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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필품 부족이 장기화하면서 슈퍼마켓 앞에 줄을 서는 것은 일상이 됐다. 사진은 수도 카라카스에서 2014년 5월에 촬영된 것임.
생필품 부족이 장기화하면서 슈퍼마켓 앞에 줄을 서는 것은 일상이 됐다. 사진은 수도 카라카스에서 2014년 5월에 촬영된 것임.ⓒ신화/뉴시스

편집자주/베네수엘라의 정치, 경제적 위기를 서방 언론이 제공하는 창을 통해 이해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열흘 전에 게재한 미국의 경제 아작내기와 베네수엘라 야당의 ‘자해 공격’가 위기의 정치적 측면에 대한 하나의 견해였다면, 이번엔 경제적 측면에서 위기를 분석한 장문의 기사를 게재한다.

이 기사는 미국의 대안언론 카운터펀치에 실린 Ryan Mallett–Outtrim의 칼럼이다.그는 호주 출신의 저널리스트로 베네수엘라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대안언론 venezuelanalysis.com의 멤버이기도 하다. 원문은 Does Venezuela’s Crisis Prove Socialism Doesn’t Work?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더이상 이런 상태로 버티지는 못할거야”.

열대의 더위 속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며 나는 생각했다. 내 앞에는 아직도 서른 명 정도가 있었는데, 슈퍼마켓의 수위들은 너무 느리게 한 두 사람씩 들여보내고 있었다. 짜증섞인 탄식을 내지르고 싶었다. 장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라도 때우려고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중년의 아주머니에게 슈퍼마켓마다 길게 늘어선 줄들, 생필품난, 그리고 전반적인 경제 침체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베네수엘라의 상황에 대해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끝날 무렵이 되자 그녀는 앙칼진 목소리로 “카스트로 공산주의”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콜롬비아와 쿠바의 간첩이라는 음모설에 대해 소리소리를 지렀다. 불과 몇 분 만에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국가와 정부, 그리고 국민. 그 무엇도 그녀의 분노를 피하지 못했다.

오해하지는 않기를. 나도 그녀의 좌절감과 분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외신기자들과는 달리, 나는 베네수엘라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빈민가에 살았고, 맥주는 길모퉁이 구멍가게 앞에서나 마셨다. 물가상승이 내 저축을 갉아 먹어, 일주일에 한번씩 장을 보는 것이 시간적, 경제적으로 점점 버거워졌다. 베네수엘라에 곧 위기가 닥칠 것 같았다. 이런 상태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도 벌써 2년전 얘기다.

슈퍼마켓에서 인터뷰한 아주머니와 같은 사람들은 현재의 경제 위기를 정부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탓으로 돌린다. 반면 정부의 지지자들은 마두로 대통령를 끌어내리려는 (주로 미국이 주도한다는) 음모론을 거론한다. 대체로 전자는 베네수엘라를 1980년대 후반의 소련, 후자는 1970년대 초반의 칠레로 묘사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물론 오늘날의 베네수엘라를 만드는 데에 사회주의의 역할이 컸고, 미국 정부는 남미의 몇없는 눈엣가시가 무너지면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가 직면한 경제위기는 아주 지루하고 재미없는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다.

잘못된 통화정책이 그것이다.

물가상승과 화폐가치 하락의 악순환

베네수엘라는 고정환율제를 채택한 나라다. 정부가 달러를 기준으로 환율을 정한다. 고정환율제 자체가 사회주의적 제도인 것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부터 네덜란드령 아루바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나라들이 고정환율제를 사용하니 말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통화 정책에는 또다른 특징이 있다. 정부가 베네수엘라 화폐인 볼비바르화의 환전을 완전히 통제한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 환전하려면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국영 환전소를 가거나, 암시장을 가거나. 10년전만 해도 이런 제도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2012년 후반기부터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이 유난히 심각해졌다. 차베스 정권치고는 말이다. 마두로의 선임자 우고 차베스는 늘 높았던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연간 물가상승율은 2006년부터 2011년 사이에 낮게는 13%, 높게는 30% 정도였다. 높은 수치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베네수엘라의 기준에서는 매우 낮은 수치다.

차베스가 처음으로 당선됐던 1998년의 전 해인 1997년에는 50%, 그 전 해인 1996년에는 물가상승률이 99.9%에 이르렀다. 차베스가 물가를 꽤 잘 잡은 것이다.

그러나 2012년 후반이 되자, 10여년간 안정적이었던 물가가 갑자기 치솟기 시작했다. 동시에 볼리바르의 암시장 가치는 급락했다. 2012년 10월엔 13볼리바르로 1달러를 살 수 있었지만, 6개월 후에는 20볼리바르가 필요했다.

경제학자 마크 와이스브롯(Mark Weisbrot)이 “물가상승과 화폐가치 하락의 악순환(inflation depreciation spiral)”이라 일컫는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암시장에서 볼리바르를 달러로 환전했다. 저금을 보호하려는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한두 명만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볼리바르가 암시장에서 폭락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환전했다는 점이다.

수많은 수입업체들이 암시장에서 달러를 조달했기 때문에 수입품 가격이 올랐고, 대부분의 소비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의 물가가 덩달아 올랐다. 그러니, 더 많은 사람이 볼리바르를 팔았다. 저절로 지속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악순환의 시작에 대해 몇 가지 다른 주장이 있다. 와이스브롯은 정부가 공식 환전제도를 통해 팔던 외화를 줄였기 때문에 암시장에서 외화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고 주장한다. 다른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2012년에 볼리바르화를 너무 많이 찍어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더 장기적인 요인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우파는 낮은 국내 생산성을 거론하고 좌파는 환투기와 고의적 사보타주를 원인으로 꼽는다. 다 맞는 측면이 있는 얘기들이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이든, 정부가 초기에 통화문제를 잡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정치 때문이었다.

더 중요한 일이 늘 있었다

정부는 2012년 내내 10월 대선에 매달렸다. 그런데 대선에서 압승한 지 2개월 만에 차베스가 암으로 입원했고, 마두로 당시 부통령이 정부를 이끌게 됐다.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마두로는 통화정책을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차베스가 2013년 3월에 사망하자 베네수엘라는 또 다시 대선 정국에 돌입했다. 갑작스럽게 치러진 대선에서 마두로는 1.5% 포인트 차이로 신승했다. 좌우 할 것 없이 모두가 동의했다. ‘마두로가 그나마 이긴 건 그가 차베스의 후계자였기 때문’이었다고. 그 후 마두로는 웬만하면 차베스의 정책을 유지하려 했다. 통화정책도 말이다.

게다가 2013년 12월에는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2013년 말까지 선거정국이 이어진 것이다. 정부가 2013년 중반에 환전제도를 개혁했다 하더라도 지방선거 이후에나 그 결과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또 뒤로 미뤄졌다.

그렇다고 환전제도에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3년 3월, 정부는 사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외환경매제도(SICAD)를 발표해 7월부터 경매를 매주 실시했다. 실시 초기 1달러는 약 11볼리바르에 경매됐다. 당시 암시장의 환율이 1달러에 20볼리바르였으니 정부가 기업들에게 엄청난 보조금을 주는 셈이었다. 정부는 지나치게 낮은 경매가격 때문에 1달러를 팔 때마다 거의 1달러를 잃었다.

이것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과 화폐가치 하락의 악순환“를 이해하는 주요 실마리 중 하나다.

대부분의 정부는 자국의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재정수입을 수출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 같은 국가의 경우, 특히 이를 좋아한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재정수입의 대부분을 석유 수출에 의존한다. 재정수입의 대부분이 달러화란 소리다. 하지만 임금을 포함한 일상적인 재정지출의 대부분은 볼리바르화를 사용한다. 볼리바르의 가치가 떨어지면 정부의 재정상태가 좋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정부는 공식채널을 통해 사실상 볼리바르화의 가치를 계속 보조해 줌으로써 안타깝게도 자기 무덤을 팠다. 정부는 볼리바르화의 가치가 암시장에서 곤두박질해도 공식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부담을 떠안았다. 2012년 경매로 1달러를 팔 때마다 거의 1달러를 잃던 정부는 이제 1달러 이상씩 잃고 있다. 정부의 경매 시장에서는 1달러가 450볼리바르인데 암시장에서는 1050볼리바르이기 때문이다.

한편, 기업들은 수입에 필요한 달러화를 정부가 제대로 공급해 주지 못한다고 아우성이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누가 봐도 이런 환전제도는 지속가능성이 없으니 말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1달러당 10볼리바르로 고정된 ‘특혜환율’이다. 암시장의 10%도 안되는 환율이다. 베네수엘라에서의 공식 환전 중 70%가 특혜환율로 이뤄진다고 한다. 경제 전반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환전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자기 무덤을 판 베네수엘라 정부

통화정책이 일으킨 문제는 너무 많다. 최근 몇 달 사이에 베네수엘라 관련 기사를 한번이라도 접해 본 사람이라면 주식인 옥수수 가루조차 없는 텅텅 빈 슈퍼의 선반들을 봤을 것이다. 우익은 신나서 이런 사진들을 흔들면서 베네수엘라를 옛 소련에 비교한다. 하지만 페레스트로이카 시절의 소련과는 달리, 베네수엘라의 소비재 난은 낮은 생산성과 거의 관련없다. (이 문제는 뒤에 다시 논의할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1970년대부터 거의 대부분의 식량과 소비재를 수입에 의존했다. 이는 사회주의와 무관하다.

지나치게 높은 수입의존도는 오히려 아주 기본적인 자본주의 시장 원리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는 수십년간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을 심하게 앓았다. 네덜란드 병은 굉장히 수익성이 높은 하나의 경제 분야 때문에 나머지 경제 분야가 쇠퇴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베네수엘라의 경우는 석유산업 때문에 농업을 포함한 기타 경제 분야가 오랫동안 등한시됐다. 그리고 이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그냥 필요한 모든 것을 수입한 것이다.

하지만 사기업은 외화가 없으면 수입을 할 수 없다. 수입의존도가 높은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공식 환율과 비공식 환율간의 차이가 있으니, 그 자체로도 네덜란드 병과 흡사한 현상이 벌어진다. 수입업자에게 수입을 하지 않을 동기가 생기는 것이다.

2000년대 말에 기승부리던 ‘회전목마 사기’가 그 대표적 예다. 수입업자가 특혜 환율로 정부에 외화를 신청해 의약품과 같은 필수품을 수입했다가, 이를 아예 하역하지도 않고 다시 수출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이 상품들을 팔면 정부가 정한 낮은 가격으로 팔아야 하니까 포장을 풀지도 않고 외국으로 빼돌리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 수입업자는 할당받은 외화를 암시장에서 팔아 짭짤한 재미를 본다. 그리고는 이를 다시 반복한다.

수입업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정부로부터 외화를 싸게 사서 암시장에 비싸게 팔았다. 합법적 사업으로는 도저히 벌 수 없는 큰 돈을 챙기는 방법이었다.

모든 기업이 수입이나 판매, 건설, 제조, 서비스 등의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차등적인 환율을 가지고 돈을 벌려고 한다면 경제는 어떻게 될까? 결국 베네수엘라에서 돈버는 방식에는 환투기와 부정부패만 남았다. 달리 말해, 경제를 망가뜨리는 다중적 환율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놀라울 정도로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것이다. 이는 집에 침입한 도둑에게 총알과 야구 방망이를 사주는 것만큼이나 멍청한 짓이다.

문제 해결을 뒤로 미루기

전반적으로 봤을 때, 베네수엘라는 구소련 2.0도, 사회주의를 압살하려는 제국주의적 개입의 피해자도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현위기는 문제 해결을 지나치게 뒤로 미룬 무능한 정부 때문이다.

마두로 세력의 2013년 지방선거 승리 직후만 해도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 2014년 1월, 외환경매제도(SICAD)가 확대됐다. 2월에는 SICAD II를 만들어 차베스 시절의 민간외환시장을 사실상 부활시켰다. 그때부터, 여러 창의적인 약어만 남긴 채 온갖 ‘혁명적’인 환율제도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CADIVI는 SITME에게 자리를 내줬고, SICAD I과 SICAD II는 “SICAD”로 통일됐다. 또 다른 환율제도인 SIMADI가 생겼을 때쯤에는 SITME가 없어졌다. 그랬다가 DIPRO가 CADIVI와 별반 차이없는 CENCOEX를, DICOM이 SIMADI를 대체했다. 이쯤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이다.

새로운 환율제도를 도입할 때마다 정부는 그 제도가 모든 환전문제를 해결할 묘책이라 선전했다. 그러다가 6개월쯤 지나 아무 효과가 없으면 그 ‘묘책’을 다른 제도로 교체해버리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환율제도는 점점 복잡해졌다. DICOM과 SICAD II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SITME와 SIMADI의 기술적 차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수년간 정부에게 주어진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통제가 잘 이뤄지고 잘 돌아가는 단순하고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고정환율제도를 구축하던가, 변동환율제를 도입하던가. 그러나 베네수엘라 정부는 완전히 다른 선택을 했다. 좌-우-중앙할 것 없이 모든 곳에 빠져나갈 구멍과 사각지대가 있는, 최대한 복잡하고 비효율적이고 엉망인 환전제도를 만든 것이다. 앞뒤가 맞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은 부당하게 이용될 수 있다. 가혹한 얘기일지는 모르지만, 사실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뮤지컬 내각’: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정부가 왜 이런 길을 택했는지 의아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명백한 이유가 있다.

한가지 시나리오는 이미 앞서 언급했다. 마두로 정부가 차베스의 유산을 해치지 않으려고 했을 수 있다. 차베스가 고정환율제를 좋아했다면, 마두로도 고정환율제를 좋아해야 하는 것이다. 부패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환율제도로 이익을 취하는 사람이 정부 안팎으로 너무 많기 때문에, 현상유지를 하라는 압력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핵심적 문제는 그게 아니다. 핵심적 문제는 “뮤지컬 내각(musical ministries:별 의미없는 자리를 바꾸는 내각, 먼저 자리를 차지하는 게임인 Musical chairs를 빗댄 표현이다/편집자주)”이다.

2013년 4월 마두로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호르헤 히오르다니 재무장관을 친자본주의적인 텔슨 메렌테스로 교체하면서 그에게 물가상승률을 한자리로 낮추라는 실현불가능한 특명을 내렸다. 또, 재무부를 반으로 쪼개, 덜 중요한 ‘기획부’를 히오르다니에게 맡겼다. 8월에는 마두로의 초대 중앙은행 총재였던 에드미 베탕쿠가 친자본주의적인 에우도마르 토바르로 교체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두로가 시장주의적 개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14년 1월, 마두로는 메렌테스를 무능하기로 악명높은 로돌포 마르코로 교체하고 재무부와 은행부를 통합했다. 또 그 와중에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메렌테스에게 중앙은행을 맡겼다.

2014년 6월, 히오르다니가 마침내 기획장관 자리에서도 쫓겨나, 사회주의통합당(PSUV)의 경제 좌파가 치명타를 입었다. 9월에는 오랜 실세인 친자본주의자 라파엘 라미레즈가 외무부로 좌천되면서, 어쩌다 보니 마르코가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수장인 경제부통령이 됐다.

이제부터가 진짜 재미있다. 2016년 1월, 악명을 떨치고 있는 루이스 살라스가 경제부통령과 새로 생긴 “생산적 경제부” 장관을 겸임하게 된 것이다. (살라스는 물가상승이 없다는 둥, 터무니 없는 주장들로 계속 논란을 일으켰다.) 또, 2014년 1월 통합시켰던 재무부와 은행부를 다시 분리해 후자를 중도파 로돌포 메디나에게 맡겼다. 마르코는 그 중요한 식품안전장관이 됐다. 그러나, 불과 5주만에 살라스는 기업 로비스트로 활약했던 미구엘 페레즈로 교체됐다.

이게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다. 에너지석유부와 석유공사(PDVSA)는 건드리지도 않았고, 주요 개각 중 몇몇은 분명히 빠뜨렸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자세히 읽었다면, 최악의 경제정책들이 주로 친자본주의자들 하에 등장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어쨌든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확실해졌을 것이다 – 베네수엘라의 경제팀은 2013년부터 혼돈상태였다. 짧았던 2015년의 안정기를 제외하면, 베네수엘라의 경제팀은 몇 개월에 한번씩 대대적 인사개편이나 조직개편을 당했다. 나는 이를 “뮤지컬 내각”라 부른다. 끊임없이 인사이동이 이뤄져서만은 아니다. 새로운 얼굴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이 이 자리 저 자리를 떠돌 뿐, 새로운 피는 수혈되지 않았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피상적인 움직임만 있지, 실질적 변화는 없었다. 이를 알고 나면, 그 많던 DIPRO, CADIVI, SICAD, SIMADI 등이 훨씬 이해가 될 것이다.

마두로 정권과 차베스 정권의 차이는 무엇인가

베네수엘라 정부는 2012년 후반부터 어려운 경제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조치도 불사했던 차베스 시절과는 사뭇 다르다. 2002~03년의 석유산업 총파업 및 파괴 사태부터 2008년 화폐개혁까지, 차베스 정권은 당시에는 비판받기도 했던 힘든 결정을 수없이 많이 내렸다.

그러나 마두로 정권이라고 말할 때 떠오르는 독자적이거나 확실한 경제정책은 하나도 없다. 필요한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고, 경제는 완전히 망가졌다.

수치를 직접 보라.

누가 봐도 알겠지만, 베네수엘라의 GDP나 물가 상승률, 빈곤율은 한동안 문제가 없었다.

위의 그래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더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차베스가 당선된 1998년만 해도 베네수엘라 국민의 절반을 차지했던 빈곤층이, 2012년에는 25%로 떨어졌다. 차베스가 말 그대로 빈곤을 반으로 줄인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 차베스는 높기로 악명 높았던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도 잘 통제했다 (2012년에 21.1%였다). GDP도 마찬가지다. 베네수엘라의 1998년 경제성장률은 0.3%에 불과했다. 경제가 희망도 없이 제자리 걸음했던 것이다. 하지만 2012년의 경제성장률은 5.6%에 이르렀다. 같은 해 이웃의 콜롬비아는 4.0%, 그리고 미국은 세계 평균과 비슷한 2.3%였다는 걸 감안하면 인상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유리한 수치만 지적하는 것 같다면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 보라. 당신도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 차베스 정권하에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꽤 잘 돌아갔다.

하지만 2012년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물가는 치솟고, 경제성장률은 곤두박질치고 빈곤층이 다시 증가했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100%를 훌쩍 넘었고, 경제는 5.7%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2013년의 빈곤율은 31%였고, 현재는 그보다 더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 그래프가 이런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1인당 구매력 평가기준 GDP는 삶의 질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지수 중 하나다. 그런데 베네수엘라의 1인당 구매력 평가기준 GDP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 급감했어도, 대체적으로 차베스 정권 시절 굉장히 많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추세도 2012년부터 꺾였다.

달리 말하자면,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차베스와 마두로의 사회주의 정권 때문에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은 게 아니다. 수치들을 보면, 활기를 찾은 경제가 2012년부터 나빠진 것이다.

그렇다고 몇몇 차베스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차베스 정권 시절이 지상낙원이었고, 현 위기는 모두 마두로 정권 탓이라고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곧 설명하겠지만, 현 위기의 씨앗은 차베스 정권때 이미 뿌려졌다. 그래도 차베스와 마두로의 통치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차이가 현 위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치 않다. 차베스가 사망하지 않았어도 베네수엘라가 오늘의 상황까지 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 개인적으로는, 차베스라면 개혁을 더 잘 추진했을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이런 견해를 입증할 길은 기회는 사라졌다.

장기적 요인들

문제투성이의 통화정책이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 2012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던 장기적인 문제들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들이 볼리바르화를 취약하게 만들고, 베네수엘라가 현 위기까지 오게 된 데에 핵심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제일 근본적인 문제는 베네수엘라의 석유의존도다. 어떤 정권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네덜란드 병’의 잠재적 치명성을 잘 알던 차베스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산업을 다각화하려 노력했다.

2008년까지 농업이나 제조업과 같은 산업이 베네수엘라 경제에서 점점 중요해졌다. 정부의 산업다각화 노력이 성공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계금융위기 때문인지 2008년부터 베네수엘라는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과 2014년 사이 식료품 수입은 3배로 증가했다. 더 일반적인 수입품과 서비스를 봐도, 이들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 금융위기 이후, 대략 2010년부터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급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차베스 시절, 수입품을 포함해 국민의 소비는 전반적으로 증가했다. 예를 들어, 1990년대만 해도 괜찮은 칠레산 와인 한병을 마시는 것은 재계의 엘리트가 아니면 꿈도 못 꿨다.

그런데, 나는 최저임금을 받으면서도 2013년까지 일년에 몇 번은 와인을 살 수 있었다. 문제는, 특히 2008년 이후, 국내 생산성이 증가하는 소비자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 이는 대대적인 빈곤 척결을 위해 충분히 치를만한 대가로 간주됐다.

한 차베스주의자가 상점에 우유가 부족하다고 불평한 야권인사에게 한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상점에 우유가 없는 이유는 “우유가 가난한 사람들의 뱃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두에게 충분할 정도로는 없어도, 한때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우유를 누구든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이었다.

베네수엘라는 요즘도 수입품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나 이제는 볼리바르 가치가 너무 떨어져 와인 같은 수입품은 살 수 없을 정도로 비싸졌다. 석유외 분야의 국내 생산성도 떨어져 우유도 점점 구하기 어려워졌다. 그리고 석유수출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커졌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 유가의 하락은 베네수엘라 경제의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현위기가 아주 새로운 일도 아니다. 베네수엘라는 1970년대부터 국제 유가에 따라 호황과 불황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차베스는 운이 좋았다. 차베스의 황금기에는 국제 유가가 전례없이 높았고, 마두로 집권 이후 국제유가가 곤두박질쳤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산유국이 지금의 베네수엘라처럼 위기를 맞이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운이 나빴어도, 마두로 정권은 2013년이나 2014년에 통화정책 개혁으로 오늘과 같은 위기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낮은 생산성과 우익의 사보타지는 하룻밤에 해결될 수 없다. 그러나 통화정책은 비교적 빨리 건전해질 수 있다. 국제 유가나 고질적인 ‘네덜란드 병’과는 달리, 마두로 정부는 통화정책을 개혁할 상당한 능력이 있었지만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어도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오늘날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이정도의 경제적, 정치적 위기는 닥치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제 유가가 급락하지 않았어도, 베네수엘라가 언젠가는 위기를 맞았을 것이다. 완전히 실패한 통화정책 때문에 말이다.

믿기 힘든 사실

어떻게 봐도 실패한 통화정책이 베네수엘라 위기의 결정적 원인이었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정부가 개혁을 계속 미루고 혼란에 빠진 결과 이렇게 됐다. 우익처럼 현위기를 두리뭉실하게 사회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차베스 시절의 모든 성과를 무시할 때만 가능하다. 게다가 마두로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주로 PSUV의 친기업파들이었다. 또, 어떤 야당도 현재의 경제적 위기를 타개할 만한 정책을 제안하지 않았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좌익처럼 현위기를 제국주의의 음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부가 이런저런 실수를 명백히 저질렀다는 것을 무시할 때만 가능하다. 솔직히 미국이 볼리바르 혁명을 뿌리뽑으려고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마두로 정권이 음모 가담자들에게 좋은 조건을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정부도 지난 몇 년간 이뤄진 사보타지를 막을 길이 딱히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통화정책처럼 상대적으로 통제하기 쉬운 요소들은 더욱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잘못된 통화정책은 너무 오랫동안 경제의 기반을 갉아먹었다. 그리고 이제는 끝이 보이질 않는 정치적 위기도 닥쳤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이런 식으로 베네수엘라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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