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수자 해방운동

고(故) 박원순 성폭력 고소사건에 대하여 : ‘남녀분리주의 3대 준칙’의 비민주성

by 볼셰비키 posted Aug 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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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성폭력 고소사건에 대하여

: ‘남녀분리주의 3대 준칙의 비민주성

 

지난 79일 사망한 고() 박원순은 자본가계급 내 약간 왼쪽에 위치한 자유주의 정치인이었다. 그는 시민운동 시절 군부독재 등의 민주적 권리 침탈과 인권억압에 맞서기도 했다. 그러나 온갖 사회악의 근원인 자본주의 체제에 정면으로 맞선 적은 없다.

2010년대 들어 제도 정치인으로 입문한 이후에는 더욱 순응적으로 되었다. 인권운동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국가보안법 철폐 입장이 체제 내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자 그것을 곧 철회한 것은 대표적인 일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놀랍기는 하지만, 노동계급 입장에서 크게 의미 부여할 일은 아니다.

다만 그 죽음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이고, 지금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성폭력/추행 고소고발건에 대해, 몇몇 좌익단체를 포함하는 세간의 견해와 다른 생각을 우리는 가지고 있고, 그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남녀분리주의의 세 가지 준칙: ‘광의의 성폭력론, 피해자중심주의, 2차 가해론

이 사건으로 광의의 성폭력론, 피해자중심주의, 2차 가해론등이 또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서로를 보완 강화하는 한 세트의 이 준칙은, ‘남녀분리주의를 조장하는, 이른바 여성계(남녀적대주의 수혜자인 부르주아 여성운동)’를 지탱하는 핵심 원칙이 되어 왔다. 그런데 이 준칙들은 인민의 역사적 투쟁으로 얻어낸 민주적 권리를 심각히 저해한다. 야만적이고 전제적인 법 집행에 맞선 오랜 투쟁으로 쟁취한 무죄추정의 원칙’ ‘증거주의등 민주적 기본권을 침해한다. 또한 이 준칙은 노동계급을 남녀분리주의로 교란하여 그 전진을 심각하게 가로막는다.

먼저, 광의의 성폭력론은 성폭력을 주관화하고 그 범주를 지나치게 확대한다. 이에 따르면, 어떤 여성이 남성의 특정 행위에 불쾌감을 호소하게 되면, 대체로 성폭력으로 규정된다. 다양한 사례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그 중 2012년 소위 담배 성폭력사건과 2019년의 전교조 배이상헌 교사 성폭력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들을 보면, 담배를 피우며 결별을 선언하거나, 교육 목적으로 성평등 주제 영화를 보여준 경우도, 대상이 불쾌하다고 호소하면 성폭력으로 규정되고 곧이어 처벌 절차가 진행된다. 피고소인의 반론은 부차적이다. 심지어 소명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비이성적 처리 절차는 이른바 메뉴얼이 되어, ‘노동과 좌익표방 단체 일부를 포함, 주류가 되어 있다.

광의의 성폭력론의 또 다른 폐해는, 다양한 형태의 문제적 행위를 강간을 연상케 하는 성폭력이라는 범주에 같이 담음으로써, ‘행위의 구체성을 지우고, 경중을 따지지 않으며, 진짜 중한 범죄를 희석한다라는 점이다. ‘낯선 이성에 휘파람을 불거나 희롱하는 행위, 원하지 않는 성적 농담, 거절 의사가 있음에도 반복적으로 추근대기,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 몰래카메라, 강간 등은 모두 부적절한 행위이다. 그러나 그 심도는 상당히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 맥락과 경중에 따라, 처벌 등 사회적 대응은 달라야 한다.

둘째, 피해자 중심주의는 특정행위의 범죄성 여부를 결정하는 데에 피해호소인의 주장이 결정적이라는 준칙이다. 이에 따르면,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그 피해를 공론화하거나 고발하는 순간, 범죄 사실이 확정된다. 한편,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호소 또는 고발순간, 범죄자가 된다. 법적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범죄 입증책임이 기소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피고소인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등 매우 불리한 처지에 놓인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이다.”라는 말은 그 대표적 표현이다. 배우 오달수의 성추행혐의를 다룬 201831jtbc 보도는 피해자 중심주의의 핵심을 담고 있어 자주 인용된다. 이 보도에서 기자는 사실 이런 사건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입니다. 다른 것이 증거가 아니고요. 역으로 생각해 보면, 가해자도 그 일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기자의 말에 따르면, “목소리를 낸 순간, 호소인은 곧 피해자가 되고 상대(배우 오달수)는 곧 가해자가 된다. 그리고 가해 혐의를 받는 사람이, 20여 년 전에 있었다는 그 성추행 사건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사건은 존재한 것이라는 것이 jtbc 또는 그 기자의 논리이다.

피해자중심주의2020년 고() 박원순 고소 사건을 바라보는 틀로 다시 공인되었다. 정부 기관인 여성가족부는 716, 고소인을 피해 호소인이 아니라, “피해자로 불러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으며 피해자 중심주의를 지지했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위험한 것은 전근대적인 유죄추정을 부활시키고, 범죄 여부의 증명 책임을 고소인 또는 기소인이 아니라 피고소인이 져야 하며, 제도적 형벌 이전에 이미 사회적 형벌이 집행된다.’라는 점이다.

피해 호소인의 폭로는, 이른바 여성계를 추종하는 미디어와 SNS를 통해 증폭된다. 언제나 뜨거운 대중적 관심사인 연애, 섹스, 불륜, 성폭력과 연계되면서 (실제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그렇지 않든) 조리돌림이 시작된다. 사회적 망신형은 실제 형벌보다 더욱 가혹할 수 있다. 직업을 잃고, 파렴치한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다. 온라인에 새겨진 불명예는 시효없이 지속된다. 설령 오랜 기간의 법절차를 거치거나 아니면 다른 과정을 통해 무죄가 밝혀진다고 해도, 이미 사회인으로서 입은 손상은 만회하기 어렵다. 의혹이 제기된 이후 자살한 2016년 부산 동아대 손**교수와 2017년 전북 상서중학교 송** 선생 사건은 그 극단적 사례 중 일부이다.

 

셋째, 이 무렵 ‘2차 가해론이 등장 가동되며, ‘여성계의 남녀분리주의 세 준칙을 완성한다. 애초에 성범죄 피해 호소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범죄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 등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제 현실에서는, 가해지목인의 자기 방어나 피해호소인 주장에 대한 의문제기 등을 모두 범죄시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79일 고() 박원순 자살 직후 페이스북 등에 올라온 고인에 대한 긍정적 언급의 추모는 젠더 감수성부족으로 인한 2차 가해로 규정되었다. 그리고 사건대리인 김재련 변호사가 연 7162차 기자회견은 변호사를 공격하는 것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주장했다. () 박원순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피해자가 제보했다는 뉴스에 대해 전 열린민주당 의원 손혜원이 어떻게 알았느냐?”라고 의문을 제기하자, 그 의문도 2차 가해 혐의를 받았다. 714일 팟캐스트에서 “4년 전 발생한 사건을 왜 당시에 신고하지 않았느냐?”라고 물은 박지희 아나운서는 감히그렇게 물었다는 이유로 2차 가해 혐의를 받고 28tbs TV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728일에는, 2차 가해 고소 사건을 접수한 경찰이 4개의 사이트를 압수 수색하며 명예훼손과 형법상 모욕죄를 적용해 엄정 수사할 예정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런 식으로, 피해호소인 또는 그의 대리인 그리고 그 편에 선 사람들의 주장에 대한 비판과 의혹은 입막음 당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최전선에서 싸워야 할 언론사들 역시 성폭력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여성계에 맞서는 다른 목소리를 불허한다.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는 2018년 박재동 화백 미투 사건에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박재동 화백 치마 밑으로 손 넣은 사람에게 또 주례 부탁하나미투 반박)729일 온라인판에 게재했다. 그런데 그 기사는 4시간만에 삭제되었다. ‘2차 가해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비슷한 일이 서울신문에서도 있었다. 86일 서울신문엔 곽병찬 논설위원의 광기, 미투를 조롱에 가두고 있다라는 글이 실렸다. “2차 가해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침묵하는 것도 2차 가해라는 고() 박원순 고소사건 피해자 대리인 김재련 변호사의 주장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대리인 측의 주장이, ‘마녀사냥이나 긴급조치 그리고 국가보안법들처럼, 민주적 권리를 심각히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논설은 온라인판에 게재되지 않았다. 역시 ‘2차 가해라는 무적의 논리에서였다. 그 후에도 주장을 굽히지 않던 경향신문의 강진구 기자는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비민주적인 광의의 성폭력론, 피해자중심주의, 2차 가해론에 대한 반론은 언론, 경찰, 학계, SNS 등에 조직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성계에 의해 용납되지 않는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이어지며, 스산한 공포가 이 사회구성원들을 덮어누르고 있다. 그에 반비례하여, 남녀분리주의로 조성된 이해를 공유하는 이른바 여성계의 목소리는 도전을 불허하는 가공할 권력이 되고 있다.

 

내로남불

그런데 이 삼엄한 ‘3대 준칙누구에게나 일관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5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정의기억연대(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후신) 전 이사장 윤미향의 기부금 횡령 혐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정의연은 그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와 그에 대한 자신의 가해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반박에 즉각 나섰다.

“92세로, 심신이 많이 취약한 상태다” “할머니 기억이 왜곡된 부분이 있다. 또 서운한 감정이 논리를 덮는 부분이 있어서 감안해서 봐야 한다라는 기자회견 당일 정의연 책임자 발언이나,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출마하게 되었을 때,서운함과 섭섭함을 운운하는 8일 입장문은, 혐의 제기자의 태도, 심리 상태 등을 거론하며 범죄혐의 자체를 무마하려는 내용이었다. , 전형적인 ‘2차 가해였다.

이렇게 정의연이 공격의 빗장을 열어주자,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험담과 비방은 거침 없어졌고 점점 더 잔인해졌다. ‘노망, 치매에서, ‘가짜 위안부, 배후의 조종받는 꼭두각시, 대구스럽다, 일본군과 영혼 결혼한 친일 할매, 토착 왜구등등이 제한 없이 발언되었다. 폭로 후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513~14일 이틀 사이, 진상규명은 시작도 안 된 시점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민우회, 한국기독교여성위원 등 포함 수십 개의 단체들은 단정적 성명을 일제히 발표했다. 그 성명들은 전쟁범죄 역사를 지우려는 일본 아베정부와 그에 부역하는 친일, 반인권, 반평화세력들” “식민주의 가부장제 유산의 한 형태” “친일파와 분단적폐 세력들에 의해 조장되고 증폭되는 모든 가짜 사실과 주장등의 말로, 사건을 단호하게 단정짓고, 감히 피해를 호소하며 정의연과 윤미향을 공격하는 세력을 단죄했다.

92살 노령의 이용수 할머니 폭로 당시, 기자회견문 작성 등에서 수양딸 등의 조력이 있었다는 이유로, ‘배후설을 제기했다. 그러나 실제 기자회견은 단지 문서를 그대로 읽는 방식이 아니었다. 질의 응답까지 장장 1시간 가량, 이용수 할머니의 현장 육성으로 진행(2)되었다. 이와 달리, 이번 고() 박원순 고소고발 사건에서, 당사자인 피해호소인은 나서지 않았다. 기자회견 등 대부분의 폭로와 후속 작업은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가 진행했다. 그러나 여성계나 그를 지지하는 진영은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역으로, 대리인을 의심하거나 비판하는 견해를 ‘2차 가해로 단죄 중이다.

이처럼, ‘광의의 성폭력론, 피해자중심주의, 2차 가해론등은 남녀분리주의로 수혜를 입는 개인과 조직의 네트워크, 이른바 여성계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를 위해서만 가동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역감정, 인종차별 등과 더불어 나누어 다스리기(분리통치)’에 효과적인 이 준칙은 자본가계급에 의해 엄호되고 있다.

 

민주적 권리와 노동계급

민주적 권리 사수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사회주의자로서 우리는 이 남녀분리주의 준칙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지금 보고 있는 것처럼, 이 준칙은 노동인민이 수많은 희생을 치러 쟁취한 민주적 권리를 심각히 침해하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마찬가지로 이 남녀분리주의 준칙은 노동계급의 전진을 가로막는 데에 쓰였고, 앞으로 더 크게 쓰일 것이다. 마녀사냥에서처럼, 어떤 것이든 성추문을 폭로하는 것만으로 지배계급에 도전하는 노동계급의 투사들을 잡아가두거나 무력화할 것이다.

이 반노동계급적이고 비민주적인 사상은 심지어 노동, 해방, 사회주의, 변혁등을 표방하는 좌익단체들에 의해 용인되거나 중요 원칙으로 추앙되고 있다. 우리는 이에 맞서 굽힘 없이 싸워왔다. 각성하여 전진할 노동계급이 나아갈 지침을 누군가는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 박원순 성폭력 고소 사건과 성폭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성폭력 역시 폭력의 일종이다. 폭력은 1)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2) 상대의 신체, 정신, 물질적 피해를 끼치는 것이다. 따라서 폭력이기 위해서는 1)2)가 확인되어야 한다. 성관계의 경우에는 특히,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였는지 즉, 상대의 성적 접근에 거절의사가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둘째, 상하 관계라고 해서 그 자체로 폭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나이, 지위, 빈부, 인종, 선후배 등등을 고려한다면 완벽하게 평등한 관계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2012년 담배 성폭력 사건 등에서 보듯, ‘여성주의는 심지어 남녀의 성별마저도 권력적 상하관계라고 주장한다.

셋째, 지난 몇 차례의 기자회견에서 폭로한 사례들은 그 자체로는 폭력이라고 규정하기에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법률 대리인이 적시한 비밀대화방 초대, 비서직 종료 이후 문자나 속옷 사진 발송등의 구체적 내용과 맥락 등은, 폭로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피해 호소인측도 주장하는 진상규명이 철저히 진행되어, 행동의 기준이 명확해지길 바란다.

넷째, 행동의 기준은 명확해야 한다.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떤 행위가 왜 허용되지 않는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구성원들이 자유로워지고, 행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행위 준칙으로서의 금이 제멋대로 그어지거나, 사후에 그어지거나 하면 행위의 자유는 사라진다. 사회구성원들은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 보이지 않고, 사전이 아니라 사후에 그어지는 그 금의 공포에 신경을 지나치게 소모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에 반비례하여, 그 금을 관장하는 집단의 위험한 권력은 지나치게 커진다.

다섯째, 억울한 일은 성폭력 희생으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무고 범죄와 그로 인한 억울한 피해자 역시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 사회에 만연한 폭력에 주저없이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거짓 폭로로 인한 희생 역시 중히 다루어야 한다. 무고(誣告) 범죄는 상대방의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는 폭력이다. 위중한 범죄로 다루어져야 한다.

 

자본주의에 만연한 갑질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우리 사회엔 갑질이 만연해 있다. 근본적으로 이 사회가 착취피착취라는 불평등 위에 구축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가정, 학교, 직장, 군대 등에서 갑질왕따’, 성폭력이 빈발한다. 어린아이, 후배, 노인, 허약자, 여성 등 물리적 힘이 약한 사람이 희생자가 되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짜 힘은 빈부 차이에서 나온다. 그리하여 먹이 사슬에서 피착취 쪽에 가까운 사람이 주된 피해자가 된다. 특히,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노동력뿐만 아니라, 인격까지 착취당하고, 성적 자결권마저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주의자로서 우리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설계하고 그 실현을 추구한다. 가장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와 평등은 사적 소유를 철폐하여 계급이 종식된 기초 위에 건설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현재의 폭력과 불평등에 맞선 싸움에도 선두에 선다.

이 싸움에서 개인의 자주적 의식과 저항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피억압 인민의 공동 투쟁이 필요하다. 피억압 인민의 기초적 단결기구인 노동조합, 학생회, 병사위원회 등은 부당한 폭력에 맞선 의미 있는 투쟁수단이다. 실제로 노동조합이 결성된 현장에서는 상사의 반말과 욕설, 폭력 등 부당한 갑질이나 성폭력 등이 현저히 낮아진다. 나아가 그 단결기구들은 육아, 보육, 교육, 의료, 노인부양 등의 사회화를 제기하며 자본주의 갑질의 기초를 허물 것이다. 노동자주의, 여성주의 등의 교란을 물리치고 그 투쟁이 효과적으로 전개되기 위해선, 레닌과 트로츠키의 강령으로 무장한 노동계급 정당 건설이 필수적이다.

 

2020813

볼셰비키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