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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의 검증을 이겨내지 못한 이론*

 

 

 

 

 

 

 

소련 및 그와 유사한 사회 경제적 구조를 가진 나라들을 국가자본주의로 보는 클리프의 이론은 공리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일련의 가설들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중 여섯 가지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소비에트 사회와 서유럽과 미국 및 일본 사회는 그들이 모두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질적으로 동일하다.

)소련에는 사적 소유에 기초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자본가로 특징지을 수 있는새로운 지배계급이 존재한다.

)소비에트 경제는 국내에서의 경쟁은 제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시장을 통해서 작용하는가치법칙에 의해 근본적으로 지배된다.

)서구나 일본의 자본가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지배계급은 기본적으로 축적의 필요, 생산을 위한 생산에 의해 추동된다.

)소련에서 과잉생산 공황은 조직화된 자본주의가 그것을 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조직화된 자본주의로의 경향과 그들 경제에서의 군비 부문의 중요성 때문에, 일반적인 과잉생산 공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15년 동안의 사건들은 이러한 독단적인 주장들 하나하나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1974~75년 및 1980~82년에 있었던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일반화된 불황은 인플레이션 완화 효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고전적인 과잉생산 공황이었다. 규모 면에서 그것은 지난 1세기 반의 자본주의 과잉생산 공황의 평균 수준을 밑돌기보다는 그 이상의 수준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조직화된 자본주의라는 신화와 힐퍼딩의 총카르텔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인가?

소련에서 이와 유사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만일 소련에 공황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용가치(희소성)의 과잉생산 공황이지, 교환가치(상품)의 과잉생산공황은 아닐 것이다. 첫 번째 것이 두 번째 것의 변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엄청난 오류이다. 텅 빈 상점은 판매되지 않은 재화로 가득찬 상점의 변종이 결코 아닌 것이다.

자본주의의 부활과정이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진행되고 있다. 적어도 한 나라, 즉 동독에서는 그 과정이 거의 완료되었다. 이들 나라의 어느 누구도 또는 세계의 어느 누구도 이 명백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른 한편, 이 명백한 사실은 국가자본주의 이론의 추종자들에게 하나의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어떻게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가 다시 부활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들은 사적 자본주의국가자본주의와 다르다고 주장함으로서, 이러한 난점으로부터 빠져나오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 단계 더 뒤로 밀어 놓을 뿐이다. ‘국가자본주의사적 자본주의간의 차이는 질적인 차이인가? 만일 그렇다면, 왜 자본주의라는 동일한 개념을 사용하여 두 가지 경우 모두를 포괄하려 하는가? 아니면, 그 차이는 순전히 양적인 차이인가? 만일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더 큰 문제점이 다시 나타난다. 우리는 과연 동독과 서독 사이에 단지 양적인 차이만 존재한다고 진지하게 주장할 수 있는가? 통일 독일은 동독의 기존 사회 경제체제에 어떠한 기본적인 변화도 가져오지 않는가? 북한 사회와 남한 사회는 질적으로 동일한가?

자본주의의 성격을 단순히 축적에의 소망(‘생산을 위한 생산’)으로 환언하는 것은 자본론1권과 제3권의 많은 부분과 제2권 전체를 기각하는 것과 다름없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일반화된 상품생산이다. 모든 상품은 그 자신 안에 상품과 화폐 간의 모순뿐만 아니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간의 모순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한 조직화된 자본주의, 적어도 마르크스가 분석하고 정의한 의미에서의 자본주의는 더 이상 아니다.

자본은 그 출발점부터 화폐자본으로 존재하고 그것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자본은 가치를 증식하고자 하는, 즉 이영가치를 추구하는 가치이다. 자본은 생산과정 중에는 화폐 형태를 취할 수 없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최초의 화폐 형태를 되찾아야만 한다. 화폐 없이는 자본 축적도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주장은 난해한 추상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문제의 핵심에 있다. 단지 자신이 착취하는 노동자로 하여금 최대한의 잉여가치를 생산하도록 하는 것만으로는, 자본가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다. 자본가는 컬러TV로 가득 찬 창고를 기계나 강철의 추가분, 또는 노동자 임금의 추가분, 또는 자신의 소비를 위한 전용 제트기로 바꾸어 놓을 수 없다. 그는 단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자본을 축적할 수 없다. 그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생산된 상품의 판매를 통해 그 잉여가치를 실현해야만 한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확대)재생산과정, 즉 축적과정은 잉여가치의 생산과정과 실현과정의 통일이다. 이 양자는 결코 자동으로 일치되지 않는다. 실현과정 없이는 어떠한 축적도 가능하지 않다. 주기적인 과잉생산 공황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것은 이 같은 통일의 두 축간의 불가피한 모순이다. 더구나 이 모순은 자본주의 경제에 전형적인 일련의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 이 메커니즘은 마르크스가 주의깊게 분석했으며, 자본주의 경제의 운동법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따라서 한 사회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인지 아닌지를 가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해야 한다(그리고 그것을 사실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자본주의 운동법칙의 존재가 입증되는가?

직접생산자로부터 잉여노동이 추출되는 것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밤에는 모든 고양이가 회색으로 보인다. 원시 공산주의 이래 수천 년 동안, 잉여노동은 직접생산자로부터 항상 추출되어 왔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미래의 무계급 사회주의 사회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잉여노동 추출이 모든 사회들을 자본주의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무계급 사회를 제외한) 각 사회의 성격은, 최종 분석에 이르면, 잉여노동이 추출되는 특수한 형태에 의해 규정된다고 말한다.(Marx-Engles Works, vol. 27, p. 799). 그리고 자본주의에서는 노동력의 상품으로의 전화, 화폐를 목적으로 하는 노동력의 판매, 화폐를 목적으로 생산수단을 구매하는 자본가, 자본가에 의한 임금노동 생산물의 전유, 그리고 대강의 평균이윤을 취득하기 위한 상품의 판매 등의 특수한 형태를 취한다. 이러한 모든 특수한 메커니즘이 없는 자본주의는, 적어도 하나의 지배적인 생산양식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경제와 오늘날의 소비에트 경제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내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클리프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본질적인 요소들이 내버려지지 않는 한, 어떠한 유형의 일관성도 파괴한다. 그리하여 클리프의 이론이 자처하는 소련을 설명하는 데서의 어떠한 장점도 현대 자본주의를 설명하는데서는 상실된다.

관료가 지배계급이라는 생각은 헝가리, 폴란드 그리도 동독에서 일어난 사태를 감안할 때, 어이없는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어떤 지배계급이 이들 나라의 노멘클라투라의 상당 부분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의 무대로부터 문자 그대로 발끝으로 살금살금 퇴장한 적이 있었던가?

자본론1권 제1장에 따르면, 상품이 상품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상호간에 독립적으로 수행도니 사적 노동활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에트 경제를 자본주의 경제라는 맥락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 곳에서의 공업 노동이 상호간에 독립적으로 수행된 사적 노동활동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함축하는 것인데, 이는 가당치도 않은 묘사이다.

하나의 노동활동이 사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출된 (살아 있는 그리고 죽은) 노동비용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비용으로 간주되는지, 다시 말해 그 비용이 사회에 의해 지불될지의 여부를 어떠한 자본가(기업)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품이 판매된 후에야 비로소 자본가는 자신의 손익 여부를 알 수 있다. 만일 지출된 노동이 사회적으로 필요한것이었다면 그는 평균이윤을 획득하겠지만, 만일 사회적 노동이 낭비되었다면 그는 평균이윤 이하의 것을 획득하거나 또는 파산에 직면할 것이다.

손해를 보거나 평균이윤 이하로 판매되었음을 알게 되면, 그는 생산이 조직되는 방식을 변경하려 할 것이다. 그는 기술을 개선하고, 좀더 우수한 기계를 사용하고, 원료와 에너지를 절약하고, 자신의 노동력으로부터 좀더 많은 잉여노동을 추출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좀더 저렴한 신용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노동 조직은 우선 공장 소유자의 사적 결정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것은 경쟁과 시장에 의해 교정된다. 이러한 교정에 순응하지 않으면, 그 공장 소유자는 도태될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단지 하나의 전반적인 실행 척도(measure of perfomance)가 있으며, 그것은 다름아닌 실현 이윤(realised profits)이다. 생산성이 좀더 높아지고, 생산비가 좀더 낮아지면, 그의 이윤이 경쟁자의 이윤을 앞지를 개연성이 높아진다. 판매 후 이윤(post-sale profit)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자본주의 경제는 이윤에 기초한 경제이며, 이윤은 화폐의 형태로만 실현되고 측정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 유명한 가치법칙의 작용이 시작되는 것이다. 가치법칙은 등가로 교환되는 상품들을 통해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결정하며, 그리하여 자본주의에서 평균이윤을 창출하는 경향으로 작용한다. 모든 자본은 평균이하의 기업과 부문에서 빠져나와 평균이윤 이상의 기업과 부문으로 이동한다. 이를테면, 하면 자신이 강조하듯이, 자본주의에서 가치법칙의 본질적 기능이 생산자원의 객관적 메커니즘을 통한 배분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기업과 자본가는 물론이고 노동자에게도, 그들의 배후에서 그리고 그들의 의지나 결정과는 독립적으로 부과된다.

하지만, 가치법칙이 어떤 경제를 지배하는 것은 그 경제가 일반화된 상품생산 경제, 다시 말해 노동이 기본적으로 사적 노동인 경우에 한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는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들 사회에서 가치법칙은, 경제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할지라도, 결정적이지는 못하다. 11세기의 프랑스 농민, 18세기의 러시아 농민, 또는 20세기 전반의 페루 농민 등은 밀 가격의 등락에 따라 파종과 수확의 의사결정을 변경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 생산의 95%가 시장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생산자원의 대부분은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사람들에 의한 상이한 부문들에 직접 배분된다. 직접적이고 사전적인 배분은 가치법칙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후적인 배분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이와 같은 자원 배분의 두 가지 방식의 차이가 계획과 시장 간의 대립을 특징짓는 것이다.

소련에서 중요한 투자는 가치법칙을 통해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대부분 국가 수준에서 관료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은 자원의 직접적 배분에 관한 한, 계획경제이다(계획경제라는 개념은 어떠한 가치판단도 함축하지 않는다. 경제는 비합리적이고 심지어는 무의미한 방식으로도 계획될 수 있다). 과거 70년 동안, 대규모의 보조금을 요청하는 손실발생기업이 우선적으로 생산자원의 배분을 받아 왔다. 이에 필요한 생산자원은 좀더 수익성 있는기업이나 부문들로부터 체계적으로 빼돌려졌다. 이와 같은 현상은 자본주의와 가치법칙의 지배 하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가치법칙이 소련에서 직접적으로경제를 지배하지 않는다면, 세계 시장의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지배하는 것은 아닐까?

클리프와 하먼은 독단적으로, 마치 그것이 현시된 진리이기나 한 것처럼, 그렇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 ‘세계 시장의 매개를 통한가치법칙의 그 어떤 지배도 무역을 통해서 작용해야만 한다. 수입된 재화와 경쟁하는 데 실패한 기업은 몰락하게 마련이다. 소비에트 기업의 최소한 3분의 2는 제국주의 기업들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만일 그 기업들이 세계 시장의 매개를 통해작용하는 가치법칙의 지배 하에 놓여 있었다면, 그들은 (멕시코의 제철소나 영국의 제탄소처럼) 문을 닫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소련에서 세계 시장의 매개를 통한 가치법칙의 지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혼성경제

 

하지만 소비에트 경제의 기능은, 가치법칙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가치법칙의 영향으로부터 스스로를 완전히 벗어나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 즉 일반화된 상품생산에 기초한 경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필요를 직접 충족시키는 것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경제, 즉 노동이 직접 사회적 성격을 획득하는 경제도 아니다. 그것은 시장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탈자본주의적 경제이다. 상품생산의 부분적 잔존은 생산자원의 직접적 배분의 부분적 지배와 결합되어 있다.

이 결합은 혼성적(hybrid)이며 모순적이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기적 사회인 소련이 관료적 독재 때문에 지금의 단계에 고착되어 있는 것은, 소련의 운명이 아직 역사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반혁명은 소련을 자본주의로 끌어내릴 수 있다. 관료에 반대하는 정치혁명의 승리는 소련을 사회주의의 방향으로 밀어올릴 수 있다(그 이상은 아니다. 노동자 권력에 기초한 정부가 아무리 순수하고 민주적이고 혁명적이며 국제주의적이라 할지라도, 일국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동지들이 이러한 혼성적 결합의 개념, 모든 확실성이 결핍된 영속성,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식을 인용하자면) ‘두 가지 계기적인 생산양식간의 이행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기존의 생산양식이 쇠퇴와 붕괴라는 역사적 시기에 접어들었던 모든 국면들마다 실제로 발생해 왔던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봉건적 생산양식의 쇠퇴와 자본주의의 승리 사이에는 수 세기 동안에 걸쳐 소상품 생산이 지배했던 이행기가 존재했다. 소상품 생산이 지배했던 이행기가 존재했다. 소상품 생산은 봉건적(농노제)이지도 자본주의적(임금노동)이지도 않은 그 자신의 특징을 가진다. 노동의 지배적 형태는 자신의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소소유자(small proprietors) 혹은 반소유자(semi-proprietors)의 자유노동이었다.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자신을 자동적으로 영속시킬 수 있는 새로운 생산양식에 대해서가 아니다. 소상품 생산은 봉건제로 역행 할 수 있는데, 이는 16세기 이후 2차 농노제시기에 중부 유럽과 동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기도 하다. 소상품 생산은 또한 자본주의를 향해서, 즉 임금노동의 지배를 향해서 움직일 수도 있는데, 이는 17~18세기 이후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양자 모두의 경우, 소규모 독립적 생산자들은 점진적으로 소멸했을 뿐이었다.

마찬가지의 규칙이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기에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상품생산의 잔재가 사회적 잉여생산물의 직접적 전유 및 배분의 대부분을 마침내 제거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자본주의는 부활할 것이다. 또한 사회가 관료라는 무거운 짐을 떨쳐 버리고, 대중에 의해 민주적으로 결정된 필요의 충족을 위해, 주요 자원의 직접적 전유 및 배분이 지배되도록 보장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몇몇 시장 메커니즘의 불가피한 존속은 사회주의로의 진정한 진보에 더 이상 제동을 걸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양자 모두의 경우, 오늘날의 혼성적인 소비에트 상황의 특유한 것들은 대부분 소멸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어떤 추상적인 이론적 도식의 문제가 아니다. 소련을 특징짓는 특유한 경제 위기의 주요 원인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현실에 근거하고 있다. 횡행하는 신비화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소비에트 경제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한편으로는 중앙계획(여기서 중앙계획은 관료적 계획이 아니라, 민주적 계획으로 이해되어야 한다)의 결여,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의 부적절한 객관적 사회화 때문에 자원의 직접적 배분이 작용하지 않는, 그리고 독점을 해체하기 위해 시장이 요청되는 모든 영역에서의)시장의 결여 때문이다.

15개년계획 이래 계획이 전제적 성격이었다는 것은, 그것이 엄청난 불비례로 특징지어졌으며, 그 누적적 효과가 결국에 가서는 관료가 설정한 목표 자체도 손상시켰음을 의미했다. 사용되었던 시장 또는 의사(疑似) 시장 메커니즘은 항상 적절한 토대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어떤 통일된 가격체계도 그리고 어떤 안정된 통화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중 가격체계는 소비에트 경제의 혼성적 이중 구조를 정확히 반영해 준다.

클리프 동지의 분석은 소비에트 경제에 대한 세계 시장의 중요성을 과장한다. 그러나 세계 시장은,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듯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구름 위에 떠다니는 어떤 형체 없는 성령 같은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가 사회과학에 끼친 본질적 기여 중의 하나는 경제적 범주들에 대한 어떤 종류의 물신화도 단호히 거부하는데 있다. 사적 유물론의 핵심적 장점 중의 하나는 이러한 범주들 배후에 있는 사회 집단들(사회 계급들과 주요 계급 분파들) 사이의 관계를 밝혀 주는데 있다. 사회 집단들 사이의 연관관계,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방식이 세계 시장을 포함한 경제적 범주들의 비밀을 폭로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트로츠키와 제4인터내셔널이 제시한 이론, 즉 소련과 그 경제의 운명이 아직 명확하게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론은 20세기의 국제적 계급투쟁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클리프의 이론은 국제적 계급투쟁과 소련에서 발생한 사태 사이의 상호연관성이 갖는 중요한 의미를 거의 설명하지 못한다.

1905~6년에 트로츠키는 제국주의의 고리는 러시아에서 최초로 단절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그 이유를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독일과 그 밖의 나라들의 프롤레타리아트보다 주체적으로 강력하다는 사실에서 찾았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사회주의를 향한 발전의 조건들은 세계의 주요 공업국 어느 나라보다도 훨씬 열악했다. 따라서 승리한 러시아 혁명이 이들 나라 중 몇몇 나라에서의 승리한 혁명과 결합되는 경우,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권력을 유지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권력을 상실할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반혁명의 정확한 형태는 어떤 것일까? 트로츠키는 이 문제 또한 러시아에 존재하는 세력들에 우선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수준에서 존재하는 사회 정치적 세력들의 관계에 의존하리라고 예측했다. 제국주의 부르주아지는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영국 등에서의 혁명의 승리를 저지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력했다(또는 같은 이야기이지만,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가 그 나라들에서 혁명의 승리를 확보하기에는 너무나 취약했다). 하지만 제국주의 부르주아지는 세계 노동자계급 운동을 분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제국주의 부르주아지는 파시즘의 승리와 함께 독일과 스페인의 노동자 운동을 분쇄할 수 있을 정도로만 강력했으며, 그것조차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더구나 내전, 외국군 개입, 또는 세계 시장의 직접적 압력 등으로 자본주의의 부활이라는 성공을 거두기에는, 러시아 부르주아지는 너무나 취약했으며, 국제 부르주아지는 너무나 분열해 있었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노력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개입과 압력으로 중화되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계급세력들이 상대적인 세계적 균형이었다. 이러한 조건들은 러시아에서 일어난 것이 정치적 반혁명(테르미도르)이었지, 사회적 반혁명은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권력을 상실했지만, 그 결과 혜택을 본 것은 옛날의 자본가계급이나 또는 새로운 자본가계급이 아닌, 마르크스의 정식을 빌리자면, 노동자계급 그 자체의 반열에서 솟아오른 기능인들이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와 같은 계급세력들의 상대적 균형은 유지될 수 없다. 국제적 노동자계급이 세계의 주요 국가들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향해 결정적으로 움직이는 경우, 소련에서 자본주의의 부활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독일에서 나치의 승리라는 형태와 반드시 동일한 형태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와 유사한 결과를 수반하는 괴멸적인 패배, 즉 저항 능력과 집단적이고 조직화된 행동 능력을 장기간 동안 제거당하는 경험을 하게될 것이다. 만일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소련에서 자본주의의 부활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소비에트 노동자계급 그 자체의 역할, 즉 그 대응 능력 및 저항과 반격으로 나갈 수 있는 능력은 더욱더 중요해진다.

크리스 하먼은 1956년에 쓴 논문의 발췌문을 인용하면서 우리를 비판했다. 그 논문에서 우리는, 소비에트 경제가 규칙적인 리듬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으며, 이는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소비에트 경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저자가 거의 40여 년 전에 쓴 글에서 한 가지 부분을 발췌하여 인용하는 것은 진지한 논쟁 방식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비에트 경제의 성장률이 저하될 것이라고 예측한 10개 이상의 문장을 쉽사리 뽑아낼 수 있따. 그 중 하나를 인용해 보자.

 

관료적 경영 형태를 특징짓는 경공업 발전과 중공업 발전 사이의 불비례는 소련 경제 체제의 뿌리 깊은 취약점이 되어 왔다. 중 공업 발전 그 자체에 대한 그것의 반작용은…… 점점 더 커져 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바꾸었다는 말인가? 우리의 분석에 단 하나의 모순이라도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하먼이 사용한 인용문과 인용 방식은 그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줄 수 있다.

만일 우리가 1928년 이후(소련에 대한 나치의 공격 기간인 1941~44년을 제외하고) 소비에트 경제의 실질성장 곡선을 검토한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수 있다. a)성장은 실제로 규칙적이었으며 중단되지 않았다. b)자본주의 경제와는 달리, 소련은 지난 60여 년 동안 생산의 절대적 감소를 야기하는 불황이나 과잉생산 공황을 단 한번도 경험하지 않았다. c)20년 전부터 성장률이 저하하기 시작했다. d)이 같은 성장률의 저하에 따라 제로 성장의 사태가 야기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를 불가피하게 하는 그 어떠한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성장률의 저하를 예측했던 것이고, 소비에트 경제(와 소비에트 사회)에 대한 우리의 분석은 그 경향의 두 가지 측면 모두를 완전하게 설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클리프의 설명은 분석과 용어의 혼란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잘못된 통계자료에 의존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경쟁과 계급투쟁의 채찍이 자본가로 하여금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증대시키도록 유도한다. 우선 그들은 시장에서 좀더 싸게 팔기 위해 산 노동을 죽은 노동으로 대체한다. 그 다음 그들은 노동자들을 실업의 압력에 굴복시킴으로써 잉여가치율을 재고할 수 있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와 그로 인한 이윤율 저하 경향은 자본가의 이러한 행위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이다. 그 원인은 체제 그 자체의 성격, 즉 이윤을 위한 생산에 있다. 이는 우리를 다시 자본의 재생산 순환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화폐자본으로 되돌려 보낸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기업들간의 경쟁이 없다면, 이러한 동학 중 그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으며,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극히 제한된 규모로만 존재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3권에서, 경쟁이 없다면 생산을 살아 있게 지켜주는 불은 꺼질 것이라고 썼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는 불가피하게 경쟁을 함축하는 다수 자본의 형태로만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도 덧붙여야 한다. 마르크스는 또한 경쟁이 교환을 수반하며, 경쟁은 교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 관해서도 매우 명료했다. 그렇다면 소비에트 무기와 제국주의 재화 간의 교환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군사적 경쟁이라는 용어를 이윤의 실현을 위한 경쟁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특징적인 의미 혼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군사적 경쟁이 자본주의적 경쟁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 시장을 통해서 작용해야만 한다. 이는 소련이 무기 생산을 위해 필요한 무기나 기계를 해외로부터 사들이도록 강제됨을 의미하며, 이는 다시 이러한 무기나 기계를 생산하는 소비에트 공장이 너무 높은 비용으로 가동될 경우, 문을 닫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난 70여 년 동안 소련에서 이러한 사태는 분명히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어떠한 무기 공장이나 기계 공장도 그 비용이 미국, 독일 혹은 일본보다 높았음에도 문을 닫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은 다시 한번 소비에트 경제가 가치법칙에 지배되지 않음을 입증한다. 따라서 군비경쟁을 다루면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적 의미에서의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쟁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먼이 인용한 수치들은 현실과 부합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수치들은 스탈린 시대 이래 관료가 수행해 온 소비에트 경제의 현실을 호도하려는 체계적인 시도의 연장일 뿐이다. 이 같은 시도는 모리스 돕과 같은 변호론자들, 그리고 보르디가나 클리프와 같은 비판가들 모두를 현혹해 왔다. 이러한 신비화의 목적은 관료적 경영의 본질적으로 기생적이고 낭비적인 역할을 은폐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통계적 허위를 낳게 만든 이론적 오류는 소비에트 경제를 세 가지 부문이 아니라 두 가지 부문을 가진 체제로 환원하는 데 있다(부문은 비생산적인 소비와 축적을 포함하는 반면, 부문은 생산수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부문은 생산자가 소비하는 소비수단, 즉 생산적 소비로 구성되어 있다). 두 가지 부문으로 표식이 구성됨에 딸, 생산적 소비와 비생산적 소비, 확대 재생산을 낳는 투자, 그리고 재생산에서 어떠한 경제적 목적에도 이바지하지 못하는 투자 등은 부주의하게 뭉뚱그려진다.

무기 생산 이외의 것으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제철소가 창고(혹은 야외)축적되는 강판을 생산하여 그 곳에 계속 방치해 둔다 하면, 우리는 그 어떠한 경제학적 의미에의 축적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자본 축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현실적 자본가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그것은 또한 경제를 통제하는 사람의 관점에서도 낭비의 생산이다.

생산물과 자원의 순전한 낭비는 소비에트 경제에서 엄청난 규모를 점하고 있다. 이 규모를 계산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판적 경제학자들은 이용 가능한 생산자원의 30% 내지 40%의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이 수치에는 인적 자원도 포함되어 있다 모든 지불노동의 3분의 1은 현실적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소련의 지령경제, 의사(疑似)계획 내지 반()계획의 비밀을 알게 된다. 과잉팽창된 것은 부문이 아니라, 부문인 것이다.

많은 예들 중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 보자. 소련은 세계 최대의 화학비료 생산국이다. 소련은 화학비료를 미국과 서유럽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생산한다. 이것은 부문의 과잉팽창을 의미하는가?(원료인 화학비료는 부문의 일부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화학비료 생산의 절반 이상이 수송 도중사라진다. 절반 이상이 사용자에게 도달하지 못하며, 따라서 어떠한 생산력이나 재생산에도 포함되지 못한다. 사용가치가 실현되지 않는 노동 생산물은 어떠한 교환가치도 가지지 못한다. 상품생산에 관해 이렇게 강조한 것은 마르크스였다. 이 같은 분석을 가치법칙이 지배하지 않는 사회에 확대 적용하면서, 그것은 단지 사회적 자원의 순전한 낭비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사상의 정수를 더 강력하게 되풀이하는 것일 뿐이다. 그와 같은 낭비는 가치법칙에 의한 생산자원의 배분이나 자본 축적드라이브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다음과 같이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자본주의에서 무기 생산 문제는 어찌되는가? 그것 역시 생산자원의 낭비적 생산이 아닌가? 군비경쟁을 다소간 항상적인 양상으로 포함하는 자본주의는 생산력보다는 파괴력을 발전시키는 자본주의 아닐까? 이러한 반박에 대해 우리의 답변은 몇 가지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무기 생산에 관련된 개별 자본그가 기업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것은 낭비가 아니다. 그와 같은 상품들은, 이들의 구매자들(국가나 무기거래업자)이 들의 사용가치를 실현하기를 원하는 한, 구매자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현실적 이윤을 창조하는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무기라는 상품은 자본주의에서 결코 생산되지 않을 것이다.

무기를 생산하는 기업이 유용하다고 보는 것은 사회적 관점에서는 비합리적이고 심지어 비인간적인 것은 아닐까? 의심할 여지없이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으로 자본주의에 특징적인 것이다. 경제활동의 부분적 합리성과 전체적 비합리성 간의 모순은 그 극단으로까지 발전한다. 마약, 다배, 공해를 배출하는 자동차, 화학비료, 핵 발전소 등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무기 생산은 자본주의 경제 전체의 관점에서는 비생산적인 것인가? 다시 말해, 무기 생산은 자본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생산적이라는 용어에 대한 유일한 개념 정의인, 잉여가치, 그리고 이윤의 원천과 자본의 양을 증대시키는 데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은 아닌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생산자원의 상당 부분이 놀고 있을 때, 부문을 팽창시키는 것은 이들 유휴자원을 동원함으로써 잉여가치와 이윤의 양을 늘리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은 1940년 이후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1944(1950년은 말할 것도 없고)의 자본주의 그리고 미국 부르주아 사회가 1933년 당시보다 더 번영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낭비 경제’(waste economy)로 전환했음을 의미하는가? 단지 부분적으로만 그러하다. 이에 관한 한,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르크스는 이미 그룬트리세자본론에서, 자본주의는 모든 부의 두 가지 원천인 인간의 생산력과 자연을 동시에 손상시킴으로써만 물질적 부의 생산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썼다.

자본주의의 상승기에는 성장의 긍정적효과가 파괴적 효과를 압도했다. 자본주의의 쇠퇴기, 적어도 1914년 이후에는 그 반대였다. 하지만 1949년 이후(미굮의 경우 1940년 이후) 성장은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았다. 지난 40여 년간 생산된 식량, 의류, 약품, 주택, 가정용 기구의 추가량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이것을 파괴력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당치 않으며, 비유물론적이고 비마르크스주의적이다.

우리는 이로부터, 사회가 파괴수단을 생산하든 생산수단을 생산하든, 경제학적으로 말한다면,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이러한 결론은 결코 정당화되지 못한다. 재생산이라는 철의 법칙은(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기에 있는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소련의 부분적인 상품생산 체제를 포함하여) 어떠한 유형의 상품생산 체제에서도 계속 작용한다.

최루가스로 밀을 생산할 수 없으며, 탱크로 옷을 생산할 수 없고, 로케트로 TV를 생산할 수 없다. 부문의 요소들은 부문과 부문의 요소들에 반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무기 제조를 위한 생산자원의 이용은, 그 크기만큼, 생산수단과 소비수단의 생산으로부터 생산자원이 제거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문의 생산은 다른 두 부문의 생산을 궁극적으로 감소시키지 않고, 따라서 확대 재생산과 자본 축적을 질식시키지 않고 무한정 발전할 수는 없다.

전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와 마찬가지의 사태가 있었다. 그리고 무기 생산이 지속되는 한(혹은 다른 형태의 낭비가 더 큰 규모로 출현하는 한), 그것은 탈자본주의 사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수천 년 동안 전쟁이 기아와 절대적인 생산 감소를 초래했는데, 이는 시기와 상황에 따라서는 일시적인 경우도 있었고 오래 지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소련에서는 무기 생산과 비생산적인 지출 일반으로 구성된 부문의 과잉팽창이 물질적 생산의 전반적 발전에 제동을 걸었다.

결국, 부문의 과잉팽창은 무기 부문의 성장을 포함하여 성장 전체를 질식시킬 것이다. 이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것은 부문과 부문의 발전에 필수적인 자원을 빼앗아 간다. 둘째, 그것은 자신들의 주어진 소비 수준(비록 그 수준이 완만하게 상승할지라도)에 대한 생산자들의 불만을 증대시켜, 전체적인 생산성에 대한 그들의 무관심을 갈수록 증대시킨다. 자본주의에서 이러한 무관심은 해고와 실업의 공포 때문에 부분적으로 상쇄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실업과 해고의 위협은 지난 반세기 이상 동안 소련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 대신 각각의 생산자 곁에는 감독, 십장, 경비가 일일이 붙여졌다. 그리하여 트로츠키의 시대 이래, 2천만 명에 달하는 엄청나게 불어난 규모의 ()’관료가 생겨났다. 비생산적 지출 또한 엄청나게 영속적으로 성장했다. 부문은 전설 속의 뱀처럼 자신의 꼬리를 잘라먹고 있다.

이 메커니즘은 고르바초프가 많은 대가를 치르고 알게 되었듯이, ‘개혁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뱀은 엄격하게 공적이고 대중적인 노동자계급의 통제가 확산될 경우에만, 그리고 다당제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통해 진정한 노동자계급의 경영이 확산되는 경우에만 절멸될 수 있다.

흑백 논리를 통해서만 작용하며, 또한 엄청나게 단순한 추상에 사로 잡혀 있는 도식적 사고 체계로는 이행불균등결합발전모순적 현실의 범주들을 다룰 수 없다. 다시 말해, 그 같은 사고는 비변증법적이다. 이것이 불행하게도, 토니 클리프와 크리스 하먼이 적어도 일반적 문제들을 다룰 때 사고하는 방식이다.

더구나 1927년 이후에 가속화된 소련의 공업화에 대한 SWP 동지들의 맹렬한 공격은 비합리적이며 심지어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3세계 국가들의 모든 노동자, 농민, 마르크스주의자, 그리고 국제주의자들의 편견 없는 눈으로 본다면, 이는 너무도 분명한 것이다.

우리는 물질적 자원의 지출에서 총체적 손실을 의미하는 과잉투자’, ‘거대주의'(gigantism), 스탈린주의와 후기 스탈린주의의 초공업화에 반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10월혁명 이후 최초로 이를 선택한 러시아와 그 밖의 나라들이 공업화를 가속화한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이러한 공업화에 등을 돌리는 것은, 1923년 이래 레닌과 트로츠키 및 좌익반대파가 입안한 경제정책의 단기 및 중기적 경향을 거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단지 세계혁명의 성공만을 기다리면서, 그들 나라들을 야만 속에 방치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세계혁명이 언제 올 것인가? 5년 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누가 그것을 아는가? 그 동안 우리는 팔짱을 끼고서, 참을 수 없는 것들을 참아내야만 하는가?

우리가 말하는 참을 수 없는 야만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다. 3세계에서는 저발전 때문에 매년 1,600만 명의 어린이들이 죽고 있다.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주의화된 경제의 기초 위에서 이러한 나라들이 발전을 이룬다면, 매년 죽는 어린이들은 얼마나 될까? 나치가 주도했던 게르만 제국주의 동방계획은 중부 유럽 및 동유럽 지역에서 1억 명을 말살할 것을 계획했다. 이 같은 엄청난 죄악에 대항하여 성공적인 저항의 조건들을 마련했던 것, 특히 우랄 지역에 강력한 공업을 발전시켰던 것이 과연 잘못되었단 말인가? 균형 감각을 거부함으로써(다시 말해, 공업화를 가속화해야 하는 필요성과 불비례적이고 낭비적이며 파괴적인 초공업화 사이의 차이를 부정함으로써), 변증법적 사고와 단절한 SWP 동지들은 자신들의 목적들 또한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들이 어느날 영국 노동자계급을 지도하여 권력 장악에 성공했다고 가정하자. 이러한 승리한 혁명으로부터 어떤 유형의 사회가 출현할 것인가? 사회주의 사회인가? 그렇다면, SWP 동지들은 갑자기 일국 사회주의라는 반동적인 유토피아로 전향한 것은 아닌가? “세계 시장으로부터의 경쟁의 압력때문에 국가자본주의 사회가 될 것인가? 노동자계급은 대양제국 일국에서는 이 압력을 막아낼 위치에 서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노력은 헛되었는가? 영국의 혁명이 즉각적으로 세계의 다른 곳으로 확산될 것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사회가 될 것인가?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또는 최소한 상당 기간 동안 그렇게 될 수 없다면, 영국은 모든 선진 노동자들과 공산주의자들사회주의자들이 단결하여, 관료화의위험을 전적으로 제거할 수는 없어도 그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기 사회가 될 것인가? 내일 우리가 적용하지 않을 수 없는 개념을 오늘 거부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생산적 축적기금과 비생산적 축적기금이 대중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리고 대중을 제국주의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요구되는 부문에(최소한 부분적으로는) 투자하기에 충분할 정도가 되어야만 하지 않을까?

이러한 복잡한 문제 전체를 단순히 세계 시장의 압력문제로 환언하는 것은 SWP와 승리한 영국 혁명을 마비시키거나 심지어 자멸을 초래하게 하지는 않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불완전한 세계에서는 이행’, ‘이행기 강령’, ‘이행기 요구이행기 사회라는 불완전한 범주에 의존하지 않고는, 지지자들을 발견하거나 혁명적 방식으로 행동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접근은 막다른 골목에 빠지고 만다. 그것은 또한 아무리 효과 면에서 제한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혁명적 행동을 방해하게 마련이다.

 

소비에트 관료의 특수성

 

클리프와 하먼에 따르면, 소비에트 관료는 생산수단의 초과생산 경향, “생산을 위한 생산경향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들이 문제 제기하는(그리고 우리에게 덮어씌우는) 점은, 다름아닌 우리가 소련의 경제 발전이 관료를 위한 소비재(사치재)의 생산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극단적인 명제를 결코 방어한 적이 없다. (노예제 사회와 봉건제 사회를 포함하여) 어떤 사회일지라도, 지배계급이나 지배집단의 동기를 유발하는 것, 다시 말해 그들 자신의 소비를 증대시키려는 욕망을 가지고 그 경제 전체의 동력이 모두 설명될 수는 없다.

소비에트 관료는 자신의 특권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역사상 나타났던 다른 지배계급이나 지배집단과 마찬가지로 경제를 특정 지점까지 발전시켜야만 한다. 자동차 공장 없이는 300만 명의 중간 또는 고위 관료가 자동차를 차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충분한 양의 강철과 전기 또는 철광석 없이 자동차 공업은 만족스럽게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재화들을 수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수출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는 가치법칙과 세계 시장에 종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저발전국은 기본적으로 저발전국으로 남게 될 것이며, 특정한 한계 이상으로 공업화를 할 수도 없으며, 충분한 수의 자동차를 살 수도 없게 된다.

이러한 종류의 제약을 피하기 위해(다시 말해, 세계 시장의 제약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소비에트 관료는 소련에서 초공업화과정을 가속화시켰다. 이것이 없었다면, 소비에트 관료는 1928년 이후에 그러했듯이,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을 방어하지 못했을 것이며, 견고하게 할 수도 또는 확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난 60여 년간 소련에서 발생했던 사회 정치적 투쟁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문제의 개요이다. 투쟁은 두 가지 경로(‘자본과 노동 사이’)가 아니라, 세 가지 경로로 전개되었다. 1928~33, 1941~44, 그리고 1945~48년 간의 심각한 위기들은 소비에트 사회와 관료의 권력을 동요시켰고, 이 모든 경우에서 관료는 부르주아지와 노동자계급을 동시에 타격했다. 동유럽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관료는 단지 노동자계급만을 초과착취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지도 수탈했다. 역사적으로 관료는 자율적인 역할을 연출했다.

실질적인 이론적 논쟁은 이러한 상대적 자율성의 범위 및 그 자율성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가에 맞추어 전개되었다. ‘관료적 집산주의이론의 신봉자들에게, 이러한 자율성은 역사상 나타났던 지배계급의 자율성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된다. 트로츠키와 우리에게 그 자율성은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훨씬 제약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제약이 그 자율성을 크게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율성은 1927년 이후 소련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사태들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관료화된 소련에서, 역사상 네 번째의 거대한 위기가 오늘날 전개되고 있다. 세 가지 경로의 투쟁이 계속될 것인지(우리는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또는 많은 논자들과 경향들이 믿듯이, 노멘클라투라가 국제적 부르주아지 진영으로 넘어가 그들 고유의 ()하위 동반자가 될 것인지(동독의 경우를 보라!)는 아직 더 지켜보아야 한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러한 복잡한 사회적 투쟁 속에서 목적과 수단은 분명하게 구분되어야만 한다. 근본적인 동력은 무엇인가, 선택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수단이 사용되는가, 그리고 목적과 수단의 상호작용을 통해 어떠한 객관적 결과들이 나타나는가.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부르주아지가 생산의 끊임없는 팽창에 대해 영구적이며 지속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것은 오직 경쟁이라는 채찍 하에 있을 때뿐이라는 결론, 다시 말해 마르크스의 규정에 조응하는 결론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지속적인 경쟁 압력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던 전자본주의적 지배계급은 생산의 팽창에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았다(우리는 여기에 소련의 관료적 계층을 포함시켜야 한다).

소비재의 부족이 관료들에게 갈증을 더해줄 때, 그들은 (미국식의 여피 생활 스타일에 대한 자신들의 탐욕 때문에, 중간 관료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하듯이) 축적, ‘생산을 위한 생산그리고 기술 개선등에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노멘클라투라가 전체가 만족할 만한 소비 수준에 도달하게 되자마자(‘사회주의가 노멘클라투라의 이익을 보장해 주게 되자마자’), 이러한 갈증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생산주의적 열광이 점차 힘을 잃게 되었다. 스탈린주의자이자 헝가리 수상이었던 헤제두스(Hegedus)가 정확히 명명했던, 이른바 일반화된 무책임성의 단계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또한, 자신들의 자본주의적 상대자들과는 달리, 어째서 소비에트 경영자들이 일상적이며 거의 자동으로 작업장에서 필요한 조치들을 수행하기를 포기하는지 설명해 준다. 노동자들로부터 최대의 잉여가치를 뽑아내지 않으면 안 될 어떠한 경쟁 압력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유일한 압력은 계획의 만료 시기가 됐을 때,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지도 모르는역자) ‘문제들을 회피해야 하는 과제로 국한된다. 고르바초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해 모든 기술주의적 변화를 꾀하려 했던 것은, 바로 관료들의 이러한 태도에 철저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페레스트로이카와 철저한 경제적 자유화를 가장 견실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이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철저한 구조적 개혁은 사적 소유로의 거대한 전환 없이는 수행될 수 없다.

동기를 부여하는 경쟁이나 사적 축적 드라이브가 없는 한, 소련에서 관료들의 행동은 자본가들과 본질 면에서 결코 같아질 수 없다. 기껏해야 관료들은 도적질과 강탈을 합법화하려는 강도들처럼 행동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소련의 수많은 사람들을 실업 상태에 몰아넣는 것을 의미하게 될 전면적인 사유화를 감행한다면, 노동자계급의 저항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은 실제적인 세 가지 경로의 투쟁이 소련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증면해 준다. 그리고 이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노동자들이 방어되어야 할 최소한 두 가지의 10월혁명의 성과물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반세기 이상 동안 중단되지 않았던 완전 고용(완전 고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코 존재한 바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결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규모 생산에서의 사적 소유의 폐지(이것이 없다면 완전 고용은 달성될 수 없다).

교조적이고도 비현실적으로 관료를 자본가계급이라 규정하는 SWP 동지들은 소비에트 관료의 특성을 이해할 수 없다. 관료는 부르주아 계급을 포함하여 역사상 나타났던 모든 지배계급들과 다르다. 왜냐하면, 지배계급의 소득(사회적 생산 중 그들의 몫)은 가변적일 수 있지만, 관료들의 소득은 고정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부르주아지의 연간 수익은 이윤 및 생산의 연간 변동에 의존한다. 연간 봉건 지대는 수확의 연간 변동에 의존한다. 관료의 연간 소득은 위계질서상의 서열에 의존한다. 만약 자신의 서열이 바뀌지 않는다면, 소득 또한 별도의 소득을 제외하고는 변화하지 않는다.

따라서 관료의 보수성과 타성 그리고 무책임성은 자본주의 기업가의 행동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자본주의 기업가는 관료 내지 어떤 개체보다 더 진취적이고 더 합리적이라든가 또는 좀더 우월하거나 좀더 열등하기 때문에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경쟁이란 곧 잉여가치와 이윤의 양을 배분하는 문제를 둘러싼 투쟁이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기업가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만일 기술 개선이나 노동 조직등에서 뒤처지게 된다면, 파산하거나 또는 자신의 몫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게 될 것은 자명해진다.

글라스노스트가 파헤쳐 준 소비에트 경제에 관한 그 어떤 것도 국가자본주의의 신화, 다시 말해 사회주의적 공업화의 성과물에 관한 스탈린주의적 동전의 단지 한 면만을 보여줄 뿐인 신화와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은 소비에트 사회와 소비에트 경제에 관한 트로츠키와 제4인터내셔널의 분석,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소비에트 관료의 특수성에 과한 분석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

하먼은 역사상 그 어느 때에도 생산자 계급의 일부가 생산자들로부터 최대의 잉여노동() 추출하는 데 연루된 예는 없다고 주장한다. 소비에트 관료가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현상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10월 혁명과 고립된 러시아 노동자 국가의 창출 또한 역사적 선례가 없는 새로운 현상인 것이다(파리 꼬뮌은 단지 몇 달 동안 지속되었을 뿐이다). 새로운 역사적 발전이 새롭고 예기치 못한 부산물들을 만들어 낸다고 할지라도, 과학적이고 비교조적인 전망을 가진 사람들은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최대의 잉여노동 추출의 문제로 되돌아가 보자. 소련에서 노동자계급의 소비 비율은, 공업화를 가속화했던 나라의 한 가지 예로 들 수 있는 브라질과 비교할 때, 훨씬 높다(이 비교에는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의 소비 비율을 함께 포함시키지 않았다. 브라질 전체 인구의 20%에 달하는 중간계급은 노동자들보다 10배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한 가지 단순한 유추를 해 보자(동일하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유추일 뿐이다). 1848년 또는 1890년의 어떤 사회주의자 혹은 노동조합주의자에게, ‘생산자들로부터 잉여노동 추출을 객관적으로 강화하고자 하는 사회주의 당 지도자들 내지 반동적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문자 그대로 생각 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1914년 이후의 사회민주당 지도자들, 그리고 1914년 전후의 노동조합 지도자들 대다수의 경우, 사정은 달랐다. 그렇다면, 사회민주당들을 노동자 정당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일까? 그들은 부르주아적 정당이 되었으며, 보수당원들이나 자유당원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부르주아지들의 기도를 약화시키고 또는 주기적으로 분쇄하는 이들 정당들을 방어하지 않아도, 유럽 또는 일본에서 계급 정치학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개량주의적 배신자들의 지도 하에 있는 거대한 노동조합들은 겁 많은 두목들의 노동조합들이라고 불러야만 하는가? 극좌파는 오랜 세월 동안 이 같은 터무니없는 생각을 방어해 오고 있다. 동시에 SWP 동지들은 대영제국에 관한 한, 이 같은 생각을 적용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의 암살범인 노스케가 지도하고 있었음에도, 파시즘에 반대하는 독일 사회민주당(SPD)을 방어하는 것은 생각할 수 있으면서도, 어째서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소련을 방어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인가?

크리스 하먼은 우리가 관료에 관해 지속적으로 제시해 온 두 가지 논점이 상호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첫 번째 논점은 관료는 지배계급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번째 논점은 관료가 소련의 사회적 잉여의 대부분을 통제하고 배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양립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형식주의적이고 도식적이며 단순하고도 교조적인 사고방식을 다시 한 번 반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강력한 사회적 계층들이 지배계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잉여의 대다수를 통제하고 분배했던 예들은 무수히 많다. 왜냐하면, 지배계급이 된다는 것은 잉여를 전유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잉여를 전유한다는 것과 잉여를 통제하고 분배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다. 옛 중국제국의 최고위 관리들 그리고 후기 로마제국의 최고위 관료는 사회적 잉여의 집중과 분배의 대부분을 통제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그들 사회에서 지배계급이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잉여의 중요한 몫을 전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제국 말기에, 나치의 군관료는 사회적으로 생산된 것의 분배를 사실상 통제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도 지배계급은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사회적 잉여의 대부분은 여전히 자본가계급이 전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예들은 전능한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질서를 관장하고 유지하려고 했을 뿐인 사람들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마찬가지의 예로, 미래의 사건들은 소비에트 관료가 사회적 잉여를 자신이 전유함으로써만, 다시 말해 대규모 생산수단의 대부분을 소유하는 낡은 양식의자본가들로 전환되어야만 지배계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사실무근으로 증명된 두려움

 

트로츠키가 정식화하고 제4인터내셔널이 방어했던 소비에트 사회에 대한 분석과 단절할 것을 결정했을 때, 토니 클리프는 소련을 관료적으로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계속해서 부르는 사람들이 스탈린주의에 투항할 것이며, 특히 노동자들의 봉기에 반대하여 관료의 편에 설 것이라고 예측하였다(그런데 우리는 1948년부터는 아니지만, 스탈린이 죽자마자 그러한 봉기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것을 회상해 보라).

지속적인 사건들은 클리프의 이러한 예측이 사실무근임을 증명해 주었다. 4인터내셔널은 물론이거니와, 4인터내셔널의 어느 지부도 그리고 어느 지도적 인물들도 노동자들의 봉기에 반대하여 관료의 편에 선 예는 단 한번도 없었다. 우리 모두는 1953년 동독에서의 노동자 봉기와 1956년 헝가리 혁명, 그리고 같은 해에 일어났던 폴란드 노동자들의 투쟁, 1968~69년에 있었던 소련의 침공에 대항한 프라하의 봄의 저항, 1980~81년의 연대노조의 등장 및 곧 이은 야루젤스키의 군사 쿠데타에 대항했던 폴란드에서의 투쟁, 1989년 중국과 동유럽에서의 봉기 등등, 어느 것에 대해서도 100% 지지를 보냈다.

크리스 하먼은 이러한 사실을 더욱 잘 알고 있다. 그는 당혹해하면서, 그럼에도 우리가 1956년에 헝가리 혁명의 방법보다는 고물카 스타일의 개혁 방법을 선호하는 입장을 밝힐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한걸음 물러서고 있다. 이것은 중상모략에 지나지 않는다. 하먼은 그가 비난하는 내용을 뒷받침해 줄 만한 단 하나의 인용문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소련의 성격에 관한 논쟁에 참여하기 시작한 이래(다시 말해 1945~6년 이래), 정치혁명──대규모의 독립적인 대중 행동과 스스로의 조직을 내용으로 하는 혁명──을 지지해 왔고, 그 입장은 지금도 변함없다. 우리는 이러한 입장에서 결단코 한치도 물러선 적이 없었다. 그러나 소련과 동유럽 및 그와 유사한 사회들에서 정치적 대중투쟁의 현실은 대중과 관료 사이의 투쟁들로 환언될 수 없다.

소련, 동유럽, 중국, 쿠바, 니카라과 등지에서 지난 50년 동안 일어났던 투쟁들은 이들 나라들의 국가와 대중이 한편이 되어 제국주의 세력들을 다른 한편으로 삼는 것들이었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이러한 모든 갈등과 관련하여 어떠한 종류의 지침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 이론의 내적 논리는 이러한 갈등들 대부분을 제국주의 세력들 간의 것으로 봄으로써, 우리를 기권주의 내지 3진영의 입장으로 인도할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이것이 바로 클리프가 한국전쟁에 대해 취했던 입장이었으며, 그의 추종자들 중 몇 사람이 피그스만 갈등에 대해 취하고자 했던 입장이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 동안 클리프가 매우 정확한 입장을 취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자본주의이론의 논리가 가지는 엄청난 모순 속에 여전히 빠져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모든 갈등에서 그 나라들의 노동자들은 물론, 인민 대중들은 중립적 입장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스탈린과 그 후계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증오심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편에 섰다. 실천적으로 볼 때, 그들은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소련(그리고 다른 여타의 관료화된 노동자 국가들)을 군사적으로 지지하는 트로츠키의 노선에 따랐던 것이다. 소련, 유고슬라비아, 중국, 베트남, 쿠바, 니카라과 등지에서 그들은 그렇게 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을 포괄했던 이러한 대결에 직면하여, 몇 안되는 국가자본주의이론의 추종자들이 취했던 태도는 기껏해야 혼란을 주거나 모순적인 것이었고, 나쁘게 말한다면 반혁명적인 것이었다. 만일 소비에트 노동자들이 그들의 거짓된 지침에 따르는 불행을 맛보았다면, 다른 대륙들의 경우는 어떨지 몰라도 유럽에서만큼은,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오늘날 살아 있을 수 없을 것이며, 어떤 독립적인 노동자조직도 존재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나치라는 야만주의의 승리가 이 모든 것들을 파멸시켰을 것이다.

 

타락한 종파주의 써클

 

토니 클리프가 주도하는 경향(SWP는 이 경향에 뿌리를 두고 있다)은 그 출생 이래, ‘국가자본주의이론을 확산시키는 것을 자신의 주된 과제로 삼아 왔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규정한 바 있었던, 다시 말해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특정한 교리로부터 진부한 문구를 만들어 내고, 그리고 그 문구를 방어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그에 예속시키는, 종파주의의 특성 중의 특성에 해당한다.

이러한 종파주의적 이탈을 그로부터 거의 회피할 수 없는 그 자신만의 논리를 가진다. 영국의 경우, SWP 동지들 자신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그들의 실질적 뿌리 대문에, 그리고 그들의 조직의 규모 측면 때문에, 종파주의가 가지는 가장 나쁜 죄악으로부터 부분적으로 보호될 수 있었다. 수많은 비판적 눈동자들 속에서 활동할 때는 무책임한 어떤 행동 유형도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영국에서조차, 종파주의적 품성은 SWP에 상처를 입혀 왔고, 지금도 끊임없이 상처를 입히고 있다. 이것은 특히 ()프롤레타리아적이라고 부르거나 또는 부주의하게도 소부르주아적이라고 부르고 있는 대중 운동들에 대한 그들의 접근방법에서 두드러진다. 이것은 특히 계급의식의 범주에서, 이행기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결합 발전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무능한 소치이다. 이것은 또한 국가자본주의이론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태도의 소치이기도 하다.

종파주의는 특히 SWP의 국제적 과제라는 또 다른 맥락에도 상처를 입혀 왔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제3세계 대중들의 반제국주의 운동의 매우 진보적인 역학을 이해하는 데 무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운동들은 결국 새로운 국가자본주의 국가들로 인도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동학은 민족주의적인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제국주의 투쟁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이며 계급적인 독립성을 위해 싸우는 전략, 운동 내부에서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를 위한 투쟁 전략, 민족적민주주의적 과제들을 해결하는 속에서 혁명을 사회주의적프롤레타리아적 과제의 해결을 위한 출발 선상으로 성장 전화시킬 수 있도록 싸우는 전략 등, 영구혁명 전략 전체가 SWP의 지도부에 의해 사실상 거부되거나 최소화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이외의 여타의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SWP 추종자들은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선전하기 위한 작은 그룹들을 구성하는 데 거의 대부분 만족해 하고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단지 그 그룹들이 극미한 상태에 있거나 또는 진실한 계급투쟁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종파적 이해관계가 계급의 이해관계를 앞서고 있다. 완전한 사회적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는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에 해당할 것이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자들이 해야만 하는 고전적 규정들을 제시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가 가지는 이해관계와 별도로 분리된 어떤 이해관계도 가지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만의 특정한 원칙들[1888년 영어판에서, ‘종파적 원칙들이라는 용어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을 세워 프롤레 타리아 운동을 이 원칙에 뜯어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오직 다음과 같은 점에서만 다른 노동자계급 정당들과 구별된다. 1. 각 나라 프롤레타리아들의 일국적 투쟁에 서, 일체의 국적으로부터 독립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공동의 이해관계를 제기하고 전면에 내세운다. 2. 부르주아지에 반대하 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거친느 다양한 발전 단계에서, 언제 어디서나 그 운동 전체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자들은 한편으로는 실천적인 면에서, 모든 나라 노동자계급 정당들 가운데 가장 선진적이고 결의에 찬 부분으 로서 다른 모든 정당들을 밀고 나간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론적인 면에서, 거대한 프롤레타리아 대중에 비해 프롤레타리 아 운동의 진행 노선, 조건, 궁극적인 전반적 결과들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SWP는 동유럽과 소련에서의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진행 노선, 조건, 궁극적인 전반적 결과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저에서 제4인터내셔널과 어떤 이견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프롤레타리아트가 국제적으로 계급 없는 사회를 건설한다는 전망을 가지고 다당제 및 민주적으로 선출된 소비에트들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스스로를 조직한다는 점에서는 둘 사이에 아무런 이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SWP 추종자들은 이들 동유럽 국가들에서 어떤 분리도니 국가자본주의 이론 조직들도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자명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관료에 대항하고 부르주아 부활주의 세력들에 대항하는, 두 가지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선진적 노동자들과 지식인들을 돕는 것이 바로 혁명가의 과제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계급적 독립성의 ()창조를 요구하는(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다)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익을 방어하기 보다는, SWP 추종자들은 모두 다른 혁명적 조류들로부터 자신들을 인위적으로 구분──그들의 종파적인 진부한 문구에 지나지 않는 국가자본주의라는 도그마의 승인에 배타적으로 의존하는 구분──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한 시도들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스콜라적 교조주의자들 또는 희망 없이 분열만 일삼는 자들이라는 등, 처음에는 스탈린주의자들이 그 다음에는 신(neo)스탈린주의자들과 신(neo)사회민주주의자들이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오늘날에는 점차적으로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의 신용을 깎아내리기 위해 이들 나라에 체계적으로 확산시켜 온 이미지를 강화시켜 줄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생산적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들 나라에서, 종파들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재건설해 낸 노동자 운동 내부의 호전적 좌파를 위한 주요한 유인 축이 되어야 할 실질적 가능성들을 약화시키게 된다.

다행한 것은 제4인터내셔널이 이미 달성해 낸 이론적정치적조직적 장점 때문에(이들 나라에서 제4인터내셔널의 영향력은 다소간 현실적이지만 SWP의 영향력은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이들 나라에서 도약하고 있는 가장 우수한 토착 자생 세력들이 SWP가 그 곳에서 수행했던 역할이 종파주의의 부정적 반향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점차 이해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부정적 효과가 제한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종파주의는 SWP가 국제주의적 조직의 건설을 향해 한걸음도 전진할 수 없게 만들어 왔다. 종파들은 단지 그들이 가까이서 통제하는 소종파들과 연계할 수 있을 뿐이다. 조직상으로 볼 때, 그들의 종파주의는 주요한 나라들의 실제적이며 자율적인 혁명 세력들과 그들이 연계되는 것을 막고 있다. 정치적으로 볼 때, 이것은 그들이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전개되고 있는 대중 투쟁의 실질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SWP는 몇 안되는 나라들에서 소그룹들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구성원들을 속여 넘기지 않으면 안 되는, 본질적으로 민족 공산주의적 조직에 불과한 것이다.

지난 40년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의 이력은 별로 나무랄 것이 없다. 4인터내셔널은 실로 단 하나뿐인 유일한 세계 조직이다. 물론, 아직은 너무 작고 왜소하며, 규모 있는 혁명적 인터내셔널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것을 위해 매진하고 있으며 단 하나의 인터내셔널로 구성해 낼 것이다. 하지만 구성원의 규모, 공장과 노동조합에서 내린 뿌리, 그리고 지리적 경계 등의 면에서 1938년 또는 1948년보다 훨씬 강대해진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조직은 50개국 이상을 망라하고 있다. 모두들 알고 있듯이, 4인터내셔널 지부들과 그에 호의적인 조직들 중 몇몇은 각자의 나라들에서 노동자 운동과 대중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4인터내셔널은 공산당 선언이 제기한 토대에 기초하여, 비종파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4인터내셔널은 세계혁명의 세 가지 지역──제국주의 국가들, 관료적 독재하에 있는 국가들, 이른바 제3세계 국가들──에서 노동자들과 피억압자들의 이익을 무조건적이고 비타협적으로 방어하는 국제노동자 운동의 단 하나의 조류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방어 원칙은 가상에 지나지 않을 긴급 사항들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민족적 혁명조직들과 국제적 혁명 조직들을 동시에 건설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영구혁명론, 스탈린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의 분석, 이행기 강령, 그리고 세계혁명의 세 가지 지역의 변증법등에 기대어, 소련과 제3세계 그리고 제국주의 국가들의 조직된 노동자 운동에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는 것이 실행력 있고 효율적이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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