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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출처 – 국제볼셰비키그룹(IBT)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

—한국 IS 동지들에게 보내는 IBT의 공개 서한 (1994년 10월)—

<다음의 편지는 1994년 10월 국제 볼셰비키 그룹이 남한 국제사회주의자 그룹 앞으로 보낸 편지이다. 하지만 현재[당시 1995년--그리고 지금 2007년]까지 답장이 없다.>


안녕하십니까? <국제볼셰비키그룹 (International Bolshevik Tendency. 이하 IBT라고 칭함)>이 남한의 <국제사회주의자 (International Socialist–이하 IS라고 칭함)>에게 동지적 인사를 드립니다. 소련과 동유럽에서 스탈린주의가 붕괴한 후 남한에 올바른 정치적 이론의 부재와 혼란 속에서, 오로지 IS만이 유일하게 트로츠키주의를 옹호하면서 조직적으로 빠르게 성장해가고 있다는 소식을 한국의 IBT 동지로부터 들었습니다. 아울러 한국의 IS가 IBT와 정치적 토론을 지면상으로 나누는 데 동의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듣게 되었습니다.

저희 IBT는 그간 <노동자연대>와 그 외 팜플렛 등 IS 간행물들을 읽으면서 한국의 IS가 서구의 IS 자매단체들과 똑같은 정치적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면을 통한 정치적 토론을 통해서나마 한국의 IS와 저희 IBT가 국제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연대를 위한 올바른 투쟁의 길을 가기 위하여 함께 공동의 노력을 쌓아 갈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저희 IBT는 한국의 IS 동지들에게 다음과 같은 동지적 비판을 보내고자 합니다.

 

국가자본주의론

첫째, 구소련과 동유럽의 스탈린 관료체제를 “국가 자본주의”라고 규정한 토니 클리프의 이론은 맑스의 자본론에 엄격히 위배되는 것입니다. 토니 클리프는 스탈린 관료집단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자본가”로서 행동하면서 타국의 자본가들과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자본을 축적해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맑스와 레닌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가치법칙이 불가피하게 국민 경제 단위내의 수많은 개별 자본가들 사이의 원자화된 경쟁을 기본으로 하고 결국에는 세계 경제 속에서 치열해지는 다국적 독점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을 통하여 표현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개념적으로 경쟁은 자본의 내재적 성격이외의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 자본의 본질적 성격은 여러 자본들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그 본질을 밖으로 표현하고 실재화시킨다. 자본은 오로지 여러 자본으로서만 존재하고 또 그렇게만 존재할 수 있다.”–맑스, <Grundrisse>

여기서 맑스가 말하는 경쟁은 자본주의적 경제 관계에 연결되어 있는 한 시장에서 상품 판매(교환가치 실현)를 둘러싼 개별 자본들 사이의 경쟁이란 명백한 의미를 갖습니다. 소련 경제에 “여러 많은 자본들 사이의 상호관계”가 이루어지는 시장(즉, 교환가치를 지닌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실패한 클리프는, 단순히 “경쟁”을 세계 각국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정치적 군사적 충돌과 동일한 것으로서 그 의미를 왜곡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클리프는 주장하기를,

“다른 나라와의 경쟁은 주로 군사적인 형태를 취한다. 소비자로서의 국가는 탱크나 비행기등과 같은 특정한 사용가치에 관심을 갖는다. …세계의 여러 나라와 벌이는 러시아의 경쟁은 궁극적으로 사용가치의 증대로 표현되며 이는 경쟁에서의 승리라는 궁극적 목적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스탈린주의 러시아: 맑스주의적 연구(1955)

국가 전체를 하나의 사적 자본으로 또 군사경쟁을 시장에서 사용가치를 둘러싼 경쟁으로 바라보는 클리프의 관점은 그 어느 한군데도 맑스주의와 공통된 점이 없음은 당연합니다. 사회주의적 생산 자체가 사용가치를 위한, 즉 인류의 필요에 토대를 둔 생산이라는 것은 맑스주의 초보자라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시장을 통하여 교환가치를 실현해내고자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는 자본가들의 상품생산을 자본주의의 본질로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단순히 사용가치를 위한 생산을 자본주의로 규정하는 클리프의 주장은 당연히 우스꽝스런 결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클리프의 이론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사냥터를 확보하기 위해 벌였던 여러 부족들 간의 싸움이나 노예들을 더욱 많이 확보하기 위한 노예제 사회의 식민지 쟁탈 전쟁을 마땅히 “제국주의자들 간의 전쟁” 또는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이라고 규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군사경쟁과 연관되어 제기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바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한 후에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제국주의와 노동자 국가 사이의 군사적 대치상황을 사회주의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은 사회주의 혁명이 세계적인 규모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다는 그러한 조잡한 견해가 아닐진대, 일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한 이후에 선진 자본주의국들로 혁명이 전파 확산되어 나가기 전까지는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자들과의 대치전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자들은 당연히 혁명의 성과물들을 수호하고 제국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노동자 국가를 수호하기 위하여 군수물자를 생산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을 이용해야 할 것입니다.

반(反)맑스주의적인 클리프의 “국가 자본주의”론과는 명백히 반대되게 트로츠키는 구소련을 “퇴보한 노동자 국가(degenerated worker’s state)라고 보았습니다. 트로츠키는 ”맑시즘을 옹호하며“라는 저작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강령에서 ‘퇴보한 노동자 국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1) 1920년대에 소비에트 체제의 ”관료적 왜곡화“를 규정했던 요소들은 현재 소비에트를 집어삼켜버린 독립적 관료정권을 수립시켰다. (2) 사회주의의 국내적 국제적 임무와 양립 불가능한 관료주의의 독재는 그 사회의 경제 생활에 심각한 왜곡을 초래해 왔고 그리고 계속해서 초래할 것이다. (3) 그러나 근본적으로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토대로 하여 수립된 계획경제 체제는 인류의 거대한 승리로 보전되어 왔고 계속해서 그렇게 남아있을 것이다. 제국주의자들과의 전쟁에서 소련이 패배한다면 이는 관료적 독재 체제의 청산을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계획화된 국가 경제의 청산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제국주의의 새로운 안정화와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새로운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트로츠키는 소련의 노동자계급이 스탈린 관료주의를 근절시키기 위한 정치혁명을 이루어 맑스와 레닌의 정신에 기초한 진정한 노동자 민주주의 소비에트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관료적으로 왜곡된 노동자 국가에서 정치혁명은 국유화된 계획경제 체제를 옹호하는 것에 근본적으로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클리프의 이론을 토대로 건설된 국제 사회주의자 조직이 소련을 비롯한 기형적 노동자 국가들(중국, 북한, 베트남, 쿠바 등)에 대해 취해온 태도는 근본적으로 트로츠키주의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IS는 1950년 한국전쟁이 소련 “제국주의”와 미제국주의 사이에 벌어진 “대리전쟁”이라고 규정하고 그 어느 편도 들지 말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소련을 “제국주의”라고 규정하는 관점이 비과학적 반(反)맑스주의적임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한국전쟁이 “대리전쟁”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무관한 것입니다. 비록 북한이 소련과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김일성과 같은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지도받고 있었지만,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토대로 한 토지개혁 및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골자로 하는 사회혁명이 북한 민중들에게 광범한 지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개혁 정책이 남한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끼쳐서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도 남한에서 북한을 옹호하는 좌익세력들에 의해 여러 번의 봉기 시도가 있었음을 우리는 제주도 5.10 선거 반대 봉기나 여순 군대봉기와 같은 예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제주도 민중들의 ’4.3′ 봉기를 계기로 하여 전개된 무장유격투쟁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그리고 그 전후로도 지리산, 오대산, 태백산 등지에 근거지를 두고 활발하게 전개되었다는 사실은 한국전쟁이 단순한 대리전이 아니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증명해 줍니다.

일관된 트로츠키주의자라면 한국전쟁 당시 미제국주의의 군사적 공격에 맞서 싸우는 북한에 군사적 지지를 보냄과 동시에 제국주의를 패배시키고, 더 나아가 북한의 스탈린주의에 반대하여 독립적인 노동자계급에 의해 이끌어지는 정치혁명을 선전 선동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한국전쟁과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는 베트남전쟁에 대하여 보여 온 IS의 입장은 자신들의 논리에 아주 모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S는 베트남전쟁 때 미제국주의에 반대하여, 호지명에 의해 지도되는 베트공을 지지하였는데 그 이유는 베트남이 미제국주의에 억압받는 식민지 피압박국이기 때문에 제국주의자에게 반대하는 식민지 민족해방투쟁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한국전쟁 같은 경우는 미제와 소련 제국주의에 조종 받는 꼭두각시 정권들이 벌인 대리전쟁이기 때문에 양쪽 모두에 반대해야 한다는 게 IS의 논리입니다. 사실에 근거하여 논리를 세우기보다는 자신들의 논리에 맞추어 사실을 곡해하는 예가 이보다 더 명백한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스탈린주의에 반대한다는 명목 하에 취해진 IS의 정치적 태도가 결과적으로 제국주의자들과 자본주의 반혁명세력을 이롭게 하고 있음은, 1991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옐친의 반혁명 승리를 통하여 또다시 중명되고 있습니다. 트로츠키주의자라면 옐친의 자본주의복구 세력에 대항하여 국가 계획경제 체제를 보전하려는 스탈린주의 관료세력에게 군사적 지지를 보냈어야 했습니다. 오로지 스탈린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 계급의 조직된 힘만이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의 성과를 보전하고 완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선전 선동하면서, 스탈린주의 관료들에게 정치적 지지를 않으면서 당시 옐친과 무력적 대치 상황을 벌이고 있던 스탈린주의자들과 함께 공동의 적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조직화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후에 노동자 계급이 시위나 파업에 가담하기를 금지시켰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사회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자들의 반노동자성과 자본주의 세력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능력이 그들에게 전혀 없음을 폭로하면서, 오로지 조직된 노동자의 힘만이 옐친과 제국주의 세력을 격퇴시키고 더 나아가 스탈린 관료체제를 제거하는 정치혁명을 이루어, 진정한 노동자 민주주의와 국제 노동자계급의 연대에 토대를 둔 사회주의 건설로 나아갈 수 있음을 설득시켜내야 했습니다. 단지 옐친이 쿠데타 주동세력보다 인기가 많다는 것을 이유로 또 스탈린 치하 동안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 사상에 혼동되고 왜곡된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것을 핑계로, 진실을 말해야 하는 사회주의자의 임무를 방기한 채 반혁명적 옐친세력의 승리를 지지한다면, 노동자계급은 더 크나큰 고통과 패배를 맛보게 되고, 무엇보다도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신뢰를 잃고 말 것입니다.

1917년 8월 레닌이 코르닐로프 반혁명 세력에 대항하여 케렌스키 정부와 군사적 동맹을 맺었던 사실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레닌은 케렌스키 정권에 정치적 지지를 보내지 않고도 공동의 적인 코르닐로프에 대항하여 총부리를 나란히 겨누는 군사적 동맹을 맺었습니다. 스탈린주의자들로부터 독립된 노동자 계급의 조직된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스탈린주의자들이 우유부단하면 할수록 옐친이 격파된 이후의 상황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화와 조직화에 호조건을 제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지지를 받는 옐친의 자본주의 복구세력이 승리한 것에 대하여 IS는 이를 1917년 러시아 10월 사회주의 혁명에 버금가는 민중 혁명의 승리라고 칭송하였습니다.

소련의 노동자 국가가 무너져 버린 지금, 러시아와 동유럽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경제관계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빈곤, 실업 그리고 여러 사회범죄의 증가 등으로 고통 받고 있음은 물론이고, 제국주의자들이 제 3세계 신식민지 억압국에 공공연히 행하는 무력적 군사개입의 횡포는 걸프 전쟁, 소말리아 그리고 최근 아이티의 군사개입을 통하여 드러났듯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심해져가고 있습니다. 이전의 진보적 사회개혁(무상 교육, 무상 의료 등) 등으로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의 지배계급에게는 위협의 대상이요 피억압 민중에게는 부러움과 희망의 대상이 되었던 쿠바는 이제 소련의 경제 원조가 끊어진 지금, 기본 생필품의 부족과 경제 침체 등에 부딪혀 내적으로 붕괴 직전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경제적 봉쇄조치로 쿠바를 고립시켜서 실질적으로 쿠바 난민문제를 발생하게 한 미제국주의자들은 오히려 이를 사회주의 체제의 비민주성의 문제로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쿠바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핑계를 만들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미국이 아이티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면서 쿠바와 아이티의 문제는 동일한 것이라고 말했던 것은 위와 같은 음흉한 계획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로지 구소련과 동유럽에서 (기형적)노동자 국가가 붕괴된 것을 기뻐하고 이들 나라에 근본적으로 아무런 질적인 변화가 없었다고 즉, 하나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또 다른 자본주의 체제로 옮겨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만이 현재 기존의 기형적 노동자 국가에서 노동자계급이 겪고 있는 심화된 고통과 세계적으로 더욱 노골화되는 제국주의자들의 횡포에 대해 눈을 감은 채 설명하기를 거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과 계급의 관계

다음은 두 번째로 당과 계급의 관계, 좀더 구체적으로는 당의 역할에 대하여 IS가 갖는 대중추수주의적 경제주의적 태도는 비판의 여지가 있습니다. IS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대중파업론에 저술된 대중의 자생성을 칭송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이 강조한 전위의 의식적 역할을 엘리트주의적 오류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당의 조직 규율을 둘러싸고 볼셰비키와 멘셰비키가 분열한 1903년 당시, 트로츠키가 볼셰비즘을 “대리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멘셰비키적 오류를 범한 것에 대하여 IS는 한마디 비판의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트로츠키의 “대리주의” 개념이 과소평가하는 전위의 의식적 역할에 관한 트로츠키의 기존의 잘못된 견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승리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가 암살당하게 된 이유 중 하나에는, 사회 민주당의 개량적 지도부에 의해 지도받았던 독일 노동계급을 올바로 이끌 볼셰비키당과 같은 민주집중제로 단결된 노동자 계급의 전위조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로자 룩셈부르크가 전위의 목적의식적 지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개량적 사회민주당과 결별하여 독일 공산당을 수립하였지만, 이미 그때는 너무 늦어버린 후였던 것입니다.

동지들! 노동자 계급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기계적으로 분리하고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 사이에 단계론을 주장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영국에서 선거 때만 되면 노동당에게 표를 던질 것을 권하고 87년 남한의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에게 “비판적 지지”를 했어야 했다고 말하며, 심지어는 혁명의 문턱까지 다가섰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투적 흑인 노동대중에게 투쟁을 자제하고 백인 분리주의 정권과 연합정부를 세울 것을 호소한 ANC를 지지할 것을 선전하면서 (IS는 ANC의 승리를 “전세계 노동자들의 승리”라고 불렀습니다.) 전위의 역할을 방기하는 IS가, 바로 기계주의적 단계론자들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1987년 남한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었을 때 부르주아 당 지도자 김대중을 “비판적”으로 지지했어야 했다고 말하는 IS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전술 일반에 바탕되는 원리는 대중이 대중 자신의 행동을 통해 조직과 의식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그리고 다음으로 주되게 고려해야 하는 점은 대중의 감정이다. 87년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주의자는 우선 노태우의 낙선을 지지해야 했다. …둘째로, 대중은 투표 행위를 통해 군사독재를 패퇴시키기를 원했는데, 김영삼이나 김대중 가운데 한 명에게 표를 찍음으로써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그런데 김영삼보다 김대중이 노동계급에게 좀 더 이익이 되는 강령들을 공약으로 내놓았다.”–<노동자연대>, 6월 특별 증면호

만일 노동대중이 부르주아 의식에 오염됨이 없이 자신들의 처지를 하나의 계급으로서 이해하고 또 이를 하나의 계급적 행동으로 조직화할 수 있다면 현재 우리가 고민하는 당의 문제, 전략 전술의 문제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되어 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이며, 따라서 노동자 계급의 의식과 행동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많은 부분 수용하고 반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이 즉자적 계급으로부터 대자적 계급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전위의 임무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IS는 대중의 의식과 행동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바로 어떤 계급의 의식과 이해를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중의 “감정”이 전술의 기본적 고려 사항이라는 주장, 특히 전술이 전략에 종속된다는 원칙을 배체한 채 언급되는 “감정” 운운은, 그 전술이 대중을 어디로 이끌지 뻔히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군사독재 하에서 자본주의 착취구조가 군사독재라는 국가형태를 통해 더욱 잔인하게 노동대중을 억압해 온 것에 분노한 대다수의 노동대중은 87년 6월 항쟁 그리고 7, 8월 대파업 투쟁을 통해서 그 분노를 표출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치 지도자들의 영향력 하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억압의 근원인 자본주의적 질서를 종식시키려는 계급의식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단순히 국가 통치형태의 변화 즉, 군사독재를 보다 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민간인 정부로 대체시키려는 의식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또한 노동계급의 당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들에게는 부르주아 야당들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여지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IS가 이야기하는 노동자의 의식(자본주의적 민간인 정부=부르주아 야당의 이데올로기)이고 노동자의 행동(야당 찍어주기=부르주아 야당의 궁극적 목표)인 것입니다. 여기 어느 곳 한군데에도 노동자 계급의 이해에 기반한 노동자 계급의 행동에 관한 언급은 없고, 단지 현재 대중이 원하는 것에 따라가기만이 있을 뿐입니다.

IS는 부르주아 당에 지지표를 준 것에 대해 러시아의 제 4차 두마 시기에 레닌이 쁘띠 부르주아 농민들의 당이었던 트루도비키를 지지했었던 예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멘셰비키적 대중추수주의를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볼셰비키가 트루도비키를 선거 때에 지지했다는 것만큼이나 사실로부터 어긋난 것은 없을 것입니다. 레닌은 결코 트루도비키에게 “비판적” 지지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제 4차 듀마 때 특정 지역구에서 극우 반동적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 볼셰비키 당 후보와 트루도비키 당 후보가 서로 경쟁하는 것을 자제하고 어떤 선거구에는 볼셰비키 후보가 다른 선거구에는 트루도비키당 후보가 출마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선거 협정을 맺을 것을 제안했었을 뿐입니다.

이와 같이 볼셰비키 노동자 전위 당이 존재하고 또 당이 독자적으로 노동자 후보를 내세워 선거에 참여하는 전술을, 어떻게 감히 노동자 당이 부재한 남한에서 노동자계급이 반노동자적 부르주아 야당들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자신들의 의식화와 조직화로 나아가지 못하고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서 IS가 펼치는 대중추수주의적 “비판적” 지지 전술과 비교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또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레닌이 트루도비키당과의 선거협정을 제안했던 배경이 바로 “노동자 농민의 민주적 독재”라는 1917년 이전의 정식에 근거한 혁명관을 일부 반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917년 이후의 상황 전개는 농민이 독자적인 정치계급으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따라서 레닌은 “4월 테제”에서 “노농 민주독재”라는 정식을 폐기했습니다. 소위 트로츠키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레닌이 오래 전에 폐기해버린 구(舊)정식을 토대로 한 전술의 사용을 예로 들어, 그것도 일부러 곡해하여 현재 부르주아당을 지지하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이를 이용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동지들! 우리는 IS 동지들의 혁명적 신념과 그 노력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정치적 태도가 가져오는 객관적 결과에 대해서 동지들은 책임을 지고 진지하게 비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국제볼셰비키그룹은 동지들과의 계속적인 정치적 토론을 통하여 무엇이 진정 국제 노동자 계급에게 올바른 길인가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에 대한 동지들로부터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1994년 10월 8일

국제볼셰비키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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