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연락처 :
bolle1917@gmail.com


브라질 RR그룹과의 토론: 201812~20209

제국주의, 민족해방 그리고 연속혁명

 

제국주의적 국수주의에 굴복한 IBT로부터의 분립 이후, 역시 국제당 건설을 도모하던 브라질의 RR그룹[혁명적재결집(Reagrupamento revolucionario/Revolutionary Regroupment)]과의 정치 토론이 있었다. 2년 가까이 각각 4차례의 서신을 주고 받았다. 같은 주장의 반복으로 논의가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다고 판단되어, 4번째의 서신을 끝으로 대화는 종결되었다. 안타깝게도 당장의 조직적 성과는 없었지만, 논의 과정에서 우리는 제국주의, 민족해방 투쟁, 연속혁명 그리고 영미 국수주의[Anglo-chauvinism]에 의한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퇴보등 중요 문제에 대해 더 풍부하고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에 그 성과를 공유하고자 한다.

<차례>

볼셰비키그룹

RR

1/4 (2018127)

대화의 의미/ 몇 가지 질문/ 이집트, 이란, 2월 혁명의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1/4 (2019225)

2/4 (2019315)

1. 리비아와 시리아 문제 2. 19172월 러시아, 2011년 이집트, 1979년 이란 상황과 관련된 승리문제 3. 이란: 1979년부터 1983년까지

2/4 (2019712)

3/4 (201981)

쟁점/ RR과 볼셰비키그룹 입장이 일치하는 지점/ 무엇이 다른가?/ 이란의 사례/ 군사적 지지의 의미/ 1979년 이란에서의 군사적 지지/ 허수아비 공격/ 워커스벤가드의 결함/ 워커스벤가드의 진짜 노선/ 1979210SL 국제집행위원회의 결정/ 종파주의적 구호로의 복귀/ 어떤 입장을 견지해야 했나?/ 호메이니, 샤 그리고 미 제국주의/ 연속혁명 대 단계주의: 러시아 1917년과 이란 1979

3/4 (202079)

4/4 (2020914)

1. 허수아비 공격의 반복 2. iSt의 진짜 구호: a) 샤 타도! 물라 타도 b) 샤 타도! 물라 지지 반대 3. 브라질 문제 4. ‘승리문제

5. 연속혁명론과 단계론

4/4 (2020928)

 




 

대화의 의미

이카루 칼렙 동지의 주도로 우리는 이제 막 정치 토론을 시작했다. 우리 두 조직은 스파르타쿠스 동맹(SL)과 국제볼셰비키그룹(IBT) 정치의 많은 부분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상당한 희망을 갖고 우리는 이 토론에 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 언어 그리고 정치 상황에서 성장했다. 그것은 장차 서로의 원활한 대화를 방해하고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억지로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서로가 인내심을 견지한 설명과 대화를 통해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금/토요일 이카루 동지와 더불어, 두 조직의 역사 그리고 이집트, 터키, 이란 그리고 러시아 2월 혁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후 이카루 동지는 몇 개의 의견을 보내왔고 RR 동지들은 그 내용을 공유했다고 들었다.

***

먼저, 위 언급 중 불명확한 것에 대해 질문하고, 다음으로 이집트, 이란, 2월 혁명의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에 대한 생각을 설명하고자 한다.

 

몇 가지 질문

1.

우리는 내전이라는 IBT의 당시 입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벵가지 쿠테타의 경우, 우리는 그것을 지지하지 않는다.”—RR

리비아에 관한 언급이다. 내전으로 갈등의 성격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두 번째 문장에서, “벵가지 쿠데타그것을 지지하지 않는다.”라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2.

시리아에서, 그 많은 제국주의 개입이 있었음에도 IBT가 아직도 중립 입장을 취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RR

제국주의적 개입이라고 했는데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사례를 들어줄 수 있는가?

 

3.

레닌과 트로츠키는 그들의 권력 장악을 묘사하면서, ‘승리부분적 승리니 하는 말을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부르주아지가 대중을 속이려는 수작이라고 묘사했을 뿐이다.”—RR

나는 이집트, 이란, 2월 혁명의 결과를 설명하면서 두 개의 얼굴을 지닌” “제한적, 모순적 그리고 부분적승리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카루 동지는 위와 같이 언급한다. 이것은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접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집트 2011, 이란 1979, 2월 혁명의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2월 혁명 이후, 차르의 구정권은 타도되었다. 군대는 차르에서 소비에트로 충성 대상을 바꾸었고, 노동자/병사 소비에트가 수립되고 그것이 진짜 권력을 가졌다. 이중권력 상황이 조성되었고 볼셰비키당은 합법적이고 대중적인 기초 위에서 급속히 성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타도할 주객관적 상황이 제공되었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강령으로 무장한 진짜배기 혁명정당이 있었던 러시아에서, 노동계급은 그 기회를 붙잡아 최종적(?) ‘승리를 성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곳은 그렇지 못했다.

물론 2월 혁명의 결과는 우리에게 사회주의라는 최종적 목표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다만 그 목표에 닿을 기회를 주었을 뿐이다. 그것은 구정권과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영국과 프랑스 제국주의와 화해주의자(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을 한편으로 하고, ‘농민의 지지를 받는 노동계급과 볼셰비키당을 또 다른 편으로 한, 당시 역관계의 반영이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제한적이고 부분적이며 모순적인 양면성을 가진 승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트로츠키는 그 2월 혁명을 승리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묘사한다. 모든 것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사물은 대립물의 통일이다.

트로츠키가 2월 혁명을 승리라는 단어를 사용해 묘사한 구절을, ‘2월 혁명의 역설이라는 제목의 러시아 혁명사9장에서만 찾아, 인용해 본다.

대다수 의원들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차르에 의해 해산 당한 의회가 봉기의 승리에 대해 보인 첫 번째 반응이 이것이었다.”

승리의 첫 기간에 새로운 혁명 권력은 대단한 속도와 억누를 수 없는 힘으로 스스로를 수립시킨다. 그러나 이때 소비에트의 정점에 선 사회주의자들은 진짜 자기들의 상전을 찾기 위해 경계의 눈초리로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나 승리가 확보되고 승리의 정치적 기반이 강화되기 시작하는 순간 상황이 바뀐다. 승리한 혁명의 조직과 기관을 운영할 지도부의 선거는 직접 손에 무기를 들고 싸운 소수보다 훨씬 광범위한 대중을 끌어들이고 이들에게 어려운 과제를 제시한다.”

이 사실은 혁명이 승리한 후의 정치상황을 결정했다.”

 

2018127

볼셰비키그룹(Bolshevik EA)

 


2/4 (2019315)

 

RR 동지들

우리와 가까운 정치노선을 가진 조직과 만나 토론을 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지난 226일 동지들의 이메일에 대해 답변하려 합니다.

 

1. 리비아와 시리아 문제

우리는 시리아에 대한 동지들의 다음과 같은 견해에 동의한다.

제국주의 세력이 개입할 경우, 우리는 그 반대편에 설 것이다. 제국주의 세력은 내전에 참가한 반군을 훈련시키고 그에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제공한다.”RR

그리고,

내전의 이와 같은 점을 살피지 않고, 아사드군과 (미 제국주의의 재정적 물질적 지원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반군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중립입장을 취하는 국제볼셰비키그룹(IBT)은 문제적이라고 생각한다.”RR

그러나 여전히 리비아에 대한 관점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지들은 20113월 제국주의가 직접 군사침략을 감행한 이후에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는 세력 편에 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치 그 3월 이전에는 반군이 제국주의의 재정적, 물질적, 군사적 지원을 받지 않았던 것처럼 말한다.

“20112월부터 3월 사이에 두 부르주아 진영 가운데 누구도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받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점은 아마도 우리와 IBT가 같은 생각일 것이다.)그러나, 3월에 들어서 주요 제국주의 열강들이 그 반대파로 하여금 권력을 잡도록 개입을 시작하면서 질적인 차이가 발생했다. 그 일이 발생했을 때, 설령 그 세력이 친카다피 세력일지라도 그와 더불어, [제국주의 원조를 받는 반군’] 진영 반대편에서 싸우는 것이 모든 사회주의자의 의무였다.”RR

동지는 “20112월부터 3월 사이에 두 부르주아 진영 가운데 누구도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받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라며, “이 점은 아마도 우리와 IBT가 같은 생각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리비아 사태가 시작될 때부터, 그것이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통해 현지 세력을 이용한 제국주의 정권교체라는 것을 IBT는 이미 알고 있었다.

“‘카다피에 충성하는 군대를 막강한 공군력이 분쇄한 후, 토착 앞잡이들이 열린 문으로 다투어 들어가 진공 상태의 권력을 장악하는 것’, 이것이 리비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대체적 요약이다.

리비아와 아프가니스탄 모두에서, “정권교체는 미국과 끈끈하게 맺어져있는 새로운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는 것이었다. 2001년 독일 본에서 열린 회의에서 추대된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는, 20년 전 CIA와 함께 반()소련 무자헤딘을 위한 기금모금자로 일했던 자이다. 새로운 리비아 수상으로 선임된 압두라힘 엘 케입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앨라배마 대학에서 가르친 미국 시민권 소지자이다. 이후 그는 아랍에미리트연방으로 건너가 석유대학의 전기기술부 책임자 자리를 맡았고, 그의 연구를 미국 에너지부가 지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볼 때, 그는 1970년대 초반 카다피 정권이 국유화했던 리비아의 석유가스를 서방에 넘겨주는 작업을 관장하기에 아주 적합한 인물로 보인다.

세르비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경우에서처럼, 리비아 공격에 앞서 한 다발의 거짓말이 퍼졌다. 리비아 경우는 217분노의 날시위 이후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한다는 주장을 집중 부각시켰다. 이러한 보도의 주된 공급자는 카타르 지배계급이 운영하는 알 자지라였고 이들은 또한 반란자들에게 수백 명의 병사와 무기를 공급했다. 리비아 공군이 시민을 학살했다는 꽤나 그럴듯한 이야기는 심각하게 과장된 말임이 드러났다.

수백 명의 외국 특수부대원의 지원을 받는 반란군의 도움 속에서 제국주의자들의 지속적 폭격은 카다피 군대를 무력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많은 소식통에 따르면, 정권에 맞서 가장 효율적으로 싸운 토착 세력은 일부가 알 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 세력이라고 한다. 하지만 반란군은 이번 사건의 주역이 아니었다. 물론 카다피 군으로부터 사격을 이끌어내고 그리하여 나토의 공습 명분을 만드는 데에는 큰 역할을 했다.

사실상, 그것은 젊은 활동가들의 느슨한 네트워크가 아니었다. 나중에 SWP도 인정했지만, 217일 시위는 제국주의와 연계된 반대를 위한 리비아 전국회의(National Conference for the Libyan Opposition: NCLO, 이후에 TNC로 편입됨)’가 주도한 시위였다.IBT, 리비아와 좌익: 나토 제국주의 군대, 반란군 그리고 혁명적추종자들

그러나 IBT는 위선적이거나, 최소한 비논리적인 결론을 내린다.

나토의 폭격이 시작되자, 리비아 자결권 문제가 심각해졌고, 갈등의 성격은 지배권력 내부의 투쟁에서 신식민지 정권과 제국주의자들의 동맹과 그 하수인 사이의 투쟁으로 변했다. 그에 따라 맑스주의자들의 입장은 양쪽의 패배를 주장하는 것에서 제국주의와 그 TNC 협조자들에 맞서 카다피에 대해 군사적 지지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같은 글

동지들은 IBT의 분석과 결론에 동의하는가?

 

2. 19172월 러시아, 2011년 이집트, 1979년 이란 상황과 관련된 승리문제

지난 12월 대화에서, 우리가 이집트, 이란 그리고 2월 혁명의 결과가 지닌 이중적 모습제한적이고 모순적이고 부분적인승리라고 설명하자, 칼렙 동지는 “[러시아에서] 그들의 집권은 레닌과 트로츠키에 의해 어떤 의미에서건, ‘승리또는 부분적 승리로 결코 묘사되지 않았다. 다만 대중을 속이기 위한 부르주아지의 책동일 뿐이었다.”라고 응답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127일 그 문제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동지들은 아직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 권력의 관점에서, 2월 혁명은 1979년 이란이나 2011년의 이집트에 비해 그다지 나은 승리라고 볼 수 없다. 노동계급의 자기 조직화의 관점에서, 2월 혁명은 이란이나 이집트보다 뛰어났다. 후자의 경우 이중권력의 기관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적 권리 또는 혁명 사상의 공개 등) 그 상황들에서 얻어낸 성과는 마땅히 방어되어야 한다.” 2019226일자 RR의 답장

동지들은 국가 권력의 관점에서라는 말을 보태고 그것을 여러 번 반복한다. 그 말은 국가의 계급적 성격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가? 만약 국가의 계급적 성격이 바뀌지 않은 경우라면, 승리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리고 동지들은 마치 우리가 한쪽 부르주아 세력(이란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의 권력 장악을 완전한 승리’”라고 주장한 것처럼 말하고 이를 반복한다. 그것은 우리의 주장이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권력장악을 완전한 승리라고 부르면서 방어하지 않는다. 동지와 우리는 아마도 승리라는 말에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거나, 아니면 동지들이 허수아비를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지들도 알다시피, 차르 정권의 붕괴, 군대의 붕괴와 차르에서 소비에트로 충성 대상의 변화, 노동자 병사 소비에트 건설, 이중권력 상황 도래, 볼셰비키의 합법화와 대중적 성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주체적 객관적 상황이 장차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타도할 기회를 제공한 점을 우리가 승리하고 부른 것이다.” 2018127일자 볼셰비키그룹의 답장

무엇보다도, 이러한 역사적 상황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할 여건을 마련했다. 그리고 혁명 지도부를 갖춘 러시아는 최종 승리를 획득할 수 있었다. 반면, 이집트와 이란은 그 최종 승리로 나아가는 데에 실패했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들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의미심장한 기회라고 믿는다.

만약 동지들의 승리규정을 따른다면, 레닌과 트로츠키가 아래에 설명한 사건을 승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과연 아래의 사건들은 국가권력문제와 무관했는가?

가령 내일 모로코가 프랑스에, 인도가 영국에, 페르시아나 중국이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한다면 이것은 선제공격을 누가 하든 정당하고’ ‘방어적인전쟁이다. 사회주의자라면 누구나 억압받고 종속된, 불평등한[약한] 나라들이 억압자이자 노예주이며 약탈자인 열강들에게 승리하기를 바랄 것이다.”V.I. 레닌, 사회주의와 전쟁중에서

무솔리니가 승리한다면 파시즘이 강화되고, 제국주의의 힘이 증대되며, 아프리카와 다른 식민지 인민들의 사기가 저하될 것입니다. 그러나 네구스가 승리한다면, 이는 이탈리아 제국주의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전체에 심대한 타격이 될 것이며 [체제에] 저항하는 피억압 인민들의 힘을 크게 자극할 것입니다. 완전히 눈이 멀지 않고서야 이것을 못 볼 수는 없습니다.”트로츠키, 독재자들과 오슬로 고원

 

3. 이란: 1979년부터 1983년까지

동지들은 이슬람 지도자들의 권력 장악이라는 단순한 표현으로 그 당시 이란 상황을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샤는 1953년 제국주의가 주도한 쿠데타로 들어선 제국주의 꼭두각시 정권이었다. ()샤 투쟁에는 단지 급진 이슬람주의자들(그 당시 샤 정권을 지지하는 이슬람 지도자들도 상당히 많았다.)만이 아니라, 노동인민 여타 계층과 더불어 조직된 노동계급도 참여하였다. 투쟁 속에서 이란 노동계급은 급격히 급진화했다. 노동계급은 러시아의 1905년과 1917년에 건설된 소비에트와 유사한 대안조직인 쇼라를 건설했고 이를 통해 핵심 산업을 직접 통제했다. 그들은 이슬람 공화국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 당시 이란 노동계급이 결여하고 있었던 것은 혁명 지도부였다. 그 대신 당시 이란에는 페다인, 무자헤딘, 투데당[이란공산당] 같은 게릴라 투쟁 성향 또는 스탈린주의 정치조직이 있었다.

샤의 퇴위 그리고 기존 정권이 붕괴된 19792, 국가 권력은 하나의 세력이 차지하지 못했다. 기존 권력의 붕괴는, 19172월 혁명 이후처럼, “어떤 계급이 국가를 장악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노동계급은 다양한 정치조직을 통해 국가 권력을 향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1983년 무렵, 부르주아 계급의 보나파르트 지도자 호메이니는 그 경쟁에서 이겨 최종 승리자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1980년에 페다인, 1981년에는 무자헤딘, 1983년에 투데당을 차례로 붕괴시켰다.

* * *

누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노동계급이 어떤 정치조직을 지지하는가?’라는 문제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차르, , 무바라크 정권에 맞선 투쟁에서 기권하는 정치조직은 결코 노동계급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2019315

볼셰비키그룹(Bolshevik EA)



3/4 (201981)

 

쟁점

오늘날 미국을 정점으로 한 제국주의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유고슬라비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을 침공하고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을 도발하면서 세계를 극도로 긴장시키고 있다. 제국주의는 폭력, 선전기구를 총동원하여 미친 듯이 자신의 적들을 악마화하고 침략전쟁을 찬양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국 노동계급을 호도하고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전쟁의 압력 앞에 기죽여 자신의 나팔수로 전락시킬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RR[혁명적재결집(Reagrupamento revolucionario/Revolutionary Regroupment)] 동지들이 리비아나 시리아 문제에서 이들 나라의 승리를 군사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세계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중요한 기여임에 틀림없다.

동지들도 알다시피 우리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문제에서 배신적 중립 입장을 취하던 국제볼셰비키그룹(IBT)과 분립해 나왔다. 그들의 이론적 근거는 1979년 이란혁명에 대한 스파르타쿠스동맹(SL)의 중립노선에서 파생되어 나왔다. 우리는 그것을 레닌주의 전통에서 일탈한 비과학적인 노선으로 규정한다. 반면에 동지들은 1979년 이란에 대한 SL 노선에 지지를 표명한다.

 

RR과 볼셰비키그룹(Bol-EA)의 입장이 일치하는 지점

그러나 동지들은 IBT와 우리 사이의 큰 쟁점이었던 이집트, 터키, 리비아, 브라질 그리고 시리아에서의 전술문제에서 우리와 유사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동지들이 예로 든 유사 사례들과 트로츠키 인용을 통해 내린 결론은 아주 과학적이고 우리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한다. 이 점은 우리의 논의가 희망적이라는 것을 알리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러한 사례들은 코르닐로프에 대항해 케렌스키와 군사동맹을 맺는 것, 1930, 40년대에 일본에 대항하여 중국 편에 서는 것, 프랑코의 반란에 대항하여 스페인 공화국 편에 서는 것과 유사하다. 자주 망각되는 하나의 고전적사례는 1930년대 파시스트 쿠데타에 대항하여 독일의 파펜/슐라이허 보나파르트주의 정부 편에 설 가능성이다.”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있어 한편에 대항하여 다른 한편을 군사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자신만의 정치적 전망을 가지고 노동계급의 독자적 조직을 방어한다는 구체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2019612일자 RR의 답장

 

무엇이 다른가?

그러나 동지들이 이 나라들에서 일어난 갈등의 본질을 분석하는 데서 결함을 보이고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특히 쿠데타, 제국주의 침공 그리고 내전 같은 부르주아 내부분쟁에서 군사적으로 편드는 문제에서 연속혁명에 근거한 혁명전략과 혁명전술 사이의 올바른 관계이다.”같은 글

여기에서 분쟁의 주체는 누구인가? 제국주의 모국과 식민지의 부르주아들인가? 아니면 식민지 내부 부르주아 분파들인가? 동지들은 그 다음 문장에서 그것이 후자라고 말한다.

이집트와 터키에서 일어난 쿠데타나 리비아와 시리아 내전 나중에는 제국주의 침공에서 논의된 정치적 사건들은 부르주아 한 분파가 프롤레타리아와 피억압 민족을 더 잘 착취하고 억압하기 위해 다른 한 분파를 제거하려고 했다는 사실에서 유래했다. 이 상황에서 마르크스주의자는 그러한 공격에 대항해 이를 격퇴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승리는 노동계급이 혁명을 위해 싸우는 데 있어 훨씬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같은 글

우리는 이 갈등을 단순히 부르주아 내부투쟁으로 묘사하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4개국 모두 식민지이다. 이들 나라의 정치적 격변은 어떤 시점까지(예를 들어, 리비아에서 20113월까지), ‘표면적으로는부르주아 분파 간의 투쟁만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있는 제국주의가 훨씬 더 결정적 요인이다. 오늘날 리비아와 시리아 전쟁은 제국주의가 장기간에 걸쳐 준비한 침공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쿠데타 이후 아랍에서 미 제국주의의 적극적 도구로 더욱 반동화된 이집트와 쿠데타 진압 후 미국과 큰 갈등을 겪는 터키를 볼 때 두 나라에서 일어난 쿠데타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이제 명백해졌다.

사실 이들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 부르주아 내부투쟁이라는 것은 라일리[옛 국제볼셰비키그룹(IBT)의 지도자, 2018Bolshevik Tendency로 분립]의 분석이었다. 그런데 라일리가 작성한 혼돈 속의 중동, ‘CIA가 지원하는 시리아 지하드’, 제국주의자들 살라피주의 공국을 기획하다’, ‘제국주의자들의 시리아 분할 계획같은 목차에서 볼 수 있듯이, 시리아 내전이 사실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침략전쟁임을 지적한다.

그러나 끝에 가서는 시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내전즉 부르주아 내부투쟁이라 결론짓고, 양측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는 정치적 결론을 끌어낸다.

시리아 내전에서 혁명가들은 혹독한 바트당 독재와 반동적인 이슬람 반란군 모두를 지지하지 않는다. 동시에 미국과 여타 제국주의자들로부터 공격당할 때 군사적으로 모든 토착 세력들 (이슬람주의자를 포함하여) 편에 서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 노동운동은 시리아의 바트당 독재나 반동적인 이슬람 반란군 어느 쪽의 승리에도 관심이 없다.”혼돈 속의 중동, IBT, 2016212

라일리는 분명 이 글에서 시리아 정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그는 제국주의가 갈등의 원인이라는 과학적 분석을 배신하고, 부르주아 내부투쟁이므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엉뚱한 결론을 낸다.

반면에 RR 동지들의 태도는 다르다. 동지들은 노동계급의 이해가 걸려있다면 중립 입장이 아니라 부르주아 한 분파에 맞서 다른 한 분파와 싸울 수 있다는 정치적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노동계급의 대의에 충실한 올바른 결론이다. 그러나 올바른 정치적 결론은 과학적인 원인 분석에 기초를 두고 있어야 한다.

 

이란의 사례

동지들은 1979년 이란 혁명전술 문제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를 비판한다.

우리는 그러한 운동 전반에 걸쳐 추상적인 군사적 지지를 보내거나 그들의 권력부상을 방어할 수 없다고 없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이슬람주의자들의 부상을 부분적인 승리라고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2019612일자 RR의 답장

더 나아가 동지들은 119일과 216일에 발간된 워커스 벤가드(Workers’ Vanguard, 스파르타쿠스동맹(SL)과 그 후신(後身) 국제공산주의동맹(ICL)의 기관지) 223호와 225호를 인용하여 호메이니에 대한 군사적 지지는 그의 부상을 돕는 것이라고 우리를 비판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19793월부터 첨예화된 여성 · 소수민족과 호메이니주의자 사이의 갈등을 예로 들면서 후자에 군사적 지지를 보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동지들은 호메이니주의자들이 포함된 반()샤진영과 샤와 제국주의가 군사투쟁을 벌일 때 전자의 편에 서서 싸우겠다(군사적 지지).”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예를 들어 샤가 유혈낭자한 군사적 억압을 통해 그들을 쓸어버리려고 했을 때 우리는 그들의 방어를 호소했을 것이다. 혹은 만약 제국주의자들이 자신들이 선호하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침공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격퇴하기 위해 호메이니주의자들과 실리적 동맹을 맺었을 것이다.”같은 글

이처럼 입장이 오락가락인 이유는 동지들이 19781월에 시작되어 19792월에 끝난 반()샤투쟁과 그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을 섞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요 논거들을 반박하기 전에, 상호간에 오해가 없도록 19781월부터 19793월까지 이란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간략한 연표로 정리하고자 한다.


()샤투쟁 일지

워커스 벤가드 제호 및 구호

1978 17- 호메이니에 대한 샤의 거짓선동에 항의하는 신학생들을 경찰이 유혈진압, 투쟁의 시작

197847- 200

샤 타도, 사바크(SAVAK) 분쇄

노동조합 활동의 완전한 자유, 여성의 완전한 법적 평등

소수민족의 민족자결권

보통선거권에 기초한 제헌의회

노동자 · 농민 정부

1월 말~8월 초 샤 정권의 폭력진압에 항의하는 시위가 여러 달에 걸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점점 가라앉음

819아바단시의 렉스 극장에서 화재가 일어나 422명 사망, 사바크(SAVAK, 샤의 비밀경찰)가 배후로 지목되어 인민의 공분을 삼

94테헤란의 잘레 광장에서 군대가 연좌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64명 사망 (검은 금요일 사건) 샤 정권타도가 투쟁의 전면에 제기됨

197898214

99테헤란 석유노동자들이 검은 금요일 사건에 항의하면서 파업에 돌입, 파업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감

1978922215

샤 타도! 물라(이슬람 성직자) 타도!

9~12수백만 명이 참가하는 전국적인 총파업과 시위가 일어남

1979 14샤가 야권지도자 중 한명이었던 박티아르를 수상으로 임명함

1979119223

샤 타도! 물라 타도!

14~15샤와 박티아르 타도를 외치는 거대한 총파업과 시위 분출

116- 샤의 망명

117~31박티아르 타도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와 총파업 지속, 호메이니파 이슬람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로버트 후이저(Robert Huyser) 장군 통제 하에 놓인 군부와 정권이양 협상

21호메이니의 귀환

197922224

샤 타도! 물라 타도!

29~10테헤란 도샨 타페 공군기지에서 혁명을 지지하는 군사반란이 일어남, 좌익게릴라들이 합세하여 진압군 격퇴, 반란군이 병영, 경찰서, 감옥 그리고 방송국 함락

1979216225

구호 없음

211군부 항복, ()샤투쟁 승리

318- 호메이니주의자들이 여성의 권리방어 집회 공격

197932- 226

샤 타도! 물라 타도!’는 옳았다

318~21임시정부와 호메이니주의자들 쿠르드족 유혈진압 개시

1979413- 229

샤 타도! 물라 타도!’는 옳았다

 

 

군사적 지지의 의미

추가로 우리는 군사적 지지가 무엇인지를 명백히 짚고 넘어가겠다. 그 이유인즉, 동지들이 우리가 말한 군사적 지지를 추상적인무언가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운동에 덮어놓고 추상적인 군사적 지지를 보내거나 그들의 권력장악을 방어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호메이니에게 추상적인 군사적 지지를 보내지 않을 것2019612일자 RR의 답장

군사적 지지는 추상적이지 않다. ‘구체적상황에서 채택되는 매우 구체적전술이다. 예를 들어 동지들은, 2016년 브라질에서 호세프 대통령과 의회 쿠데타를 일으킨 우익들이 투쟁할 때 일시적으로 누구 편에서 누구를 상대로 싸울 것인가? 물론 양측 모두 노동계급의 적이니 동시에 타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때문에 동지들은 우익을 타격하고 호세프를 일시적으로 방어하는 노선을 취하지 않았는가? 트로츠키는 이 문제에 대해 탁월한 비유를 제시한다.

적들 가운데 한 놈이 내가 매일 강제로 복용해야 할 소량의 독을 내 앞에 놓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놈은 나에게 곧바로 권총을 발사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우선 두 번째 적의 손을 쳐서 권총을 떨어뜨려야 한다. 그래야 첫 번째 적을 처치할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반파시즘 노동자 공동전선을 위하여, 트로츠키, 1931128

 

1979년 이란에서의 군사적 지지

이제 동지들의 주장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하나씩 밝혀나가겠다.

먼저, 동지들은 워커스 벤가드 223(1979119)를 인용하면서 우리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그들과 특정한 사안과 시기에 실리적 동맹을 맺는 대신에) 이슬람주의자들의 부상을 군사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정치적 지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2019612일자 RR의 답장

이 기사가 나온 1979119일 이란의 거리와 공장에서는 반()샤투쟁을 배신하고 샤의 수상이 된 박티아르를 타도하기 위한 격렬한 시위와 총파업이 한창이었다. 3일 전에 샤는 망명했지만 여전히 그에게 충성하는 군부는 미국 정부가 파견한 로버트 후이저 장군의 통제 하에 살아남았다. 1953년에도 샤는 1차 쿠데타가 실패하자 해외로 도망쳤다. 그러나 CIA의 지휘를 받는 군부의 2차 쿠데타 성공으로 단숨에 복귀했다. 비록 1979년은 상황이 조금 달랐지만 이러한 유사성 때문에 223호도 군부의 쿠데타를 진지한 위협으로 다뤘다.

이란 식민지 정권의 중추는 샤가 아닌 미국의 지휘를 받는 군부였다. 그리고 223호가 나올 때 군부는 아직 타도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시점에 샤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투쟁은 아직 끝난게 아니었다.

이란 노동계급이 총파업을 통해 투쟁에서 큰 역할을 수행했지만, 혁명 전위당의 부재와 자칭 마르크스주의 조직인 투데당(공산당)과 페다인(게릴라)의 인민전선 정책 때문에 호메이니에 대한 환상을 떨쳐내지 못했다. 노동계급은 아직, 군부와 호메이니로 대표되는 부르주아 야권을 동시에 쓸어버릴 정치적, 조직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223호가 나온 시점에 호메이니주의자, 자유주의자, 좌익게릴라 등이 포함된 야권과 군부의 싸움에서 후자에 맞서 전자와 일시적으로 함께 싸워야했다.

워커스 벤가드 223호는 더 나아가 호메이니와 군부가 파키스탄의 지아정권처럼 이슬람주의 군사독재를 수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거리에 나선 노동인민의 계급본능은 군부를 적으로 간주했다. 223호에서 소개된 사바크(SAVAK)에 대한 보복과 한 달 뒤에 일어난 군사반란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가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호메이니주의자들과 군부의 협상은 혁명 전위가 노동인민 앞에서 그들의 본질을 폭로할 기회를 주었을 뿐, 군부에 대한 투쟁을 기각시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호메이니주의자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했나? 우리는 결코 투데당이나 페다인 그리고 무자헤딘(좌익이슬람주의 게릴라)처럼 반()샤투쟁을 위해 침묵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군부와의 협상을 비판하고 군부 타도, 발포 책임자 처단을 이에 대치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협상을 위해 총파업을 중단시키려는 호메이니주의자들에 맞서 노동계급이 정치적 · 조직적 독립을 사수하도록 도왔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호메이니파의 여성억압과 이단종파 바하이(Bahai) 교도 박해를 비판하고 그들의 반동성을 노동계급에 경고했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이란 노동계급의 불구대천의 원수인 군부를 타도하는 동시에 장차 호메이니주의자들과 결전을 치를 노동계급과 피억압인민의 정치적 무장을 촉진시켰을 것이다.

 

허수아비 공격

다음으로 동지들은 워커스 벤가드 225호를 추종하며 이와 같이 주장한다.

호메이니의 권력장악을 돕는 것은 이슬람주의자들의 권력부상에 대한 환상과 거짓된 기대를 불어넣는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형태의 지지가 되었을 것이다.”같은 글

동지들의 이 문장은 허수아비 만들기이다. 우리는 호메이니의 권력 장악을 돕거나 지지한 적이 없다. 우리는 일관되게 이슬람주의자들의 권력부상에 대한 환상과 거짓된 기대를 불어넣는것을 경계해 왔다. 이 점에서 레닌의 4월 테제는 우리 전술의 핵심적 전범이다.

만약 우리가 호메이니의 권력 장악을 돕거나 지지한 적이 있거나, 그렇게 해석될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라고 지적해 주길 바란다.

 

워커스 벤가드[iSt의 기관지 Workers’ Vanguard(노동자전위)]의 결함

225호의 정세분석은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먼저 이 제호는 전면에 물라가 승리했다는 대문짝만한 제목으로 시작되어 동지들이 인용한 부분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것은 노동인민의 승리가 아니다. 오늘날 이란은 반동 이슬람 중산층과 장교들의 피비린내나는 동맹 상태에 있다……그러나 고위급 장군들의 항복으로 보장된 그의 승리워커스 벤가드 225, 1979216

워커스 벤가드 225호는 마치 223호에서 예로든 파키스탄의 지아정권처럼 호메이니와 군부의 동맹이 성사되어 이슬람주의 군사독재가 수립된 것처럼 이란 정세를 묘사한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225호가 나오기 7일 전인 29일 테헤란의 공군기지에서 투쟁에 지지를 보내는 반란이 터져 나왔다. 반란군은 좌익게릴라들의 군사지원과 테헤란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면서 진압군을 격퇴했다. 승리한 반란군과 좌익게릴라들은 탈취한 무기로 테헤란 인민들을 무장시켰고 하늘을 찌르는 기세로 병영, 경찰서, 감옥 그리고 방송국을 하나씩 함락시켰다. 정규군은 이미 병사들의 사기저하와 동요로 약화되었기 때문에 손쓸 새도 없이 붕괴됐다.

호메이니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예상치 못한 노동인민의 혁명적 각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군부와의 협상을 중단하고 반란에 지지를 보냈다. 궁지에 몰린 군부는 211일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했다. 이로써 반()샤투쟁은 식민지 봉건왕정-군사독재의 붕괴로 막을 내렸다.

호메이니는 정규군과 국가기구의 완전한 붕괴를 막기 위해 자유주의자 바자르간(Bazargan)을 수상으로 한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너무 허약해서 각양각색의 물라들이 지도하는 지역위원회(코미테), 노동자들의 파업위원회-공장위원회(쇼라), 지방의 소수민족 자치기구들과 권력을 나눠가져야 했다. 게다가 코미테의 혁명수비대, 호메이니주의자들의 헤즈볼라 민병대, 페다인과 무자헤딘 같은 좌익게릴라 그리고 소수민족 민병대 모두 승리 이후에도 무장을 유지했다.

이처럼 샤 정권 붕괴 후 이란의 국가기구는 무력을 독점하지 못하는 대단히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게다가 지난 수십 년간 이란 자본주의 체제를 무력으로 뒷받침해주던 미제는 이란 군부가 무력화되면서 영향력을 상실했다. 폭력기구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유재산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란 자본주의는 반()샤투쟁 이후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1979211일 반()샤투쟁의 승리는 호메이니주의자들의 승리였다. 그러나 동시에 호메이니의 통제를 벗어나 군부를 직접 무너뜨린, 좌익게릴라와 노동인민의 승리이기도 했다. 덕분에 국가기구가 크게 약화되면서 한동안 노동계급에게 유리한 역관계가 조성되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1983년까지, 좌익과 노동진영은 승리의 성과를 방어하고 확대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이란 자본주의 체제의 구원자 호메이니가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반()샤투쟁 승리를 호메이니파 이슬람주의자들의 권력 장악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책임은 반()샤투쟁 이후 사회주의 혁명을 기각하고 호메이니파의 권력 장악을 도운 자들에게 물어야 한다.

 

워커스 벤가드의 진짜 노선

다음으로, 동지들은 당시 워커스 벤가드의 노선은 샤 타도! 물라 타도!”가 아니라, 225호의 샤 타도! 물라에게 지지를 보내지 말자! 노동자권력!”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225호의 구호가 SL의 노선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만약 후자라면 우리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러나 1978~79년 워커스 벤가드의 중심 입장은 샤 타도! 물라 타도!”였다. 우리가 워커스 벤가드를 비판하는 이유는 SL이 거의 일관되게 이 구호를 이란과 세계 노동계급에게 투쟁지침으로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SL이 처음부터 샤 타도! 물라 타도!” 구호를 내걸었던 것은 아니다. ()샤투쟁 초기인 197847일 워커스 벤가드 200호에서 표현된 SL의 노선은 다음과 같았다.

샤 타도, 사바크 분쇄

노동조합 활동의 완전한 자유, 여성의 완전한 법적 평등

소수민족의 민족자결권

보통선거권에 기초한 제헌의회

노동자 · 농민 정부

이 요구들은 반()샤투쟁의 발전에 적절히 조응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과 전술을 아주 훌륭하게 결합시켰다. 이 노선은 98일 워커스 벤가드 214(197898)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1978922일 워커스 벤가드 215호는 샤 타도! 물라 타도!”1면에 내걸었다. 이때부터 SL은 이 구호를 197922224호까지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1979210SL 국제집행위원회의 결정

그런데 225(1979216)에서는 그 구호를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이 시기에는 샤 정권이 타도되었기 때문에 똑같은 구호가 제기될 수는 없었겠지만 물라 타도!’라는 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호에서 물라 타도!’ 구호가 다시 제기되었다. 이런 기묘한 일이 일어난 까닭은 무엇일까?

1979년 2월 10일 SL.jpg

1979년 2월 10일 SL 국제집행위원회 결의안

1979210일 독일 트로츠키주의동맹(Trotzkistische Liga Deutschlands) 전국총회는 아래 동의안을 채택했다. 곧이어 프랑스 트로츠키주의동맹과 영국 스파르타쿠스동맹 대표가 참가한 국제스파르타쿠스동맹(international Spartacist tendency) 국제집행위원회 회의는 이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 * *

샤 타도! 물라 타도!’ 구호는 샤와 물라의 제거라는 이란 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전략적 지향을 표현한다. 그리고 이 구호는 지금 대중운동을 이끌고 있는 종교 반동에 맞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의 지향을 올바르게 맞세운다. 그런데 이 구호는, 역사적 관점을 표현하지만 전술적 측면이 결여되어 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구호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 샤는 아직 집권 중이었고 이 구호는 샤와 물라를 동일시했다. 이 구호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올바른 강령을 표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종파주의적 강령을 감추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 일반적 선전구호로서 이 구호는 호메이니 추종의 재앙적 결과를 강력하고 날카롭게 경고했다. 무슬림 근본주의자뿐 아니라 거의 예외없이 물라 진영에 들어간 기회주의 좌익에 대한 적개심을 경고한 것이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의 손에 의해 샤 타도, 물라와 단절구호가 올바르게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구호는, 존재하지 않는 진보적물라를 찾으면서 성직자 진영 내부에서 일하는 것을 포함하여, 기회주의 강령을 표현하도록 뒷문을 열어줄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해 이 구호는 기회주의자 손에서 혁명의 단계론을 표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세 번째 구호 샤 타도, 물라 지지 반대는 이전 두 구호의 함정을 피하고, 비록 그것이 첫 번째 슬로건보다 덜 날카롭고 덜 강력하게 우리의 강령을 표현하지만, 다른 구호들처럼 오용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1979210SL의 독일지부는 샤 타도! 물라 타도!” 구호를 비판하며 샤 타도! 물라에게 지지를 보내지 말자!”를 수정안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이 수정안은 프랑스와 영국 지부 대표가 참가한 SL 국제집행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승인받았다. 수정안 제안자들은 이 구호가 수정되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구호[샤 타도! 물라 타도!]는 역사적 관점을 표현하지만, 전술적 측면이 결여되어 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구호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 샤는 아직 집권 중이었고 이 구호는 샤와 물라를 동일시했다. 이 구호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올바른 강령을 표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종파주의적 강령을 감추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

그리고 샤 타도! 물라에게 지지를 보내지 말자!”는 구호를 채택할 것을 제안했다. 아마 이 때문에 216일 발간된 225호에서 물라 타도구호가 사라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이처럼 샤 타도! 물라 타도!”SL 내부에서도 논란이 많았던 종파주의적이고 초좌익적인 구호였다.

물론 혁명조직도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최대한 빨리 바로잡는 것이다.

 

종파주의적 구호로의 복귀

그렇다면 SL은 자신의 오류를 정정하는 데 성공했는가? 아니다. 225호의 교정 이후 발간된 226호에서 SL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의 입장은 미국 SWP223일자 투사지의 표제 이란에서의 승리로 표현되었다. 누구의 승리란 말인가? 그것은 게릴라들이나 쿠르드족, 석유파업노동자들 그리고 이제 차도르를 강요받을 여성들의 승리가 아니다.한편 진정한 승자 호메이니와 그의 성직자들은 사탄같은 좌익 배신자들을 때려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워커스 벤가드 226, 197932

만약 반()샤투쟁의 승리가 노동계급과 피억압인민의 승리가 아닌, 오로지 호메이니와 그 추종자들의 승리라면, SL은 도대체 왜 샤 타도! 물라에게 지지를 보내지 말자!”는 구호를 채택한 것인가?

결국 SL, “샤 타도! 물라 타도!”로 되돌아갔다.

더 나아가 워커스 벤가드 229(1979413)이란과 좌익(Iran and the Left)샤 타도! 물라 타도!” 구호가 옳았음을 재확인했다.

워커스 파워는 호메이니주의자들의 시위 참여는 반제국주의 군사적 공동전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시위는, 샤의 군대가 승리하면 대중운동을 말살시킬 것이므로 물라가 지도하는 세력을 반드시 혁명적으로 방어해야 하는 내전이 아니었다. 시위들은 근본적으로 현존하는 국가기구를 이슬람화하기 위한 압력전술이었다. 호메이니 지도부는 분명히 페르시아의 파키스탄 이슬람 병사지아장군으로써 샤에 맞선 쿠데타를 고려하고 있었다. 이슬람 공화국을 위한 시위들은 바로 그것을 위한 것이었다.”

, 1978~79년에 일어났던 시위들은 내전이 아닌 호메이니주의자들의 압력전술일 뿐이므로 방어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과연 1978~79년 테헤란 거리에서 군대의 총에 맞아죽은 인민들에게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와 같이 SL은 자신의 노선을 교정하지 않았고 엄청난 냉소와 함께 샤 타도! 물라 타도!” 노선으로 돌아왔다.

, 이제 동지들이 보기에 SL의 이러한 발작적 오락가락은 정상적인가?

 

어떤 입장을 견지해야 했나?

동지들은 호메이니주의자들의 여성과 소수민족 억압을 지적하면서 우리가 다음 물음에 답할 것을 요구한다.

전술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언제 어디서 호메이니, 이슬람주의자 편을 들 수 있는지 명확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아주 옳은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호메이니주의자들의 편을 들어야할지를 정리하겠다: “우리는 197817일 혁명이 시작된 시점부터 1979211일 군부가 붕괴될 때까지 호메이니주의자들과 함께 샤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투쟁한다. 동시에 정치적, 조직적 독립을 무조건 사수하고 노동계급에게 호메이니주의자들의 반동성을 경고한다. ()샤투쟁 승리 후 노동자권력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한다. 그 과정에서 노동계급, 여성, 소수민족 등에 대한 호메이니주의자들의 공격을 대항하여 비타협적으로 투쟁한다. 그러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제국주의가 침공할 시 호메이니주의자들과 일시적으로 함께 싸운다.”

이로써 충분히 물음에 대한 답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더 나아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서도 답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호메이니주의자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적대적이었던 이유는, “언제나 공개적으로 신정체제를 선호했기 때문(2019612일자 RR의 답장)”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메이니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주관적 선호와 별개로 반()샤투쟁 이후 이란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객관적 조건때문에 민주주의적 권리를 파시즘적으로 억압해야만 했다. 따라서 우리는 호메이니주의자들에 맞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했을 것이다.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 현재의 계급역관계를 사수하고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메이니, 샤 그리고 미 제국주의

끝으로 동지들은 미국이 샤와 호메이니를 저울질하다가 전자를 선택했음을 상기시키고 그 원인으로 두 가지 이유를 제기한다.

“1)그들은 호메이니보다 샤를 선호했다. 2)그들은 그렇게 해서 잃을 것이 없었다.”

우리도 동지들처럼 호메이니는 결코 진정한 반제국주의투사가 아니었고 미국과 손잡을 준비가 되어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후의 역사는 이를 증명했다. 그러나 동지들이 제시한 이유들은 너무 단순하고 사실관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첫 번째로 왜 제국주의는 샤를 선호했는가? 계급적으로 볼 때 둘은 전혀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샤는 무조건적으로 미국의 이해를 방어하는 데 복무했고 호메이니는 그의 주관적 의도와 별개로 미국의 이해를 침해하는 대중운동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 차이는 제국주의 금융자본에게 큰 차이였다. 당장 석유이권, 차관, 무기계약, 합작기업 등이 걸려있었고 더 나아가 아프간, 파키스탄, 사우디 등으로 민족해방, 공산주의 혁명이 확산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로 그들은 진정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었나? 이와 정반대로 미제는 당시에 모든 것을 잃을 뻔했고 실제로 많은 것을 잃었다. 당시 미제에게 이란 공산주의 혁명은 현실적인 위협이었다. 결과적으로 이슬람공화국이 생존하면서 그들은 공산화로 전부 잃을 뻔했던 것을 일부만 잃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잃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대표적으로 그들은 석유이권을 잃었고 이것을 되찾기 위해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란을 도발하고 있는 것이다.

1978~79년의 반()샤투쟁, 소위 이란혁명은 식민지 하수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란인민은 19세기부터 영국과 미국의 손아귀에 있던 석유이권을 되찾았고 미군을 이란 땅에서 쫓아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란 노동계급은 이란 자본가계급을 끝장내지 못했다. 그 결과 터번을 쓴 보나파르트인 호메이니가 소부르주아 계급과 노동계급 후진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노동계급 전위를 분쇄했다. 그 결과 이란 노동계급, 여성, 소수민족의 권리가 크게 후퇴했고 터번을 쓴 특권층이 등장했다. 하지만 동시에 제국주의자들이 이란 유정에서 퍼내던 초과이윤의 일부는 혁명 후 이란의 평균수명을 끌어올리고 문맹을 퇴치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제국주의자들이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증오하는 이유이다.

 

연속혁명 대 단계주의: 러시아 1917년과 이란 1979

이란에 대한 우리 입장은 충분히 설명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2월 혁명이나 1979년 혁명을 부분적인 승리라고 부를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혁명은 일련의 단계들을 분명히 거쳐 간다. 이 단계들은 자의적인 규정이 아닌 대중들의 정치적 의식과 준비정도 그리고 계급 역관계에 조응한다. 이 단계들은 결코 그냥 건너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중들은 각 단계에서 승리와 좌절이 교차하는 모순 속에서만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

2월 혁명 또한 승리와 좌절이 결합된 하나의 단계였다. 혁명은 차르-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무력화시키고 소비에트를 건설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덕분에 노동자, 농민 그리고 소수민족은 자유로이 조직하고 선동하고 무장하고 토지와 공장을 점거할 수 있었다.

동시에 2월 혁명은 화해주의자들이 부르주아지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좌절을 경험했다. 8시간 노동제, 토지, 평화, 민족자결 같은 시급한 문제들의 해결이 무기한 연기되었고 왕당파, 정치깡패, 장교들이 화해주의자들의 묵인 하에 날뛰기 시작했다. 따라서 2월 혁명은 러시아 노동계급에게 있어서 승리인 동시에 좌절이었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볼셰비키 당은 이 모순을 간파하고 적시에 개입하여 2월 혁명을 10월 혁명으로 도약시킬 수 있었다.

이란혁명도 마찬가지였다. 혁명은 제국주의 하수인정권을 타도하고 석유이권을 되찾는 승리를 거두었다. 동시에 이란 노동계급과 피억압인민은 26년 만에 자유로이 조직하고 선동하고 무장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국가권력은 호메이니주의자와 자유부르주아지에게 넘어갔고 자본주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샤와 대자본가들의 생산수단 국유화 거부, 호메이니파의 파시즘적 폭력과 여성에 대한 봉건적 생활양식 강요, 소수민족 유혈진압이 혁명 직후에 터져 나왔다. 이것은 이란혁명의 좌절이었다. 안타깝게도 1979년 이란에는 볼셰비키 당이 없었기에 혁명의 모순은 사회주의의 길로 발전하지 못했고 결국 이슬람공화국으로 퇴보했다.

마지막으로 동지들은 호메이니가 케렌스키보다 훨씬 더 반동적이었다는 것을 근거로 2월 혁명과 이란혁명의 차이를 들고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케렌스키와 호메이니 모두 유사한 혁명 단계에서 등장했고 모든 반동적 수단을 동원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막았다. 다만 케렌스키는 볼셰비키 당의 올바른 지도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호메이니보다 적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케렌스키는 타도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반동성을 미처 다 보여주지 못했다.

***

동지들이 로건[옛 국제볼셰비키그룹(IBT)의 지도자, 201810Bolshevik Tendency와 볼셰비키그룹이 차례로 분립한 이후, () IBT에 잔존]과 라일리 그룹의 반동성을 지적하고 진정 과학적인 길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그 그룹들의 주장 근저에 사 타도! 물라 타도!”로 대표되는, 1979210일 국제집행위원회 결의안이 종파주의적이라고 지적하는, SL의 노선이 있다. 그 노선은, IBT가 브라질을 포함하여, 다양한 제국주의-식민지 사이의 갈등에서 중립노선을 취하도록 만든 배경이었다.

우리는 1979210일 국제집행위원회 결의안을 완전히지지한다. 그 결의안에 담긴 거의 모든 문장과 논리가 바로 IBT 내부 논쟁에서 우리의 주장이었다. 만약 동지들도 그러하다면 이 문제에 있어 우리 사이엔 이견이 없다.

노동계급 전위는 분석과 노선에 있어서 결코 불철저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행보에 수억 노동계급의 운명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1978~79SL은 정세를 비과학적으로 분석했고 내부적으로 좌충우돌하며 초좌익노선을 고수했다. 혁명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불철저함은 당대에도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큰 오류를 불러일으킨다.

 

201981

볼셰비키그룹



4/4 (2020924)

제국주의, 민족해방 그리고 연속혁명론

 

이 글은 RR(9 July 2020, “RR and BL to BEA”)에게 보내는 답장이다. 동시에 인류의 위기 극복을 위한 최우선의 조건인 노동계급의 국제 지도부 수립을 위해 분투하는 우리로서는, 올바른 혁명강령 수립을 위해 이 글이 기여하길 바란다.

 

1. 허수아비 공격의 반복

2018년 상호 대화가 시작된 시점부터 RR, 1979년 이란에서 우리 노선은 호메이니의 집권을 추구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지속해왔다. 근거 없고 고집스러운 비방이다.

1979년 이란에 대한 입장은 매우 중요한 강령적 분기점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이에 관한 입장을 여러 차례 분명하게 밝혀왔다.

제국주의 식민침략에 맞서 이란을 방어하자! 반제국주의 해방투쟁의 승리를 사회주의 혁명으로! (2019년 5월 20일)

이란, 민족주의, 제국주의 (2018529)

이란 1979년 혁명의 성격 요약 (201774)

이집트, 터키, 브라질 등 내부 논쟁 제출 글 (201373~201748)


이 입장은 식민지 민족해방 투쟁에 대한 레닌과 트로츠키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 가르침을 이란 1979년 상황에 적용한 것이다.

2019년 이란-미국의 갈등 국면에서, RR을 비롯한 BT, IBT, ICL, IG 등은 다투어 이란 방어 입장을 내놓았다. , 미 제국주의와의 갈등에서 현 이란 이슬람지도부와의 군사적 동맹 입장을 지지한 것이다. 이는 1978~79년 반()팔레비 군사동맹 노선에 간접적으로 동조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판단한다.

20193, 8월 두 개의 글을 통해 허수아비 공격을 지적하면서, 그 근거를 대 달라고 요구한 바 있었다.

동지들의 이 문장[“호메이니의 권력장악을 돕는 것은 이슬람주의자들의 권력장악에 대한 환상과 거짓된 기대를 불어넣는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형태의 지지가 되었을 것이다.”(RR)]은 허수아비 만들기이다. 우리는 호메이니의 권력 장악을 돕거나 지지한 적이 없다. 우리는 일관되게 이슬람주의자들의 권력장악에 대한 환상과 거짓된 기대를 불어넣는것을 경계해 왔다. 이 점에서 레닌의 4월 테제는 우리 전술의 핵심적 전범이다.”20198월자 볼셰비키그룹의 답장

그러나 1년 뒤인 지금, 마치 지난 20198월의 문서는 없었다는 듯이, 다시 끝끝내 근거를 대지 않고 허수아비 만들기 식의 왜곡과 비방을 반복한다.

우리의 관점으로는, 호메이니의 권력 장악을 부분적 승리”(또는 동지들의 표현으로 게릴라 좌파와 노동인민의 승리”)라고 부르는 것은, 비판적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권력 장악을 내포하는 것이라고 본다.202079일자 RR의 답장 3

그것을 부분적 승리라고 부르는 것은 호메이니의 권력 장악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것과 다름없다. (모순적이게도 그의 타도를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호메이니의 권력 장악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다. 같은 글 4

그러나 이 입장은 단계론을 내포한다. 그것은 그가 권력에 다다를 때까지 호메이니 편에 설 것을 호소하는 것처럼 들린다. 같은 글 4

RR은 그들의 감각기관만을 근거로 제시한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쉬운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극단적 표현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빈번히 사용한다.

제국주의 개입은 그 자체로 결정적 요소라고 주장하고,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자는 단지 반제국주의 문제에서 어떤 편에 서냐는 문제만을 판단하여, 항상 제국주의에 반대만을 해야 한다고 당신들은 주장한다. 이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방법으로 동지는 단지 제국주의로만 문제를 한정한다. 이러한 방법론은 매우 기계적이다. 제국주의의 존재는 어떤 편에 서야할지를 결정하게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신식민지에서도, 이것은 물론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지만, 그 자체로 완벽한 요소가 될 수는 없다.” 같은 글 1

정직하지 못하고 막무가내이다. 이 같은 부정직과 비논리로는 마르크스주의 과학을 생산적으로 다룰 수 없다.

 

2. 스파르타쿠스 동맹(SL)의 진짜 구호와 입장: (a) 샤 타도! 물라(이슬람 성직자) 지지 반대 ! vs (b) 샤 타도! 물라 타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20198월 서신에서 자세히 분석하고 설명했다: ‘(a)가 옳고 (b)는 문제적이다.’

그러나 RR은 여전히 자기가 맞고, 우리가 틀렸다는 주장을 반복한다. , 훗날 SL전통을 공유하는 조직들의 기회주의적 해석이 문제일 뿐, 그 당시 SL의 입장은 (a)=(b)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서신의 우리 분석이 옳다고 보지만, 우리가 틀릴 수도 있다. 우리가 당시 SL 내부 사정과 역사를 완전히 알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SL 전통을 따르는 조직들을 포함한, 독자들에게 맡기자.

대답해야 할 문제는 다음 두 개의 질문이다.

1) 다음 중 무엇이 옳은가?

a: 샤 타도! 물라에 대한 지지 반대!

b: 샤 타도! 물라 타도!

c: a=b

2) 그 당시 그리고 지금의 SL의 진짜 입장은 무엇인가/이었나?

 

 

3. 라질 문제

우리는, 20198, 서로의 공통점을 확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동지들은 IBT와 우리 사이의 큰 쟁점이었던 이집트, 터키, 리비아, 브라질 그리고 시리아에서의 전술문제에서 우리와 유사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자, RR20207월 이런 의견을 보내왔다.

브라질과 관련해서, PT 정권[룰라, 호세프 등 브라질 노동당 정권]은 집권 시기 내내 제국주의자들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물리적 충돌엔 결코 이르지 않았던 그 쿠데타는 제국주의 협잡이나 개입 때문이라기보다는 국내 문제였다. 왜냐하면 제국주의의 이해가 전혀 위협받지 않았기 때문이다.”202079일자 RR의 답장

RR은 브라질 2016년 쿠데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국주의의 이해가 전혀 위협받지 않았다.”

* * *

우리는 브라질이 신식민지 국가라고 판단한다.

,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주도로 자본주의화가 이루어졌다. 금융과 기간산업 등 지배 자본이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초과이윤을 위해 구축되었고, 그의 직간접적 통제를 받는다. 정치 군사 등 국가 통치 시스템은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이해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착취는 폭력으로만 지탱된다. 그러므로 군대, 정보부, 경찰 등은 제국주의 금융자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바로 이것이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 쿠데타가, 신식민지에서는 그토록 잦은 이유이다.

브라질 역시 이러한 특성과 역사를 공유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브라질 자본주의의 공시적, 통시적 연구가 필요하다.

 

RR“[2016년 쿠데타에서] 제국주의의 이해가 전혀 위협받지 않았다.”라고 말하지만, “결코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상당한 근거들이 있다.

미셰우 테메르(쿠데타의 지도자, 호세프 탄핵 후 임시 대통령)가 미국 정부와 연계되어있다는 사실이 위키리크스에 의해 폭로됐다. 이로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브라질 대통령 딜마 호세프가 탄핵당한 사건이 사실 미국의 협조 하에 이루어졌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늘었다.”위키리크스: 브라질 임시 대통령 미셰우 테메르는 미국의 외교 정보원, 2016513(WikiLeaks: Brazil’s Acting President Michel Temer Is US Diplomatic Informant, May 13th, 2016)

테메르의 정책은 남아메리카의 지역기구들을 강화하는 대신, 자유무역을 장려하고 국유기업들을 사유화하며 미국 및 유럽 국가들과의 경제 관계를 굳건히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반구(半球) 문제 협의회, 테메르 정부가 남반구 지역의 통합을 위협한다, 2016720(Council on Hemispheric Affairs, The Temer Administration and the Threat to the Southern Regional Integration Process, July 20, 2016)

그리스에서 강제되었듯 브라질에서도 강제되고 있는 대자본과 제국주의가 명령한 개혁들’”IG, 브라질: 탄핵을 반대한다, 20164(IG, Brazil: No to Impeachment!, April 2016)

유출된 브라질 정부 당국자들의 대화는 이들이 이른바 세차 작전으로 알려진 반부패 수사를 진행할 때 미국 법무부와 비밀리에 협조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브라질의 탐사언론 Agência Pública의 협조를 받으면서 그 대화들을 분석했는데, 브라질 당국자들이 국제법률조약과 브라질 국내법을 위반할 정도로 긴밀하게 미국인들과 협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비밀을 지켜라미국이 브라질의 세차 작전에 개입한 비밀의 역사, 인터셉트, 2020312(The Intercept, 12 March 2020, “KEEP IT CONFIDENTIAL” The Secret History of U.S. Involvement in Brazil’s Scandal-Wracked Operation Car Wash)

스노든이 유출한 NSA 문서들은 미국의 전자도청기구가 브라질 대통령과 대사관의 통화내용을 감청하고 국유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를 해킹했음을 폭로했다.가디언, 브라질 대통령: 미국의 감청은 국제법 위반’ (Guardian, 24 Sep 2013, Brazilian president: US surveillance a 'breach of international law’)

우리는 브라질 역사와 사회구성체의 구체적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최소한 전혀 위협받지 않았다.”는 틀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 위험한 말이라는 것은 안다.

이 문제를 그렇게 답하는 것을 보면서 RR이 중요한 문제를 얼마나 경박하고 천진난만하게 다루는지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 심지어 브라질 문제마저도.

 

4. ‘문제

RR에게 이번 답장의 핵심단어는 승리이다. 이 단어는 6쪽 짜리 글에 37번이나 반복되고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계속 나온다.

지는 것을 결단코 싫어하는 RR에게 이 문제는 아마도 가장 난처한 주제였을 것이다.

이 우스꽝스런 논쟁 역시 대화가 시작되자마자 튀어나왔다. 우리는 2011년 이집트 무라바크의 퇴진, 1979년 이란 샤 왕조의 몰락이 1917년 러시아 차르의 퇴위와 유사한 사회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RR은 이렇게 말했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그들의 권력 장악을 묘사하면서, ‘승리부분적 승리니 하는 말을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부르주아지가 대중을 속이려는 수작이라고 묘사했을 뿐이다.”

우리는 2018127일과 2019315일 두 번의 답장에서 사물의 양면성을 설명했다. 그리고 2월 혁명을 승리라고 칭하는 트로츠키와 레닌의 언급을 인용, 소개했다. 우리는 이것으로, 2월 혁명을 승리라고 부를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우스운 논쟁이 끝날 것을 내심 기대했다.

* * *

그러나, 이번에 또 다시, RR은 사건의 한쪽 측면만 언급하며, “우리는 그것을 승리라고 부를 수 없다.”고 반복한다.

RR, 그 사건들을 승리라고 부를 수 없고 불러서는 안 된다는 근거로 임시정부 집권 이후의 볼셰비키나 호메이니 집권 후의 공산주의자들의 운명을 제시한다.

동지들[볼셰비키그룹]이 갈등을 단순히 부르주아 내부투쟁으로 묘사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승리는 대규모의 공산주의자 박해로 끝났다. 이를 통해 그 갈등이 (‘단순히묘사된 것이 아닌) 진짜로 두 부르주아 분파의 다툼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갈등에서 승리를 거둔 분파는 자신들의 권력 장악을 도운 대중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202079일자 RR의 답장 1

일부 미국회사 몰수와 그 밖의 사안들을 부분적 승리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공산주의자들)을 감옥에 갇히게 만든 그 과정은 결코 부분적 승리가 아니었다. 이 때문에 위에서 본 성과들도 얼마 후 매우 반동적인 조치들로 뒤집힌 것이다.”같은 글 4

19177월 시기 케렌스키의 임시정부 치하에서 볼셰비키는 불법화되고 죽을 위험에 처했으며 트로츠키를 포함한 지도부는 감옥에 갇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력 8, 코르닐로프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볼셰비키는 케렌스키 임시정부와 군사적 동맹에 나섰다.

중일전쟁에 대하여(1937)에서 트로츠키는 일제에 맞서 국민당과의 공동전선을 주장했다. 국민당의 장개석은 불과 10년 전인 1927년 중국공산당을 분쇄하고 공산주의자를 대거 학살한 자이다. 그 장개석의 국민당과 군사적 동맹을 맺을 것을 공산주의자들에게 제안한 것이다. 아마도 RR이 그 논문의 저자가 트로츠키라는 것을 몰랐다면, 그 전술의 의미를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제국주의 투쟁이 해방의 열쇠이다!(1938).에서 트로츠키는, 만약 영국과 브라질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경우, 브라질 정권이 유사 파시스트 정권이더라도, 민주주의 국가 영국에 맞서 브라질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 군사동맹에 참여하는 브라질 공산주의자들은 브라질 파시스트에게 공산당 합법화와 혁명 활동 보장을 사전에 약속받아야 할까?

* * *

공산주의자들의 운명은 자본가들의 관용에 달려 있지 않다. 계급투쟁의 동학과 계급 역관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 지도력 그리고 계급투쟁의 성패에 달려있다.

사물의 이중성과 변화 발전 등 사건 전개의 변증법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면, 19172월부터 10월까지의 혁명 역학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혁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은 혁명가라기보다는, 트로츠키가 극좌 일반과 특히 구제불능의 극좌에 대해서에서 말한 구제불능의 극좌에 가까울 것이다.

여러분이 그 사건들을 승리라고 부르건 그렇지 않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2011년 이집트 무바라크 타도, 19792월 이란 팔레비 왕조의 타도, 러시아 2월 혁명 차르 체제의 붕괴 등이 노동계급에 상당한 성과를 가져온 반면, 지배계급에게는 치명적 손실을 입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갈 도약대를 제공했다.

노동계급과 공산주의자들의 운명은 그 도약대에 달려있지 않다. 그 도약대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있다. 혁명으로 나아가는 도약대로 쓸 것인지 아니면 교수대로 나아가는 도약대로 쓸 것인지.

다리가 넷이고 목ㆍ얼굴이 길고 목덜미에는 갈기가 있으며, 꼬리는 긴 털로 덮여 있는 포유류를 보통 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당신이 그것을 말이라고 하건 그렇지 않겠다고 하건 중요치 않다. 당신이 그 동물을 뭐라고 부르든, 말은 초원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5. 속혁명과 단계론

RR은 또 우리에 단계론자라는 혐의를 씌운다. 물론 이번에도 근거는 오직 그들의 감각기관에만 있다.

동지들은 우리는 197817일 혁명이 시작된 시점부터 1979211일 군부가 붕괴될 때까지 호메이니주의자들과 함께 샤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투쟁한다. 동시에 정치적, 조직적 독립을 무조건 사수하고 노동계급에게 호메이니주의자들의 반동성을 경고한다. ()샤투쟁 승리 후 노동자권력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한다(볼셰비키그룹).”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입장은 단계론을 내포한다. 이것은 분명히 호메이니가 집권하기 이전까지 그의 편에 설 것을 호소하고, 이 타도 국면 이후에, 노동자권력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것이 맞다면, 단계주의적 입장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이다.- 202079일자 RR의 답장

당신들에게 단계론처럼 들리는”, 우리의 전술은 러시아 혁명 시기 19174810월 볼셰비키의 전술 그리고 트로츠키의 가르침을 이란에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RR은 문제 삼는다. 멘셰비키주의나 스탈린주의를 연상케 하는 단계론이라는 말로 비방한다.

자신이 만든 허상과 싸우는 상대로는 이길 수 없고, 이겨도 가치가 없다.

다만, 제국주의에 굴복하는 SL 전통은 자신의 기회주의적 중립을 연속혁명론을 이용해 합리화해 왔고, 그 과정에서 연속혁명론을 왜곡해 왔다. 그리하여 기회주의로부터 연속혁명론을 방어하기 위해 설명이 필요하다. 지난 20198월 편지에서 이미 상당히 설명했지만, 다시 보충한다.

 

1) 단계가 없다고? 당치 않은 소리, 변화는 단계를 가진다.

모든 사물은, 항상, 변화/운동한다. 그러나 일정한 시기 같은 운동 형태를 유지한다. 이 운동 형태는 이전 시기 그리고 이후 시기와 연속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구별된다. 이것이 단계이다.

물의 변화, 사람의 성장과 사회의 발전 등에서 단계를 관찰할 수 있다. 러시아 혁명에서 2, 4, 7, 8, 10월 시기는 각각 이전 시기와 달랐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당내 투쟁은 볼셰비키당이 바로 그 시기별로 다른 과제를 이해하게 만드는 데에 투여되었다. 객관적 상황의 차이, 역관계의 차이, 지배계급의 상태, 노동계급의 의식적 조직적 준비상태의 변화 등이 그것이다.

 

2) 멘셰비키주의와 스탈린주의의 단계론

멘셰비키주의와 스탈린주의의 단계론적 사고의 문제는 그 단계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적 발전단계를 일국적으로 축소시키는 데에 있다. , 모든 나라는 인류의 역사적 발전단계를 모두 밟는다는 기계적 사고에 있다. 다르게 설명하면, 그들은 러시아나 중국 같은 저개발 국가들은 모두 우선적으로 자본주의 발전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본가계급에 굴종한다. 그리고는 계급협조주의 인민전선에 빠져, (제국주의와 더불어) 자본가계급의 이후의 반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3) 연속혁명론의 가치

연속혁명론의 가치는 일국의 발전을 세계적 발전의 종속변수로 살핀다는 것에 있다. 다른 말로, 연속혁명론은 세계를 각 나라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로 바라본다. 유기적인 세계 체제 안에서, 불균등결합발전 법칙은 각 나라에 관철된다. 그리하여 각 나라는 자본주의적 발전단계를 꼭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각 나라가 부족한 것은 세계혁명을 통해서 보완될 수 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제국주의 지배자를 타도하는 노동계급 혁명과 제국주의에 맞선 식민지의 민족해방 투쟁은 서로를 보완하고 서로를 촉진하며, 세계 유기체를 사회주의로 나아가게 하는 두 개의 동력이다.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는 이 점을 이해하고 있었고, 우리에게 여러 번에 걸쳐 설명했다. 여기 대표적인 몇 개의 구절을 인용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러시아의 공동체에서는 토지의 원시적인 공동소유 형태가 심하게 무너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것이 한층 더 높은 공산주의적 공동 소유 형태로 직접 이행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서유럽의 역사 발전이 보여준 것과 같은 해체 과정을 먼저 거쳐야만 할 것인가?

오늘날 이에 대해 답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만일 러시아의 혁명이 서유럽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신호가 되고 그 결과로 둘이 서로를 보완한다면, 지금 러시아에 남아 있는 토지의 공동 소유는 공산주의 발전의 출발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공산당 선언, 1882년 러시아판 서문

 

레닌

사회주의자들은, 유럽의 혁명적 위기를 날카롭게 하는 데에, 유럽 제국주의에 맞선 식민지 신생 부르주아지의 투쟁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제국주의와의 투쟁에서 독립적인 요인으로서 무력한 소민족이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참된 세력 즉,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진출을 원조하는 효모의 하나, 세균의 하나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변증법이다.”민족자결에 관한 논쟁 총괄(19167)

사회주의 혁명은 단지 개개 국가에 있어서의 자국 부르주아지를 반대하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으로만 될 수는 없으며, 또 주로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그렇다. 사회주의 혁명은 제국주의의 압박을 받고 있는 모든 식민지와 모든 국가의 투쟁으로 될 것이며, 국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모든 예속 국가들의 투쟁으로 될 것이다.우리는 전세계적인 사회혁명의 박두를 분석하면서, 일체의 선진국가들에서 제국주의자들과 착취자들에 반대하여 싸우는 노동자들의 국내전쟁이 국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민족전쟁과 결합되기 시작하였다고 말한 바 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오로지 세계의 일체 선진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최후의 승리를 달성할 수 있다.그런데 그들은 일체 식민지 피압박 민족의 근로대중, 우선 동방민족의 근로대중의 원조가 없이는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선봉대가 단독으로는 공산주의에로의 이행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동방 민족 공산주의 단체 제2차 전 러시아 대회 보고(19191122)

 

트로츠키

“9. 프롤레타리아의 권력 쟁취는 혁명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혁명의 시작일 뿐이다. 사회주의 건설은 국내적국제적 차원의 계급투쟁을 토대로 해서만 생각할 수 있다. 전 세계에 걸쳐 자본주의적 관계들이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조건에서 이 투쟁은 불가피하게 폭발 즉, 대내적으로는 내전, 대외적으로는 혁명전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아주 최근에야 민주주의 혁명을 이룩한 후진국이든 이미 오랫동안 민주주의와 의회주의 시대를 거친 오래된 자본주의 국가이든 상관없이, 사회주의 혁명 자체가 연속적 성격을 갖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0. 일국의 한계 내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완성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위기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것이 창출한 생산력이 더는 국민국가라는 틀과 조화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이것 때문에 한편에서는 제국주의 전쟁이, 다른 한편에서는 부르주아적 유럽 합중국이라는 유토피아가 생겨난다. 사회주의 혁명은 일국적 무대에서 시작돼 국제적 무대에서 전개되고 결국에는 세계무대에서 완성된다.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은 더 새롭고 포괄적인 의미에서 연속혁명이 된다. 그것은 지구 전체에서 새로운 사회가 궁극적으로 승리할 때 그것이 완결된다.”연속혁명이란 무엇인가? 기본 정식들, 1931

브라질은, 혁명가라면 누구나 증오할 수밖에 없는 유사파시즘 체제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령 내일 당장 영국이 브라질을 군사적으로 공격한다고 한다면, 이 전쟁에서 노동자 계급은 어느 편에 서야 할까요? 나의 견해를 말하자면, 이 경우에는 민주주의 국가인 영국에 맞서 파시즘 국가인 브라질의 편에 설 것입니다. 어째서일까요? 이들의 대립은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국이 승리한다면 브라질 수도 리우 데 자네이로에 또 다른 파시스트를 들여앉힘으로써 브라질에 이중의 족쇄를 채울 것입니다. 반대로 브라질이 승리한다면, 브라질의 민족주의 · 민주주의 의식을 엄청나게 자극함으로써 바르가스[당시 브라질 대통령] 독재정치가 전복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동시에, 영국의 패배는 영 제국주의에 타격을 입히고 영국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운동을 자극할 것입니다.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군사적 충돌과 적대를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투쟁으로 인식하는 자들은 정말로 천치들입니다. 가면 뒤에 숨은 착취자, 노예주인, 강도들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합니다.”반제국주의 투쟁이 해방의 열쇠이다!, 19389

이렇게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로 이어지며 풍부해진 연속혁명론은 제국주의 세계체제를 하나의 유기체로 바라본다. 그리고 각 나라의 혁명을 국제적 관계 속에 배치한다. 다른 한편, 우리가 단계론이라고 부르는 멘셰비키주의와 스탈린주의의 핵심은 각 나라의 계급 역관계를 세계 체제와 떼어내어 고립적으로 바라보는 일국적 관점이다.

그러나 일국적 관점은 스탈린주의의 일국사회주의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퇴보한 트로츠키주의자들 역시 이 일국적 관점(아마도 일국자본주의론이라고 칭할 수도 있을)을 가지고 있다. 이 퇴보한 트로츠키주의자들 가운데에는 특히 식민지의 한 나라나 한 지역의 계급 갈등에서 제국주의적, 국제적 요소를 제거하는 경향이 있다.

트로츠키의 죽음과 2차 대전 이후, 대부분의 지부가 제국주의 국가에 위치해 있던 제4인터내셔널은 제국주의 압력에 짓눌렸다. 그리고 강령적 후퇴가 일어났다. 혁명적 연속성은 트로츠키의 말년 뜨거운 쟁점이었던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 문제에서 어느 정도 계승되었다. 두말할 것 없이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의미 있는 기여이다. 그러나 1948년 이스라엘-아랍 전쟁이 발발하자, 식민지-제국주의 문제에서 강령적 후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점점 후퇴하던 제4인터내셔널 내에서 스파르타쿠스동맹(SL) 진영은 가장 급진적인 경향이었다. SL은 소련, 북조선, 중국, 쿠바, 베트남 등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 문제에서 혁명적 노선을 견지했다. 그러나 제국주의-식민지 갈등에서 혁명적 태도는 일관되게 견지되지 못했다.

1948년 이스라엘-아랍 전쟁에서 중립 입장을 취한 이후, 국제적 관점이 아니라 일국적 관점으로 한 지역과 한 나라의 계급 갈등을 바라보는 전통이 자라났다. 이것은 SL을 포함하여, 이른바 트로츠키 진영을 크게 잠식했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 제국주의 문제에 대해 일관되지 못한 태도를 자주 드러내었다. 식민지 내에서의 갈등이 단지 두 부르주아 분파나 두 반동 세력의 싸움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중립노선을 자주 취했다. 그 이후, 그러한 중립 노선은 만성이 되었다. 뭔가 어렵거나 복잡한 문제를 만나면, 이제 툭하면 중립 입장을 취한다. 대표적인 사안 몇 가지를 살펴보자(우리는 이 장기 사업을 진행 중이다.).

19918월 러시아 옐친에 맞서: ICL(국제공산주의동맹, SL의 후신)

1993년 모스크바 쿠데타: IBT

20112월 리비아, 4월 시리아: ICL. IBT, IG(인터내셔널리스트 그룹, 1996SL에서 분립한 조직)

2013년 이집트: ICL, (IBT), IG

2016년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ICL. IBT, IG

2016년 터키: ICL. (IBT), IG

2016년 브라질: ICL. (IBT)

* * *

사물의 진화 과정에서 등장한 인간 사회는 가장 높은 수준의 복잡계이다. 혁명 운동은 그 가장 높은 수준의 사물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그 변화 과정에 개입하는 행위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사회 변화에 개입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틀이다. 그리하여 지배계급의 압력에 버텨야 마르크스주의를 견지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의 발전과 혁명을 흑백논리와 사칙연산만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사물의 연관성, 사물의 끝없는 변화 등 변증법의 기초를 이해하지 못한다. 대상 사물의 본질을 자기가 이해하는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왜곡한다. 이것은 또 다른 관념론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년간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RR의 문제가 그것이 압력의 결과 때문이든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하려는 지적인 성실성의 부족 때문이든, 더 이상의 대화는 생산적이지 않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이 대화를 통해, 이 시대 가장 중요한 사안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이 장차 국제 혁명당을 건설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0914

볼셰비키그룹

?

  1. IBT로부터의 분립과 혁명 사상의 연속성: ‘영미 국수주의’로부터 레닌-트로츠키 혁명사상을 방어하자!

    Date2021.01.02 CategoryIBT로부터의 분립과 혁명적 연속성 By볼셰비키 Views1063
    Read More
  2. 이집트, 터키, 브라질 등 주제 IBT 내부 논쟁에 제출한 문서들 (2013~2017년)

    Date2021.01.03 CategoryIBT로부터의 분립과 혁명적 연속성 By볼셰비키 Views155
    Read More
  3. IBT의 정치적 파산과 붕괴 (2018년 10월 28일)

    Date2021.01.03 CategoryIBT로부터의 분립과 혁명적 연속성 By볼셰비키 Views155
    Read More
  4. 이란, 민족주의, 제국주의 (2018년 5월 29일)

    Date2021.01.03 CategoryIBT로부터의 분립과 혁명적 연속성 By볼셰비키 Views112
    Read More
  5. 1979년 이란 ‘혁명’ 성격 요약 (2017년 7월 4일)

    Date2021.01.03 CategoryIBT로부터의 분립과 혁명적 연속성 By볼셰비키 Views142
    Read More
  6. BT 분파의 탈퇴서에 대하여 (2018년 10월 7일)

    Date2021.01.03 CategoryIBT로부터의 분립과 혁명적 연속성 By볼셰비키 Views168
    Read More
  7. 브라질 RR그룹과의 토론: 제국주의, 민족해방 그리고 연속혁명

    Date2021.01.07 CategoryIBT로부터의 분립과 혁명적 연속성 By볼셰비키 Views35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