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와 전쟁

(IBT) 제국주의의 피비린내 나는 자취 ( 24호, 2002)

by 볼셰비키-레닌주의자 posted Dec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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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의 피비린내 나는 자취

 

영구적인 억압과 무한 부(不)정의

 

 

미 공군의 첨단기술에 의한 폭격으로 탈레반 정권이 잔인하게 전멸된 후 미 대통령 부시는 이렇게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시작에 불과하다.”  미 행정부의 예상에 의하면 최소한 10년이 걸릴 “테러대전”에서 이라크와 소말리아가 제국주의의 피비린내 나는 공격의 다음 대상으로 널리 생각되고 있다.

 

뉴햄프셔 대학 경제학 교수 마크 헤럴드가 2001년 12월 10일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아프가니스탄 전쟁 과정에서 미군의 폭탄으로 3천5백 명 이상의 아프간 민간인이 살해되었다. 이 수치는 세계무역센터의 9월 11일 테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치와 거의 같다. 그러나 미 국방성의 나팔수에 불과한 국제 부르주아 언론은 이 사실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벌이면서 1991년 걸프전처럼 유엔의 이름으로 전쟁을 수행한다거나 1999년 유고 전쟁처럼 나토를 대신해서 전쟁을 수행한다는 허세마저 버렸다. 오랫동안 식민주의의 반대자로 자신을 포장해왔던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은 현재 세계 구석구석에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현재 미국은 우주에 무기를 배치하겠다는 공격적인 계획(미사일 방위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리고 상당한 규모의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세계적 환경 관련 조약들을 무시하고 있으며 1972년에 조인한 탄도미사일 금지 조약을 폐기했다. 이 조치들은 현재 전세계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일본과 유럽 연합 등 미국의 라이벌 제국주의 국가들은 현재 미국에 대항할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의 새로운 일방주의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제국주의자들 간의 긴장이 증대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국내에서 부시 행정부는 “야당” 민주당, 대중 매체, 노동조합 관료들의 도움을 받아 9월 11일 테러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반동적 외국인 배척운동의 물결로 몰아가는데 성공했다. 미국과 “연합” 동맹국 하수인들이 합작해서 이룬 탈레반 정권에 대한 일방적 승리는 앞으로 있을 군사적 모험에 대한 국내의 반대를 일단 잠재웠다. 그러나 호전적 애국주의에 마취된 수천만 미국 노동자들은 이 환상 때문에 언젠가는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다.

 

1990년대 미국의 호황을 부채질한 생산성 증가의 핵심은 다름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더 힘들게 더 오랫동안 일했으나 더 적게 받았다. 이제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리고 수십만 명이 실업자 신세가 되자 오만한 지배자들은 냉소적으로 “테러대전”을 외치며 희생과 국가적 단결을 촉구하고 있다. 이민 노동자들과 정치적 반대자들이 “안보” 마녀사냥으로 대거 구금되면서 힘들게 따낸 민주적 권리들은 물거품이 되었다. 한편 연방의회는 “경기부양 계획”의 미명하에 백만장자들과 기업들에게 대대적 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물론 이 비용은 연금 생활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부담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이 일방적 계급 전쟁은 조만간 커다란 반작용을 불러 제국주의 세계질서의 기초 전체를 뒤흔드는 노동계급의 저항이 되어 폭발할 것이다.

 

 

<다음의 내용은 2001년 11월 초 토론토의 여러 대학교에서 탐 라일리가 행한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지구상 가장 가난하고 가장 후진적인 나라 가운데 하나인 아프가니스탄과 이보다 인구가 10배나 많으며 세계 최대 최선진국인 미국 사이의 “전쟁”이 시작된 지 몇 주일이 지났다. 그런데 무소불위의 미국은 제국주의 “연합국들”에 의해 지지 받고 있다. 20년간 계속된 내전으로 거의 남아 있지도 않은 목표물을 막강한 미 공군은 체계적으로 “붕괴시키고” 있다. 영국 보수 지배층의 대변지 [런던 타임즈]의 기자 사이먼 젠킨즈는 연합국의 전쟁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강도 높은 폭격은 이 나라의 방공망을 무력화시키거나 빈 라덴의 테러 조직을 파괴하는 목적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의 국가기구, 도시, 인민 등 사회 전체에 대한 전략적 폭격이다. 미 국방성은 도로, 발전소 그리고 병원 표시가 되어 있는 공공건물 등을 폭격하면서 이것을 공공연히 ‘심리적 폭격’이라고 말한다. 하늘에서 보면 아프간 군대가 민간인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비행기에서 사격을 한다는 것은 아프간 인이 한 명이라도 살아있으면 지상전은 너무 위험하다는 얘기이다. 수천 명씩 떼를 지어 나라를 탈출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게 이것은 진정 테러를 테러로 앙갚음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런던, [타임즈]지, 2001년 10월 24일

 

  지금까지 1천 명 이상의 아프간 민간인이 살해되었다. 세계무역센터를 파괴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엽기적인 범죄행위이다.

 

“안마당”에서 벌어진 테러 공격에 대해 미국은 누군가가 대가를 지불하게 만들 셈이었다. 그러나 수만 또는 수십만 아프간 인민을 살해하는 것으로 미국인이나 누가 더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공식적으로 이 전쟁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전쟁이 아니라 “테러”에 대한 전쟁이다. 문제는 미 연방수사국이나 국방성이 규정하는 테러의 내용이다:

 

  “정치적 사회적 목적으로 정부나 민간인을 협박하거나 강제하기 위하여 인명이나 재산에 무력이나 폭력을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것.”

 

  다른 어떤 국가보다 미국은 민간인을 협박하고 강제하기 위해 그리고 타국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무력이나 폭력”을 규칙적으로 행사해왔다. 1953년 과테말라, 1964년 브라질, 1973년 칠레, 1980년대 내내 니카라과 등 수많은 예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어느 것도 미 연방수사국에 의하면 “테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모두 “합법적”으로 즉 미국 정부에 의해 인가되었기 때문이다.

 

아프간 폭격이 시작된 이틀 후인 10월 9일 미국의 유엔 대사 잔 네그로판티는 미국의 “테러대전”은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다른 나라들을 겨냥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라크가 다음 목표물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으나 시리아, 리비아 등의 나라들도 논의되었다. 런던의 자유주의 일간지 [가디언]지의 기고가 존 필저는 미국의 “테러 반대” 대사로는 네그로판티가 매우 기이한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1980년대 초 미국의 온두라스 대사로 있으면서 네그로판티는 정권에 대한 민주적 반대파를 제거한 316 대대라는 정권의 테러 조직에 미국의 자금을 지원했다. 이때 미 중앙정보국은 인접국 니카라과의 반군을 지원하는 테러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가디언]지, 10월 25일

 

 

세계 자본주의: 무한 부(不)정의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세계 체제는 인류의 절대 다수에 대한 대대적이고 끝없는 폭력에 기초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가난한 인민이나 나라들의 재산을 약탈하여 부자들과 부자 나라들의 소유를 증대시킨다.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의하면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하루에 2달러도 되지 않는 돈으로 연명하고 있다. 이제 경제지표가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시점에서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시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저들은 말한다. 하루에 2달러도 되지 않는 돈으로 연명하는 사람들은 상황이 그야말로 더 끔찍해질 것이다. 불행한 수십 억 인구가 궁핍에 시달리는 반면 반대쪽의 극소수 엘리트들은 엄청난 재산과 권력을 축적하고 있다.

 

9월 11일 테러 직후 미 국방성은 럼스펠드 장관 명의로 미 군사 독트린을 소개하는 문서를 출간했다. 이 문서는 이렇게 선언한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핵심 시장들과 전략적 자원들을 차지하는” 데에 미국은 “항구적인 국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미국이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정권들을 전복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군은 대통령의 지시 하에 국가든 아니든 어떤 조직이든 미국과 그 동맹국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자신의 의지를 강제할 역량을 유지해야한다. 미국의 전략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반미 정권을 전복하던가 외국 영토를 점령해야한다.”

[분기별 방위 전략 검토 보고서], 2001년 9월 30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테러대전”은 무엇보다도 “미국의 의지를 강제”하는 것이다.

 

 

회교 근본주의의 등장

 

9월 11일 사건을 가져온 일련의 사건들을 추적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몇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60년대 초에 회교 근본주의자들은 대부분의 아랍권에서 대개 정신병자(또라이) 취급을 받았다. 마치 현재 북미에서 “신이 만물을 창조했다고 믿고 있는 과학자들(creation scientists)”이 또라이 취급을 받으면서 사회에서 영향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이집트의 공군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다. 이로써 1956년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해 영국/프랑스/이스라엘 연합군의 공세를 물리쳤던 “아랍 혁명”의 지도자 가말 압델 나세르의 명성은 무참히 찌그러졌다. 이에 대해 회교 근본주의자들은 아랍 세계의 지도국가인 이집트가 패배한 이유는 알라신을 멀리하고 세속적 현대화에 오염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979년 이란에서 아야톨라 호메니가 팔레비 국왕 정권을 타도하고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했을 때 근본주의자들에게 드디어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미 중앙정보국이 조종한 쿠데타를 통해 1953년 팔레비는 모하메드 모사데크의 민족주의 현대화 정권을 타도했다. 팔레비 왕조를 “안정시키기” 위해 미 중앙정보국은 이스라엘 정보국의 도움으로 이란의 악명 높은 정치경찰 조직인 사바크를 창설했다. 사바크는 정권에 반대하는 수천명의 인사들을 고문하고 살해했다. 이스라엘, 사우디 아라비아와 함께 팔레비의 이란은 중동지역에서 미 제국주의의 버팀대가 되었다.

 

제국주의 세계지배에 대한 반동적 역반응이 중동 지역에서는 회교 근본주의로 나타났다.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는 피억압 계층의 일부가 압제자의 이데올로기와 문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방어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호메니, 빈 라덴, 탈레반 등의 공통점은 사회 평등에 대한 반대이다. 이들은 여성이 가족 내에서 남성에 완전히 복종해야 하며 사회생활에서는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서구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뿐 아니라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적대적이다.

 

중동 지역의 친미 정권들은 국제통화기금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적극 수용했다. 이 결과 이 지역에도 외국 자본과 값싼 수입품이 밀려들었다. 세계시장의 “효율성”이 갑자기 밀려드는 바람에 이 지역의 농업, 토착 제조업, 전통 직업들이 완전히 싹쓸이되었다. 이 결과 농민이었던 도시빈민들이 도시주변에 빈민굴을 형성했다. 이들은 지금 회교 사원이 운영하는 자선단체로부터 의료, 교육 등 필수 사회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이 도시빈민층은 회교 지도자들의 대중 기반이 되어 언제든지 거리로 몰려나와 근본주의자들의 구호에 호응한다. 다만 회교 근본주의의 중핵들은 과학적으로 훈련받은 지식인층이다. 이들은 제국주의의 부패한 하수인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정권을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반동 세력과 제국주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미 중앙정보국은 회교 반동 세력을 부추겨 친소 성향의 아프가니스탄인민민주당(약칭 인민당) 정권 전복공작에 착수했다. 인민당은 나카라과 산디니스타와 비슷하게 급진 민족주의 성향의 스탈린주의 정치세력이었다. 1998년 1월 15-21일자 [르 누벨 옵세르바뙤르]지와의 회견에서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보 고문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이렇게 폭로했다:

 

“무자헤딘 회교 반군에 대한 미 중앙정보국의 지원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 공식 역사에 의하면 무자헤딘에 대한 미 중앙정보국의 지원은 1980년대에 시작되었다. 이것은 1979년 12월 24일 시작된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진입 이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비밀로 붙여진 사실은 전혀 다르다. 아프간 친소 정권에 대한 반대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카터 대통령은 1979년 7월 3일 비밀지원을 처음 명령했다.”

 

  기자는 이렇게 물었다: 나중에 테러리스트로 돌변한 회교 근본주의자들에게 무기 및 자금을 지원한 행위를 후회하는가? 그러자 브레진스키는 이렇게 대답했다:

 

“세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인가? 탈레반 정권인가 아니면 소련의 붕괴인가? 회교 분자들이 일부 소동을 부리는 것과 동구가 해방되고 냉전이 끝난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회교지도자, 고리대금업자, 대지주 등 회교국 지배집단들은 인민당 정권의 조치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권은 포고령을 통해 빈민의 부채를 탕감해주고 고래대금업자들의 주 수입원인 신부 매입 대금(bride price)의 수준을 대폭 낮추었으며 농민들에게 경작해왔던 농토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해주었다.  또한 아동 결혼을 철폐하고 여아들의 학교 교육을 시행했다. 친소 정권의 이 진보적 조치에 대해 “자유세계”의 지도자들은 본능적으로 회교 반동들과 한편이 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아프간인민당과 그 지지세력인 소련에 대한 군사적 방어를 주창했다.

 

미국의 지원은 당연히 무자헤딘의 가장 광신적인 부위로 향했다. 이들이 소련에 대한 가장 비타협적인 적대 세력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미국은 이교도에 대한 성전(지하드)을 위해 지원자들을 모집하여 아프가니스탄에 보냈다. 이들 가운데에 젊은 사우디 백만장자 오사마 빈 라덴이 있었다. 미 중앙정보국은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에 무기를 제공하고 중핵들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현재 미 공군이 아프간에서 폭격하고 있는 “테러리스트 훈련 캠프”를 세웠다.

 

1989년 소련의 관료집단은 아프간의 친소 정권을 배신하고 군대를 철수시켰다. 그러자 미국은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아프간인민당 정권은 3년을 더 버틴 후 결국 회교 근본주의자들에게 제압 당했다. 그러나 현재 “북부 동맹”으로 결집되어 있는 승리한 무자헤딘 군벌들은 자기들끼리 극악한 권력투쟁을 벌이면서 민간인들에 대한 끔찍한 학살과 파괴를 자행했다.

 

그러자 인접국의 내전으로 파키스탄의 민간 정부가 위협받기 시작했다. 1980년대 내내 무자헤딘에 대한 미 중앙정보국의 지원을 몸소 시행했던 파키스탄 정보국은 탈레반 군벌에 대해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시작했다. 탈레반은 파키스탄의 북서 국경지역에 위치한 아프간 난민수용소에 대중 기반을 가지고 있던 광신도적 회교 종파로 파쉬툰족이 주축이었다. 이 결과 힘도 이름도 없던 탈레반은 거대 군벌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1996년 수도 카불을 장악했다.

 

정권을 장악하자마자 탈레반은 수염 손질, 결혼식의 음악과 춤 등을 금지시켰다. 또한 여학교를 폐쇄시키고 텔레비전, 음악 테이프, 비둘기 사육, 연날리기 등도 금지시켰다. 이 정권 하에서 도둑은 손이 잘리고 간통을 저지른 자는 돌로 쳐서 죽였다. 또한 정치적 종교적 민족적 소수 집단은 잔인하게 탄압 당했다.

 

1990년대 초 아프가니스탄 북부 국경선에 인접한 중앙아시아 지역에 거대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지가 발견되었다. 그러자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의 2000년 12월 보고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중앙 아시아에서 아라비아해까지 이어지는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 경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에너지 수급의 관점에서 이 나라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원래 미국은 탈레반 정권을 이 나라를 안정시킬 세력으로 파악하여 환영했다. 이 정권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20억 달러 상당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 위해 미국의 주요 석유회사인 유너캘(UNOCAL) 주도의 컨소시엄을 사업자로 선정했을 때 미 국방성은 기뻐했다. 석유 파이프라인에 대한 사업자도 미국 석유회사로 낙찰될 계획이었다. 이것이 성사되면 미국은 이 지역의 두 경쟁국인 이란과 러시아를 우회한 채 중앙아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1998년 알 카에다 조직이 아프리카의 미국 대사관 두 곳을 폭파시켰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클린튼 대통령은 20개의 크루즈 미사일을 아프가니스탄에 발사했다. 이로써 기존의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졸지에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미국의 적이 되었다.

 

적대 정권을 제거하는 것 이외에도 미국의 “테러대전”은 중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목적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과거 러시아의 영향력 안에 확실히 들어가 있었던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크스탄에 미군 기지가 설립되면서 미국의 구상은 현실로 성큼 실현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에게 이 군사기지들은 오직 “일시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안심시켰다. 그러나 푸틴은 미국이 고르바초프에게 한 약속을 어긴 사실을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당시 미국은 소련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통일 독일이 나토에 남아있는 것을 소련이 동의해 준다면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어떤 나라도 나토에 가입시키지 않겠다. 그러나 현재 폴란드, 체코 공화국, 헝가리는 모두 나토에 가입해 있고 나머지 바르샤바 조약국들도 나토 가입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선전술의 귀재 빈 라덴’

 

지금까지 미국과 함께 아프간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연합국들”에게 상당히 짜증스러운 일이 발생하고 있다. 중동 지역 회교도들의 몸과 마음을 빈 라덴이 꽉 잡으면서 “선전 전쟁”에서 그가 손쉽게 승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현상에 대한 설명은 아주 단순하다: 빈 라덴의 강령은 이 지역 대부분 인민들의 소망과 일치하고 있다.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미국에 대한 알 카에다의 성전을 중단하겠다는 것이 빈 라덴의 약속이다. 첫째, 회교의 가장 중요한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소재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 둘째, 지금까지 백만 명 이상을 죽인 이라크에 대한 서방의 무역금수 조치를 즉각 해제해야 한다. 셋째, 요르단강 서안, 가자, 동 예루살렘 등지에서 이스라엘이 철군하고 팔레스타인 국가가 수립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이 조건들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 언론이 이 조건들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빈 라덴의 궁극 목표는 중동 지역 전체에 근본주의자들의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한 첫 단계로 그는 이 지역에서 “(양키) 이교도들”을 몰아내고자 한다.

 

“테러”를 근절하겠다는 미국의 테러 행위는 현실에 불만이 많은 회교도들의 눈에 알 카에다의 위상을 확실히 올려주었다. 수만의 아프간 난민들이 이번 겨울에 아사하거나 동사하면 알 카에다에 대한 지지는 더욱 올라갈 것이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에 공식 지지를 선언한 파키스탄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지배자들은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자신의 통치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지상군 투입의 모험을 하기 전에 일단 공습을 통해 탈레반의 저항을 꺾는다는 계획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프간 민간인들의 희생은 이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파쉬툰족과의 전쟁

 

현재 아프간 전쟁의 결과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아프간 인민의 많은 수는 탈레반 정권을 아주 싫어한다. 그러나 연합국의 테러 공습은 탈레반에 대한 아프간 인민의 지지도를 올려놓았다.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공격이 부시의 인기도를 올려놓은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미 공군의 최악의 공습에 대해서도 자기 군대를 생존시킬 수 있다고 탈레반 지도부는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영국의 보수당 대변지 [텔레그라프]는 10월 26일자 신문에서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10월 20일 칸다하르 지역에서 미국의 정예 델타 부대가 인적이 없는 건물을 공격하다가 탈레반 군대의 치열한 반격을 받고 후퇴했다.

 

탈레반의 전략은 될 수 있으면 전쟁을 오래 끌어 미군의 사상자를 늘리고 피로감을 가중시켜 결국 미국의 철수를 유도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의 전략은 역사적 경험에 기초한 것이다. 1983년 미 해병대 막사가 차량폭탄으로 파괴되면서 300명 가까운 미군 사망자가 발생하자 레이건 대통령은 레바논에서 급히 미군을 철수시켰다. 이로부터 10년 뒤 소말리아에서 미군이 지역 군벌과 교전을 벌이다 18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클린튼 대통령도 급히 군대를 철수시켰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세계무역센터의 테러로 미 국민의 아프간 전쟁에 대한 지지도가 레바논이나 소말리아 개입의 경우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자신의 수족인 북부 동맹을 공중 지원하여 카불을 점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텔레반 정권을 제거하여 안정된 괴뢰정권을 수립할 생각이 진지하다면 칸다하르 지역 주위의 파쉬툰족에게 전쟁을 확대해야 한다. 이 지역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북서 국경지역을 포괄하는 지역으로 탈레반의 정치기반이다. 이렇게 할 경우 문제는 또 다시 복잡해진다.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군사정권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의 불안정은 이 나라의 핵무기 보유를 고려하면 아주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국내의 전쟁

 

미국 지배자들은 “테러대전”을 이용하여 미국 노동계급의 힘들게 얻은 민주적 권리와 생활수준을 공격하고 있다.  이미 대부분이 아랍인인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무기한 감금되어 있다. 당국은 이들의 이름이나 기소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하는 것처럼 자백을 빨리 받아내기 위해 고문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지한 캐나다의 크레티엥 정권도 “테러 방지”법을 통과시켜 자기 맘에 들지 않는 누구든지 탄압하고 감옥에 넣을 수 있게 일을 추진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현재 불어닥치고 있는 외국인 혐오증에 편승하여 미국 기업들에게 수십 억 달러의 세금 감면을 소급해서 적용하고 있다. 또한 항공사와 보험회사들에 대한 구제 금융도 수백 억 달러나 약속해 놓고 있다. 이 비용은 사회보장 “금고” 기금을 털어서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 노동자들은 은퇴한 후 판지로 몸을 덮고 개밥이나 먹으면서 남은 삶을 연명해야할 판이다.

 

이 “전쟁”이 아프가니스탄과 자신들에게 동시에 가해지고 있다는 것을 미국 노동자들이 인식할 경우 미국 “안마당”에서 계급투쟁이 격화될 수 있다. 노동계급 가운데 전통적으로 가장 선진적인 흑인들 가운데 광적인 애국심이 훨씬 덜하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국주의 “연합국”의 맑스주의자들은 자국 노동자들에게 이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자국” 제국주의 지배자에 대항해서 아프가니스탄을 방어하는 것이 노동계급에게 이익이 된다. 전쟁에 반대해서 노동자들의 정치파업이 단 한번 일어나더라도 이것은 국제적으로 특히 중동 지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있게 될 노동계급의 국제적 공동 계급투쟁의 기초가 될 것이다.

 

탈레반 정권은 피억압 인민의 천적이므로 타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임무는 중동 지역의 나머지 반동 정권들을 타도하는 투쟁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자가 아니라 피억압 피착취 인민의 임무이다. 중동 지역과 전세계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보면 이 전쟁의 최악의 결과는 미국 주도의 “연합”국이 10년 전 걸프전 때처럼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손쉬운 제국주의자들의 승리는 더 규모가 큰 그리고 더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사회주의자를 자임하는 대부분의 좌익 세력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제국주의의 공격에 대해 평화주의적 자유주의적 푸념으로 일관했다. 6주일 전에 토론토를 방문했던 타리크 알리는 과거 “국제 맑스주의자”였다. 제국주의에 대항해 아프가니스탄을 방어할 것인가를 묻자 그는 결단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국제사회주의자들 역시 아프가니스탄 방어를 거부한다. 대신 이들은 “전쟁을 멈추라”는 대단히 단순한 평화주의 구호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자들도 가능하면 빨리 “전쟁을 끝내기를” 원한다. 10월 31일자 [뉴욕 타임즈]지는 이렇게 보도했다:

 

“미국 지배층 일부는 군사 작전의 느린 속도에 대해 더욱 답답해 하고있다. 그리고 보수 정치꾼들은 대규모로 지상군을 투입하여 전쟁을 가속화시킬 필요성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국과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는 정반대의 얘기가 오가고 있다. 유럽의 여론은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보다 민간인 사상자를 더 우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지배자들은 살인을 가속화시켜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한다. 우리도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원한다. 다만 “연합국” 침입자들의 즉각적인 철수를 통해서 이것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전쟁을 멈추라”는 요구는 평화주의자들에게는 좋은 요구이다. 그러나 혁명가들은 제국주의 약탈자들의 공격에 대해 신식민지 국가의 편을 들어야 한다. 세계 노동계급의 최대의 적이 제국주의 세력이므로 이들의 기도가 군사적 정치적으로 파탄 나는 것은 계급투쟁의 역관계에서 노동자들에게 무조건 유리하다.

 

 

몰수자들을 몰수하라!

 

제국주의자들의 아프간 전쟁이 장기화되어 사상자가 증대하면 전세계 노동자와 피억압 인민이 자본주의의 공격에 저항할 힘이 강화된다. 또한 사우디 아라비아나 파키스탄 등 미국과 이해를 같이 해온 나라들의 정권도 취약해질 것이다.

 

20년간 정권을 지속한 이란의 회교 공화국도 현재 위태위태하다. 주요 스포츠 행사나 공공 행사는 회교지도자들의 통치에 저항하는 정치 시위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일관된 혁명 강령으로 무장한 강고한 공산주의 조직이 시아파 회교 지도자들에 반대하는 노동자 봉기를 성공시켜야 한다. 이럴 경우 1979년 호메니의 승리가 회교 근본주의자들을 분기시킨 것처럼 이 지역의 사회주의 혁명투쟁은 크게 고양될 것이다.

 

격화되는 전쟁의 고리는 제국주의 지배의 특징이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인류 절대 다수를 빈곤의 늪에 빠뜨리고 있는 제국주의 체제를 끝장내야 한다. 착취자들의 생산수단을 몰수하고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부응하는 국제적 규모의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수립해야 한다. 이 혁명 투쟁을 통해서만 지구상의 폭력과 광기는 사라질 수 있다. 지금 이 목표는 성취 가능성이 대단히 낮은 것처럼 느껴질 지 모른다. 그러나 이 길은 성취 가능할 뿐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도모할 유일한 길이다.


No. 24, 2002 Imperialism's Bloody T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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