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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국가(소련/중국/북한 등)의 사회성격
2015.06.04 02:34

소련 붕괴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

조회 수 3669 댓글 2

 2015년 5월 17일 성공회대에서 있었던 맑스코뮤날레에서, 볼셰비키그룹은 「소련 붕괴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이 글은 그 토론회에서 발표한 원고에 약간의 살을 붙인 것이다.

우리의 지난 발표 이후 그리고 사회주의는 실패했는가의 출판 이후, 노동자연대, 박노자, 노정협 등의 견해 표명 등으로 소련 사회성격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지펴지고 있다. “소련은 인류 최대의 역사적 실험이었고, 이 실험이 남긴 자료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내야만,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진로를 올바르게 설정하고 노동계급 내부에 깃든 사회주의에 대한 패배주의를 극복해낼 수 있다라는 점에서 소련 등의 사회성격에 대한 최근의 관심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 자료는 지난 발표 보고문의 성격도 있는데, 발표문 정리에 급급하여 질의/응답 부분은 미처 정리해 넣지 못했다. 우선 급한 대로 발표문부터 공개하고, 토론회 현장에서 있었던 흥미로운 질의/응답은 곧 추가하도록 할 것이다.

웹형식은 여러 가지 제약이 있어, 첨부한 한글이나 pdf파일로 읽는 것이 최선이다.

소련 붕괴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hwp

소련 붕괴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pdf

 

1. 러시아혁명에서 붕괴까지

2. 붕괴 이전과 이후, 동유럽과 소련 인민의 삶

3. 붕괴의 원인

4. 소련의 의미와 노동계급의 올바른 입장

5. 스탈린주의와 국가자본주의론

6. 결론

1. 러시아 혁명에서 붕괴까지

 

국제

국내

 

 

1917

1025

러시아 혁명 노동자권력 수립, 사적소유 철폐

19193

코민테른 창립

1918~1920

제국주의와 국내 자본가계급에 맞선 혁명방어전쟁

1919~20

이탈리아, 독일 등 혁명 실패(룩셈부르크, 리프크네히트 사망)

1922

레닌 발병

192310

독일 봉기 실패

1923

스탈린, 지노비에프, 카메네프 반트로츠키 3두체제 수립

 

 

19241

레닌 사망

19241월 

13차 당대회

트로츠키 실각

좌익반대파 결성

1926

영국총파업, 영국노총 배신, 영러위원회가 영국노총에 좌익적 외피 제공

1924~26

당원 배가 운동: 47107

1917년 당시 당원 비율 1% 미만

1925~27

중국혁명, 공산당의 국민당 합당(인민전선)과 장개석의 대학살

1926

트로츠키, 지노비에프, 카메네프 반스탈린 통합반대파 구성

 

 

1927

통합반대파 지도부 공산당에서 제명/ 지노비에프, 카메네프 스탈린에 투항

1928

농업집단화

1929

트로츠키 국외 추방

1928~33

초좌익 정책 제기, ‘사회파시즘론

1934~1938

3차에 걸친 모스크바 재판: 키로프 암살사건 계기

-레닌 당시 중앙위원회 위원 중 스탈린만

-193417차 당대회 중앙위원 139명 중 98명 총살

-대의원 1966명 중 1108명 숙청

1934

독일 히틀러 집권

좌익반대파 코민테른 파산 선언

1936

프랑스, 혁명적 상황을 인민전선정부로 모면

소련의 퇴보 분석한 배반당한 혁명발표

1936~39

스페인 혁명, 인민전선 정책, 1939년 프랑코 집권

1938년 제4인터내셔널 창립,이행강령채택

1939

2차 대전 발발

 

 

1940

821

스탈린의 자객에 의해 망명지 멕시코에서 트로츠키 사망

1941

독일 소련 침공

1943

코민테른 해체

 

 

1945

독일/일본제국주의 패전지역에서 소련체제이식한 다수의 노동자국가 수립(동유럽, 북한)

1945

소련 서부전선(독일)과 남부전선(일본)에서 승전

1949

국공내전에서 중국공산당 승리

 

 

1950~53

한반도(6·25) 전쟁

1953

스탈린 사망

1956

헝가리 혁명

1956

흐루쇼프 20차 당 대회에서 개인숭배와 그 결과들에 대하여발표

1956년 이후

스탈린격하운동으로 중소갈등 시작

마오쩌둥 소련 국가자본주의 국가주장

 

 

1959

쿠바혁명

 

 

 

 

1964

흐루쇼프 실각, 브레즈네프 집권

1967

인도네시아혁명 인민전선으로 실패

수하르토 집권, 대학살

 

내부 모순 심화되며, 경제 침체 이어짐

1968

체코, ‘프라하의 봄

 

 

1973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수립

1973

칠레혁명 인민전선으로 실패

피노체트 집권, 아옌데 등 학살

1980

폴란드 바웬사 연대노조운동

 

 

1985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

1988

아프가니스탄 철군

브레즈네프 독트린 폐기, 동유럽 불개입 선언

1989

폴란드 연대노조합법화, 90년 집권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90년 보수연합집권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처형, 국민구국전선 집권

 

 

 

 

19918

국가비상위원회 쿠데타 실패, 옐친 집권, 국유화 해체

 

지난 100년간의 혁명역사에서 포착해야 할 5가지 과정

1) 1924년 이후 혁명세력이 거세되고 관료집단이 소련의 권력과 국제혁명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

2) 중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인도, 칠레 등에서 스탈린주의의 인민전선 또는 초좌익 노선으로 혁명운동이 패배

3) 한반도 북부, 동유럽, 중국, 쿠바, 베트남 등에서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노동자혁명의 성과가 결합하여 사적소유를 철폐한 지역으로 편입

4) 좌익반대파에서 제4인터내셔널 창립에 이르기까지, 노동자국가의 퇴보라는 초유의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명하고, 관료집단과 다양한 기회주의에 맞서 맑스-레닌주의 혁명전통 방어

5)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

 

구정권 붕괴 이후 권력을 장악한 세력이 추진한 핵심사업: 사유화

반동세력의 구성: 미국 독일 등 제국주의 금융자본, 옐친·바웬사 등 자본주의 복귀 추진 토착 하위 파트너, 구 관료의 일부 등 자본주의 출세주의자

국유화 해체: 사적소유제를 지배적 제도로 만들기, ‘사회주의체제로 회귀 불가능하게 빠른 사유화 진행

재산관리청/사유화부 등 사유화 추진기관 설립

 

IMF의 핵심적 역할: 폴란드 헝가리는 붕괴 이전부터 그리고 1990년 이후엔 동유럽 대부분 IMF 자금 빌려 씀. ‘가격 자유화, 무역 자유화, 사유화, 재정개혁 등’ IMF와 합의한 일정한 정책을 실행한다는 단서가 달린 자금(IMF프로그램, ‘구조조정’)

미 하버드대 교수 제프리 삭스: 사유화의 대부(代父) (1980년대 남미 IMF 구조조정 지휘, 90년 초엔 동유럽, 1991년 이후엔 소련 사유화 진두지휘)

 

1990년대 동유럽에서 진행된 사유화의 성격에 대한 진승권의 묘사1)

“1990년대 동유럽의 체제개혁은 1917년 공산혁명 이후 러시아 및 제2차 대전 이후 동유럽 국가의 급진적 사회변혁에 비견되는 대대적 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동유럽 탈사회주의 경제개혁의 정치경제학

동유럽에서 진행되는 국가기업의 사유화는 시장경제에 기반한 서구나 개발도상국에서 이루어지는 공기업 사유화와는 그 양상이 판이하게 달랐다. 우선 경제개혁의 시작과 함께 체코 폴란드 헝가리를 위시한 동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계획된 공기업 사유화는 서방의 다른 어떤 경우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규모가 큰 것이었다.”같은 책

1990년 국가기업 수 폴란드 4,500 헝가리 2,2005년 이내에 50% 사유화하기로

 

사유화 두 가지 방식

a. 돈 되는 기업: 해외자본에 매각

b. 돈 안 되는 기업: 기업 노동자들에 무상분배(바우처) ‘어쨌든 국유화 형태는 최소화해야 한다!’

 

IMF통치 이후 한국 사유화와 비교: 2004년까지 한국전기통신공사(KT), 담배인삼공사, 포항제철, 국정교과서, 종합기술금융, 대한송유관, 한국종합화학, 외환은행, 제일은행 등 사유화. 그 결과 OECD 최고의 자살률, 최저출산율 나타남. 이에 비추어 소련과 동유럽 인민에 닥친 재앙이 어떤 정도였을지 짐작해 볼 수 있음

 

1) 진승권의 이 말은 1990년대 초에 소련과 동유럽에서 진행된 변화는 “1917년 공산혁명 이후 러시아 및 제2차 대전 이후 동유럽 국가의 급진적 사회변혁에 비견되는” ‘사회혁명’이었다는 진단이다. 1990년대 초부터 진행된 사회변화는 ‘별것 아닌 것’ ‘국가자본주의에서 사적 자본주의로의 게걸음’ ‘IMF 구조조정에서 나타나는 충격과 다를 바 없음’이라는 정성진이나 노동자연대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의 진단과 사뭇 다른 것이다.

 

2. 붕괴 이전과 이후, 동유럽과 소련 인민의 삶

 

붕괴 이전

고용 보장 식료품, 주택, 교통과 같은 기본적 생활수단은 국가보조를 통해 국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 의료와 교육도 마찬가지진승권, 2003, 동유럽 탈사회주의 체제개혁의 정치경제학

완전고용, 낮은 수준일지라도 경제적 보장, ‘요람에서 무덤까지사회복지

소득불평등 수준: 1960년대 중반 소련 최고소득: 최소소득 300, 평균임금의 100/ 미국 같은 시기 11,000배 평균임금의 7,000

“1970년대 동유럽 지니계수 서방 선진국의 절반

무계급 사회는 아니라 할지라도 자본주의 국가들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의 경제적 평등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사회였다고 하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체 국민들에게 기초교육과 의료, 주택, 직업 등 보장, 소득의 평등한 분배와 기초생활용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복지체계를 갖추었다.”

 

러시아: 자본주의 생지옥

 

유엔개발프로그램1999년 연구보고서는 이렇게 말했다:2)

“1990년대 이전에 중동부 유럽 그리고 구소련(지금의 독립국가연합) 국가들은 높은 수준의 기본적 사회보장을 인민에게 제공하여 주목을 받았다. 완전 평생 고용이 보장되었다. 현금 수입은 적었지만 안정적이고 변동이 없었다. 수많은 기본 소비재와 서비스는 국가 보조금을 받아 공급이 규칙적으로 유지되었다. 의식주 문제는 안정적으로 해결되었다. 교육과 의료는 무상으로 보장되었다. 퇴직자들에게 연금이 보장되었고 많은 종류의 사회보장 프로그램으로 이들은 정기적인 혜택을 누렸다.”

프릴랜드에 의해 카지노 자본주의의 최대 승리자로 묘사된 족벌미하일 프리드먼은 1991년 이후 인민의 삶이 질적인 변화를 겪었음을 확실히 인정했다. 심지어 그는 구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를 토로했다:

예전에 나의 생활은 소련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자유분방했다. 물론 물질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그리 잘 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걱정거리가 없었다. 진짜 치열한 관심거리는 친구, 정신적 관심사, 책 등이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열려있었다. 우리는 경쟁에 시달리지 않았다. 지금 존재하는 불평등과 시기심은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 요즘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3)

- 프릴랜드, 앞의 책

2) 먼저, 그 누구도 아닌, 유엔의 연구보고서라는 점에 주목할 것. 그리고 “높은 수준의 기본적 사회보장”, “완전 평생 고용”, “의식주 문제는 안정적으로 해결”, “교육과 의료는 무상으로 보장”, “퇴직자들에게 연금이 보장” 등의 말을 2015년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조건과 비교해 보자.

3) 우리 청소년들의 삶과 너무 달랐다.

 

붕괴 이후

러시아 인구문제: 러시아 인구 급감 199114800만 명에서 200614200만 명으로, 10만 명당 36명 자살(2005/ OECD 1위 한국 200333), 낙태아 수가 신생아보다 10만 명 많아(2005) 낙태아 수 매년 210만 명, 약물중독자의 수가 지난 10년간 20배 이상 증가, 결핵환자의 수는 1985년에 10만 명당 42명에서 2000년에는 91.5명으로 급증

 

동유럽 실업률 추이.png



중유럽 3국 임금 소득 소비 변화.png



동유럽 소비자물가 인플레이션.png


1993년 우크라이나의 물가상승률은 5,000%가 넘는다. 이런 물가지수를 본 일이 있는가? 같은 해 가장 낮은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체코도 21%였다. 그것도 폭동을 부를 만한 수치였다.

 

갤럽은 구 소련권 11개 나라에서 설문조사 참가자들에게 소련의 붕괴가 이 나라에 해로웠는가 아니면 이로웠는가?’를 물은 통계를 공개했다. 종합적으로 총 51%의 응답자가 [소련]붕괴가 자기 나라의 이익에 해가 되었다고 응답했고 오직 24%만이 독립을 지지했다.러시아인의 경우 붕괴로 그들의 삶이 나빠졌다고 55%가 응답한 반면 단지 19%만이 삶이 개선된 것으로 믿는다고 응답했다.”

gallup-poll Break up Soviet Union Harmful than Good.png



 

러시아: 자본주의 생지옥4)

자본주의하에서 인민은 생활하기가 더 힘들며 수명도 더 짧아진다. 1991년과 1995년 사이에 러시아 남성의 평균수명은 63세에서 58세로 급격히 떨어졌다. 인구증가율은 1990년의 2.4%에서 1996년의 마이너스 5.4%로 떨어졌다. (이 수치는 다른 나라로 이주한 수백만 명의 숙련 청년노동자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공공의료 체제는 거의 붕괴하였다. 현재 국내총생산의 1%가 공공의료 예산으로 책정되어 있는데 이 수치는 가장 가난한 신식민지 국가들에서나 볼 수 있다. 이 결과 결핵을 비롯해 과거에 근절되었던 전염병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지금 다시 나타나는 질병들은 표준 예방주사로 통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아마비는 현재 서방 선진국에서는 거의 드문 병이 되었는데 다시 나타나고 있다.”

-유엔개발프로그램

1989년과 1995년 사이에 에이즈 발생 건수는 급증했으며 매독 발생률은 40배나 증가했다:

‧ ‧ ‧

계획경제의 파괴로 수백만 근로인민은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릴 능력을 박탈당했다. 이 결과 마약 남용에서 배우자 폭행에 이르는 모든 종류의 사회 병리현상이 증가했다. 1991년에서 1995년까지 자살 건수는 거의 두 배로 늘었으며 타살의 비율도 급등했다:

반실업 상태의 청년들은 생활 광고 난에 높은 보수만 주면 어떤 위험도 감수한다는 암호 표현을 사용하여 살인청부 광고를 냈다. 피라미 범죄자들은 사소한 이익을 위해 살해를 자행했다: 부동산 사기꾼들은 아파트를 상속받기 위해 잘 속아넘어가는 연금생활자들을 살해했다; 어느 범죄 조직은 자동차 보수공장을 위장하여 자동차 주인들을 죽이고 시체를 토막내었다.”

- 프릴랜드, 앞의 책

러시아의 사회 반혁명은 장애인, 연금생활자, 아동, 여성 등 사회의 약자들에게 특히 가혹했다. 유엔개발프로그램의 보고서 작성자들은 이념적 편향을 드러낸 채 놀라움을 표명했다:

좀 더 민주적인 자본주의 복귀는 역설적이게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여성들은 과거에 비해 공직에서 더 밀려나고 있다. 동시에 이들의 임금고용 기회가 줄어들었으며 가정과 직장 내에서 이들이 처리할 일의 비중은 전체적으로 늘어났다. 여성 폭력은 배우자의 폭행과 함께 증가했으며 범죄에 희생되는 여성의 숫자도 증가했다. 직장과 더 좋은 생활을 필사적으로 원하는 여성들은 폭력배 조직에 의해 매춘을 강요당했다.”

프릴런드는 여기서 수치스러운 조사 결과를 인용하고 있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나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에 해당되는 러시아의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여학생들에게 최고로 선택되는 직업은 달러 매춘이었다.

자본주의 복귀는 제2차 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고아를 발생시켰다. 200161일자 <비비씨(BBC) 뉴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25십만 이상의 아동이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양육할 능력이 없는 부모에 의해 버려졌다. 러시아 보건부의 보고서에 의하면 러시아 아동의 거의 전부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시기에 한 두 가지의 고질병을 앓고 있으며 다수는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 17세의 나이가 되면 10명 가운데 1명만이 건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유엔개발프로그램보고서는 자본주의 복귀의 결과를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러시아 인민은 꽤 좋은 교육, 건강한 생활, 적절한 영양 등을 더 이상 안정적으로 누릴 수 없다. 증가하는 사망률, 곧 닥칠 새롭고 파괴적인 유행병 등으로 생존 자체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구소련과 동구 국가들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실제로는 대공황의 완곡한 표현일 뿐이다. 생산의 붕괴와 치솟는 인플레는 사상 유례가 없다. 인간의 안정적 삶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보수적인 수치에 의하면 1억이 넘는 인민이 빈곤으로 추락했으며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인민은 불안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 뿐이다.”

자유시장 몽상가들의 장밋빛 전망과는 정반대로 러시아의 급조된 부르주아 계급은 시설 개선, 효율적 생산 방식의 도입, 생산 확대 등에 대해 놀랄 정도로 무관심하다:

새 러시아에서 번영하는 자들은 초대형 부자들뿐이다. 이들의 막대한 부는 새로운 기술, 좀 더 효율적인 서비스, 좀 더 생산성 있는 공장에서 나오지 않았다. 붕괴한 국가소유 즉 유전, 니켈 광산, 텔레비전 방송 채널, 수출 면허장, 심지어는 국가의 은행 계좌 등에서 나왔다. 그리고 일단 러시아의 매판자본가들이 전리품을 확보하자 이들은 이것을 가능한 빨리 더 안전한 해외로 도피시켰다. 1991년과 1999년 사이에 1천억 달러에서 15백억 달러의 자본이 러시아를 빠져나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했다. 러시아는 왜곡된 시장경제를 탄생시켰다. 10년간 지속된 경제불황, 죽어가면서 더욱 빈곤에 허덕이는 하층 계급, 호화로운 생활에 찌들어 있는 극소수 기생 계층 등으로 러시아는 일종의 자본주의 생지옥이 되었다. 구소련의 선전가들이 썩어 들어가는 서구 부르주아 사회라고 불렀던 끔찍한 삶의 이미지가 러시아에서 현실로 등장했다.”

- 프릴랜드, 앞의 책

4) 꼼꼼히 읽어보시길 바란다. 자본주의의 부활은 가히 지옥문이었으며, ‘판도라의 상자’였다. 그런데 그것을 ‘게걸음’ 정도로 측정하는 자들은 도대체 얼마만큼의 높이에서 지상의 현상들을 관찰하는 것일까?

 

노동계급 진영의 핵심 중 한 축 무너짐세계 노-자 역관계 급격한 변화

이데올로기적 패배주의 확산: 사회주의자 급감, 노동자주의, 사회과학 출판사/서점 축소, 절판

신식민지 침략전쟁 노골화: 유고슬라비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우크라이나

3세계 약탈 노골화: 남미, 동아시아, 한국 등, IMF 정책(구조조정, 노동시장 유연화, 국영기업 사유화, 복지 삭감) 강요

반면, 미국 등 제국주의 금융자본에게는 유례없는 노다지였다. 5)

미국의 역사적 호황은 1차 대전 이후, 2차 대전 이후와 더불어 소련 붕괴 이후 찾아왔다.

1990년대 미국 다우지수추이.png소련 붕괴 이후 미국 다우지수 추이


통일(1990) 이후 24년간 BMW의 주가는 1000%, 폴크스바겐의 주가는 530% 상승통일이 미래다 BMW 株價 10배 뛰어독일, 日本 같은 경제 노쇠화 피했다, 조선닷컴

 

5) 통일 대박”이라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통일은 제국주의 금융자본 등 자본가계급에게 ‘대박’임이 입증되었다. 반면, 노동계급에게는 쪽박을 넘어 피박에 광박이다. 그러므로 ‘모든 통일은 선(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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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붕괴의 원인

 

1) 낙후한 생산력:

마르크스의 용어를 빌리자면 공산주의의 가장 낮은 단계는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가 달성한 생산력 수준에서 시작된다.”--트로츠키

생산력 발전은 공산주의 사회 건설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없이는 궁핍이 일반화될 것이며 이로 인해 생활필수품확보 투쟁이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되면 과거의 모든 난센스가 다시 살아날 수밖에 없다.”--맑스

이처럼, ‘추상적 이론의 영역에서 공산주의의 가장 낮은 단계가장 발전한 자본주의가 달성한 생산력 수준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구체적 현실 역사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련, 동유럽, 북한, 중국, 쿠바, 베트남 등 자본주의 사슬을 끊은 나라들은 하나같이 자본주의 수준에도 거의 미치지 못하는 지역들이었다. 그리하여 생활필수품확보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고, “과거의 모든 난센스가 다시 살아났다. 그것이 관료집단의 형성과 강화, 부르주아 국가를 타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비대해진 유력한 배경이다. 6)

세계적 차원 또는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모순과는 다른 형태였지만, 역사상 존재한 탈자본주의 국가들의 모순 역시 조만간 반드시 지양되어야 하는 심각한 것이었다. 그것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사회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

초자본주의적 생산력 VS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사적소유)

()자본주의적 생산력 VS

사회주의적 생산관계


탈자본주의 국가들의 이 모순은 체제 내부에 부르주아 사회로 회귀하고자 하는 요인을 잠복하게 하고, 그 요인은 점점 성장하여 노동자국가 자체를 위협하고, 소련과 동유럽에서 목도한 것처럼, 종국에는 자본주의 복귀로 이끌기도 한다.

 

2) 관료집단의 등장과 득세(집권과 비대화):

혁명 세력이 거세되고, 노동자 민주주의는 파괴되었으며, 노동인민의 창조성과 자주성이 배제되고 심지어 탄압되는 사회였다. 게다가 예측불가능하고 비논리적이고 변덕스럽게 운영되는 사회였다. 이런 조건 속에서 노동계급 내에 정치 환멸과 냉소주의는 확산되었고 사회에 대한 충성도는 걷잡을 수 없이 저하되었다.

등장과 온존 배경:

1. 내전 과정에서 노동계급 선진부위 소실과 후진 부위의 득세 7)

2. 서유럽 선진자본주의 국가 혁명 불발되면서 러시아 노동계급의 사기저하 패배주의 확산 생산력 문제 온존

3. 낙후한 생산력과 그로 인한 불충분한 분배: 특권계층의 형성

4. 국제적 계급투쟁: 제국주의 국가들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적대. 체제 방어가 우선순위로.

5. 관료집단 형성 초기 트로츠키 등 혁명 전위의 불철저한 인식과 대응

 

3) 선진국 등 후속 혁명의 불발:

기존 노동자국가 노동계급의 혁명성을 자극하고 관료집단 타도로 추동하고, 국제적인 자본-노동 역관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노동계급 혁명을 이끌며, 생산력을 끌어올릴8) 수 있는 가장 혁명적인 기제였다. 가장 근본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4) 제국주의 국가와의 군사경쟁:

봉건체제를 타도한 프랑스를 둘러싸고 유럽의 모든 봉건 반동들이 단결하여 적대했던 것처럼, 사적소유를 철폐한 소련 등은 제국주의 국가 모두의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직접·간접적인 군사적 적대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2차 대전 이후 제국주의 진영의 맹주는 미국이 되었는데, 미국 금융자본은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를 식민지로 거느리면서 초과이윤을 빨아들이는 나라였다. 그것이 세계 최고의 국방비를 투여할 수 있는 원천이고 투여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후진국 러시아는 혁명 이후 3~40년 사이에 그 미국과 군사적 균형을 얼추 이루어 내었던 것이다.

게다가 식민지로부터 빨아들이는 초과이윤의 향연이 없이도 그 균형을 이루어내었다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다. 오직 그 나라들에서 사적 소유가 철폐되고 이윤부분이 배제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군사적 긴장은 사회 재화의 막대한 부분을 군사력 유지에 투여하도록 만들어, 인민의 생활수준을 더 풍요롭게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장애요인이 되었다.

 

6)  a.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약한 고리들이었다. 세계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제국주의 세력들의 힘이 약해진 시기 그리고 약한 지역에서 탈자본주의 혁명이 진행되었다. b. 사회주의 혁명으로 형성된 초기 사회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사라지지만, 여전히 차등적 분배가 온존되는 사회라고 한다. 그리하여 그 차등적 분배를 위해 폭력기구가 필요한 사회이다. 이것을 맑스주의 전통에서는 ‘부르주아 없는 부르주아 사회’라고 부른다. 그런데 후진 국가들은 부르주아는 없지만 심각한 차등적 분배가 온존된, ‘극복되려면 두 세대 이상이 필요한(레닌)’ 낙후된 사회였다.

7) 이 문제에 대한 더 깊은 이해는 레닌의 반스탈린 투쟁을 참고할 것

8)  생산력은 과학기술 수준에 의해 크게 결정되고, 이것은 전투성이나 노력으로 단시일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혁명을 통한 수준 높은 과학기술의 보급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다. 그것이 안 되었기에 차선책으로 의지주의 비슷한 (스타하노프, 대약진, 천리마 운동 등) 생산력 집중운동이 벌어졌고, 그것으로 해결이 안 되자 ‘시장 개방을 통한 선진자본의 수입’이라는 가장 위험한 방법을 도입하는 것이다.

 

1)~4)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심화시킨다.

 

1) 사적소유 경향 증대:

관료집단은 태생적으로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 국가소유에 기생하면서 동시에 국가소유를 좀먹는다. 국가소유 체제는 자신들 특권의 원천이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특권을 제한하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관료집단의 일부는, (언제 재수 없게 잘못 걸리면 하루아침에 끌어내려져서 그 모든 영화를 뒤로 하고 총살당해야 할지 모르는)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벗어나 특권을 영속화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리하여 특권을 상속할 수 있는 체제 즉, 사적소유 체제를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지향한다.

2) 노동계급의 약화:

한편, 관료집단의 오랜 통치와 억압으로 노동계급 내 패배주의가 만연한다. 맑스-레닌주의를 참칭하는 관료집단으로 인해 혁명사상에 대한 냉소가 심화된다. 그리하여 국가소유체제에 대한 충성심 즉, 방어의지가 저하된다. 국가소유체제가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질 높은 문화와 소비재에 대한 환상이 정치적 무장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이러한 요인은 사회저변에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강화된다. 내부모순으로 인해 축적되던 사회변화의 에너지는 결국 1989~91년 시기 지진처럼 폭발했다. 그러자 안정적으로 보이던 사회지반이 격렬하게 흔들렸고, 위태롭게 축조되어 있던 부실한 국가기구는 무너져 내렸다. 오래고 가혹한 탄압으로 인해, 대안사상으로 조직된 노동계급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개입과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내부 세력을 제어할 세력은 없었다. 그리하여 무너지는 사회는 자본주의 쪽으로 기울며 쓰러졌다. 그리고 무너져 내린 건축자재의 일부는 새(자본주의) 국가기구 건설에 다시 사용되기도 했다. 9)

 

9)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기존 건물의 재료가 새 건물에 쓰였다는 이유로 ‘새 건물은 기존 건물이나 같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옐친이나 푸틴 등이 옛 공산당 고위 간부들이었으므로, 1991년 이전과 이후의 체제는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라는 식이다. 같은 논리를 편다면, 지금의 남한은 아마도 봉건제라고 주장해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금 남한 지배계급의 주류는 거슬러 올라가면 해방 이후엔 친미파이고 그 원류는 일제 친일파였고, 또 다시 그 원류는 조선 시대 노론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이후로 갑오농민혁명, 한일합방, 일제패망과 광복, 4.19 등의 위기를 겪긴 했지만 남한 지배계급의 주류는 단 한 번도 근본적으로 지위를 박탈당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인맥들은 지배층의 중심부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남한은 ‘노론’이 지배하는 봉건제 사회인가? 맑스주의는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사회분석의 근본으로 삼는다. 하지만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인적관계를 사회분석의 근본으로 삼는다.

 

 

4. 소련의 의미와 노동계급의 올바른 입장

 

소련의 사회 성격

퇴보한 노동자국가’: 긍정성과 부정성이 혼재된 사회: 방어하고 동시에 타도해야 하는

1) 노동계급의 혁명으로 수립: 노동계급의 전위 볼셰비키 주도로 무장봉기를 일으켜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노동자민주주의(소비에트)를 수립한 체제

2) 사적 소유제도의 철폐: 1918년 이후 공업의 국유화, 1928년 이후 농업의 집단화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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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승권, 동유럽 탈사회주의 경제개혁의 정치경제학


3) 생산력의 급격한 성장과 인민복지의 급격한 확대: 앞에서 설명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것은 거의 전적으로 소련과 동유럽 등이 ‘2) 사적소유제도의 철폐체제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4) 관료적으로 퇴보한 국가: 1924년 이후 혁명가와 노동계급 선진부위 거세, 노동계급 후진 부위의 용인아래 기회주의적 관료집단이 권력 장악했다. 이어진 숙청은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관료집단의 일분파가 독점적 권력을 공고히 하는 과정이었다. 그리하여 노동자민주주의는 마비되고 소비에트는 형식화되었다.11)

5) 노동계급의 국제적 투쟁의 사령부 또는 병참기지로서의 역할 약화: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공포로 정치적 공황상태에 빠진 관료집단은 근시안적 자기방어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일국사회주의로 국제주의를 포기했다. 세계 각국의 노동계급 투쟁을 소련에 우호적인 자본가의 집권을 돕는 민주주의투쟁에 한정할 것 강요했고 이것은 인민전선정책으로 표현되었다. 파시즘을 비과학적으로 이해하여 사회파시즘론이라는 초좌익적 노선으로 히틀러의 집권을 도왔다. 이렇듯 맑스주의적 과학이 아니라, 공황에 빠진 관료집단이 국제지도부가 되자 국제 혁명 노선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우왕좌왕하고 지그재그를 반복했다. 그리하여 중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계급투쟁의 결정적 격전장에서 패배를 양산했다. 그러다가 2차 대전의 와중에 연합군에 대한 보증으로 코민테른을 해체하기에 이른다.

10) 진승권의 표와 달리, 노동자연대는 “서방의 많은 주요 산업체들도 국가 소유로 운영됐다. 이런 자본주의적 공기업들은 오늘날에도 미국과 영국 등을 포함한 시장 지향 경제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김영익, 「박노자 교수는 진영 논리로 빠져드는가?」, 2015년 5월 25일).”라고 주장한다. 소련 동유럽에는 상당히 못 미치지만, 미국 영국의 “3분의 1”이라는 수치는 잘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당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주장의 근거를 듣고 싶다.

11) 지금 한국의 현대자동차지부이나 금속노조는 어떻게 관료집단이 등장하고 온존되는지의 이 동학을 엿볼 수 있는 ‘미니어처 관료체제’이다.

 

소련 등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에 대한 노동계급의 태도:

1) 제국주의 공격과 자본주의 반혁명에 대한 결연한 반대와 노동자국가 방어

2) 노동계급의 객관적 이해를 자신들의 사적 특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관료집단을 타도하고 혁명정부 수립: 정치혁명의 세 가지 원칙: 국유화된 경제체제 방어/ 노동자민주주의(소비에트)/ 국제주의

 

5. 스탈린주의와 국가자본주의론

 

스탈린주의: 관료집단과 국가를 동일시한다. 스탈린 타도는 나치 편을 드는 것, 관료집단 타도는 반혁명적 구호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관료집단을 타도하자는 까닭은, 소련과 동유럽 붕괴를 통해 목도한 것처럼, 관료집단이 사회체제 내부에 자본주의 반혁명을 조장하고, 노동자들의 체제 충성심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료집단의 존재 자체가 반혁명적인 것이다. 관료집단을 타도해야만 혁명의 성과를 제대로 방어할 수 있다.

어용관료를 끌어내리면 노동조합은 파괴될 것인가, 아니면 강화될 것인가?

먼저, 어용관료나 기회주의 지도부가 장악한 노조라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자본가집단의 파괴행위를 방관하거나 그것을 돕지 않는다. 우리는 자본가 집단의 공격에 맞서 같은 편에 서서 싸울 것이다. 예를 들어, 통합진보당 노선의 옳음과 그름, 과거 행위의 선악과 상관없이 자본가 정부의 탄압에 맞서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통합진보당을 방어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어용관료나 NL그룹이 왜 노동계급의 이해와 반하거나 온전히 실현할 수 없는지를 폭로하고 설명하여 그들이 노동계급 내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노동계급의 각성을 촉진하고 그를 통해 기회주의 지도부와 관료들을 끌어내리고 혁명적 지도부로 대체할 것이다. 왜냐 하면 그러할 때에만 노동계급의 힘이 단일 사업장이나 그 국가 내에서 강화되고 그 이해가 온전히 방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자본주의론: “자본주의 체제이므로 방어 필요 없다.라는 것이 기존 노동자국가들에 대한 국가자본주의론의 기본노선이다.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 사이의 갈등에서 소련 역시 제국주의 국가라면서 중립을 취해왔다. 6·25전쟁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이후로도 각종 갈등에서 제국주의를 침략세력으로 규정하지 않고 제국주의 패배구호를 회피해왔다. 기껏해야 전쟁반대를 외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12) 이러한 태도는 궁극적으로 제국주의 편에 서는 것이다.

1989~1991년 소련 동유럽 붕괴 당시에는 민주주의로 포장된 옐친이나 바웬사 등 자본주의 반혁명 세력을 지지하고 환호했다.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말은 노동자연대의 핵심 구호이다. 이 구호의 용도는 이러하다. “아래로부터 일어난 노동계급의 혁명이 아니라면 그리고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았다면, 사적소유가 철폐되었어도 자본주의이다. 그러므로 결국 방어해야 할 국가는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1989~91 사태는 반혁명이 아니다.” “소련의 붕괴는 결코 소련이 역사적으로 퇴보한 것,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퇴보한 것이 아니라, 국가자본주의에서 시장자본주의로 옆걸음을, 게걸음을 친 과정이었던 것입니다.”라는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이다.

노동계급의 핵심 특징은 노동대중에 의한 정부의 민주적 통제이다.” 뭔가 그럴 듯해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그럴듯해 보이는 이 말은 맑스주의자의 말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배신자카우츠키의 말이다. 그가 혁명 소련을 부정하면서 방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한 말이다.

이러한 태도는 노동자연대를 위시한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의 노선과 통한다. 사회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민주주의 여부가 아니라 생산관계 즉, 소유제도라는 맑스, 레닌, 트로츠키주의 전통과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특정 지역의 노동-자본의 역관계는 세계적 역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그 중 노동계급이 우세한 특정 지역에서 사적소유가 철폐되는 것이다. 동유럽과 북한 중국 쿠바 베트남 등에선, 충분히 성숙하지는 않았지만, (동유럽 인민 vs 토착 파시스트, 중국 인민 vs 장개석, 북한 인민 vs 일제 잔재, 베트남·쿠바 인민 vs 친미 매판정권) 친제국주의 반동들과 싸우는 노동인민의 온전한 지지를 받으면서 친/제국주의 반동권력을 타도하고 사적소유를 철폐한 국가가 수립되었다. 퇴보하긴 했지만 노동자국가였던 소련은 그 과정에서 큰 힘이 되었다.13)

개인은 스스로 성장하지만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그 성장이 가능하듯이, 각 나라도 국제적 역관계 속에서 혁명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IS전통의 관점은, 각 자본주의국가의 권력은 제국주의 물리력으로 지탱되고 있는 상황에서, 관계를 끊고 고립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만 알아서 싸우라는 얘기이다.

이런 일국적 관점에서 국가자본주의론과 스탈린주의 이 둘은 또 다시 만난다.

혁명을 수출한다는 생각은 난센스에 불과합니다. 혁명을 원하는 나라는 혁명을 성취하면 됩니다. 이 나라에 혁명이 발생하지 않으면 혁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혁명을 원했고 혁명을 성취했습니다.”스탈린

우리는 나폴레옹의 대유럽전쟁과 점령지역의 해방, 레닌 시기 폴란드 침공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12) 하나의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은 베트남전쟁이다. 한반도전쟁때와 거의 똑같은 국제/국내 관계로 인한 전쟁이었지만, IS(국제사회주의자)는 북베트남 편에 섰다. 왜냐하면, 그 때 세계 노동계급은 좌선회하고 있었고, 그 당시 중립노선은 인기가 없었고, 북베트남 편에 서는 것이 훨씬 인기 있었기 때문이다.

13) 혁명 전진 동력의 부족과 피로감, 하지만 기존 성과를 방어하려는 충분한 세력이라는 역관계 속에서 나폴레옹은 가장 부력(浮力)이 큰 자였다. 그리하여 나폴레옹은 로비에스 피에르로 상징되는 프랑스 혁명의 가장 급진적 분파를 제거한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 급격히 상승했다. 나폴레옹은 테르미도르 반동의 화신이었지만, 봉건제를 타도하고 부르주아적 소유제를 확립한 1789년 이후 사회혁명의 성과를 되돌리지는 않았다. 그 스스로 황제가 되었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유럽에서 자기 권력의 기초인 부르주아 소유체제의 상징이 되었다. 나폴레옹과 프랑스 군대는 봉건제의 학정에서 벗어나길 갈망하는 프랑스와 유럽인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것이 초기 전투에서 승승장구한 가장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스탈린관료집단 역시 그러하다. 제국주의자와 싸워 이긴 곳에서 적대 세력의 소유제도 즉, 사적소유제를 무너뜨리고 자기 권력의 기초인 국유화 체제를 이식했다. 

이러한 성격의 스탈린주의 그리고 ‘보나파르트주의’ 문제에 대한 더 깊은 이해는 레닌 『국가와 혁명』과 트로츠키 「노동자국가, 테르미도르, 그리고 보나파르티즘」을 참고하시길

 

6. 결론

 

올바른 혁명이론 없이 혁명적 실천은 불가능하다.

혁명은 사회에 대한 외과수술이다. 실패한 외과수술이 환자에 치명적 타격을 입히듯이, 혁명의 실패는 노동인민과 노동계급 전위를 초토화시켜 왔다.

소련 등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지금 시대 맑스주의 계승의 가장 중요하고 치명적인 과제이다. 거대한 역사적 실천으로부터 올바른 결론을 끌어내어야 한다.

25년 전 역사적 실천에 대한 과학적 분석, 그에 입각한 혁명 강령의 수립, 그에 기초한 혁명 정당의 건설은, 지금 시대 맑스주의자에게 놓인 지상과제이다.

 

볼셰비키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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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ube 2015.06.07 19:37
    중간에 안보이는 것이 있네요. 수정해주시면 읽기 더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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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셰비키 2015.06.08 21:24
    어떤 부분이 안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