. 이 총회가 수치스러운 평화주의자들의 술책을 7057로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상냥한 평화주의자 맥스턴은 총회의 가슴팍에 최후통첩의 리볼버를 겨누고 새로운 결정을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은 9339로 가결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탈리아 로마이탈리아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뿐 아니라 영국 런던에도 독재자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3명의 독재자 가운데, 의회에서의 품위를 우선시하고 평화주의적 혼란에 빠져 자기 정당의 멱살을 잡는 자가 가장 해롭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행위를 용인하는 당은 혁명정당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맥스턴의 사임 위협 때문에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포기하거나 유보하는 당이라면, 결정적 순간에 부르주아지의 헤아릴 수 없이 강력한 압력을 결코 견뎌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압도적 다수로, 그 총회는 당내 분파를 금지했습니다. 그래, 좋습니다! 하지만 맥스턴은 누구의 이름으로 총회에 최후통첩을 했을까요? 당 기구를 자신의 사유재산처럼 여기고, 실제로는 당의 민주적 결정을 존중하기 위해 날카롭게 두들겨 맞아야 할 유일한 파벌, 의회주의 분파의 이름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반대파를 해산시키면서 지배파벌이 제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당은 혁명정당이 아닙니다. 그런 당은 결코 프롤레타리아를 승리로 이끌 수 없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페너 브록웨이[Fenner Brockway(1888~1988): 영국의 사회주의자이자 독립노동당의 지도자, 1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적인 평화주의자로 여러 차례 수감, 1926~29, 1932~46<새로운 지도자>로 이름을 바꾼 독립노동당 기관지의 편집인으로 활동, 1931~33년 독립노동당 당수, 1933~39년 총서기 역임]의 입장은 중도주의의 정치적, 도덕적 결점을 보여주는 매우 교훈적인 사례입니다. 페너 브록웨이는 운이 좋게도 중요한 문제에 대한 올바른 관점 즉, 우리의 견해와 일치하는 관점을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맑스주의자들이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달리 페너 브록웨이는 그것을 부차적문제로 여깁니다. 그는 영국 노동자들이 잘못된 사상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맥스턴을 당수로 앉혀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부차적인 것을 중요하게, 중요한 것을 부차적으로 고려하는 중도주의의 운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도주의는 결코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인터내셔널[국제주의 정당] 문제에서, 옛 전망의 명백한 파산에도 불구하고, 낡아빠진 혼란이 다시 한 번 승인되었습니다. 어쨌든, 3인터내셔널의 초청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도주의자는 그 무엇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비록 프롤레타리아 인터내셔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때조차도 그는 새로운 인터내셔널 건설을 주저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그에게는 원칙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어떤 원칙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아주 중요한 문제에 대해 원칙적 입장을 취한다면, 그는 즉시 우익으로부터 최후통첩을 받아 물러서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풍성한 혁명 강령을 도출해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정신적, 도덕적 무기력을 심오한 포교 즉,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사회주의 운동 과정에서나와야 한다는 즉,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언젠가는 만들어질 그 무엇으로 표현합니다. 이 수상한 동맹자는 다양한 수단을 가지고 있는데, 심지어 레닌의 인터내셔널을 2차 인터내셔널과 같은 수준으로 평가할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은 자신의 길을 따로 개척해야 합니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강령을 도출하고, 역사과정의 유리한 정세에 기초하여 이 강령이 널리 전파되도록 해야 합니다.

페너 브록웨이는 맥스턴에 대한 통탄할 만한 항복 이후 [마르크스주의 그룹의 제4인터내셔널 건설 주장 선언문] 서명자들에 대한 투쟁에서 다시 한 번 용기를 얻었습니다. 브록웨이는 새로운 인터내셔널이 오슬로 고원에서 건설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으려 합니다. 일단 제가 오슬로에 살고 있지 않을 뿐더러 오슬로가 고원에 위치하지도 않다는 사실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제가 수천 명의 동지들과 함께 방어한 원칙은 결코 지역적, 지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입니다. 그것은 논문과 소책자 그리고 서적을 통해 표현, 설명, 방어되고 있습니다. 만약 페너 브록웨이가 이러한 원칙을 거짓이라 생각한다면, 그가 자신의 원칙을 내걸도록 내버려 둡시다. 우리는 항상 더 나은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페너 브록웨이는 감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방금 전에 그 지극히 보잘것없는 원칙을 맥스턴에게 넘겨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오슬로 고원을 즐겁게 할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는 제 주소와 노르웨이 수도의 지형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나 전혀 가볍지 않은, 국제행동의 근본원칙에 대한 삼중의 실수를 저지릅니다. [트로츠키는 그의 망명을 달가워하지 않던 노르웨이 사민당 정부의 요구로 오슬로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베크살(Veksal) 지방에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오슬로는 고원이 아니다.]

저의 결론은? 독립노동당의 대의정치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페너 브록웨이 분파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맥스턴의 최후통첩에 굴복하지 않은 39명의 대표들은 영국 프롤레타리아를 위해 진정한 혁명정당 건설의 길로 나서야 합니다. 이는 오로지 제4인터내셔널의 기치 하에서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Leon Trotsky: On Dictators and the Heights Of Oslo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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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츠 오브 아이언 2020.02.29 23:02
    좋은 논문 번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식민지에 대한 군사적 방어'에 대해서 의문이 들어 댓글을 남깁니다.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압도적으로 세력이 강했고, 만약 스탈린이 각성해서 에티오피아 방어를 선언하고 의용군을 보낸다고 해도 소련 군대 전체가 에티오피아로 가거나 하지 않는 이상 전세를 뒤집기는 어려웠겠죠. 이처럼 승리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경우라고 해도 모든 제국주의와 식민지 사이의 대립에서 식민지를 군사적으로 지지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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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자갤러 2020.03.01 04:42
    (저는 볼셰비키 그룹과 관련이 없습니다)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이탈리아는 압도적으로 세력이 강했다'는 것은 사실이나 '소련 군대 전체가 에티오피아로 가거나 하지 않는 이상 전세를 뒤집기는 어려울 정도로' 이탈리아의 승리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선 이전의 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에티오피아는 이미 승리한 경험이 있으며, 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에티오피아의 결정적 패배 원인은 이탈리아령 소말리아로 제 2전선이 열려 양면전선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 수개월동안 양측은 일전일퇴를 계속했으며 이탈리아군이 패배한 전투도 있습니다.
    이 하나의 사례 뿐 아니라 '강한' 제국주의와 '약한' 피침략국 사이의 전쟁이 꼭 제국주의의 승리로 끝난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이 그렇게 분명하다면 전쟁 자체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아프간이 미 제국주의에 침공당했을 때 아프간에 대한 군사적 지지 노선이 실질적으로 아프간의 승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쓸모없다고 여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미 제국주의가 바로 어제 패배선언을 한 지금 그들은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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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셰비키 2020.03.01 20:04

    의미 있는 질문 감사합니다.

    위의 로자갤러님의 답변에 상당히 공감합니다.
    먼저, 로자갤러님 말씀처럼 승패는 결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세는 늘 변화하고, 우리의 싸움 여하에 따라 승패가 달라집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의 태도는 승리 가능성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이해와 역사적 전진의 입장에서 정해집니다. 상당히 열세라고 하더라도 마땅히 서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승리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마땅히 취해야 할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회주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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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츠 오브 아이언 2020.03.04 19:28
    큰 울림을 주는 답변 감사합니다.
    한편으로, "벨기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유럽 제국주의의 한 고리로 남아있다"는 표현에 대해서도 생각이 드네요. 벨기에는 비록 독일보다 작았고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의 침략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이기 때문에 독일의 벨기에 공격에서 벨기에를 지지할 수는 없는 건가요?
    (비슷하게 폴란드도, 1939년 9월 1일에 폴란드가 침공당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발발했는데, 폴란드 역시 중앙리투아니아공화국을 괴뢰국으로 두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독일의 폴란드 침공 역시 '제국주의 간의 대립'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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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셰비키 2020.03.08 18:05

    아이언님

    먼저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정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제국주의는 단순히 강대국의 대외팽창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높은 노동생산성을 바탕으로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이 결합한 금융자본의' 대외 팽창정책을 의미합니다.

    벨기에는 19세기 초반 대륙유럽 최초로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벨기에 자본은 1839년 독립 직후부터 높은 노동생산성과 협소한 국내시장이란 조건 속에서 상품수출과 자본수출에 큰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중후반 벨기에에서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이 강고히 결합한 금융자본이 등장하자 이러한 경향은 심화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벨기에 금융자본은 자신보다 앞서 제국주의 국가가 된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의 선례를 따라 식민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기회를 찾았습니다. 1885년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콩고를 식민화하고 벨기에 정부와 금융자본의 투자를 받아 철도와 고무 플랜테이션을 건설했습니다. 그는 벨기에 금융자본에게 초과이윤을 안겨주기 위해 콩고 인민을 강제노역에 동원했고 이에 반항하거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형벌로 손을 자르면서 악명을 떨쳤습니다.

    이처럼 벨기에는 독일에 비하면 작고 군사적으로 약한 나라였지만 엄연한 제국주의 국가였습니다. 따라서 트로츠키는 벨기에 노동계급이 자국 제국주의 자본가정부 편에 서는 조국방위를 거부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는 설사 전쟁에서 승리한들 벨기에 노동계급이 자국 자본가정부에 정치적으로 종속되고 벨기에의 콩고 지배가 공고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벨기에 노동계급은 무장해제된 상태로 나치만큼 그들을 증오하는 자국 장교들의 처분에 내맡겨졌을 것입니다.

    대신 벨기에 노동계급은 자본가정부에 그 어떠한 지지도 보내지 않는 한편 독자적으로 무장하여 국경을 넘어온 나치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이는 첫째, 노동계급 조직을 말살하려는 나치에 대항하는 것이 당장 시급한 임무였기 때문입니다. 둘째, 파리코뮌 때처럼 겉으로는 조국방위를 외치지만 실제 전쟁에서 나치보다 자국의 무장노동자들을 더 적대하는 벨기에 자본가정부의 본질이 폭로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당장 나치에 총구를 겨누는 노동자 군대는 다음 시기에 벨기에 자본가정부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폴란드의 경우는 다소 다릅니다. 폴란드는 1917년 이전까지 러시아 제국의 속주였고 인구의 과반수가 농민이었습니다. 따라서 독립 직후 폴란드는 해외에서 초과이윤을 수취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고 대외정복 전쟁은 주로 10월 혁명을 타도하려는 영국, 프랑스, 미국에 의해 추동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련과의 전쟁 종결 후 폴란드 군사독재정부는 영국, 프랑스 금융자본과 폴란드의 노동력, 시장을 중계하는 전형적인 식민지 매판정부 노릇을 했습니다. 따라서 나치독일의 폴란드 침공은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전쟁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이 전쟁에서 노동계급은 폴란드 군사독재정부에 그 어떤 정치적 지지도 보내지 않으면서 그들 편에 서 나치에 대항한 군사투쟁을 수행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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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츠 오브 아이언 2020.03.09 23:38
    제국주의의 정의가 무엇인지 스스로도 혼란이 좀 있었는데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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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셰비키 2020.03.12 12:42
    혼란이 해결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생산적 대화 이어지길 바랍니다. 더 깊은 질문 있으시면 이메일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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