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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출처 – 국제볼셰비키그룹(IBT)


국제항만창고노동조합(ILWU)의 투쟁



<차례>

국제항만창고노동조합 노동자들이 계급투쟁 강령을 내건 후보를지지하다

공산주의자들의 노동조합 전술

전투적 항만 노동자의 강령



국제항만창고노동조합(ILWU) 제 10지부의 노동자들이

계급투쟁 강령을 내건 후보를 지지하다


** 이 글은 [노동자 전위(Workers Vanguard)] 제 61호(1975년 1월 31일자)에 실린 기사이다. [노동자 전위]는 미국의 스파르타쿠스동맹의 기관지이다. 스파르타쿠스동맹은 1960년대와 1970년대 트로츠키주의를 기치로 국제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한 국제스파르타쿠스동맹(International Spartacist Tendency, iSt)의 미국 지부이다. 당시 iSt는 특히 미국 노동조합운동에서 이행 강령에 기초한 분파를 모범적으로 건설했었다. iSt는 1980년대 초에 트로츠키주의 노선에서 이탈하여 현재 중도주의 조직으로 남아있다. 1990년대 초 ICL(International Communist League, 국제공산주의동맹)로 조직 명칭을 바꾼 이 그룹은 특히 지도자 제임스 라버쓴(James Robertson)에 대한 개인숭배와 관료주의가 조직 운영의 방식이 된 일종의 컬트 그룹이다.


(1975년 1월 2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 항만 노동자들의 단체협상은 국제항만창고노동조합(ILWU) 지도부가 고용주 단체인 해운협회에 노동자들의 이익을 팔아먹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ILWU 제 10 지부의 집행부 선거가 최근 열렸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노동조합의 운명을 개선시킬 것 같지 않다. 제 10 지부 전체 조합원 2천4백명 중 3분의 2가 투표한 선거에서 주요 상근직책들은 ILWU 위원장 해리 브리지스(Harry Bridges)의 지지파와 반대파들이 서로 갈라먹는 것으로 끝났다.

브리지스 반대파에 대한 지지율은 지난 선거보다 약간 떨어졌다. 지난 선거에서 밀즈(Mills)와 스타우트(Stout)로 대표된 반대파 전원이 집행부서에 당선되었었다. 또한 이번 선거에는 공명선거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브리지스 지지파의 핵심 인물은 단 한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반면에 지부 지도부의 우파와 좌파 모두를 공개적으로 반대한 후보가 마지막 남은 직책에 대한 표결에서 무승부가 되었으나 다수파의 술수로 밀려났다.

제 10 지부는 지난 4년간 본조 위원장 브리지스에 대한 반대의 구심이었다. 브리지스는 ILWU의 위원장이면서 일자리를 급격히 감축하고 노동조건을 대대적으로 악화시키는 해운회사들의 자동화 조치를 인정해왔다. 최근 그는 자기 친구인 샌프란시스코 시장 조우 알리오토(Joe Alioto)와 결탁한 개발업자들에게 제 10 지부의 작업 배당권을 강제로 팔아넘기려 했었다.

지난 선거에서 승리했던 밀즈-스타우트 집행부는 브리지스에게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으나 제 10 지부를 올바로 운영하는 데에는 완전히 실패했다. 알리아토가 소유한 해운회사는 컨테이너를 부리는 자동화 거룻배를 끌고 비조합원 인력을 채용하는 행위를 일삼았다. 이에 대해 샌프란시스코 전역의 항만 노동자들은 항의성 작업거부로 맞섰다. 그러나 밀즈-스타우트 집행부는 이 투쟁을 방어하기 위해 조합원들을 결집시키기는커녕 압력에 굴복해 투쟁을 접어버렸다. 또한 최근 12월의 태평양연안항만노동조합협의회 회의에서 단체협약 기간을 6개월 남긴 시점에서 즉시 새로운 단체협약안을 승인하자는 브리지스의 요구에 굴복해 버렸다. 더욱이 ILWU 지도부가 비정규직 노동자 수백명의 조합원 격상을 막아버렸을 때 말한마디 못하고 굴복했다. 단체협약에 의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올해 정식 조합원 자격을 획득하기로 되어 있었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 조합원들은 계급투쟁 강령을 제시한 후보에게 지난 선거 때보다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스탠 가우(Stan Gow)와 하워드 키일러(Howard Keylor)는 둘이 합쳐서 무려 37년간 태평양 연안 항만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이들은 팀을 이루어 집행부 직책에 출마하여 지부의 브리지스 지지파와 반대파 모두에 대항했다.

가우와 키일러는 ILWU 집행부의 임박한 단체협약 배신행위에 저항할 것을 조합원들에게 촉구했다. 또한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을 촉구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합원 격상을 즉시 시행할 것을 주장했음은 물론이다. 또한 이 두 투사는 ILWU 지도부가 샌프란시스코 시장 알리아토와 유착하는 것을 비난하고 노동조합이 민주당, 공화당 모두와 단절할 것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노동자 정부 수립을 위한 노동자 정당의 건설을 주장했다. 가우는 전임 집행부의 일원이었는데 249표를 얻어 집행부에 재선되었다. 이것은 그에 대한 지지도가 지난 선거에 비해 상승했음을 보여주었다. 키일러는 221표를 얻어 19명의 후보에 앞서 마지막 남은 집행부 직책에 다른 후보들과 같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 역시 지난 번 선거 때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키일러는 1953년 스탁튼(Stockton) 지부 정식 조합원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63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몰아내는 노동조합의 첫 반동적 책동에 대한 반대 투쟁을 주도했다. 당시 브리지스는 자신에게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82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찍어 놓고 이들을 정식 조합원이 되기 전에 해고시키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82명 가운데 일부는 브리지스를 부르주아 법원에 고소했다. 이 움직임을 가우와 키일러는 반대했다. 결국 부르주아 국가기구가 노동조합 내부 문제에 개입하면 노동조합만이 손해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조직의 문제는 노동자들 스스로가 처리해야 한다.

가우는 1959년 제 10 지부의 조합원이 되면서 ILWU와 인연을 맺었다. 그와 키일러는 지금은 없어진 [부두노동자 승리회]라는 반대파 현장그룹의 일원이 되어 밀즈와 스타우트를 지지했었다. 그러나 이 두 투사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정직성과 좋은 의도만으로는 노동조합을 강화시킬 수 없다; 결국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강령을 가지고 배신적 지도부에 투쟁하는 가이다.

가우와 키일러는 “ILWU가 조합원의 진정한 이익을 방어하고 노동계급이 사회의 주인이 되는데 기여하는” 강령을 제시하면서 활동했다. 또한 이들은 국제노동계급연대를 촉구했다. 여기에는 피노체트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칠레의 혁명적 노동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칠레로 가는 화물의 선적 거부, 미국의 농업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작업 거부 등이 포함되었다. 이들은 해운회사에 대한 보상이 없는 항만-수송 산업의 국유화와 노동자들에 의한 항만 통제를 요구했다.

또한 이들의 연합 강령은 노동조합에 뿌리를 둔 노동자 정당의 건설, 친자본가적 노동조합 관료들의 축출 등을 위한 투쟁을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강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밀즈-스타우트 현장그룹의 브리지스 고소 움직임을 비난했다:

“단체협약에 의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식 조합원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이 브리지스의 눈밖에 났다고 해고되고 브리지스 자신이 작업배당권을 개인 업자에게 팔아넘기는 행위 등은 노동조합 내부에서 해결할 문제이다. 부르주아 정부가 개입하도록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노동조합의 약화를 가져온다. … 정부에게 노동조합의 문을 열어 주는 것은 정부가 우리를 분쇄하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과 같다. ILWU와 모든 노동자들의 최대의 적은 자본가 정부이다.” — “ILWU를 방어하고 브리지스의 1975년도 단체협약 배신행위를 막아야 한다,” 1974년 12월 31일

새로 선출된 집행부 임원들은 재빨리 손을 써서 하나 남은 집행위원 자리를 같은 득표율을 기록한 키일러와 다른 후보들이 차지하지 못하게 막았다. 통상 5개의 상근직(위원장, 사무장-회계감사, 수익사업부장 등)은 집행위원에 겸해서 출마하여 당선된 후보들이 차지한다. 상근직 임원들이 집행위원을 겸하기 때문에 상근직과 집행위원 모두에 선출된 후보는 집행위원 득표가 다음으로 많은 다섯 명의 후보들에게 집행위원직을 양도한다.

그러나 과거에 이 관행은 상근직 임원들의 관료주의적 술책에 다양하게 이용되었다. 이번에는 마지막 한명의 집행위원을 선출하기 위해 집행부는 결선투표를 실시해야 올바랐다. 그러나 이 대신 부위원장을 집행위원회에 출석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하여 제 10 지부 상근직 임원들은 자신들의 정책에 반대하는 인물을 집행위원회에서 제거했다. 이 결과 조합원들의 대표 선출권이 침해되었다.

제 10 지부의 위원장은 래리 윙(Larry Wing)이 되었는데 지난 집행부에서 수익사업부장이었다. 그는 지난 9월 브리지스를 지지하는 깡패들에 의해 잔인하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 깡패들은 지부 작업 분배소 열쇠를 넘겨달라고 요구하면서 그를 폭행했다. 샌프란시스코 시장 알리오토의 태평양극동해운회사(Pacific Far East Lines) 소속 컨테이너용 자동화 거룻배를 작업 거부하는 투쟁을 처음 승인했다가 즉시 취소한 자도 윙이었다. 제 10 지부 조합원들의 작업 거부는 거룻배 작업을 거부당한 스탁튼 지부와 함께 하는 연대투쟁이었다. 이 연대투쟁을 신임 지부위원장이 취소시킨 것이었다.

밀즈-스타우트 전임 집행부에서 가장 전투적인 인물이라는 평판 때문에 윙은 850표를 얻어 후보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다. 그와 대결한 브리지스 지지자는 753표를 얻는데 그쳤다. 그러나 윙이 노동조합의 강화를 위한 강령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그는 작업 거부 투쟁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을 종료시켰다. 더욱이 그는 1973년 가장 적은 시간을 할당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시키려는 당시 집행부의 움직임에 어떤 반대도 조직하지 않았다.

신임 집행부에서 지부장 윙 이외에도 수익사업부장도 브리지스 반대파이다. 그러나 다른 세명의 상근직 임원들은 모두 브리지스 지지파이다. 사무장-회계감사는 지부가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작업 분배 회관의 임금 내역에 서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평판이 자자한 브리지스 지지파 인물이 761 대 760의 단 한표 차이로 당선되어 이 직책을 맡았다. 당선자인 카알 스미쓰(Carl Smith)는 1963년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최초의 해고 행위에서 중심 역할을 했다. 그가 회관 비용에 대한 지불을 거절하면 회관의 작업분배권은 개인 업자에게 매각될 수 밖에 없다.

지부 집행위원회는 여러 분파로 나뉘어 있다. 윙에 대한 깡패들의 공격에 참여했다고 비난 받고 있는 마셜은 362표로 선출되었다. 공산당 노선 지지자로 잘 알려진 아치 브라운은 416표를 얻어 선출되었고 홍보위원회에도 복귀했다. 이 위원회에서 그는 지부의 신문을 제작-관리한다.

선거가 끝난 후 개최된 지부 회의에서 선거부정이 있었다는 소문을 의식한 듯 브라운은 실시된 지부선거가 적법하다고 확인한 선거위원회의 선거보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제스처를 부렸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 결과 그는 선거부정에 대한 소문의 진상을 파헤치려는 진지한 시도를 회피한 채 선거부정을 지적하는 “기록을 남겼다”.

어제 있었던 새로운 집행위원회 첫 회의에서 신임 집행부는 ILWU 지도부와 고용주인 해운회사 단체인 태평양해운협회(Pacific Maritime Association)가 손을 잡고 가하는 강력한 공격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결국 스스로 파산했음을 드러내었다. 서둘러 작성한 단체협약안을 강제로 통과시키기 위해 중재를 자임한 브리지스에게 태평양연안항만노동조합협의회는 항복해 버렸다. 이에 대해 고용주 연합인 태평양해운협회는 장비의 유지-보수 등의 작업을 하기로 정해진 “특수장비 운전” 인부들에게 배의 창고에서 하역작업을 하도록 명령하여 공공연히 노동조합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작업분배소에 의해 일을 할당받는 것이 아니라 단 한명의 고용주를 위해 일을 하는 “특수장비 운전” 인부들은 1966년 단체협약에서 브리지스에 의해 처음 허용되었었다.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작업분배 회관에 대한 위협에 대응하는 대신 신임 집행위원회는 20대 7의 표차로 이 문제를 ILWU 지도부에 위임해버렸다.

한편 노사 공동의 노동관계위원회는 해고의 위험에 직면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재판 일정을 잡았다. 정조합원이 될 자격이 있으며 노동계약서의 사항들을 하나도 어기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제 노동관계위원회의 권위주의적 재판정에서 왜 자신들이 해고되어서는 안되는 지를 증언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지위를 방어해주지 못하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

가우와 키일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조합원 자격을 즉시 부여할 것과 동시에 이들에 대한 해고 절차를 즉시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재정신청을 이미 준비해 놓았었다. 그러나 이들의 재정신청은 회의 안건의 맨 마지막으로 밀려났고 결국 회의가 정회되면서 논의에 붙여지지도 못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이 불법적이고 비민주적인 공격을 조합원들에게 알려 즉시 반대 투쟁이 시작되어야 한다.

선거 전에 발행한 마지막 유인물에서 가우와 키일러는 브리지스 반대파의 “전투적, 민주적” 강령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지부의 많은 형제들이 우리에게 질문했다: 브리지스 반대파인 윙, 조오지 카이, 아치 브라운 등을 지지할 것인가? 우리의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이들을 결코 지지할 수 없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브리지스의 정책에 대한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스타우트 그리고 특히 밀즈를 지지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브리지스가 깡패를 동원하고 지부의 작업분배권을 법정관리하려는 의도 등에 대해 정직하고 민주적으로 대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아치 브라운은 1963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는 특히 조합원을 배신한 기계화 및 장비현대화 협약에 자신의 명성을 모두 실어 주었다. … 그리고 “특수장비 운전” 인부를 허용한다는 조항에 완전히 반대한다는 종전의 입장에서 후퇴하여 1973년 단체협약이 체결되기 바로 전에 이들에게도 조합원들과 똑같은 노동시간을 제공한다는 결의안을 내놓았다. 오랫동안 이 지부에서 일해왔던 조합원들은 그의 배신행위들을 다 알고 있다.”

이 유인물은 계급투쟁 강령에 기초한 현장 그룹의 건설을 촉구하였다. 또한 알리아토와 같은 부르주아 정치인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작업 거부 투쟁과 같은 전투적 투쟁을 불법화시키는 고용주의 반노동자적 입법에 굴복하지 않고, 이윤을 극대화하려는고용주들의 공격에 굴복하지 않는, 노동조합 지도부를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평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싸우겠다는 선의로 투쟁을 시작한 투사들도 회사의 정책에 결국은 투항한다. 그리고 이들은 노동조합 관료들의 계급협조주의적 정책에도 투항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들이 계급투쟁 강령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우와 키일러는 이 점을 명확히 했다: 알리아토의 자동화 거룻배를 작업 거부 하는 것과 같은 투쟁을 통해 평조합원들을 결집시켜 계급투쟁 강령에 입각한 투쟁을 이끌어 나가겠다; ILWU 관료들 또는 제 10 지부의 스타우트-밀즈-윙 등과 조금도 나을 것이 없는 로스앤젤레스 지부 등 “전투적 민주주의파” 집행부에 기대할 것이 조금도 없다. 이렇게 가우와 키일러는 ILWU에 대안적 계급투쟁 강령에 입각한 지도부를 건설하는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다. 노동조합 내의 이러한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를 전복시켜 노동계급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혁명적 전위정당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공산주의자들의 노동조합 전술

항만의 계급투쟁

*** 이 글은 국제볼세비키그룹(International Bolshevik Tendency, IBT)의 기관지 [1917] 제 4호(1987년 가을)에 실렸다. IBT는 제 4 인터내셔널 재건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트로츠키주의 혁명조직이다.


우리는 7월 19일 하워드 키일러(Howard Keylor)와 대담을 가졌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항만에서 오랫동안 노동조합 활동가로 투쟁해왔다. 그는 현재 국제항만창고노동조합(International Longshoremen’s and Warehousemen’s Union, ILWU) 제 10 지부의 집행위원이며 [전투적 부두노동자(Militant Longshoreman)]의 편집자이다. 그는 30년이 넘게 ILWU에서 활동하였고 스탈린주의와 결별하고 트로츠키주의자가 되었다. 그의 투쟁 이력은 미국노동운동의 계급투쟁적 지도부 건설 투쟁사에 독특한 시야를 제공하고 있다.

1970년대에 혁명노선을 견지하고 있던 스파르타쿠스동맹(Spartacist League)의 회원으로 있으면서 키일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apartheit)에 대항하고 군부독재의 철권통치에 항거하는 칠레 노동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항만에서 여러 투쟁들을 성공시킨 주역이었다. 그는 지난 몇 년동안 항만의 여러 파업투쟁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인종분리정책으로 악명 높은 남아공 보타 정권에 대항하는 영웅적 흑인노동자들과의 대규모 연대투쟁을 두 차례나 성사시켰다. 이로써 대학교 구내에서 인종분리정책 반대투쟁을 주도하는 자유주의자들의 도덕적 운동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했다. 또한 그의 투쟁들은 노동조합에서 반동적 관료들에 반대하는 공산주의 현장그룹이 억압받는 인민의 호민관이 되어 모든 억압과 착취에 반대하는 투쟁의 구심이 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1917: ILWU에서 투사로서 살아온 역사를 먼저 살펴보자. 어떻게 노동조합에 몸을 담게 되었는가?

키일러: 시작은 아주 어려웠다. 1953년에 일용노동자로 시작했다. 노무자 파견 사무실에 서 있다가 이런 저런 일이 생기면 일을 했다.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전혀 인정받지 못한 불안한 삶이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 고참 노동조합 활동가 몇 명을 알게 되었다. 이중의 한명은 공산당원이었고 또 하나는 세계공업노동자회(역자 주: 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IWW, 미국의 조합주의 노동조합운동 단체)의 고참 활동가였다. 이들이 약간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내가 일용직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1959년이 되어서야 ILWU의 정식 조합원으로 인정받았다.


 1917: 전에는 다른 노동조합의 회원이지 않았는가?

키일러: 그렇다. 1953년 2년 동안 일했던 종이공장에서 해고되었다. 당시 노동조합 지부의
회원이었다. 제한적이나마 노동조합 일에 적극적이었다.


 1917: 귀하는 25년이 넘게 스탈린주의 노선을 견지한 공산당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트로츠키주의를 받아들이게 되었는가?

키일러: 나는 언제나 은밀한 반골이었다. 스탈린주의 좌파라고 불렀어도 무방했을 것이다. 매카시즘(McCarthyism)의 광풍이 몰아칠 때 공산당은 나름의 한계가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혁명적인 노선을 숨기려했다. 나는 이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공산당이 부르주아 또는 소부르주아 정치세력과 인민전선 연합을 체결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제 3기 스탈린주의자였으며 재교육을 통해 노선을 수정당하지 않았다.

나는 아주 몰래 소련에 대한 나름의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관료집단이 노동계급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노동계급 반대파를 탄압하는 노동자국가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했지만 공산당 지도부와의 노선 차이를 이론화할 능력은 없었다.


 1917: 그렇다면 어떻게 트로츠키주의를 알게 되었는가? 트로츠키의 저작을 읽었는가 아니면 자칭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만났는가?

키일러: 1971년과 1972년에 걸쳐 진행된 파업투쟁 당시까지는 트로츠키 저작이나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저서를 읽은 적이 없었고 트로츠키주의자를 만나지도 못했다. 이 파업에서 나는 애숴 해러(Asher Harer)를 만났는데 그는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유명한 당원이었으며 노조원이었다. 그는 지금 사회주의행동(Socialist Action)의 회원이다. 나는 143일간의 파업투쟁 과정에서 그와 함께 유인물을 제작했다. 그런데 나는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우리가 요구한 내용은 강령적으로 합당했으나 그는 한사코 노동조합 관료들의 배신행위를 비판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내가 만난 유일한 자칭 트로츠키주의자였다.

1974년 8월쯤 나는 도이처의 [무장한 예언자(The Prophet Armed)]라는 낡은 책 한권을 우연히 손에 넣게 되었다. 이것을 집으로 가지고 가서 밤새 읽었다. 그리고 다음날 도서관에 가서 나머지 2부와 3부도 읽었다. 그리고 2, 3 주일간 멍한 기분으로 돌아다녔다. 1974년 가을 스파르타쿠스동맹과 접촉을 하고 나서야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서적들을 꾸준히 읽었으며 고통스럽게 트로츠키주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1917: 결국 스파르타쿠스동맹의 회원이 되었는가?

키일러: 그렇다. 지금과 달리 당시 스파르타쿠스동맹은 노동조합 활동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스파르타쿠스동맹을 지지하는 항만/창고 투사그룹(Longshore/Warehouse Militant Caucus)의 회원이었고 1975년 4월 이 동맹의 정식 회원이 되었다.


1917: 공개적으로 사회주의 강령을 제시하면서 ILWU 제 10 지부 집행위원으로 13년째 연속으로 당선되었다. 노동조합에서 귀하의 강령에 입각하여 어떻게 지지기반을 구축하였는가?

키일러: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별개의 문제를 얘기해야 한다. 우선 집행위원에 당선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초기에는 집행위원회에 들어가려는 경쟁이 아주 치열했다. 강 위로 한참 거슬러 올라가 있는 소읍 항구인 스탁튼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거처를 옮긴 1970년에 나는 노동조합의 “신참”이었다. 그리고 나는 백인인데 샌프란시스코 항만노동자의 약 70%는 흑인이었다.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도 어려웠는데 명확히 사회주의 이행 강령을 내걸고 선거에 당선되는 것은 더 어려웠다.

1974년 12월 투사그룹(Militant Caucus)의 회원으로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제 10 지부에서 사회주의자는 곧 공산당원이었다. 그러나 노동조합 관료들이 노동자의 이익을 배신하고 고용주에게 매수되었는데 이것을 공산당이 지지하고 나섰기 때문에 공산당은 대체로 신망을 잃고 있었다. 강령을 공공연히 선전하는 우리의 정직성을 인정한 투사들이 맨 처음 우리의 지지기반이었다.
특히 적극적인 강령을 제시하고 모든 수위의 관료들을 비판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의 환심을 샀다. 이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지부의 별 볼일 없는 인물들도 본조 위원장 브리지스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파벌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반대파는
수는 많았지만 색깔이 분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명확한 정치적 색깔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달랐다.

우리는 두 파벌 바깥에서 아주 소규모의 철저히 좌익적인 구심으로 행동했다. 이런 조직은 노동조합의 오랜 역사상 있어본 적이 없었다. 특히 나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이행 강령에 기초한 명확히 사회주의 강령을 수용하면서 거의 4년간이나 함께 일했던 브리지스 반대파와 단절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이들 중에는 진짜 친한 친구들이 있었다.


 1917: 귀하는 이행 강령을 내걸고 출마했다. 그런데 영국의 노동자권력(Workers Power)그룹 등은 완전한 사회주의 강령을 제시하는 것은 “최후통첩주의”라고 비판한다. 노동자 정당방위대 또는 노동자 정부 구호 등이 현재 노동계급의 의식에 비해 너무 앞서 나간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키일러: 이행 강령 전체를 구체적 노동조합 상황에 적용시켜 제시하지 않는 것은 노동자들을 오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행 강령의 모든 측면들 또는 일부 측면들은 언젠가는 노동조합의 당면한 문제들과 연관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정치적 현실에 대해 활동가 노동자들 즉 가장 선진적 노동자들의 일부만이라도 교육시키지 않으면 노동자들을 지도할 수 없다. 심지어 계급투쟁에 입각한 방어 투쟁도 건설할 수 없다.

예를 들어, 1950년대 중반과 후반에 노동조합은 샌프란시스코의 민주당 정치에 아주 깊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하와이의 노동조합들 대부분은 너무도 민주당의 일부가 되어버려 이들이 지지한 다양한 정치연합들은 노동자들의 이익에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민주당 지지를 반대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곧바로 노동자 정부 수립 문제를 제기한다. 진지한 파업방위선 구축이 초보적 형태로나마 노동자 정당방위대 수립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과 논리는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강령을 숨기면 노동조합 내에서 사회주의 그룹을 건설할 수 없다. 강령을 숨기는 것은 언제나 대중의 후진성에 영합하는 징후이다. 노선을 명확히 제시하고 강령을 창조적으로 적용하여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문제들에 대응해야 한다. 특정 시점에 인기 있는 이행 강령의 요구들 몇 개를 선정해서 선거에 나서는 것은 사실상 이 강령의 목적 전체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 강령의 목적은 노동자들의 당면하고도 절실히 느껴지는 요구들을 노동계급 권력 장악의 필요성으로 연결-상승시키는 것이다.


 1917: 철강노조의 에드 새들로프스키나 석탄노조의 아널드 밀러 또는 [민주노조를 위한 트럭노조원 그룹] 등과 똑같이 “전투성”과 “민주주의” 강령에 기초하여 선거에 나서는 반대파 그룹들이 ILWU에 있었다. 많은 좌익 활동가들은 이들이 집행부 관료들을 반대하기 때문에 진일보한 조직이라고 본다. 노동조합 활동에서 차선책을 선택하는 이런 태도를 어떻게 보는가?

키일러: 별로 현실적이지 못한 태도이다. 현직 관료들을 쫓아낸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보통 재앙 뿐이다. 반대 그룹들을 주도하는 정직하고 선의를 가진 분자들이 있더라도 일단 집행부를 장악하면 정부의 압력, 법적 제약, 고용주의 악랄한 탄압에 직면한다. 이 장애물들을 깨뜨릴 수 있는 계급적 인식이 없으면 이들은 닉슨의 지지자인 광산노조의 밀러와 같은 운명을 걷게 된다. 이들은 또 다른 한 패의 악랄한 관료가 되어 조합원들을 억압한다.

1960년대 후반부에 브리지스 지도부에 맞서는 거대하고 광범위한 반대파가 항만노동조합에 있었다. 막 노동조합에 가입한 신참들이 이 반대파의 지지기반의 일부였다. 결국 브리지스가 은퇴하고 물러났을 때 이 반대파의 다양한 분자들이 주요 노동조합 지부 집행부를 장악했다. 그런데 이들도 브리지스의 파벌과 다른 것이 없었다. 계급투쟁의 강령에 기초한 반대 그룹을 수립하여 모든 어용노조주의의 정치적 대안으로 스스로를 정립시키는 것이 유일한 진정한 대안이다.


1917: 그렇다면 계급투쟁 강령에 입각한 현장 그룹들은 [민주노조를 위한 트럭노조원 그룹] 등과 어떻게 다른가?

키일러: 강령이 차이가 난다. 현장 그룹들이 노동조합 집행부를 장악하면 이들의 정책은 예측 가능하다. 강령에 기초하지 않은 반대파 그룹이 집행부를 장악하면 금방 기존의 색깔에서 탈피한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유일한 근거는 집행부 장악을 위한 투쟁 뿐이다. 일단 집행부를 장악하면 이들은 빈번하게 분열되거나 각각의 파벌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떡고물이나 챙기려고 아귀다툼을 한다. 아니면 냉소적이 되어 기존의 관료주의 기구에 흡수된다. 이 그룹들이 그나마 가장 잘 되는 경우는 자질구레한 것을 따지는 경제주의나 사민주의적 술수주의로 전락하는 경우이다. 계급투쟁의 일관된 강령에 기초한 반대 그룹은 노동자들의 정치적 인식을 제고시키고 이것을 위해 투쟁할 필요성을 인식시킨다. 이 강령을 사회 전체 뿐 아니라 노동조합 활동의 모든 측면에 적용시키는 방법을 배우면서 이들은 이 강령에 헌신한다.

이 강령을 통해 활동한 그룹의 개인들은 강령을 배신하거나 운동에서 이탈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탈은 금방 식별된다. 명확한 계급투쟁 강령에 기초한 투쟁의 장점은 노동자들이 주요한 사안들 또는 노동조합의 사안들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할 지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1917: 노동조합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선거에서 다른 그룹이나 개인을 지지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키일러: 미국노동조합 지도부의 심각한 타락상을 고려했을 때 선거에 나서는 개인이나 그룹에게 비판적 지지를 보내는 것도 매우 조심해야 한다. 노동조합 내의 아주 소규모 위원회조차 노동자에 대한 고용주의 통제력 또는 계급협조의 문제 등을 다루게 된다. 따라서 특정 개인이나 그룹을 지지하는 전제조건은 강령에 기초해야 한다.

실제 상황에 따라 다를 수는 있어도 우리의 비판적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특정 개인이나 그룹이 공개적으로 선언해야할 핵심 입장들이 있다. 첫째 최상층 노동조합 관료들을 지지하면 안된다. 이 나라 최상층 노동조합 지도부는 모두 노동계급의 이익을 결정적으로 배신하거나 적어도 암묵적으로 배신행위를 인정하거나 묵인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수준의 노동조합 관료들과 공개적으로 단절하고 이들을 비판할 용의가 있는 개인과 그룹 만이 정치적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우리의 지지를 받을 가치가 있다.

또 하나 절대적으로 갖추어야 할 강령적 최소 조건은 부르주아 국가로부터 노동자 운동 특히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옹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조합에 대한 고소나 노동조합 내부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상식과 관련이 있다.


1917: 또는 법원의 강제명령에 대항해야 한다는 조건도 있지 않은가?

키일러: 그렇다. 그것은 같은 문제의 또 다른 측면이다. 선거에 출마하면서 부르주아 국가기구가 강요하는 강제명령 또는 법정 명령을 거부할 필요성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는 사람은 노동자들의 이익을 지킬 수 없다. 그리고 부르주아 양대 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과 단절하는 문제가 있다. 우리는 언제나 공화당 및 민주당과의 단절 그리고 자본가들에 대한 보상없이 산업시설을 몰수하는 노동자 정부를 촉구한다. 그러나 민주당 공화당과 단절하고 노동자 정당을 수립하자고 촉구한 후보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보낸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말이지만 노동조합 선거에서 “비판적 지지”는 공동전선 전술의 적용 형태이다. 레닌은 이것을 교수형을 당할 사람에게 올가미를 씌우는 것에 비유했다. 비판적 지지의 중요한 측면은 개량주의 강령의 부적절성과 모순들을 실제 상황에서 폭로하는 것이다. 이것이 레닌이 비유한 내용의 핵심이다. 공식적 강령적으로 계급협조주의와 진정한 단절을 선언하지 않는 개량주의자를 폭로하기는 어렵다. 모든 철저한 관료들은 “전투성”과 “민주주의”를 약속하기 마련이다. 이 약속은 아주 값싼 것이다. 이것을 지지한다면 인기 있는 개량주의자를 지지하는 꼴이 된다.

문제는 항상 구체적이다. 관료주의적 지도부에 반대하는 개량주의적 반대 인물이 진짜 평조합원 운동을 주도하고 그를 지지하는 노동자들의 눈에 친자본적 어용노동조합주의에 진짜 반대하는 강령을 내거는 것처럼 보인다면 계급투쟁 분자들은 그에게 비판적 지지를 보낼 것을 고려할 수 있다. 그가 제시하는 강령의 나머지 부분들이 개량주의적 한계를 가지고 있더라도 말이다. 동시에 그를 따르는 노동자들에게 그의 강령이 노동계급의 독자성에 모순된다고 경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그가 결국 노동계급의 이익을 배신할 때 그를 지지했던 노동자들은 일관된 계급투쟁 강령에 입각한 분자들만이 진정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해 싸운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1917: 1984년 귀하는 샌프란시스코에 정박 중인 선박 네들로이드 킴벌리호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화물을 작업 거부하는 공동전선을 주도했다. 그 투쟁에 동참한 많은 노동자들은 귀하와 아주 다른 정치 노선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키일러: 그렇다. 투쟁을 시작하고 작업 거부 투쟁이 승인된 후 이 투쟁을 실천에 옮긴 위원회는 다양한 정치적 분자들로 구성되었다. 또한 노동조합 내외에서 아주 날카로운 적대적 분쟁의 당사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1917: 화물 보이코트 투쟁 11일째에 연방법원의 작업 거부 중지 강제명령이 하달되었을 때 공동전선은 분열되었다. 좀더 자세히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는가?

키일러: 지부 지도부는 당시 이 투쟁에 대해 소극적 지지와 적극적 지지를 번갈아 보냈었다. 그런데 연방법원의 강제명령이 하달되자 지도부는 집행위원회 임시회의를 소집했다. 장시간의 토론 끝에 집행위원회는 11대 5로 강제명령을 준수할 것을 결의했다. 이 토론 과정에서 공동전선은 분열되었는데 과거 공산당원, 모택동주의자, 흑인민족주의자 등은 대부분 노동조합의 관료들과 함께 투쟁 종식과 강제명령 준수를 주창했다.

지부 집행위원회는 결국 작업 거부를 끝내기로 표결했다. 당시 나는 조업을 중지하고 조합원 총회를 열어 투쟁의 계속할 것인지를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나의 제안은 표결로 기각되었다. 부두에 2천명 정도의 조합원들이 집회를 가질 경우 이것이 일종의 대중적 파업방위선을 형성할 것이고 법원의 강제명령을 성공적으로 거부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사실 노동조합의 투사들과 노동조합 외부의 지지자들이 나와 함께 파업방위선을 구축하고 작업 거부를 계속하여 법원의 강제명령을 거부하려 했다. 우리는 부두를 폐쇄시키고 한 시간동안 트럭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작업을 중지했다. 그러나 이때 스탈린주의자 공산당원들이 파업방위선을 뚫는 트럭을 호위하고 우리의 대오에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외부 지지자들에게 법원의 강제명령을 거부하면 오랜 징역형을 당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결국 이들은 경찰이 이 투쟁을 깨는 것을 도와주었다.


1917: 최근 ILWU 산하 예인선노조(Inland Boatman’s Union)가 항만에서 중요한 파업투쟁을 벌였다. 이 노조와 항만노동자들이 협력하여 파업 대체인력을 막도록 하는데 귀하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파업은 법원의 강제명령을 거부했는가?

키일러: 강제명령을 구체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았다. 다만 두 노조의 공동행동으로 작업이 정지된 3척의 거룻배를 고용주들이 오클랜드에서 레드우드씨티로 이동시켜 비노조원들을 풀어 조업을 재개했을 때 “개인 재산” 침해 행위가 일어났다. 이것은 항만노동자들의 노동 영역을 침범하고 IBU 파업을 약화시키고 깨려는 시도로 인식되었다. 그러자 항구 지역의 모든 항만노동자, 사무직 노동자, 작업 반장 등이 손을 놓고 부두로 가서 대체 인력 행위에 항의했다. 이 항의는 “불법” 행위였다. 왜냐하면 연방법에 의하면 우리의 행위는 계약 위반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항만 노동자와 예인선 노동자들이 부두로 나가 “불법으로” 대체 인력을 몰아내 버렸다.

IBU 파업에서 법원은 강제명령을 허다하게 발부하여 파업을 압살했다. IBU 및 ILWU 지도부가 번번이 강제명령에 굴복했기 때문이었다. 노동조합을 최소한 방어하는 데에도 연방법의 일부 조항들을 위반해야 한다. 이 사실을 계급의식이 투철한 투사들은 끊임없이 평조합원들에게 주지시켜야 한다. 태프트-하틀리 법은 강제명령 거부나 최소한의 작업중지 등을 모두 불법으로 규정한다.


 1917: AFL 위원장이었던 감퍼스(Gompers)와 같은 어용노조 주창자들은 노동조합이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기적으로 항만 노동자들의 이익은 실업자들을 포함한 전체 노동계급의 이익과 밀접하게 결부되어있다. 이 관계를 노동조합원들에게 어떻게 인식시킬 수 있는가?

키일러: 항만 노동자들은 협소한 부문주의에 갇혀있다. 작업의 성격상 이들은 적은 수에 비해 상당한 경제적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부두와 부두 시설들은 쉽게 장소를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히 초기 몇십년간 예인선 노동자 등 다른 해양 노동자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항만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건설할 수도 없었고 고용주들의 공격에 맞서 자신의 이익을 방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노동자 연대는 항만 노동자 역사에서 아주 풍부하게 존재하는데 지금은 기억에서 거의 잊혀져 버렸다. 그러나 계급투쟁 강령에 입각해 활동하는 투사들이 풍부한 연대투쟁 사례들을 복원시켰으며 투쟁의 모범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1934년 파업 때 파업 대체 인력이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태평양 항구들에서 배에 짐을 실었을 때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탄압을 받고 있던 칠레의 부두 노동자들은 이 화물에 대한 작업을 거부했다. 호주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항만 노동자들도 연대의 표시로 화물 작업을 거부했다. 이 국제적 지지는 파업이 승리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대대적인 샌프란시스코의 총파업 그리고 이 파업이 태평양 연안에 확대될 위험성이 결국 1934년 파업의 승리와 항만노조의 건설로 결실을 맺었다. 현재 우리는 노동조합이 조직력을 총력 가동하여 항만지역의 실업자들을 조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요구는 보통 노동조합원들에게도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초보적인 자기방어 행위이기 때문이다.

실업자 문제에 대해서는 항만의 점점 감소하는 노동자들의 숫자를 그냥 받아들이는 대신 우리는 임금 삭감 없는 교대시간 단축을 촉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그대로 보장될 뿐 아니라 실업자들도 고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행 강령이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임금 삭감 없이 전체 일의 양을 전체 노동자들의 숫자로 나누는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을 통해 실업자들을 직접 조직하는 것도 중요하다. 1930년대에 특히 자동차 노동자들을 대대적으로 조직할 때 이 전술이 채택되었다. 이것은 기억에 사라진 노동운동의 역사의 일부이다. 자동차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할 때 실업자들도 조직하지 않았다면 상황이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자동차 공장을 에워싼 파업 방위선의 많은 부분은 자동차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가까이 조직한 실업자동맹의 회원들이 직접 몸으로 만들어냈다.


1917: 역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미국 백인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발전에 가장 크게 작용한 장애물은 이 나라에 깊이 뿌리 박힌 인종주의였다. 노동조합의 사회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키일러: 사회주의자들은 문제가 존재하는 곳에서 그 문제를 맞닥뜨려야 한다. 항만노동조합도 일부 지부에서 흑인의 노동조합원 자격을 제한했다. 특히 흑인, 아시아인 그밖에 소수인종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문제에서 이 사안이 직접 제기되어야 한다. 현재 항만 노동조합에서는 이 문제가 전부 해결된 상태이다. 그러나 인종주의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노동조합을 약화시키려는 위협은 여전히 실제하고 있다.

몇 년 전 우리 지부의 흑인 노동조합원이 백인이 대다수인 교외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거기서 그는 케이케이케이 단원(Ku Klux Klan)들에 의해 직접 위협을 받고 공격을 당했다. 그 때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흑인 그룹들과 함께 대부분 항만 노동자로 구성된 정당방위대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노동조합에 제기했다. 이 투쟁에서 우리는 패배했다. 그러나 케이케이케이단과 같은 인종주의나 파시즘 그룹들의 폭력 문제를 부르주아 국가가 해결해 주도록 기대면 안된다는 교훈을 노동자들에게 교육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1917: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노동조합 관료들은 사설 경비원을 두기로 결정했다.

키일러: 그렇다. 이 노동자를 방어하기 위해 경찰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노조 관료들이 인정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승리했다. 그러나 관료들의 해결책은 그의 가옥을 보호하기 위해 24시간 사설 경비원을 배치하는 것이었다.


 1917: 마지막 질문을 던지겠다. 다가올 시기에 노동조합에 계급투쟁의 강령으로 투쟁하는 현장그룹을 건설할 가능성의 정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키일러: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단기적으로 노동조합에 계급투쟁 그룹을 건설할 규모 있는 정치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장의 계급투쟁 그룹은 전국적 차원에서 의미있는 대안세력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자발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북미 노동조합운동사의 절정기에도 이런 식으로는 계급투쟁 그룹들이 형성되지 않았다. 계급투쟁적 현장그룹을 건설하는 투쟁에 제기되는 장애물은 지금 더 극복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런 그룹들을 건설하기 위해서 노동계급 투쟁사의 힘들게 얻은 교훈들을 유지하고 발굴할 필요성이 지금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

현 지도부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투쟁을 꺼려하고 공세로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이것이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다. 평조합원들은 투쟁을 지도할 지도부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레이건의 공격에 대해 공세로 받아치지 못하고 있다.

단결 투쟁에 대한 간절한 갈증과 요구가 미국 노동자들에게는 있다. 관제사 노조(PATCO) 투쟁에서 이 점은 명확히 드러났다. 전국 차원의 총파업 또는 공항이 있는 지역 차원의 총파업만이 파업을 승리로 이끌고 레이건의 노조파괴 책동을 분쇄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보수적인 노동자들조차 나에게 말한 바 있다. 당시 이것은 노동자들이 아주 절실히 느낀 욕구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투쟁을 강제하고 요구를 제출할 수 있는 의지와 권위를 가진 정치조직이 노동조합 내부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패배를 지켜보았다.

노동계급에 진정한 유기적 뿌리를 내린 혁명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핵심 중의 핵심이다. 지금 우리는 계급 대중을 지도할 핵심 중핵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강령을 명확히 수립하는 작업을 해야한다.

지금 선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일국적 차원에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더욱더 절실히 인식하고 있다. 자본가들이 아주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노동자들은 잘 인식하고 있다. 나는 노동자들의 높은 의식 수준에 놀랐다. 자본가들이 착취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자본을 이동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지속적인 성과를 쟁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노동자들은 인식하고 있다.

노동자들 사이에는 국제연대의 필요가 아주 절실히 느껴지고 있다. 남아공, 칠레 등의 노동자들을 방어하는 요구들을 우리가 제기했을 때 항만 노동자들은 즉시 이해했다. 그리고 소규모의 상징적인 투쟁이나마 국제연대투쟁의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노동자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나온다는 것을 나는 부두에서 직접 경험했다.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최종적인 결론은 단 하나의 문제로 귀착된다: 노동계급 지도력의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


전투적 항만노동자의 강령

*** 이하의 글은 하워드 키일러가 [투사그룹(Militant Caucus)]을 건설하여 노동조합 투쟁을 주도하는 가운데 1987년 제출한 강령이다.


 1. 우리의 일자리와 생존권을 지키자 — 8시간 임금에 6시간 교대 근무제를 실시하라. 특근은 인정할 수 없다. 작업 하나마다 노동자 한명씩을 고용하라. 한가지 작업에 한명의 노동자가 배치되어야 한다. 주급을 보장한 계획을 제시하라. 인플레에 연동된 임금을 확실히 보장하라. 거룻배, 선적, 하역 작업에 대한 비노조원 투입 반대 투쟁을 선박노동자 등과 함께 조직하자. 고용주나 조합임원과 정실이 있는 자가 일도 하지 않고 임금을 챙기는 일은 막아야 한다. 노동조건의 개선이 불가능한 장기 계약에 반대한다.

 2.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작업 분배 회관을 방어하자 — 컨테이너 선박에도 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라. 비정규직 “작업조” 파견은 안된다. 해운회사가 투입하는 특수장비 운전 인부들도 모두 노동조합의 작업 분배 회관에서 고용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작업 분배권, 고령 및 장애 노동자 등을 방어하기 위해 작업을 중지하자.

 3. 단체행동으로 노동조합의 단체협약과 작업 안전을 방어하자 — 해운협회는 계약 위반을 중지하라. 단체협약안에서 “해운회사의 지시 대로 일하기”, “불법적 작업 중지 금지”, 그리고 중재 등과 관련된 조항들을 없애라. 반노동자적 법원의 강제명령을 분쇄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투쟁으로 결집시키자. 해운회사의 약물 및 음주 검사를 거부한다.

 4. 우리 노동조합을 방어하자 — 항만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를 반대한다. 고용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즉시 정식 노동조합원 자격을 부여하라. 인종주의적 반노동자적 정부와 법원은 노동조합 내부 문제에 관여하지 말아라. 그리고 지역항만노동자협회와 노동조합에 대한 소송을 반대한다. 정부의 “조사”에 대한 노동조합의 저항을 지지하자. 부두에서 인종적 성적 차별과 해운회사의 정실 고용을 몰아내기 위해 노동조합이 나서라.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태평양 연안 전체의 총파업을 조직하자. 노동조건에 대한 양보나 투쟁 성과의 반납은 절대 있을 수 없다.

5. 노동자 연대를 조직하자 — 정부와 해운회사의 파업파괴 책동에 저항하자. 관제사 노조(PATCO)나 호멜(Hormel) 파업과 같은 패배는 더 이상 없다. 모든 계급투쟁적 방어선을 준수하라. 거짓 방어선, 인종주의자들의 집회, 반노동자적 집회 등을 분쇄하자. 파업 대체 인력이 부린 화물이나 파업 때문에 되돌아온 화물은 절대 작업하지 않는다. 다른 노동조합에 대한 정부와 고용주의 공격을 방어하자. 미조직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을 조직하여 이들의 투쟁을 지원하자. 크로울리 해운회사의 노조파괴 책동에 맞서 IBU와 ILWU 노동조합을 방어하자.

6. 나찌나 케이케이케이단의 테러를 막자 — 노동조합은 노동자/흑인/중남미계 등으로 구성된 정당방위대를 조직하라. 파시스트들을 분쇄하는 데 부르주아 경찰이나 국가의 도움은 필요 없다.

 7. 레이건의 전쟁 책동을 막기 위해 노동계급이 투쟁하자 — 쿠바,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좌익 반군에 대한 미군의 살인행위를 막기 위해 파업을 조직하자. 중앙아메리카로 향하는 군수 물자의 작업을 거부하자. 남아공 백인정권의 인종분리정책을 분쇄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하자.

 8. 국제노동자연대 — 보호무역주의 규제들에 반대한다. 해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건설하여 다국적 기업의 초과 착취에 저항하도록 지원하자. 노동조합의 파업을 통해 불법 노동자들의 권리를 방어하자.

 9. 민주당, 공화당 등 부르주아 정당들과 단절하자 — 노동조합에 기초한 노동자 정당 건설을 시작하자. 자본가들에게 보상 없이 주요 산업시설들을 몰수해야 한다. 착취, 인종차별, 빈곤, 전쟁 등을 끝장낼 계획 경제를 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 정부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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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노동자국가(소련/중국/북한 등)의 사회성격 소련 중국 북한 등 노동자국가들의 사회성격 논쟁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3396
29 노동운동과 혁명정당 (IBT) 레닌주의: ‘화해할 수 없는 이념적 경계’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2848
28 세계정세 (IBT) 퀘벡 학생들이 길을 보여주다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2976
27 '좌익조직'들에 대한 분석/평가 국가보안법과 ‘전진’의 배신 행위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7955
26 '좌익조직'들에 대한 분석/평가 (IBT) 클리프주의자들의 계급협조주의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3031
25 '좌익조직'들에 대한 분석/평가 국가자본주의 이론 — 나사가 빠진 엉터리 시계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3322
24 남미와 베네수엘라 칠레 인민전선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4065
23 세계정세 ‘맑시즘 2012’ 참관기 4: ‘오늘날 그리스의 경제·정치 위기와 저항’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2644
22 '좌익조직'들에 대한 분석/평가 촛불정국과 사노련의 조합주의적 기회주의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2527
21 여성/소수자 해방운동 (IBT) 성, 검열과 여성의 권리 file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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