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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서거 100주년에 부쳐

: 누가 계승하고, 누가 매장하는가?

 

지난 115일은 로자 룩셈부르크, 카를 리프크네히트의 서거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레닌, 트로츠키와 더불어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창시자로 영원히 기억될 두 거인의 죽음은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단지 사회주의 운동의 서로 다른 두 조류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임을 명백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격변의 시기에,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와 왜곡되지 않은 마르크스주의의 탁월한 대변인들”(레닌)은 기회주의의 대변인들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어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망각하거나 은폐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룩셈부르크를 자신들의 반소주의·반공주의를 변명하기 위해 오용하는 좌익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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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에서 더 오른쪽으로 퇴보하여 이제 자본가 정당 연구소에 둥지를 튼 장석준은 그러한 좌익들 중의 한 사람이다. 100년 전 오늘, 역사가 꼬였다라는 제목의 프레시안 칼럼에서 그는 100년 전 룩셈부르크의 죽음을 짐짓 애석하게 생각한다는 투로, 판에 박힌 룩셈부르크에 대한 찬사와 사회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유감 표명을 늘어놓은 다음, 이내 룩셈부르크의 입을 빌려 볼셰비키의 반민주적 폭거를 비난한다.

우리는 룩셈부르크가 10월 혁명 이후 볼셰비키의 선택들을 가혹하게 비판한 이유를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중은 대중파업에서 그랬듯 예기치 않게 앞서 나가기도 하지만, 완강하게 변화를 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혁명 러시아에서처럼 당-국가가 지적-도덕적 전위를 자임하며 대중에 대한 독재를 실시할 수는 없다. 다시 한 번, 혁명의 주역은 대중 자신이다. 혁명은 철저히 민주주의와 일체여야 한다. 민주주의가 혁명을 전진시키는 결정으로 나타날 때만이 아니라 그 반대 상황에서도 이 원칙은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래서 룩셈부르크는 제헌의회 해산 이후 새 총선 실시를 거부하는 러시아 혁명 정부를 꾸짖었고, "진짜 자유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자유까지 인정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대중 자신의 살아 있는 활동, 가장 자유로운 공공생활을 통해서만 사회주의는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러시아 혁명 정부가 인내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길고 험난한 우여곡절을 수반하겠지만, 이것만이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이 글에서 밝히고 있지 않지만 그가 인용하고 있는 것은 룩셈부르크가 1918년 옥중에서 집필한 논문인 <러시아 혁명>이다. 이 논문은 고명한 사회주의자에게서 나온 볼셰비키 비판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볼셰비키를 비방하려는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글이 되었다. 그러나이 글을 자주 인용하는 사람들의 의사에 반하는이 글의 총론은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당이 역사적 순간에 용기와 혁명적 통찰과 일관성을 부여했다고 하더라도 레닌과 트로츠키, 그밖의 동지들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서구 사민당에 결여된, 혁명역량과 명성은 볼셰비키에 의해 구현되었다. 볼셰비키의 10월 봉기는 실로 러시아혁명만을 구제한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주의의 명예를 되살린 것이었다.

볼셰비키는 순수한 혁명정당이 역사적 가능성의 한계 내에서 기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기적을 행해서는 안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세계대전으로 인해 탈진될 대로 탈진된 나라, 제국주의에 의해 억압된 나라, 국제노동계급에 의해 배반당한 바로 그 고립된 나라에서의 시범적·무오류적 노동계급혁명은 기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볼셰비키 정책 중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과 본질적인 부분을 구분하고, 볼셰비키 정책 중 상황에 의해 생겨난 군더더기와 그 핵심을 가려내는 것이다. 현 시기에, 우리가 세계적으로 결정적인 최후투쟁에 직면해 있다면, 그것은 사회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였고, 또 지금도 문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차적인 전술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주의 권력에 대한 의지, 실천력, 노동계급의 투쟁 등등에서의 역량의 문제인 것이다. 이 점에서 레닌과 트로츠키와 그 측근들은 세계의 노동계급에게 하나의 예로서 앞서 나가고 있었던 최초의 집단이다. 지금까지는 그들은 아직도 나는 감히 하였다!”고 외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이것은 볼셰비키 정책에서 핵심적이며 불후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의 업적은 정치권력의 장악과 사회주의 실현문제의 실천적 정책, 전 세계를 통틀어 자본과 노동의 불평등한 관계에 과감히 종말을 가져온 실천이라는 점에서 국제노동계급의 선두에서 앞서 나가는 불멸의 역사적 기여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에서 문제는 이제 제기될 수 있을 뿐이다. 그 문제는 러시아에서 해결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도처에서 행해진 사회주의적 변혁의 미래는 볼셰비키주의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로자 룩셈부르크, 러시아 혁명

그럼에도 여전히 로자 룩셈부르크의 볼셰비키 비판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이다. 그런데 룩셈부르크가 생을 걸고 진정으로 지지한 정치적 입장이 무엇이었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그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장석준 류의 민주주의 못 잃는소위 좌파들에게 러시아 제헌의회 해산은 그야말로 반민주적폭거였는데, 러시아 혁명의 집필 이후 출소하여 독일 노동계급의 전위를 지도해야 할 책무를 떠맡게 된 룩셈부르크는 독일의 제헌의회를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독일 공산당 기관지 <로트 파너(Rote Fahne)>에 게재된 그녀의 입장은 매우 명료했다.

“‘국민의회를 위한 투쟁이 민주주의냐 독재냐라는 슬로건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굴종적인 사회주의자들은 이것이 사기라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반혁명적인 슬로건을 채택한다.

현재 문제인 것은 민주주의냐 독재냐가 아니다. 역사가 제기한 문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냐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냐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야말로 사회주의적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자본가의 이익에 복무하는 자들이 일부러 거짓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파괴, 폭동, 난동, 무정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다수의 의지 그리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정신에 따라서 사회주의를 성취하고 자본가 계급을 수탈하기 위해 정치권력이 사용하는 모든 수단을 의미한다.”Rosa Luxemburg, “The National Assembly,” Die Rote Fahne, 20 November 1918

비슷한 시기, 그녀가 기초한 스파르타쿠스 동맹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강령적 문서는 다음과 같은 요구를 담고 있다.

II. 정치적 사회적 요구

모든 군주제도의 폐지, 독일사회주의연방공화국 창설

모든 의회제도와 지방의회의 폐지 및 이들 기능의 노동자 병사평의회, 레테집행위원회와 그 기구들로의 이양

이상으로부터 확인되는 사실은 로자 룩셈부르크 생애 최후의 투쟁은 독일판 제헌의회를 분쇄하고 소비에트 권력을 수립하기 위한 투쟁 즉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수행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누구와 싸우고 있었나? 바로 부르주아 의회제도를 존중하지 않으면 폭거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사실상 사회주의 혁명을 포기하고 민주주의에 헌신할 것을 권고하는 장석준 류의 잡탕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룩셈부르크 혁명사상의 정수가 러시아 혁명의 몇몇 문구 속이 아니라 그녀의 이후 실천 속에 깃들어 있다는 점은, 그녀가 죽는 날까지 러시아 혁명의 출판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명백해진다. 필자의 뜻에 따라 의도적으로 감추어진 이 논문은 이후 1922, 공산당에서 제명된 파울 레비(Paul Levi)가 사민주의자로 재전향하면서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비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상에 공개하였다. 러시아 혁명출판 자체가 고인의 유지에 역행하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파울 레비의 행태는 장석준의 스승이라 할만한 것이었다.

룩셈부르크의 유명한 슬로건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를 인용하면서 장석준은 글을 마무리 짓는다. “그래도 부질없이 다짐해본다. 이번에는 반드시 야만의 반대쪽 대안이 승리해야만 한다.”. 그가 속한 정당의 지도자가 헌법 밖 진보는 용납될 수 없다면서 일말의 주저없이 야만의 편에 섰던 것을 떠올린다면 그 다짐이 조금도 진실되지 않다는 것을 간파하기란 어렵지 않다. 물론 장석준에게는 “20세기로부터 넘겨받은 숙제가 분명히 있는 듯하다. 러시아 혁명을 비방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하는, 룩셈부르크의 적수였던 카우츠키가 했던 과업을 오늘날에도 수행하는 것 말이다.

파울 레비가 만년에 복귀한 독일 사회민주당은 대단히 반동적이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노동계급정당이었다. 한편 장석준의 정의당은 이미 통합진보당 시절에 자본가 계급의 일분파와 결합하면서 더는 노동계급정당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고, 부정경선을 빌미로 벌어진 종북몰이 소동을 겪으면서 더욱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이전개업을 한 자본가 정당이다.(정의당의 계급적 성격에 대해서는, 노동자연대의 계급전선 교란 : 정의당 성격규정을 중심으로를 참조할 것.) 다시 말해, 오늘날 장석준이 지지하는 것은, 룩셈부르크가 생전에 악취나는 시체라고 일갈한 사회민주주의보다도 더 부패했고, “지구상 가장 악명높은 범죄자들이라고 비난했던 대상(독일사회민주당)을 아득히 뛰어넘는 흉물인 무언가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러시아 혁명 승리의 요인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에 가장 근접한 독일 노동계급의 지도자였다. 노동계급을 자본가 계급의 아가리로 끌고 들어가는 악명 높은 범죄자들과의 분립, 그것이 바로 승리의 첫째가는 요인이었다. 기회주의의 정체를 온전히 이해하는 노동계급의 혁명정당을 건설하는 것, 그것이 로자 룩셈부르크의 유지이고 100년 전 그의 죽음에 빚지고 있는 지금 노동계급의 책무이다.

 

볼셰비키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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