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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12. 월요일

아까이 소라


사이드, 그리고 쉐리프 쿠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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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엡도> 테러를 벌인 쿠아시 형제(왼: 동생 쉐리프, 오른: 형 사이드)


<샤를리 엡도>에 대한 테러 이후 도주하다가 끝내 인질극 끝에 숨진 사이드와 쉐리프 쿠아시 형제. 이 중 동생인 쉐리프 쿠아시(Cherif Kouachi), 일명 아부 이센(Abou Issen)은 이미 당시 이라크의 알카에다와 관계를 맺고 있던 '뷔트 쇼몽 네트워크', 일명 '파리 19구 네트워크'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2005년 시리아로 도망가기 직전에 체포되어 2008년에 징역 3년, 집행유예 18개월 형을 선고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쉐리프는 2년 뒤인 2010년 알제리 무장무슬림그룹(GIA) 출신 스메인 아이트 알리 벨카셈의 탈옥 시도에 관여한 혐의로 다시 체포됐다. 벨카셈은 1995년 파리 생미셸 지하철역에서 폭탄 테러를 저지른 혐의 등으로 2002년, 종신형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검찰이 그에 대한 수사를 중단함에 따라 4개월 만에 풀려났다. 형인 사이드 쿠아시(Said Kouachi)는 파리의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등 별다른 전조를 보이지는 않았으나 이번 사건 이후 경찰 조사 끝에 2011년 예멘에서 알카에다와 관계된 무슬림 무장 세력의 지휘 하에 훈련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각각 1980년, 1982년 생으로 파리 10구에서 태어나 19구에서 자랐다. 파리 10구는 북역과 동역을 중심으로, 2, 3, 9, 11, 18, 19, 20구와 접하고 있는 총 면적 2.89km 정도의, 파리에서는 규모 상으로는 중간 정도의 구. 재작년 딴지일보에 쓴 글에서 짧게 언급한 바 있는데, 파리에는 총 20개 구가 있으며, 가장 중심에 위치한 1구를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시계방향으로) 20구까지 자리하고 있어 흔히 달팽이에 비교된다. 서울이 한강을 기준으로 크게 강남과 강북으로 구분되는 것처럼 파리 역시 세느강을 중심으로 좌안(Rive Gauche)과 우안(Rive Droite)으로 나뉘어 진다. 세느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이유로 좌안이 남쪽, 우안이 세느강 북쪽이다. 보통 세느강 북쪽인 우안은 부르주아적이고 귀족적 전통이 강한 반면, 세느강 남쪽인 좌안은 보다 지적이고 혁명적이며 문화적으로 인식된다. 실제로 소르본 대학이 있는 라탱 지구는 좌안의 5구에, 루이비통이며 까르티에 등이 있는 샹젤리제는 우안의 8구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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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20개 구의 위치는 대강 그러하다


갑자기 파리의 행정구역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파리 20개 구역 각각의 그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3구는 차이나타운, 에펠탑이 있는 15구는 일본인과 한국인이 많이 사는 곳, 16구는 전통적으로 부르주아들이 사는 구역이고, <샤를리 엡도> 사건을 저지른 이 두 형제가 태어난 10구는 터키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이민자(특히 불법체류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미국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파리 5구의 여인』의 주 무대가 바로 파리 10구. 미국에서 쫓기다시피 해서 파리로 온 주인공이 고생 끝에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한 곳이 10구의 파라디 가(Rue de Paradis)였다. 파라디는 프랑스어로 천국이라는 뜻. 이 소설 속에서 파리 10구의 모습이 꽤 잘 묘사되어 있어 짤막하게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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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도 역에서 나오자 마자 완전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고급 아파트 건물에서 나와 반짝이는 자동차에 오르는 값비싼 옷차림의 사람들은 한순간에 몽땅 사라졌다. 샤토도는 보이는 곳마다 쓰레기 천지였다. 거리에는 싸구려 까페들, 갖가지 색으로 된 인조가발을 파는 가게들, 전화카드를 파는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전화카드로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세네갈,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부르키나파소 등지에 싸게 전화할 수 있다는 광고가 곳곳에 나붙어 있었다.


백인은 나 한 사람이었다. 수은주는 영화를 가리켰지만 거리는 사람으로 넘쳐났다. 카페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바깥에까지 들렸고, 모두들 서로 잘 아는 듯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나 인사를 나눴다.

 

-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파리 5구의 여인』 중에서


파리의 구역별 소득수준을 보면 가장 잘 사는 7구의 연소득이 9만 4천 5백 유로 가량, 가장 못 사는 18구가 3만 1천 5백 유로 가량. 10구는 뒤에서 네 번째로 3만 5천 7백 유로 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파리의 20개 구 중 가장 소득 수준이 낮은 4개 구, 그런니까 밑에서부터 18구, 20구, 19구, 10구에 사는 사람 중 세 명의 소득을 합치면 가장 잘 사는 7구의 연소득보다 조금 많을 정도. 게다가 소득순위 하위에 있는 4개 구는 서로 인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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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파리 20개 구의 연소득


이 4개 구는 소비수준도 낮다. 소비수준이 파리에서 가장 낮은 동네는 이들 형제가 자란 19구로 알려져 있다. 19구는 쉐리프 쿠아시가 활동한 조직, 그러니까 '파리 19구 네트워크'의 이름에 등장한다. 파리에 존재하는 공영주택(logement social)의 60%가 이 곳에 있고 각종 범죄조직이 범람하여 폭력 사건을 비롯한 파리의 다른 동네에서는 일어나지 못할 각종 불법이 자행되는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대표적으로 바르베스 및 뷔트 쇼몽(쉐리프 쿠아시가 활동한 조직의 이름에 등장) 지구가 있는데, 여기서는 파리 및 그 근방에서 도난 당한 물건을 비롯, 없는 거 빼고 다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마약이나 위조신분증, 훔친 아이폰 등을 사려거든 이 곳으로 가면 된다. 파리지역에서 일어나는 각종 '시끄러운' 시위들이 일어나는 곳도 이 지역이다. 2005년에 있었던 파리 소요사태의 주 무대도 여기. 뷔트 쇼몽 공원 근처에 사는 한 학생에 따르면 이중창문을 굳게 닫아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음의 정도가 워낙 심해 바로 옆에 있는 친구와 원만하게 대화할 수도 없을 지경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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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가장 큰 뷔트 쇼몽 공원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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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근처의 거리


불행하게도 이 곳의 낮은 소득 및 소비수준은 몇 십 년동안 지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이변이 없는 한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인 및 가족이 이미 정착해 있는 곳에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 이주자들의 일반적인 특성인 탓에, 이민자들은 계속 이 곳으로 모이고, 원래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 버렸다. 쿠아시 형제가 생전에 주거지로 삼은 팡탱(Pantin)과 젠느빌리에(Gennevilliers)는 보통 방리유라고 하는 파리 근교의 소도시다. 모든 파리 근교 소도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방리유'라는 단어가 지니는 하나의 시니피에(어떤 기호가 의미하는 내용을 일컫는 말 - 편집부 주)는 가난과 사회 부적응이다. 지금껏 이야기 한 파리 10, 18, 19, 20구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말하자면 쿠아시 형제가 태어난 파리 10구와 활동 무대의 중심지로 삼은 19구, 지금 살고 있는 파리 북쪽의 방리유는 하나의 게토인 셈. 피에르 모렐 감독의 2004년 영화 <13 구역>은 분명 상당히 과장된 하나의 픽션이지만 파리 10구와 19구는 그것의 현실 버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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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3 구역 - 얼티메이텀> 중에서



프랑스의 다문화


물론 이번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을 벌인 이들 쿠아시 형제를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쿠아시 형제를 비롯한 많은 이민자 2, 3세들을 아웃사이더로 만든 프랑스 사회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프랑스 이민의 역사는 꽤 오래 되었다. 프랑스로의 이민 물결은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때는 정치적인 망명으로 인한 이민이 많았다. 프랑스 이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제 이민은 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하여 프랑스 내 노동력 부족 및 전쟁 이후 사회 재건을 목적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로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등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었던 국가에서 사람들이 몰려 왔다. 긴 식민기간 동안 이들 국가에서 프랑스어가 공식 언어로 교육되면서 언어적 소통이나 문화적인 충돌이 비교적 적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제 이민은 1945년부터 1973년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하지만 1970년의 오일쇼크로 인하여 프랑스 역시 경제 침체기에 접어들자 더 이상 경제적 이민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프랑스 정부는 이민자들을 대폭 수용하던 정책을 변경한다. 이에 따라 1974년부터는 가족재결합을 위한 이민 이외에는 일체의 이민을 제한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프랑스에 자리잡은 가족과 합류하기 위해 유입되는 이들의 수는 만만치 않았고, 게다가 불법체류자도 늘어나면서 프랑스 사회의 다문화화 흐름은 끊이지 않고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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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모두 프랑스인이다


프랑스의 이민정책은 흔히 미국의 그것과 비교된다. 미국은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는 반면, 프랑스는 동화주의 모델을 취한다. 보통 프랑스 공화주의 통합모델이라 하는데, 이는 1789년 대혁명 이후부터 내려오는 공화주의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공화주의 가치라 함은 제5공화국 헌법 전문 1조에 나타나는 '프랑스는 단일하고 분리될 수 없는, 비종교적이고 민주적이며 사회적인 공화국이다. 프랑스는 출신, 인종, 종교의 구분 없이 모든 시민이 법 앞에서 평등함을 보장한다'라는 문구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니까 프랑스 이민자는 출신국의 인종, 문화, 종교적 정체성을 포기하고 프랑스 사회에 완전히 통합되는 것을 요구받는다는 것. 이러한 이상이 잘 실현된다면 정말 너무 좋겠지만 마치 대한민국의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그저 말뿐인 허상이 되는 경우가 불행하게도 다반사로 발생하는 것과 같이 이민자들의 현실은 공화주의 가치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프랑스는 출신, 인종, 종교의 구분 없이 모든 시민이 법 앞에서 평등함을 보장한다

VS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먼저 교육 부문. 북아프리카 출신 무슬림 2세 남학생의 중퇴율은 40%, 여학생은 32%에 이른다. 그 중에서 알제리 출신 이주민(15세 이상)의 70.8%는 어떠한 학위도 없거나 초등학교만 졸업했고, 3.1%만이 고등학교 졸업장 정도가 있다. 참고로 프랑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프랑스 인구 전체에서 어떤 학위도 없거나 초등학교만 졸업한 이들은 24.3% 정도이고, 고등학교 졸업 이상은 전체의 48.5%에 해당한다. 현재 대학을 마치고 직업전선에 있는 25세에서 49세 사이의 프랑스인 중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지니고 있는 이들은 58.4%다.


이렇게 설명해 보면 어떨까 한다. 당장 먹고 살기 바쁜 부모는 자식 교육에 신경 쓰기 쉽지가 않을 것이다. 신경을 쓴다 하더라도 부모 역시 교육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고(이민을 어떤 사람이 오는지 생각해 보라), 특히 프랑스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황이다. 결국 자녀의 사회화 과정에서 차지하는 부모의 역할이 극히 한정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학교에서는 프랑스를, 가정에서는 부모님의 모국을 접하며 이들은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비슷한 사정의 또래집단과의 연대를 미리부터 굳건히 쌓는다. 이들의 성적은 나쁘기 마련이고, 학교에서도 교사들과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는 이민자 2-3세는 쉽사리 인정받지 못한다. 또한 부모가 자식들이 얼른 직업교육을 받아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가정에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것도 이민자 가정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


고용 부문. 보통 이민자 2-3세의 높은 실업률의 주된 요인으로 낮은 교육수준을 꼽는 경우가 많은데, 무슬림 출신 중에는 고학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실업에 노출되는 일이 많다. 조금씩 추세가 변해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프랑스에서는 이력서에 사진을 넣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모델과 같이 극히 외모가 중시되는 직업군을 제외하고는 피부색, 몸매, 얼굴 등 업무와 관계 없는 모든 외형적 요인이 그 사람에 대한 적법하고 명확한 판단을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프랑스 노동법 1132조 1항은 '출신, 성별, 관습, 성적 지향성, 나이, 가족관계, 임신, 유전적 요소, 정치적 성향, 노조활동, 종교적 신념, 외모, 성(이름), 건강 상태 및 장애 등을 이유로 고용 및 재계약을 거부하는 일체의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다르다. 2006년 실시된 파리 1대학 사회학 교수 장 프랑수아 아마디유(Jean-Francois Amadieu)의 연구 결과, 이력서를 냈는데 사진을 넣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름 및 성을 통하여 지원자의 출신을 알 수 있는 경우, 다른 나라 출신의 지원자가 '프랑스" 이름 및 성을 지니고 있는 지원자'에 비하여 서류심사를 통과하는 확률이 1/3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랍 이름 및 성을 가진 지원자의 경우 서류심사 통과 확률이 더 낮다. 고작 1/5. 안 그래도 교육 수준이 낮아, 저임금 일자리도 찾기 어려운데, 어쩌다 고학력인 경우에도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고. 그러다보니 소득 수준이 낮아 자녀의 교육에 신경 쓰지 못하여 저학력과 저소득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속되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빈곤의 대물림.


주거. 이들이 게토를 형성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잠시 설명하였다. 2004년 20대의 전체 실업률은 12%인데 반해 이민자 출신이 주로 거주하는 방리유 지역의 20대 실업율은 33%에 이른다. 방리유 지역은 이전에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이주민 노동자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주거 밀집지역으로 변모하였다. 주거에 드는 비용이 보다 저렴한 곳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 (얼마 전 <JTBC 뉴스>에 중앙일보 정치부 모 기자가 나와서 이들 지역에서 파리로 가려면 지하철도 없고 하루에 몇 대 다니지도 않는 버스를 타야 된다는 건 거짓말. 어디서 이런 말을 들었는지 몰라도 그런 정보원은 짜르는 것을 추천함)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몰려든 이주자로 인해 야기된 주거공간의 부족을 타개해 보고자 프랑스 정부에서는 1949년부터 1972년까지 약 100만 세대의 공공주택을 비교적 땅값이 저렴한 방리유 지역에 건축한다. 주거비용이 비교적 저렴한 이 곳에는 자연스럽게 이주민들이 몰려들었다. 공공주택 건설 초기에는 중산층도 많이 거주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건물의 노후화, 획일적인 공간, 실내의 소음 등의 불편함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건물기능 등으로 인해 중산층은 이곳을 떠나고, 이민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 되었다. 이에 따라 방리유는 가난한 노동 이민자 중심으로 인구구성이 밀집되었고, 월세나 집값이 하락하면서 이민자나 실업자, 불법체류자들이 모여들어 게토화되었으며, 프랑스의 주류집단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로 고착되었다. 현재까지 공공주택은 방리유의 주요 주거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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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방리유의 공공주택

한국에서는 부의 상징인 고층아파트가 프랑스에서는 가난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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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리유 모습을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낸 마튜 카소비츠의 영화 <증오>의 일부 장면

그곳의 풍경이 궁금하다면 동영상을 참고하시라



유럽국가 중에는 프랑스 출신이 IS조직에 가장 많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사회적 요인들에 의하여 이민자 출신 프랑스인들은 끊임없이 배제되고 소외받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 다문화 정책의 실패 원인이 오롯이 프랑스 사회에만 있다고 보기에는 또 무리가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


같은 이민자 출신 프랑스인이라 하더라도 아시아계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프랑스는 1887년부터 1954년까지 베트남을 67년 간 식민지배하였다. 이에 따라 프랑스에는 베트남 출신들도 꽤 많이 살고 있다. 중국계야 굳이 말할 필요 없고. 


이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민자 부모가 자녀 교육에 거의 목숨을 걸었다. 그 결과, 이민 1세대는 빈곤했지만 2세대부터 그 형편이 나아진다. 베트남 출신 이민자 2-3세 중에는 특히 의사나 법조인이 많다. 아니면 식당 사장이던가. 프랑스 정부의 각종 보조금 역시 (북)아프리카 출신 이주자들이 비난을 피해갈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걸 조롱거리로 삼는다. 예를 들어 실업자 보조금(사회연대수입 RSA)의 경우, 2015년 현재 혼자 사는 성인에 대한 보조금은 책임져야 하는 자녀의 수에 따라 무자녀 513.88유로(74만 5천 원)/월, 자녀가 1명 있으면 770.82유로(111만 원), 2명 있으면 1079.14유로(156만 원)이다. 게다가 이 실업자 보조금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주택보조금의 혜택까지 준다. 2014년 12월 현재, 혼자 사는 무자녀 성인은 448유로(약 65만 원), 자녀 1명인 경우 642유로(약 93만 원), 자녀 2명 765유로(약 110만 원). 게다가 대중교통을 비롯, 국가 및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모든 시설 역시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어중간하게 일하는 것보다 차라리 실업자 보조금을 받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여튼 일부다처제를 용인하는 무슬림 국가 출신 중에 첫째 부인은 고국에 남겨 두고 둘째, 혹은 세째 부인을 데리고 와서 프랑스에서 아이 여럿을 낳아 타 프랑스인들의 세금으로 구축된 정부보조금을 받으며 경제활동 따위는 하지도 않고 띵가 띵가 놀면서 남는 돈은 또 고국으로 부쳐 준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루머. 그런데 프랑스의 살인적인 집세를 생각하면 과연 그게 정말 가능할까 싶긴 하다.


약간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이를 단순히 다문화 정책의 틀에서 바라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 프랑스에 이민이 활성화 되고 나서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나, 현재 프랑스 사회의 저소득층은 굳이 이민자 출신이 아니라 하더라도 무슬림을 비롯한 아프리카의 문화가 많이 녹아 들어가 있다. 위에서 말한 마튜 카소비츠 감독의 1995년작 영화 <증오>에 나오는 방리유 지역 세 젊은이 중 두 명은 아프리카 출신(흑인, 마그레빈), 한 명은 백인이다. 영화란 물론 픽션이지만 <증오>는 당시 프랑스의 현실을 상당 부분 그대로 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즉, 이미 1995년에 파리 방리유에 사는 젊은이들은 그 출신에 관계 없이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 문제가 단지 무슬림 이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방리유로 대표되는 가난, 사회계급 간의 갈등의 문제로 확대되었다는 것.



다시 쿠아시 형제


이제 대강 프랑스 사회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으니 이런 맥락에서 이번 <샤를리 엡도> 사건의 범인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쿠아시 형제의 부모는 알제리에서 온 이민자였으나, 이들이 어릴 때 사망하고 형제는 어린 시절을 보호소에서 보낸다. 동생 쉐리프의 경우, 이미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파리 19구를 무대로 소매치기, 마약 등을 했다고.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피자 배달을 했었다고. 쉐리프와 친구들이 변하게 된 것은 2003년, 파리 19구의 스탈랑그라드 지역에 있는 아다와 무슬림 사원에 다니면서부터. <르몽드>지의 2008년 기사, 그러니까 쉐리프가 알카에다 대원 모집 활동한 혐의로 재판받았을 당시의 기사에 따르면 쉐리프는 이 때를 "이전에 나는 그저 범죄자였다. 하지만 이후, 나는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 버렸다"라고 표현했다.


바로 이 게토에서 그는 지하디스트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이들을 교육시킨 파리드 베네투(Farid Benyettou)는 쉐리프보다 고작 한 살 많았지만 같은 알제리 출신에 무슬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쉐리프와 친구들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쉐리프와 친구들은 베네투에게 열성적으로 종교 수업을 받았다. 이전에 거리의 불량배였던 이들은 담배나 마약 등 일체의 불량한 행동에서 손을 뗐다(적어도 가족이 보는 앞에서는 안 했단다). 대신 점차 인터넷 사이트와 각종 비디오를 통해 지하드와 가까워 지면서 무슬림 급진주의자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베네투를 만나 모스케에 다니기 시작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쉐리프와 친구들은 진정한 지하디스트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떠날 준비를 할 차례였다. 군사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신앙심이 있었다. 재판에서 쉐리프는 당시를 "떠날 시간이 다가올 수록 뒷걸음질 치고 싶었다. 하지만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싶지는 않았다"고 증언했다.


훈련은 19구의 뷔트 쇼몽 공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칼라슈니코프 소총을 다루는 방법 등을 배웠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파리 19구 네트워크' 혹은 '뷔트 쇼몽 네트워크'였던 것. 이 조직은 2003년에서 2005년 사이에 활동했고, 10여 명의 19구에 사는 프랑스 청년으로 이루어진, 이라크에 지하디스트로 싸우러 갈 것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었다. 쉐리프와 친구들은 가족에게 아랍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하고 싶다거나 무슬림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 시리아로 떠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시리아 다마스쿠에 도착하는 즉시 국경을 넘어 이라크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다른 동료들은 그렇게 이라크로 들어갔고 대부분 행방불명(사망 추정)되었다. 살아 돌아온 모하메드 엘 아유니(Mohamed El Ayouni)는 이라크에 도착하자마자 별 훈련도 없이 전방에 배치되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혹은 운명의 장난인지 쉐리프는 결국 이라크로 떠나지 못하고 체포되었다. 그 다음의 이야기는 '총정리' 편에서 다루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가 끔찍한 테러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그의 청소년기를 생각해 보니 약간 측은하기도 하다. 아마도 그가 처음으로 애정과 관심을 받은 곳도, 유일하게 소외당하지 않은 곳도 베네투를 만난 무슬림 사원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이민 2-3세는 프랑스에서도 소외당하지만 부모의 고국에서도 소외당한다.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사회부적응자로 주류 사회의 바깥을 떠돌기만 하던 그에게 '파리 19구 네트워크'같은 조직은 아마도 가족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시리아로 떠나기 전, 그는 분명 겁이 났었다고 증언했다. 물론 사회의 모든 아웃사이더가 이들과 같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며, 이들의 행동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 역시 이 사건의 원인제공자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랩을 즐기며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어린 쿠아시의 모습을 전하며 글을 끝맺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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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 때로 돌아간다면 쿠아시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링크>




참고문헌


http://lci.tf1.fr/france/faits-divers/attentat-contre-charlie-hebdo-qui-sont-les-freres-cherif-et-said-8543948.html

http://www.bfmtv.com/societe/attentat-contre-charlie-hebdo-qui-est-cherif-kouachi-856402.html

https://laconnectrice.wordpress.com/2011/06/03/accession-a-la-propriete-nachetez-pas-aux-buttes-chaumont/

http://www.insee.fr/fr/themes/tableau.asp?reg_id=0&ref_id=nattef07232

http://www.rfi.fr/france/20131007-france-discrimination-embauche-selon-une-enquete-ifop/

http://fr.wikipedia.org/wiki/Discrimination_%C3%A0_l%27embauche#France

http://fr.wikipedia.org/wiki/Habitation_%C3%A0_loyer_mod%C3%A9r%C3%A9

http://abonnes.lemonde.fr/attaque-contre-charlie-hebdo/article/2015/01/08/quand-cherif-kouachi-comparaissait-dans-l-affaire-de-la-filiere-irakienne-du-19e-arrondissement_4551212_4550668.html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50109000129

http://lci.tf1.fr/france/faits-divers/qui-est-amedy-coulibaly-l-auteur-presume-des-fusillades-de-montrouge-8544744.html

http://www.ouest-france.fr/charlie-hebdo-coulibaly-un-delinquant-devenu-jihadiste-3103794


이현정, 2013, "이민자 2, 3세에게 일어나는 사회적 배제로 인한 갈등 사례를 통해 본 한국 다문화정책에 대한 고찰 : 미국, 프랑스의 갈등사례를 중심으로"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원 석사논문


김성민, 2013, "프랑스 이민자 통합의 실패 원인: 프랑스 사회 책임 혹은 이민자 책임", 『유럽연구』31권1호


 

 

 





아까이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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