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조직'들에 대한 분석/평가

(IBT) 사회주의 혁명가와 제국주의 전쟁 ( 22호, 2000)

by 볼셰비키-레닌주의자 posted Dec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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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혁명가와 제국주의 전쟁

 

카우츠키의 후계자들: 국제사회주의자들(IS)

 

 

 

1976년에 출판된 자신의 레닌 전기에서 IS의 지도자 클리프는 ‘현재의 제국주의 전쟁(제 1차 세계대전)을 내전으로’ 전화시키라는 볼세비키당의 촉구를 열렬히 지지했다. 이 저작에서 클리프는 이렇게 주장했다: “내전을 통해 자국 지배계급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 전쟁에서 ‘자국의 패배’를 환영해야한다. 레닌은 카우츠키가 제시한 평화주의 강령을 크게 혐오하며 거부했다.” 그러나 제 2 인터내셔널의 맑스주의의 주창자로 널리 알려졌던 카우츠키는 자국 지배계급에 굴복한 유일한 자칭 혁명가는 아니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모든 전통, 조직, 지도자 등을 시험했다. 전쟁은 평화시에 자신의 모순을 감출 수 있었던 세력들의 허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어려운 시기 내내 레닌과 볼세비키들은 단련되었으며 혁명을 지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레닌] 제 2권, 클리프

 

그러나 불행하게도 클리프의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볼세비키당이 아니다. 레닌과 볼세비키들과는 달리 SWP는 유고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공격에 대해 ‘혁명적 패배주의’ 노선이 아니라 카우츠키와 유사한 ‘반전’ 노선을 주장했다. 유고에 대한 나토군의 공습이 시작되었을 때 SWP의 이론가 캘리니코스는 ‘나토의 완전한 파산과 냉소주의’를 날카롭게 공격했다:

 

“소위 ‘탈제국주의’시대에도 제국주의는 건재하다. 군사적 경제적 강대국들은 여전히 다른 나라들을 못살게 굴면서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고 있다. 이 야만적 전쟁 그리고 이것을 낳는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모든 역량을 결집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이성적 반응이다.”

[사회주의 평론], 1999년 5월 호

 

그런데 나토의 폭력을 반대하면서 캘리니코스는 의도적으로 제국주의 침략자들의 패배나 유고의 군사적 승리를 주창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평론]의 편집자 저어먼은 나토의 ‘인도주의적’ 허세를 비웃으면서 이 제국주의 군사기구의 진짜 목표는 ‘발칸 반도에 제국주의의 영향력을 유지-확대시키는 것’임을 설명했다:

 

“나토의 목적은 이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여 카스피해 석유 채굴이 서유럽 자본주의에게 이익이 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유럽연합과 미국의 영향력이 이 지역 동쪽까지 미치게 하는 것이다. 세르비아 전쟁은 코소보 난민이나 주민의 복지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 구실을 이용하여 밀로세비치를 타도하고 발칸 반도 전체를 장악하는 것이 이 전쟁의 진짜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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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먼은 나토를 지지하는 블레어의 노동당과 좌익 그룹들을 비판했다:

 

“인도주의는 선전 공세에 불과하며 전면전을 벌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나토를 좌익이 편을 들고 있다. 이 전쟁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토의 공습은 기존의 재앙을 더 격화시켰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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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들은 발칸반도의 인종 갈등이나 세르비아에 대한 나토의 공격 어느 쪽도 ‘편을 들면’ 안된다고 결론 내리면서 저어먼은 이렇게 주장한다:

 

“어느 쪽의 편을 드는 것은 이 지역의 불안정을 부채질하는 것이며 이 결과 서방의 폭력은 더 많이 휘둘러질 것이다….코소보와 발칸 지역의 사태를 계급 분석을 통해 접근해야 상황이 올바로 이해되고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이것은 세르비아 정권이나 코소보 해방군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으면서 미 제국주의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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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의 패배를 주창하지 않는다면 ‘거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저어먼이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시위와 주장을 통해 이 전쟁에 반대하고 공습을 중지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것만이 모든 사회주의자들의 임무이다.”

 

SWP의 또 다른 지도자 하먼 역시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펴고 있다:

 

” 나토의 계속되는 전쟁을 통해 제국주의자들이 목표로 하는 바는 명확하다….전쟁은 인도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미국의 의지를 거부하는 어떤 국가도 벌을 받을 것이라는 폭력적 주장만이 이 전쟁의 목적이다. 이 전쟁은 세계 다른 곳의 미국의 정책과 완전히 일치한다.”

같은 글

 

이 폭력적 세계 지배 정책에 대항하기 위하여 하먼은 제때에 이렇게 제안한다: “제국주의 국가의 사회주의자는 최선을 다해 전쟁을 끝내야 한다.” 어떤 평화주의자도 이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블레어와 클린트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전쟁 시작부터 가능하면 빨리 ‘전쟁을 끝내기’를 열망했다. 문제는 이 전쟁이 얼마나 오래 끄는 가가 아니라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 이다. 그러나 SWP는 끈질기게 ‘편을 드는 것’을 거부했다.

 

 

‘혁명적 패배주의는 보편적 노선이다’

 

클리프가 말하듯이 제국주의 국가의 혁명가들은 자국 지배자들이 패배하기를 언제든지 원한다: “‘혁명적 패배주의’는 보편적인 노선으로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에 전부 적용될 수 있다.”(같은 글)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전쟁에서 레닌주의자들은 양측 모두의 패배를 주창한다. 그러나 또한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에 대항해서 유고나 이라크 같은 반식민지 국가들을 언제나 군사적으로 방어한다.

 

유고에 대한 나토의 공격에 대해 영국 SWP와 독일, 그리스, 미국의 국제사회주의자들은 ‘주요한 적은 국내에 있다’는 제목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제국주의 침략을 비난했으나 결론은 사회평화주의였다:

 

“우리가 전쟁의 종식을 요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다: 평화의 회복을 통해 구 유고의 여러 지역으로 쪼개진 노동 대중은 자기의 진짜 적인 자기 지배자에 대항하기 위해 서로 단결할 수 있다. 이 계급적 단결을 통해 군사적 개입으로 발칸 지역에 또 다른 재앙을 가져온 제국주의 국가들에 저항할 수 있다.”

[사회주의 평론], 1999년 5월 호

 

그러나 모든 것은 전쟁이 끝나는 방식에 달려 있었다. 나토의 패배로 유럽과 다른 지역에 계급투쟁이 고조되었다면 제국주의자들은 발칸 지역에서 완전히 쫓겨날 수 있었다. 이 경우 나토의 귀중한 ‘명성’은 손상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블레어 일당은 대규모의 ‘인도주의적’ 살인을 초래할 군사적 모험을 벌이기가 더욱 힘들 것이다.

 

IS의 공동선언문은 전투적 국제주의의 어조로 결론을 맺으려고 애쓴다:

 

“현재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긴급한 임무는 나토 회원국 전체에 반전운동을 시작하고 주도하는 것이다.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리이프크네히트가 말했듯이 ‘주요한 적은 국내에 있다’. 베트남전 당시 반전운동은 제국주의 국가 내부의 저항이 제국주의 전쟁광들에게 가하는 압력의 정도를 보여주었다. 국내의 대중적 저항으로 나토의 지도자들은 학살을 중지하도록 강제될 수 있다. 공습을 멈추어라! 나토는 발칸 반도에서 물러나라!”

 

위의 두 요구는 필요하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코소보에 대한 ‘대중적 반전운동’을 선전하기 위해 제 1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을 계속 들먹이는 논리는 잘못되었다. 리이프크네히트의 구호는 당시의 정세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제 1차 세계대전의 교전 당사자들 모두의 패배를 주창하면서 동시에 교전국의 사회주의자들은 ‘자국’ 지배자를 ‘주요한 적’으로 간주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반식민지 국가가 제국주의 공격을 당할 때에는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유일한 적이다.

 

최근 유고에 대한 공습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전에서도 혁명가들은 편을 들어야할 쪽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베트남의 주권 방어 이외에 또 다른 문제가 걸려있었다. 미국 국내의 반전운동에서 스탈린주의자들과 자칭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포함된 개량주의 세력은 ‘전쟁을 끝내라’는 부르주아 평화주의 요구를 강조했다. 그러나 좀더 전투적 분자들은 베트남전의 핵심 문제를 서서히 인식하게 되었다: 미 제국주의는 베트남의 사회혁명을 압살하려했다. 전쟁이 질질 끌면서 이 점은 더욱더 명료해졌다. 결국 수만 명의 미국 청년들은 단순한 전쟁 반대에서 월맹과 베트공의 승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게 되었다. 대학교, 빈민지역, 징집군 내부에 상승한 공공연한 혁명적 정서는 미 지배자들을 위협했으며 결국 미군 철수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비틀거리며 재앙을 향해 걸어가다’

 

[사회주의 평론] 1999년 6월 호의 글에는 반제국주의 수사가 상당히 완화되어 있다. 자신들의 ‘평화운동’에 끌어들일 노동당 좌파 의원 토니 벤 이나 기타 저명인사들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으려는 계산이 SWP 지도부에 있는 것 같았다. 나토 지상군이 ‘장기전에 돌입해 상당한 사상자를 낼 수 있다’는 나토 지도자들의 우려에 대해 이 잡지의 사설은 논평을 가했다. 그런데 이 글에는 나토 지도자들이 우려하는 이 사태를 환영한다는 말은 싹 빠져있다. 이 잡지의 편집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 세 가지의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이 주어진 상황에서 나토는 비틀거리며 재앙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지난 달 열린 영국 전역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1만5천의 시위 참가자들은 어느 누구도 승리할 수 없는 전쟁에 대해 항의했다.” 유고 전쟁에서 어느 누구도 승리할 수 없다는 생각은 제국주의의 패배를 주창하지 않은 것에 마음이 걸리는 SWP 당원들에게는 편안한 느낌을 줄 지 모른다. 그러나 이 생각은 대단히 황당하다. 모든 전쟁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사설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끝을 맺는다:

 

“따라서 평화운동을 건설하고 이것을 심화-확대하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의 진정한 임무이다. 이 임무가 충실히 이행될 경우 더욱더 큰 역량이 결집되어 결국 영국 정부와 나토 회원국들이 평화운동의 요구들을 경청하게 될 것이다.”

 

이 개량주의 헛소리는 제 1차 세계대전 와중에 카우츠키가 제안한 헛소리를 연상시킨다. 그는 제국주의자들이 (평화운동의) 압력을 받아 무장을 해제하도록 강제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레닌은 아주 잔인하게 응답했다:

 

“제국주의 강대국 정부에 대한 카우츠키의 “무장 해제” 제안은 가장 조야한 기회주의이다. 이것은 부르주아 평화주의이다. 그리고 감성적인 카우츠키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관심을 혁명투쟁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해악을 낳는다.”

 ['무장 해제' 구호에 대해], 1916년 10월

 

한편 볼세비키당은 평화주의에 기초한 반전운동을 단도직입적으로 거부했다:

 

“이 전쟁이 반동적 기독교 사회주의자, 칭얼대는 소부르주아들에게 공포를 가져다주고 모든 무기의 사용, 유혈사태, 죽음 등에 대한 혐오감만을 가져다준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언제나 끝이 없는 공포 자체이다. … 객관적으로 말하면 무장 해제에 대한 망상은 절망의 표현에 불과하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눈에 부르주아 계급은 유일하게 정당한 혁명 전쟁을 예비하고 있다 — 제국주의 부르주아 계급에 대항하는 내전이 바로 이것이다.”

같은 글

 

역사와 이론을 연구할 때는 SWP 지도자들은 물론 레닌의 노선에 동의한다. 자신들을 레닌주의자라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은 실천에서는 레닌과 노선을 달리한다. 이들이 반(反)제국주의 수사를 애용하면서도 제국주의에 정치적으로 굴종하는 데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사회주의 평론] 6월 호는 1999년 5월 10일자 [뉴스테이츠먼]지에 실린 편지를 그대로 실었다. 유명한 좌파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제 4 인터내셔널 통합서기국 지지자들과 SWP의 캘리니코스 등등 사이비 사회주의자들이 공동으로 서명한 이 편지는 이렇게 주장했다:

 

“나토는 코소보에 대한 합의안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최상의 받침대는 아니다. 과도적 합의안을 강제할 수 있는 다국적 경찰력의 구성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틀 내에서 가능하다. 이 다국적 경찰력에는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이 포괄될 수 있다.”

 

유럽안보협력기구도 나토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연합기구이다. 이 점은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혁명적 맑스주의를 자처하는 SWP가 캘리니코스를 대표로 참여시켜 제국주의 “평화”가 가장 잘 운영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하다니! SWP는 이렇게 처참한 수준으로 자신을 깔아뭉개고 제국주의 질서에 굴복하고 있다. 이 사실은 SWP의 정치가 완전히 파산했다는 증거이다. 밀로세비치가 제국주의 공습에 항복한 후 출판된 [사회주의 평론] 7월 호는 이렇게 말했다: “유고에 대한 서방 제국주의의 승리는 평화를 가져오는 대신 더 많은 전쟁을 가져올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나토의 패배를 주창하지 않은 SWP 지도부가 얼마나 비겁하게 제국주의에 굴종하고 있는 지를 뚜렷하게 보여줄 뿐이다. 저어먼은 뻔뻔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나토가 승리한 것은 사실이다. 반전운동에 참여한 어느 누구도 이와 다른 결과를 예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저어먼은 기억력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그녀는 [사회주의 평론] 독자들이 기억력이 좋지 않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잡지 바로 지난 호에 저어먼의 사설은 유고에 대한 나토의 공격을 “어느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고 말했다. 인상주의자들의 말은 하나도 믿을게 못된다.

 

 

 

맑스주의와 제국주의 전쟁

 

[사회주의 평론] 7월 호에서 하먼은 SWP 지도부의 절충주의적 수정주의에 정치적 일관성을 포장하려고 애썼다. 그는 세르비아에 대한 제국주의 공격을 ‘제국주의 전쟁의 새로운 단계’라고 주장했다:

 

“20세기 제국주의 전쟁은 두 가지 형태를 띠어왔다. 이중 하나는 제국주의가 식민지 및 구식민지 국가를 직접 점령하여 인민을 아주 잔인하게 억압하는 형태이다….”

 

하먼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케냐, 키프로스, 알제리의 반제국주의 봉기를 예로 들고 있다. 그리고 알제리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 좌익의 최상 분자들은 알제리의 자결권을 지지했을 뿐 아니라 알제리민족해방전선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이와 비슷하게 베트남전 반대 운동에 참여한 분자들은 베트남의 농민과 노동자들이 미국보다 더 나은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호지명 북베트남의 집단적 소유체제가 베트남의 미국 신식민지 체제보다 ‘더 나은 전망’을 제시했다는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SWP가 선전하는 ‘국가자본주의’이론의 중심 전제를 최소한 암묵적으로나마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1950년대 초에 터졌던 한국전쟁을 하먼이 예로 들지 않는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사실 영국군은 한국전쟁에 크게 개입했고 이 전쟁은 케냐나 키프로스의 전쟁보다 역사적으로 훨씬 중요했다. 더욱이 한국전쟁에서 충돌한 교전국들의 이해관계와 사회 세력은 베트남의 경우와 동일했다. 국제사회주의자들은 1960년대에 베트남 스탈린주의자들을 지지하는 수십만 신좌익들에 합류했다. 반면 1950년대에는 지배적인 반공 분위기에 굴복하여 미국 주도의 제국주의 연합군에 대항해 북한 스탈린주의자들을 방어하기를 거부했다. 이들은 대중운동의 바람이 부는 곳으로 따라가는 대중 추수 바람개비들이기 때문이다.

 

하먼은 계속해서 제국주의 전쟁의 두 번째 ‘형태’를 논한다:

 

“다른 종류의 제국주의 전쟁이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전쟁이다. 이 경우 자국의 지배계급이나 그 적이나 악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리이프크네히트의 ‘주요한 적은 국내에 있다’는 구호나 다른 맥락에서 레닌의 ‘이 전쟁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자국 지배계급의 패배를 주창해야한다’는 구호는 심리적으로 중요했다. 이 전쟁에서는 교전 상대국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교전 양자를 똑같이 대하면 전쟁에 대항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문제였다….식민지 억압에 대한 직접 투쟁의 대부분은 1980년대쯤이면 승리하거나 반정도 승리했다…. 우리가 목격한 새로운 단계의 제국주의 전쟁을 사람들은 대제국주의와 아(亞)제국주의 사이의 전쟁이라고 규정한다. 이 점 때문에 좌익의 일부는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힘센 못된 놈과 끔찍한 반혁명 정권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1990년과 1991년의 걸프전에서 전통적으로 좌익에 속했던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미국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담 후세인이 너무 지독한 독재자이기 때문이다.”

 

SWP 지도부는 미국이 주도한 ‘사막 폭풍’ 작전을 노골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후세인의 이라크를 유고의 밀로세비치처럼 너무 ‘끔찍해서’(즉 너무 인기가 없어서) 제국주의 맹공에 대해서 방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먼은 파나마, 리비아,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에 대한 미국의 공격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라들을 제국주의 공격에 대항해 방어하자고 말하는 대신 그는 이렇게 제안한다:

 

“베트남전 반대투쟁보다 1914년의 전통을 좌익들은 참고해야 한다. 우리의 주요한 적이 누구인지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세르비아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 동시에 세르비아 정부를 압살하려는 강대국 미국은 더 큰 악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볼세비키당의 ’1914년 전통’은 1914년과 같은 상황 즉 라이벌 제국주의 세력들 사이의 전쟁에서나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통은 하나 이상의 제국주의 강대국이 종속국, 식민지, 반식민지를 공격할 때는 적용될 수 없다. 레닌은 이점을 누차 지적한 바 있다. 예를 들어 1915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일 모로코가 프랑스에 또는 페르시아나 중국이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한다면 이 전쟁은 누가 먼저 공격을 하든 관계없이 ‘정의로운’ 그리고 ‘방어적인’ 전쟁이 된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는 억압하고 노예를 보유하고 있으며 약탈적인 ‘거대’ 강대국에 대항해 억압받고 종속 당하고 있으며 힘이 열등한 나라들이 승리하기를 원한다.”

[사회주의와 전쟁], 1915년 7월

 

1916년에 그는 다시 같은 점을 지적했다:

 

“억압당하는 나라들이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항해 전쟁을 벌일 때 전자의 ‘조국 방어’ 구호를 거부하는 것은 순전한 바보짓이다….”

 [노동계급 혁명의 군사 강령], 1916년 9월

 

이보다 한달 전 콜론타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레닌은 세르비아에 대한 제국주의 공격의 문제를 언급하기조차 했다:

 

“전쟁의 유형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오류일 뿐 아니라 실천적으로 해악이 된다. 민족해방 전쟁을 반대할 수는 없다. 당신은 세르비아의 예를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세르비아가 연합국 제국주의자들과 결탁하지 않은 채 혼자 오스트리아에 대항한다면 세르비아를 지지하지 않을 것인가?”

 [콜론타이에게 보내는 편지], 1916년 8월

 

1999년 세르비아가 혼자서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그리고 6개 제국주의 국가들까지  가세한 연합국에 맞섰을 때 SWP 지도부는 어느 쪽도 편들지 않았다. 밀로세비치가 너무 ‘끔찍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은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제국주의 침략에 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다. 1935년 이탈리아가 이디오피아를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트로츠키의 입장은 명확했다:

 

“물론 우리는 이탈리아의 패배와 이디오피아의 승리를 주창해야 한다….전쟁과 관련해서 이디오피아의 황제 네구스 또는 무쏠리니 가운데 누가 ‘더 좋은가’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계급 역관계이다. 이것은 저발전 국가가 제국주의 국가에 대항해 독립하는 문제이다.”

 [이탈리아-이디오피아 분쟁], 1935년 7월 17일

 

네구스는 반동 전제군주로 1960년대 민족해방투쟁 지도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이 전쟁을 두 독재자 사이의 분쟁으로 규정하고 편을 들기를 거부한 영국독립노동당의 브록웨이와 기타 자칭 혁명가들을 비난했다:

 

“네구스의 승리는 이탈리아 제국주의 뿐 아니라 제국주의 일반에 대한 강력한 타격이 된다. 그리고 피억압 민족들의 저항운동에 강력한 원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이 점을 보지 못한다면 진짜 장님이 아닐 수 없다.”

 [독재자와 오슬로의 정상에 대해서], 1936년 4월 22일

 

코소보에서 나토의 패배도 이와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을 보지 못한다면 진짜 장님일 것이다. 미군의 사상자가 증가하면서 미국의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는 성장했다:

 

“베트남전에서 미 제국주의가 부끄러운 패배를 당한지 25년이 지난 지금도 베트남 증후군은 피비린내 나는 정의롭지 못한 전쟁에 대한 악몽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미국 국민이 그것의 재판 가능성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심성이기도 하다. ‘시체 운반용 자루’를 말하기만 해도 1백3십만 베트남 민간인을 도살하는 임무를 띤 5만8천 미군의 모습과 기억이 떠오른다. 베트남전은 미 제국주의의 야만성을 폭로했으며 동시에 미국이 전쟁에서 패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지배계급은 해외의 인기 없는 전쟁 뿐 아니라 이것이 가져올 국내의 전쟁 역시 두려워한다.”

 [베트남의 망령], 쉐런 스미스, 사회주의 평론 1999년 6월 호

 

미국의 ‘베트남 증후군’은 미국의 군사적 패배의 산물이다. 1983년 레바논과 1993년 소말리아에서 사상자가 발생하자 미국은 곧바로 자기 군대를 이 두 나라에서 철수시켰다. 1999년 코소보에서 나토가 패배했을 경우 제국주의 군대를 발칸 반도에서 철수시키라는 압력은 증대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쓰디써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

 

클리프는 아주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제 1차 세계대전에 대한 레닌의 입장은 월등했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막대기를 구부려’ 자국의 패배가 차선책이라고 말하는 것을 통해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가와 사회애국주의자들을 확연히 구분하려는 계산에서 나왔다.”

 [레닌] 제 2권

 

유고에 대한 나토의 최근 전쟁에서 이 구분은 똑같이 명확했다. 그러나 클리프는 레닌이 아니라 카우츠키를 따라갔으며 사회애국주의자들과 한패가 되었다. 카우츠키처럼 SWP 지도부는 추상적이고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맑스주의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천활동에서는 빨리 조직을 늘리려는 욕심이 맑스주의 원칙에 앞서고 있다.

 

진정한 혁명가들은 시류에 거스를 줄 알아야 한다. 즉 단기간의 인기보다 노동계급의 장기적 이해를 우선할 줄 알아야 한다. 나토의 공격에 대해 유고를 방어하기를 거부한 SWP 지도부는 다시 한번 혁명을 수행할 능력이 전혀 없음을 증명했다.

 

SWP 지도부가 입으로는 번지르르하게 말하는 혁명 전통에 대해서 진정 헌신할 용의가 있는 SWP 내의 투사들은 클리프 일당의 수정주의와 결별하고 진정한 트로츠키주의의 혁명 강령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