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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국가(소련/중국/북한 등)의 사회성격
2019.11.11 17:50

노동자 민주주의와 소련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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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민주주의와 소련 경제

 

[역주] 1973년 발표된 스파르타쿠스동맹의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명석한 선전가 조지프 시모어는, 작성 당시까지의 소련 경제를 통시적으로 살피며, 노동자국가의 경제 운영과 그 방어에 노동자 민주주의가 왜 중요한지를 상세히 논증했다.

 

<차례>

흔들리는 성장기제

경제개혁 대 정치혁명

소비와 계획

가격과 국가지출비용 조달

투자

임금

농업과 농민

제국주의 열강과의 경제적 관계

중국-소련의 경제적 단결을 위하여

 

* * *

국가 차원의 계획, 시장, 소비에트 민주주의, 이 세 가지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이행기 경제의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다.”트로츠키(Opposition Bulletin #5, 1932)

* * *

1950년대 미국의 지배계급은 소련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불길하게 여겼다. 급상승하는 소련의 경제 성장률을 따라잡는 것이 1960년 케네디 대선 캠페인의 주된 이슈였다. 평화로운 경제 경쟁을 통해 자본주의를 철폐한다는 흐루쇼프의 구상은 관료주의적 유토피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지배계급은 의심의 여지 없는 소련 경제의 역동성을 정치-군사적 위협으로 간주했다. 오늘날, 소련 경제에 대한 미국 지배계급의 태도는 180도 바뀐 것으로 보인다. 소련의 경제 성장은 단기적으로는 수출수요 창출로서, 장기적으로는 소련 사회 부르주아화(bourgeoisification)의 원동력으로서 반갑게 여겨지고 있다. 물론 소련이 서구 자본주의에 곧 항복할 것이라는 믿음은 희망사항 즉, 부르주아 허위의식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소련 경제가 역동성을 잃었으며 어려운 시기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련 경제의 변동은 소련 경제에 대한 미국 부르주아지의 입장 변화에 단지 부분적으로만 영향을 주었다. 오히려 이 변화는 미 제국주의와 소비에트 블럭 사이에서 발생한 전반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에 가까웠다. 결정적 변화는 60년대 초의 중소분쟁에서 비롯되었다. 중소분쟁은 가장 아둔한 부르주아 정치인조차도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민족적 한계에 봉착했으며 민족적 이익을 위해 공산주의의 이익을 희생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 같은 소박한 부르주아 철학자들이 민족주의가 공산주의보다 강했다.’라면서 입방정 떨기 시작했다. 미국 지배계급은 소련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을 타국 스탈린주의 관료집단과 싸우도록 부추겼다. 1960년대 말-70년대 초의 제국주의 국가 간 경쟁의 재개는 미국 지배계급이 다른 열강에 맞서기 위해 소련과 일시적 동맹을 맺도록 했다. 따라서 최근 미소무역이 세 배로 증대된 것은 순수한 상업적 이득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경제공동체(Common Market)가 소련과의 대규모 무역을 통해 취하던 정치적 우위 잠식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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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성장기제


미국 지배계급이 소련 경제를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것은 실제로 오늘날 소련 경제가 평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던 50년대 소련의 경제 성장률(연간 10.8%)60년대 6.5%로 하락했다(Slavic Review, April 1966, and U.N. Economic Bulletin for Europe, 1970). 이처럼 상대적으로 부진한 지표는, 흉작으로 미국에서 막대한 곡물을 수입한, 최악의 두 해(1963년과 1972)에 두드러졌다. 60년대 소련 경제성장률은 드골의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일본보다는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성장률이 급격히 하락하자, 1970년쯤에는 미국을 추월하겠다는 흐루쇼프의 허세는 브레즈네프-코시긴 지도부에게 확실히 당혹스러운 것이었고, 현 지도부가 규탄해야 할 전임자의 적지 않은 과오가 되었다. 의미심장하게도, 이런 문제들을 놓고 고심했던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이제는 일본이 미국을 언제 앞지를 것인지를 예측하느라 바쁘다.

소련 경제의 급격한 둔화는 1958년 흐루쇼프의 대대적 개혁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흐루쇼프가 농업에서 수립한 무모한 계획이 브레즈네프-코시긴 지도부의 공격 목표가 된 이래, 흐루쇼프 농업정책의 실책이 지나치게 과장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루쇼프의 농업정책은 소련 경제의 약한 고리를 드러냈으며, 관료적 주관주의가 어떻게 계획경제를 망가뜨리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흐루쇼프는 농업장비 독점을 통해 집단농장을 통제하려는 스탈린의 시도였던 기계트랙터사업소(MTS) 폐쇄에 착수했다. MTS의 장비들은 비싼 가격에 집단농장에 매각되었다. 이제 집단농장들이 충분한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고 여긴 관료집단은 농업장비 생산을 대폭 줄였다. 그리고 결국 흐루쇼프는 소련 농업의 작물과 지리적 기준을 하룻밤 사이에 바꾸어 놓는 결정을 내렸다. 옥수수는 사료용 작물이 되었으며 북부 지방에서 재배되었다. 그것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곳에서 말이다. 밀농사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시베리아 처녀지에까지 확장되었는데, 이 계획은 제정 러시아 관료들이 검토했다가 부적절한 것으로 판명되어 폐기처분한 것이었다. 마침내, 흐루쇼프는 농민들이 개인 소유 텃밭에서 적게 일할수록 집단농장에서 많이 일할 것이라는 고전적 스탈린주의 관점에 기초하여 개인 소유 텃밭과의 전쟁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보다 열심히 일하는 농민들은 도시로 달아났으며, 숙련된 일꾼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모든 요인들의 결과로서, 소련 농업의 채산성은 1959~1962년 사이의 인구 증가를 간신히 따라잡았으며, 1963년에는 1958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흐루쇼프의 지위도 1958년 그의 지위보다도 떨어지고 말았다.

주목받은 것은 흐루쇼프의 농업정책이었지만, 산업계획에서의 변화가 훨씬 더 중요했다. 1958, 흐루쇼프는 제15개년 계획 시행 이래로 경제계획상 가장 근본적 변화에 착수했다. 전국적인 산업부처에 의한 관리는 지역 계획으로 대체되었다. 그리하여 1962년 흐루쇼프는 국가계획위원회(Gosplan)의 기능이 그저 다양한 지역들의 계획을 조율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었다.(Pravda, November 20, 1962). 한편으로 이 지역주의적 변화는 중앙계획당국에 대한 지방 당간부층의 승리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다(같은 시기 중국에서 이와 비슷한 갈등이 대약진 운동 전야에 있었는데, 훨씬 더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지역적 계획으로 운송비는 절감되었지만, 그 시스템은 이전 중앙 계획보다 질적으로 형편없었다. 지역주의는 전국적 노동 분업과 규모의 경제가 가져다주는 이점을 걷어차 버렸다. 당연하게도 지역 간에 소규모 생산단위의 중복 현상이 나타났다. 지역계획당국은 자치·지역이기주의 경향을 빠르게 드러내었다. 동향 기업을 위해 타지역 기업과의 계약을 파기한 기업 스캔들이 소련의 신문지면을 도배했다. 설상가상으로 지역 당 간부들이 경제계획기구에 함부로 개입하였다. 1959~64년 소련 경제성장률을 1950~1958년 성장률의 2/3 수준으로 하락시킨 주된 요인은 바로 지역주의였던 것이다.

60년대 초 소련 경제의 약점과 실패는 흐루쇼프 몰락의 핵심 요인이 되었으며, 브레즈네프-코시긴 지도부가 경제정책상 대대적 변화에 나설 것을 요구하였다. 1965년에 도입된 이 변화는 이후 소련 경제계획의 틀이 되었다. 농업정책에서 흐루쇼프의 텃밭에 대한 전쟁은 역전되어서, 농민 소득은 어느 정도 늘어났고, 흐루쇼프의 기술적-지리적 곡예와는 정반대의 보수적인 농업정책이 추진되었다. 지역 계획은 철폐되어 예전의 행정시스템이 거의 온전하게 복원되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내부 조직과 생산 조절에 대한 기업 관리자의 통제력이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가격 체계는 기업 수익 증대를 위해 바뀌었다. 이렇게 수익을 낸 기업들은 처음으로 수익을 운용자금과 투자비용으로 지출하게 되었다(이전에는 그 비용을 중앙에서 지불했었다). 한편으로 흐루쇼프의 몰락과 코시긴의 부상은, 관리자들이 당 간부에 대해 거둔 승리이기도 했다.

1965~68년 동안 경제사정이 크게 호전되었다. 그러나 1969년은 소련 경제의 문제점이 흐루쇼프의 무모한 계획보다도 훨씬 심화되어 나타난 좋지 않은 해였다. 1969, 광업·철강·화학·철도·농업 등 주요 산업에서 목표한 생산량을 달성하지 못했다. 1965개혁의 내적 모순은 1969년까지 나타났다. 특히 1965년의 조치들은 생산재의 계획 생산은 유지하되, 투자금융을 부분적으로 탈()집중화했다. 따라서 투자수요는 곧 공급을 초월하게 되었고, 다수의 미달성 프로젝트들이 경제를 압박했다. 1969년 이래, 1965개혁과 결부된 잘못된 투자 계획은 소련 경제가 겪는 문제들의 주된 원천이 되었다. 코시긴은 1973년 계획의 목표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정의 분산, 건설기간 지연, 미완성 건축물의 과도한 증가가 건설업이 겪고 있는 주된 약점들이다루블화로 환산된 미완성 건축물 비용은 1961245억 루블에서 1972614억 루블로 늘어났다. 1973년 계획에서 소련 국가계획위원회를 비롯한 각 부처들은 신규건설을 줄여야만 한다.”Planovoye Khozyaistvo, Nov. 1972

소련 경제는 1970년에 되살아났다. 그러나 1971년 성장률은 1/3 가량 줄어든 6%로 떨어졌고, 1972년에는 다시 4%로 하락했는데, 이것은 1963년만큼이나 좋지 않은 실적이었다. 농업생산량의 하락 외에, 산업과 주택건설 분야에서도 목표 생산량을 크게 미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가스, 공작기계, 경공업용 기계설비, 경공업, 목재, 제지 분야에서도 계획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Pravda, January 30, 1973).

소련 경제의 역사적인 고성장의 밑바탕에는 두 가지 핵심요소가 있었다. 하나는 총생산량의 많은 부분(30%)을 공작기계, 야금, 전력에 재투자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 최고의 훈련된 노동력을 길러내는 최고의 기술교육 시스템이다. 소련의 투자 성향과 교육 시스템은 전과 같았지만, 예전 공식들이 더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투자 대비 산출량, 1인당 생산성 증가 수준이 1950년대의 그것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총생산성 저하는 세 가지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노동의욕의 현격한 저하, 기술진보의 쇠퇴, 계획기구 효율성의 총체적 하락. 노동의욕의 변동을 측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잦은 결근을 시베리아 유형으로 다스리는 강성 스탈린주의 요법을 부활시킨 1970년의 가혹한 노동규율 도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진보 수준도 계량화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1970년 이름 높은 소련의 물리학자들이 코시긴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는데, 내용인즉 소련과 미국의 기술격차가 이전보다 더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서한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미국과 우리의 격차는 경제의 가장 혁신적 부문에서 가장 큽니다. 우리는 석탄 채굴에서 미국을 앞서고 있지만, 석유, 가스, 전기 분야에서 뒤처져 있습니다. 화학은 10년 뒤처져 있으며, 컴퓨터 공학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뒤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Le Monde, April 11, 1970

처음으로 소련의 경제문헌들이 소련식 계획경제 하에서의 시설노후화, 설비개편 매커니즘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들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50년대 후반 이후, 관료집단의 한 분파는 스탈린 치하에서 발전시켰던 중앙계획이 경제성장의 근본적인 장애물이 되었고 어떤 형태로든 탈중앙집중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0년대 초반 이 경제 논쟁(리베르만 교수와 관련하여 유명하나 다소 오해가 있는)이 뜨거웠다. 1965개혁과 그것의 성공으로 경제 논쟁은 잠잠해졌다. 그러나 1969년 이후 심각한 경제적 문제들로 인해, 경제정책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다시 제기되어 관료집단을 뒤흔들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향후 몇 년간 소련 경제정책은 대전환을 맞을 것이다. 그 변화가 몰고 올 최초의 파장은 이미 들이닥쳤다. 경제행정의 기본단위가 개별기업에서 복수사업체의 조합(corporations)’으로 이전되었다는 최근의 발표와 더불어 말이다. 관료집단은 이것이 투자에 대한 중앙통제를 강화할 것이고, 크고 유연한 조합들이 극히 보수적인 공장 관리자들보다도 기술적으로 역동적일 것이라고 믿을 것이 틀림없다. 조합은 옛 스탈린주의 사무처와 상대적으로 자율적이었던 1965년 이후 기업을 절충해 놓은 것이다. 그것은 둘의 가장 안 좋은 측면들을 결합할 것으로 보인다. ‘조합관리자들이 현재의 기업 관리자에 비해 중앙계획당국에 대해 덜 이기적이고 덜 무책임하리라고 믿을 근거는 없다. 그리고 조합들이, 스탈린의 기구들, 흐루쇼프의 지역위원회 혹은 다른 상위 관리기구보다, 산업 영역에서 효율적으로 기능할 것이라는 믿음 역시도 근거 없어 보인다. 심지어 소련 관료집단도 그들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이 행정기구의 끊임없는 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경제개혁 대 정치혁명

탈집중화 논쟁은 지난 15년간 소련 경제의 취약함과 실패로 자극받아 일어났지만, 이 논쟁 그 자체로서는 소련 관료집단을 형성하는 두 그룹, 일선 관리자들과 그들 위에 있는 행정 관료들 사이의 갈등을 반영한다. 행정 관료들은 최소한의 자원을 투여하는 생산기준 충족을 원한다. 반면에 일선 관리자들은 가능한 한 최소한의 노력으로 계획의 요구를 충족하고자 한다. 따라서 일선 관리자들은 계획의 정신과 사회복지가 사업 성공의 관료적 기준과 충돌할 때마다 의식적이고 체계적으로 전자를 희생시킨다. 이 경향은 생산역량을 실제보다 축소 발표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래야 계획을 쉽게 달성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실제 필요량보다 가능하면 많은 투자재원(1965년까지, 상환하지 않아도 되는 국가보조금으로 충족된)을 끌어오려는 경향, 생산물의 질을 희생시키면서 공식적 생산목표에 어영부영 맞추는 경향이 생겨났다.

리베르만 구상 그리고 그와 유사한 방책들이 기업 관리자들의 출세를 위한 부정직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관료집단의 모든 대변인들은 부정직이 모든 사물의 본성이라고 여겼다. 그 유명한 리베르만 구상의 동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내놓은 예측이 실제 능력보다 훨씬 낮다면, 어떻게 기업에 계획수립을 맡길 수 있겠는가? 높은 수준의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 기업은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과도한 자본투자와 기계도입 요구를 멈추고, 불필요한 예비자원 축적을 중단하고, 기존 설비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기업에 이익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 지금은 기업들이 모든 잉여를 거의 자유롭게 비축하고 있지만, 새로운 시스템 하에서 기업은 성과급 삭감을 통해 비용을 줄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낮은 목표수량을 할당받으려는 기업의 투쟁은 근절될 것이다.”Pravda, September 9, 1962

다음은 코시긴이 생각하는 1965개혁의 동기이다.

현재는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고, 국가로부터 자본을 조달받는다. 기업 관리자는 기업의 재생산 비용 또는 추가적 자본투자가 얼마나 효과적일지를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투자된 자본을 상환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New Methods of Economic Management in the USSR, Moscow

흐루쇼프 같은 고위급 인사도 운영관리자들이 구제불능 수준에 도달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우리가 MTS 책임자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고, 우리가 그에게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그것이 늘 먹혀들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징계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Cited in New Directions in the Soviet Economy, Washington, D.C.)

탈집중화 논쟁 이면의 객관적 동학은 다음과 같은 기본적 문제들로 환원된다. 관료집단 통치 하에서 경제계획은 필연적으로 기업 관리자의 자원낭비를 낳는다. 위로부터의 구체적 지침으로 이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일관성 없는 계획을 야기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선 관리자를 시장 법칙에 복종시키고자 하는 강력한 경향이 생겨난다.

우리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스탈린주의 통치 틀 내에서 탈집중화에 반대하는 이유는 좁은 의미에서의 경제적 효율성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관료체제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자율적인 국영기업의 공장 관리자는 자본주의 기업 관리자와 비슷한 상황에서 업무를 수행한다. 그의 수입과 사회적 지위는 시장을 다루는 그의 능력에 달려있다. 저렴하게 구입하고 생산하여, 비싸게 파는 것 말이다. 그는 곧 그의 기업이 축적한 부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할 것이며, 부의 증대에 제약을 가하는 모든 조치에 반대할 것이다. 그는 독점적 이익을 추구할 것이며, 대외무역에 대한 국가통제를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선진기술을 습득하고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 말이다. 관료집단 통치 아래 시장 사회주의의 장기적인 경제적 효과는 유고슬라비아가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 자체로는 자본주의를 향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런 조치는 관료집단 내부에서 자본주의 복귀 찬동 세력의 성장을 낳을 것이다.

그리하여 경제 대논쟁은 소련 노동자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지만, 모두 용납될 수 없는 것들이다. 현상 유지는 독단적이고 낭비적 결정을 내리는 맹목적 관료주의를 의미한다. 한편 탈집중화는 그것이 미시적 효율성을 가져올 수 있을지언정, 경제를 시장의 무정부성에 종속시킬 것이며, 관료집단 내 자본주의 복귀 경향을 강화시킬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탈집중화론자들과 현상유지 옹호자들 사이의 대립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각양각색의 관료주의적 경직성과 무정부성은 스탈린주의 통치의 필연이다. 노동자 정치혁명 외에 관료주의를 극복할 대안은 없다. 단기적 효율과 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장기적 사회 효과라는 측면에서도, 노동자 민주주의는 건강한 소비에트 계획경제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소비에트 민주주의 복원으로 경제 문제 모두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노동자주의적 환상일 것이다. 고립에 직면한 소련 노동자국가의 근본 문제는 우선적으로, 관료집단 승리의 객관적인 토대로 작용한 궁핍에 있었다. 궁핍은 어떠한 경제정책을 시행하더라도 갈등과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계획경제 하에서조차도 정보수집에 있어 현실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경제전망은 필연적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제나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는 의미에서의 완벽한 경제계획이나 경제정책은 있을 수 없다. 노동자의 사기저하를 막고, 관료주의적 자원 남용을 막고, 자본주의 복귀 경향을 억제하기 위하여 노동자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소비와 계획

궁핍이 부과한 전반적 한계뿐 아니라, 소련의 계획경제가 인민들의 소비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측면에서 소련 경제는 특정 상품의 공급부족과 암시장의 만연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소련 상점에는 헐값에도 처분할 수 없는 저질 재고가 만성적으로 쌓여 있다. 소련 계획경제는 대중들이 원하는 양질의 소비재를 생산할 수 없다. 소련 농업의 후진성은 도시 노동자들의 매해 식량 소비에 심한 기복을 가져온다. 식량 소비가 소련 예산의 30%를 차지하는지 40%를 차지하는지 여부는 다른 소비재 수요에 큰 차이를 낳는다. 현재 소련 경제계획의 효율과 전반적인 생산성 수준을 감안할 때, 소비재 생산패턴은 장기적 상세 계획이 아니라 시장 수요의 변화에 맞추어져야 한다. 장기 계획은 투자, 군비지출, 주택, 교육, 의료 등에 한정되어야 한다.

소비재 생산의 전반적인 패턴은 수요조건이 아니라 소비재 산업의 설비구조 즉, 계획된 투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빵을 방직기로 굽거나 면직물을 오븐으로 만들 수 없으니 말이다. 투자 계획 속에 내재된 소비재 생산 계획 이외에, 앞으로 1년 혹은 2년 동안 키에프에서 판매될 우의나 레닌그라드에서 판매될 전구의 수량까지도 미리 예측하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헛된 일이다. 그런 것은 시장에 맡기면 된다. 현재의 소비재 생산은 시장에 의해 조절되어야 하지만, 소비재 산업에 대한 투자는 계획된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데, 수요의 변화는 일반 소비재 그룹들 사이에서보다는 그룹 내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후라이팬에 대한 냄비의 수요 또는 스웨터에 대한 셔츠의 수요는, 주방용품에 대한 의복의 수요보다 훨씬 심한 변동을 일으킨다.

소비재 생산 패턴을 시장수요에 맡기는 것이 곧 개별기업의 자율성 확대는 아니다. 시장의 역할 증대가 곧 기업경영진의 독자성 증진과 동일하다는, 일관된 그리고 그릇된 관점이 소련의 경제 문헌 속에서 제시되었다. 이것은 이른바 경제 대논쟁때문이었는데, 이것은 소련 인민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자원을 효율적으로 쓸 방법을 찾기 위한 논쟁이 아닌, 관료집단의 두 분파 사이에서 벌어진 권력투쟁이었다. 소련의 소비재 생산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중앙집중적 통제 때문이 아니었다. 경직되고 인민의 욕구에 둔감한 것이 문제였다. 노동자 자주관리가 시행되는 상황에서조차도 공산주의자는, 개별기업들과 최종소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 즉, 원자화된 경쟁이 생산을 결정짓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원자화된 경쟁은 기득권을 창출하고 독점의 폐해를 낳으며, 특히 노동계급으로 하여금 부의 축적을 우선시하는 협소한 관점을 가지도록 만든다.

소비재 생산은 기업과 최종소비자 사이에서 노동자국가의 공공이익을 대변할 중앙유통청(central distributive board)’이 통제해야 한다. 중앙유통청은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일단 유관 공장들에게는 특정 상품을 마진이 남지 않는 가격을 책정하여 생산하라고 지시해야 한다. 만약 원가와 판매가가 동일한 상황에서 공급부족이 발생했다면, 유통청은 공장들에 생산량을 늘리라고 명령해야 할 것이다. 만약 재고가 생겼다면, 유통청은 생산량을 줄일 것을 명령해야 할 것이다. 만약 생산량의 조절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면, 시장을 원활하게 작동시키기 위하여 가격을 일시적으로 높이거나 낮출 수도 있을 것이다. 중앙유통청은 각각의 기업들이나 소비자들보다도 미래의 수요와 공급조건을 예측하기에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데, 이 또한 중앙유통청이 갖는 장점 가운데 하나이다.

만약 소비재 생산이 변동하는 시장 요구에 따라 좌우된다면, 동일한 법칙이 생산재에까지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공급체계는 소련 경제계획의 참상 가운데 하나이다. 공급계획은 말 그대로 각 기업 간의 수백만 건의 연간 계약으로 구성된다. 이 시스템의 복잡함은 공급계획이 완전하게 이행될 수 없도록 만든다. 실제로 어느 성공한 소련 기업경영인이 가진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물자가 정말 계획대로 오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 공급체계는 관료집단의 부패를 낳는 주된 요인이다. 계획대로 물자를 공급받기 위하여 기업 관리자들이 물물교환, 정치적 연줄, 공공연한 뇌물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획된 납품이 실제 이행되도록 보장하기 위해 이른바 해결사(pusher)’라는 불법적인 직업이 등장했다. 현재의 계약 공급체계는 중앙공급청(central supply board)’으로 대체되어야 하며, 이 기관은 중앙유통청과 비슷한 원리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 공급청은 관련 기업들에게 변화하는 다른 기업들의 공급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특정 상품 생산을 지시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생산재 가격은 그것의 생산비용과 동일해야 한다. 물론 이 법칙은 심각한 공급부족 혹은 초과생산에 직면하여 완화될 수 있다.

민주적 노동자국가는 소비재 분배의 주체를 국가에서 소비자 협동조합으로 바꾸기 위해 힘써야 한다. 소비자 협동조합은 중앙유통청의 주요 거래처가 될 것이다. 대중을 경제계획에 끌어들이는 정치적 가치는 논외로 하더라도, 상품의 질을 희생시키고 양의 최대화를 선호하는 스탈린주의적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소비자 협동조합이 필요하다. 소련의 눈부신 생산량 수치는 형편없는 상품 질로 인해 흠집 나버렸다. 소련 관리자들은 수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계획을 시행한다. 따라서 산출량이 개수로 측정되는 경우 가장 작은 상품만이 생산된다. 산출량이 중량으로 측정될 경우, 쓸데없이 무거운 것이 생산된다. (소련의 가정에서 흔히 사용되는 은그릇은 바벨 대용으로 쓰일 수 있다.) 공장 관리자들과 이들의 상급자들은 소련 대중의 이익에 역행하는 현 실태를 잘 알고 있다. 코시긴은 이 문제를 직설적으로 언급했다.

경험한 바에 따르면 전체 생산량지수는 국민경제와 대중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품 생산 동기를 기업에 부여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것은 품질 향상에 제약을 가하는 듯하다. 우리 기업들이, 소비자들에 외면 받아 재고가 되는, 질 낮은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New Methods of Economic Management in the USSR, Moscow

그러나 대중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있으면서, 인민의 필요에 얼마나 잘 부응했는지가 아니라 자의적이고 일관성 없는 성공기준에 따라 경제관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관료 통치의 특징이다. 노동자의 기업 통제와 소비자협동조합의 분배 개입은, 인민의 필요가 아니라 그럴싸한 수치를 위해 생산하는, 스탈린주의의 고질적 관행을 뒤엎을 최선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가격과 국가지출비용 조달

자본주의에서나 현재 소련경제 체제에서나, 소비재 가격책정 그리고 투자금과 국가재원 조달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투자는 고정자본비율(, 이윤율)에 인건비를 더한 가격으로 이루어진다. 국가지출을 위한 재원은 세금, (특히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주로 판매세로부터 조달된다.

소련에서 투자 및 모든 형태의 국가지출은 주로 각각의 상품에 차등 적용되는 판매세에서 충당되었다. 1965년 이전에는 기업 이익에 부과된 세금이 국가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작았다. 기업 수익은 상품 판매가격이 인건비와 원자재 구입비를 합산한 것보다 소폭 상승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1965년 이후, 제품판매로 얻은 기업 이익이 국가세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보다 커졌다. 또한 1965년 이후 기업들은 그들의 세후 수익을 재량껏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노동자 민주주의의 필수조건 중 하나는, 정책의 손익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경제정책이 충분히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가격-세금 재무 시스템은 너무 복잡하고 제멋대로여서, 관료집단 자신과 어용 이론가들까지도 혼란스러워 한다. 소비재 재생산 비용 조달과 투자, 사회복지, 국방 등에 지출할 재원확보 사이에 엄격한 구분이 있어야 한다. 소비재는 원가(마르크스주의 용어로 고정자본+가변자본에 해당하는 임금+원자재 구입비+기타경비)에 판매되어야 한다. 모든 국가지출은 소득세의 징수를 통해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이 시스템 하에서 처음으로 소련 인민들은 그들이 소비하는 상품의 원가가 얼마인지, 투자재원, 군비지출, 교육 등으로 이전되는 생산물과 수익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시스템은 국가예산에 모든 투자자금을 집중시키는 이점도 가지고 있다.

 

투자

 

소비에트 노동자국가에서 가장 갈등의 소지가 많은 결정 중 하나는 소비와 투자(즉 생산 수단의 확장) 사이 배분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위당은 노동자 대중보다 더 투자지향적이다. 노동자들의 소비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국내외 사회주의 운동에서 소련 노동자국가가 갖는 지도적 역할 때문에라도 높은 경제 성장률 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높은 성장률은 농촌 인구를 산업노동력으로 흡수하고 제국주의 열강에 맞서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구사하기 위한 산업-군사적 역량을 갖추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적정수준의 높은 투자율은 관료주의적 지령을 통해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논쟁을 통해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최고 소비에트는 대안적인 장기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은 생산증가율과 소비증가율에 따라 적절하게 배분하여 투자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기본적인 계획은 토론과 민주적 결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개인소비와 집단소비(의료, 교육 등) 사이에서 생산물 배분, 군대 및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서 생산물 배분이 이 계획의 기본 틀을 규정한다. 주요 산업들 사이의 투자 배분은 예측을 통해 결정된다. 1인당 소비의 전반적 증가를 포착하면, 미래 소비수요의 양상을 대략 추정할 수 있을 것이고 주요 소비재 산업(의류, 가전제품, 가구)에 대한 투자할당을 결정할 것이다. 미래 투자율을 알고 있다면, 공작기계 생산의 양상은 기술부문에서의 전망을 통해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최종투자재의 패턴이 결정되면, 후방연쇄효과(backward linkage)[어떤 산업의 생산증가가 그 산업의 생산증가에 필요한 중간재나 원료를 공급하는 다른 모든 산업부문의 생산에 미치는 경제적인 효과]를 통해 중간재(철강, 시멘트, 플라스틱)를 추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의 반복을 통해 궁극적으로 일관된 계획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율과 생산자, 소비자에 대한 배분은 근본적으로는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다. 주요산업분야들 사이에서 투자를 할당하는 문제는 크게는 예측의 문제이다. 그리고 특정한 프로젝트나 기업들 사이에서 투자를 할당하는 문제는 소련의 경제계획에 있어서 오랫동안 골칫거리였다. 일반적으로 노동자 1인당 생산수단이 많을수록 노동생산성은 높아지고 생산원가는 낮아진다. 그러나 재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프로젝트에 최대한의 생산수단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정된 재원의 경제적 사용과 생산원가절감(, 노동생산성 향상)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말하자면, 특정 투자에 있어서 자본의 기술적/유기적 구성은 집산화된 계획경제 하에서 어떻게 결정되는가?

 

1965년 이전에 소련 관료집단은 독단적인 운영방식을 통해 그것을 결정했다. 투자계획에 우선순위가 정해졌다. 우선순위가 높은 프로젝트들은 거의 무제한으로 투자 재원을 조달받았으며, 관리자들은 정당화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많은 자원을 확보했다. 주로 소비재와 서비스 부문에 몰려있는 우선순위가 낮은 프로젝트들은 투자 부족으로 착수되지 못했고, 따라서 투자 계획은 결코 완전하게 달성될 수 없었다. 1965, 관료집단은 경영자적 이기심에 굴복하고 말았다. 중앙예산이나 은행으로부터 조달받은 투자금은 이제 기업이 낸 수익으로 갚아야 했다. 약간의 이자와 더불어서 말이다. 그러나 자의적으로 책정된 가격으로 기업의 이익 편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은 관료적 무정부 상태를 다른 형태의 무정부 상태로 대체한다. 그리고 총투자에서 증가한 몫의 배분은 이제 기업의 재량에 달려있기 때문에, 계획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실제 생산에 비해 과다한 투자를 위한 재정수요가 발생하고 이것이 미달성 프로젝트의 대거 양산으로 이어졌다.

 

대외무역 독점과 투자의 중앙통제는 계획경제 근간을 형성하는 두 가지 요소이다. 소련 노동자 정부는 모든 투자자금을 재집중해서, 일관되고 합리적 원리에 근거하여 개별기업들에 그 투자자금을 분배해야 한다. 개별 프로젝트와 기업들은 투자액 대비 생산비용 감소율이 모든 부문에서 동일해질 때까지 투자금을 조달받아야 한다. 이것은 모든 생산라인의 이윤율이 같아질 때까지 투자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자본주의 경제 논리를 계획경제 하에서 비슷하게 구성한 것이다. 이것은 한정된 재원을 분배하는 합리적인 방법이다.

 

놀랍게도 소련의 경제계획에서는 기존의 공장설비를 대체할 체계적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투자는 압도적으로 신축에 몰려있었다. 50년대 후반까지는 기존의 생산력에 비해 투자가 많았으므로, 재설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설비 노후화가 소련 경제의 주된 약점이 되고 있다. 코시긴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기존 체계 하에서, 자본투자는 거의 중앙계획에 의해서만 배분되고 있으며, 주로 공장신축에 집중되어 있다.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공장 대부분은 노후설비를 처분할 방법이 없고, 따라서 그것을 신속하게 교체할 수 없다.”New Methods of Economic Management in the USSR, Moscow

 

체코슬로바키아 사례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노후 공장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생산 하락의 주된 요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스탈린주의 보수파 노보트니가 실각하고 자유개혁가둡체크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소련은 체계적 재설비를 위한 긍정적 기제보다 장애물이 더 많았다. 기업 관리자들은 대체로 현재 생산 계획의 충족에 근거하여 보상을 받는다. 재설비는 현재 생산에 어느 정도 차질을 주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관리자들은 여기에 저항한다. 그리고 재설비는 목표 상향을 의미하므로, 소련의 공장 관리자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체계적 재설비가 중앙투자계획과 결합되어야 한다. 건강한 노동자국가에서 모든 공장들은 보수되어야 한다. 만약 재설비가 실업을 야기했다면, 실직 노동자는 동일 조건으로 다른 곳에 고용되는 것을 보장받아야 할 것이다.

 

 

임금

 

스탈린주의 통치의 핵심요소 중 하나는 관료집단 스스로에게 높은 소득을 보장하는, 극심한 임금격차이다. 1931년 이래 임금정책에 대한 모든 공식적인 성명서들은 트로츠키, 지노비에프, 부하린 도당과 그 밖의 인민의 적들의 것으로 여겨진 소부르주아적 평등주의에 대한 비난으로 서두를 장식했다. 1934, 소련에서 근로소득자 상위 10%의 평균소득은 하위 10%8배가 되었다. 1953년 개혁 이후 임금격차는 어느 정도 완화되어서, 1959년 근로소득자 상위 10%의 평균소득은 하위 10%6배 수준이었다(Yanowitch, Slavic Review, Dec. 1963). 1966(이 해가 열람 가능한 소련 소득분배 관련 통계가 있는 마지막 년도)에 상위 10%의 소득은 하위 10%의 약 4.5배 수준이었다(Wiles and Markowski, Soviet Studies, Apr. 1971). 1965년에 비서의 월급은 60루블이었고 과학연구소 간부는 600루블을 받았는데, 이것은 소련 임금 실태를 대략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Yanowitch, loc. cit.). 소련에서 관료, 전문가들은 높은 임금을 수령했는데,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의 두 배 정도였다.

 

혁명적 노동자 정부 하에서 임금은 될 수 있으면 평등하게 지급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다른 직종, 산업, 지역 간에 노동을 이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임금격차는 유지하되 말이다. 힘들고 내키지 않는, 또는 위험한 일 혹은 직업훈련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직업으로 유인을 위하여 종종 임금격차가 필요하기도 하다. 만약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이 동일하다면, 공급인력이 부족한 일자리는 강압으로만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에 도달하기 이전까지, 광부, 장거리 화물기사, 공구제조업 종사자들은 평균보다 많은 임금을 받게 될 것이다.

 

도덕 대() 물질적 보상에 대해 마오주의자, 카스트로주의자들은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계획경제에 대한 관료집단의 직권남용 때문에 이것에 대한 모든 논의는 무의미할뿐더러, 이 논의 자체가 경제 대() 강제력에 대한 논쟁으로 축소되어버린다. 관료집단을 타도하여 노동자 민주주의(노동자 생산통제, 노동자 평의회를 통한 합리적 경제계획)를 복원하기 이전까지, ‘도덕적 보상에 대한 그 어떤 이야기도 관료집단의 호화로운 생활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모두에게 임금을 평등하게 지급할 수 있다는, 그리고 도덕적 보상(선전 캠페인, 고된 직종에 부여된 사회적 명예)만으로도 모든 노동의 배분이 가능하다는 발상은 건강한 노동자국가 하에서라도 순전한 공상에 불과할 것이다. 현실에서 도덕과 물질적 보상은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순수하게 정치적 수단을 통해서 인력공급이 부족한 직종으로 노동자들을 유인할 수 있다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임금격차는 훨씬 적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적 이상주의와 진취적 정신에 호소하는 선전 캠페인을 통해서 소련 노동자들을 시베리아 유전 지대로 유인할 수 있다면, 시베리아 유전 노동자와 카프카스 유전 노동자의 임금격차는 보다 줄어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직종간의 임금격차에 대해 덧붙이자면, 임금격차는 역사적으로 개별노동에 규율을 부여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도급제(piece-rate system)[노동자에게 일정한 노동량을 주고 그 수행 정도에 따라 품삯을 지급하는 제도]가 그것이다. 직종 간 임금격차는 경제적으로 빈곤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요구되는 것이지만, 도급제는 가장 반동적인 종류의 자본주의와 연관된 위험한 관행이다. 도급제는 불평등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하게 만들면서 노동계급의 기본적 사회적 연대를 무너뜨릴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도급제를 시급제[노동한 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대체하는 것은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인 목표였다. 스탈린주의 노동정책의 반동적 성격은 만연한 도급제를 통해 드러났다. 1956년 이전, 소련 노동자 75% 이상이 도급제의 적용대상이었다(Yanowitch, loc. cit.). 도급제에 대한 대중적 혐오는 탈스탈린 개혁의 일부로서 도급제 단계적 축소로 이어졌다. 그러나 현재의 계획에서도 소련 노동자의 45~50%가 여전히 도급제 적용대상이다(Yanowitch, loc. cit.). 노동자국가에서 도급제를 시행한다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개별적 노동규율은 민주적 노동자정부의 도덕적 권위를 통해 확립해야 하며, 각 사업장의 노동자 자주관리위원회의 압박을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

 

노동규율의 극심한 문란은 정권에 대한 노동계급의 불만을 보여주는 징표이다(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이후의 처참한 생산성 하락이 그 사례이다). 1920년대 초반에 소련이 처한 상황 같은 사회경제적 혼란 속에서는 도급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소련에서 그것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으며,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

 

공무원, 관리자, 전문가들이 대부분의 노동자들보다 몇 배 많은 임금을 받는데, 이는 소득분배에 있어서의 부르주아화 현상이다. 임금격차 발생 필요성이 일반적으로 존재하지만, 지금의 격차는 정당화될 수 없다. 소련 관료집단의 고임금은 합리적인 경제적 필요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순전히 기생적인 것이다. 생산업무와 비교해서, 관리업무는 흥미롭고 만족스럽고 명예로운 일이며, 자격을 갖춘 대체자가 충분히 있다. 또한 노동자정부는 출세주의자가 아니라 검증된 사회주의자들 가운데서 관리자를 뽑아야 한다. 옛 볼셰비키의 규범은 간부 직책에 있는 당원이 숙련노동자들보다 많은 임금을 받지 못하게끔 하였는데, 그것이 소련 공직사회 전반의 규범이어야 할 것이다.

 

과학자와 전문가의 임금은 약간 다른 문제를 보여준다. 고급인력의 공급은 교육제도(가령 물리학자, 전기기사 양성을 위한 장학금의 책정 등)를 통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고급인력의 세계시장이 존재하며, 소련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은 서방세계에서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의사 및 여타 과학 노동자들이 후진국에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로 대거 이주하는 현상(이른바 두뇌유출’)은 제국주의의 가장 교묘하면서 파괴적인 측면 가운데 하나이다. 여기에서도 정권의 도덕적 권위는 매우 중요하다. 현재 소련 유대인과 관련된 논란이 소련 정부의 정치적 성격과 기술 엘리트 이주 사이의 연관성을 부각시켰다. 만연해있는 대러시아 국수주의와 그것의 반유대주의적 측면 때문에 유대인 전문직 종사자들 상당수가 소련을 떠나고 싶어 한다. 고급인력 손실을 보상받으려는 소련 관료집단은 대단히 반동적인 수단에 의존했다. 세계 시오니즘 운동에, 유대인 전문가들의 몸값 즉, 이들의 육성기간에 상응하는 일정금액을 요구한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 자본가 계급은 소련을 노예제 국가로 비난할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에 충실한 소련 정부였다면 어렵지 않게 유대인 전문가들이 반동적 시온주의에 현혹되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소련 대중의 욕망과 이익을 확실하게 대변하는 노동자정부라면, 서방세계가 안락한 삶으로 유혹하더라도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사장과 군국주의자들의 자발적 하수인이 되는 것을 손쉽게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소련 노동자국가에서 외교관, 군 지휘관, 계획위원회의 수석경제학자 또는 공장 수석엔지니어의 임금이 국영농장 트랙터 기사 또는 용접공의 그것과 질적으로 차이나야 할 이유는 없다.

 

 

농업과 농민

 

소련은 전체 수확량의 17%에 해당하는 2,800만 톤의 미국 곡물을 수입했다. 이는 소련 경제가 스탈린이 강제적 농업집단화와 이후 정책으로 인한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최근의 증거이다. 소련 농업정책에서 복합적이고 지속적인 개혁이 시행되고 있으나, 정작 소련 농업의 문제는 따로 있다. 1929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소련 관료집단은 집단농장의 생산물을 국가에 공짜 아니면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할 것을 강제하면서 농업 총생산과 농민의 충성심을 희생시켜왔다. 1930년대에 이 정책은 소련 대부분의 가축이 도살되고, 가뜩이나 낮은 식품 소비율이 15% 가량 떨어지고 농민의 일부가 기아에 허덕이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친나치활동에 가담하도록 만들었다. 전쟁 이후 소련의 농업정책은 결과적으로 만성적인 식량 부족과 흉작을 야기했는데, 이것은 소련 인민들의 건강과 물질적 삶의 질을 저하시켰을 뿐만 아니라, 경제계획에서 가장 해로운 요소였으며 미국이 소련에 곡물공급을 빌미로 주기적으로 정치적 협박을 하도록 만들었다. 소련이 북베트남에게 미국과의 평화조약에 합의하도록 압박한 것은 이 곡물 거래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 소련 관료집단의 한 분파는 현재 시베리아 가스 석유의 수출로 얻을 이익이 상당하기 때문에 식량 수요의 상당부분을 영구적으로 수입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야기될 것이다.

 

소련 관료집단은 순전히 기술적 발전만을 통해 농업생산량을 늘리려 한다. 농장시설과 비료에 더 많이 투자하고, 흐루쇼프식으로 작물재배의 지리적 기준에 급격한 변화를 주는 것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나 소련 농업실패의 주된 원인은 농민에 대한 태도와 보상에 있다. 농민의 개인 텃밭은 전체 집단농장의 약 6% 수준이었는데, 그것에 4분의 1에서 3분의 1 정도의 노동이 투입되었고, 현대화된 장비는 제공되지 않았다. 개인 텃밭은 소련 농민 소득의 절반을 차지했으며(1950년대에는 거의 3분의 2), 감자, 계란의 60% 이상, 육류와 채소의 40% 이상을 생산했다(Nimitz in Karcz ed., Soviet and European Agriculture; Nove, The Soviet Economy). 다시 말해서, 농민은 개인 텃밭이 훨씬 이득이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생산성은 집단농장이 더 우수한데도 말이다! 기존 제도에 급진적 변화를 주는 것만이 집단농업에 대한 농민들의 의욕을 끌어올릴 수 있고, 소련 농업을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합리성과 사회정책의 관점에서 보자면 소련 농업을 점차 청산하고 대부분의 음식을 수입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소련의 도시거주민들에게 식량을 공급할 여력이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그리고 미국 지배계급은, 소련이 미 제국주의에 노골적 협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유순한 외교적 태도를 보여야 식량을 제공하려 들 것이다. 그러므로 소련 노동자 정부는 최악과 차악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선택지는 자급자족 농업을 구축하는 것인데 이는 농민의 사회적 비중과 정치적 영향력이 어느 정도 증가함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제국주의 협박에 시달리면서 대부분의 식량을 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다. 둘 중에서 전자가 차악이다.

 

현실적으로 혁명적 소련 노동자 정부라면, 아마도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농민은 정치혁명에서 중요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그들이 반동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농민의 이익에 양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 양보는 다음과 같은 노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집단농장은 진정한 의미의 협동조합이어야 한다. 협동조합은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조합원의 자주적 결정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국가는 집단농장 생산물에 시장가격을 지불하여야 한다.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팔 것을 강제하려는 시도는 암시장의 성행과 농민에 대한 억압을 야기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근본부터 망가지게 된다. 그리고 집단농장은 반드시 그들의 모든 생산물을 국가에 판매해야 한다. 이것은 농촌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상업자본가 계급의 성장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하다. 시장가격으로 구입해서 발생하는 불이익은 집단농장에 누진소득세를 과세하여 어느 정도 벌충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의 불이익은 식량보조금을 통해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만약 집단농장이 진정한 협동조합이 된다면, 해산하여 개개인의 소유로 돌아갈 수 있는 합법적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노동자국가는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도 집단농장을 유지할 강력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 집단농장은 자영농보다 낮은 과세율을 적용받고, 자영농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융자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자영농 계급이 형성되었다면, 임노동자 고용을 엄격히 금지하여 그들이 농업 자본가가 되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 사적 임노동에 대한 보편적 혐오 정서는 금지정책 시행을 쉽게 만들 것이다. 애석하게도, 40년에 걸친 스탈린주의의 농민 억압으로 인하여, 레닌주의적 노농동맹의 재건이 소련 정치혁명이 달성해야 할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제국주의 열강과의 경제적 관계

 

시베리아산 가스-석유 무역으로, 제국주의는 소련 경제에 직접 침투하고픈 욕망을 느꼈다. 부르주아 언론, 마오주의자, 3진영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시베리아 무역은 외국인 투자가 아니다. 추출시설과 생산된 연료 모두 소련 정부 소유이다. 무역은 물물교환 형태 즉, 추출시설을 들여오고 일정량의 가스-석유로 결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설비 대금은 모두 지불될 것이다. 시베리아 가스-석유 무역은 형식상 피아트의 톨리아티 자동차 공장, 포드의 카마 강 트럭 공장 설립안() 같은 대형 산업단지 유치와 비슷해 보이지만, 이전 사업과 개입 크기가 달라 소련 경제에 질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우선 소련 주요산업의 전반적 발전은 결정적으로 몇몇 대기업과의 장기간에 걸친 협력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시베리아 무역으로 평화공존이라는 스탈린주의의 반동적 발상이 소련 경제에 관철되는 것이다. 브레즈네프는 시베리아산 가스-석유 무역의 정치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지도를 가리키면서 닉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나올 부를 당신과 나누어 가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New York Times, Jan. 14, 1973).” 시베리아 가스-석유 사업은 세계 부르주아 세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석유회사들에게 소련의 정책에 영향을 줄 수단을 새롭게 제공할 것이다. 시베리아 사업에 개입한 석유기업들은 경제 수단을 통해 소련의 대외정책과 중동의 친소 공산당 활동에 영향을 미치려 할 것이다. 소련 관료집단의 민족주의적 이기심 때문에, 시베리아 무역에서 [제국주의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천연가스 이상일 것이다.

 

소련 관료집단은 부르주아지의 사회적 영향력에 의해 부패하기 쉽다. 노동계급의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자본주의적 경영이 소련 경제 핵심부문을 관리하는 데에 도입될 것이다. 경제적인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사회적 측면에서 시베리아 유전은 소련 영토 안에 있는 외국 자본의 섬이 될 것이다. 시베리아 사업을 관장하는 소련 관료집단의 한 분파는 그들과 제휴하는 자본의 관점에 매몰될 것이다. 관료집단 치하에서 소련 경제행정에 침투한 자본주의적 경영자의 존재는 부르주아화의 강력한 요인이다.

 

혁명적 노동자국가이더라도 시베리아산 가스-석유 무역과 같은 것에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은 항상 신중하게 시행해야 한다. 사업조건은 경제적인 것에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만약 자본이 이러한 사업을 국내정치나 대외정책에 개입하기 위한 지렛대로 사용한다면,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라도 그 사업을 취소해야 할 것이다. 사업에 참여하는 소련 담당자들이 스스로를 동업자들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자신들이 계급의 적과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늘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물론 생산현장의 노동자 통제는 제국주의 기업과의 공동사업으로 인한 소련 사회의 부르주아화를 방지하는 최고의 수단이다.

 

소련 노동자국가는 국제 노동 분업의 이점을 활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경제계획은 수출과 수입 극대화를 위해 설계되어야 한다. 이 일반적 공식은 몇 가지 조건에 종속된다. 특정 자본주의 기업과의 오랜 협업은 최소화해야 한다. 자본주의 기업들이 소련 경제에 있어서 영구적인 공급처, 채권자, 조언자로 간주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곡물 같은 중대한 물자를 수입하는 것은 잠재적으로 경제적 위협이 될 것이기에 소련은 그것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소련이 원자재와 경공업제품들을 수출하고 기술적으로 앞선 제품들을 수입하는 식민주의적 성격의 무역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현재 세계시장의 가격-원가 구성에 상관없이, 소련은 기술적으로 앞선 산업분야에 투자해야 한다. 비용 절감의 핵심 요인 중 하나는 생산 경험이기 때문이다.

 

 

중국-소련의 경제적 단결을 위하여

 

관료주의적으로 통치되는, 각자 14개의 국민경제 정책을 가진 14개의 노동자국가가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점철된 갈등은 제국주의 세력의 반혁명 책동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소련 지도부와 관계를 단절한 노동자국가의 사례를 보면, 제국주의자들로부터 더 나은 조건을 제시받은 것에 반해 소련과의 무역에서는 불이익을 당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1948년 유고슬라비아가 소련과 갈라선 직접적 이유는 상대적으로 발전된 소비에트 블록 국가들로부터 기계를 수입하기 위한 협상이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중소분열의 중요 요인 중 하나는, 중국이 원자재와 경공업제품을 소비에트 블록보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에 수출하는 것이 더 나은 값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수출품은 대개의 경우(50년대에 소련이 중국산 주석(朱錫)을 헐값에 재수출했을 정도로) 소비에트 블록에게 불필요했다. 그리고 루마니아의 자주외교정책은, 그들의 주요 기계공급처가 동독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서독으로 바뀐 것과 관련이 있다.

 

소련이 무역을 통해 소비에트 블록 내의 보다 작은 국가들을 착취한다는 신화를 부술 필요가 있다. 소련 관료집단은 위성국가들을 착취하기는커녕 블록 내 무역을 최소화하고 싶어 했다. 특히 스탈린 집권기인 1945-54년에 말이다. 소비에트 블록의 모든 국가들이 세계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이 자기들끼리 거래하는 것보다 더 이득이라는 사실이 문제가 된 것이다. 소련을 포함하는 동유럽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만한 무역권이 아니었으며, 2차 세계대전 이전에 그들끼리의 무역은 거의 없었다. 지리적으로 한정된 시장보다 세계시장에서 더 저렴하게 물자를 구입할 수 있고, 종종 더 좋은 조건으로 수출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소련을 포함한 블록 내 모든 국가들에서 동유럽 무역기구 즉 경제상호원조회의(코메콘)’를 포기하고 세계시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소련이 선진자본주의국가로 수출처를 옮기면서 동독과의 거래, 동유럽 무역권을 청산한 것은 그런 경향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헝가리 무역 관계자에 따르면 소련 정부는 석유수출을 서방으로 확대하기 위해 헝가리의 화학공업에 석유를 공급하려던 계획을 철회하였다. 카다르에게 이라크에서 석유를 구하라는 우정 어린 조언을 하면서 말이다!(NY Times, 20 May 1973.) 이 원심력이 코메콘을 파괴한다면, 동유럽 국가들은 되살아나고 있는 서유럽 제국주의 특히 독일에 경제적으로 흡수당할 것이다.

 

후진적 노동자국가를 위협하는 세계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우월한 생산성으로 노동자국가보다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레닌은 시장을 이용하고 신경제정책 시기에서처럼 자본주의에 양보하더라도, 대외무역의 국가독점만큼은 노동자국가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코메콘은 대외무역의 독점을 개별국가 너머로 확장하려는, 근본적으로 불충분하고 내적으로 모순된 시도이다. 하지만 그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코메콘은 일국적 무역정책에 비해 진보적이다. 그렇지만 코메콘에 내재된 모순은 그 경제권을 파괴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제국주의에 맞선 동유럽 노동자국가들의 방어에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코메콘 경제학자들과 그들과 생각을 같이하는 부르주아 학자들은 소비에트 블록 국가 간 최적의 또는 공정한 무역조건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임무이다. 경제계획이 일국적인 한, 코메콘 거래가격은 오직 세계 가격 · 국내 원가 · 정치 공작 사이의 자의적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결정될 것이다. 이 문제는 코메콘에 가입된 한 국가 내의 그리고 코메콘 가맹국가들 사이의 가격과 생산비 사이의 차이를 통해 드러날 것이다. 대부분의 소비에트 블록 국가에서는 도매 가격이 평균 생산 비용과 동일하다. 평균 이하의 비용을 들여 생산하는 신식 공장들은 이익을 남기고 그 대부분은 세금으로 징수된다. 고비용의 낡은 공장들은 손실을 기록하고 보조금을 지급받는다. 이 시스템은 총비용을 중앙에서 관리할 때에만 가능하다. 만약 보조금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면, 고비용 사업장들은 재설비되거나, 다른 제품을 생산하도록 변경되거나, 폐쇄될 수 있을 것이다. 각 계획경제 사이의 거래가 결여한 것이 바로 이러한 비용관리이다. 폴란드 정부는 자신이 수입할 소련의 철강 생산비용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소련 정부도 폴란드의 농산물 생산비용에 대해 마찬가지이다. 코메콘 내 거래가격은 생산원가와 세계시장가격이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요동하며 이는 국가 간 갈등을 심화한다. 만약 생산원가에 수출된다면, 이는 수입국이 무역 상대국의 수출산업에 보조금을 지불하는 것과 같다. 그 원가가 세계시장 가격보다 높다면(예를 들어 동독의 기계류), 수입국(가령 루마니아)착취당하고 있다며 야단을 떨고 닉슨에게 국빈방문 초대장을 보내기 시작한다. 따라서 원가에 수출하는 것은 수입국을 코메콘에서 이탈하여 더 싸게 수입할 수 있는 드넓은 세계시장으로 가도록 만든다. 코메콘 내에서 세계시장가격을 이용하는 것은 고비용 산업의 위축을 부추길 것이다. 어느 코메콘 경제학자가 직설적으로 말했듯이, “몇몇 사회주의 국가의 기계류는 아주 싼 가격으로만 세계시장에 재판매될 수 있을 것이다(Bogomolov, Mirovaia ekonomika i mezdunaronve otnosheniia, No. 5, l966).”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 기계류가 서독 제품과 비슷한 가격에 팔린다면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소련 집단농장의 농민들이 이집트의 면화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양모를 상대로 가격경쟁을 벌인다면 그들은 굶어 죽을 것이다. 코메콘이 세계시장가격을 이용한다면 그것은 마치 소비에트 블록 각국이 순수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무역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거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소련을 예외로 하면, 이러한 무역 시스템은 여러 국가들에 당장의 국제경쟁을 따라가도록 강요하면서 계획경제의 효율성을 질적으로 약화시킬 것이다. 소비에트 블록의 존재가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 국가들의 정치적 유대는 곧 깨질 것이다.

 

북베트남에서 동독까지 아우르는, 투자의 집중과 국가 간 노동력 이동이 보장되는, 통합된 경제계획이 필요하다. 통합된 경제계획 그 자체로는 다른 경제정책이 국가적 이해 차이를 낳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천만한 국가 사이의 관료주의적 갈등으로 이끄는 지금의 일국적 문제는 지역 계획 형태로 노동자 민주주의를 통해 제어될 것이다.

 

경제 통합은 노동자국가들 사이의 갈등을 완화시킬 뿐만 아니라 보다 확대된 분업과 규모의 경제를 통해 생산성을 크게 증가시킬 것이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경제정책은 일반적으로 일국적 완결성을 목표로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생산의 중복, 경제적이지 못한 소량 생산, 체면 치레를 위한 낭비를 낳았다. 인구 1,500만의 작은 나라인 체코슬로바키아는 전세계에서 생산된 모든 기계 종류 중 80%를 생산한다고 알려져 있다(Wiles, Communist International Economics.)! 마찬가지로 동독도 소량 생산의 늪에 빠져있다. 한 동독 경제학자에 따르면, “현 영역[코메콘]에서의 국제분업은 최신 생산설비를 갖추지 못하게 한다. 특히 기계제조업에서 그렇다. 대량생산 비중은 현재로서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이다. 어떤 생산방식은 다양한 설계방식으로 대단히 적은 양을 생산한다(Ruschick, Neues Deutschland, March 6, 1960).” 자급자족을 위한 많은 사업들이 공급이나 원자재 비용을 거의 무시한 채 벌어지고 있다. 공급비용이 생산가치를 초과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가령 헝가리 두너우이바로시 제강소). 대외무역의 국가독점과 결합된 경제 통합을 통한 생산성의 획기적 성장은, 중국과 소련이 자본주의 열강들과의 무역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할 것이다.

 

스탈린주의적 경제 일국주의의 가장 반동적인 측면 중 하나는 국가 간 노동력 이동을 금지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노동생산성 향상 기회를 포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가난한 농민들의 정치적 불만을 계속 키울 것이다. 지난 수년간 동독의 가장 심각한 경제 문제는 극심한 노동력 부족이었다. 이웃한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는 사회적으로 후진적인 농민인구가 차고 넘쳤는데 말이다. 지난 수십 년간 소련 관료집단은 남시베리아로의 이주를 장려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했다. 수백만 중국 농민에게 남시베리아에서의 영농과 노동은 생활수준의 비약적 개선을 의미한다. 중국-소련 사이의 국경을 초월한 노동력의 활용은 생산성 향상의 원천이 될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적 지위를 늘리고 그들의 국제주의 의식을 심화시킬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일국의 후진적 노동자국가 혹은 그러한 국가들의 모임은 선진자본주의국가로 사회주의 혁명의 확산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일국사회주의기치 하에 소련에서 일국적 관료집단이 승리한 것은 자본주의 하의 노동자들 그리고 소련 노동자국가의 방어를 감안하더라도 대단히 반혁명적인 것이었다. 동유럽과 중국으로 관료주의적 노동자국가가 확산된 것이 소련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과 미-소 냉전의 심화와 연관되었으므로, 국가 간 갈등으로 인한 소비에트 블록의 붕괴는 요원해 보였다. -소 국경분쟁과 닉슨의 방중 이후, 갈등은 노동자국가들의 존립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동유럽, 소련, 중국의 정치 · 군사 · 경제적 단결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대항하는 노동자 혁명의 가장 시급한 임무가 될 것이다.

 

시모어

19734

 

Seymour

April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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