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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국가(소련/중국/북한 등)의 사회성격
2019.11.11 17:50

노동자 민주주의와 소련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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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민주주의와 소련 경제

 

[역주] 1973년 발표된 스파르타쿠스동맹의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명석한 선전가 조지프 시모어는, 작성 당시까지의 소련 경제를 통시적으로 살피며, 노동자국가의 경제 운영과 그 방어에 노동자 민주주의가 왜 중요한지를 상세히 논증했다.

 

<차례>

흔들리는 성장기제

경제개혁 대 정치혁명

소비와 계획

가격과 국가지출비용 조달

투자

임금

농업과 농민

제국주의 열강과의 경제적 관계

중국-소련의 경제적 단결을 위하여

 

* * *

국가 차원의 계획, 시장, 소비에트 민주주의, 이 세 가지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이행기 경제의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다.”트로츠키(Opposition Bulletin #5, 1932)

* * *

1950년대 미국의 지배계급은 소련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불길하게 여겼다. 급상승하는 소련의 경제 성장률을 따라잡는 것이 1960년 케네디 대선 캠페인의 주된 이슈였다. 평화로운 경제 경쟁을 통해 자본주의를 철폐한다는 흐루쇼프의 구상은 관료주의적 유토피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지배계급은 의심의 여지 없는 소련 경제의 역동성을 정치-군사적 위협으로 간주했다. 오늘날, 소련 경제에 대한 미국 지배계급의 태도는 180도 바뀐 것으로 보인다. 소련의 경제 성장은 단기적으로는 수출수요 창출로서, 장기적으로는 소련 사회 부르주아화(bourgeoisification)의 원동력으로서 반갑게 여겨지고 있다. 물론 소련이 서구 자본주의에 곧 항복할 것이라는 믿음은 희망사항 즉, 부르주아 허위의식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소련 경제가 역동성을 잃었으며 어려운 시기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련 경제의 변동은 소련 경제에 대한 미국 부르주아지의 입장 변화에 단지 부분적으로만 영향을 주었다. 오히려 이 변화는 미 제국주의와 소비에트 블럭 사이에서 발생한 전반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에 가까웠다. 결정적 변화는 60년대 초의 중소분쟁에서 비롯되었다. 중소분쟁은 가장 아둔한 부르주아 정치인조차도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민족적 한계에 봉착했으며 민족적 이익을 위해 공산주의의 이익을 희생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 같은 소박한 부르주아 철학자들이 민족주의가 공산주의보다 강했다.’라면서 입방정 떨기 시작했다. 미국 지배계급은 소련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을 타국 스탈린주의 관료집단과 싸우도록 부추겼다. 1960년대 말-70년대 초의 제국주의 국가 간 경쟁의 재개는 미국 지배계급이 다른 열강에 맞서기 위해 소련과 일시적 동맹을 맺도록 했다. 따라서 최근 미소무역이 세 배로 증대된 것은 순수한 상업적 이득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경제공동체(Common Market)가 소련과의 대규모 무역을 통해 취하던 정치적 우위 잠식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Khruchev Lenin.jpg

임무는 정해졌고, 목표는 명확하다. 동지들! 일하자!

흐루쇼프, 1961년


흔들리는 성장기제

미국 지배계급이 소련 경제를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것은 실제로 오늘날 소련 경제가 평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던 50년대 소련의 경제 성장률(연간 10.8%)60년대 6.5%로 하락했다(Slavic Review, April 1966, and U.N. Economic Bulletin for Europe, 1970). 이처럼 상대적으로 부진한 지표는, 흉작으로 미국에서 막대한 곡물을 수입한, 최악의 두 해(1963년과 1972)에 두드러졌다. 60년대 소련 경제성장률은 드골의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일본보다는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성장률이 급격히 하락하자, 1970년쯤에는 미국을 추월하겠다는 흐루쇼프의 허세는 브레즈네프-코시긴 지도부에게 확실히 당혹스러운 것이었고, 현 지도부가 규탄해야 할 전임자의 적지 않은 과오가 되었다. 의미심장하게도, 이런 문제들을 놓고 고심했던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이제는 일본이 미국을 언제 앞지를 것인지를 예측하느라 바쁘다.

소련 경제의 급격한 둔화는 1958년 흐루쇼프의 대대적 개혁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흐루쇼프가 농업에서 수립한 무모한 계획이 브레즈네프-코시긴 지도부의 공격 목표가 된 이래, 흐루쇼프 농업정책의 실책이 지나치게 과장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루쇼프의 농업정책은 소련 경제의 약한 고리를 드러냈으며, 관료적 주관주의가 어떻게 계획경제를 망가뜨리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흐루쇼프는 농업장비 독점을 통해 집단농장을 통제하려는 스탈린의 시도였던 기계트랙터사업소(MTS) 폐쇄에 착수했다. MTS의 장비들은 비싼 가격에 집단농장에 매각되었다. 이제 집단농장들이 충분한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고 여긴 관료집단은 농업장비 생산을 대폭 줄였다. 그리고 결국 흐루쇼프는 소련 농업의 작물과 지리적 기준을 하룻밤 사이에 바꾸어 놓는 결정을 내렸다. 옥수수는 사료용 작물이 되었으며 북부 지방에서 재배되었다. 그것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곳에서 말이다. 밀농사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시베리아 처녀지에까지 확장되었는데, 이 계획은 제정 러시아 관료들이 검토했다가 부적절한 것으로 판명되어 폐기처분한 것이었다. 마침내, 흐루쇼프는 농민들이 개인 소유 텃밭에서 적게 일할수록 집단농장에서 많이 일할 것이라는 고전적 스탈린주의 관점에 기초하여 개인 소유 텃밭과의 전쟁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보다 열심히 일하는 농민들은 도시로 달아났으며, 숙련된 일꾼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모든 요인들의 결과로서, 소련 농업의 채산성은 1959~1962년 사이의 인구 증가를 간신히 따라잡았으며, 1963년에는 1958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흐루쇼프의 지위도 1958년 그의 지위보다도 떨어지고 말았다.

주목받은 것은 흐루쇼프의 농업정책이었지만, 산업계획에서의 변화가 훨씬 더 중요했다. 1958, 흐루쇼프는 제15개년 계획 시행 이래로 경제계획상 가장 근본적 변화에 착수했다. 전국적인 산업부처에 의한 관리는 지역 계획으로 대체되었다. 그리하여 1962년 흐루쇼프는 국가계획위원회(Gosplan)의 기능이 그저 다양한 지역들의 계획을 조율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었다.(Pravda, November 20, 1962). 한편으로 이 지역주의적 변화는 중앙계획당국에 대한 지방 당간부층의 승리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다(같은 시기 중국에서 이와 비슷한 갈등이 대약진 운동 전야에 있었는데, 훨씬 더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지역적 계획으로 운송비는 절감되었지만, 그 시스템은 이전 중앙 계획보다 질적으로 형편없었다. 지역주의는 전국적 노동 분업과 규모의 경제가 가져다주는 이점을 걷어차 버렸다. 당연하게도 지역 간에 소규모 생산단위의 중복 현상이 나타났다. 지역계획당국은 자치·지역이기주의 경향을 빠르게 드러내었다. 동향 기업을 위해 타지역 기업과의 계약을 파기한 기업 스캔들이 소련의 신문지면을 도배했다. 설상가상으로 지역 당 간부들이 경제계획기구에 함부로 개입하였다. 1959~64년 소련 경제성장률을 1950~1958년 성장률의 2/3 수준으로 하락시킨 주된 요인은 바로 지역주의였던 것이다.

60년대 초 소련 경제의 약점과 실패는 흐루쇼프 몰락의 핵심 요인이 되었으며, 브레즈네프-코시긴 지도부가 경제정책상 대대적 변화에 나설 것을 요구하였다. 1965년에 도입된 이 변화는 이후 소련 경제계획의 틀이 되었다. 농업정책에서 흐루쇼프의 텃밭에 대한 전쟁은 역전되어서, 농민 소득은 어느 정도 늘어났고, 흐루쇼프의 기술적-지리적 곡예와는 정반대의 보수적인 농업정책이 추진되었다. 지역 계획은 철폐되어 예전의 행정시스템이 거의 온전하게 복원되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내부 조직과 생산 조절에 대한 기업 관리자의 통제력이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가격 체계는 기업 수익 증대를 위해 바뀌었다. 이렇게 수익을 낸 기업들은 처음으로 수익을 운용자금과 투자비용으로 지출하게 되었다(이전에는 그 비용을 중앙에서 지불했었다). 한편으로 흐루쇼프의 몰락과 코시긴의 부상은, 관리자들이 당 간부에 대해 거둔 승리이기도 했다.

1965~68년 동안 경제사정이 크게 호전되었다. 그러나 1969년은 소련 경제의 문제점이 흐루쇼프의 무모한 계획보다도 훨씬 심화되어 나타난 좋지 않은 해였다. 1969, 광업·철강·화학·철도·농업 등 주요 산업에서 목표한 생산량을 달성하지 못했다. 1965개혁의 내적 모순은 1969년까지 나타났다. 특히 1965년의 조치들은 생산재의 계획 생산은 유지하되, 투자금융을 부분적으로 탈()집중화했다. 따라서 투자수요는 곧 공급을 초월하게 되었고, 다수의 미달성 프로젝트들이 경제를 압박했다. 1969년 이래, 1965개혁과 결부된 잘못된 투자 계획은 소련 경제가 겪는 문제들의 주된 원천이 되었다. 코시긴은 1973년 계획의 목표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정의 분산, 건설기간 지연, 미완성 건축물의 과도한 증가가 건설업이 겪고 있는 주된 약점들이다루블화로 환산된 미완성 건축물 비용은 1961245억 루블에서 1972614억 루블로 늘어났다. 1973년 계획에서 소련 국가계획위원회를 비롯한 각 부처들은 신규건설을 줄여야만 한다.”Planovoye Khozyaistvo, Nov. 1972

소련 경제는 1970년에 되살아났다. 그러나 1971년 성장률은 1/3 가량 줄어든 6%로 떨어졌고, 1972년에는 다시 4%로 하락했는데, 이것은 1963년만큼이나 좋지 않은 실적이었다. 농업생산량의 하락 외에, 산업과 주택건설 분야에서도 목표 생산량을 크게 미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가스, 공작기계, 경공업용 기계설비, 경공업, 목재, 제지 분야에서도 계획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Pravda, January 30, 1973).

소련 경제의 역사적인 고성장의 밑바탕에는 두 가지 핵심요소가 있었다. 하나는 총생산량의 많은 부분(30%)을 공작기계, 야금, 전력에 재투자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 최고의 훈련된 노동력을 길러내는 최고의 기술교육 시스템이다. 소련의 투자 성향과 교육 시스템은 전과 같았지만, 예전 공식들이 더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투자 대비 산출량, 1인당 생산성 증가 수준이 1950년대의 그것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총생산성 저하는 세 가지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노동의욕의 현격한 저하, 기술진보의 쇠퇴, 계획기구 효율성의 총체적 하락. 노동의욕의 변동을 측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잦은 결근을 시베리아 유형으로 다스리는 강성 스탈린주의 요법을 부활시킨 1970년의 가혹한 노동규율 도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진보 수준도 계량화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1970년 이름 높은 소련의 물리학자들이 코시긴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는데, 내용인즉 소련과 미국의 기술격차가 이전보다 더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서한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미국과 우리의 격차는 경제의 가장 혁신적 부문에서 가장 큽니다. 우리는 석탄 채굴에서 미국을 앞서고 있지만, 석유, 가스, 전기 분야에서 뒤처져 있습니다. 화학은 10년 뒤처져 있으며, 컴퓨터 공학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뒤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Le Monde, April 11, 1970

처음으로 소련의 경제문헌들이 소련식 계획경제 하에서의 시설노후화, 설비개편 매커니즘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들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50년대 후반 이후, 관료집단의 한 분파는 스탈린 치하에서 발전시켰던 중앙계획이 경제성장의 근본적인 장애물이 되었고 어떤 형태로든 탈중앙집중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0년대 초반 이 경제 논쟁(리베르만 교수와 관련하여 유명하나 다소 오해가 있는)이 뜨거웠다. 1965개혁과 그것의 성공으로 경제 논쟁은 잠잠해졌다. 그러나 1969년 이후 심각한 경제적 문제들로 인해, 경제정책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다시 제기되어 관료집단을 뒤흔들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향후 몇 년간 소련 경제정책은 대전환을 맞을 것이다. 그 변화가 몰고 올 최초의 파장은 이미 들이닥쳤다. 경제행정의 기본단위가 개별기업에서 복수사업체의 조합(corporations)’으로 이전되었다는 최근의 발표와 더불어 말이다. 관료집단은 이것이 투자에 대한 중앙통제를 강화할 것이고, 크고 유연한 조합들이 극히 보수적인 공장 관리자들보다도 기술적으로 역동적일 것이라고 믿을 것이 틀림없다. 조합은 옛 스탈린주의 사무처와 상대적으로 자율적이었던 1965년 이후 기업을 절충해 놓은 것이다. 그것은 둘의 가장 안 좋은 측면들을 결합할 것으로 보인다. ‘조합관리자들이 현재의 기업 관리자에 비해 중앙계획당국에 대해 덜 이기적이고 덜 무책임하리라고 믿을 근거는 없다. 그리고 조합들이, 스탈린의 기구들, 흐루쇼프의 지역위원회 혹은 다른 상위 관리기구보다, 산업 영역에서 효율적으로 기능할 것이라는 믿음 역시도 근거 없어 보인다. 심지어 소련 관료집단도 그들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이 행정기구의 끊임없는 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경제개혁 대 정치혁명

탈집중화 논쟁은 지난 15년간 소련 경제의 취약함과 실패로 자극받아 일어났지만, 이 논쟁 그 자체로서는 소련 관료집단을 형성하는 두 그룹, 일선 관리자들과 그들 위에 있는 행정 관료들 사이의 갈등을 반영한다. 행정 관료들은 최소한의 자원을 투여하는 생산기준 충족을 원한다. 반면에 일선 관리자들은 가능한 한 최소한의 노력으로 계획의 요구를 충족하고자 한다. 따라서 일선 관리자들은 계획의 정신과 사회복지가 사업 성공의 관료적 기준과 충돌할 때마다 의식적이고 체계적으로 전자를 희생시킨다. 이 경향은 생산역량을 실제보다 축소 발표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래야 계획을 쉽게 달성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실제 필요량보다 가능하면 많은 투자재원(1965년까지, 상환하지 않아도 되는 국가보조금으로 충족된)을 끌어오려는 경향, 생산물의 질을 희생시키면서 공식적 생산목표에 어영부영 맞추는 경향이 생겨났다.

리베르만 구상 그리고 그와 유사한 방책들이 기업 관리자들의 출세를 위한 부정직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관료집단의 모든 대변인들은 부정직이 모든 사물의 본성이라고 여겼다. 그 유명한 리베르만 구상의 동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내놓은 예측이 실제 능력보다 훨씬 낮다면, 어떻게 기업에 계획수립을 맡길 수 있겠는가? 높은 수준의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 기업은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과도한 자본투자와 기계도입 요구를 멈추고, 불필요한 예비자원 축적을 중단하고, 기존 설비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기업에 이익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 지금은 기업들이 모든 잉여를 거의 자유롭게 비축하고 있지만, 새로운 시스템 하에서 기업은 성과급 삭감을 통해 비용을 줄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낮은 목표수량을 할당받으려는 기업의 투쟁은 근절될 것이다.”Pravda, September 9, 1962

다음은 코시긴이 생각하는 1965개혁의 동기이다.

현재는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고, 국가로부터 자본을 조달받는다. 기업 관리자는 기업의 재생산 비용 또는 추가적 자본투자가 얼마나 효과적일지를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투자된 자본을 상환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New Methods of Economic Management in the USSR, Moscow

흐루쇼프 같은 고위급 인사도 운영관리자들이 구제불능 수준에 도달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우리가 MTS 책임자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고, 우리가 그에게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그것이 늘 먹혀들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징계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Cited in New Directions in the Soviet Economy, Washington, D.C.)

탈집중화 논쟁 이면의 객관적 동학은 다음과 같은 기본적 문제들로 환원된다. 관료집단 통치 하에서 경제계획은 필연적으로 기업 관리자의 자원낭비를 낳는다. 위로부터의 구체적 지침으로 이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일관성 없는 계획을 야기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선 관리자를 시장 법칙에 복종시키고자 하는 강력한 경향이 생겨난다.

우리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스탈린주의 통치 틀 내에서 탈집중화에 반대하는 이유는 좁은 의미에서의 경제적 효율성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관료체제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자율적인 국영기업의 공장 관리자는 자본주의 기업 관리자와 비슷한 상황에서 업무를 수행한다. 그의 수입과 사회적 지위는 시장을 다루는 그의 능력에 달려있다. 저렴하게 구입하고 생산하여, 비싸게 파는 것 말이다. 그는 곧 그의 기업이 축적한 부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할 것이며, 부의 증대에 제약을 가하는 모든 조치에 반대할 것이다. 그는 독점적 이익을 추구할 것이며, 대외무역에 대한 국가통제를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선진기술을 습득하고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 말이다. 관료집단 통치 아래 시장 사회주의의 장기적인 경제적 효과는 유고슬라비아가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 자체로는 자본주의를 향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런 조치는 관료집단 내부에서 자본주의 복귀 찬동 세력의 성장을 낳을 것이다.

그리하여 경제 대논쟁은 소련 노동자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지만, 모두 용납될 수 없는 것들이다. 현상 유지는 독단적이고 낭비적 결정을 내리는 맹목적 관료주의를 의미한다. 한편 탈집중화는 그것이 미시적 효율성을 가져올 수 있을지언정, 경제를 시장의 무정부성에 종속시킬 것이며, 관료집단 내 자본주의 복귀 경향을 강화시킬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탈집중화론자들과 현상유지 옹호자들 사이의 대립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각양각색의 관료주의적 경직성과 무정부성은 스탈린주의 통치의 필연이다. 노동자 정치혁명 외에 관료주의를 극복할 대안은 없다. 단기적 효율과 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장기적 사회 효과라는 측면에서도, 노동자 민주주의는 건강한 소비에트 계획경제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소비에트 민주주의 복원으로 경제 문제 모두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노동자주의적 환상일 것이다. 고립에 직면한 소련 노동자국가의 근본 문제는 우선적으로, 관료집단 승리의 객관적인 토대로 작용한 궁핍에 있었다. 궁핍은 어떠한 경제정책을 시행하더라도 갈등과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계획경제 하에서조차도 정보수집에 있어 현실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경제전망은 필연적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제나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는 의미에서의 완벽한 경제계획이나 경제정책은 있을 수 없다. 노동자의 사기저하를 막고, 관료주의적 자원 남용을 막고, 자본주의 복귀 경향을 억제하기 위하여 노동자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소비와 계획

궁핍이 부과한 전반적 한계뿐 아니라, 소련의 계획경제가 인민들의 소비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측면에서 소련 경제는 특정 상품의 공급부족과 암시장의 만연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소련 상점에는 헐값에도 처분할 수 없는 저질 재고가 만성적으로 쌓여 있다. 소련 계획경제는 대중들이 원하는 양질의 소비재를 생산할 수 없다. 소련 농업의 후진성은 도시 노동자들의 매해 식량 소비에 심한 기복을 가져온다. 식량 소비가 소련 예산의 30%를 차지하는지 40%를 차지하는지 여부는 다른 소비재 수요에 큰 차이를 낳는다. 현재 소련 경제계획의 효율과 전반적인 생산성 수준을 감안할 때, 소비재 생산패턴은 장기적 상세 계획이 아니라 시장 수요의 변화에 맞추어져야 한다. 장기 계획은 투자, 군비지출, 주택, 교육, 의료 등에 한정되어야 한다.

소비재 생산의 전반적인 패턴은 수요조건이 아니라 소비재 산업의 설비구조 즉, 계획된 투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빵을 방직기로 굽거나 면직물을 오븐으로 만들 수 없으니 말이다. 투자 계획 속에 내재된 소비재 생산 계획 이외에, 앞으로 1년 혹은 2년 동안 키에프에서 판매될 우의나 레닌그라드에서 판매될 전구의 수량까지도 미리 예측하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헛된 일이다. 그런 것은 시장에 맡기면 된다. 현재의 소비재 생산은 시장에 의해 조절되어야 하지만, 소비재 산업에 대한 투자는 계획된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데, 수요의 변화는 일반 소비재 그룹들 사이에서보다는 그룹 내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후라이팬에 대한 냄비의 수요 또는 스웨터에 대한 셔츠의 수요는, 주방용품에 대한 의복의 수요보다 훨씬 심한 변동을 일으킨다.

소비재 생산 패턴을 시장수요에 맡기는 것이 곧 개별기업의 자율성 확대는 아니다. 시장의 역할 증대가 곧 기업경영진의 독자성 증진과 동일하다는, 일관된 그리고 그릇된 관점이 소련의 경제 문헌 속에서 제시되었다. 이것은 이른바 경제 대논쟁때문이었는데, 이것은 소련 인민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자원을 효율적으로 쓸 방법을 찾기 위한 논쟁이 아닌, 관료집단의 두 분파 사이에서 벌어진 권력투쟁이었다. 소련의 소비재 생산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중앙집중적 통제 때문이 아니었다. 경직되고 인민의 욕구에 둔감한 것이 문제였다. 노동자 자주관리가 시행되는 상황에서조차도 공산주의자는, 개별기업들과 최종소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 즉, 원자화된 경쟁이 생산을 결정짓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원자화된 경쟁은 기득권을 창출하고 독점의 폐해를 낳으며, 특히 노동계급으로 하여금 부의 축적을 우선시하는 협소한 관점을 가지도록 만든다.

소비재 생산은 기업과 최종소비자 사이에서 노동자국가의 공공이익을 대변할 중앙유통청(central distributive board)’이 통제해야 한다. 중앙유통청은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일단 유관 공장들에게는 특정 상품을 마진이 남지 않는 가격을 책정하여 생산하라고 지시해야 한다. 만약 원가와 판매가가 동일한 상황에서 공급부족이 발생했다면, 유통청은 공장들에 생산량을 늘리라고 명령해야 할 것이다. 만약 재고가 생겼다면, 유통청은 생산량을 줄일 것을 명령해야 할 것이다. 만약 생산량의 조절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면, 시장을 원활하게 작동시키기 위하여 가격을 일시적으로 높이거나 낮출 수도 있을 것이다. 중앙유통청은 각각의 기업들이나 소비자들보다도 미래의 수요와 공급조건을 예측하기에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데, 이 또한 중앙유통청이 갖는 장점 가운데 하나이다.

만약 소비재 생산이 변동하는 시장 요구에 따라 좌우된다면, 동일한 법칙이 생산재에까지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공급체계는 소련 경제계획의 참상 가운데 하나이다. 공급계획은 말 그대로 각 기업 간의 수백만 건의 연간 계약으로 구성된다. 이 시스템의 복잡함은 공급계획이 완전하게 이행될 수 없도록 만든다. 실제로 어느 성공한 소련 기업경영인이 가진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물자가 정말 계획대로 오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 공급체계는 관료집단의 부패를 낳는 주된 요인이다. 계획대로 물자를 공급받기 위하여 기업 관리자들이 물물교환, 정치적 연줄, 공공연한 뇌물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획된 납품이 실제 이행되도록 보장하기 위해 이른바 해결사(pusher)’라는 불법적인 직업이 등장했다. 현재의 계약 공급체계는 중앙공급청(central supply board)’으로 대체되어야 하며, 이 기관은 중앙유통청과 비슷한 원리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 공급청은 관련 기업들에게 변화하는 다른 기업들의 공급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특정 상품 생산을 지시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생산재 가격은 그것의 생산비용과 동일해야 한다. 물론 이 법칙은 심각한 공급부족 혹은 초과생산에 직면하여 완화될 수 있다.

민주적 노동자국가는 소비재 분배의 주체를 국가에서 소비자 협동조합으로 바꾸기 위해 힘써야 한다. 소비자 협동조합은 중앙유통청의 주요 거래처가 될 것이다. 대중을 경제계획에 끌어들이는 정치적 가치는 논외로 하더라도, 상품의 질을 희생시키고 양의 최대화를 선호하는 스탈린주의적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소비자 협동조합이 필요하다. 소련의 눈부신 생산량 수치는 형편없는 상품 질로 인해 흠집 나버렸다. 소련 관리자들은 수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계획을 시행한다. 따라서 산출량이 개수로 측정되는 경우 가장 작은 상품만이 생산된다. 산출량이 중량으로 측정될 경우, 쓸데없이 무거운 것이 생산된다. (소련의 가정에서 흔히 사용되는 은그릇은 바벨 대용으로 쓰일 수 있다.) 공장 관리자들과 이들의 상급자들은 소련 대중의 이익에 역행하는 현 실태를 잘 알고 있다. 코시긴은 이 문제를 직설적으로 언급했다.

경험한 바에 따르면 전체 생산량지수는 국민경제와 대중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품 생산 동기를 기업에 부여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것은 품질 향상에 제약을 가하는 듯하다. 우리 기업들이, 소비자들에 외면 받아 재고가 되는, 질 낮은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New Methods of Economic Management in the USSR, Moscow

그러나 대중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있으면서, 인민의 필요에 얼마나 잘 부응했는지가 아니라 자의적이고 일관성 없는 성공기준에 따라 경제관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관료 통치의 특징이다. 노동자의 기업 통제와 소비자협동조합의 분배 개입은, 인민의 필요가 아니라 그럴싸한 수치를 위해 생산하는, 스탈린주의의 고질적 관행을 뒤엎을 최선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가격과 국가지출비용 조달

자본주의에서나 현재 소련경제 체제에서나, 소비재 가격책정 그리고 투자금과 국가재원 조달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투자는 고정자본비율(, 이윤율)에 인건비를 더한 가격으로 이루어진다. 국가지출을 위한 재원은 세금, (특히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주로 판매세로부터 조달된다.

소련에서 투자 및 모든 형태의 국가지출은 주로 각각의 상품에 차등 적용되는 판매세에서 충당되었다. 1965년 이전에는 기업 이익에 부과된 세금이 국가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작았다. 기업 수익은 상품 판매가격이 인건비와 원자재 구입비를 합산한 것보다 소폭 상승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1965년 이후, 제품판매로 얻은 기업 이익이 국가세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보다 커졌다. 또한 1965년 이후 기업들은 그들의 세후 수익을 재량껏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노동자 민주주의의 필수조건 중 하나는, 정책의 손익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경제정책이 충분히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가격-세금 재무 시스템은 너무 복잡하고 제멋대로여서, 관료집단 자신과 어용 이론가들까지도 혼란스러워 한다. 소비재 재생산 비용 조달과 투자, 사회복지, 국방 등에 지출할 재원확보 사이에 엄격한 구분이 있어야 한다. 소비재는 원가(마르크스주의 용어로 고정자본+가변자본에 해당하는 임금+원자재 구입비+기타경비)에 판매되어야 한다. 모든 국가지출은 소득세의 징수를 통해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이 시스템 하에서 처음으로 소련 인민들은 그들이 소비하는 상품의 원가가 얼마인지, 투자재원, 군비지출, 교육 등으로 이전되는 생산물과 수익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시스템은 국가예산에 모든 투자자금을 집중시키는 이점도 가지고 있다.

<계속>

투자

임금

농업과 농민

제국주의 열강과의 경제적 관계

중국-소련의 경제적 단결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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