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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le1917@gmail.com

* 원출처 – 국제볼셰비키그룹(IBT)


자본주의의 나락

‘불평등, 실업 그리고 부정의’

 


글로벌 자본주의는 현재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경제적 모순에 빠져 있다. 이번 침체가 얼마나 깊고 길게 이어질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제국주의 진영과 개발도상국에 대규모 실업과 생활수준의 가파른 추락이 길게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 많은 지표로 확인되고 있다.

금 방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로 소비자와 투자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부르주아 언론은 아주 작은 “회복” 징후라도 건지기 위해 애가 타 있다. 이 온정주의적 “낙관론”은 1929년에 월가가 추락할 당시의 진단을 떠올리게 한다. “(상무부 차관인 줄리어스) 클라인은 디트로이트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비록 더 나은 교역 수준을 회복하기 위해 한 동안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르지만, 공황은 바닥에 도달했거나 바닥을 통과하고 있습니다.(뉴욕타임스, 1931년 3월 19일).” 다음 달,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상무부 장관 로버트 피 라몬트는 주요 연설을 통해 이 낙관적인 전망을 반복했다.

“이 같은 산업 격변 이후 세계가 경제적 안정과 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경제 재조정을 위한 시간과 정체는 필수적이라고 라몬트는 단언했다. 라몬트는 이 같은 재조정은 과거에도 있어 왔고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같은 자극에 경제가 지금 이 순간에도 느릿하지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이 그 무엇 때문이건 간에, 벌써 수개월 동안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힘이 작동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뉴욕타임스, 1931년 4월 30일

그러나 후버의 자극은 예상된 “바로잡기 위한 힘”을 생산해 내는 데에 실패했고, 공황은 이후로도 수년 간 지속되었다. 그리하여 1930년대는 수천만 노동 인민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고난으로 점철된 10년이 되었다.

오늘, 1930년대와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지난 금요일 발표된 일자리 보고서를 보면, 노동부가 파악한 실업과 불완전 고용 수치가 지난 십년 간 지금이 가장 높다. 지금까지의 통계를 다 잡을 수 있다면, 이 실업 수치가 지난 대공황 이후 최고수준으로 나타날 것이다.”

“지난 10월 전체적으로 대략 6명 중 한 명(17.5%) 이상의 노동자가 실업이나 불완전 고용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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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천 6백만 명이 지금 실업 상태이고 2007년 말 이후 일자리가 7백만 개 이상 사라졌다.”

“공식적인 노동부의 실업통계는 1994년까지 측정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초, 노동부 경제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뉴욕타임스는 1970년까지 측정해 내었다. 만약 그러한 통계가 대공황에도 가능하다면, 지금이 아마 그 때보다 30% 높을 것이다.”

뉴욕타임스, 2009년 11월 8일

2007년에 2.1% 성장했던 미국 경제는 2008년엔 정체했고 2009년엔 2.5% 하락했다. 유럽 지역과 일본 역시 각각 3.9%와 5.3% 후퇴했다(국제통화기금, World Economic Outlook Update, 1월). 2008년 약 2.1% 감소했던 선진국들의 총 고정자본은 2009년엔 12.4% 추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편 정부 적자와 국가 부채는, 특히 미국에서 급격히 상승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실업 상승과 수입 감소로 인한 세수 감소 때문이지만, 주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실패한 군사 작전으로 인한 비용과 월가의 투기꾼에 처바른 정부의 구제금융 때문이다. 문제자산구제프로그램(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조사관인 닐 바로프스키는 이 구제금융 규모가 “3조 달러는 될 것(뉴욕 타임스, 2009년 7월 21일)”이라고 예측한다.

한 줌도 안 되는 최상층에겐 막대한 부로, 하층에겐 절망적 빈곤으로 표현되는 ‘세계화된’ 경제의 장기 침체는 이미 있던 깊은 불평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할 것이다. 하루 1~2 달러로 힘겹게 연명하는 신식민지의 인민에게, 이 위기는 말 그대로 생과 사의 문제가 될 것이다.

 

자본주의와 경제 위기

1930년대의 경험 이후,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에 내재된 호황과 불경기 경향의 근원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간 그들 대부분은 자본주의의 주기적 위기가 이미 해결된 문제라고 간주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경기순환은 이미 순치되었다는 이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주장을 환기시켰다.

“시카고대학 교수이고 199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카스는, 2003년 미국 경제협회 연례회의에 나가 대통령의 자문에 답했다. 대공황에 대한 응답으로 거시경제학이 시작되었다고 설명한 후에, 이제 ‘공황 방지의 핵심문제는 모든 실천적 관점에서 해결되었다’고 그는 선언했다.”

“공황 방지가 해결된 문제라고 언명한 것은 루카스 혼자가 아니었다. 전 프린스턴대 교수인[현재는 미 연방준비은행 의장] 벤 버냉키는 1년 뒤 ‘대 완화(The Great Moderation)’라는 매우 낙관적인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그는 루카스와 비슷한 논조로 거시경제 정책들이 경기순환을 해결했다고 주장했다.”

“불과 몇 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와 같은 낙관적 언명들이 얼마나 자기만족적인 것이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불경기의 귀환과 2008년 위기>

크루그먼 같은 자유주의자는 1930년대 미국에 구축된 통제 장치가 사라졌기 때문에 세계 자본주의가 지금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설명은 레이건과 대처 그리고 그 부류의 정치가들이 도입했던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단순히 뒤집는 기존 해결책과 더불어 쉽게 눈에 띄는 ‘악당들’(버니 매도프와 골드만삭스를 경영했던 고발되지 않은 사기꾼들 같은)에 대한 고발로 이어진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는 근시안적 정치가들이 추구한 나쁜 정책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의 노동조합 탄압이나 규제완화는 20년에 걸친 비교적 높은 수준의 성장과 생활수준의 상승에 뒤이어 닥친 1970년대 경제 침체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 주식시장 거품 파열로 촉발된 1930년대 대공황은 약 7천만 명이 죽고 선진 자본주의 경제를 산산조각 낸 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격변을 통해 비로소 극복되었다. 이 유례없는 사회적 대재앙은 정치 지형 전체, 특히 전통적 지배엘리트 대부분이 나치와의 협력으로 신임을 잃어버린 유럽에서 정치적 좌익화를 낳았다. 소련식 “사회주의”는 서유럽 등의 수백만 노동자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으로 보였다. 유럽과 일본 산업시설 대부분의 물리적 파괴는 대규모의 자본투자를 (종종 미국에 의한 ‘재건’ 자금) 필요로 했고 그것은 전시 긴축과 공황으로 인한 제한적 수요와 더불어 호황의 기초가 되었다. 승리한 미국 부르주아지는, 한편으로는 임금 생활수준 사회복지를 대규모로 양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독히 반공적인 노동조합 관료를 구축하는 전후 ‘노동법’을 제정하면서, 자국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 했다 (<1917> 19호의 “American Labor Besieged”를 볼 것). 전통적으로 보다 전투적인 유럽의 노동운동은 그 지배자들로부터 일정한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1950년과 1973년 사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은 매년 평균 4.3% 정도 성장했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케인스주의 ‘혼합경제’ 가 비교적 부드러운 경기 파동만을 거치는 지속적 성장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974-5년의 세계경기침체는 이것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인지를 확인시켰다. 그런데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강성 노동조합들로 인한 지속적인 임금 상승과 원유가의 급상승 탓으로 돌렸다. 사실 이 위기는 1960년대에 시작된 이윤율 하락이 구조적으로 심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후였다. 국제자본을 이끄는 지도 분파의 이에 대한 대응은 ‘전후 양보’를 폐기하고 보다 노골적인 자본주의 본연의 통치 방식으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1981년 항공관제사 노조 파업에 대한 레이건의 진압과 몇 년 뒤 광부파업에 대한 대처의 승리는 임금과 사회보장을 깎아 이윤을 올리겠다는 자본가들의 작전을 위한 중요한 승리로 기록되었다. 미국에서 노동일은 길어지고 임금은 깎였다. 많은 노동자들은 살아가기 위해 두 개 이상의 일을 해야 했다. 제국주의 심장부에서 많은 회사들이 남미와 동아시아의 저임금 지역으로 생산을 이전하는 탈산업화는 실업 노동자집단을 증가시키고 노동조합을 약화시켰다. 동시에 제조업체들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로봇과 전산화에 크게 투자했고 린 생산방식(lean production)’ 을 도입했다.

‘신자유주의’라고 알려진 정책의 핵심은 특히 개발도상국(즉, 신식민지)의 국내생산자를 보호하는 관세 철폐와 국가 간 자본이동 제한 철폐를 포함한다. 공장 해외이전은 자본이 국제적 수준을 균등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자유시장 옹호론자들이 떠벌이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예일대의 토마스 퍼기는 1980년에 세계인구 상위 10%의 개인 소득이 가난한 10%의 60배였지만, 2005년엔 122배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층 5분의 4의 부를 두 배로 해 봐야 최상위 1%가 지닌 부의 15.3%에 지나지 않는다(Dissent, 2008년 겨울).”라는 퍼기의 계산은 세계 자본주의의 지독한 불평등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레이건과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또한 시장 경쟁의 소위 ‘창조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짭짤한 투자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금융 교통 및 통신에서 대규모로 규제를 완화했다. 선진국들의 모델이 된 미국의 은행 규제완화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2005년, EIU(Economist Intellegence Unit)의 일원이었던 해리 셔트는 실제적으로 신용을 무제한 발행할 수 있도록 금융기관들에 허용한 것은 국가 관료들이 그들에게 돈을 창조할 권한을 넘겨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편 여전히 국가가 손실을 책임져 줄 것이라는 기대가 암묵적 또는 명시적으로 있는 가운데, 사기업 특히 금융부문에 신용을 발행하고 할당할 권한을 줌으로써, 당국은 무책임하고 심지어는 범죄적인 행위를 강력히 장려하고 있었다. …게다가 기업이 감당할 최소 수준의 이윤도 유지하기 어려운 심각한 경기 침체 속에서, 기업 책임자가 위험한 투자를 꺼리는 것뿐만 아니라, 노골적인 사기에 나서고자 하는 유혹은 점점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자본주의의 쇠퇴

‘신자유주의’ 거품의 파열

신자유주의는 부를 상층에 집중시켰다. 1974년과 2004년 사이 미국 30대 남자의 평균 연봉은 4만 달러에서 3만5천 달러로 떨어졌다. 반면 “1978년에서 2005년 사이 CEO의 수입은 노동자 평균 연봉의 35배에서 262배가 되었다(Associated Press, 2007년 5월 25일).” 동시에 자본가들은 정부의 사회지출을 줄이고 법인세를 깎는 방식으로 간접비용을 줄였다.

“1972 년에서 2001년까지의 지난 30년 동안, 심지어 백분위 90%가 넘는(90%의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미국인들의 경우도 임금은 평균적으로 매년 1% 정도씩만 상승했다. 반면에 그 기간 동안 백분위 99.9%에 드는 자들은 181%가 올랐다(수입의 평균은 1백 7십만 달러). 99.99%는 497%가 올랐다.”–Monthly Review, 2007년 7월

비록 GDP 성장과 자본 축적률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보다 낮았지만, 실질임금의 하락과 금융 교통 및 통신의 규제 완화는 이윤율의 일정한 상승을 가져왔다(Fred Moseley의 “The United States Economy at the Turn of the Century: Entering a New Era of Prosperity?”를 볼 것). 거대 자본은 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금융투기로 눈을 돌렸다. 이것으로 1990년대와 2000년대 사이에 명목상 이윤율은 올라갔으나, 실제로는 허상일 뿐이라는 것이 점점 명백해지고 있다.

금융 거품의 팽창은, 아인 랜드와 밀턴 프리드먼(자유시장론을 주창하는 시카고학파의 수장)의 제자인, 연방준비은행 의장 알란 그린스펀의 통제 하에 이루어졌다. 그의 재임 기간(1985~2005), 미국의 공공 그리고 사적 채무는 대략 20조 달러에서 50조 달러로 치솟았다. 한편 총 이윤 중 금융부문 주식은 1980년대 초반 10%에서 2006년 40%로 4배가 되었다(Robert Chernomas, “The Economic Crisis: Class Warfare from Reagan to Obama,” in Bankruptcies and Bailouts을 볼 것). 이러한 상황은 총 금융자산(예금 주식 채권과 기타 유가증권 등을 포함하는) 대비 미국 GDP 비율 변화와도 병행한다. 같은 기간 그 비율은 1(미국 GDP):4(금융자산)에서 1:10으로 변했다. 비슷한 과정은 세계적으로도 나타났다. 1980년, 총국제금융자산은 총생산의 119%로 평가되었지만, 2007년 이것은 3배가 되어 356%가 되었다. 미쓰비시증권은 2008년 국제금융경제가 151조 8천억 달러인데 비해 ‘실물경제’는 48조 1천억 달러라고 평가했다.

과다차입기관(highly-leveraged institutions)들로 하여금 해외시장에서 위험한 투자를 하게 허용한, 금융투기의 세계화는 특정지역 문제를 즉각 세계적 문제로 비화하게 했다. 이것은 미국 부동산가치가 추락하기 시작하자 혼란스런 연쇄반응이 세계 신용시장을 뒤흔든 2008년에 명백해졌다. 미국에서 수십 년간 주택담보대출은 묶여서 유가증권으로 아무 문제없이 발행되었다. 투자자들은 담보를 잡고 지불능력이 있는 채권자들에게 제공된 장기 ‘우대(prime)’ 주택담보대출에 투자했다. 채무불이행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투자는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1990년대 대출가능범위를 우대대출보다 더(최종적으로 매우 많이) 확대한 부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CDO)의 도입으로 상황은 바뀌었다.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고자, 수백만 노동인민은 이 같은 비우량주택담보대출(subprime mortgage)을 받으라는 은행의 권유에 빠져들었다. 높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수백만의 부채담보부증권(CDO)은 우선채권자가 다른 채권자보다 먼저 상환 받는 식으로 단계화되었다. 설령 많은 채무자가 지불불능상태에 빠지더라도 여전히 우선채권자에게 돌아갈 현금이 충분하다는 근거로 신용평가회사들은 이들에게 트리플 A 등급을 주었다. 이 트리플 A 등급은 정부나 회사채권의 수익률보다 나은 수익을 찾던 연기금이나 기관투자가들을 끌어들였다. 점증하는 수요로 인해,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상품화는 서브프라임(비우량담보대출) 영역으로 더욱 깊이 들어갔다.

부채담보부증권(CDO), 신용파산스와프(credit default swaps) 그 리고 다른 고수익 ‘파생’ 투자 상품들이 계속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은 미국의 투기적 주택 거품이 파열하면서 깨져버렸다. 대부분의 시장 참가자들은 그들의 자산이 꾸준히 늘어나는 동안에는 월가의 소위 ‘금융 공학’ 혁신에 의해 조장된 총체적 광기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만약 채권자가 월가의 투자은행에 그 채권을 즉각 팔 수 있는 경우, 대출회사가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50만 달러를 빌려주는 것은 합리적이다. 위험한 주택융자를 묶고 그것을 채권 형태로 헤지펀드(hedge fund)에 파는(물론 아주 작은 이윤을 남기며) 투자은행 또한 합리적이다. 비교적 고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주택저당증권(Mortgage-Backed Security) 이라고 알려진 그 같은 채권은 헤지펀드나 다른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이다. 채권은 물론 위험하지만(처음에 주택구입자가 대출 받을 자격이 없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 많은 투자자들은 채무불이행에 대비하여 보험을 든다. 신용파산스와프(credit default swaps)라 불리는 이 같은 보험 판매자들은, 주택가격이 끝없이 오를 것이기 때문에, 보험료는 챙기면서 보험금 지급은 별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그리하여 그 최초의 채무자들은 비현실적인 그 융자를 갈아탈 수도 있다. 유명한 신용평가회사들이 이 매력적인 고수익 채권들에 트리플 A 도장을 찍어주기 때문에, 모든 이들은 이 모든 과정이 대단히 합리적이라고 여긴다. 주택저당증권(Mortgage-Backed Security)을 파는 바로 그 투자은행들이 그 신용평가회사들에 돈을 지불한다는 사실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뉴욕타임스 도서평론, 2009년 11월 15일

2008년 9월 미국 부동산 시장에 몰아닥친 디플레이션 은 금융체제 전체를 붕괴 위기로 몰아붙이는 공황을 낳았다. 총체적 파국을 막기 위해 미 정부는 ‘대마불사’로 여겨지는 대기업들의 부채를 떠맡기로 동의했다. ‘폰지 사기’를 하던 사기꾼들은 공적 자금으로 그들의 손실을 벌충하는 동안, 수백만의 피해자들은 그들의 융자금이 ‘물밑’으로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들의 집값이 융자금보다 더 싸졌다).

미국의 금융 사기꾼들에 대한 구제금융(다른 선진국들도 비슷한 방식을 썼다)은 그 동안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던 계급 사회의 진실을 확연히 보여준다. 비참한 붕괴를 설계한 바로 그 자들이, 그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싸 놓은 똥을 치우기 위해 투입한 돈으로 막대한 이윤을 또 다시 챙긴다는 바로 그 사실을 통해서.

2008년 11월, 이전에 연방준비은행 뉴욕점장이었고 지금은 재무장관인 티모씨 가이트너는 AIG에 공적자금을 투여하기로 결정했다. AIG는 골드만삭스와 여타의 투기꾼들이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담보대출)와 연결된 부채담보부증권(CDO) 손실에 대비해 들어둔 신용파산스와프(credit default swaps)를 지불하지 못해 위기에 직면했다. 전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자였던 로버트 쉬어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지금 가이트너의 재무성은 AIG가 ‘강력한 감시 체제에 놓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클린턴 정부 시절 가이트너의 상관이었던 로렌스 서머스가 통과시킨 법으로 인해 AIG 사기꾼들이나 금융 붕괴의 중심에 있던 다른 사기꾼 모두 통제되지 않았다. 특히 세계 경제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부채담보부증권(CDO)이나 신용파산스와프(credit default swaps)에 대해 손도 대지 않았다.

조사보고서가 말하는 것처럼, ‘2000년 클린턴 정부가 지지한 상품선물현대화법(Commodity Futures Modernization Act)은 신용파산스와프(credit default swaps)나 다른 파생 상품들의 제재에 제동을 걸었다.’ 클린턴 정부의 금융 천재들은 명백히 필요한 규제를 왜 차단하려 했을까?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참 황당한 일이다.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는, 서머스와 가이트너가 통과시킨 법의 도움으로, AIG는 ‘거래처에 72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담보부증권(CDO)를 보험회사가 마땅히 유지해야 하는 담보 없이 팔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 왜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경력을 가진 그들이 지금 또 다시 쇼를 진행하는 것인가?”

http://www.truthdig.com, 25 November 2009

쉬어와 그 밖의 자유주의자들은 정부 감독 강화와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정책으로의 회귀가 해법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사회체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좌익적 선회와 강력한 노동운동에 대응했던 것이다. 미국과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투항한 이후 수십 년간 노동운동은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대중을 달래는 양보 대신에, 수조 달러를 월가 투기꾼들에게 기꺼이 투입할 의지가 있는 오바마 정부는 “이 나라는 반드시 그 틀 속에서 살아야”하므로 “어려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음험한 협박을 하고 있다.

심지어 전후의 호황을 구가하던 시절에도, 부자 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지독한 가난 속에 살아야 했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임금이 하락하는 등 생활수준의 급격한 하락에 직면해 있다. 연금이나 사회보장 실업보험 등 치열한 계급투쟁으로 얻어낸 과거의 성과들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맑시즘, 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맑시즘은 자본주의 불합리에 대해 도덕적 비평 이상의 것을 제공한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주기적으로 일어나면서 갈수록 더 위협적으로 전체 부르주아사회를 존망의 시험대에 올려놓는 위기”를 언급한 바 있다. <자본론> 제3권에서 맑스는 그 같은 결과가, 이윤율 저하 경향을 낳는 자본축적 과정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분석하고 위기의 시기 “인간의 요구가 충족되는 지점이 아니라, 이윤의 생산과 현실화가 생산을 멈추게 한다.”라고 지적했다.

금융 붕괴 경기 하강과 공황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과 경제구조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가치(화폐로 대표되는)는 상품을 생산하는 인간 활동 즉 ‘살아있는 노동’에 의한 생산 과정에서 창출된다.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을 가동하여 ‘불변자본(원료, 기계 등)’이라는 기존의 가치를 최종 생산물로 보존하고 이전시킨다. 그러나 그들의 노동은 또한 두 종류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하나는 그들의 임금(‘노동력’이라는 독특한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자본가들이 지불하는 돈)인 ‘가변자본’이고 다른 하나는 이윤 이자 그리고 지대가 나오는 ‘잉여가치’이다.

자본가들의 경쟁은 기업으로 하여금 시장을 넓히고 경쟁자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을 통해 이윤을 최대화하도록 강제한다. 이를 위해 자본가들은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혁신으로 생산단가를 낮추려고 한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경쟁회사들도 기술혁신에 뛰어들고, 그것은 앞서의 이익을 상쇄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투여량은 줄어드는 반면 투자된 불변자본의 총량은 늘어난다. 그리하여 맑스가 말한 ‘자본의 유기적 구성(가변자본과 잉여가치에 대한 불변자본의 비율)’이 상승한다. 유기적 구성의 상승은 생산성 향상과 연관되어 있지만 또한 장기적으로 평균이윤율(투여된 총 자본에 대한 이익)의 하강과도 관련되어 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윤율은 기본적인 조절자가 되며, 그 상한선은 불변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율이 된다. ‘자유시장’의 근본적인 모순은 이윤이 나오는 유일한 통로인 잉여가치가 노동력 절감 기술의 도입 경쟁에 강제되는 자본가들(그리고 고용주와 노동자의 근본적인 적대관계)에 의해 생산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착취율(즉, 가변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은 높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평균이윤율은 저하시킨다. 물론 그 저하를 늦추는 반대 경향도 있고, 경기 침체와 전쟁 기간 불변자본의 파괴를 통해 그 과정이 간헐적으로 방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불변자본 축적에 대한 잉여가치 저하 경향을 막아서기에 충분한 힘은 없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실제 경계는 자본 그 자체”라는 맑스의 언명은 자본주의 그 자체에 이윤율 저하의 경향이 내재해 있다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1917> 31호에 게재된 머레이 스미스의 연구처럼, 최근 수십 년간 주요 선진자본주의 국가 경제에 대한 경험적 연구는 맑스의 예측과 일치한다. 머레이의 결론은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 프레드 모슬리, 안와르 샤이크와 아흐멧 토낙 등이 제출한 비슷한 연구들과 일치한다. 최근의 위기는 자본주의 가치법칙을 생생하게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 즉, (비생산적인) 의제자본(fictitious capital) 에 대한 배당금에 의해 인위적으로 부풀려진 명목상 높은 이윤율을 상대적으로 낮은 실제 이윤율이 실제와 같게 끌어당기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불합리는 경제와 정치 모두의 위기를 필연적으로 불러온다. 이미 ‘자유시장’ 경제를 고통스러워한다는 선명한 증거가 있다. 베를린장벽 해체 20주년에 맞추어 실시된 2009년 11월 9일 BBC방송의 여론조사는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염증이 넓게 퍼져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단지 “조사된 27개국 11%의 응답자만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대답했다.” 한편 “23%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고 응답했는데, 프랑스에선 43% 멕시코에선 38% 브라질에선 35%가 그렇게 대답했다.” 만약 경제 상황이 계속 이대로 간다면, 이미 높은 이 수치는 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각성이 사회주의적 대안에 대한 지지 증가로 자동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보호무역주의와 이민자 망명자 그리고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점증하는 혐오증은 그들을 체제 실패에 대한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영국의 국민당 같은 파시스트 조직의 핵을 격퇴하고 인민의 불만을 조직된 노동운동과 약자에 대한 공격으로 돌리려는 그들의 노력을 저지하기 위해 노동운동을 동원할 절실한 필요성을 재확인시키고 있다(<1917> 31호를 볼 것).

20세기 초반 그리고 1930년대에 또 다시 자본주의 주요 국가들이 경쟁 국가들의 희생으로 자기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무역전쟁과 경제장벽, 궁극적으로 세계대전을 낳았다. 그 첫 번째 제국주의 간 갈등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성공의 바탕을 제공했다. 다른 자유주의 동료들과 달리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크루그먼은, 1991년 퇴보한 노동자국가 소련의 반혁명적 붕괴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형성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경제 서적이다. 그러나 경제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맥락 속에 자리한다. 그리고 최근 몇 년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0년대에 펼쳐진 근본적인 정치적 사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주의의 붕괴는 단지 지배적 이념의 붕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인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상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                    .                    .

“우리는 1917년 이후 처음으로, 사적재산권과 자유시장이 마지못해 감내하는 방편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칙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 그리고 불평등 실업 부정의 등 시장의 부정적 측면들이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삶의 일부로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처럼 자본주의는 안전하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그럴듯한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틀림없이 다른 이념이나 이상 같은 것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경제 위기가 지속되고 더 깊어진다면 조만간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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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이 문 닫고 생산이 줄고 수십억의 삶이 파괴되는 그곳에, “불평등, 실업, 부정의” 체제에 대한 반란은 필연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자본주의 병리증상은 지구상 모든 생명체가 깃들어 살고 있는 자연환경의 총체적 파괴로도 선연히 나타나고 있다. 농경지는 사막으로 변하고 열대우림 지역은 벌채되고 바다 생물들은 남획으로 멸종되고 오존층은 얇아지고 기후변화는 거대한 파괴를 낳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이윤을 최대화하려는 노력의 직접적 결과이다. 공기와 물을 정화하는 데에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고 인간의 건강과 삶의 질을 형식적으로만 고려하는 그 이윤 말이다.

크루그먼과 그의 동료 부르주아 지식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 붕괴”가 완전히 잘못된 말은 아니다. 조직적 관점에서, 사회주의 운동은 지난 150년보다 지금이 더 약하다. 게다가 ‘극좌’로 일컬어지는 많은 조직들은 혁명적 사회주의의 거장들로 대표되는 전통을 더 이상 가장하지도 않는다(이번 호의 “반자본주의 신당”을 볼 것). 그러나 자본주의 옹호자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그럴듯한 대안을 향한 대중적 자각이 “착취자를 수탈할” 필요성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야무진 꿈에 빠져 있다. 현대 경제는 집산적인 즉, 사회주의적 생산으로 재조직하는 것을 통해서만 자본주의의 무정부적 혼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오직 사회주의만이 자본주의 내에서 개발된 방대한 과학기술을 모든 이들에게 안전하고 편안하며 지속 가능한 물질적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이용하는 현실적 계획을 제시한다.

사회주의 미래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노동계급과 피억압인민이 직접 통제를 수립하고 세계 자본주의를 뿌리 뽑는 혁명이다. 이것은 또한 맑스 레닌 그리고 트로츠키가 정리한 정치 강령을 위해 투쟁하는 혁명정당 건설을 요구한다. 이것이 자본주의라는 나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맑스의 언급


    자본의 목적은 필요(needs)의 충족이 아니라 이윤의 생산이므로, 그리고 자본은 생산량을 생산규모에 적응시키는 방법一생산규모를 필요한 생산량에 적응시키는 방법이 아니라―을 통해 이 목적을 달성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기초 위에서 제한된 소비규모와, 이러한 내재적 장벽들을 끊임없이 돌파하려는 생산 사이에는 끊임없는 긴장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     ·     ·

    너무나 많은 부가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인 적대적인 형태의 부가 주기적으로 너무나 많이 생산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장벽들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1) 노동생산성의 발달은 하나의 법칙으로서 이윤율의 저하를 내포하는데, 이 이윤율의 저하는 어느 일정한 시점에서 생산성의 발달 그 자체에 매우 적대적으로 대항하며 따라서 공황에 의하여 끊임없이 극복되어야만 한다.


    (2) 생산의 확장 또는 축소를 결정하는 것은, 생산과 사회적 필요〔사회적으로 발달한 인간의 욕구 사이의 비율이 아니라, 부불노동의 취득과, 이 부불노동과 대상화된 노동 일반 사이의 비율―이것을 자본주의적으로 표현하면, 이윤(의 취득)과, 이 이윤과 자본투하액 사이의 비율(즉, 어떤 일정한 이윤율)―이다. 따라서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아주 부족한 수준의 확장에서 이미 생산에 대한 장벽들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 생산은 사회적 필요가 충족되는 수준에서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의 생산과 실현이 명령하는 수준에서 중단된다. 


    이윤율이 저하하면, 한편에서는 개별자본가들이 더 나은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자기 상품의 개별가치를 사회적 평균가치 이하로 인하하여 주어진 시장가격에서 초과이윤(surplus profit)을 얻으려고 노력하게 되며, 다른 한편에서는 어떤 종류의 특별이윤(일반적 평균과는 독립적이면서 그것보다 높은 것)이라도 얻기 위하여 새로운 생산방법, 새로운 투자 및 새로운 모험 등을 앞뒤 가리지 않고 시도하기 때문에 투기와 투기의 일반적 촉진이 나타난다.―『자본론』 3-下


 Capitalist Meltdown, 1917, No. 32

 

[역주]


린 생산방식(lean production):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도요타자동차가 1980년대 도입한 생산방식

과다차입기관(highly-leveraged institutions): 헤지펀드

부채담보부증권(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 미국에서 만들어진 증권으로서 여러 개의 주택저당증권(MBS)를 묶어 CDO를 만들게 되며, 투자은행이 CDO를 만들어 다른 금융기관에게 매각할 때 위험부분만을 따로 떼어내 CDS를 별도로 만들어서 일정 보증료를 지불하고 다른 금융기관에게 보증에 대한 책임을 맡긴다.

신용파산스와프: 기업의 파산 위험 자체를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든 신용파생상품. 대출을 받는 채무자는 부도 위험만 따로 떼어 내 팔 수 있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쉽고, 채권자는 일정 수수료(프리미엄)를 내고 스와프를 구입함으로써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있다.

주택저당증권(Mortgage-Backed Security): 주택융자를 해 준 금융기관이 채권을 담보로 발행하는 증권

헤지 펀드(hedge fund): 소수의 투자자들을 비공개로 모집하여 주로 위험성이 높은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고수익을 남기는 펀드

디플레이션(deflation): 재화와 용역의 일반적이고 지속적인 물가의 하락

폰지 사기(Ponzi scheme):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고수익을 보장하는 방식의 사기

의제자본(fictitious capital): 재생산에 투여되는 실제 자본과 달리 주식의 시가 형태로 표현되는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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