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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주의의 反트로츠키

날조와 비방 Q&A

 


<차례>

서론

반트로츠키 캠페인의 뿌리/ ‘무적 패러다임’의 희비극/ 천동설과 스탈린주의/ 스탈린주의의 정서: 관료집단, 난관 회피, 영웅 의존/ 우리의 임무

Q&A

Q1. 트로츠키주의는 ‘국가자본주의론’인가?

스탈린주의 삼단논법/ 국가자본주의론과 트로츠키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관련논문 몇 가지

Q2. ‘관료집단을 타도’하자는 것은 노동자국가를 타도하자는 것인가? 스탈린으로 대표된 관료집단을 타도하면,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를 약화시킬 것인가?

노동자국가 방어를 위한 관료집단 타도/ 역사가 증명한 관료집단의 해악/ 스탈린주의 국가관: ‘관료집단=국가’/ 관료집단, 혁명적 진출의 장애물/ 소련 반혁명에 대한 권정기의 연구: ‘관료집단 성장→자본주의 부활’/ 스탈린주의 ‘갑툭튀’ 이론

Q3.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파시스트 독일에 복무한 반면, 스탈린은 소련 방어의 영웅이었나?

스탈린 영웅 신화

Q4. 트로츠키는 혁명 승리가 임박하자 볼셰비키 진영에 합류한 출세주의자인가?

‘메시지 공격이 어려우면 메신저를 공격하라!’/ 혁명가 트로츠키의 삶/ 약력 검토로 확인된 사실들

Q5. 트로츠키는 레닌과 사사건건 적대한 반(反)레닌주의자인가? 스탈린은 레닌의 적통을 이은 계승자인가?

‘국가의 무역독점’을 둘러싼 투쟁/ 대러시아 국수주의에 맞선 투쟁/ 레닌의 유언 그리고 트로츠키와 스탈린/ 스탈린의 폭언과 관계의 파탄

Q6. 스탈린주의 선전이 끝없이 우려먹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논쟁’, ‘노동조합 논쟁’은 무엇이었나?

1.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조약
   트로츠키는 강화조약을 통해 "엄청난 재앙"을 불러왔는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와 관련된 증언들

2. 노동조합 논쟁

   논쟁의 배경/ 스탈린 관료집단의 노동자 민주주의 분쇄

 



서론


반트로츠키 캠페인의 뿌리

스탈린주의의 반트로츠키 비방과 날조가 반복되고 있다. 스탈린주의 정치의 근본적 오류와 한계는 남탓을 해야만 감춰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반(反)트로츠키 캠페인은 스탈린주의가 존립하기 위한 필연이다. 전국노동자정치협회(노정협)와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는 그 캠페인의 전위이다.

스탈린주의는 노동운동의 상승으로 특권을 차지한 관료집단의 사상이다. 그 특권이 노동운동의 상승에 비롯하기 때문에 한편으로 특권의 기초인 노동운동을 방어한다. 그러나 관료집단과 노동계급 일반의 이해는 크게 어긋나기 때문에, 스탈린주의는 노동운동의 올바른 진격을 가로막고 결정적 순간 반동적 역할을 한다.

스탈린주의는 러시아 혁명의 성공과 위축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반영한 사상이다. 역사상 최고의 진보를 인류에 보여준 러시아 혁명이었지만, 불운하게도 세계적 규모의 자본주의 체제의 종식과 인류 전체의 해방에 이르지는 못했다.

혁명 이후 벼락출세한 기득권 세력이 넓고 깊게 형성되었다. 혁명과 내전을 거치면서 혁명을 주도한 노동계급의 선진 부위는 상당수가 희생되었다. 그 사이 혁명의식이 엷은 비(非)노동계급 부위가 당과 국가에 대거 들어왔다[노사과연의 권정기는 그것을 정치적 문맹자의 대거 유입이라고 표현한다.]. 대지주를 몰아내고 토지를 분배받은 절대다수의 농민 역시 혁명으로 인한 이득을 곧바로 차지한 계층이었다.

이 두 부문은 서유럽 혁명이 주춤하여 고립된 러시아 정치에 강력한 보수적 압력을 가했다. 혁명을 통해 상당한 이득을 얻은 집단이기 때문에 이 두 집단은 물론 혁명을 지지한다. 그러나 러시아 관료집단과 농민의 이해는 러시아 노동계급 전체, 나아가 국제 노동인민의 대의와 일치하지 않는다. 부분적으로 겹치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르며 궁극적으로 모순관계이다.

바로 이 점은 정치사상으로도 표현된다. 부분적, 표면적으로는 혁명사상 즉, 마르크르주의의 방어자로 행세하지만, 전체적, 본질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하고 적대한다. 관료집단의 이익에 맞게 각색한 ‘마르크스주의’인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시진핑의 ‘사상’을 혁명사상 반열에 올려 그들을 추앙한다. 그런 방식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관료집단의 이익을 미화하고 은폐하는 포장지로 이용된다.

러시아 노동계급 전체와 국제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관료집단의 이해가 전자와 상충한다는 비판은 그들에게는 자신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행위이다. 그리하여 비판자를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한다. 단지 다른 견해인 것만이 아니고 자신의 특권과 이해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에 비판자에 대한 스탈린주의의 공격은 매우 격렬하고 잔인하다. 신경질적인 윽박지르기와 욕설로 시작하여 테러와 살해가 뒤따르기도 한다. 왜냐 하면 사생결단의 자기 이익 방어이기 때문이다.

 

무적 패러다임’의 희비극

스탈린주의는 자신의 특권에 대한 방어일 뿐 사실과 과학에 기초한 일관된 혁명사상이 아니기 때문에, 비논리로 가득하다. 관료집단의 이해를 불가침의 영역으로 만들기 위해, 관료집단의 인격화인 스탈린이라는 영웅을 내세우고 그의 무오류를 주장한다. 이런 비과학적, 비(非)마르크스주의 논리는 허점을 끊임없이 노출할 수밖에 없다. 사실과 모순되고, 검증된 기존의 이론에서 일탈해야 한다. 관료집단의 이익은 불가침이어야 하고, 스탈린 무오류성은 ‘절대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들은 이 패러다임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만 인정된다. 허점은 그때그때 임기응변의 억지논리로 미봉된다. 미봉은 폭압을 통해 의심과 저항을 뚫고 관철된다.

거짓말을 한 번 하게 되면 그것을 감추기 위해 연쇄적인 한 다발의 거짓말이 필요하다. 나중엔 아예 거짓말끼리 서로 싸우게 된다. 그때그때 오류를 감추기 위해 동원한 억지논리는 사실과 과학적 마르크스주의하고만이 아니라, 나중엔 날조와 비방끼리 서로 말이 안 맞는 지경에 이른다. 이른바 관료집단의 이해에 대립하는 모든 것을 ‘트로츠키’라고 부르며 싸우다가, 급기야 스탈린주의 vs 스탈린주의의 투쟁으로 발전한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스탈린으로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수정 수법과 내용까지 그대로 따라 배운 흐루쇼프와 맞서 싸우고, 중국판 스탈린주의 화신 마오쩌둥과 흐루쇼프가 서로를 ‘트로츠키주의’라 부르며 멱살잡이를 한다. 스탈린주의 후예들은 눈 감아 외면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오쩌둥은 미 제국주의와 손잡고 ‘국가자본주의론자’가 되기도 했다. 각자 자기 특권의 기초는 흔들리지 않아야 하며, 관료집단 특권 방어의 인격화인 스탈린의 무오류라는 절대 신화는 결코 흔들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희비극이다.

 

천동설과 스탈린주의

노동계급의 역사적 실천과 과학적 사유로부터 스탈린의 무오류를 방어하고자 하는 부질없는 노력은 천동설을 방어하는 천문학자들과 닮았다. 천동설과 모순되는 관찰이 끊임없이 발견되고, 자신들 스스로 그 발견의 주체이기도 했지만, 천동설론자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절대 패러다임’을 결코 버릴 수 없었다. 천동설이라는 절대 패러다임을 통해서만 사실을 설명했고, 그 패러다임에 모든 과학적 추론과 관찰 사실을 욱여넣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과학자’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논리는 점점 더 기괴해졌다. 운동원리가 설명되지 않는 복잡하며 괴이한 천체도가 그려졌고,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기에 불일치를 미봉할 수십 여 장의 임기응변의 천체도를 따로 그려야 했다. 그래도 감출 수 없었으므로 코페르니쿠스 등 지동설 주장 과학자들을 살해해야 했다.


<그림1> 천동설론자들이 설명하는 천체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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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천동설론자의 천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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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주의의 정서: 관료집단, 난관 회피, 영웅 의존

스탈린주의는 노동운동 상승으로 특권을 차지한 관료집단 정서의 이론화이다. 사회적 위치로 인해 부분적으로 진보적이고 또 부분적으로 반동적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정서는 소부르주아의 정서와 닮았다. 이 정서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계급투쟁의 최종 지점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대결에 대한 공포와 회피 심리이다. 날카로운 대결로, 이미 얻은 기득권이 자칫 파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일상적 시기에는 ‘혁명, 사회주의 등’ 급진적 언사를 남발하다가도, 정작 정세가 날카로워지면 불가피한 대결을 에두르고 지배계급과 타협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스탈린주의 정치는 결정적 시기마다 적대계급인 자본가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기운다. 노동계급의 정치적 조직적 독자성을 포기하고 자본가계급과 함께 하려는 계급협조주의 경향, 존재하지 않는 이른바 ‘우호적’ 제국주의를 상정하고 그 앞에서 정치 · 조직적으로 무장해제하는 경향[1943년의 코민테른 해산은 그 극명한 표현이었다.], 제국주의와 평화공존이 레닌주의라고 주장하는 경향, 현실의 계급 대립은 그대로 둔 채 협정이나 법조항 등으로 평화와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환상 등이 바로 이 정서의 표현이다.

두 번째는 혁명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우여곡절의 난관 앞에 절망하여, ‘위대한 영웅’을 통해 그 절망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하는 영웅 의존 심리이다. 이 정서는 현실의 고통에서 구원해 줄 초월적 존재에 대한 종교적 믿음이나 영웅에 대한 이른바 ‘빠심’과 닮았다.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자신의 욕망을 특정 대상에 투사하여 그 대상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게다가 혁명전위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프랑스대혁명에서 로비에스 피에르가 제거된 뒤 철권을 잡은 나폴레옹이나, 조선 건국 이후 정도전 일파를 제거한 뒤 막강한 권력을 차지한 이방원과의 비교도 흥미롭다.]. 대규모의 군대와 자원을 부리는 국가권력을 쥐고 있다. ‘승리한 것이야말로 진실이고 강한 것’이라는 속물적 실용주의가 스탈린주의에 대한 믿음을 지탱한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이 투사된 그 대상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한다. 그리하여 그 대상에 대한 공격을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아파한다. 자신의 희망을 깨뜨리고, 믿음을 어지럽혀 다시 절망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비판이 옳건 그르건 따지지 않고 그 믿음의 대상을 공격하는 자는 적이거나 적에 부역하는 자로 간주된다.

 

우리의 임무

국가자본주의론, 노동자주의, 부르주아 여성주의와 더불어 이 스탈린주의는 노동계급 해방을 가로막는 사상적 족쇄이다. 노예의 사상으로는 결코 혁명적 실천에 이를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그 비과학과 해악을 설명해 왔다[레닌의 반스탈린 투쟁/ 소련 중국 북한 등 노동자국가들의 사회성격 논쟁/ 어느 스탈린주의자와의 대화/ 흐루쇼프의 비밀연설과 스탈린주의등 참조]이제 또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하는 스탈린주의 날조와 비방은 많이 쌓였다. 노동계급의 선두 부위조차 상당한 피곤과 혼란을 느낄 정도이다. 날조와 비방을 걷어내어 노동계급의 시야를 밝혀야 한다. 먼저 깨닫고 나선 분들의 고귀한 헌신을 갉아먹고 잘못된 길로 이끌기 때문이다.

스탈린주의 반트로츠키 캠페인은 계속 이어졌지만, 새로울 것이 없다. 스탈린 당대에 이미 개발된 패턴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 듯해 보이는 몇 가지를 서로 다른 여러 문건에 지루할 정도로 되풀이한다. 되풀이되는 그 몇 가지 패턴을 추려서 하나씩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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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Q1. 트로츠키주의는 ‘국가자본주의론’인가?

노정협과 노사과연 등 스탈린주의 정치세력은 트로츠키와 국가자본주의론을 묶어서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그런 방식으로 트로츠키주의가 마치 국가자본주의론인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키려 한다.

“리비아 침공 당시에 뜨로츠끼주의를 내세운 국가자본주의자들과 전 세계의 ‘좌파’를 자임하는 정치세력들 상당수가 까다피 ‘독재’에 맞서는 리비아의 ‘민주주의 투쟁’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한국에서도 다함께를 위시로 뜨로츠끼주의를 자처하는 국가자본주의 정치세력들은 외세를 끌어들이는 괴상한 ‘민주주의자’들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노동자의 사상 6호를 발행하며, 2015년 5월

“트로츠키주의 정치세력, 특히 국가자본주의 세력은 노골적으로 쏘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를 비롯해서 현실 사회주의를 타도해야 하는 반동체제로 보고 있다.”―「한국 사회 이른바 ‘좌파’ 노선의 심대한 오류에 대하여」, 노정협, 2015년 6월(이하 ‘심대한 오류’)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이들 중 대다수가 트로츠키주의 진영 중에서 가장 극악한 종파주의 세력인 토니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 노선을 수용했다.”―심대한 오류

“<노동자연대> 같은 트로츠키 단체의 반동적 인식과 북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감은 어디서 비롯됐는가?”―「위대한 러시아 혁명의 산물: 쏘련 사회주의, 그 깃발을 짓밟는 소부르주아 반동 ‘맑스주의자들’」, 노정협, 2017년 7월(이하 ‘위대한 산물’)

“이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국가자본주의론의 근거이자 스탈린을 악마화하기 위해 즐겨 인용하는 문장이 있다.”―위대한 산물

“현실의 사회주의 역사를 중상모략하는 것이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을 포함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상투적인 수법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위대한 산물

“이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국가자본주의론의 근거이자 스탈린을 악마화하기 위해 즐겨 인용하는 문장이다.”―위대한 산물

“북과 쿠바를 타도해야 하는 반동권력으로 보는 트로츠키주의 노건투(혁명적노동자당건설현장투쟁위원회)는”―한국사회 민족문제 이해를 위해서―「한국의 양두구육식 반쏘 반북 ‘진보급진파’들에게」, 노정협, 2018년 1월(이하 ‘양두구육’)

“북을 타도해야 하는 트로츠키주의 국가자본주의로 보는 입장이 결국은 북을 “작은 강도”로 묘사할 정도로 적개심을 표하게 만들고“―양두구육

“쏘련이 국가자본주의였고 스탈린이 반혁명의 화신으로 레닌의 변절자로까지 취급하는 트로츠키적 역사해석의 이론적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정성진 교수조차 이러한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쏘련과 스탈린 시대에 대한 역사 ‘수정주의’를 환영한다」, 노정협, 2018년 1월(이하 ‘수정주의 환영’)

“이 운동에 대해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비롯해서 부르주아 진영에서는 사회주의 “강제노동”으로 취급하며 비방을 했다.“―노동자의 사상 8호, 2018년 3월



* * *

스탈린주의 삼단논법

상대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공격하기 쉬운 다른 대상으로 바꾸어 그것을 공격하는 것을 ‘허수아비 공격’이라고 한다. 한편, 부분을 ‘전체’로, 한두 번을 ‘항상’으로 범주를 비약하여 인식하는 오류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한다. 이 둘은 대단히 초보적인 오류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기도 하다. 상당히 효과적이어서 스탈린주의가 트로츠키주의를 비방하기 위해 지루하게 반복하는 수법이다.

스탈린주의는 트로츠키 사상이 마치 소련 북한 중국 등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 나라들의 노동자국가적 성격을 부정하고 자본주의로 간주하는 사상인 것처럼 만들려 한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엉터리 삼단논법을 주문(呪文)처럼 반복하는 것이다.

‘클리프주의자들은 트로츠키주의를 표방한다./ 그들은 국가자본주의론자이다.// 그러므로 트로츠키주의는 국가자본주의론이다.’

 

국가자본주의론과 트로츠키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트로츠키 사상의 핵심은 10월 혁명의 방어이다. 그것은 다음 두 가지 내용을 가진다. 하나는 혁명의 성과를 찬탈한 관료집단으로부터 혁명의 사상적, 물질적 성과를 방어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제국주의와 내부 자본주의 복귀세력으로부터 생산수단 사적소유 철폐에 기초한 노동자국가를 방어하겠다는 것이다.

스탈린 관료집단이 장악한 소련 사회성격에 대한 트로츠키의 분석은 ‘퇴보한 노동자국가’라는 표현에 함축되어 있고, 그 표현은 위의 두 측면을 포괄하고 있다. 소련을 자본주의라고 규정하고 국제노동계급의 방어의무를 저버린 정치세력을 트로츠키는 날카롭게 비판했다. 국가자본주의론과 트로츠키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스탈린주의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한다고 해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관료집단 옹호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압력에 굴복한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이 트로츠키를 표방한다고 해서, 트로츠키의 사상이 국가자본주의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관련논문 몇 가지를 추려 소개한다.

소련의 계급적 성격(1933), 트로츠키

노동자국가, 테르미도르 그리고 보나파르트주의(1935), 트로츠키

배반당한 혁명(1936), 트로츠키

맑스주의를 옹호하며(1940), 트로츠키

소부르주아 사회주의와 ‘국가와 혁명’: 국가자본주의론 비판

소련의 사회 성격에 대하여

소위 ‘현실 사회주의’ 국가 성격에 관한 Q & A

 

 

Q2. 관료집단을 타도하자는 것은 노동자국가를 타도하자는 것인가? 스탈린으로 대표된 관료집단을 타도하면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를 약화시킬 것인가?

트로츠키는 이 책에서 쏘련의 경제적 성취를 긍정하고 경제적 토대를 유지하면서도 “테르미도르 반동” 체제인 쏘련의 상부구조, 즉 당과 국가를 정치혁명으로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위대한 산물

(정통) 트로츠키 노선이 국가자본주의자들과 구별된다고 하는 노선은 쏘련 및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방어노선이었다. 그런데 파시즘과 쏘비에트 체제의 운명을 걸고 전쟁을 준비해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쏘련의 경제적 토대는 방어하되 상부구조, 즉 당과 국가를 타도한다는 노선은 쏘련을 국가자본주의 착취제제로 보고 타도해야 한다는 “국가자본주의” 노선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위대한 산물

정통 트로츠키주의를 자처하는 제4인터내셔널 경향은 제국주의 공세에 맞서 현실 사회주의를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유화, 계획화에 바탕을 둔 소련 및 현실사회주의(노동자국가)의 경제적 토대는 방어하되, 상부구조를 타도하는 정치혁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현실 사회주의 상부구조는 당과 국가인데, 당과 국가가 전 사회에 지도력을 발휘하면서 경제적 토대를 일궈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의 방어노선이 현실에 적용된다면 국가자본주의 입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심대한 오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소련 사회주의의 실질적 건설자인 스탈린을 도살자, 독재자, 관료라고 부르며, 쏘련 “관료집단”을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쏘련 인민들이 시시각각 닥쳐오는 전쟁에 맞서 쏘비에트 체제의 명운을 걸고 투쟁을 준비할 때 트로츠키는 쏘련 관료집단, 즉 당과 국가를 타도하자는 선동을 하며 제국주의의 이해에 적극 복무했던 것입니다.―양두구육


* * *

주문(呪文)을 외듯 자극적인 몇 마디를 지루하게 반복한다. 세뇌되었다는 것이고, 세뇌하겠다는 뜻이다. 역시 대상을 우그러뜨려 공격하기 쉽게 만들고 원래 대상이 마치 그런 내용이라는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허수아비 공격 수법이다.

 

노동자국가 방어를 위한 관료집단 타도

다시 말하지만, 『배반당한 혁명』, 『이행강령』 등에 정리된 퇴보한 노동자국가 소련에 대한 트로츠키주의 노선의 핵심은 이렇다: ‘한편으로 10월 혁명의 성과인 국유화된 소유체제를 방어하면서, 다른 한편 국가와 소유체제를 좀먹는 관료집단 타도.’ 이것은 ‘노동자국가 방어와 정치혁명’으로 요약된다.

관료집단은 노동자혁명의 성과인 국가소유 체제의 관리자이다. 한편으로 자기 특권의 기초인 국가소유 체제를 방어하면서, 다른 한편 그 특권을 영속적으로 누리고자 한다. 그 욕망은 사유화 경향으로 발전하고 결국엔 1989년~91년 소련과 동유럽에서처럼 노동자국가 자체를 무너뜨린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트로츠키를 비롯한 혁명가들은 10월 혁명의 성과인 노동자국가 소련을 지키기 위해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관료집단을 끌어내리고 노동자민주주의에 기초한 혁명지도부 구축을 주장하였다. 그렇지 못할 경우 내부모순이 자라나 자본주의 반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역사가 증명한 관료집단의 해악

불행하게도, 1930년대의 이 분석은 부정적 방향으로 그 옳음이 증명되었다. 1989년~1991년 사이 동유럽과 소련 노동자국가 진영은 붕괴했다. 예측했던 것처럼 비대해진 관료집단의 배신으로 내파했다. 노동계급의 거대한 패배였고, 반면 제국주의 자본가진영에게는 엄청난 횡재였다. 붕괴된 나라들엔 자본주의 착취체제가 부활했고, 동유럽은 제국주의 속국으로 하나씩 하나씩 넘어갔다. 그 나라들은 거대한 자원부국 러시아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고, 다른 한편 중국 자본주의 반혁명을 촉진하기 위해 제국주의 전진기지로 재편되었다.

이렇듯 관료집단은 10월 혁명의 성과를 야금야금 갉아먹다가 급기야 노동자국가 자체를 붕괴시켰다. 제국주의의 이해에 온전히 복무했다. 그 반동성을 역사적으로 입증했다. 분통하게도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그들은 그 이전에 타도되었어야 했다.

 

스탈린주의 국가관: ‘관료집단=국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정협 등은 관료집단 타도는 “제국주의 이해에 적극 복무”하는 노선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관료집단 즉, 당과 국가”라며 관료집단과 국가를 동일시한다. 그래서 관료집단 타도는 곧 국가 타도이고, 제국주의에 대한 복무라는 것이다.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드는 격이다. “관료집단 즉, 당과 국가”라는 이 정식은 전혀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며, 그 해악이 실천적으로 입증된 반동적 국가관이다.

애초에 스탈린주의는 관료집단의 이해와 정서 방어를 위해 구축된 세계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반동적 국가관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이들 들쥐들은 ‘사회적 부’가 아니라 ‘배타적인 집단의 부’를 위해, 그리고 그 집단 보스의 ‘개인적 부’를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다(권정기, 2017년).” 그래서 이들은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전진이냐, 후퇴냐? 내 알 바 아니다. 내 갈 길을 가라! 남들이 뭐라든!(같은 글)”이라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곧 세계의 중심이다. 그러므로 자신들 타도는 국가의 타도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관료집단, 혁명적 진출의 장애물

노동계급의 진출은 일정한 성과를 낳고, 궁극의 목표에 이르지 못할 경우 그 제한된 성과를 배타적으로 누리는 일부 집단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성과 위에 올라탄 그 집단은 한편으로 운동을 방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운동을 사유화하면서 그 운동이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 역할을 한다. 이들은 제한된 형태로나마 노동계급의 이해를 표현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본가계급의 압력을 노동계급에 전달한다. 후자의 측면에서 이들은 노동진영 내에 있는 자본가계급의 하수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계급이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들 관료집단 제거는 피할 수 없는 작업이다.

노동조합과 민주노총 사례를 통해, 우리는 과거 노동계급 투쟁 성과 위에 걸터앉아 오늘의 진출을 가로막는 노동관료를 수시로 보아왔다. 2016년 분출된 박근혜퇴진 국면에서, 투쟁이 통제불가능한 수위로 솟구칠까봐 노심초사하여 최소한의 개입만 하며 자유주의자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민주노총 지도부나, 호시기였던 2013년과 2016년, 내외적으로 상승한 파업투쟁열기를 제멋대로 꺼버리며 자본가 정치인들에게 그 해결을 백지위임한 철도노조 지도부는 그 단적인 예이다. 2013년 파업을 배신한 당시 철도노조위원장은 더욱 출세하여 2017년엔 민주노총 위원장이 되었고 지금 민주당 자본가정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어려운 이름으로 지칭되는) 투항적 경향을 노골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친자본적 본질을 폭로하는 것은 사회주의자의 임무이다. 노동계급의 대중적 각성을 촉진하여 이들을 끌어내리고 혁명적 지도부로 대체하는 것은 필연의 과업이다. 투쟁이 상승한 순간의 배신은 더욱 가치가 크며, 배신은 더욱 치명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쟁 국면이라고 해서 그 작업이 유보되어서는 안 된다. 대중적 각성과 진출을 통해 관료집단을 끌어내릴 경우 투쟁은 상승하며 노동조합은 강화된다.

사실, 불을 보듯 당연한 것이다.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관료집단 즉, 당과 국가”라는 정식을 노동조합에 적용하면, ‘사회적 합의주의’를 추구하고 입신출세를 위해 노동운동을 말아먹고 자본가 진영으로 넘어가 버리는 민주노총 관료를 끌어내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민주노총 파괴세력이고 자본가계급의 첩자라고 몰아붙이는 꼴이 된다.

 

소련 반혁명에 대한 권정기의 연구: ‘관료집단 성장→자본주의 부활’

이 문제에 대한 노사과연 권정기 소장의 연구 「흐루쇼프 수정주의의 발생과 소련에서의 반혁명(2017년 12월)」은 흥미롭다. 전형적인 스탈린주의 세계관에 빠져 있긴 하지만, 필자는 소련 붕괴의 원인을 생산수단 국가소유의 특권에 기생한 관료의 성장으로 설명한다. 국가소유와 관료집단의 모순에 대한 관찰은 상당히 성실하며, 붕괴 원인에 대한 내재적 분석은 유물론적이다.

모든 문장을 위 글에서 따와, 소련 반혁명 과정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거대한 성공은 거대한 부와 절대적 권력을 낳았다. 그리고 그 모두를 공산당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 부와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세력이 고급관료들에서, 관료주의의 형태로 나타났다. 사회주의에서 관료주의란, 프롤레타리아 국가기구 내부에서 자라나고 있는 부르주아 국가의 싹이다. 1930년대 성장한 관료(당 관료, 국가관료, 기업의 경영진)들은, 1956년부터 수정주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주체들이다. 생산의 목적만이 아니라, 생산의 결과물까지 자신의 치부 수단이 되었다. 생산의 목적이 생산의 결과물을 복종시킨 것이다. 내용이 하나씩 하나씩 모두 부정되면서, 사회적 소유형태는 더 이상 사회에 봉사할 수 없어진다. 공장은 개인의 치부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사회적 소유물이 사적 소유물처럼 기능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내용적으로 부활했다. ‘전체 씨족제도(공동체사회)가 자신의 대립물(계급사회)로 전화하였듯이’, 사회주의 또한 1991년에 자신의 대립물인 계급사회(자본주의)로 전화하였다. 소련에서 자본주의는 부활했다. 사회주의는 패배했다. 인류는 다시 동물계로 추락했다.”


권정기도 동의하는 바, 관료집단의 성장은 소련 반혁명의 원인이다. 그들은 결국 노동계급 최대의 성과인 소련을 말아먹었다. 자본주의 반혁명을 일으켰고, 노동자국가를 타도했다. 연구자의 인과분석을 따른다면, 자본주의 반혁명을 막으려면 그들이 노동자국가를 타도하기 이전에 노동계급이 관료집단을 타도했어야 했다.

 

스탈린주의 ‘갑툭튀’ 이론

스탈린주의자들은, ‘관료집단의 정점이자 인격화인 스탈린’을 무오류의 화신으로 묘사한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덕에서 벗어난 무오류의 천사장으로 스탈린을 묘사하는 한편, 모든 악덕과 잘못을 흐루쇼프 등에게 전가한다. 1세대 영웅인 스탈린이나 마오쩌둥과 달리 흐루쇼프나 덩샤오핑 같은 후레자식들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 모든 것을 망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 문맹자 대거 유입”으로 인한 공산당의 탈노동계급화, 관료집단의 성장과 국가장악, 사유화 경향의 상승, 제국주의와 평화공존주의 등은 이미 스탈린 “영웅시대” 당시 발생한 것들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이 모든 악덕을 덩샤오핑에게 덤터기 씌우며 또 하나의 영웅으로 떠받드는 마오쩌둥 역시 악덕의 뿌리였다.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하자, 마오쩌둥은 ‘국가자본주의론자’가 되었다. 소련에 자본주의가 부활했다고 선언했으며 소련을 ‘사회 제국주의’라고 불렀다. 소련에 맞서기 위해 1972년 미 제국주의 닉슨을 불러들여 ‘반소 동맹’을 맺었다. 미국과 전쟁 중이던 베트남에 대한 지원 중단을 약속한 것도 마오쩌둥이었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진출로 특권을 얻은 관료집단의 화신이었다. 모든 악덕의 정점이었고, 그 최종 책임자였다. 그러나 관료집단 이해와 정서의 응집인 스탈린주의는 그 둘을 비판의 대상으로 내어줄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관료집단 전체의 자기부정이다. 그래서 그들을 무오류로 만든다. 속세의 모든 것을 다 알지만 속세와 무관한 그들은 가끔씩 내려와 사악한 자들을 정리한다. 그리고는 더러운 지상의 것과 섞이지 않은 채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곤 짐짓 속상한 표정을 짓는다. 지상의 모든 악덕은 흐루쇼프와 덩샤오핑에게 떠넘겨진다. 불세출의 두 “영웅”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죄다 ‘제국주의 첩자’로 밝혀진다.

관료집단 비대화와 소련 반혁명 사이의 인과를 유물론적으로 밝혀냈지만, 권정기 역시 이 ‘갑툭튀’ 이론을 수용한다. 그의 결론은 조금 전까지 서술한 연구 내용과 모순된다. 천동설이 그러했듯이, 자신이 밝혀낸 사실 자체와 싸워야 하고 자신의 말과도 싸워야 하며 다른 스탈린주의와 싸워야 한다. 이렇게, 싸우면 싸울수록 명쾌해지기는커녕 난마에 뒤얽혀야 하는 것이 스탈린주의 ‘절대 패러다임’이 강요하는 숙명이다.



Q3.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파시스트 독일에 복무한 반면, 스탈린은 소련 방어의 영웅이었나?

“국가자본주의론자들 뿐만 아니라 (정통)트로츠키주의자들은 위대한 “대조국전쟁”에서조차도 스탈린에 대한 중상을 그치지 않는다. 그런데 스탈린의 혜안이 없었으면 어떻게 히틀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위대한 산물

“히틀러가 쏘련에 대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을 때, 선동가 뜨로츠끼는 붉은 군대에게 쿠데타를 실행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한 사건은, 파시스트 탱크에 국가전체를 열어주어, 대재앙이 되었을 것이다!”―루도 마르텐스, 노사과연, 정세와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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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영웅 신화

스탈린의 영묘한 지도력이 있었기에 2차 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2차 대전은 스탈린의 지도력을 새삼 확인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스탈린과 국가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스탈린 타도는 국가 타도와 동의어라는 것이다.

흐루쇼프는 스탈린 생전 심복 중 하나였다. 그 심복들은 스탈린의 팔다리였고, 눈 코 입이었다. 흐루쇼프는 스탈린 사후 권력투쟁에서 승리하여 당권을 장악한다. 그는 중앙위원회의 토의를 거쳐 연설문을 작성하고 20차 당 대회에서 그 연설을 행한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참석자 중 몇몇이 실신하기도 했다는 그 대회에서, 흐루쇼프는 ‘2차 대전에서 보인 스탈린의 영묘한 지도력’이라는 스탈린주의 신화와 정반대의 사실을 폭로한다.

1. 스탈린은 전쟁 직전 군대의 핵심 지도자들을 ‘트로츠키와 작당한 친나치 반란’ 혐의로 처형했다. “간부요원들의 엄청난 손실”로 인해 2차 대전 초기 소련은 상당 기간 일방적으로 당했다. 2800만 명이라는 막대한 희생도 이와 무관치 않다. 2800만 명이라는 수치는 소련 인민의 눈물 겹고 위대한 체제수호 의지의 표상이면서도, 피할 수 있었지만 무능한 지도자로 인해 처참하게 당한 인민의 희생을 나타내는 숫자이기도 하다.

‘붉은 나폴레옹’이란 별명을 지닌 내전의 군사영웅이며, 숙청 당시 군 총수였던 투하체프스키를 2차 대전 직전인 1937년 처형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 무렵 “에스파냐와 극동 지역에서 어느 정도 전쟁 수행 경험을 쌓았던 군 간부들이 거의 모두 제거”되었다.

2. 영국 처칠이 독일의 소련 침공 임박을 여러 차례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경계태세를 갖추지 않았다. 오히려 경계태세를 갖추지 말라고 명령했다. 독일을 자칫 자극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명령에 따라 “훨씬 적은 희생을 치르도록 했을” 충분한 장비와 조치들은 보급되거나 취해지지 않았다. 스탈린은 독일과 2년 전 맺었던 '불가침협정'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3. 하지만 곧 이어, 독일군 공격 준비가 국경 지대에서 계속 되고 있고 곧 넘어올 것 같다고 전방 사령관들이 긴급히 타전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조작된 도발이며 국경에서 어떤 준비 작업도 해서는 안 되며 독일군이 우리에 대한 군사행동을 개시할 명분을 줘서는 안 된다는 답변을 보냈다.”

4. 급기야 독일군이 국경을 넘어 소련 땅에 쳐들어왔다. 그런데 그때조차 스탈린은 “사격에 대응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스탈린은 “독일군 내의 규율 잡혀 있지 않은 몇몇 부대의 도발이라고, 만약 우리가 독일군에 대응한다면 그것은 전쟁 개시를 위한 명분이 될 것이라”며 ‘반격 절대 금지’를 명령했다.

5. '불가침협정'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침공이 기정사실로 확인되고 소련 전방부대가 괴멸 당하자, 스탈린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초기의 실패와 패배를 겪은 후…스탈린은 실제로 오랫동안 군사작전을 지휘하지 않았고, 업무도 전혀 보지 않았으며, 몇몇 정치국 위원이 그에게 가서 지금 당장 전선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특정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에야 지도부에 복귀”했다.

6. 소련군은 천신만고 끝에 전세를 역전시켰다. 그러자 스탈린은 “승리에 적지 않게 기여한 많은 지휘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전선에서 이뤄진 업적이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돌려질 가능성을 전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7.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레닌그라드 사건, 밍그렐 민족주의자 조직 사건, 의사-반역자 사건’ 등을 끊임없이 조작해내어, 정적을 숙청했다.

8. 스탈린 전기문이 씌어졌다. 스탈린은 처음에 “스탈린, 그는 오늘날의 레닌이다.”라고 써넣었다. 흡족하지 않았던 스탈린은 이후 그 구절을 다시 고쳐 썼다. “스탈린은 레닌이 하던 사업의 정당한 계승자이거나, 혹은 우리 당에서 이야기되듯 스탈린, 그는 오늘날의 레닌이다.”



Q4. 트로츠키는 혁명 승리가 임박하자 볼셰비키 진영에 합류한 출세주의자인가?

“1900년대 초부터 1917년 혁명 몇 달 전까지 트로츠키는 레닌과 볼셰비키를 비난하면서 멘셰비키 진영에 발을 담그기도 하면서 반볼셰비키 진영에 있었다. 1917년 2월 혁명 이후에 혁명의 물줄기가 볼셰비키 쪽으로 향하자 그제야 트로츠키는 볼셰비키 진영에 가담했다.”―노정협, 위대한 산물

“결국 이처럼 반쏘 반공주의의 정치적 기원은 트로츠키주의이기도 한데, 트로츠키는 수십년간 기회주의 회색분자, 멘셰비키질 하다가 1917년 혁명적 분위기가 고조되자 뒤늦게 볼셰비키 혁명호에 승선해놓고는 나중에 레닌과 볼셰비키가 자신의 혁명론을 받아들여 그렇게 했노라며 거만하게 역사를 자기중심으로 돌리며 기회주의적 정치적 행보를 합리화합니다. 그런데 수십 년간 기회주의 행보가 우연이겠습니까?”―노정협, 양두구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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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공격이 어려우면 메신저를 공격하라!’

논쟁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주장하는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여 주장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수법이다. 노정협은 트로츠키를, ‘수십(!) 년’ 간 기회주의를 일삼다가 혁명의 물줄기가 볼셰비키 승리 쪽으로 향하자, 은근슬쩍 볼셰비키에 합류한 출세주의자로 만들려 한다.

 

혁명가 트로츠키의 삶

이 스탈린주의 악선전이 옳은지 살피기 위해서 트로츠키의 약력을 따져보자. 1917년까지는 비교적 상세히, 이후는 간략히 살핀다.

1879년에 태어난 트로츠키는 10대 후반 나로드니키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

1897년 흑해 인근 니콜라에프에서 노동운동에 참여한다.

1898년 1월 200명의 조합원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