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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출처 – 국제볼셰비키그룹(IBT)



제국주의자들의 패배를!

나토의 침략에 맞서 리비아를 방어하자!

 

 

 시민 “보호”를 위한 “인도주의”라는 거짓 가면을 쓰고 리비아에 대한 나토의 대규모 군사 공격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여타 제국주의자들의 이 공격의 근본목적은 두말할 나위 없이 탐스런 석유와 천연 가스를 확보하고, 가끔 말썽을 부리는 카다피를 끌어내리는 것이다.

 리비아를 통치한 40여 년 동안 (최근 물러난 튀니지의 벤 알리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와 달리) 카다피는 제국주의 통제로부터 상당한 독립을 과시해 왔다. 카다피는, 1950년대 수에즈 운하를 몰수하고 제국주의와 시온주의[이스라엘 민족주의]를 화해할 수 없는 적으로 규정하면서 아랍세계에서 대중적 지지를 받은 이집트 지도자 압델 나세르를 자신의 모델로 삼았다. 자칭 ‘사회주의자’ 카다피는 사우디 왕족과 그 밖의 친제국주의적 아랍 통치자들을 도둑이나 시온주의 똘마니 등이라고 줄곧 비난하며, 1970년대에 석유와 가스 산업을 국유화했다. 수출과 정부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에너지 산업에서 나오는 일정량의 이윤은 카다피 정권 아래 인민의 교육과 의료를 위해 쓰였다.

 거대 석유기업들은 카다피를 미워했다. 2007년, 에이미 굿맨은 은퇴한 미국 장군이며 전 나토 사령관인 웨슬리 클라크와 인터뷰했다. 그는 리비아가 2001년 부시 행정부의 공격 대상국(hit list)에 올랐다고 밝혔.1)

카다피는 IMF 방식의 ‘구조조정’을 국내에 도입하고,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방식으로 워싱턴과 타협했다. 곧 리비아는 외국자본에 문을 열어줬고, 많은 국유기업들이 매각되고 식량보조나 그밖에 소위 ‘사회주의적’ 조치들은 후퇴했다. 이 같은 양보들로 인해 리비아는 당분간 살생부에서 벗어났지만, 리비아의 광대한 석유자원(아프리카 최고로 440억 배럴로 추산됨)을 직접 만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오바마 행정부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벤 알리와 무바라크의 퇴진을 보며, 카다피는 다음 차례는 자기가 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튀니지와 이집트처럼, 리비아 역시 실업청년들이 많고 대중적 저항의 조짐들이 있어왔다. 시위대들이 지난 1월 몇 개 도시의 정부주택단지를 점거했을 때, 정부는 240억 원의 발전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우디 소유 언론매체에 따르면, (이전 시위를 가혹하게 진압한 5번째 기념일인) 2월 17일 ‘분노의 날’이 계획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카다피는 그것을 중지시키기 위해 개인적으로 개입했다.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 대령은 리비아국민저항회의(National Conference for the Libyan Opposition: NCLO)와 리비아 활동가들의 2월 17일 ‘분노의 날’ 개최 발표에 주목해왔다. 이 집회는 튀니지와 이집트의 정치 행위를 본 떠 기획된 것으로, 리비아 에 혼란과 불안정을 가져오는 어떤 시도에도 반대한다는, 전에 없던 경고와 더불어 발표되었다.

“과거 며칠 동안, 카다피는 개인적으로 리비아 정치 지도자, 기자 그리고 언론기관 종사자들과 만나, 만약 리비아의 평화를 해치고 혼란을 조성하는 데에 가담한다면 책임져야할 것이라고 심각하게 경고했다.”

리비아 ‘분노의 날’에 카다피가 대비하다, Asharq Al-Awsat, 2월 9일

 NCLO는 2005년 CIA와 연결된 리비아구원국민전선(National Front for the Salvation of Libya: LNSF) 주도 아래 창립되었다. 리비아국민전선은, 창립되기 2년 전 정부와 결별한, 전직 관료인 모하메드 유세프 마가리에프에 의해 1981년 건설된 단체이다.2)

 리비아 제2도시 벵가지와 그밖에 작은 도시들에서 일어난 NCLO 주도의 시위는 카다피 충성파와 반란군 좌파를 패배시키고 동쪽지역을 장악했다. 의심의 여지없이, 많은 시위 참가자는 전제정권에 대한 혐오와 ‘자유’ ‘민주’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시위에 참가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른 시위들처럼 자신들이 어느 정도 자발적인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튀니지, 이집트와 달리, 리비아 봉기는 그 시작에서부터 의식적인 친제국주의자, 오랜 통치에 반감을 가진 자 그리고 이슬람 반동들에 의해 지도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이 왜 월스트리트저널이 리비아의 시위에 대해서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긍정적이었는가를 설명해줄지도 모른다. “미국과 유럽은 카다피 정권을 쓰러뜨리려는 리비아 인민을 도와야 한다(2월 23일).” 이 같은 태도는 다른 언론기관과 모든 아랍 반동 정권의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리비아에 대한 군사작전은, 나토와 미국이 1995년과 1999년 유고슬라비아를 폭격하며 ‘인도주의적’ 행위라며 합리화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바레인, 예멘,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믿음직한 하수인들이 통치하는 여타의 식민지국가 시위대들에 대해서는, 보호해야 한다는 요청을 그들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2년 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을 학살한 이스라엘의 군사침략 당시에도 똑같은 태도를 이들이 취했음은 물론이다.

 반(反) 카다피 저항엔 의미 있는 전환점이 있었다. 두 명의 전투기 조종사가 몰타로 망명하고, 군 지휘부는 명령을 거부하고, 군대의 일부는 시위대 쪽으로 넘어갔다는 보도가 떠돌았다. 내무장관 압델 파타 유니스와 공군 대장 아레프 샤리프 등 국내 몇몇 인사들처럼, 일부 외교관들이 정권과 결별을 선언했다. 반란군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카다피가 외국으로 도망갔다는 소문을 영국 외교장관 윌리엄 헤이그가 2월 21일 발표했다.

 벵가지 함락과 이어지는 정권에 대한 이반을 보며, 정부가 곧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이 널리 퍼졌다. 그러나 며칠 사이 카다피는 그에 대한 지지를 결집시키고 반란군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을 회복하기 위한 원정을 시도했다. 마흐디 다리우스 나젬로아야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보고서를 인용하며,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는지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군부 중요 인사 가운데 하나인, 국방차관 마흐디 알-아랍이 카다피와 단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리비아가 내전의 혼돈 속으로 빠지길 원치 않으며 그렇게 되면 외국의 간섭을 불러올 것이라고 그의 입장을 수정했다. 이를 통해 알-아랍은 자기 고향인 자와라가 반란군에 가담하지 않고 트리폴리 옆에 남게 하였다….

 “2월 23-24일, 카다피는 리비아의 3대 부족(와르팔라, 타르후나, 와르슈파나: Werfala, Tarhouna, and Wershfana) 지도자들을 만나 그들의 지지를 확인했다. 카다피의 부족인 카다파는 그를 지지하고 있고, 마라르하( Madarha) 와 아울라드 슬리에만( Awlad Slieman) 부족 역시 그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비아: 미국과 나토의 군사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워싱턴은 내전을 유도하고 있나?’, 글로벌 리서치, 2월 25일

 나젬로아야는 카다피가 “1년 이내에 물러날 것”이고 그 자리에 자기 아들 중 누구도 앉히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전제정권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표출되었던 이집트, 튀니지와 달리 카다피 충성파와 벵가지 반란군 사이의 갈등은 질적으로 비슷한 자본주의 분파들 사이의 내전이다. 맑스주의자인 우리는, 전투참가자들에 의한 시민 희생을 반대하지만, 그 같은 갈등에서 어느 쪽도 편들지 않는다. 그러나 나토의 개입으로 이 갈등은 신식민지와 제국주의 국가들(그리고 그들의 토착 하수인들) 사이의 갈등으로 전환되었다.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노동자는 전쟁물자의 생산과 운송을 거부하는 파업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 반동적인 식민지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경험을 통해 미국과 여타의 제국주의자들은 무슬림이 지배하는 나라를 노골적으로 침략하는 것을 꺼려왔다.3)

 반란군들이 그리 강력하지 않다는 분석들이 많은 반면, 압도적인 나토 공군력(특정 형태의 지상병력이 존재할 가능성과 더불어)은 카다피 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리비아가 분단될 것이고 석유가 풍부한 동부 지역에 수립된 ‘독립적인’ 보호령의 수도로 벵가지가 인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이 나오고 있다. 반란군 임시국민의회( Transitional National Council)는 제국주의 후견자에게 리비아 석유자원을 넘겨주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벵가지에 있는 리비아 반란군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해 자산이 동결된 카다피가 통제하는 회사를 대신해서 자신들이 국가석유회사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임시국민의회는 3월 19일 모임에서 임시로 벵가지에 기반을 둔 석유생산과 정책에 대한 감시기구로서 리비아석유회사를 설립하고 임시책임자를 임명했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의회는 또한 ‘리비아 재정을 책임질 기구로, 임시본부를 벵가지에 둔, 리비아 벵가지중앙은행을 설립하고 책임자를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3월 17일 안전보장이사회는 카다피 정권의 자금출처가 되고 있는 리비아 국가석유회사와 리비아중앙은행의 해외자산을 동결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Bloomberg.com, 3월 22일

 우리는 카다피 정권이 어떤 진보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카다피 정권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부패하고 폭압적인 카다피 독재를 끝장내는 것은 리비아 피억압대중과 노동자가 해야 일이지 외국 식민주의자들과 그들의 토착 하수인들이 할 일이 아니다. 70여 년 전, 위대한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입장을 다음처럼 말한 바 있다.

 

“모든 혁명가들은 반(半)파시스트 정권이 통치하는 브라질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 날 이 브라질이 영국과 군사적으로 충돌한다고 가정해보자. 노동계급은 어느 편에 서야 할 것인가? 그 경우 소위 ‘민주적인’ 영국에 맞서 ‘파시스트적인’ 브라질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 나의 대답이다. 왜? 그 같은 갈등에서 민주냐 파시즘이냐 하는 것은 초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영국이 이긴다면, 영국은 리우 데 자네이루에 다른 파시스트 정권을 앉힐 것이고 브라질에 이중의 족쇄를 채울 것이다. 반대로, 만약 브라질이 승리한다면, 민족적이고 민주적인 의식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이고 그것은 바르가스 독재를 전복하는 길로 이끌 것이다. 동시에 영국의 패배는 영국 제국주의에 커다란 타격이 될 것이고 영국 노동계급의 혁명운동을 분기시킬 것이다.”

‘반(反)제국주의 투쟁이 해방의 열쇠이다.’, 1938년 9월 23일

 미 해병 근무 경력이 있는 에릭 마골리스를 포함한 여러 보수적 논평가들은 지금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나토의 작전과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침공이 많이 닮았다고 지적한다.

 

“이라크 경우처럼 리비아에서도, 침공에 앞서 서방 언론과 정치가들의 들끓는 분노 표출과 대규모의 반(反)카다피 선전이 있었다. 그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미국 TV 기자들이 다투어 리비아로 파견되었다.”

에릭 마골리스, ‘새 십자군’, 3월 21일

 친제국주의 두뇌집단 STRATFOR의 조지 프리드먼은 임시국민의회를 “오직 카다피에 대한 반감으로 일시적으로 뭉쳐 있지만, 매우 잡다하고 때로 상호적대적인 부족과 개인들의 연합”이라고 묘사한다. 그는 그들을 “서방의 꼭두각시”일 뿐이라고 본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서구 세력이 직접 관리하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질서를 따르게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의 하미드 카르자이를 떠올리게 한다. 대부분의 아프가니스탄인이 불신했지만, 미국이 그를 임명하고 제국주의 세력들이 또한 그를 지지했다.

‘리비아, 서방 그리고 민주주의 이야기, STRATFOR, 3월 21일

 “인도적” 수사에 사로잡힌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비행금지구역”을 지지했다. 그것이 리비아 군사기지에 대한 폭격으로 이어지자 그들은 짐짓 놀란 체한다. 벵가지에 근거지를 둔 소위 ‘리비아 혁명’에 대한 좌익 지지자들은, 나토의 군사적 간섭을 용인한 것이 제국주의 앞잡이 짓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어떻게든 해명해야 하는 곤란한 입장에 빠져버렸다. 반 카다피 진영 내에 외국 간섭에 반대하는 진영이 있다고 보도된 바 있지만, 카다피군이 진격하자 이러한 태도는 싹 사라져 버렸다.

 영국 노동자권력(Workers Power: WP)은 벵가지 반군에 대한 가장 열렬한 지지자 가운데 하나였다. 3월 19일 제국주의의 폭격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WP는 “무조건적 지지”를 여전히 주장했다.

 

“반카다피 독재 반란군은 무조건적 지지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유엔 결정에 의해 바뀌지 않는다….

 “압제자가 처한 모든 위기 상황을 이용하여, 가능한 경우 무기를 들 권리가 강력한 국가에 반대하는 자들에게 있다. 이것은 압제자의 위기상황이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한 것일지라도 변하지 않는다. 만약 비행금지구역의 도움 아래, 리비아 반란군과 혁명가들이 중요거점들을 되찾는다면, 카다피군의 사기와 충성심이 꺾일 것이고 나아가 수도 트리폴리로 진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리비아 혁명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환영받을 만한 일이다.

 “동시에 우리는 반드시 미국, 영국, 프랑스의 공격에 반대해야 한다. 제국주의 공격은 카다피가 국내에서 국가의 방어자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것은 이전에 갖지 못했던 정당성을 카다피에게 줄 것이다. 지금 그는 일부 인민을 끌어모아 혁명 반대 투쟁에 동원하고 있다.

‘리비아 혁명의 승리를!’

 제국주의 개입으로 인해 “리비아 혁명”의 기회가 제공되었다는 WP의 찬사는, 나토의 군사작전에 대한 그간의 “반대” 입장이 그다지 진지하지 않은 것이었다는 점을 입증해 준다. 가장 최근의 이 굴욕적 투항은, 1995년 8-9월 영국, 프랑스, 미국의 폭격에 맞서 보스니아계 세르비아인에 대해 군사적으로 방어할 것을 WP가 비겁하게 거부한 일을 떠올리게 한다(1917 17호의 “LRCI Splits Over Bosnia Betrayal,”을 볼 것). 노동자권력(WP)은 두 경우 모두 맑스주의 원칙이 아니라 지금 당장 어떤 것이 인기 있는지를 살펴 자기 입장을 정한다.

 혐오스럽고 부패한 카다피 독재를 뿌리 뽑을 진정한 투쟁은, 세계 인민을 가혹하게 착취하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맞서는 광범한 투쟁과 결합되어야 한다. 이것은 리비아 같은 신식민지 나라에 대한 제국주의의 어떤 그리고 모든 개입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리비아 방어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만이 아니라, 제국주의 나라 노동계급과 피억압인민에게도 결정적인 문제이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노동인민의 역사적 이해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제국주의 세계 질서를 끝장내는 일련의 사회주의 혁명만이, 식민지지배와 자원의 분할/재분할을 둘러싸고 끝없이 유혈 전쟁을 벌이는 이 파괴적 광란으로부터 인류의 광대한 생산력을 해방시킬 유일한 길이다. 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연속혁명 강령으로 무장하고 노동계급에 깊이 뿌리내린 레닌-트로츠키주의 정당 건설이 필요하다.

 

1)

 “9. 11 사태가 벌어진 대략 10일 후, 국방부에 갔었는데, 거기에서 럼스펠드 장관과 월포위츠 차관보를 만났다. 내 밑에서 일하던 직원들에게 안부 인사나 하러 아래층에 내려갔는데, 여러 장군들 중 한 명이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는 ‘들어와서 얘기 좀 잠깐 나누시죠.’라고 했고, 나는 ‘바쁘지 않아?’라고 물었다. 그는 ‘아뇨, 아뇨’하면서, ‘우리는 이라크와 전쟁을 치르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때가 9월 20일 경이었을 것이다.

 “그 래서 나는 몇 주 후에 그를 보러 다시 왔는데, 그 때는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을 가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여전히 이라크와 전쟁을 할 계획인가?’라고 묻자, 그는 ‘음, 그것보다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기 책상에 가서 한 장의 보고서를 집어 들면서 ‘방금 이걸 위층(국방장관실)에서 가져 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5년 동안 일곱 나라를 우리가 어떻게 날려 버릴지를 정리한 메모입니다. 이라크에서 시작하여 다음엔 시리아, 레바논,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으로 이어져서 이란에서 끝납니다.’”—Democracy Now, 2007년 3월 2일

 

2)

 밥 우드워드의 ‘베일: 1981~1987년 CIA의 비밀전쟁’에 따르면, 마가리에프는 수단 대통령 니메리를 통해 CIA와 연결되었다. 1983년 12월 5일 CIA 보고서는 마가리에프는 “수단과 미국이 그의 유일한 친구라고 믿는다. …다음 기간의 훈련을 받으며 자기 조직이 신뢰 받기 위해 리비아에 반대하는 공작을 더 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고 말한다. 우드워드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CIA 책임자 윌리엄 케이시는 알 카에다 운동을 지원하는 대통령의 승인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리비아구원국민전선은 그 “신뢰”를 곧 얻을 수 있었다.

 “LNSF 는 1984년 5월 8일의 밥 알 아지지야의 카다피 본부에 대한 대담한 공격을 자기가 했다고 주장했다. 비록 그 쿠데타 시도는 실패했고 카다피는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저항조직들은 8명의 리비아인, 쿠바인 그리고 동독인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CIA는 그 5월 8일 공작 이전과 이후에 LNSF를 훈련시키고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리비아: 국가연구, 연방연구조사국, 국회도서관

 

3)

 선데이 미러[런던]는 “수백 명의 영국 SAS 병사들이 3주 동안 리비아 내에서 반란조직들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3월 20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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