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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제국주의론

 

해제

1928년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장악한 코민테른은, 개량주의 노동자당인 독일사회민주당도 파시즘의 일부라는, 초좌익적 사회파시즘론을 들고나와 파시즘 격퇴에 꼭 필요한 반파시즘 공동전선을 거부했다. 그 결과 1933년 히틀러는 집권에 성공했다. 이렇게 공산주의 박멸을 부르짖는 파시즘이 독일 국가를 장악하자, 갓 탄생한 노동자국가 소련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였다.

깜짝 놀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이제 핸들을 오른쪽으로 급히 꺾었다. 노동계급의 개량주의 진영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규정했던 그들은 이제, 핵심 모순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이가 아니라, 파시즘과 민주주의 사이의 선택이며, 그러므로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일부를 포함하는 모든 세력을 동원하여 민주주의’(, 부르주아 독재의 한 형태) 방어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초좌익적 사회파시즘론에서 이제는 그 정반대인 계급협조주의 인민전선으로 코민테른의 지도노선이 변경된 것이다. 이는, 세계 노동계급의 역사적 이해가 아니라 소련 관료집단의 단기적 이해에 사로잡혀 방향감각을 상실한, 좌충우돌이 낳은 필연적 결과였다.

민주주의방어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권력 장악을 주장하거나, ‘계급 대 계급의 정치를 주장하는 것은 금기가 되었다. 파시즘에 맞서 이른바 민주주의와 문화방어를 위해, 일국 내 우호적이고 민주적인자본가와 협력하는 것이 권장되었다.

한편 히틀러의 등장으로, 프랑스 영국 미국 제국주의가 강력한 라이벌 독일 제국주의에 채워놓은 족쇄가 풀렸다. 바야흐로 제국주의와 제국주의가 세계를 분할하고 재분할하기 위한 두 번째 전쟁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소련 관료집단은 이 전쟁을 제국주의 전쟁이 아닌, 파시즘에 맞선 전쟁으로 규정하였다. 그리하여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은, 호전적제국주의 국가 파시스트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맞선, 우호적제국주의 국가로 분류되었다. 그리하여 이른바 우호적제국주의 세력에 억압당하던 피억압 민족과 국가의 민족해방 투쟁은 억제되었다.

트로츠키의 비유처럼, 당장 내 머리에 총구를 들이댄 적을 제압하기 위해 나에게 매일 소량의 독극물을 먹이는 적과 전술적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불가피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일시적 전술이 전략적 원칙으로 격상되었다. 2차 대전 중이던 1943, 크렘린 관료집단은 일방적 결정으로 코민테른을 해산했다. 이는 영국 프랑스 미국 제국주의와의 우호 증진을 위한 것으로, 일시적 전술적 협력을 전략적 원칙으로 격상한 대표적인 배신행위였다. 이후 제국주의에 대한 투항과 계급협조가 표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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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반대로 제국주의에 대한 레닌의 분석과 전략전술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초과이윤 수취를 목적으로 영향권 확대를 목표로 하는 제국주의 국가 사이의 갈등은 자본가 계급을 위한 것이다. 그 경쟁에서 제국주의 국가 노동계급 상층 일부는 알량한 떡고물을 받아먹을 것이지만, 식민 지역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노동계급은 그 경쟁 전쟁의 대포밥으로 쓰일 것이다. 제국주의 경쟁전에서 노동계급은 자국의 승리를 지지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국가들 모두의 패배를 위해 투쟁한다(이중적 패전주의dual defeatism). 제국주의 전쟁으로 표출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심화된 모순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도록 이용한다. 사회주의 혁명을 촉진하고 식민 지역의 반제민족해방 투쟁을 지지하고 고무한다.’

당시 소련은 심각하게 관료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17년 혁명의 성과를 간직한 노동자국가였다. 생산수단의 소유관계가 사회의 계급적 본질이다. 10월 혁명 이후 소련의 사적소유는 철폐되었고 생산수단과 토지는 국유화되었다. 그러나 세계 혁명이 더 확대되지 못하고 주춤하면서 제국주의 압력이 소련에 집중되었고 이로 인해 마르크스주의를 절반만 이해하는 협소한 시야의 관료집단이 소련 상부구조를 장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으로 성취된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형태는 되돌려지지 않았다. 퇴보했지만, 노동자국가 소련은 세계 노동계급의 위대한 성과였다. 따라서 과거 투쟁의 성과이자 미래 투쟁의 교두보인 소련이 제국주의의 손아귀에 넘어가지 않도록 방어하는 것은 세계 노동인민의 운명이 달린 과제였다.

그 과정에서 제국주의 상호 경쟁으로 인한 갈등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은 필요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과의 전술적 협력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그 협력은 계급 대 계급의 정치를 위해, 제국주의에 대한 어떠한 환상도 없이, 그 한도 내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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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관료집단의 근시안에 갇혀 파시즘과 전쟁의 근원을 호도하고, 일국 내 소위 민족/민주적자본가에 대한 환상, 국제적으로 우호적제국주의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는 것은 노동계급을 재앙적 패배로 이끄는 길이었다. 인민전선론은 그것이 등장한 1930년대에 스페인 내전을 패배로 이끌었다. 계급협조 노선으로 말미암아, 파시즘을 패배시키기는커녕 파시스트 프랑코의 집권을 도왔다. 2차 대전 이후로도 우후죽순처럼 일어난 민족해방 투쟁들을 계급협조주의 틀 안에 가두어 숱한 패배를 낳았다. 그리고 그 모든 패배는 각 나라에서 수 만에서 심지어 수백 만에 이르는 노동인민의 학살을 낳으며 공산주의 운동을 후퇴시켰다.

제국주의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다. 그리하여 제국주의는 이 시대 거의 모든 기회주의의 근원이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발전의 최고 형태이고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자본주의 저항 세력에게 가해지는 가장 강력한 압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회주의는 썩어문드러진 이 자본주의 체제가 연명할 수 있는 비결이다. 사민주의, 스탈린주의, 국가자본주의론, 노동자주의 등 이 시대 핵심 기회주의 조류 모두는 이 제국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기회주의를 감추기 위해 레닌이 과학적으로 밝혀낸 제국주의의 본질을 비틀어 왜곡하고 있다.

트로츠키의 이 글은 그 점을 폭로하고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2020년 12월 2일

볼셰비키그룹

 

4인터내셔널의 1942년 서문

(1924121일 서거한) 레닌의 18주기인 지금 지구는 세계 대전 한 가운데 있다.

1차 대전의 살육이 한창일 때, 레닌은 이 두 번째 살육을 예견했다. 나아가 그는 제국주의가 살아남는 한 세계의 갈등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국주의가 이번 대전에서도 살아남는다면, 3차와 4차 대전이 뒤따를 것이다.

제국주의의 지속되는 지배 아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측하게 했던 바로 그 과학적 방법을 통해, 레닌은 옴짝달싹 못하는 이 사회가 벗어날 현실적 투쟁 강령을 도출했다.

레닌주의는 1차 대전 시기에 성숙되었다.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그의 분석과 이 분석에서 도출한 결론은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위대한 승리 가운데 하나이다. 제국주의에 맞선 레닌주의 강령이 191710월 러시아 대중이 승리할 수 있었던 발판이었다. 그리고 이 승리는 제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을 종식시켰다.

레닌의 정치노선 이외에는 오늘날 인류를 구원할 강령이 없다.

우리는 지금 1942년에,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전쟁에서 레닌주의자들의 결론을 훌륭하게 요약한 트로츠키의 글을 출판한다. 이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문서는 1939년 초에 트로츠키에 의해 쓰여졌다. 영어본은 이번이 처음이다.편집자 (4인터내셔널)


  마오 닉슨 회담.jpg

1971년 이후 중국은 브레즈네프 치하의 소련을 자본주의라고 규정했다. 중국공산당은 더 나아가, 소련이 심지어 사회제국주의 초강대국이 되어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위험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는 미국과의 반소련동맹의 근거가 되었다. 19717월 양국 외교부 대표인 저우언라이와 키신저 사이의 비밀 회담에 이어, 19722월 마오쩌둥 주석과 닉슨 대통령의 회담(사진)은 그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는 제국주의에 대한 스탈린주의적 기회주의의 또 하나의 대표적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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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레닌은 역사 속에서는 항상, 피억압 계급의 명망 있는 혁명 지도자가 죽은 뒤, 그 적들은 그 이름을 피억압 계급을 속이는 데에 이용해 왔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레닌 자신에게만큼 이 역사적 작업이 지독하게 자행된 적은 없다. 제국주의와 전쟁 문제에 대한 코민테른의 정책과 크렘린[소련 정부]의 현 공식 입장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레닌이 당을 이끈 모든 결론을 함부로 훼손하고 있다.

19148월 전쟁의 발발로 던져진 첫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제국주의 국가의 사회주의자는 조국 수호대열에 서야 하는가?’ 사회주의자 개인이 군 복무를 이행해야 하는지 여부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대안이 없었다. 탈영은 혁명적 정책이 아니다. ‘사회주의 정당들은 전쟁을 정치적으로 지지해야 하는가? 전쟁예산에 찬성표를 던질 것인가? 반정부 투쟁을 접고 조국 수호를 외칠 것인가?’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 물음에 레닌은 아니! 당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할 권리가 없다. 전쟁이어서가 아니라, 반동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계 재분할을 위한 노예 주인들 사이의 개싸움이다.”라고 대답했다.

유럽 대륙의 민족국가(national states)는 대략 대프랑스 혁명으로 시작되어 1870~71년의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으로 막이 내린 시대에 걸쳐 형성되었다. 이 극적인 수십 년 동안 전쟁은 대부분 민족적 성격을 띠었다. 문화와 생산력 발전을 위해 필요한 민족국가를 방어하고 창조하기 위해 치러진 이 시기의 전쟁은 역사적으로 진보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생산력과 문화 발전에 필요한 국가를 창조하거나 방어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혁명가들은 이 민족전쟁을 정치적으로 지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지할 의무도 있었다.

1871년부터 1914년까지 민족국가의 토대 위에서 유럽 자본주의는, 독점자본주의 그리고 제국주의 자본주의로 변모함으로써, 만개한 정도가 아니라 제 수명을 넘겨 살아남았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가 모든 힘을 다한 후 쇠퇴하기 시작하는 단계의 자본주의이다.” 사유재산의 틀은 물론 민족국가 틀도 생산력의 발전을 속박한다는 것이 쇠퇴의 원인이다. 제국주의는 세계를 분할하고 재분할한다. 이제 제국주의 전쟁이 민족국가의 전쟁 대신 일어난다. 그것은 완전히 반동적이며 독점자본의 난국과 정체, 붕괴의 표현이다.

 

제국주의의 반동성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매우 다층적이다. 선진국의 강압적 제국주의는 후진국, 피억압 민족, 식민지와 반식민지 국가가 우리 지구에 남아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억압받는 민족들의 민족 통일과 민족 독립을 위한 투쟁은 두 배로 진보적이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 더 유리한 조건을 준비하고, 다른 한편 제국주의에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자가, 문명화된 제국주의 민주공화국과 식민지인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군주국 사이의 갈등에서, 군주국임에도 불구하고 피억압 국가의 편에 온전히 서고,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억압 국가에 대항하는 이유이다.

제국주의는 식민지와 시장, 천연자원, 영향권 확보 등 자신의 고유한 목적을 위장하기 위해 침략자에 대한 평화 수호, 조국 방어, 민주주의 수호같은 선전 문구를 내세운다. 이런 선전 문구들은 새빨간 거짓이다. 그들을 지지하지 않고, 인민 앞에서 그 정체를 발가벗기는 것이 사회주의자의 의무이다. 레닌은 19153, “사회주의자가 전술을 결정하는 데 있어, 누가 먼저 공격을 개시했느냐 또는 누가 먼저 전쟁을 선포했느냐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조국 방어, 적군 격퇴, 방어전등은 모두 인민 기만의 문구이다.”라고 말했다. 레닌은 수십 년 동안 세 명의 도적(영국, 러시아, 프랑스 부르주아 그리고 정부)이 독일을 약탈하기 위해 무장했다. 주문한 새 칼을 세 명의 도적이 손에 넣기 전에 두 도적(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이 선제 공격한 것이 대단한 일인가?”라고 설명했다.

프롤레타리아에게 어떤 계급이, 무엇을 위해서 그 전쟁을 치르고 있는가?’라는 전쟁의 역사적 의미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적을 언제나 침략자라고 묘사하는 외교적 속임수가 아니라, 이것이 결정적이다. 제국주의자가 민주주의와 문명을 운운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독일 부르주아지는전쟁이 자유와 문명을 위한 것이고, 차르 전제로부터 피억압인민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노동자계급과 고통받는 대중을 속인다. 영국과 프랑스 부르주아지는 독일 군국주의 독재에 맞선 전쟁이라고 부르짖으며 노동계급과 피억압인민을 기만한다.” 이러저러한 정치적 상부구조는 제국주의 경제기초의 반동성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 역으로 그 경제기초가 정치적 상부구조를 굴복시킨다. “이 시대에 진보적 부르주아지와 진보적인 부르주아 운동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바보 같은 것이다. 모든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반동이 되었다.” 제국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레닌주의 사상의 핵심이다.

양 제국주의 진영이 치르는 이 전쟁이 조국과 민주주의 방어가 아니라 세계 재분할과 식민지 노예화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는 두 도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권리가 없다. “국제 프롤레타리아 입장에서 전쟁에 참여한 두 집단 중 하나의 패배가 사회주의에 차악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려는 것은 정말 헛된 시도이다. 전쟁이 벌어진 19149월 그 첫 날에 레닌은 이미, 제국주의 국가들 그리고 모든 집단을 위한 전쟁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시장과 외국 땅을 약탈하기 위한 투쟁,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운동을 저지하고 각 나라 내부의 민주주의를 분쇄하려는 열망,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를 속이고 분열시키고 분쇄하고, 부르주아지의 이윤을 위해 한 국가의 임금노예를 다른 나라의 임금노예에 맞서라는 선동, 오직 이것이 전쟁의 실재적 내용이자 의미인 것이다.” 지금의 스탈린, 디미트로프 등의 교리와 얼마나 다른 얘기인가?

평화주의자처럼 평화를 호소하는 것으로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민을 속이는 방법 중 하나가 평화주의와 평화를 추상적으로 선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특히 제국주의 단계에서는 전쟁이 불가피하다.” 제국주의가 결심한 평화는 새로운 전쟁 직전 잠깐 쉴 때뿐이다. 전쟁과 제국주의에 맞선 혁명적 대중 투쟁만이 진정한 평화를 확보할 수 있다. “이어지는 혁명 없이, 소위 민주적 평화는 중산층의 유토피아다.”

노동인민에 최면을 걸어 무기력하게 만드는 평화주의 환상에 대항하는 투쟁은 레닌의 가르침 중 가장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그는 특히 자본주의 하에서는 뻔한 유토피아일 뿐인 군축요구를 거부하였다.

 

사회국수주의(Social-Chauvinism)의 뿌리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당 대부분은 전쟁 중 각각 자기 나라 부르주아 편에 섰다. 레닌은 이러한 경향을, 말로는 사회주의를 외치고 행동으로는 국수주의라는 의미로, ‘사회국수주의라고 불렀다. 국수주의와 국제주의에 대한 배신은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개량적 순응이 지속되고 그것이 발전된 필연적 결과였다. “기회주의와 사회국수주의의 이념-정치적 내용은 동일하다. 계급투쟁 대신 계급협조, 이 체제가 난관에 처할 때 혁명을 위해 이 난관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정부를 지지하는 것이다.”

지난 전쟁 직전, 1909년부터 1913년까지의 자본주의 번영은 프롤레타리아 상층부를 제국주의와 매우 밀접하게 결합시켰다. 제국주의 부르주아지가 식민지와 후진국에서 짜낸 초과이윤 중 짭짤한 부스러기 일부가 노동귀족과 관료에게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애국심은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관계로 인한 것이다. 모든 사회 관계를 가차없이 드러낸 전쟁 기간 동안, “부르주아, 정부 그리고 군부와 동맹 관계인 기회주의자와 국수주의자들은 그들로부터 전폭적으로 지원받았다.”

사회주의에서 평균적이고 아마도 가장 폭넓은 부류는 평화 시기에 개량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동요하던 카우츠키 집단의 중도주의 경향일 것이다. 그들은 평화주의 문구로 자신을 줄곧 치장하다가, 거의 예외없이 국수주의의 포로가 되었다. 대중은 자신이 수십 년에 걸쳐 건설한 바로 그 조직에 의해 기만당했고, 무방비 상태로 그 흐름에 빠져들었다. 2인터내셔널의 노동 관료주의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평가를 내린 후, 레닌은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기회주의와의 단결은 부르주아와 노동자의 동맹을 의미하는 것이며 세계 혁명적 노동계급의 분열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로써 국제주의자는 사회국수주의자들과 결별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사회주의 운동 내부 부르주아 경향인 중도주의와 더불어 기회주의와 결정적으로 결별하지 않고서는, 사회주의 과제 완수도 노동자의 진정한 국제적 단결도 불가능하다.” 당명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그동안 얼룩지고 타락한 사회민주당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옛 마르크스주의 이름인 공산주의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떤가?” 2인터내셔널과 결별하고 제3인터내셔널을 건설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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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지난 20여 년 동안 무엇이 변했는가? 제국주의는 훨씬 더 폭력적이고 억압적 성격을 띠었다. 그 궁극의 표현은 파시즘이다. 제국주의 민주주의는 저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논리에 따라 파시즘으로 진화하고 있다. 민족 독립을 위한 피억압 민족들의 각성과 열망이 더욱 날카로워질수록, 식민지 탄압은 더욱 잔인해진다. 다시 말해, 레닌의 제국주의 전쟁 이론의 기초에 담긴 그 특성들은 이제 훨씬 더 날카롭고 더 선명해졌다.

공산주의-국수주의자들은, 소련이 등장했기 때문에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가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답변을 할 수 있다: ‘소련이 수립되기 전에도 억압받는 국가와 식민지가 존재했고, 그들의 투쟁을 지지해야 했다.’ 자기 나라 제국주의 부르주아 지지를 통해 다른 나라의 혁명적이고 진보적인 운동을 지지할 수 있다면, 사회국수주의 정책은 원칙적으로 옳았다. 그렇다면 제3인터내셔널을 창립할 필요가 없었다. 또 다른 근거도 있다. 소련은 이제 22년째 존속하고 있다. 17년 동안 레닌의 원칙은 줄곧 유효했다. 공산주의-국수주의 정책은 겨우 4~5년 전에 만들어졌다. 이런 점에서 소련의 존재를 근거로 삼는 주장은 거짓 눈가림일 뿐이다.

25년 전 레닌이, 문명과 민주주의 수호의 명분 아래 자국 제국주의 편에 선 자들을 사회국수주의자 그리고 사회주의 배신자라고 낙인찍었는데, 레닌의 원칙에서 보면 똑같은 정책은 오늘날 더욱 범죄적이다. 자본주의 문명이 훨씬 더 부패한 상황에서, 2인터내셔널의 모든 궤변을 재탕하는 코민테른의 현 지도자들을 레닌이 어떻게 말했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공산주의 휘장을 크렘린 관료의 더러운 자취를 닦는 걸레로 이용하는 현 코민테른의 추잡한 아류들이, 코민테른 창시자의 가르침을 결연히 사수하려는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독한 역설이다. ‘지배계급은 위대한 혁명가를 살아 생전에 박해할 뿐만 아니라, 죽은 뒤에 더욱 정교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복수한다. 그들을 법질서 준수의 아이콘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라고 말한 레닌은 옳았다. 물론 어느 누구도 레닌의 가르침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제자인 우리는 아무도 그 가르침을 비웃지 못하게 할 것이며, 그 가르침을 제 자리에 되돌려 놓을 것이다!

 

19392

트로츠키

1939: Lenin on 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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