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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주의란 무엇인가?

(<레프트 대구> 9호 기고문)

미국 공산당의 핵심 지도자였으며, 이후 트로츠키주의 미국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창립을 주도한 제임스 캐넌은 트로츠키주의를 다음 한 마디로 요약했다.

트로츠키주의는 새로운 운동이나 원칙이 아니다. 그것은 러시아혁명과 코민테른 초기에 상세히 설명하고 실천한 진정한 맑스주의를 복원하고 부활시킨 것이다.―『미국 트로츠키주의 역사



맑스주의에서 트로츠키주의까지

그런데 트로츠키주의가 새로운 운동이나 원칙이 아니라면, 어째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이전에 원칙으로 통용되었던 맑스주의, 레닌주의와 구분되는 트로츠키주의라는 명칭으로 자신들을 규정하는 것일까?

과학적 사상은 인류의 오래고 다양한 실천으로 획득된 자연, 사회, 역사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총화이다. 그 중 맑스주의는 자본주의를 노동계급 당파성에 입각하여 해석한 과학적 세계관이다. 맑스주의는 인류의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실천을 통해 그리고 대립물인 그 시대의 오류 사상과의 투쟁을 통해 얻어진다. 그 정수는 각각 맑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 등의 이름으로 대표되고 있다.

맑스, 엥겔스는 프랑스혁명(1789)과 파리코뮌(1871)으로 대표되는 시대의 사상가들이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만개, 새로운 지배계급 부르주아 그리고 동시에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자본주의 모순으로 대표되는 시대의 사상가들이었다. 그들은 관념론적 변증법, 부르주아 경제학, 공상적 사회주의 등의 성과를 계승하고 한계를 극복하며 유물론적 세계관, 맑스주의 정치경제학, 과학적 사회주의를 정초하여 맑스주의를 열어내었다.

레닌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전화한 시기 그로 인한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러시아혁명을 대표한 사상가였다. 사민주의라는 그 시대의 대표적 기회주의의 본질, 멘셰비즘의 단계론적 세계관, 제국주의, 기회주의와 분립한 전위당 노선, 맑스주의 국가론 등에 대한 노동계급의 인식은 그의 이름을 통해 가장 높은 수준으로 표현되었다. 그 이론의 과학성은 러시아혁명을 통해 실천적으로 입증되었다. 레닌주의라는 호칭은 그 사상을 통칭하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레닌과 더불어 러시아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지도자였다. 2월 혁명 이후 곧바로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간 것은 트로츠키 연속혁명론의 실현이기도 했다. 러시아혁명은, 볼셰비키와 러시아 인민의 필사의 노력으로, 제국주의자들의 공격을 견뎌내고 살아남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기대되었던 유럽의 혁명은 불발했고 고립되었다. 혁명은 퇴보를, 맑스주의의 전통은 또 다시 왜곡수정되기 시작했다. 이미 레닌 생전 등장한 관료집단은 레닌 죽음 이후 볼셰비키를 노동계급의 후위에 굴복시키고 좌익반대파로 결집한 혁명전위를 탄압했다. 이런 상황에서 맑스주의 혁명가들에게 새로운 시대적 과제가 제기되었다: ‘관료집단이 장악한 노동자국가 즉, 노동계급 혁명이 성공했으나 연속혁명이 불발하여, 부르주아 사적소유는 철폐되었으나 권력은 관료집단에 장악되어 있는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할 것인가?’ 트로츠키주의는 이 시대적 과제에 대한 해명과 실천적 대응을 일컫는 이름이다.

이 글은 그 이론과 실천의 핵심을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 일국사회주의 노선에 맞선 연속혁명론, 공동전선, 퇴보한 노동자국가론과 소련의 방어, 이행 강령 등으로 간추려 설명하고자 한다.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옹호하다

볼셰비키가 주도한 191710월 혁명은 유일하게 성공한 노동계급 혁명이었다. 이 때문에 볼셰비키는 오늘날에도 사회주의 혁명정당의 전형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 볼셰비키조차도 늘 굳건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1917년 봄에 이 당의 고참 지도자들은 노동자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라는 이전의 정식에 얽매여, 부르주아 임시정부를 지지해도 좋다고 믿었으며,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를 거부하고 노동계급의 즉각적 권력장악을 촉구하는 레닌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레닌은 끝내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켰고, 이를 통해 재무장된 볼셰비키는 노동계급 권력장악의 선봉에 서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레닌 사후, 볼셰비키를 승리로 이끈 원칙인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은 스탈린 일당이 장악한 코민테른의 기회주의적 전술에 의해 철저하게 훼손되었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중국 공산당의 국민당으로의 청산을 지시했으며, 이후 스페인과 프랑스에서는 반파시즘 인민전선이라는 명목으로 공산당과 자본가 정당과의 동맹, 자본가 정권에의 참여가 정당화되었다.

이처럼 소련공산당과 코민테른이 퇴보하던 시기에 트로츠키를 주축으로 한 좌익반대파만이 유일하게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10월 혁명을 승리로 이끈 레닌주의 원칙을 굳건히 견지하며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맞서 투쟁하였다.


일국사회주의 노선을 거부하다

코민테른을 장악한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중국, 스페인, 프랑스의 자본가 계급에게 굴종하면서, 그리고 영국의 노동조합 관료들의 배신을 눈감아주는 등의 행위를 통해서 세계 각국에서 노동계급 독재를 수립하기 위한 투쟁을 청산해버렸다. 이것이 이른바 일국사회주의의 실체였다. 일국사회주의 노선은 자본가들(혹은 제국주의자들)과 불필요한 마찰을 줄여 소련의 안위를 도모하겠다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이후의 역사(2차 세계대전)가 증명하듯이, 이런 배신적 정책도 소련을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노동계급 혁명으로 수립된 세계 노동계급의 물질적, 정신적 지주인 소련에 대한 세계 자본가 계급의 본원적인 적개심은 어떤 유화책으로도 해소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스탈린주의의 배신적 정책에 대항하여, 코민테른과 소련 공산당 내에서 오직 트로츠키와 그의 동료들만이 레닌의 다음과 같은 입장을 온전히 그리고 굳건히 계승하였다.

세계혁명의 지원이 없다면 노동자혁명의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혁명 이후는 물론이고 심지어 혁명 이전에도, 우리는 혁명이 즉시 또는 적어도 빠른 시일 내에 다른 후진국들과 좀 더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일어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확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비에트 체제를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국제혁명을 위해서도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레닌, <전집>, 18권 제1, 321



연속혁명 : 후진국의 민주주의-민족해방을 위한 유일한 해법

1905, 트로츠키는 다가올 러시아 혁명의 성격을 논하면서, 당시 러시아의 현실에 적용된 자신의 연속혁명론을 처음으로 개진하였다. 그 입장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농민의 지지를 얻는 노동계급이 독재체제를 수립해야 러시아 민주주의 혁명은 완전히 승리할 수 있다. 노동계급 독재는 민주주의 임무 뿐 아니라 사회주의적 임무도 불가피하게 일정에 올려놓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국제 사회주의혁명을 강력하게 추동할 수 있다. 오직 서구 노동계급의 혁명 승리만이 러시아를 자본주의 복귀로부터 보호할 수 있고 러시아가 사회주의를 완전히 확립할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다.<러시아 혁명의 세 개념>


19174월 테제를 통해 레닌은 옛 볼셰비키의 유명한 정식, ‘노동자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가 낡았음을 지적하고, 노동계급 독재를 위한 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 입장이 관철되면서, 볼셰비키는 실천적으로 연속혁명의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연속혁명의 올바름을 입증한 10월 혁명의 승리 이후에도, 후진국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과제를 온전히 달성하기 위하여 노동계급 독재가 필요하다는 연속혁명의 교훈은 레닌과 트로츠키가 지도하던 코민테른과 소련 공산당에서 아직 일반화되지 못했다. 심지어 연속혁명을 창안한 트로츠키조차도 1920년에는 식민지의 반제국주의자본가 세력과 전략적(!) 블록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1926년 중국 국민당에 대한 코민테른과 중국 공산당의 굴종이 재앙적인 결말에 이른 이후에, 트로츠키와 그의 동료들은 연속혁명론이 비단 러시아뿐만 아니라 후진국 일반에 적용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공동전선을 옹호하다

소련과 코민테른을 장악한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늘 계급협조주의적인, 다시 말해 우익적인 면모만을 보였던 것은 아니다. 때때로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초좌익 모험주의로 기울기도 하는, 지그재그 행보를 보였다. 특히 독일에서 공산당이 사민당 등의 노동계급 세력과 반파시즘 공동전선을 거부하면서 나치의 집권을 허용한 것은, 관료집단이 보여준 초좌익 기회주의의 절정이었다.

한편 스탈린주의 관료집단 이외에, 일부 초좌익세력들도 공동전선을 거부하였다. 예컨대, 스페인에서 일부 초좌익세력들은 공화국과 프랑코의 파시스트 군대 모두에 반대하여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중립노선을 고수하였다. 또한 중일전쟁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 국가 사이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로 중립을 고수하였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이런 패배주의적 정책에 결연히 반대하며, 반파시즘/반제국주의 공동전선을 지지하였다. 어디까지나 노동계급의 정치적·조직적 독립의 유지를 전제로 한 것이었으며, 사민당, 중국 국민당 등과 한 편이 되어 당면한 적(나치, 일본 제국주의 등)과 군사적으로 동맹하여 싸우되, 이들에 대해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보내기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이 정책은 스탈린주의 인민전선과 확연히 구분되었다.

이 공동전선 정책 역시 트로츠키가 독자적으로 고안한 것이 아니었다. 레닌 생전의 코민테른이 승인했으며, 또한 레닌의 저작 공산주의의 좌익 소아병속에서 이 정책의 필요성이 충분하게 설명되었다. “아무리 일시적이고 동요하며 믿을 수 없고 우연적일지라도 대중적 동맹자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기회를 활용해야한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맑스주의와 현재의 과학적 사회주의 일반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관료집단과 소련 사회의 성격을 규명하다

1935, 소련 관료집단이 악명높은 모스크바 재판을 준비하는 동안, 트로츠키는 당시 망명지였던 노르웨이에서 이후 배반당한 혁명으로 불리게 될 저서를 집필하고 있었다. 이 저작은 당시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지배하고 있던 소련의 실상을 맑스주의 전통에 기초하여 분석하고 있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집단적 소유가 정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국가권력은 집단적 소유형태에 걸맞는 노동계급이 아니라 기생적 관료집단이 장악하였다. 트로츠키는 이러한 소련 체제의 성격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중간에 위치한 모순적인 사회체제로 규정하였으며, 이 체제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1) 국가 소유에 사회주의적 성격을 부여하기에는 생산력이 아직 너무 낮다; (2) 궁핍에 의해 조성된 자본주의적 본원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의 경향이 계획경제의 수많은 숨구멍을 통해 솟아나고 있다; (3)부르주아적 성격의 분배 규범이 새로운 사회분화의 기초가 되고 있다; (4) 경제성장은 근로인민의 상황을 호전시키고 있지만 특권층의 급속한 형성을 촉진하고 있다; (5) 사회적 적대관계를 활용하면서 관료집단은 사회주의에 적대적인 독립적 계층으로 전환했다; (6) 사회혁명은 지배정당에 의해 배신당했지만 소유관계와 근로대중의 의식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7) 모순이 더 축적될 경우 소련은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도 있고 자본주의로 다시 후퇴할 수도 있다; (8) 자본주의 복귀를 위한 반혁명은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분쇄되어야 한다; (9) 사회주의로 나아갈 경우 노동자들은 관료집단을 타도해야한다. 결국 소련의 사회성격은 국내외의 살아 움직이는 사회세력들 간의 투쟁에 의해 최종 결정될 것이다.


트로츠키는 이러한 사회체제를 퇴보한 노동자 국가라고 불렀다. 이 명칭은 우선 완벽하고도 되돌릴 수 없는 사회주의 체제의 승리를 자축하는 스탈린주의자들의 선언을 반박하고 있다. 동시에 191710월 혁명으로 성취된 것들, 특히 집단적 소유형태가 잔존한다는 점에서 이 사회가 여전히 노동계급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점에서 트로츠키는 소련을 국가자본주의, 관료적 집산주의 등으로 규정하면서 소련의 노동계급적 성격을 전면 부정하는 이들과 조금도 화해할 수 없었다. 트로츠키 사망 직전의 가장 중요한 저작인 맑스주의를 옹호하며는 소련의 방어를 거부하는 제3진영 이론가에 대한 트로츠키의 투쟁을 담고 있다.


이행 강령 : 노동계급의 생존을 위한, 권력 장악을 위한 강령

이행 강령은 노동자들의 즉각적이고 부분적인 요구를 옹호하되, 그것에 매몰되지 않으며, 노동계급의 최종적 정치목표를 추상적인 형태가 아니라 현실의 요구에 기초한 구체적 형태로 제기하는 것이다. 이행 강령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실현되는 최소요구와 같은 것이 아니다. 현실적 요구에 기초하여 최종적 정치목표, 즉 사회주의 건설을 구체적 형태로 제기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쇠퇴하는 제국주의 시대에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객관적 전제조건은 무르익었을 뿐 아니라 이미 물러 터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 강령의 전제이다.

이행 강령은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트로츠키주의에 적대적인 세력들, 특히 스탈린주의자들은 이행강령에 대해서도 아무런 가치 없는 것으로 폄하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행 강령이 트로츠키주의 운동 내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과 별개로, 이행 강령은 트로츠키주의 운동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맑스주의 전통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 온 것이다. 다만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와 파시즘의 시대에 그 이행강령을 적용시켰을 뿐이었다.

노동계급이 자신의 기본적 필요를 위해 투쟁할 것을 촉구하는 전투적 강령을 제시하여 공산주의자들은 후진적이며 동요하는 대중에게 혁명의 길을 제시할 수 있다.자본주의에서 노동계급의 장기적인 지위 개선은 불가능하다. 이 인식이 공산당의 모든 선동, 선전 및 정치활동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노동계급 독재체제 수립 때까지 당면한 실제적 요구 투쟁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는 현재 급격히 쇠퇴하면서 노동자들에게 배부른 노예의 삶조차 보장할 수 없다. 그런데도 사민주의자들은 계속해서 파산한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낡아빠진 평화로운 개혁을 강령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사민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최소 강령으로 후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명확히 반동적인 사기술임이 드러나고 있다. 공산당은 허물어져 가는 자본주의의 기초를 강화시키고 개선시키는 데 봉사하는 최소 강령을 제시하지 않는다. 공산당의 주요 목적은 자본주의 타도이다. 그러나 이 목적을 위해 공산당은 노동계급의 당면한 욕구를 표현하는 요구들을 제시해야한다. 공산당은 대중 캠페인을 조직하여 이 요구들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한다. 이 요구들이 자본주의의 유지와 부합하든 안하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코민테른 3차대회,


 

오늘날의 트로츠키주의

역사는 트로츠키와 그의 동료들이 당대에 수행했던 투쟁의 기조가 옳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말부터 1991년까지 이어진 소련과 동유럽 노동자 국가들의 붕괴는, 노동자 계급이 정치혁명을 수행하여 관료집단을 타도하지 못할 경우 노동자 민주주의에 의해서만 온전히 운영될 수 있는 집단적 계획경제 체제가 붕괴할 것이고, 계획경제 체제가 붕괴하면서 산업과 문화가 대규모로 쇠퇴하는 자본주의 복귀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트로츠키의 가정이 문자 그대로 실현된 것이었다.

또한 러시아와 동유럽의 자본주의로의 복귀가 해당 국가들의 인민들에게 대재앙이었음이 입증되면서, 이 재앙을 막기 위해 노동자 국가의 무조건 방어를 주창해온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입장이,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체제가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민주적반혁명 세력에 환호를 보내온 온갖 좌익’, ‘사회주의자들의 입장에 비하여 더없이 올바르다는 점 역시 입증되었다.

계급협조주의, 인민전선 역시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늘 경고했던 대로 노동계급에게 독약일 뿐이라는 점 역시 프랑스, 스페인 인민전선 이후에도 꾸준히 입증되고 있다. 특히 칠레, 인도네시아에서 인민전선은 대량학살과 노동계급 조직의 와해를 야기해왔다. 오늘날 그리스 독립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한 시리자에 대하여 환호를 보내거나, 이들의 배신행위를 비판하기를 꺼리는 사회주의자들은 유감스럽게도 과거 인민전선의 경험으로부터 어떠한 교훈도 얻지 못한 것 같다.

오늘날 많은 사회주의조직들이 각개약진하고 있지만, 대부분 노동계급 속에서 사회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른바 사회주의자는 노동조합 속에서 단지 좀 더 전투적인 면모만을 보일 뿐이다. 아주 드물게, 트로츠키주의 조직이었던 스파르타쿠스 동맹만이 노동자 정부 수립요구를 포함하는 이행 강령에 기초한 현장그룹을 건설하면서 미국 노동운동 내에서 전국적인 공산주의 반대파로 성장할 수 있었다.

 

* * *

트로츠키주의는 세계 노동계급 운동의 역사 속에서 그 올바름을 입증해왔다. 맑스-엥겔스-레닌으로 이어진 노동계급의 혁명사상의 현재적 계승이며 확대이다. ‘러시아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고, 그 혁명을 가장 끈덕지게 옹호했으며, 그 혁명의 운명을 가장 잘 예견한 사상이었다라는 점이 지난 100여 년 동안의 실천으로 통해서 입증되었다.

미래의 혁명적 실천은, 지난 실천으로 검증된 혁명적 이론 즉, 트로츠키주의에 기초할 때에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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