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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16. 금요일

아까이소라

 


지난 기사


[프랑스 언론의 스펙트럼 <1> 일간지 1]

[프랑스 언론의 스펙트럼 <2> 일간지 2]

[프랑스 언론의 스펙트럼 <3> 일간지 3]

[프랑스 언론의 스펙트럼 <4> 일간지 4]

[프랑스 언론의 스펙트럼 <5> 프랑스 언론이 본 레이디가카]

[프랑스 언론의 스펙트럼 <6> 살해당한 자유, 샤를리 엡도]

[프랑스 언론의 스펙트럼 <7>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 총정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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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7일, 쿠아시 형제의 총에 동료 8명을 잃은 <샤를리 엡도> 홈페이지는 온통 검은색 일색이다. "나는 샤를리입니다"라는 문구 아래 "연필은 폭력보다 항상 우위에 있을 것이고, 자유는 범세계적 권리이며 당신들이 우리를 지지해 주기 때문에, 우리 "샤를리"는 다음 주 수요일에도 발간됩니다"라고 적혀 있고 "<샤를리 엡도>, 살아남은 자들의 신문, 1월 14일 수요일"이라며 이 주간지를 계속 발행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실제로 사건 이후 <리베라시옹>은 <샤를리 엡도> 측에 사무실과 기자재를 제공, 발행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약속했고, 살아남은 <샤를리 엡도> 직원들은 프랑스 경찰의 보호 하에 거처를 그곳으로 옮겼다. <리베라시옹>은 지난 2011년, <샤를리 엡도> 사무실이 불에 탔을 때도 임시거처를 마련해 준 바 있다. 이 사연을 통해 우리는 <샤를리 엡도>가 <리베라시옹>과 가까운 관계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찌기 딴지일보 "프랑스 언론의 스펙트럼"에서 다룬 바와 같이 <리베라시옹>은 <르몽드>, <르피가로>와 함께 흔히 프랑스 3대 일간지로 일컬어 진다. 그 중 <르피가로>가 우파, <르몽드>가 중도라면 <리베라시옹>은 68혁명의 정신을 이어 받은 사르트르의 신문, 좌파 성향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샤를리 엡도>는? 국내 언론에 이 풍자를 전문으로 하는 주간지가 좌파로 소개되어 있고, 실제로 그런 성향을 띠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냥 "얘네들은 좌파야"라고 단언하기에는 사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좌파 개념을 생각하면 조금 머뭇거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그들이 보여준 "모든 권위에 도전한" 모습을 좌파로 인식한다면 이들은 물론 뼛속까지 좌파, 맞다.





2.


<샤를리 엡도>의 역사는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뜻이 맞는 세 명의 친구들, 카바나(Francois Cavanna), 베르니에(George Bernier), 프레드(Frederic Othon Theodore Aristides)가 그 주역이다. 20년대 말에서 30년대 초에 태어난 이들은 이번 일이 터지기 전, 2005년에서 2014년 사이에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들 그룹에 장 모리스 카뷔(Jean-Maurice Cabut), 토포르(Topor), 조르쥬 볼린스키(Georges Wolinski), 장 마르크 레제(Jean-Marc Reiser)가 합류하면서 정예멤버를 갖추게 되었다. 이들 중 카뷔와 볼린스키는 이번 테러로 사망했다. 사회에 대한 풍자에 대해 탁월한 능력과 취향을 지닌 이들은 의기투합해서 월간지 <하라키리(Hara-Kiri)>를 창간한다. 하라키리는 할복이라는 뜻. 프랑스 잡지의 이름으로서 이 KIRI라는 표현은 분명 프랑스인들에게는 재미있게 받아들여 졌을 것이다. KIRI의 발음은 프랑스어 표현 "qui rit (who laughs)"와 같다. 하나의 예로 한국에도 들어와 있는 프랑스 치즈 래핑카우의 프랑스어 상호명은 바슈키리(Vache Kiri). <하라 키리>는 시니컬하고 풍자적이며 외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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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키리> 창간호

Fred의 그림 위에 조그맣게 "honni soit qui mal y panse"라고 적혀 있다.


이 말은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가 그의 사촌 "켄트의 조안"과 춤을 추고 있던 중, 조안의 가터(스타킹이나 양말을 내려오지 않도록 하는 밴드)가 발목까지 내려가 버려 창피를 당하자, 에드워드 3세가 기사도를 발휘하여 가터를 자신의 다리 사이에 놓고 한 말 "honni soit qui mal y pense, Tel qui s'en rit aujourd'hui, s'honorera de la porter."의 패러디. "오늘 이 것을 보고 웃은 자, 내일은 이 가터를 입은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리라!" 정도로 해석되는데, 이 문구는 점차 "간악한 마음을 품은 자에게 재앙을"로 쓰이게 됨. <하라키리> 창간호 표지에 있는 그림과 문구는 penser를 panser로 바꾸어 "붕대를 잘못 감은 이에게 치욕을!" 정도?(짧은 프랑스어 실력 죄송) 말하자면, <하라키리>의 풍자는 그 사건에 대한 충분한 배경지식 없이 보는 이들에게는 의미가 없거나 그저 일차적인 조롱에 불과한 것으로, 시니컬하고 풍자적인 프랑스 유머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 받고 있었다고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유머가 허용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라키리>는 처음에 2천 부 정도로 시작했다. 초기에는 인건비가 없어 지면을 채우기 위해 카바나가 대여섯 개 필명으로 여러 개의 기사를 작성해야 할 정도였다고. 하지만 곧 상당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68혁명 이전 프랑스는 드골주의가 만연한 사회였다. 여기서 드골주의는 프랑스 제18대 대통령 샤를 드골이 펼친 정치사상을 일컬으며, 민족자결주의, 사회적 보수주의, 국가주도주의 및 의지주의 정도로 설명된다. 그러니까 근엄한 프랑스 사회에서 이 엉뚱하고 버릇없는 월간지는 대중에게 일탈의 환희를 선사했던 것. 


심지어 <하라 키리> 라디오 광고 카피는 "<하라 키리>를 살 수 없다면 훔쳐라!(Si vous ne pouvez pas l’acheter, volez-le)"였고, 쇼롱 교수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조르주 베르니에(George Bernier)는 매달 "멍청하고 심술궂은" 놀이를 제안했다. 여기서 쇼롱 교수라는 별명은 베르니에가 진짜 교수라서가 아니다. 베르니에는 두 개의 란을 담당했는데, 누군가 어떤 질문을 하면 거기에 말도 안 되는 엉뚱한, 그리고 심술궂은 대답을 하는 식으로 구성된 란과 방금 말한 놀이를 제안하는 란이 그것이었다. 쇼롱이라는 이름은 <하라키리> 사무실이 위치한 곳의 거리 이름이 쇼롱 가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은 쇼롱 교수가 제안한 멍청한 놀이 중 하나다. 멍청한 건 알겠는데 솔직히 재미 없다. 나의 지적 수준이 딸려서 그런 건가 문화적 차이인가 싶다. 이거 보고 신나게 웃은 사람 있으면 부디 이해 좀 시켜줬으면 좋겠다.


살아있는 시체 놀이(<하라키리> 1968년 9월호 통권84호)

 

시골에서 산책을 하는 도중 철도까지 왔는데 멀리서 기차가 오고 있다면 친구들에게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하라. 그리고는 웃옷을 벗고 철도 위에 눕는 것이다. 목과 발목을 각각 양쪽 선로 위에 올려 놓은 채로. 기차가 당신의 위로 지나갈테고 친구들은 당신의 몸이 갈가리 찢겨졌으리라 보고 당신이 벗어놓은 웃옷 주머니 안의 것들을 나눠가지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기차가 모두 지나가고 나면 호방하게 웃으며 일어나 모두에게 큰 놀라움을 선사할 수 있다.

 

설명: 여기에는 트릭이 있다. 기관차가 당신의 몸에 거의 닿을 때 즈음에 재빨리 목을 남방 아래로, 발을 바지 안으로 집어 넣는 것이다. 정말 간단하지 않는가? 한 번쯤 시도해 볼 만 하다.


그리고 <하라키리>의 표지 몇 개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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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문구는 "아야톨라(시아파에서 고위 성직자에게 수여하는 칭호, 신의 증거라는 뜻. 시아파 중 특히 열두 이맘파에서 종교적 율법에 대한 유권 해석을 내릴 수 있는 성직가에게 붙이는 존칭)의 성생활"이라는 뜻. 아야톨라이 표정이 어딘가 므흣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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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의 검은색 문구는 "고양이를 입양하세요"라는 뜻. 프랑스어에서 암코양이를 뜻하는 "chatte"는 여성 생식기를 뜻하는 비속어이기도 함.


표지에서 잡지의 이름인 HARAKIRI 아래에 보이는 문구, "journal bete et mechant"은 "멍청하고 심술궂은 신문"이라는 뜻이고, 이 월간지의 정체성을 짧고 굵게 함축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이 카피는 <하라키리>가 한 독자에게서 받은 편지에서 차용한 것인데, 그 편지에는 "당신들은 멍청할 뿐 아니라 못됐기까지 하군!"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하라키리> 편집진은 옳다쿠나 이 문구를 가져 와서 표지에 사용했던 것이다.





3.


당연히 <하라 키리>의 역사는 평탄치 않았다. 1961년에는 게제된 그림이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7개월 발행 금지를 받았고(어떤 그림인지 못 찾았으나 외설적인 그림이었던 것으로 추측 가능함), 그동안 <하라 키리>는 행상인을 통해 지방에서 몰래 판매를 계속하며 그 명맥을 근근이 이어갔다. 재발행된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여성의 벗은 몸을 그려 내면서 1966년에도 8개월 발행 금지 명령을 받았다. 이후 1969년 주간지 <하라키리 엡도>를 발간하기 시작한다. 이 때는 이미 68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는 드골주의가 해체되면서 이전에 존중받았던 모든 권위가 조롱받던 때. 69년 당시 재임 중이었던 프랑스 대통령 조르주 퐁피두는 제2차 세계 대전중에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샤를 드골 정부하에서는 총리를 역임한 인물이다. 기본적으로 드골의 후계자로서 등장하였으나, 드골의 노선을 견지하면서도 보다 실용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었다. 그 이후 선출된 대통령이 중도우파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그 다음이 프랑스 유일의 좌파 대통령, 하지만 재임기간이 13년 361일로 프랑스 역사적으로 가장 길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이었음을 감안하면 프랑스 사회 분위기가 대강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는지 대강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보다 덜 경직된 사회분위기를 띠고 있었던 1969년 발간되기 시작한 <하라키리 엡도>는 이전의 월간 <하라키리>보다 전략적으로 정치적인 색채를 보인다. (<하라키리 엡도> 창간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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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키리 엡도> 창간호 표지에는 여전히 "멍청하고 심술궂은(bete et mechant)"이라는 표현이 걸려 있다. 창간호를 장식한 그림은 볼린스키의 것으로, 당시의 주요 사회 이슈들(비아프라 전쟁 , 당시 대통령이었던 퐁피두 대통령, 바그다드의 교수형 등)을 이야기하며 웃겨 죽으려고 하는 볼린스키의 만화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하라키리 엡도>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1970년 11월 16일 발행된, <하라키리 엡도> 통권 94호의 표지는 별 그림 없이 "콜롱베(Colombey)에서 일어난 비극의 파티, 1명 사망"이라는 글귀가 크게 실린다. 이는 1970년 11월 9일 사망한 드골의 죽음을 바로 전 주에 있었던 무도회장(클럽) 화재 사건에 빗대어 패러디한 것. 146명의 죽음을 불러온 이 화재 사건으로 언론은 일주일 내내 떠들썩했는데, 정확한 정보보다는 그 장면에 집중하였고, 이 사건을 보다 부각시키기 위해 <하라키리 엡도>는 전략적으로 "비극의 파티"라는 문구를 반복하여 사용하였다. <하라 키리>는 그것을 비웃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프랑스의 영웅인 드골의 사망 소식에 프랑스가 슬픔에 잠겨 있을 때에 공개된 <하라키리 엡도>의 태도는 프랑스 주류 사회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으며, 당시 내무부 장관 레몽 마르슬랭(Raymond Marcellin)은 <하라키리 엡도> 94호가 발행된 다음날 1970년 11월 17일, 이 주간지의 발행을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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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하라키리 엡도> 통권 94호


프랑스 정부의 기대와 달리 이 발행금지 조치는 <하라키리> 측에는 악재가 아니라 횡재로 작용했다. 이보다 더 좋은 홍보가 어디 있겠는가? 이 "얼간이들"은 곧 발행을 재개한다. 물론 발행금지 조치를 교묘히 피해 가기 위해서 주간지의 이름을 변경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샤를리 엡도>. 이렇게 <샤를리 엡도>는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 되었고 <리베라시옹>의 창간을 담당한 장 폴 사르트르와 <르몽드>의 편집장이었던 자크 포베(Jacques Fauvet)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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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엡도> 창간호 표지


표지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지팡이를 든 시각장애인이 "언론의 자유? 귀머거리가 되는 것보다야 그 말을 듣는 게 낫겠지"라고 한탄하고 있다.

고딕체로 굵게 줄까지 쳐 있는 문구는 "프랑스에는 검열이란 없다"는 말.

창간호에는 "<하라키리 엡도>는 죽었다. <샤를리 엡도>를 읽어라.

<샤를리 엡도>는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잡지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음.


이렇게 <샤를리 엡도>는 1970년대 내내 상당히 중요한 매체로 자리매김한다. 1970년에서 1974년까지 매주 15만 여 부가 발행되었다. 말하자면 황금기. 하지만 곧 재정난에 부딪치게 되고, 특히 1981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셸 콜뤼치(Michel Colucci), 일명 콜뤼쉬(Coluche)를 지지한 이후 <샤를리 엡도>는 같은 해 문을 닫기에 이른다. 

콜뤼쉬는 프랑스의 코미디언으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욕설을 해서 해고를 당하는 등 독특한 사람이었음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그냥 얼간이는 아니고, 현재까지도 존재하는 "사랑의 레스토랑(resto du coeur) "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사랑의 레스토랑은 노숙자를 비롯한 빈곤자들에게 무상으로 급식을 제공하는 등 가난으로 힘겨워 하는 이들을 위한 단체. 또한 1988년에는 입안, 통과된 콜루쉬 법은 기부하는 단체 및 개인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1981년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자 콜뤼쉬는 처음에는 장난기를 가득 담고 있었다. 초기에 그의 캠페인은 "우파부터 좌파까지 전반적으로 엿먹이자"였다. 그러나 1980년 12월 14일 있었던 설문조사에서 16%의 지지도를 보이자 상대 후보자들 모두 패닉에 빠진다. 그 역시도 놀라웠는지 콜뤼쉬 역시 진지하게 변화한다. 결국 미테랑의 회유와 당시 내각의 공작 등으로 인해 콜뤼쉬는 1981년 3월 16일 대통령선거 후보에서 사퇴하기에 이른다.





4. 


<샤를리 엡도>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은 1992년. 이전 멤버들이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하여 자기 주머니를 털었고, 거기에 시인이자 작곡자, 가수인 르노 사샹(Renaud Sechant)의 지원이 힘을 보탰다. 르노 세샹 역시 <샤를리 엡도>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붙인 별명은 "짜증나는 가수(Chanteur enervant)". 실제로 르노는 인권이나 자연보호, 반군국주의 등 사회성이 강한 주제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것으로 유명했다. <샤를리 엡도>가 다시 정상적으로 굴러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새로운 편집장 필립 발(Philippe Val, 현재 프랑스의 저명한 언론인 중 하나)의 지휘 아래 <샤를리 엡도>는 매주 14만 부를 발행하기에 이른다.


그렇다고 해서 <샤를리 엡도>의 재정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어떤 회사에 속한 것도 아니고, 광고를 제대로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던 2006년 2월, <샤를리 엡도>는 덴마크 주요 일간지 중 하나인 <일랜포스트(Jyllands-Posten)>에서 선보인 무함마드 캐리커쳐 시리즈를 싣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이 커리커쳐 시리즈는 <샤를리 엡도> 이전에도 이름난 문제작으로, 이미 여기에 반하여 많은 무슬림 국가에서 반대 집회가 일어난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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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랜포스트>가 실은 무함마드 캐리커쳐 시리즈 중 하나를 소개한다.


이렇게 해서 <샤를리 엡도> 자신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판매 부수도 늘어나서 재판을 해야 하는 정도였고, <샤를리 엡도>는 인쇄되어 매대에 걸리는 즉시 팔려 나갔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재앙의 시작이기도 했다. 2007년, <샤를리 엡도>는 파리 모스케(파리의 중심 이슬람 사원), 프랑스 이슬람 조직연합(Union des organisations islamiques de France), 세계무슬림연맹(World Muslim League)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하였는데, 이를 촉발시킨 것이 바로, 카뷔가 그린 <샤를리 엡도> 특별호 표지. "교권지상주의자들때문에 정신없는 무함마드"라는 문구 아래 얼굴이 시뻘개 져서 두 눈을 가리고 땀을 뻘뻘 흘리는 무함마드가 "멍청이들한테 사랑받기 너무 어려워!"라고 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소송은 <샤를리 엡도>의 승리로 돌아갔고, 이들은 96만8천501유로의 보상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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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엡도>와 무슬림 세력 사이 공방의 계기가 되었던 카뷔의 그림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2015년 1월 7일자 기사에서 <샤를리 엡도>를 "도발하는 자이며, 그러한 사실을 자랑스러워 하는 이들"이라고 묘사한다. 실제로 <샤를리 엡도>는 이후 처하는 모든 어려움, 그러니까 경쟁자 출몰(<샤를리 엡도>에서 짤린 씨네(Sine)가 창간한 <씨네 엡도>), 편집장이자 대주주 필립 발의 직장 이전(라디오 프랑스로), 끊임 없는 협박전화 및 계속되는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특유의 "멍청하고 심술궂은" 유머감각으로 이어 나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슬람만까기 아니고 모두까기였다. 종교에 대한 희화화만 가지고 말하자면, <샤를리 엡도>는 1993년 이래 발행한 모든 호에 교황, 예수, 사제, 랍비, 이맘, 무함마드 등을 한 번씩은 실었다.

 

그런 와중에 2011년, <샤를리 엡도>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처음으로 발생한다. 2011년 11월 1일에서 2일로 넘어가는 밤, 파리 20구에 있던 사무실에 화재가 발생한다. 화염병으로 인한 방화. 다행히 희생자는 없었지만 기자재 훼손 등 <샤를리 엡도>가 입은 피해는 막심했다. 이 때 <샤를리 엡도>를 도와준 것이 <리베라시옹>. 이번처럼 <리베라시옹>은 자기 회사에 <샤를리 엡도> 편집진을 위한 공간과 그들이 쓸 기자재를 제공해 주었다. 이 사건 직후 발행된 <샤를리 엡도>의 표지에는 또다시 무함하드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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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엡도> 화재 사건 직후 발행된 호의 표지


무함마드가 "죽을만큼 웃지 않는 자에게 태형 100대를! (100 coups de fouets si vous n'etes pas morts de rire)" 이라 말하고 있다. 아마 방화범들은 표지를 보고 기가 막혔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마도 무슬림 급진주의 무장세력들에게 이 주간지는 눈엣가시였을 것. 그리고 여러 매체의 보도로 잘 알고 있을테지만 이번 테러 직전 발행된 <샤를리 엡도>에는 "프랑스에 아직 테러가 없다"는 문구 아래 "기다려, 1월 말까지는 안부를 전할 시간이 있어!"라고 말하는 무장한 IS대원의 캐리커처가 실려 있었다. 말하자면, 도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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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 직전 발행된 호에 실린 만평




5.


2006년 이래로 <샤를리 엡도> 편집진에게 있어 살해 협박은 거의 일상이 되었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번 테러로 숨을 거둔 만평가 볼린스키는 평소에 자기가 죽고 나면 화장해서 그 재를 변기에 뿌려 달라고 했다고 한다. 죽어서도 아내의 엉덩이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또한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으로 사망한 편집장 스테판 샤르보니에는 2012년,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보복이 두렵지 않다. 나는 아이도, 아내도, 차도, 신용도 없다. 약간의 허세를 보태자면, 나는 무릎 꿇고 사느니 선 채로 죽겠다"라 말한 바 있다. 샤르보니에의 연인, 사르코지 내각에서 장관을 역임한 자넷 부그라브(jeannette bougrab)에 따르면 그는 지속적으로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고, 자신이 죽을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를 떠나 도망가자는 자넷의 이야기에도 샤르보니에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2015년 1월 8일자 딴지일보에 올린 "살해당한 자유, 샤를리 엡도"(기사보기) 기사의 댓글에 누군가가 " 어그로쟁이가 병신을 병신이라고 욕하다가 병신한테 총 맞아 죽은거다"라고 남긴 걸 봤는데, 그 문구를 보고 빵 터졌다. 물론 그 뒤의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샤를리 엡도>의 역사를 쭉 봤을 때 맞는 말이다. 단, 그 어그로쟁이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사회야 말로 "표현의 자유"가 살아 있는 사회라 칭할 수 있는 곳이라 본다. 


<샤를리 엡도>는 수많은 어려움과 핍박, 재정적 어려움(테러가 일어난 시점, <샤를리 엡도>의 평균 발행 부수는 6만여 부에 불과) 및 내부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그 시작에서부터 자신의 생각을 (말장난과 시니컬로 거칠게나마 설명할 수 있는 프랑스식 유머의 전통을 이었으나 좀 과하기는 한) 자신의 방식대로, 스스로가 병신임을 인정하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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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이후 발행된 <샤를리 엡도> 표지

 

 

테러로부터 1주일이 지난 1월 14일 수요일 발행된 <샤를리 엡도> 표지에는 "무책임한 신문"이라는 소제목 아래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는 문구와 "나는 샤를리입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무함마드의 캐리커처가 그러져 있다. 자기들에게 닥친 비극마저 희화화하는 이들이 바로 <샤를리 엡도>랄까? <누벨옵세르바퇴르>와의 인터뷰에서 <샤를리 엡도> 편집장 제라르 비아르(Gerard Biard)는 "이번 호는 희생자를 애도하는 특집이 아니다. 우리는 질질 짜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샤를리 엡도>의 변호사이자 만화 시나리오 작가인 리샤르 말카(Richard Malka)는 "이제 더이상 이 자리에 없는 이들에 대한 존경을 보이는 법은 이 잡지의 정신에 충실한 것이고, 그것은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 질문이다.


이래도 죽을만 해서 총맞아 죽었나?





<참고자료>

http://abonnes.lemonde.fr/m-actu/article/2015/01/07/c-est-quoi-l-esprit-charlie-hebdo_4551065_4497186.html

http://fr.wikipedia.org/wiki/Hara-Kiri_%28journal%29#Interdiction_de_l.E2.80.99hebdo

http://palladio.free.fr/harakiri/HKM/no0211-220.html

http://www.harakiri-choron.com/articles.php?lng=fr&pg=242

http://fr.wikipedia.org/wiki/Candidature_de_Coluche_lors_de_l%27%C3%A9lection_pr%C3%A9sidentielle_fran%C3%A7aise_de_1981

http://fr.wikipedia.org/wiki/Coluche

http://fr.wikipedia.org/wiki/Les_Restos_du_c%C5%93ur

http://tempsreel.nouvelobs.com/charlie-hebdo/20150113.OBS9820/charlie-hebdo-que-va-t-on-trouver-dans-le-numero-des-survivants.html

http://www.parismatch.com/Actu/Societe/Jeannette-Bougrab-Personne-ne-pourra-m-enlever-ma-relation-avec-Charb-687040

http://tempsreel.nouvelobs.com/charlie-hebdo/20150113.OBS9820/charlie-hebdo-que-va-t-on-trouver-dans-le-numero-des-survivants.html

http://tempsreel.nouvelobs.com/charlie-hebdo/20150113.OBS9820/charlie-hebdo-que-va-t-on-trouver-dans-le-numero-des-survivant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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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샤를리 엡도의 역사 볼셰비키 2015.01.17 659
562 [그리스] Syriza’s young radicals plot a political earthquake for Europe 볼셰비키 2015.01.19 69
561 [러시아] The Russian Navy Is on the Verge of Collapse 볼셰비키 2015.01.23 121
560 [프랑스] Defend Muslims in Europe Against Racist “War on Terror” Backlash! 볼셰비키 2015.01.23 479
559 [우크라이나] The Danger of an MH-17 ‘Cold Case’ 볼셰비키 2015.01.23 74
558 [중동] How the legal punishments handed out in Saudi Arabia compare to those of Isis 볼셰비키 2015.01.23 122
557 [세계경제] Richest 1% will own more than all the rest by 2016 볼셰비키 2015.01.23 149
556 [그리스] IBT: Managing the Greek Crisis Syriza & the Dangers of Popular Frontism 볼셰비키 2015.01.25 52
555 [영국] British Muslim school children suffering a backlash of abuse following Paris attacks 볼셰비키 2015.01.25 162
554 [그리스] IMT: No to coalition of Syriza with Independent Greeks 볼셰비키 2015.01.28 614
553 [그리스] Independent Greeks: Who are Syriza's right-wing coalition partners and what do they want? 볼셰비키 2015.01.28 109
552 [그리스] Interview with KKE's Kostas Papadakis on Why KKE Does Not Support SYRIZA: "We Are Against the EU, NATO, and Chains of Capitalism" 볼셰비키 2015.01.28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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