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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법 배우기

어느 초좌익들에게

 

어떤 직업적 초좌익 공론가들은 제4인터내셔널의 테제를 자신들의 꽁꽁 굳은 선입견에 따라 교정하려고 든다. 특히 그들은, 모든 제국주의 국가 혁명가들은 전시에 자국 정부에 비타협적으로 반대하되, 각 나라의 내부 상황 그리고 노동자 국가와 부르주아 국가, 식민지 국가와 제국주의 국가로 구분되는 국제적 범주에 맞추어 실천해야한다는 대목을 공격한다.

소련과 동맹관계에 있는 자본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는 자국 제국주의 정부에 대해 전적으로 비타협적인 적대를 유지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정책은 소련에 대항하는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실천적으로는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전쟁과 제4인터내셔널(War and the Fourth International), 22, 44

초좌익들은 역사의 전개 속에서 검증된 이 정식을 사회애국주의의 출발점으로 여긴다. 제국주의 정부에 대한 태도는 모든 국가에서 동일해야 하므로, 이 전략가들은 자기 제국주의 나라의 경계를 넘어서는 어떠한 구별도 거부한다. 이론적으로 이들의 오류는 전시와 평시 정책을 근본적으로 다른 기초 위에 세우려는 시도로부터 발생한다.

내일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민족독립의 기치 아래 반란이 일어나고, 이탈리아 정부가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해에 따라 반란군에 무기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나는 일부러, 파시스트 제국주의가 지지하는, 민주적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반란을 예로 들었다.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알제리로의 무기 수송을 막아야 할까? 초좌익주의자들은 이 질문에 감히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노동자들과 반란을 일으킨 알제리인들과 더불어, 모든 혁명가들은 그런 대답에 화를 내며 퇴짜놓을 것이다. 심지어 같은 시기에 파시스트 이탈리아에서 항만총파업이 일어나도, 노동자들은 식민지 노예반란 지원 선박을 예외적으로 취급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가가 아니라 가망 없는 노동조합주의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프랑스 항만노동자들은, 파업으로 맞서지는 않더라도, 반란군을 상대로 사용될 탄약의 수송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각각의 노동자 입장에서 이러한 정책만이 혁명적 국제주의 정책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파시스트 정권에 맞선 투쟁 수위를 낮추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조금도 그렇지 않다. 파시즘은, 적국인 프랑스를 약화시키고 프랑스 식민지에 마수를 뻗치기 위해서만 알제리인들을 원조할 것이다. 혁명적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이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다. 그들은 알제리인에게, 그들의 기만적인 동맹군을 믿지 말라고 호소하면서, ‘자국의 주적인 파시즘에 대한 비타협적인 투쟁을 이어나간다. 이렇게 해야만 그들은 반란군의 신뢰를 얻고, 반란을 도우며, 그들 자신의 혁명적 입장을 강화할 수 있다.

방금 말한 것이 평시에 옳다면, 왜 전시에는 틀린 것이 되는가? 모두 알다시피 독일의 군사이론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고 했다. 이 심오한 사상은 자연스럽게 전쟁에 대한 투쟁은 평시의 일반적인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연속에 불과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평시에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 정부의 모든 행동과 조치를 거부하고 사보타지 하는가? 심지어 한 도시 전체를 휩쓰는 파업 중에도 노동자들은, 곳곳에 식량과 물을 공급하고 병원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치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부르주아지와 결탁한 기회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파업 자체의 이익에 대한 고려, 고통 받는 시민들에 대한 공감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프롤레타리아 평시 전략의 기본원칙은 전시에도 완전하게 유효하다.

부르주아 군국주의에 대한 비타협적 태도란 프롤레타리아가 모든 상황에서 자국 군대에 맞서 싸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최소한, 화재를 진압하거나 홍수가 났을 때 사람을 구조하는 군인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며, 그 반대로 군인들을 돕고 친밀하게 대할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자연재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오늘 프랑스 파시스트들이 쿠데타를 시도하고, 달라디에 정부가 파시스트에 맞서기 위해 군대를 출동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 혁명적 노동자들은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면서 군대와 함께 파시스트에 맞서 싸울 것이다. 따라서 몇몇 경우에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정부의 행동을 견뎌내고 용인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 지지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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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은 십중팔구 부르주아지가 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한다. 그러나 그 중 한두 번은, 부르주아지를 전혀 신뢰하지 않으면서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의 이해에 따라, 부르주아지와 같은 입장을 취한다. 프롤레타리아 정책은 부르주아지 정책의 자동적 반대이것은 모든 종파주의자들을 전략의 대가로 만들 것이다가 아니다. 혁명정당은 외적으로도 그렇지만 내적으로도 늘 자주적이어야 한다. 이 원칙은 전시에도 평시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다가올 유럽전쟁에서 벨기에 프롤레타리아가 프랑스 프롤레타리아보다 더 빨리 권력을 장악했다고 가정해보자. 의심의 여지없이 히틀러는 프롤레타리아의 벨기에를 분쇄하려 할 것이다. 프랑스 부르주아 정부는 자신의 측면을 보호하기 위해 벨기에 노동자 정부를 군사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당연히 벨기에 소비에트는 그 지원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때 프랑스 노동자들이 혁명적 패전주의의 원칙에 따라 자국 부르주아지의 벨기에로의 무기적송을 막아야 하는가? 공공연한 배신자들 아니면 아주 맛이 간 사람들이나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부르주아지는 오직 최악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훗날 자신들의 무기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압살할 것을 기약하면서, 벨기에 노동자 국가로 무기를 보낼 것이다. 반대로 프랑스 노동자에게 프롤레타리아 벨기에는 자국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그들 자신의 투쟁에 있어서 가장 큰 버팀목이다. 최종적으로 투쟁의 결과는 역관계에 의해 결정될 것이고, 올바른 정책은 그것에 크게 영향을 줄 것이다. 혁명정당의 최우선 과제는 프롤레타리아 벨기에 방어를 위해 프랑스와 독일 양 제국주의 국가 사이의 모순을 활용하는 것이다.

초좌익 형식주의자들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공허한 관념에 따라 생각한다. 그들은 혁명적 패전주의 사상을 공허한 것으로 변모시켰다. 그들은 전쟁의 과정도, 혁명의 과정도 생생하게 볼 수 없다. 그들은 신선한 공기로부터 차단된 밀봉된 공식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공식은 프롤레타리아 전위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없다.

계급투쟁을 그것의 최고형태 즉, 내전으로 상승시키는 것, 이것이 패전주의의 과제이다. 그러나 이 과제는 대중의 혁명적 결집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 ‘평시의 계급투쟁을 구성하는 혁명적 수단들의 확대, 심화, 첨예화를 통해서 말이다. 프롤레타리아당은 자국 정부의 패배를 위하여 창고에 불을 지르거나, 폭탄을 터뜨리거나, 열차를 파괴하는 등의 음모적 수단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 방법이 성공하더라도 정부의 군사적 패배가 혁명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직 자주적인 프롤레타리아 운동만이 성공을 보장한다. 혁명적 패전주의는 프롤레타리아당이 어떤 애국적고려에 의해 계급투쟁을 중단하지 않음을 의미할 뿐이다. 왜냐하면 혁명적 대중운동에 의해 초래된 자국 제국주의 정부의 패배는,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굴종 즉, 국민통합으로 얻은 승리보다 확실히 덜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혁명적 패전주의의 진정한 의미이다.

물론 공공연한 혁명기에 들어서면 투쟁의 방법은 바뀐다. 내전은 전쟁이고, 바로 그런 측면에서 내전은 독특한 법칙을 갖는다. 내전에서 창고 폭격, 열차 파괴, 그리고 다른 모든 형태의 군사적 사보타지는 불가피하다. 그것의 타당성은 순전히 군사적 고려에 의해 결정된다. 내전은 혁명적 정치의 연속이지만 다른 수단 즉 군사적 수단에 의한 연속인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 전쟁 중에, 아직 자국 혁명운동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음에도, 혁명정당이 군사기술적 수단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 정부나 식민지 반란 진압을 위해 무기 혹은 군대를 보내는 일이 있다면, 불매운동이나 파업 같은 수단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군사적 사보타지도 현실적이며 의무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수단에 의존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실현가능성에 달려있을 것이다. 만약 전시에 권력을 잡은 벨기에 노동계급의 군사요원들이 독일 영토에 있다면, 히틀러의 군대를 저지하기 위해 어떤 기술적인 수단도 주저하지 않는 것이 이 요원들의 임무일 것이다. 혁명적 독일 노동자들 또한, 독일 혁명운동의 일반적 진로에 관계없이, 벨기에 혁명의 이익을 위해 이 임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패전주의 정책 즉, 전시의 비타협적 계급투쟁 정책은 모든 나라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없다, 전시와 평시 프롤레타리아 정책이 동일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아류들이 지배하는 코민테른만이 모든 나라들이 동시에 왼쪽 발에 맞추어 행진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이러한 관료주의적 백치증에 맞선 투쟁에서 우리는 일반적 원칙과 과제를 각국의 내적 외적 조건에 따라 실현해야 한다는 점을 여러 번 증명하고자 하였다. 이 원칙은 전시에도 완전히 유효하다.

마르크스주의자처럼 구체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 초좌익들은 준비되지 않은 채 전쟁에 휘말릴 것이다. 그들의 평시 정책은 전시를 맞아 결정적으로 파탄날 것이다. 첫 번째 포탄이 떨어지자마자, 초좌익들은 정치적으로 무의미해지거나 사회애국주의 진영으로 넘어갈 것이다. 철저하게 국가를 거부하는스페인 아나키스트들이, 전쟁이 발발하자 부르주아 장관으로 입각한 것처럼 말이다. 전시에 올바른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평시에 올바르게 생각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멕시코) 코요아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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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트로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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