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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사태: 무지와 맹목, 혼돈에 빠진 ‘사회주의자’들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리비아를 방어하자!



사노위 서울 온라인 신문 기고글로 제출된 양효식 동지의 <[리비아혁명과 제국주의] 카다피를 방어하라고?>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글이다.

‘9. 제국주의 전쟁 반대! 자본가 국가의 군사주의 반대!’를 통해, 5인안은 대체로 제국주의와 전쟁이라는 사안에 대해 레닌주의적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특히 아래 인용한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5인안은 대체로 전쟁에 대해 레닌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한을 국가자본주의라고 보고 있긴 하지만, 북한과 미 제국주의와의 갈등에 대한 태도 역시 훌륭하다.”라며 지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북한이나 이란 같은 나라들에 대해 미 제국주의가 벌이고 있는 대결정책 및 전쟁위협 책동에 대해 노동자들은 이 제국주의의 적을 방어해야 한다. 이 나라들의 정권이 아무리 억압적인 정권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미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동원되고 있는 군사적 수단이 무엇이건 간에(핵무기든 생화학무기든 재래식 무기든) 노동자들은 제국주의 전쟁위협과 공격에 반대하여 북한과 이란을 방어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

이 인용 부분에서 5인안은 “북한이나 이란 같은 나라들에 대해…이 나라들의 정권이 아무리 억압적인 정권이라 하더라도,…군사적 수단이 무엇이건 간에…북한과 이란을 방어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인정한다. 그 당시 5인안은 제국주의와 전쟁에 관한 한 분명히(적어도 강령적으로는) 혁명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4인터안은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베네수엘라 등에서처럼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 사이의 갈등의 경우, 우리는 제국주의에 저항을 주도하는 정치세력이 누구냐에 상관없이, 제국주의 국가의 패배를 주장한다. 이 경우 어느 한쪽도 지지하지 않는 입장은 식민지 인민들을 제국주의에 팔아넘기는 배신행위가 될 것이며, 제국주의 국가의 패배는 전 세계 피억압 민족과 노동계급의 투쟁을 크게 고무시킬 것이다. 다만 제국주의에 저항을 주도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는 어디까지나 군사적 지지이며, 이것을 정치적 지지와 혼동하게 될 경우, 해당 국가나 민족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과 지향을 크게 훼손 왜곡시킬 것이다.”

‘애초의 5인안’ (각주 1))과 4인터안은 레닌과 함께 러시아 혁명을 지도했던 트로츠키의 다음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모든 혁명가들은 반(半)파시스트 정권이 통치하는 브라질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 날 이 브라질이 영국과 군사적으로 충돌한다고 가정해보자. 노동계급은 어느 편에 서야 할 것인가? 그 경우 소위 ‘민주적인’ 영국에 맞서 ‘파시스트적인’ 브라질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 나의 대답이다. 왜? 그 같은 갈등에서 민주냐 파시즘이냐 하는 것은 초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영국이 이긴다면, 영국은 리우 데 자네이루에 다른 파시스트 정권을 앉힐 것이고 브라질에 이중의 족쇄를 채울 것이다. 반대로, 만약 브라질이 승리한다면, 민족적이고 민주적인 의식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이고 그것은 바르가스 독재를 전복하는 길로 이끌 것이다. 동시에 영국의 패배는 영국 제국주의에 커다란 타격이 될 것이고 영국 노동계급의 혁명운동을 분기시킬 것이다.”—IBT, ‘반(反)제국주의 투쟁이 해방의 열쇠이다.’, 1938년 9월 23일

이처럼 5인안은 4인터안과 더불어 혁명전통을 계승하고 있었다.

그러나 5인안의 인용부에 대한 지지는 유보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그 부분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강령 순회토론 발제 자료인 ‘제4인터안에 기초한 3인안과 5인안 비판’에서 다음과 같은 우려 섞인 예상을 한 바 있다.

“그러나 국가자본주의론 비판에서 언급했듯이, 국가자본주의론을 고수할 경우 구체적 상황에 부딪히면 이러한 입장은 공허한 좌익적 언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안타깝게도 “공허한 좌익적 언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이 예상은 이후 발생한 리비아 사태라는 “구체적 상황”을 통해 현실로 증명되고 있다.

*     *     *

노정협의 반제국주의노선

먼저 양동지는 노정협의 ‘리비아와 제국주의, 춤추는 어릿광대들(노정신 73호)’을 비판하고 있다. 문제 삼는 노정협 입장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지금 리비아에 제국주의가 군사침공을 하고 있는 상황과 카다피 반군들의 반동주의적 성격들이 분명하게 폭로되어 정세가 일변한 상황에서는 카다피 방어노선을 견지하는 것이 올바른 입장이다.”

사노위 신문 8호의 <제국주의에 맞서 리비아를 방어하자!>를 읽어본 동지라면 짐작하겠지만, 우리는 노정협의 주장이 ‘대체로’ 타당하다고 본다. ‘대체로’라는 단서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한다. 카다피를 “반제세력”으로 추켜 세워주는 것에 대해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카다피 정권은 어떤 진보성도 지니고 있지 않은 민족주의 전제정권이다. 둘째로, 최근의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격변을, 스탈린에 의해 식민지 혁명 전략으로 승격된 멘셰비키의 2단계 혁명론으로 아프리카 중동혁명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각주 2) 셋째, ‘카다피 방어’라는 표현에 반대한다. 카다피와 일시적 ‘군사 동맹’을 통해 제국주의 침략을 격퇴하고 리비아를 방어하겠다는 것을 카다피에 대한 ‘정치적 지지’와 혼동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맹목적 확신

양동지는 “봉기세력을 반동세력이라 지칭”하는 노정협의 주장을 부정한다. 그렇다면 노정협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봉기세력이 반동세력이 아니라는 점을 논증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무장반란군의 계급구성, 요구, 목표 등으로부터 이들을 혁명세력이라 규정할 수 있는 근거들을 찾아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들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주관적 소망에 기댄다. 분명한 근거 없이 이렇게 위험한 입장을 확신(?)하는 것은 아마 제국주의 언론에 주로 노출된 인민 다수가 자신의 이러한 입장을 지지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무장반란군(‘반군’)의 기층은 노동자, 청년층, 빈민들이며, 이들이 지금 카다피 정부군과 일선에서 대치 중에 있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또는

“이들의 요구와 목표 또한 이집트, 튀지니에서 거리에 나선 노동자 민중들이 외친 것과 동일한 ‘독재 타도’이며, “생존권 쟁취”라는 것도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또는

“이집트, 튀니지를 넘어 예멘, 시리아, 바레인 등 아랍권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과 그 본질적 성격에서 다르지 않다.”

또는

“그러나 봉기자들이 이집트에서 타흐리르 광장을 점거한 사람들이나 벤알리를 퇴진시키기 위해 튜니스에서 시위를 벌인 사람들과 그 성격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반군의 성격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현 리비아 사태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취하는 데에 있어서 핵심적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분명히 확인되어야 한다. 그런데 양동지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근거도 대지 않으면서, 그저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아랍권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과 그 본질적 성격에서 다르지 않다.” “분명하다.”라고, ‘지구는 둥글다’는 진술마냥 너무 당연한 사실인 것처럼 말한다.

진짜?

도대체 누구에게 그 문제가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인가? 양동지는 어떻게 그 문제를 ‘이미 다 알고’ 있는가? 물론 우리 역시 리비아 침공의 명분이 절실한 제국주의 언론이 일관되게 바로 그렇게 선전해온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사회주의자들인 우리가 그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러한 단정에 반대되는 사실들이 계속 제기됨에도?

양동지가 취하는 이러한 태도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혁명은 ‘역사에 대한 외과수술’이다. 혁명은 특정 사회의 ‘목숨’을 살려내기 위한, ‘위험을 무릅쓴, 최후의’ 선택이다. 역사의 집도의가 되겠다고 나선 우리 사회주의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 의료 사고(역사적 재앙)를 막기 위해선 수술하기 전에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총체적으로 살펴 제대로 진찰하지 않고, 무모한 지레짐작과 선입견에 입각해 막무가내로 칼을 들려 한다면, 이 의사는 돌팔이로 간주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현재 반군 진영에서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는 친제국주의/왕정복고 세력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너무나도 허무맹랑하기에 이들을 언급하기는 한다. “기층”과 분리된 “상층”으로서. 그러나 “기층의 노동자와 혁명적 청년층은 카다피 타도를 넘어, 보다 급진적인 사회경제적 변화를 갈망하고 있고 서방의 개입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반대하고 있다”고 얘기할 때의 그 “기층”은 리비아에 과연 존재하는가? 물론, 반군 내부에서도 제국주의의 개입을 환영하지 않는 개별 인자들이 존재하리라는 추측은 할 수 있다. 그런데 친제국주의/왕정복고 세력과 분별되는 정치세력으로 이들이 존재하냐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가? 불행하게도 이 물음에 긍정적인 답을 내놓을 만한 근거가 양동지에게는 아직 없는 것 같다. 궁금해 할 동지들에게 <프레시안>에서 검색어 ‘리비아’로 관련기사들을 검색해보기를 권한다. 영문 독해가 가능한 동지들은 구글링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맑스주의적 입장에서 리비아 문제(특히 반군의 성격)를 다룬 글로 다음 글들을 추천한다.

#국제볼셰비키그룹(IBT)

* 나토의 침략에 맞서 리비아를 방어하자!

http://bolshevik.org/hangul/1917/Defend%20Libya%20against%20NATO.htm

#국제주의자그룹(IG)

* Imperialist Marauders in the Quicksands of North Africa

http://internationalist.org/imperialistmaraudersnorthafrica1104.html

* Qaddafi and the Imperialists: On and Off

http://internationalist.org/qaddafiimperialists1104.html

* Libya and the Opportunist Left

http://internationalist.org/libyaopportunistleft1104.html

* Libyan Showdown

http://internationalist.org/libyanshowdown1103.html

 

튀니지, 이집트 등과 리비아

양효식 동지를 포함하여 소위 ‘리비아 혁명’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좌익들에게서 두드러지는 주장 가운데 하나는, 리비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들을 이집트, 튀니지, 예멘, 바레인 등 여타 아랍제국에서 일어나는 사태와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양동지는 심지어 87년 6월 항쟁에 YS, DJ가 참여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제시된 나라들의 사례에서 제국주의가 과연 어느 편을 들고 있으며, 어느 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지를 얘기하지 않는다. 이 점이 바로 리비아 전쟁을 여타 아랍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명백하게 분별되게 만들며, 반군을 혁명세력으로 찬양하는 동지들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집트의 경우 비록 혁명정당이 개입하여 노동계급을 권력장악의 길로 인도하지 못한 것은 애석하지만, 이 나라의 노동계급은 제국주의와 군부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어용노조에 맞서 새로운 민주노조를 결성하였고, 적어도 누가 그들 조국의 압제 상태를 옹호하였는지를 어느 정도는 깨닫고 있었다. 한편 미 제국주의는 무바라크와의 형제애를 줄곧 강조하다가, 이집트 시위가 혁명적 상황으로 발전할 듯하자 부랴부랴 친미 군부를 통해 무바라크를 퇴진시켰다.

그러나 리비아는 어떠한가? 프랑스의 국기를 흔들고, 이드리스 국왕의 깃발을 흔드는 인파에서 과연 “혁명적 청년층”을 찾을 수 있던가? 리비아 전쟁을 다룬 IBT의 최근 문서에 의하면 반카다피 시위는 애초부터 NCLO라는 미CIA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조직이 주도했다고 한다. <소말리랜드프레스>에 따르면 반군은 사하라 이남 출신 이주노동자들에게 천인공노할 인종주의 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어찌됐든 양 동지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리비아 혁명이 카다피는 물론이고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는 노동자, 청년층의 주도 아래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자기 자신과 다른 동지들에게 ‘그럴 것이라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최면을 걸지는 말고.

 

혼돈에 빠진 맑스주의

양동지는 또 이렇게 말한다 : “제국주의 개입에 반대하면서 계속해서 카다피 정부군과의 내전을 수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가능한 일”이라는 이 주장에 대해, 레닌과 트로츠키는 비슷한 상황에서 전혀 다른 입장을 취했다.

“볼셰비키당은 케렌스키 진영과 코르닐로프 진영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볼셰비키들은 코르닐로프 진영에 맞서 케렌스키 진영에서 투쟁했다”(트로츠키, <극좌 일반과 특히 구제불능의 극좌에 대해서>, 스페인 혁명).

비슷한 상황들을 하나하나 따져보자.

-1917년 8월 러시아에서 노동계급은 코르닐로프/케렌스키 모두에 맞서는 것이 가능했던가?

-스페인 내전기에 노동계급은 공화국/프랑코 모두에 맞서는 것이 가능했던가?

-한국전쟁에서 노동계급은 인민군/유엔군 모두에 맞서는 것이 가능했던가?

-이라크 전쟁에서 후세인 정권/미국 주도 제국주의 침략군 모두에 맞서는 것이 가능했던가?

여기에 ‘가능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적어도 레닌주의자는 아닐 것이다. 리비아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도 이와 다르게 생각될 여지는 없다.

 

제국주의 공습이 ‘리비아 혁명’에 이바지한다?

또 이렇게 말한다.

지금 리비아에서 결정적인 문제는 ‘제국주의자들이 누구를 공격하고 있는가?’가 아니다. ‘리비아 혁명이 카다피 체제를 타도하는 데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다피와의 공동전선이란 ‘불가능’ 그 자체이다. 물론 리비아에 개입하고 있는 서방 나라들의 노동자 민중들은 개입과 공습에 반대하는 항의와 시위를 전개해야 한다.

여기에서 양동지는 반군 내 “상층”의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위의 입장은 “리비아 혁명을 카다피 축출에 제한”하려는 “친서방 부르주아”의 입장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제국주의와 그들의 하수인들에게 “카다피 체제를 타도”하여 제국주의 초과이윤을 추출하기에 더 적합한 정부로 대체하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혁명가와 노동계급(리비아 내부이든 외부이든)에게 그것은 제국주의를 패퇴시키는 것이다.

양동지는 제국주의의 리비아 공습에 대해 그저 반기는 것처럼 비칠까 보아 신경을 쓴다. 그래서 토를 단다: “물론 리비아에 개입하고 있는 서방 나라들의 노동자 민중들은 개입과 공습에 반대하는 항의와 시위를 전개해야 한다.”

제국주의 공습이 카다피 체제를 타도하는 데에 기여하길 바라면서, “서방 나라들의 노동자 민중들은 개입과 공습에 반대하는 항의와 시위를 전개해야 한다.”라? 앞뒤가 안 맞는다. 노동계급의 국제적 ‘분업’인가?

그러면서 말하길,

“리비아 내에서 반군을 비롯한 민주주의 혁명세력이 제국주의자들에게 개입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혁명 세력이 제국주의자들의 반카다피 개입이 낳아 놓은 효과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

경악스러운 대목이다. 제국주의의 군사개입이 만들어놓은 그 효과를 이용할지언정, ‘혁명가’들이 제국주의 개입을 노골적으로 “요구”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 개입이 고맙긴 하지만 노골적으로 “요구”까지 하는 것이 쑥스럽긴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요구하는 것에”는 반대해야 한다. 위의 주장처럼 제국주의 개입의 효과가 정녕 그러하다면, 리비아의 ‘혁명 반군’ 편에 서야할 서방의 노동자들은 “개입과 공습에 반대하는 항의와 시위를 전개”하되, 그것을 저지시킬 만큼 노골적으로 전개하지는 않는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역사가 이런 농담을 허용할 수만 있다면.

 

카다피와의 공동전선

공동전선 문제에 대해서도 양동지는 곡예를 한다. 앞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금 리비아에서 결정적인 문제는 ‘제국주의자들이 누구를 공격하고 있는가?’가 아니다. ‘리비아 혁명이 카다피 체제를 타도하는 데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다피와의 공동전선이란 ‘불가능’ 그 자체이다.”

그런데 몇 문단 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제국주의자들이 만약 지상군 공격과 리비아 본토 점령을 시도한다면 이 의용군은 원칙을 분명히 하는 선에서 카다피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하지 않은 채 카다피 세력과의 공동전선을 운용할 수도 있을 이다. 일체의 점령 시도를 패퇴시키고, 의용군들 자신들이 카다피와 그의 체제를 타도할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공동전선 전술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은 제국주의의 지상군 공격과 리비아 본토 점령 시도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경우를 전제로 해서다.”

앞에서는 “카다피 체제를 타도”하는 것이 결정적 문제이고, 그러하다면, 제국주의 공격의 “효과를 이용”해야 한다고 말하더니, “지상군 공격과 리비아 본토 점령을 시도한다면” “카다피 세력과 공동전선을 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자가당착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보았던 것처럼 제국주의가 “본토 점령을 시도”한다는 것은, 확실하게 “카다피 체제를 타도”하기 위함일 텐데, 그럴 경우 “카다피 세력과 공동전선 전술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몇 문단 위의 입장과 극명한 모순이다.

양동지는 우리에게 ‘너무 정교한’ 제국주의관을 요구한다. 즉, 공중에 머무는 제국주의와   지상에 하강한 제국주의를 구별할 것! 우리에게 ‘제국주의의 공중 폭격은 허용(요구하지는 말고)할 수 있지만 지상공격은 안 된다’는 더욱 정교해진 맑시즘을 제안한다.

이러한 입장은, 필시 노동자권력(Workers Power)의 다음과 같은 태도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압제자가 처한 모든 위기 상황을 이용하여, 가능한 경우 무기를 들 권리가 강력한 국가에 반대하는 자들에게 있다. 이것은 압제자의 위기상황이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한 것일지라도 변하지 않는다. 만약 비행금지구역의 도움 아래, 리비아 반란군과 혁명가들이 중요거점들을 되찾는다면, 카다피군의 사기와 충성심이 꺾일 것이고 나아가 수도 트리폴리로 진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리비아 혁명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환영받을 만한 일이다.

동시에 우리는 반드시 미국, 영국, 프랑스의 공격에 반대해야 한다. 제국주의 공격은 카다피가 국내에서 국가의 방어자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것은 이전에 갖지 못했던 정당성을 카다피에게 줄 것이다. 지금 그는 일부 인민을 끌어모아 혁명 반대 투쟁에 동원하고 있다.–‘리비아 혁명의 승리를!’

양동지나 영국의 노동자권력(WP) 같은 ‘혁명가’들에게 ‘지상군을 파견하지 않는’ 제국주의 공중 폭격은 압제자의 머리에 떨어지는 하늘의 날벼락이나 천재지변과 동일시되는 것으로 보인다.

 

리비아 사태와 선배 혁명가의 충고

리비아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이 상황에서 레닌주의 전위당이 존재한다면, 이 당은 사회주의로 가는 장애물들–제국주의 군대, 친제국주의 왕정복고 세력, 이슬람 반동배, 카다피 세력–을 치우기 위한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그러나 장애물을 치우는 작업은 남한의 몇몇 ‘사회주의자’들(이 글에서 주로 비판한 양효식 동지, ‘다함께’, ‘노건투’ 등)이 말하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할 수 없는 법이다. 이들은 그 작업을 깔끔을 떨며(자기 손에 더러운 것을 절대로 묻히지 않는 고상한 태도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동지들은 트로츠키가 1937년에 했던 충고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스탈린-네그린 정부는 사회주의로 가는 길에 놓인 사이비 민주주의적 장애물이다. 그러나 이 장애물은 또한 파시즘으로 가는 길에도 놓인, 그다지 믿을만하거나 견고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물이다. 내일이나 모레가 되면 스페인 노동자계급은 아마 이 장애물을 분쇄하고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비록 수동적이더라도 이 장애물을 파괴하는 것을 돕는다면, 이는 파시즘에 봉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무는 단지 양 진영을 이론적으로 그 진정한 가치에 따라 평가하는 것만이 아니라, 앞으로 도약하기 위해 실제로 이들의 투쟁을 활용하는 것이다.”–‘스페인 혁명’ 중 ‘극좌 일반과 특히 구제불능의 극좌에 대해서’

위 글의 “스탈린-네그린”에 카다피를, “파시즘”에 NATO 제국주의를 대입해 보라! 그리고 “양 진영을 이론적 가치에 따라 평가하는 것만이 아니라, 앞으로 도약하기 위해 실제로 이들의 투쟁을 활용한다”는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라!

* 이 글이 거의 다 작성되어갈 무렵에, <레프트21>의 ‘나토 지상군 투입 시 카다피와 손을 잡아야 한다?’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이 글의 작성자는 “지금 리비아에는 탈레반이나 카다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민주적이고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세력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정말 리비아에 “민주적이고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세력”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이집트의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지지했던 것처럼 그들을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벵가지를 거점으로 삼은 반군이 이러한 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반군 내부에서 친제국주의적 “상층”에 도전하는 혁명적 분파가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반군이 흑인 이주노동자들을 학살하고, 제국주의 군대의 개입을 공공연히 환영하는 와중에서 반군 내의 어떤 “혁명적 세력”이 이에 저항했던가?

카다피의 “위협”이 너무 “강렬”해서 군사적 공동전선이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볼셰비키를 국가반역자로 몰아 체포, 투옥, 처형한 케렌스키는 볼셰비키에게 별 위협이 아니라서 볼셰비키가 코르닐로프 쿠데타로부터 동궁을 방어했던가? 노동자, 농민들을 탄압하고 무장해제시킨 공화국 정부가 별 위협이 안 되어서 트로츠키가 공화국 진영에 서서 프랑코에 맞설 것을 주장했던가?

결국 이러한 류의 주장은 공포(하나는 카다피에 대한[제국주의 매체에 의해 부풀려지기도 한]공포이며, 다른 하나는 ‘카다피와 협력하려 한다는 괜한 오해’를 살 것이라는, 인기 없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받게 될 멸시에 대한 공포)에 질려 최소한의 이성적 판단력조차 상실한 남한 좌익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1) 인용된 부분은 5인안 내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사노위 5인은 2010년 11월, 자신들의 강령초초안을 처음 제출한 바 있고, 그 때 위의 인용부는 실려 있었다. 그러나 지역별 순회 토론회를 진행 중이던 3월 4일, 인용한 부분은 수정되었다고 발표되었다. 그러나 3월 19일 전국토론회에서 양효식동지가 단독으로 제출한 발제문에서는 그 내용이 복원되었다. 하지만 4월 18일 제출한 5인의 강령초안에서는 아예 사라졌고, “이란과 북한에 대한 미국의 도발 저지”라는 애매한 표현만 남았다.

2)

다음은 노정협의 정치를 끊임없이 발목 잡는 스탈린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이다.

“여기에 튀니지 봉기의 모든 결과가 달려 있다. 단순히 권력형태만을 교체할 것인가? 민주주의 혁명을 더 철저하고, 더 멀리 수행해서 기존 권력자들은 물론이고 새로운 얼굴의 권력자를 내세워서 지배를 계속 하려는 부르주아 계급에 맞설 것인가? 물론 그렇다고 튀니지 봉기에서 당장 사회주의 혁명의 요구를 전면에 내걸어서는 안 된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 지금의 민주주의 혁명의 단계에서 당장 사회주의 요구를 내건다면 민주주의적 열망 수준에 머물러 있는 대중들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될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투쟁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끌고나갈 수 있는 전위정당 세력들이 너무도 미약하다. 이 투쟁에서 튀니지 노총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노조세력이 끝까지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중단 없는 혁명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과도정부에 장관을 파견하려다가 인민들의 반대로 마지못해 장관직을 사퇴했던 전력이 있는 튀니지 노총의 한계를 보라!

레닌이 말했듯이 튀니지에서 민주주의 혁명은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더 철저하게 수행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혁명이 철저하게 수행되면 될수록 기존 정권세력은 물론이고 부르주아 지배계급도 약해질 것이다. 민주주의 혁명이 더 철저하게 수행될수록 인민들의 생존권과 완전한 정치적 자유의 보장 등 제반 민주적 권리를 더 많이 쟁취할 것이다. 이 혁명이 더 철저하게 수행될수록 인민들의 정치적 의식은 더 급진적으로 변할 것이고, 전위정당 세력들은 점점 더 대중적인 지지를 받게 되면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두보가 더욱 굳건하게 구축될 것이다.“–노정협, 노동자정치신문 71호, 튀니지 인민봉기는 성장전화 할 것인가?

1920년대의 중국 혁명, 30년대의 스페인 혁명, 60년대의 인도네시아, 70년대의 칠레 등 많은 혁명적 기회가 이 도식 즉, “민주주의 혁명” 단계에선 “당장 사회주의 혁명의 요구를 전면에 내걸어서는 안 된다.”라는, 스탈린에 의해 계승된 멘셰비키 2단계 혁명론으로 인해 파산되었다. 그 혁명들은 “민주주의 혁명의 단계에서 당장 사회주의 요구를 내”걸어서 파괴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요구에 갇히면서, 사회혁명을 유보하다가 현실적 삶의 조건 변화를 갈망하는 노동자와 피억압인민의 지지를 잃어버리고 한편 부르주아에게 정국의 주도권을 내주었기 때문에 파괴된 것이다.

10월 혁명은 ‘러시아의 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2월 혁명 이전까지 자신의 전망을 레닌이 부정했기에 가능했던 혁명이었다. “레닌이 말했듯”이라는 노정협의 수식은 레닌에 대한 스탈린주의적 왜곡이다.

 

2011년 4월 23일

사노위 4인터안 강령 제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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