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아이티] 유엔군이 저지른 아이티판 ‘도가니’

by 볼셰비키 posted Apr 2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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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이 저지른 아이티판 ‘도가니’

유엔 평화유지군이 각국에서 평화를 망가뜨리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달걀이나 75센트를 주고 10~16세 어린이와 성관계를 하고, 성폭행을 일삼았으며, 파병지에서 무기 밀매에 나서기도 했다.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2011년 10월 06일 목요일 제2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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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분쟁지역 곳곳에는 세계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해 유엔이 편성한 국제 군대인 유엔 평화유지군(UN PKF:UN peace-keeping force)이 주둔한다. 푸른색 유니폼과 헬멧을 착용하며, 청색 베레모는 유엔군의 상징이다. 동티모르 내전을 취재할 당시 필자는 이 푸른 헬멧을 쓰고 들어오던 유엔군이 주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 것을 목격했다. 그 푸른색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러 온 구세주와도 같았다.

이처럼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져온 유엔군이 오히려 평화를 파괴하는 가해자로 전락한 사건이 근래 들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가뜩이나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다시 피해자로 내모는 사건은 파견국과 주변국 간 외교 갈등은 물론이고 유엔 평화유지군 무용론까지 불러오고 있다.

대지진을 겪은 아이티에는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미국·일본 등 19개국에서 온 군인 7800여 명이 주둔하고 있다. 유엔은 2004년 아이티에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이 민중 봉기로 축출된 뒤 유엔군을 신속하게 파견해 이 나라 치안 유지와 구호 활동을 펼쳐왔다. 그런데 지난 8월 아이티의 한 휴대전화 가게에 유엔군 한 사람이 들어섰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음악과 동영상을 파일로 다운로드하는 방법을 물었다. 가게 점원은 이 유엔군이 맡기고 간 휴대전화의 파일을 내려받다가 충격적인 영상을 발견했다. 아이티 청소년을 유엔군이 성폭행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문제의 동영상을 발견한 점원은 이를 지역 언론사에 넘겼다. 영상이 공개되자 아이티 국민은 충격을 받았다. 영상에 등장하는 피해자는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이고, 범죄를 저지른 유엔군은 우루과이군으로 밝혀졌다.


  
ⓒXinhua
아이티에서는 유엔 평화유지군의 성범죄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위는 아이티의 유엔 평화유지군.
성범죄 저지른 뒤 “입 다물라” 협박


아이티 남부 도시 포르살뤼에서는 수백여 명이 성폭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미셸 마르텔리 아이티 대통령도 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은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위다”라고 규탄했다. 2007년에도 아이티에서는 유엔군 소속 스리랑카군이 10~16세 아이들을 상대로 음식이나 75센트가량을 지급하면서 성관계를 맺어 문제가 된 일이 있다. 이번 사건 때문에 현재 아이티에서는 유엔군 철수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이번 사건을 “이라크 전쟁의 야만성을 알린 ‘제2의 아부 그레이브 사건’이다”라고 비판했다.


사실 유엔군의 성범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대사관 문서에 따르면 서아프리카 베냉 출신 유엔군이 음식을 주거나 잠을 재워주는 조건으로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졌다. 국제아동권리기관 세이브더칠드런(STC)이 2009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이 문건에서 미성년자 10명 가운데 8명은 군인들과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가졌다고 답했다. 유엔 조사 결과 군인 14명이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일도 있다. DNA 검사까지 동원된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 낳은 아이들의 아버지가 이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유엔군은 그 외에도 많은 나라에서 성범죄를 저질렀다. 2007년 730명 규모의 모로코 평화유지군 대대는 코트디부아르 북부 부아케 지역에서 수행하던 임무가 정지됐다. 지역 여성들과 성관계를 맺은 혐의 때문이었다.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도 유엔군 병사들이 10대를 포함한 현지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등 200여 차례에 걸쳐 성범죄를 저질렀다. 병사들은 술가게 등지에서 여성들을 성폭행하거나 관계를 맺은 뒤 유엔 당국의 조사에 협력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거나 뇌물을 건넸다고 한다. 

소녀들은 대부분 유엔 병사들이 건네는 음식 때문에 이들과 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배고픔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유엔 병사들이 내민 것은 달걀이나 빵이었다. 소녀의 부모들도 음식을 얻기 위해 유엔군과의 성관계를 독려했다. 기아에 허덕이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파병된 유엔군이 음식을 미끼로 성범죄에 나선 것은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할 만했다.

유엔 감찰국(OIOS) 통계에 따르면 2007 ~2011년 유엔 평화유지군 및 직원으로 인한 성폭행 사건은 440여 건에 이른다. 올해 성폭행 및 성적 학대 사건이 42건 발생했다. 이 가운데 유엔군이 저지른 범행은 25건이다.

유엔군의 성범죄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데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유엔 자체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극적이고 문제를 덮어두기 급급했기 때문이다. 유엔은 대부분의 성범죄 수사를 비밀주의로 일관한다. 유엔의 이 같은 비호 아래 유엔군 성범죄 사건의 세부 내용이나 범인의 인적 사항은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가해 군인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성폭행 군인들, 처벌받지 않고 귀국


유엔 평화유지군 성폭행 조사위원회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성폭행 군인들이 처벌 없이 비밀리에 본국으로 송환되는 일이 대부분이며, 본국으로 소환됐다가 다른 국가로 파견되기까지 한다고 밝혔다. 이번 아이티 사건과 관련해 우루과이 해군의 세르히오 비케 대변인은 “유엔이 진행한 사전 조사에서 소년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부적절한 장소에서 부적절한 시간에 일어난 짓궂은 장난이었다”라고 변명했다. 이번 사건을 조사 중인 유엔 아이티 지부의 엘리안 나바 대변인은 “유엔이 아직 어떠한 결론에도 도달하지 않았다”라고 발표했다.


  
ⓒReuter=Newsis
유엔 평화유지군이 2007년 3월 콩고민주공화국 반군에게서 빼앗은 무기를 운반하고 있다.


유엔군은 파병지에서 무기 밀매에 나서기도 한다. 2007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에서는 유엔군이 반군들과 무기 밀매를 했다. 민주콩고 북동부 몽발루 금광 지역에서 유엔군으로 근무 중인 파키스탄 1개 대대가 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장교까지 나서 직접 민병대와 거래에 나선 것이다. 이들 민병대는 현지 금광을 지배하며 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이었다. 그런데도 유엔군은 무기를 민병대에 주는 대가로 금을 챙겼다. 현지 사업가는 “양측이 친구가 되었으며, 금은 파키스탄으로 옮겨졌다”라고 증언했다. 유엔군과 반군 간의 이 은밀한 거래는 점점 규모가 커졌다. 심지어는 케냐에서 인도 상인들을 데려와 밀매를 중개하기도 했다. 의혹이 불거지자 유엔이 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했지만 오히려 유엔군에게 갖은 위협을 당해야 했다. 결국 파키스탄군이 회수한 무기를 반군들에게 되돌려주었다는 증언과 정황까지 파악되었다. 하지만 민주콩고의 윌리엄 스윙 유엔 대사는 “회수된 총기 2만여 점은 무기고에 그대로 보관돼 있다”라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유엔 또한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서인지 보고서를 묵살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바람에 여론의 공분을 샀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는 1994년부터 유엔 평화유지군에 경고를 해왔다. 앰네스티는 “일부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견된 지역 국민의 인권을 무시하고 활동해 파국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라고 밝혔다. 1994년 작성된 앰네스티 보고서는 “유엔 평화유지군의 활동이 인권 보호에 전반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으나, 일부에서 유엔 관계자들은 심각한 인권 유린이 계속되는데도 침묵으로 방관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유엔군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둘러싸고 일어난 제1차 중동전쟁 때 파견된 것을 시작으로, 세계 분쟁지역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임무를 띠고 파병되었다. 1988년에는 그 공로로 유엔 평화유지군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도 16개국이 파병해 지금의 한국을 만드는 데 일조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의 유엔군은 ‘유엔 평화파괴군’이라는 우스갯소리로 불릴 만큼 분쟁지역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인권 유린 사건에 연루돼 있다. 분쟁지역에서 유엔군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유엔군이라는 이름으로도 분쟁지역 주민들에게 많은 희망을 준다. 그 푸른 제복이 가져다주는 평화의 이미지는 우리 인류가 끝까지 지키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다. 유엔이 좀 더 적극적으로 유엔군에 대한 개혁을 단행해 지금의 오명을 씻고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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