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아프리카

(IBT) 이라크 역풍(26호, 2004)

by 볼셰비키-레닌주의자 posted Dec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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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출처 – 국제볼셰비키그룹(IBT)



이라크 역풍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자 —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미국의 지배계급은 이라크의 “해방”이 중동지역에 번영과 민주주의의 황금시대를 가져올 것이라고 선전해왔다. 그러나 세계의 절대다수 인민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 잔인한 식민지 강탈이라고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다. 이라크 인민을 기아로 몰아넣은 유엔의 경제 제재를 12년 간 겪은 후 이라크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기구인 미국의 일방적 “선제” 공격을 당했다. 현재 미국의 군사 예산은 미국 다음으로 군사 강국인 30개 나라들의 군사 예산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 미국의 자유주의 웹사이트인 MoveOn.org는 적절하게 광고문구를 뽑았다: “1945년에 전쟁 범죄였던 것이 2003년에는 대외정책이 되었다.”

 

미국은 제국주의 국제질서 내에서 의심의 여지없는 군사적 우위를 과시하려 해왔다. 이라크 점령은 이 노력의 중요한 단계였다. 석유는 핵심 전략 자원이고 이라크는 입증된 세계 석유 매장량의 거의 11%를 보유하여 석유 매장량 세계 제 2위 국가이다. 미국은 중동에서 필요한 석유의 5% 밖에 충당하지 않으며 일본과 유럽연합이 나머지 전부를 소비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페르시아만이 국익의 “핵심”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중동 석유를 장악하면 미국은 제국주의 라이벌 국가들에 대해 결정적 우위를 행사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중동 석유의 장악이 미국 지배계급의 “핵심”적 이익이 된다. 이라크 개입을 통해 미국이 노리는 주요 목표는 부통령 체이니, 국방장관 럼스펠드, 국방차관 울포위츠 등 ” 신 미국 세기 프로젝트”(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 파벌이 2000년 9월에 작성한 문서에 잘 나타나 있다:

 

“미국은 수십 년 간 페르시아만의 안보에 더욱 영구적인 역할을 담당하려고 진정 애써왔다. 이라크와의 해결되지 않은 분쟁이 미군의 영구 주둔을 즉시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에 상당한 규모의 미군을 영구히 주둔시킬 필요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문제를 초월하여 존재한다.”

“미국 방어망의 재구축: 새로운 세기를 위한 전략, 병력, 자원”

 

미국의 군부와 그 동맹세력은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범죄적 공격에 희생당한 시민들을 냉소적으로 볼모로 삼았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회교 근본주의 정권인 탈레반을 손쉽게 타도하고 자신들의 괴뢰인 카자이를 이름뿐인 통치자로 내세웠다. 아프가니스탄이 정복되면서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크스탄 등에 미군 기지를 세우는 명분이 제공되었다. 이 기지들을 통해 미국은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저지하고 카스피해에 매장된 석유를 장악하며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구축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역시 페르시아만에 영구 미군기지들을 세울 유사한 기회를 제공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망은 무제한적일 수 있다. 그러나 더욱 명백해지고 있듯이 이 야망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에는 확실한 한계가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제국주의자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전까지 야수 같은 미 제국주의주의자들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로 자신들을 포장했다. 그러나 미국이 중동을 더욱 확실히 장악한 이후를 이들은 걱정했을 뿐이었다. 이들이 미국에 반항하자 캐나다와 같은 꼬맹이 제국주의 국가들과 터키와 같은 신식민지 종속국들이 이에 고무 받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에 반항했다. 결국 이라크 전쟁에 “기꺼이 나선 연합국”은 영국과 호주뿐이었으며 이들은 상당한 군사력을 제공했다. 이 두 국가는 전쟁 참여의 대가로 석유에 대한 이권, 미국과의 무역 합의에 따른 미국 시장에 대한 보다 높은 점유율을 기대했다.

 

현재 사담 후세인은 미국의 포로 신세가 되었고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력은 12만 5천명이다. 그러나 럼스펠드의 국방부 집무실에서 세밀하게 관리가 될 정도로 세계가 그렇게 작고 단순하지는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군침 도는 석유 자산이 상대적으로 손쉽게 확보될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현재 상황은 엉망진창이다. 특히 “수니파 삼각지대”의 이라크인들이 정복당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수천만 미국인을 비롯하여 세계 인구의 다수는 이렇게 인식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이라크인들의 “자유”나 “인권”과는 무관하며 있지도 않은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미국의 자기방어와도 무관하다.

 

미국에 대한 이라크의 “위협”에 대해 부시 2세는 명백한 거짓말을 들이밀어왔다. 그러나 이 거짓말은 1990년 후세인의 재수 없는 쿠웨이트 점령 직후 “사막폭풍 작전”을 위해 부시 1세가 여론을 준비시키면서 이미 만들어 놓았다. 후세인의 모험을 기회 삼아 부시 1세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어한다”는 변명을 앞세워 페르시아만에 미군을 영구 주둔시키려고 적극 나섰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미국의 자산이었던 후세인은 갑자기 “새로운 히틀러”로 둔갑했다. 그러나 미국 부르주아 계급의 중요한 부위는 이라크 공격의 지혜를 의심했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이 가을로 접어들어 계속되자 이 모험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꾸준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부시 1세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했다. 당시 [뉴욕 타임즈]는 이렇게 논평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이 점은 1990년 8월부터 11월까지 전쟁 지지도가 19% 포인트나 하락했다는 사실에서 드러났다.

이라크 전쟁의 명분은 세 가지가 가능했다. 쿠웨이트 정부의 회복과 사우디아라비아 방어, 매장된 석유 보호, 후세인의 핵무기 개발 저지 등이 이것이었다. 그런데 미국 국민의 56%와 62%가 각각 첫 두 명분을 타당하지 않다고 기각했다. 그러나 54%가 세 번째 명분을 설득력이 있다고 지지했다.

부시 행정부가 핵무기의 위협을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결과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여론의 추이를 지켜본 대통령의 참모들은 이제 이렇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핵무기 위협을 더욱 부각시킬 경우 지금까지 누리지 못한 여론의 지속적인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 전술 전환을 위해 부시 대통령은 이번 주말 독일에서 행한 연설에서 핵무기 문제를 한 줄로 언급했다.”

[뉴욕 타임즈], 1990년 11월 20일

 

1991년 “사막폭풍 작전”의 승리 후 부시 1세와 당시의 국방장관 체이니는 후세인의 바트당 정권을 제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이들은 페르시아만에 대규모 미군을 주둔시킬 변명을 마련했다. 이들의 계산에 따르면 유엔의 경제제재만으로도 후세인 정권은 내부의 불만으로 결국 타도될 것이며 미국의 말을 좀더 잘 듣는 정권이 수립될 것이었다. 결국 이들의 계산은 지나친 낙관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라크 점령이 내포한 함정에 대한 부시 1세의 다음과 같은 설명은 이후 일어날 일을 대단히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

 

“이라크 점령은 우리의 동맹관계를 즉시 균열시킬 것이며 아랍세계 전체가 우리에게 대항하도록 만들 것이며 기가 꺾인 독재자 후세인을 최신판 아랍 영웅으로 만들 것이다….젊은 미군 병사들은 확고히 진지를 구축한 독재자를 뒤쫓는 헛수고를 할 것이다. 이들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도시 게릴라전에 말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로써 중동지역의 불안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변모된 세계], 부시 1세, 1998년

 

 

<이라크 방어 노선 대 사회평화주의 노선>

 

후세인 독재정권의 잔인하고 억압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세계노동계급 운동은 군사적으로 이라크를 방어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1938년 레온 트로츠키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현재 브라질에는 모든 혁명가들이 증오할 수밖에 없는 반(半)파시스트 정권이 존재하고있다. 그러나 내일 당장 영국이 브라질과 전쟁을 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노동계급은 누구의 편이 되어야 하는가? 나 같으면 ‘민주주의’ 영국에 대해 ‘파시스트’ 브라질을 편들 것이다. 두 국가 사이의 문제는 민주주의나 파시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영국이 승리한다면 브라질에 또 다른 파시스트 정권을 세우고 제국주의 이익을 위해 브라질 인민에게 이중의 굴레를 씌울 것이다. 이와 반대로 브라질이 승리한다면 이 나라 인민의 민족 민주 의식은 크게 고양될 것이며 바르가스 파시스트 독재정권이 타도되는 길이 열릴 것이다. 동시에 영국의 패배는 영 제국주의에 타격을 가해 영국 노동계급의 혁명운동에 불을 붙일 것이다.”

“반(反)제국주의 투쟁이 해방의 열쇠이다”, 1938년 9월 23일

 

2003년의 대대적 반전 시위에서 국제볼세비키그룹((IBT)의 중심 구호는 “제국주의 공격에 대항하여 이라크를 방어하라!”였다. 이 구호는 우리를 반대하는 여타 좌익 조직들의 구호와 크게 대립되었다. 이들은 이미 인기를 누리고 있던 평화주의 중립 노선을 “대중화”시키는데 집중했다. 자칭 맑스주의자들이 조직하고 신을 팔아먹는 자, 사민주의자, 노동조합 관료, 자유주의자 등이 연단을 장악한 다양한 “평화 연합들”은 전쟁을 반대하는 수백만 대중이 반(反)제국주의 의식을 갖는 것을 가로막았다.

 

영국에서 “전쟁중지 연합(StWC)”의 조직 단체인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자신의 신문 앞면을 이용하여 기독교 평화주의자들에게 공공연히 호소했다: “전 세계에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부시가 자신의 뜻대로 한다면 이 땅위에 평화가 올리는 없을 것이다”([사회주의 노동자], 2002년 12월 21일). 맑스주의자들은 전쟁 없는 세계를 원한다. 그러나 전쟁을 없애는 유일한 길은 자본주의라는 암적 존재를 제거하고 이 대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수립하는 길이다. 맑스주의자들은 이 진실을 노동계급에게 떳떳이 말해야한다.

 

제 4 인터내셔널 통합서기국(Usec)의 본부 격인 혁명적 공산주의 동맹(LCR)은 프랑스의 반전 시위 조직에 핵심 역할을 했다. 이 조직은 자신의 기관지에서 이렇게 인정했다: “미국 주도의 전쟁에 프랑스, 독일, 러시아 지배자들이 반대한 것은 이들이 중동 지역에서 미국과 이권 다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쥐(적색)], 2003년 4월 17일). 또한 이 조직은 부시의 전쟁을 프랑스 대통령 시라크가 거부한 것을 지지한 사회당, 녹색당, 공산당 등을 명확히 비판했다:

 

“의회 내 좌익 정당들의 지도자들은 시라크와 한편이 되었다. 4월 13일자 [주르날 뒤 디망쉬(일요신문)]에서 잭 랭은 시라크가 ‘전쟁에 반대한 것은 옳았다’고 확인했다. ‘나와 프랑스의 입장은 언제나 “끝까지 외교적 해결을 추구하자”는 것이었으며 우리가 옳았다고 나는 생각한다….’고 파비위스는 덧붙였다. 다른 지도자들은 시라크에게 물러서지 말라고 충고했다. 멜렝숑은 시라크가 ‘끝까지 버텨야한다’고 말했으며 도미니끄 보이네는 ‘자기 입장을 확고히 지켜야한다’고 시라크를 격려했다.

 

실제로 의회 내 좌익정당들의 대표자들이 시라크와 빌팽의 편을 든 것은 이들이 모두 프랑스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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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한달 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직전에 이 조직은 유엔에서 미국의 침략을 반대하는 프랑스 정부를 칭찬하고 있었다:

 

“프랑스와 러시아는 거부권을 행사하여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무력행사를 반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것은 냉전체제 이후의 국제관계에 전환점이 될 것이다.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다: 부시의 호전적 행동을 저지하는 어떤 행위도 가치가 있다. 프랑스의 반전 연합에 속한 1백 개의 조직들과 함께 우리가 이렇게 요구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우리의 통치자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약속을 이행해야한다.”

[루쥐], 2003년 3월 13일

 

이 조직은 2002년 여름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시라크 지지를 호소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이 조직은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 등 다양한 좌익 및 자유주의 조직들과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글은 유럽의 제국주의자들이 대중의 압력을 받을 경우 평화주의를 주창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부추겼다:

 

“이라크 인민에게 연대를 표시할 경우 백악관의 관심을 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유럽 정부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를 진짜 가지고 있다. 이들의 다수는 전쟁에 반대해왔다. 우리는 유럽의 모든 국가원수들에게 촉구한다: 유엔의 지지를 받든 받지 못하든 이 전쟁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부시가 전쟁 계획을 폐기하라고 요구하라.”

[루쥐], 2002년 9월 19일

 

이 처참한 차선책 노선은 “사회주의” 개량주의자들의 특징이다. 그리고 반전 시위에 조직 역량을 제공한 “혁명가들”이 부추기는 유토피아적 인민전선의 환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이나 혁명적공산주의동맹 등은 축 늘어진 부르주아 평화주의 노선을 그리고 전쟁 당사자인 미국과 이라크 모두의 멸망을 주창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은 좌익적 냄새만 풍기는 중립 노선을 주창한다. 이에 대해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이라크 방어 노선을 대항시킨다.

 

 

‘이라크 자유 작전’ — 노골적인 식민지 지배

 

미국은 바그다드의 주민이 “충격과 공포에 떨도록” 대대적인 공습을 개시하면서 2003년 3월 19일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다. 그 다음날 수만 명의 미국 및 영국의 침략군이 이라크로 밀려들었다. 이후 몇 주일에 걸쳐 연합군은 750기의 타머호크 크루즈 미사일과 12,000 개의 “정밀 조준 폭탄”을 투하하여 이라크를 공습했으며 수천 명의 이라크 민간인을 살해했다. 개전 초기에 이라크의 저항은 예상보다 상당히 강력했다. 쿠웨이트 국경 바로 북쪽에 위치한 소도시 움카사르는 5일간 저항했다. 바트당에 대한 적대감으로 평판이 높았으며 압도적으로 시아파 도시인 방어가 허술한 바스라는 손쉽게 점령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 도시를 함락하기 위해 무려 일주일 동안의 치열한 교전이 필요했다. 나시리야에서는 전투가 더 치열하여 2주일이 걸려도 이 도시는 함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군이 바그다드에 도달하자 저항은 급속히 붕괴되었고 4월 9일 미군 병사들은 바그다드의 피르도스 광장에 세워져 있던 후세인의 동상을 끌어내리고 있었다.

 

미군이 “해방군”으로 환영받을 것이라고 부통령 체이니는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이라크인들은 생각이 전혀 달랐다. 바그다드 시내의 38개 병원 가운데 35개는 운영이 중지되었고 국토의 거의 전부에서는 물과 전기가 끊겼다. 이 결과 콜레라를 비롯한 전염병들이 창궐했다. “해방군”이 냉랭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약탈자들은 이라크 국립박물관과 도서관을 약탈했다. 제국주의 군대가 ‘보호하라’고 명령한 곳은 단지 석유부 건물과 정유시설들뿐이었다.

 

4월 중순 미군 준장 크리어는 바스라의 석유꼭지를 과시하듯이 열고는 이렇게 선언했다: “이제는 석유 사업을 시작한다.” 전쟁의 노골적인 약탈적 성격은 2003년 5월 1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의 어느 기사에 확연히 드러났다: 베링포인트 주식회사는 거의 8천만 달러 어치의 일년 계약을 체결 받았는데 이 회사가 할 일은 이라크의 국영 산업과 서비스를 “광범위하고 대대적으로 민영화”시키는 것이다. 주로 미국 기업들인 수백 개의 외국 기업들은 줄을 서서 이라크 자산들을 헐값에 넘기는 세일 특혜를 누려 이미 아무 것도 없는 나라의 궁핍을 더욱 가속화하면서 큰 이윤을 보려고 군침을 삼켰다.

 

이 약탈에서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의 기업들은 제외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강도 행위에 앞잡이 노릇을 하는 호주와 영국의 기업들은 자기들에게 돌아오는 “재건” 약탈물이 너무 적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호주산업그룹의 총재 퍼늘은 2003년 5월 1일 미국무역대표부를 방문했으나 아무 결실도 보지 못하고 이렇게 불평했다: “호주의 군대와 자원을 생명을 무릅쓰며 투입하고 있는 판에 그럴듯한 말로만 보답을 받을 수는 없다.” 영국의 항공회사 코범 피엘씨의 회장 페이지는 퉁명스럽게 이렇게 논평했다: “우리의 희생은 아직 보답 받지 못했다.”

 

 

제국주의 점령에 저항하는 이라크 인민

 

제국주의자들의 이윤을 위한 진흙탕 싸움은 꼴사나웠을 뿐 아니라 김치 국물부터 마시는 격이었다. 2003년 12월 28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렇게 보도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려는 계획은 점령에 대한 저항운동 때문에 폐기되었다:

 

 ”지난 여름동안 미국의 이라크 행정장관 브레머의 최고 경제고문 맥퍼슨은 민영화를 신속하게 밀어붙일 것을 충고했다….

 

그러나 저항 공격이 격화되자 치안에 대한 우려가 브레머의 경제적 야심을 눌러버렸다. 실직을 당해 점령군에 저항하는 세력에 가담할 이라크인의 수를 늘릴 어떤 일도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실제적인 우려들도 표면화했다. 바그다드 공항을 상업용 비행기들이 이용할 수 없게 한 조치는 이 나라에 여행할 투자가들의 수를 더욱 적게 했다.”

 

2003년 5월 2일 부시는 이라크 전쟁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뒤이은 이라크 저항세력의 증대는 미 국방부의 전쟁 계획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모두가 놀라지는 않았다:

 

“어제 이집트 대통령 무바라크는 불길한 말을 했다: ‘전쟁이 끝날 경우 끔찍한 결과들이 일어날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이제 1명이 아니라 100명이 될 것이다.’”

[인디펜던트](런던), 2003년 4월 1일

 

이라크 저항 세력의 전사들이 점령군에 맞서 싸우는 이유는 이해하기가 별로 어려운 것 같지 않다. 잔 윗벡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랍 군대가 미국을 정복하고 점령한 후 회교의 가르침에 따라 몇 년간 주둔하면서 나라의 정부와 경제를 재구축한다고 발표할 경우 ‘골수 부시 충성파’나 ‘공화당 잔당’외에 이에 저항할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인가?”

[아랍 뉴스], 2003년 7월 10일

 

점령군의 강압적 태도는 처음부터 이라크 인민의 분노를 샀다. 2003년 4월 15일 미 해병대가 모술에서 약 150여명의 민간인 시위대에 발포하여 10명을 살해하고 수십 명을 부상시켰다. 이로부터 9일이 지난 후 미군은 같은 도시에서 10명을 더 사살했다. 이 만행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팔루자의 제 82공수 사단 본부 앞에 서자 미군 병사들이 다시 발포하여 2명을 사살하고 14명을 부상시켰다. 이 사건 직후 영어와 아랍어로 쓰여진 벽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을 죽일 것이다. 너희들은 자유가 아니라 석유를 위해 여기에 왔기 때문이다”([옵저버](런던), 2003년 5월 4일).

 

시간이 지나면서 시위의 빈도와 규모는 증대했다:

 

“이라크 전역에서 대대적이며 더욱 분노에 찬 시위가 벌어졌다. 영국군이 점령하고 있는 남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시위는 시장을 일방적으로 내세우는 등 지역적 사안 때문에 촉발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미국과 영국에 의해 바스라, 카발라, 나자프 등에 세워진 앞잡이들은 암살 당했다. 전쟁 도중에 죽은 수천 명에 이어 바그다드 함락 이후 점령군에 살해당한 수백 명의 이라크인에 대한 분노가 점점 커져왔다.”

[가디언](런던), 2003년 6월 26일

 

그러나 서방의 언론 특히 미국의 언론은 방어 능력이 없는 시위자들에게 연합군이 발포하는 사건들을 대체로 무시했다. 이런 사건들이 보도될 경우에도 “연합군의 자기 방어”라는 공식 거짓말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미군과 그 하수인들 그리고 점령 비용을 감당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석유와 가스 파이프라인에 대해 점점 성공적으로 가해지는 공격들은 무시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곧 “이라크 해방 작전”은 “사막 전갈 작전”으로 바뀌었다. 이제 수천 명의 미군 돌격대는 이라크 전역의 도시와 마을을 한 밤중에 공격했다. 이들은 문을 박차고 난입했으며 가족들을 공포에 빠뜨렸고 수백 명의 “용의자들”을 차에 싣고 끌어갔다. 2003년 6월 14일자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미군 탱크와 아파치 헬기가 조그만 시아파 마을인 알히르를 공격하여 70세 할아버지와 그의 세 아들 그리고 한 명의 손자를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 전에 부시를 지지한 적이 있었다고 말한 희생자들의 할머니 친척 한 명은 이렇게 절규했다: “그를 용서하지 않겠다. 희생된 이들은 너무 젊었으며 자식들이 있었다. 이들은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부시는 우리 가문을 전멸시켰다.”

 

이와 비슷한 수백 건의 “오류들”에 대한 민간인들의 불평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뻔뻔하게 무시당했다. 2003년 7월 27일 바그다드의 주택가에 설치된 미군 검문소에서 어느 가족 5명이 사살되었다. 이에 대해 산체스 소장은 이렇게 논평했다: “잘못을 사과하는 것은 군사문제의 정상적 절차가 아니다.” 최소한 미국인의 목숨이 사라지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럴 것이다.

 

2003년 늦은 여름까지 상황은 너무 악화되어서 미국의 굴종적인 매체들조차 인정하기 시작했다: 점령군에 대한 저항은 후세인 충성파의 소규모 파벌에 한정되지 않고 있다. 8월 19일 바그다드 소재 유엔 본부에서 트럭 폭탄이 터져 본부장을 포함하여 최소한 20명이 살해되었고 4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제국주의 언론의 거짓 선전 체제를 운영하는 위선의 도사들은 격노한 체했다: 유엔과 같은 “인도주의” 기관을 감히 공격하는 놈들이 있다니! 그러나 이들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20만 명 이상이 살해되었다고 의학교육재단이 추산한 1991년의 첫 이라크 전쟁에서 제국주의 군대는 유엔의 깃발을 달고 있었다. 이로부터 12년 동안 유엔은 이라크에 대한 야만적인 경제제재를 가해 1백만 명이 넘는 이라크인들을 죽였다. 이들 가운데 다수는 어린이였다. 이라크 전사들은 유엔은 물론이고 다른 제국주의 부속기관들 예를 들어 이라크 주재 요르단 대사관과 이라크 경찰도 함께 공격했다.

 

이라크인의 저항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은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해 시온주의 이스라엘 지배자들이 사용하는 전술을 공공연히 빌리고 있다:

 

“미국인들의 말에 따르면 이 새로운 전술을 채택한 근거는 다음과 같은 확신이다: 더 가혹한 대응만이 저항을 잠재울 수 있다; 새 전술은 게릴라들을 응징할 뿐 아니라 이라크 일반인들에게도 점령군에 협조하지 않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인식시켜야한다.

 

아부 히슈마의 정문에 서서 제 4 보병사단 소속의 중대장인 브라운 대위는 이렇게 말했다: ‘아랍인들의 정서를 이해해야한다. 이들이 이해하는 유일한 것은 무력 즉 무력과 자부심과 체면이다.’”

[뉴욕 타임즈], 2003년 12월 7일

 

미군 순찰대가 공격을 당한 후 미군은 아부 히슈마 마을을 봉쇄했다:

 

“미군 장갑차에 대한 성공적인 공격이 있은 두 주반만에 아부 히슈마 마을은 5마일 길이의 철조망으로 둘러 싸였다. 18세부터 65세까지의 남자들은 신분증을 소지하도록 명령받았다. 마을로 들어가고 나가는 길은 하나 뿐이다.”— 같은 글

 

점령군은 마을을 감옥처럼 봉쇄한 것을 “보호조치”라고 둘러댄다:

 

“철조망 앞에 부착된 간판은 이렇게 적혀있다: ‘이 철조망은 여러분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접근하거나 넘어갈 경우 사살될 것이다.’”

같은 글

 

이 전술을 지역 부대장은 이렇게 요약했다:

 

“사사먼 대령은 이렇게 말했다: ‘공포, 폭력, 돈을 대량으로 퍼부으면 자기들을 돕기 위해 우리가 주둔하고 있다는 것을 주민들은 확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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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국은 “공포와 폭력”을 독점하는데 실패했다. 제국주의자들의 재정적 기술적 우위는 상당한 장점이지만 전지전능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부시 행정부의 매파 조무래기인 국방차관 울포위츠는 이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 작년 10월 그가 머무르던 바그다드의 알 라시드 호텔에 로케트 포탄이 날아들어 그를 거의 명중시킬 뻔했기 때문이다.

 

 

1983년 레바논, 1993년 소말리아, 2004년 이라크: 제국에 대한 타격

 

이라크 저항세력의 성공은 이전에 미국이 경험한 군사적 실패들을 연상시킨다. 특히 미국은 1983년 레바논에서 모욕적으로 패배를 당했고 이로부터 10년 뒤 소말리아에서도 똑같은 일을 당했다. 두 경우 모두 토착 저항세력은 자신의 장점을 살리면서 화력의 엄청난 열세를 극복했다. 이들은 저항에 동조하는 주민들 속에 숨고 지역의 상황과 지리적 특성에 대한 우월한 지식을 활용하며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희생을 치르는데 훨씬 적극적이었다. “이라크 자유 작전”을 개시하기 직전 영국 금융자본의 주요 기관지 하나는 이전의 패배를 이렇게 회상했다:

 

“인종, 부족, 종교, 정치적 경향 등에 있어서 이라크는 모자이크처럼 대단히 분열되어 있다. 미국은 1983년-84년 레바논에서 당한 유혈사태를 기억해야한다. 처음에는 평화군으로 환영받았다가 미군은 결국 또 다른 민병대로 취급받으면서 폭탄 세례를 당하고 베이루트에서 쫓겨났다. 잘못 다루면 이라크는 수많은 레바논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파이낸셜 타임즈](런던), 2003년 3월 18일

 

워싱턴에 위치한 신보수주의 연구소인 안보정책센터의 소장 개프니는 이렇게 적었다:

 

“적은 명확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 미국 국민 그리고/또는 이들의 선출된 대표들이 이라크를 포기할 지점까지 미국의 피를 흘리게 만들어야한다.

 

결국 일부는 이렇게 암시할 것이다: 지난 주말에 발생한 치누크 헬기의 공중폭파와 약 20명 미군의 사망이 이후의 상황을 예견하게 해준다. 이것은 10년 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운이 없게 블랙호크 헬기가 격추된 것과 똑같다. 이것을 “치누크 다운” 증후군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후세인 추종세력과 이들이 수입한 회교 동맹세력이 정확히 희망하는 바이다.”

[내셔널 포스트](토론토), 2003년 11월 4일

 

소말리아와 레바논의 경우처럼 현재 미군의 이라크 점령은 미국 국내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상자가 늘 경우 그 효과는 훨씬 더 커지면서 결국 지배계급과 국민 대다수의 패배주의 정서를 급격하게 증대시킬 수 있다.

 

1983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회교 근본주의 무장세력은 두 차례의 트럭 폭탄 세례를 통해 3백 명에 가까운 미 해병대원과 프랑스 공수부대원들을 몰살시켰다. 이때 부르주아 여론은 더 많은 사상자가 나기 전에 철수해야한다는 쪽으로 급격히 입장을 선회했다. 혁명가들은 제국주의 억압자들의 이 패배를 환영했으며 제국주의 주둔군이 쫓겨나는 것을 보고 즐거워했다. 이때 우리의 구호는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레바논에서 제국주의자를 쫓아내자!”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때 트로츠키주의 조직이었던 스파르타쿠스동맹(SL)은 사회애국주의 노선으로 꽁무니를 내렸다. 이들은 살아남은 미 해병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철군하자고 촉구했다([트로츠키주의 게시판 제 2호](Trotskyist Bulletin No.2)를 보시오). 이 노선은 레닌의 다음과 같은 엄명과 모순을 일으켰다: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킨 자국 정부에 대한 투쟁은 자국군의 패배를 주창하는 혁명적 선동을 반드시 동반해야한다.’ 이것이 소위 ‘패배주의’ 이론의 정확한 의미이다.”

트로츠키, “레닌과 제국주의 전쟁”, 1938년 12월 30일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에도 스파르타쿠스동맹은 몸을 사리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 시점에서 미군의 패배를 주창하는 것은 환상이며 순전한 허풍이요 ‘혁명적’ 공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 전위], 2001년 11월 9일) 미군은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과 그 회교 동맹세력을 압도했다. 그러나 지금 이라크에서와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점령군과 이들이 지지하는 괴뢰정권은 다시 고개를 든 저항세력과 교전 중이다. 제국주의자들과 이들의 하수인들은 수도인 카불을 겨우 유지하고 있으며 탈레반은 남부 지역에서 더욱 활발히 저항하고 있다. 그리고 국토의 나머지는 라이벌 군벌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으며 이들은 곧 법률이 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기가 꺾인 스파르타쿠스동맹과 여타 사이비 혁명조직들은 제국주의 공룡에 대한 저항이 가망이 없다고 선언했었다.

 

한때 혁명조직이었던 스파르타쿠스동맹은 맑스주의 원칙보다는 편의와 단기적 조직 이익에 따라 자신의 노선을 정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보다 이라크 전쟁이 훨씬 인기가 없지만 부시의 이라크 약탈 전쟁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질적으로 동일한 제국주의 약탈전쟁이다. 이 조직의 비겁한 지도자들은 이렇게 계산하고 있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혁명조직의 체면을 차렸으니 이것으로 우리의 정체는 숨겨질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이 조직의 노선은 바로 일년 육 개월 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관련하여 이들이 “순전한 허풍이요 ‘혁명적’ 공문구”라고 비난했던 바로 그 노선이었다:

 

“잔혹한 후세인 정권에 대해 조금도 정치적 지지를 보내지 않은 채 이라크 방어를 명확히 주창하는 것은 세계 노동계급의 이익에 부합한다. 미 제국주의의 모든 승리는 이후 이들의 군사적 모험을 더 부추길 뿐이다. 한편 이들이 당하는 모욕, 후퇴, 패배 등은 모두 세계 노동계급과 피억압 인민의 투쟁을 돕게 마련이다.”

[스파르타쿠스동맹 정치국의 성명], [노동자 전위] 2003년 3월 28일자에서

 

한편 국제주의그룹(IG)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노동자 전위]의 비겁한 노선에 대한 우리의 비판에 동의했다. 그러나 자신들만이 가장 잘 아는 이유 때문에 노든을 비롯하여 이 조직에 소속된 스파르타쿠스동맹 구 회원들은 이렇게 주장해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스파르타쿠스동맹은 ‘자국’ 제국주의 부르주아 계급의 패배를 주창하는 레닌주의 노선을 제시하기를 다시 거부했다”([국제주의자], 2003년 5월-6월). 그러나 스파르타쿠스동맹 정치국의 성명이 증명하듯이 이 주장은 옳지 않다. 이 조직은 또한 이렇게 보도했다: “스파르타쿠스동맹 회원들은 이라크가 미 제국주의자들을 패배시킬 군사적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자국’ 부르주아 계급의 패배를 주창하지 않는 조직의 노선을 계속 방어하고있다”([국제주의자], 2003년 10월-11월). 이 주장은 충분히 믿을만하다. 왜냐하면 스파르타쿠스동맹 회원들은 혁명적 패배주의 노선에 대한 지도부의 우왕좌왕 때문에 대단히 혼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이 조직의 지도부는 정치의식을 조직 내부의 행정적 압력으로 바꿔치기 하는 습관이 있어서 대체로 자신의 오류들을 정직하게 설명하는 것을 피해왔다. 이를 통해 지도 파벌의 권위는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회원들이 정치적으로 일관성을 더욱 상실하는 대가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국제주의그룹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모두에 대해 기본적으로 올바른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스파르타쿠스동맹이 1983년 레바논 사태에 대해 부끄럽게 꼬리를 내린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왔다. 사실 20년 전의 레바논 사태와 지금의 이라크 사태는 일치하는 점이 너무 명백하여 부르주아 언론조차 이 점을 빈번하게 지적해왔다. 예를 들어 베이루트의 미 해병대 본부 막사 폭파사건 20주년을 기념하여 [디트로이트 자유 언론]의 핀태크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라크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자살 폭탄 테러를 통해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1983년 10월 23일 미 해병대 막사가 폭탄으로 날아간 것을 악몽으로 떠올릴 것이다. 이 사건으로 243명의 미 해병대원과 수병들의 목숨이 없어졌다. 또한 당일 그 도시에 위치한 두 미 대사관 건물들도 유사한 공격을 당했다. (….)

 

2003년 9월 연설에서 미 대통령 부시는 이렇게 미 국민에게 말했다: ‘테러리스트들은 베이루트와 소말리아의 예를 들면서 미군에 타격을 입히면 이들이 도전을 피하고 도망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 주장은 틀렸다.’

 

그러나 역사의 교훈은 그의 주장을 논박하고 있다. 미군은 레바논에서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쫓겨났다. 그러나 이 짧은 기간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증명하기에는 충분히 긴 기간이었다: 수백 킬로그램의 폭탄과 자신의 목숨을 버리겠다는 결의로 무장한 몇 명의 남녀가 초강대국을 꼬리 내리게 할 수 있다. 반미 투사들은 이 교훈을 잘 기억하고 있는데 백악관 주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디트로이트 자유 언론], 2003년 10월 23일

 

이제 이라크의 “테러리스트들”과 “후세인 추종 잔당”은 미국 언론에 의해 “저항 전사들”이라고 흔히 불려지고 있다. 대신 미군 병사들을 더 이상 “해방군”으로 부르지 않고 대신 “점령군”으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수렁”이라는 말이 “승리”라는 말보다 훨씬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불타오르고 있는 험비 차량 주위에서 환희에 차 춤추고 있으며 격추된 미군 헬기들의 잔해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이라크 군중들의 장면에 미국의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익숙해지고 있다. [엔비시] 텔레비전 방송의 프로그램 “언론과의 대담”에 나온 미 국무장관 파월은 2003년 10월 이렇게 인정했다: “이라크의 안보를 장악해야할 것이다…사태가 이렇게 치열하고 장기화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라크를 “진정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이익 추구를 방해할 것 같아 미국 부르주아 계급의 상당 부위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테러대전”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자원을 이라크에서 낭비하고 있다고 민주당은 부시를 비판하고 있다. 이 모습에서 부르주아 계급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유엔의 “정당성”을 미국이 활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부시의 일방적 외교 정책을 이들은 비판하고 있다. 물론 민주당은 공화당만큼이나 중동의 장악에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다만 이 목표를 달성하는 전술적 방식에서 공화당과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민족해방과 사회혁명

 

이라크 저항세력은 일부의 경우 멋진 군사적 성공을 거두면서 미 국방부 계획자들이 희망했던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을 점령군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심각한 군사적 압박을 받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군복무 재등록 비율로 측정한 미군의 사기는 주로 예상보다 긴 주둔기간 때문에 가라앉기 시작하고 있다. 인종주의 미국 자본주의의 모든 모순들은 미군 특히 육군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미국 지배계급이 더러운 일을 하고 있는 일반 병사들에 대해 보이고 있는 뻔뻔스러운 무관심은 국방부가 부상당한 미군병사들로부터 병원 급식비를 받으려는 시도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현재 미 점령군의 압도적 다수는 노동계급 출신이고 흑인과 중남미계의 비율은 인구 비례에 비해 턱없이 높다. 현재 이들 다수는 이라크 임무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표시해왔다. 이것은 이라크 저항세력의 효과적 대응에 주로 기인하는 것으로 긍정적인 현상이다.

 

미국 지배계급은 더러운 전쟁을 직접 수행하는 병사들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 전쟁의 이미지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처음부터 낮았다. 후세인과 9·11테러/알 카에다 사이에 연관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미국의 소수민족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지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미군이 “시체 가방”에 담겨져 꾸준히 본국으로 이송될 경우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이라크 점령은 미군의 능력을 크게 부담 지우고 있으며 국방부는 갈수록 훈련 수준이 낮은 예비군 병력을 파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태를 미국이 장악하지 못하자 다른 나라들은 군대를 보내거나 점령 비용을 일부 부담하는 일을 꺼리고 있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의 저항세력은 더욱 대담하게 미 점령군에 저항하고 있다.

 

우리는 제국주의 점령군에 대항하는 이라크 저항세력을 군사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후세인의 추종 잔당인 바트당은 노동계급에 적대적이었다;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소수민족 뿐 아니라 주류 판매점과 영화관도 테러의 목표물로 삼고 있는 회교 근본주의 세력은 극도로 반동적이다. 바트당 정권 하에서는 서구의 옷차림을 할 수 있었던 이라크 여성들은 회교 반동들의 커지는 영향력 탓에 머리 스카프를 둘러 써야하는 압력을 받고 있다.

 

바트당과 회교의 상대적 인기는 1950년대 이라크공산당의 배신이 가져온 쓰디쓴 열매이다. 그 당시 이라크공산당은 노동계급 내부에서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대학교에서는 압도적인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농민 조직들의 상당한 지지를 누렸으며 군대의 장교단에서도 영향력이 있었다. 더욱이 쿠르드족과 유태인을 포함한 피억압 소수민족 소수인종 등의 충성을 누리고 있었다. 1956년 라퀘르는 이렇게 말했다:

 

“공산당이 괴멸된 1947년-1949년 이래로 이라크 정권은 거의 노골적인 독재정권이었으며 완전히 반동적 정치노선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대대적인 사회적 정치적 개혁을 수행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인민의 이익을 위해 통치해야할 절박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지저분한 음모와 봉건적 기득권 등이 사회를 지배했다. 이 결과 정부는 인민 대다수를 적으로 만들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에는 중간층 전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이제 증오의 대상인 전제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공산당 산하조직들과 동맹할 용의가 있다. 러시아 짜르 체제와 지금 이라크 상황은 대단히 유사하다.”

[중동의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이로부터 2년 후 라퀘르가 예상한 혁명이 폭발했다. 이 당시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바그다드를 진원지로 한 노동계급 혁명의 물결을 예상하고 깊은 우려를 한 나머지 이라크 침공을 준비하기 위해 레바논에 1만 명의 미 해병대를 급파했다. 그러나 노동계급을 국가권력 장악으로 지도하는 대신 소련을 추종한 이라크공산당은 카심 준장이 주도한 이라크 부르주아 계급의 민족주의 분파를 지원했다. 제국주의와 “평화공존”을 도모하면서 노동계급의 이해를 희생시키던 소련은 이라크공산당 지도부에게 카심을 자극하지 말라고 이미 지시해 놓고 있었다. 1958년 혁명적 위기에서 이라크공산당의 비겁한 배신 때문에 노동계급은 권력장악의 길로 나서지 못했고 결국 적대세력들은 대담하게 정권 전복을 준비했다.

 

2003년 3월 14일자 [뉴욕 타임즈]는 이렇게 보도했다: “40년 전에 케네디 대통령 집권 당시 미국 중앙정보부는 사담 후세인의 협조를 받아 바그다드의 정권 교체를 시행했다.” 카심 정권에 대한 군사 쿠데타 직후 당시 25세에 불과했던 바트당 정보장교 후세인은 약 5천 명의 공산당원 제거와 다수에 대한 체포와 고문에 적극 가담했다. 그러나 이 범죄들은 그가 곧 서게될 미군 군사법정의 기소내용에 포함되지는 않을 것 같다.

 

1958년에 이라크공산당이 저지른 배신행위는 이라크 노동운동 내에서 사회주의와 맑스주의의 영향력을 죽여버렸다. 현재 이 배신자들은 미국의 조종에 놀아나는 허수아비 “통치위원회”에 합류하여 제국주의 점령군에 대한 이라크인의 저항을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가로막는 주요한 위협”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혁명 세력의 부재로 인해 반동적이며 반(反)노동계급적인 회교 근본주의 세력이 진지한 반(反)제국주의 투사로 손쉽게 비춰지고 종교의 영향력이 중동에서 가장 적은 나라의 하나인 이라크에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력 증대가 곧 이들의 사회 지배력은 결코 아니다. 바트당 독재가 제거되고 미군이 게릴라들과 교전에 정신이 없는 동안 대중의 노동조합 활동은 소생하고 있으며 일부 의미 있는 파업투쟁이 일어났다. 이 상황에서 이라크의 전투적 노동계급에 뿌리를 내리고 이라크의 소수민족과 소수 종교집단들의 권리를 옹호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여성의 평등과 엄격한 정교분리를 위해 투쟁하는 소규모 혁명조직은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다.

 

혁명조직의 핵심적 임무는 민족해방투쟁을 국내외 자본을 몰수하는 등 사회혁명투쟁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만 이라크 노동 대중은 신식민지 노예상태에서 해방될 수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제국주의 선전은 외국군 점령에 의한 처절한 현실과 뚜렷이 대비되고 있다. 이라크의 혁명조직은 대중의 민주주의적 열망에 부응하여 보편 선거권에 의한 제헌의회 소집 요구를 제출해야한다. 이 요구를 통해 제국주의 세력, 회교 세력, 바트당 독재 잔당 등에 동시적으로 대항할 수 있다. 점령당국은 이러한 기본적 민주주의 조치가 이라크를 인종과 종교로 분열시키고 중동 지역의 다른 제국주의 지지 정권들을 전복시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이러한 사태발전에 대해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만약 남부의 시아파와 북부의 쿠르드족이 분리 독립을 원한다면 맑스주의자들은 이들의 분리독립 권리를 옹호할 것이다.

 

 

‘정권 교체’의 다음 목표물 — 시리아, 이란, 북한, 쿠바

 

미국/영국의 “승리”를 서둘러 선언한 직후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시리아가 감추고 있다면서 이 나라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이라크 저항세력의 강력한 반격 때문에 미국은 시리아를 공격할 계획을 잠시 유보하고 있다. 그러나 2003년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16 킬로미터 북쪽에 위치한 지점을 공습했으며 미국은 이 공격을 암묵적으로 승인했다. 알 아사드 정권이 제국주의 군사 공격의 과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을 통해 명확히 드러났다. 이란 역시 “대량살상무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미국의 일방적 주장과 함께 미국으로부터 더욱 강하게 협박을 당하고 있다. 부시는 공공연히 이란의 “정권 교체”를 주창해왔고 미국은 현재 이란의 동부와 서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상당한 무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현재 미국은 이 두 이웃나라 때문에 손이 완전히 묶여있지만 이란은 미 국방부 타격 목표의 목록에 아주 높이 올라있다.

 

북한의 기형적 노동자국가는 미국의 “핵무기 태세 검토”라는 핵 선제공격 계획 보고서에서 미국의 핵 선제공격의 잠재 목표물로 지정되어 있다. 최근 이 나라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압박 양상은 특히 불길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자기방어를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하고 시험할 권리를 행사하려는 것에 대해 미국은 격심한 분노를 표출하는 체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태평양의 “미사일방어체제”를 계획하면서 북한 그리고/또는 중국의 기형적 노동자국가에 대해 핵 선제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불가침 조약이라는 휴지 조각을 제시할 경우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겠다고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는 지금까지 이 제안을 거부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의 이 제안이 어리석을 뿐 아니라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자본주의는 타도되었고 부르주아 계급의 생산수단은 몰수되었으며 사적 소유는 집단화되었다. 이것은 노동계급의 진정한 성과로서 자본주의 복귀 기도에 대해 무조건 방어되어야한다. 따라서 혁명가들은 북한의 진짜 기이하고 족벌적 관료집단의 지배체제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핵무기 보유 권리를 방어한다. 다른 기형적 노동자국가와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노동계급의 임무는 사회의 근간인 국유화된 집단적 소유체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기생충과 같은 관료집단을 정치적으로 제거하고 민주적 노동자 통치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또 다른 기형적 노동자국가인 쿠바 역시 “핵무기 태세 검토”에 거론된 미국의 핵 선제공격의 잠재적 목표물이다. 부시 행정부는 다음과 같은 웃지 못할 주장을 유포시켜왔다: (집단적 소유체제에 의해서만 가능한) 쿠바의 선진 의료체제가 생물 무기를 제조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사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생물 무기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것이 순전히 방어의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냉소적으로 주장한다. 미국 부르주아 지배계급은 쿠바 혁명의 성과를 파괴하고 카리브해에서 가장 큰 이 섬나라를 자신의 신식민지로 다시 돌려놓기를 열망하고 있다.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하여 쿠바를 비롯한 모든 기형적 노동자국가들을 무조건 방어하는 것은 계급의식을 보유한 전 세계 노동자들의 의무이다.

 

미국의 노동 대중과 소수민족들은 자국 지배계급의 제국주의적 해외 모험 때문에 노동조합 파괴공작, 인종주의적 희생양 만들기, 민주적 기본권에 대한 전반적인 공격 등을 대가로 치르고 있다. 미국 지배자들이 해외에서 당하는 모든 패배는 국내 노동대중과 피억압 대중의 지위를 강화시킨다. 이것은 자본주의 지배자들의 해외 승리는 국내에서 노동계급과 인민에 대한 새로운 공격 준비와 같다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한때 소련은 미 제국주의에 대한 대항축이 되었고 신식민지 정권들에게 지금보다는 훨씬 많은 기동의 여지를 제공했었다. 따라서 소련의 붕괴는 국제노동계급운동에게 가해진 가장 심각한 패배였다. 소련에 대한 공동의 적대관계 때문에 유럽, 미국,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해 차이를 부분적으로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련과 동구의 붕괴 이후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은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왔다. 또한 세계시장, 값싼 노동력, 부족한 자원, 헤게모니 영향권 등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은 가속화되었다. 미국은 제국주의 체제에서 지배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거친 언사와 일방주의 행보는 근본적으로 미국 헤게모니가 침식되고 있는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이 중동의 석유를 독점하는 것은 유럽의 제국주의 라이벌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이다. 이들은 미국이라는 공룡이 이라크라는 진흙탕에 들어가는 것을 거의 감출 수 없는 기쁨으로 바라보았다. 핵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할 제 3차 세계 제국주의 대전의 위험성은 의외로 가까이 다가와 있다. 자본주의는 처참한 사회적 불평등, 돌이킬 수 없는 생태의 파괴 등을 가져왔으며 궁극적으로는 핵무기에 의한 인간의 대량 도살을 초래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잠재적 재앙은 국제노동계급 특히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노동계급의 전투적 부위의 선두에 선 강고한 규율의 혁명조직이 개입하는 것을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 부시와 같이 편협하고 둔한 인간이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의 우두머리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은 비이성적이고 대단히 파괴적인 자본주의 체제가 숨을 거두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완벽한 은유이다. 노동계급의 세계 역사적 임무는 자본의 잔인하고 혼란스러운 지배를 타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기아, 빈곤, 전쟁이 없는 미래 사회주의의 기초를 놓을 계획경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이 이 임무를 달성할 때에만 인류 문명은 현재의 위기에서 구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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