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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출처 – 국제볼셰비키그룹(IBT)



미국: 이라크에서 꼬이다

미제국주의의 무능력

 

  

“나는 우리가 적절한 군사력에 의해 지원 받는 아랍 정권을 수립한다면 영국 재무성에 지나친 지출을 요구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랍의 문제를 전체적으로 다루어야 영국의 이익이 걸린 아랍을 제대로 다룰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엄중한 시기에 아랍을 평온하게 만들 수 없다면, 메소포타미아에서의 군대의 대규모 조기 철수와 그에 따르는 지출의 축소는 아마도 커다란 문제가 될 것이다.

윈스턴 처칠, 1921 (크리스토퍼 카더우드의 <처칠의 바보짓>에서 인용)”

 

이것은 대영제국의 식민지 장관이, 그의 부유한 지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조지 리치 경에게 보낸 편지에서, 중동에 대한 그의 정책을 개괄한 것이다. 일 년 전 대규모의 시아파 반군에 의해 혼쭐이 난 식민지의 관료들은 더 큰 혼란을 우려하여 이 지역에 대한 제국의 개입 규모를 축소하려 하고 있었다. 리치 경에게 위와 같은 편지를 쓴 직후, 처칠은 카이로 회담에서 의장을 맡았다. 그곳에서 메소포타미아는 ‘이라크’가 되었고, 아랍 정권 창출을 위한 계획이 제출되었다.

 

2003년 미제국의 지도자들이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했을 때, 그들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의 중앙에 있고 석유가 풍부한 식민지에서 광대한 물자를 즉각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들은 괴뢰정권을 신속하게 수립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몇 군데의 군사지역에 부대들을 남겨둔 채, 군사력 대부분을 철수시킬 생각이었다. ‘현대화’ 즉, 이라크의 석유와 여타의 경제적 자원들에 대한 약탈은, 그러한 조건에서 미국의 자본가들에게 최고의 이익을 안겨다 줄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20년대의 영국의 식민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새로운 정복자들 역시 토착 저항세력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였고, 예상보다 훨씬 큰 경비 지출에 당혹해야 했다.

 

오랜 세월 동안 믿음직한 반공의 동맹으로 미국의 지지를 받던, 그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워싱턴의 이 ‘자발적인 동맹국’인 이라크는 다시 짜맞추기 지극히 어려운 인종적이고 종교적인 퍼즐 조각들로 흩어져 버렸다. 이 강력한 미국의 군대는 단지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여 교착상태에 빠진 것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그들의 ‘그린 존’ 요새에서 바그다드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것조차 힘겨워 하고 있다. 신식민지국가들만이 아니라 제국주의자들에게도 ‘충격과 공포’가 된 이 이라크 도발은 미국 내에서는 베트남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한편, 해외에서는 세계 유일한 ‘초강대국’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사기가 저하되고 있는 군사적 상황은 미국의 지배계급 내에 불화를 자아내고 있다. 점증하고 있는 미국 내 패배주의 소수 진영은 공개적으로 전쟁의 교훈을 환기시키며 부시 일당의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도발에 대한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분파의  분통함을 대표하며 프랭크 리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부시에 의해 부풀려진 소위 ‘역사적 순간들’에 현혹되어 왔다. 후세인 동상의 철거, 승리 선언, 주권의 양도, 투표권 등은 모두 협잡과 환각의 올가미 속으로 흐려져 버렸다.”

<뉴욕 타임스>, 2005년 8월 28일

 

이라크의 새 헌법이 이전의 그 ‘역사적 순간들’에 비해 별로 대단한 것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과 더불어, 치열한 내부 논쟁은 워싱턴이 안고 있는 고민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붕괴되어가는 군사적 정치적 상황을 안정시키고 수니파에 기초한 저항을 진압하기에 골몰하는 미국은 남쪽에서는 시아파의 종교 지도자들, 북쪽에서는 쿠르드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과 흥정하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해는 그들 상호간뿐만이 아니라 워싱턴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이라크: 제국주의의 산물

 

현재 이라크로 불리는 그 지역은 1차 세계 대전 직전 대부분 쿠르드족으로 구성된 모술 지역, 수니파의 바그다드, 그리고 시아파의 바스라의 세 구역으로 구성된 터키의 오토만 제국이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오토만 제국의 쇠락과 더불어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은 이 지역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 지역의 아랍 인민들은, 유럽 자본가들이 중동지역의 자원 약탈과 시장 진입을 위해 건설한 철도망과 수에즈 운하 건설비용 때문에, 거액의 빚을 영국과 프랑스 은행에 지고 있었다.

 

1차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영국은 터키로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빼앗았다. 영국 군대가 1917년에 바그다드에 들어오면서, 영국군 사령관은 주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확언했다. “우리 군대는 당신들의 영토에 정복자나 적군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해방군으로 들어온 것이다.”(<Harper>, 2003년 5월에서 인용) 그러나 영국은 그들의 복사판인 지금의 미국처럼 그 지역의 석유 자원을 ‘해방’시키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전쟁 후 중동지역에 대한 제국주의의 지배권이 ‘국제연맹(LN)’(‘국제연합(UN)’의 맹아)의 손에 들어왔을 때,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과 모술 지역을, 영국은 바스라와 바그다드 그리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차지했다. 영국은 그 이후에 석유가 풍부한 쿠르드 지역을 프랑스로부터 빼앗고 시아파와 수니파 지역들을 억지로 함께 묶어 그 전체를 ‘이라크’라 명명했다.

 

영국의 식민 정부들은 이 새로운 메소포타미아 점령지를 다양한 부족들 사이의 인종적 종교적 긴장을 이용하여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1920년의 ‘대항전’에 의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한 증언자는 바그다드와 바스라 지역에선 대략 16만 명의 인민이, 쿠르드 지역에선 4만 8천 명 정도가 그 저항에 참여했다고 말한다. 수니파가 다수 참여하기도 했지만, 주로 시아파 아랍 민중이 이 저항에 참여했다. 당시 영국이 얼마나 잔인하게 대응했는지는 다음과 같은 처칠의 악명 높은 인종적 발언에 집약되어 있다. “나는 야만적인 인종들을 향해 독가스를 사용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에드윈 블랙의 <Banking on Baghdad>에서 인용) 독가스와 공중 폭격에 그치지 않고 영국 지상군은 저항 세력에 우호적이라고 생각되는 마을들을 체계적으로 파괴했다.

 

봉기를 진압한 후에 영국은 ‘아랍 정권’ 건설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그 정권의 성격은 외무장관이었던 로드 커즌의 다음과 같은 묘사에 잘 나타나 있다.

 

“영국의 지도에 의해 실질적으로 통치되고, 이슬람 지도자와 아랍 관리들에 의해 통제되는 아랍 정권. 점령지들의 각 지역을 실질적으로 통합해서는 안 된다. (식민지들의 병합은: 역자) 보호국이나 영향권 내의 지역 또는 완충국 등으로 헌법적으로 위장되어야 한다.

<이라크 정복의 뒷이야기>에서 인용

 

이라크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현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의 메카에서, 유명한 핫셈 가문의 한 명을 바그다드로 데려와 파이잘 1세로 왕위에 앉혔다. 실질적으로 파이잘은 독재 권력을 행사했지만, 각료들도 임명되었고 헌법도 선포되고 사이비 의회도 구성되었다. 영국 관료들은 다수인 시아파와 쿠르드족에 맞서게끔 소수인 수니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그들이 애호하는 ‘분리 통치’ 정책을 실행했다. 장차 있을지 모르는 자신들의 꼭두각시 왕실의 불복종을 염려하여, 정부의 각 지위는 제한된 수니파 엘리트들의 수중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정치적 토대를 확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파이잘은 유대인 기독교인과 더불어 시아파와 쿠르드족 중 한 명씩을 등용하려 했다. 그러나 수니파 엘리트들과 영국은 그러한 발상에 반대했고 시아파를 비참한 피지배자의 위치에 남아 있도록 했다. 심지어 시아파 다수 지역의 지방 정부에서조차 수니파의 지배권은 명확히 드러났다.”

타빗 압둘라의 <이라크에 관한 짧은 역사 이야기>에서 인용

 

새로 구성된 소위 ‘정부’는 영국이 지배하는 ‘터키 석유 회사’에 이라크 석유 독점권을 부여했다. 1920년대 후반에 영국에 반대하는 저항이 다시 달아올랐을 때, 영국 정부는 교묘하게도 몇몇 전략적 요충지들만 남겨 놓은 채 대부분의 군사력을 철수시켰다. 물론 그들은 영국의 개입을 무한정 보장하는 ‘상호 방위 조약’을 그들의 꼭두각시 정권과 체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이라크 독재 정권은 1958년의 대규모 민중 저항으로 붕괴되기 전까지(1940-41년 사이 독일을 지지하는 분파가 잠깐 동안 권력을 잡은 적이 있긴 했지만) 시아파와 쿠르드족의 저항을 봉쇄하고 제국주의자들의 ‘질서’를 시행하는 데에 요긴하게 쓰였다.

 

 

이라크의 소위 ‘민주주의’

 

2003년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공 이후, 1차 대전 후의 영국의 식민 정부가 직면했던 것과 매우 유사한 상황은 펜타곤(미국 국방성)이 풀어야 할 숙제가 되었다. 하지만 석유 지역을 안전하게 확보하고 말 잘 듣는 정권을 수립하려는 미국 정부의 계획은 거의 처음부터 어그러졌다. 겉으로 선전하는 그들 군대의 목표(그들이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하며 수만 명의 인명을 살상한)를 ‘대규모 살상 무기의 제거’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전파로 바꿔보려는 부시정부의 치졸한 속임수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점령에 대드는 배은망덕한 이라크인들을 ‘자유’에 대한 광적 혐오증을 가진 자들이라고 선전해 대면서도, 실상 민주주의는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미국의 전쟁 입안자들은 이라크가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지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제국주의의 명령과 ‘질서’를 실행할 믿음직한 토착 정권을 세우는 것만이 주된 관심사였다. 이 사실은 바로, 이라크 선거 기획자들이 왜 미군 주도의 임시행정처(CPA)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역 위원회를 통한 전국 입법 회의의 구성을 제안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2004년 초 이라크에서 가장 강력하고 존경받는 시아파 성직자인 아야톨라 알리 알 시스타니의 지지자들이 벌인 즉각적인 선거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 이후, 지역위원회를 위한 계획은 보류되었다. 워싱턴은 1920년의 ‘대항전’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고, 그러기 위해서 시아파 지도자들과 갈등 없이 잘 지내고 싶어한다.

 

2005년 1월의 선거는 점령에 하나의 문제를 제기했다. 수니파의 보이코트로 인해 시아파 종교 정당들이 압도적인 다수당이 될 것을 우려한 미국 정부는, 그들이 후원하는 독재자 아야드 알라위를 지지하는 후보들을 비밀리에 지원했다. 시무어 허쉬에 따르면 이 일은 ‘투표자 협박, 부정 투표, 뇌물, 등’의 방법 그리고 자금 제공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2005년 7월 <뉴요커>). 선거는 미 국방성의 소원대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다수파가 된 친(親)시스타니 지지 후보들을 배출했는데, 이 선거를 승인한 소위 ‘국제 감시단’들은 요르단 국경 너머에 있었거나 아니면 바그다드의 ‘그린 존’에 있었다. 투표가 공정하고 자유롭게 치러졌다고 승인한 현장의 이라크인 감시단들은 미 제국주의의 쌍둥이 당(민주당과 공화당)의 기관들이나 CIA와 관련된 ‘민주주의를 위한 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을 통해 훈련된 사람들이었다. 이 기관들은 신식민지의 각종 선거를 우측으로 기울도록 만드는 일에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제국주의의 언론기관은 투표 참가가 미국의 정책을 승인하는 것이라고 선전해 댔지만, 사실 쿠르드족과 시아파 민중들이 투표에 참가한 진짜 이유는 그들의 지도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점령을 끝낼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한 UN 참관자의 말에 따르면 “그 선거는 선거라기보다 인종적 종교적 성격의 집회에 가까운 것이었다. 쿠르드족에게 투표는 민족자결의 의미였고, 시아파에게는 시스타니의 종교적 소집이었다.”

 

이라크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향하고 있다는 생각은, 중동 정복에 대한 미국 국내의 지원을 떠받치기 위해 고안해낸 환상일 뿐이다. 자본주의적 질서 아래에서는 이라크의 서로 다른 민족적 종교적인 집단들 간의 부와 정치권력의 공정한 분배가 이뤄질 수 없다. 2005년 1월의 선거 전에 쓴 글에서 ‘전략과 국제 연구 센터’의 에드워드 루트웍은 이렇게 내다봤다.

 

“이라크에 민주주의적 기구들을 지탱할 만큼 열정적인 민주주의자들이 얼마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수인 시아파엔 국제주의적인 인물들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많은 부분은 이러저러한 방법을 통해 그들이 종교적 지도 체제를 강력히 원한다는 것을 밝혀왔다. 종교 지도자들은 또한 음주나 종교의 자유 등을 허용하는 법안 등을 그들의 감시에서 벗어나 입법할 가능성이 있는 세속 의회를 거부한다. 한편, 국가가 들어설 때부터 이라크를 지배해 왔던 소수인 수니파는 종속적인 지위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여, 그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일관되게 거부해왔다. 쿠르드족은 사실상의 자치지역을 훌륭히 통치해 왔다. 하지만 부족이나 가족적인 충성심을 민주주의 대의제의 개인주의보다 선호하기 때문에 선거 실시의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다.”

<외국의 사건들>, 2005년 1/2월

 

쿠르드족은 지방 자치 단체와 세 개의 지역 정부 구성을 위한 선거를 실시해 왔다. 그러나 권력은 여전히 같은 손 안에 남아 있다.

 

워싱턴은 바트 정권의 붕괴로 인해 속박에서 풀려난 지방의 분파세력들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 새로운 석유 식민지를 수탈하고 중동지역을 통제할 항구적인 군사적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안정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만약 폭압적인 중앙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라크는 결국 분열할 테고, 그로 인해 일련의 중대한 지역 갈등이 촉발될 것이다.

 

“분열된 이라크는 아랍 지역을 심각하게 불안정하게 할 것이다. 터키 당국이 걱정하는 터키인들의 쿠르드족에 대한 적개심은 주변의 쿠르드 부족국가들을 향할 것이고, 이것은 터키 자국 내의 고분고분하지 않은 하층민인 쿠르드족에 대한 터키인들의 탄압을 불러올 것이다. 이란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정당들과 이란인 무장 군사들에 의해 지배되고 정신적으로는 이란 태생의 아야톨라 시스타니에 지도되는 시아파 지역에 대해 간섭하려 할 것이다.

 

만약 이라크가 이러한 길로 분열하기 시작한다면, 고립된 수니파가 바트당의 시리아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주의 반대파 그룹들이나, 요르단의 팔레스타인인 다수파들 중에서 자신의 원군을 찾게 될 것이 뻔하다. 내전의 조짐이 분명하다.”

<뉴욕 타임스>, 2005년 8월 27일

 

 

이라크 헌법: 사기 행각

 

쿠르드 민족주의자들이나 대부분의 시아파 지도부가 나름의 이유로 점령을 참아내고 있는 반면, 수니파 엘리트들은 협력할 어떤 이유도 찾기 어렵다. 2005년 1월 수니파의 성공적인 선거 보이콧 이후 미국은 몇몇 영향력 있는 수니파를 새로운 헌법에 대한 토론장으로 끌어들이려고 안달했다. 그래야 점점 더 위협적으로 되어가는 저항을 약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서였다.

 

보통의 이라크인들은, 인종이나 종교적 소속을 떠나, 생존하는 일 자체가 힘겹기 때문에   ‘그린 존’에서 왈가왈부되는 헌법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시아파 노동자인 하난 시합은 “우리에게 물, 석유,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데 도대체 헌법이 뭐란 말입니까?”라는 말로 보통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했다. (<뉴욕 타임스>, 2005년 8월 26일) 최소한 1/3의 노동자들이 실직 상태에 있고, 전기나 식수는 가끔 공급되며, 제국주의자들의 점령 이후 영양실조는 두 배로 늘었다. 요즘엔 오로지 ‘안전’을 위한 자금이 지원될 뿐, 소위 ‘재건’ 계획은 멈춰 있다.

 

2006년 11월의 미국 중간 선거에 맞춰 뭔가 ‘정치적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전체적인 헌법 작업의 일정이 잡혀 있다. 원래의 55인의 헌법위원회에는 단 두 명의 수니파가 소속되어 있었으나, 미국의 강력한 요구로 15명이 추가되었다. 세 번의 마감 기한을 넘긴 후 시아파와 쿠르드족의 위원들은 수니파의 승인 없이 헌법 초안이 완성되어야 한다고 2005년 8월에 발표했다. 2개월 후 초안을 승인하기 위한 총회 전날, 앞으로 열릴 의회에서 헌법 내용을 수정할 수 있다는 새로운 조항이 미국의 압력으로 추가되었다. 이것은 수니파 이라크 이슬람 정당의 승인을 얻어내기에 충분했으나 2005년 시월 13일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투표자들이 자신들이 승인해야 할 헌법(대부분의 투표자들은 읽어볼 기회도 없었던)이 조만간 많은 부분 다시 작성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그 헌법을 승인해야 한다는 것은 민주적인 절차가 분명 아니다.”

 

관심의 초점이 수니파의 반대에 맞춰져 있었지만, 쿠르드족과 시아파 지도부들 사이에도 많은 이견이 있다. 그들은 수니파라는 공동의 적에 대항하여 점령 당국 그리고 상대파와 일시적으로 협조하려 한다. 그러나 그 협조는 단지 편의적인 선택일 뿐이다. 인종적으로 나뉜 키르쿠크시의 미래의 정부 형태와 같은 여러 논쟁적인 주제들에 대해서는 서로 동의하지 않는다. 양측은 모두 단일한 정부보다 지방 분권적인 연합 형태의 정부를 선호한다. 시아파 엘리트들은 내심 최종적으로 단일한 이라크를 통치할 것을 바라지만, 쿠르드족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자치 지역 내에서 최대한의 권한을 누릴 것을 바란다. 쿠르드족 지도자들은 이라크 대법원이 자신들의 자치구까지 지배할 수 없으며, 새로 구성될 이라크 군대도 자신들의 허가 없이 쿠르드 자치구 내로 들어올 수 없어야 한다고 언명해 왔다. 이라크 내에서 가장 강력한 ‘페시메르가’ 민병대를 거느린 쿠르드족과 앞으로 바그다드에 들어서게 될 시아파 주도의 정부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

 

헌법 제정 토론에 참여하고 있는 전 대사관인 피터 갈브레이드는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쿠르드족은 헌법을 대체로 자신들의 독립에 대한 위협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으로 각 조항들을 검토했다. 다수인 시아파는 이기적이고 무경험적인 태도로 헌법을 검토하며 그들은 종종 다른 파들이 도달한 합의 사항을 쉽게 무시했다. 자연스럽게도 이러한 태도는 쿠르드족의 의심을 키웠다. 수니파는 쿠르드족과 시아파가 그들과 협의하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제안된 거의 모든 조항에 대해 반대했다. 결국 미국이 이라크에 잘메이 칼리자드 대사를 파견하여 미국 대사관이 초안을 마련하고, 합의 사항을 기록하게 했으며, 그들을 헌법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뉴욕 도서 비평>지, 2005년 10월 6일

 

점령 당국에 의해 주도되고, 매순간마다 그들이 조종한 최종적인 이라크의 새 ‘헌법’은 결국 미국 대사관 안에서 씌어진 것이다.

 

10년 간 이어진 제국주의의 공격과 경제 제재로 인해, 한때 잘나가던 이라크 경제는 붕괴했다. 이러한 경제의 붕괴는 이라크 민중들이 앞으로 석유(현재 정부 재정의 90%를 담당하고 있다)에 의존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시아파의 남쪽 지역이나 쿠르드족의 북쪽에 대부분 분포된 석유 매장 지역을 차지하는 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중앙 정부를 통해 석유의 혜택을 누리던 수니파 엘리트들은 만약 지방 분권화된 연방 형태의 정부가 된다면 자신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석유는 또한 시아파들도 분열시킨다. 시스타니가 지지하는 통일이라크동맹(United Iraqi Alliance)을 구성하는 다와(Dawa)당과 이라크 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SCIRI)의 두 정당은 석유가 풍부한 남쪽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생산 시설이 있는 바스라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점령군에 대항하여 수차례 전투에 참여한 바 있는 마흐디 군을 이끄는 무크다다 알 사드르는 바그다드의 시아파 빈민가에서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사드르의 연방제에 대한 반대는 이론적인 정치 수사 속에 숨어 있다. 하지만 만약 석유 재정이 새로운 연방의 구획에 의해 다른 지역들로 배정된다면 그의 지지자들이 고통 받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결국 지방권력자들과의 ‘협력’ 속에서 중앙 정부의 석유 재정에 대한 권리 행사 부분은 모호하게 처리되었다. 조항 상으로 모든 지역에 공정한 분배를 보장하고 있지만, ‘협력’의 결정적인 문제는 명확히 표현되지 않았다. 또한 새로운 생산 자원들로부터의 재정 수입에 대한 합의 역시 없었다.

 

세속적인 바트당 정권 하에서는 종교지도자들이 법과 관련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여성들은 아랍 세계의 어떤 나라들보다 그 법 안에서 평등을 누렸다. 그리고 종교적 소속에 무관하게 적용되는 시민법에 의해 가족 분쟁이 해결되었다. 신식민지에서 후진적이고 반동적인 것들과 동맹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기본적인 경향이다. 이 경향에 따라 이라크 헌법 초안은 이슬람을 ‘국가의 공식적인 종교’로 그리고 ‘법 제정의 기초’로 천명하였다. 그런데 이 헌법 초안이 ‘이슬람의 규범들과 충돌’하는 그 어떤 법도 허용하지 않고, 다수의 재판관과 전문가들이 이슬람에서 나와야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점령 당국의 선전 담당자들은 이슬람이 법 제정의 ‘유일한’ 기초로 규정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이것이 세속주의의 부분적 승리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이란의 헌법재판소 격에 해당하는 종교 재판소 가디언 카운실(Guardian Council)의 지도자 아야톨라 아흐메드 자나티는 새로운 헌법에 대한 만족감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수년간의 노력과 기대 속에서 이라크에 드디어 이슬람 국가가 들어서고 이슬람계율에 기초한 헌법이 제정되었다.” 카사 폴리트는 소위 새로이 등장한 ‘민주적’ 이라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여성들은 9살에 시집갈 수 있고, 첩이 될 수 있으며, 이혼과 자녀 양육에 절반의 권리만 누리고, 그들의 남자 형제에 비해 반의 상속권을 지니고, 법정에서의 증언은 남자의 반만 하고, 4명의 남자 무슬림들이 목격해야만 강간당했음을 주장할 수 있고, 혼전에 섹스를 하면 감옥에 갇히고 채찍질을 당해야 하고, 간통의 경우 사형당하고, 일하거나 공부하거나 여행을 갈 경우 남편이나 아버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Nation>, 2005년 9월 19일

 

 

요새의 균열

 

1921년 리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처칠은 메소포타미아에 들어간 예상치 못한 경비와 다른 지역에 개입할 영제국의 역량에 부과된 한계 때문에 고심하고 있음을 토로했다.

 

“한편으로, 우리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계속해서 이런 막대한 액수를 투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그곳에 유지하고 있는 군사력을 빠른 시일 내에 신속히 축소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충분할 것으로 예상되는 감군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어림잡아 천만 내지 천백만의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이 지역에서 필요한 정당한 비용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이다. 특히 우리의 서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 지역의 엄청난 가치와 잠재력을 생각할 때 지나치게 많다.  그 지역들이 중동지역보다 영제국의 발전을 위해 훨씬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카더우드의 같은 책에서 인용

 

처칠은 경솔한 철수가 영국의 국제적 지위를 약화시킬 것을 우려했는데, 이것은 요즘 미국의 전략가들이 우려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다른 한편으로 그와 같은 과정에서 생길 불이익과 불명예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메소포타미아에 전쟁기간 동안 행진해 들어갔고, 그 당시 유일하게 안정적인 형태의 터키의 정부를 전복시켰다. 국제 사회 앞에서 이 나라에 대한 통치를 위임받았고, 우리가 전복한 정부보다 더 나은 정부를 구성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만약 우리가 지금 완전한 무정부 상태와 야만적인 사막의 아랍인들로 득실거릴 역사적인 도시들을 뒤로 하고 창피스럽게 해변을 향해 도망해 버린다면, 그 동안 대영제국의 명성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책

 

영국은 대부분의 군사력을 철수시키고 적절한 꼭두각시 정권을 앉히는 데에 성공했다. 미국의 지금 상태는 그때보다 못하다. 하버드 대학의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은 최근에 그 이유를 이렇게 지적했다.

 

“뭐가 잘못 되었나? 역사는 두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는 질서를 잡기에는 연합군의 수가 너무 적다는 사실이다. 1920년 이라크의 대규모 저항을 진압할 때의 영국군의 수는 13만 5천명 정도였다. 재미있게도 그것은 지금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사의 수와 비슷하다. 문제는 이라크의 인구가 1920년에는 3백만을 조금 넘었지만, 지금은 2천 4백만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이다. 즉, 고분고분하지 않은 도시의 사람들을 통제하기가 ‘키플링[영국의 작가 1865~1936:역자] 시대’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이다. 키플링의 <On the City Walls>를 보면 ‘긴 채찍을 들고 말에 올라타서 30명의 보안관을 이끄는 20살쯤 되는’ 영국의 경찰 지구대원이, 오백 명의 전투 군인들이 현장에 출동하기 전까지 이슬람과 힌두교도들의 소요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말하기 조심스럽다. 그때는 로켓탄과 사제 폭탄들이 등장하기 전이었다.”

 

물론 점령군에 대항하여 로켓탄과 그 밖의 것들을 잘 다룰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저항군의 군사 교관들은, 과거 미국의 지원으로 설립된 경찰과 군사 기구에서 양성된 사람들이다.  미국은 바트당원들을 이전에는 민족주의 좌파와 공산당 반군에 대해, 그리고 그 당시에는 이란에 맞선 방파제로 여겼다. 그리고 지하드 반군처럼 높은 수준으로 훈련된 저항 분자들은 1980년대에 소련에 맞서게 하기 위해 미국의 CIA가 훈련시킨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주의 ‘무자헤딘’ 에서 길러진 사람들이다.

 

워싱턴 주변에 포진되어 있는 각종 연구기관에서 최근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생각을 반영하여 퍼거슨은 이렇게 묻는다. “지금이 바로 미국인들을 위하여, 과거에 해왔던 것처럼 승리를 선언하고 철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언론들은 이라크에서 죽은 미군 병사의 어머니인 신디 시핸에 관심을 쏟고 있다. 텍사스에 있는 부시의 크로포드 목장 밖에서 행했던 2005년 8월의 철야 농성은 미국의 전쟁광들에게 악몽 같은 순간이었다. 2005년 10월 1일 자칭 ‘사회 지도층 경제 지도자들’이라고 말하는 한 그룹은 <뉴욕 타임스>지에 광고를 게재했다: “대통령 각하, 우리는 당신을 CEO 대통령이라고 부르려 한다. 유능한 CEO는 회사 전체를 망치기 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투자를 중지한다. 미국의 재건, 바로 그것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이다. 군대를 지금 당장 철수시켜라.”

 

이라크 침공은 매우 잘못된 엄청난 도박이었다. 그러나 거액이 이미 투자되었고, 철군을 위해 드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에 미국의 지배 계급들은, 심지어 승리에 비관적인 자들조차도, 패배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한다. 손쉬운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미국이 그 모험에 뛰어들게 하는 데에 일조한 신보수파 잡지는, 철군은 지금 선택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성공하는 길 외에 달리 선택할 것이 없다. 이라크에서의 실패는 중동 지역을 혼란시킬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은 그곳에서 미국 본토나 미국령 또는 유럽 나아가 세계를 공격할 준비를 할 것이다. 이라크에서의 패배는 패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은 큰 실패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라크처럼 최우선 순위로 연구된 계획에서 실패해서는 안 된다. 미군 병사들의 생명과 안락한 삶을 희생하고 2천억 달러의 국세를 투여하고 막대한 국제적인 정치 자본을 쏟아 부은 지금, 실패는 국제적으로 그리고 국내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다.”

<내셔널 인터레스트>, 2005년 가을

 

그러나 ‘기존 정책을 지지’하는 분파들조차도 미군이 상황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는 것에 대해 의기소침해 하고 있다. 그리고 백악관은 후퇴전략에 대한 논의는 곧 패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인 조지 케이시 장군이 장차 미국이 ‘적절한 규모의 군사력을 축소해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했을 때, 부시는 “병력을 철수시키는 것은 적들에게 부적절한 신호를 주는 것이다”라고 즉각 반박한 바 있다. (<뉴욕 타임스> 2005년 8월 12일)

 

좋은 소식은 거의 없는 가운데, 2006년 11월의 의회 선거가 다가오자 많은 부시 지지자들은 점점 더 언짢아하고 있다. 네브라스카 주(州)의 공화당 상원의원인 척 하겔은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일이 잘되기는커녕 점점 악화되고 있다. 백악관은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 마치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상황을 조작하는 것 같다. 진실은 우리가 지금 이라크에서 패배하고 있다는 것이다.”(<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2005년 6월 27일) 심지어 프랑스가 전쟁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자 ‘프렌치 프라이’를 ‘프리덤 프라이’로 바꿔 부르자고 제안했던 북캐롤라이나 주(州)의 대변인 월터 존스는 이제 철수를 위한 계획표를 제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점령 정책의 인기가 식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원들은 매우 느리게 철수 정책으로 돌아서고 있다. 민주당 상원의원 힐러리 클린턴은 “만약 우리가 인위적으로 한계선을 정한다면, 그것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청신호가 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In These Times>, 2005년 9월 29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다양한 개량주의 좌파들은, 이라크에서의 ‘부드러운’ 정책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이면 선거에서 불리해질 것을 우려하는 우익과 기회주의자들이 민주당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점령 종식을 마지못해 요구하는 진짜 이유는, 그들의 자본가 계급의 쌍둥이 정당인 공화당이 그러는 것처럼, 미국의 자본가 계급이 이라크에서 패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방장관인 도널드 럼스펠드는 이라크에서의 저항이 앞으로 십년 간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래서 백악관은 새롭게 구성되는 이라크 군대와 경찰이 충분할 정도로 강력해지게 되면 저항군과의 싸움을 그들에게 떠넘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리처드 닉슨이 베트남에서 손쉬운 군사적 승리가 물 건너갔다는 것을 힘겹게 깨달은 후에 움켜쥐었던 지푸라기와 똑같은 것이다. ‘베트남전’은 미 제국주의가 그때까지 겪었던 패배 중 가장 뼈아픈 것이었다.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전망이 그보다 나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바그다드의 꼭두각시 정권은 취약하고 다루기 힘들다. 이라크에 억압 정권을 세우기 위한 시도 역시 재앙적일 것이다. 2005년 시월, 2년의 훈련을 거친 후에 케이시 장군은 115개의 이라크인으로 구성된 대대들 가운데 단 하나의 대대만이 작전 수행이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이라크 군대의 대부분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라크 군은 명목상으로 115개의 대대 또는 80,000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수치는 이라크 점령을 성공으로 보려는 사람들에 의해 종종 인용되곤 하는데, 실제로는 월급 명세서하고만 일치하는 수치이다. 국방부가 월급 지불을 조사하려고 했을 때, 1/3의 월급 지불분이 되돌아 왔다. (현금으로만 거래되는 이라크에서 지휘자들은 그들이 지휘하는 병사들의 월급을 총액 형태로 지급받는다. 이러한 관례는 지휘자들이 유령 병사들을 월급 명세서에 올리려는 유혹을 받게 한다.) 한 고위 공직자는 등재되어 있는 거의 절반 정도의 군대만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뉴욕 도서 비평>, 2005년 10월 6일

 

그리고 사기(士氣)의 문제도 있다. 실제로 꼭두각시 군대가 저항군들과의 실전을 벌일 때마다 많은 탈영자들이 생겼다. 쿠르드족의 페시메르가나 사드의 마흐디군과 SCIRI의 바드르 군대와 같은 종교적 정치적인 부대들은 실제로 공식 경찰과 군 병력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기 병력의 3/4이 시아파나 또 다른 군 조직에 대해 충성했었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시인했다는 이유로 경찰 수뇌가 바스라에서 총살당하기도 했다. 미 국방부가 파견될 준비가 된 이라크 병사들에 대한 군사 장비 지급을 주저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쉽게 말해 이라크는 6개월 이후나 1년 후에 어떤 모습이 될 지 아무도 모른다. 여러 분파들이 서로 타협하여 하나가 될지, 아니면 갈라져서 내전에 이를지.

 

그리고 이 점은 미국의 군사 정책가들에게도 어려운 숙제이다. 이 문제가 제기되면 그들은 지급된 중화기가 장차 미군을 향해 겨눠지거나 내전에 쓰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라크 군병력이 정교한 무기를 지급받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미군은 혼란스런 정세의 방파제 역할을 더 오래도록 해야 한다.”

<뉴욕 타임스>, 2005년 8월 28일

 

한편 미국이나 그들의 하수인인 이라크 정부와는 달리 대중적인 지지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저항군은 갈수록 효율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바트 당 간부들이나 수니파 근본주의자들만이 아니라, 집이 파괴되거나, 친척이나 친구들이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미제의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거나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가 연합군의 폭격에 의해 간접 피해를 당한 이라크인들도 그 저항에 참여하고 있다. 2005년 11월 11일치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보 관리들은 외국의 지하드 무장단체와 별도로 “사담 후세인 정권의 지지자들과 더불어 점령에 환멸을 느끼는 보통의 수니파 이라크인들이 저항군의 대략 70% 정도를 구성하고 있고 나머지는 시아파 그룹들이다.”라고 추정한다.

 

수백만의 이라크인들은 종교적인 믿음 때문이 아니라 수치와 인격 모독 그리고 부과된 고통 때문에 점령에 대해 증오하고 있다. 2005년 4월 바그다드 함락 2주년이 되는 날 30만 명의 시아파들은 “미국 반대! 점령 반대!”를 외치며 시위에 참여하였다. (<LA Times>, 2005년 4월 10일) 수만 명이 참여한 유사한 시위들이 남쪽의 시아파 거주 지역에서 일어났다. 이러한 시위를 조직했던 사드르의 지지자들은 미국의 철수를 요구하는 100만 명의 서명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밖으로 새어나간 영국 국방부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82%의 이라크인들은 미영 연합군에 대해 ‘매우 반대’하며, 45%는 미국과 영국 군대에 대한 공격이 정당하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 자료에 의하면 “71%의 이라크인들은 식수를 구하기 힘들어하고, 47%는 전력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70%의 하수도 시설이 작동하지 않고, 40%의 남부 이라크인들은 실업상태에 있다.” (<Sunday Telegraph>[런던], 2005년 10월 23일)

 

워싱턴은 쓸 만한 대안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영의 ‘의지의 연합’은 약화되어가고 있다. 영국군은 초기에 4만 5천 명이었으나 점점 줄어 지금은 만 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토니 블레어 수상의 ‘현상 유지’ 공약은 국내에서 그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영국 정부는 철군 일정을 짜자고 요구하며 미국 정부를 남모르게 볶아대고 있다. (<Telegraph>, 2005년 1월 20일)

 

믿을만한 현지인 군대의 도움이 없는 상황에서, 미 국방부는 저항군과의 전투에 미군들을 투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모집 담당자를 1000명 충원하고 입영 기준을 낮추었음에도, 미군은 그들의 병력 모집의 목표 달성에 계속 실패하고 있다. 부족분의 40% 정도는 매번 예비군과 주방위군 병사들로 채우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속되기 어렵다.

 

“몇몇 전역 또는 현역 고위 장교들은 수니파 삼각 지대의 도시 지역의 전투 임무를 일 년 더 맡게 된다면 순회 근무를 하고 있는 미국의 예비군이나 주방위군 그리고 정규군의 응집력과 사기가 붕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역한 배리 매카피 장군은 “주방위군은 붕괴 직전에 있고 24개월 안에 해체될 위기에 있다.”고 말한다.”

<New York Post>, 2005년 8월 21일

 

미국은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미국의 고위 당국이 고려하고 있는 하나의 계획은 현재 점령하고 있는 지역에서 100개의 군사기지를 빼내 네 개의 군사 집중 지역에 배치하는 것이다. 미국 고위 관료에 의하면 그곳은 “이라크인들에 필요한 병참 지원을 하고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곳”이다. (<Guardian>, 2005년 5월 23일) 하지만 문제는 미국이 지원할 ‘이라크인들’이 현실적으로 없다는 사실이다.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자!

 

혁명가들은 제국주의 침략자들과 그 희생자들과의 전쟁에서 중립의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미국과 영국의 연합군이 이라크 침공을 준비하고 있을 때 <국제볼세비키그룹(IBT)>은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이라크를 방어하자!”라는 구호를 제출한 바 있다. 우리는 피로 물든 사담 후세인의 바트당 정권에 대해 정치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 한편 동시에 이라크에서의 제국주의의 패배는 제국주의 본국의 노동자와 피억압 민중을 포함한 전세계 자본주의 희생자들에게 승리가 될 것이라고 인식했다.

 

침공에 대항한 몇 주 간의 저항 이후, 정예군인 공화국 수비대를 포함한 이라크군은 다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그동안 모든 침략에 대해 게릴라 투쟁으로 맞서겠다고 선언해 온 바트당 지도부의 전략적 선택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서방의 언론들은 흰 복장을 한 사담 게릴라 부대(fedayeen Saddam)의 계속 이어지는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들과 이러한 선언을 조롱했었다. 하지만 바그다드 함락 이후 게재된 사설은 이  테러리스트들이 애초에 예측했던 것보다 더 위력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쟁에서 놀랄만한 한 가지 사실은 사담의 게릴라 부대였다. 바트당 전투원들은 보통 사람 속에 섞여 매복하고 미국 군용 차량을 저격했다. 전쟁 초기 그러한 공격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군사령부를 우물쭈물하게 만들면서, 그들은 정규군보다 군사적으로 더 치명적인 장애가 됨을 증명했다. 미국 중앙 사령부의 전 책임자였다가 퇴역한 존 시글러 소장의 말에 의하면 ‘그들의 공격은 이 전쟁에서 중요하게 기록될 것이다.’”

<Washington Post>, 2003년 4월 10일

 

2003년 5월 1일, 미 아브라함 링컨 호에서 부시가 성급한 ‘임무완수’를 축하하기 며칠 전,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카타르에 위치한 미군 사령부에서 질문을 받고 있었다.

 

청중석에서 한 병사가 비평가들이 그에게 빗발치듯한 해명요구를 한 적이 있는지를 묻자 럼스펠드가 이렇게 대답했다. “주위에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죠?”

 

“‘아시겠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은 브리튼 전투에 대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적은 사람들[전투기 조종사: 역주]에게 그토록 많은 신세를 진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럼스펠드가 말했다. ‘워싱턴에서 한 유머작가가 그의 말을 재구성하여 편지를 보냈더군요.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고요.’”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9일

 

그러나 또 다른 ‘선제’ 공격들의 발판이 되어줄 것으로 보였던 가뿐한 승리는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오늘날, 심지어 가장 호전적인 백악관의 매파들도 시리아나 이란으로의 확전이나 기형적인 노동자 국가인 북한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는 몸을 사리고 있다.

 

맑스주의자는 제국주의 점령자나 그들의 대리인과 하수인들에 대한 저항군의 공격을 지지한다. 설령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제국주의자들이 이라크를 지배하는 것에 기꺼이 협력하는 자들을 공격의 목표물로 삼는 것은 정당하다. 그런데 <혁명적 정당을 위한 동맹(League for the Revolutionary Party)>의 제 3진영 중도주의자들은 이 기본적 입장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점령 당국이나 꼭두각시 정권이 저항군에게 사격 명령을 내렸을 때, 그들의 동료 이라크인들을 향해 총 쏘기를 거부했던 병사들이 많이 있는 이라크군의 입영자들을 목표물로 삼는 것을 우리는 반대한다.”고 말한다. (<Proletarian Revolution 75호>, 2005년 가을) 확실히 이라크군엔 다양한 저항군들의 요원이나 동조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군은 제국주의 점령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시아파나 쿠르드족으로 주로 구성된 이 이라크군은 수니파 지역으로 성공적으로 파견되고 있다. 2005년 여름 수니파 도시 탈 아파르에 대한 공격 당시, 수천 명의 시민들이 집에서 끌려나왔고 수백 명은 살해되었는데, 바로 이 일을 자행한 자들이 바로 꼭두각시 정권의 용병들이었다.

 

통상적으로 파업 파괴자나 경찰 또는 지배 계급의 주구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걱정해 주지 않던 LRP가 이라크의 자발적인 매국노들의 안녕을 걱정해 주는 것은 다소 의외이다. 우리는 이것을 ‘자유주의적 동정’이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이라크 지원자들의 압도적 다수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원한다. 그러나 이것은 제국주의 군대의 병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이유로 지배계급과 상반된 이해를 지닌 가난한 백인과 흑인 그리고 남미계 미국인들이 미국 군대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1983년 스파르타쿠스 동맹(Spartacist League)이 미국의 해병을 레바논에서 구해내라고 요구할 때, 우리가 그들에게 지적했던 것처럼, 공산주의자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입대’했다고 해서 제국주의자들의 훈련된 살인자들에게 살인 면허를 주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원의 신도들이나 장보러 나온 보통 사람들에 대한 종파주의자들의 공격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들은 그들의 범죄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의 공격으로 인해 공격당한 인민들이 제국주의나 괴뢰 정권 편으로 넘어가게 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바보짓을 하는 것이다.

 

 

되살아나는 이라크의 노동 계급

 

15년간의 제국주의의 경제 봉쇄와 군사적 위협 이후 이라크의 경제적 역량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노동계급은 빈곤해졌다. AP통신의 2005년 3월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현재 이라크인의 가계 수입은 25년 전의 1/4 정도의 수준이다. 새로운 ‘야바위’ 헌법은 ‘사적 영역을 활성화하고 개발할 것’을 요구한다. 그 헌법의 110조는 이라크의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에게 석유나 가스 생산을 ‘시장 원리에 입각한 가장 현대적인 기술에 의지할 것과 투자를 활성화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25조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국가는 이라크 경제가 현대적인 경제 원리에 기초한 개선을 보장해야 한다. 그것은 자원에 대한 완전한 투자를 보장하는 것이며, 투자 대상이 되는 자원을 확대하는 것이다…….”

 

석유 기반 시설과 외국의 사업가들을 향한 완강한 저항군의 공격들은 석유 재벌들을 곤란하게 만들어 왔다. 그러나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은 최소한 당분간은 몇몇 부분은 제외하지만, 석유 개발과 수출 영역에서는 사업체 인수까지 포함한 투자를 사적 투자자들에게 개방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노동계급은 주목할 만한 회복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석유 부문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이 있었다. 2만 3천 명의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는 남쪽 석유 지대의 ‘석유 노동자 노조(General Union of Oil Employee)’는 석유 산업의 사유화 시도에 전투적으로 저항해 왔다. 2003년 8월 그 노조는 모든 석유 수출을 봉쇄하고 핼리버튼의 자회사인 KBR(Kellogg Brown & Root)사를 바스라에서 몰아냈다. 2개월 후, 파업의 위협은 미 점령군 사령관인 폴 브레머로 하여금 임금 삭감 계획을 철회하게 만들었다. 2005년 7월 바스라의 석유 노동자들은 바트당 관리자들을 축출할 것, 석유 소득분의 보다 많은 부분을 지역 경제에 투자할 것, 그리고 임금과 주거비를 인상할 것을 요구하는 24시간 파업에 돌입했다.(<Iraq Occupation Focus>, 2005년 7월 17일) 한 조합원은 “우리는 그동안 ‘황금을 운반하면서도 가시덤불을 먹이로 먹는 낙타나 다를 바 없었다.”라고 말했다. (<The Progressive>, 2005년 10월)

 

2005년 8월 키르쿠크와 주변 지역의 의료 기관의 노동자들은 보건 당국의 임금 삭감에 항의하는 파업을 전개했다. 그 다음 달엔 바그다드의 섬유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위한 파업을 벌였다. 점증하는 노동 불안을 줄이기 위한 뻔한 시도로, 괴뢰정부는 노조의 돈을 전부 정부의 통제 하에 둠으로써, 노조가 그 돈을 집행하는 것을 금지시킨다고 공표했다. (<Occupation Watch>, 2005년 8월 25일) ‘이라크 노동조합 연맹(IFTU)’이 알라위의 친제국주의 이라크 민족회의의 지지를 받는 이라크 공산당의 협력자들이 이끄는 이라크의 유일한 합법노조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런 조처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형식적인 의회에서 두 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슬람 헌법(sharia constitution)을 지지하는 스탈린주의 이라크공산당은 ‘민주적 요소’가 더 강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공손하게 제안하고 있다.)

 

이라크의 공산주의노동자당(WCPI)은 이슬람주의와 바트당 저항군을 미영 연합군과 동일시하는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최소한 제국주의 점령과 바그다드의 꼭두각시들을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공산주의노동자당의 지지자들은 이라크의 실업자노조(Union of Unemployed)에 의한 대규모 시위들을 조직하는 것을 도와왔다. 이라크노총(Federation of Worker Councils and Unions in Iraq) 내의 공산주의노동자당 지지자들이 공공연한 협조주의자인 이라크노조연맹보다 더 전투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점령을 끝낼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유엔이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것이다.”라고 제안해 왔다. (<Voice of Iraqi Workers>, 2005년 6월 5일)

 

그러나 유엔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국제적인 자선 사업가들의 초계급적인 조직이 아니다. 1991년 10만의 이라크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되는 ‘사막의 폭풍’ 작전은 유엔의 비호 아래 자행된 것이었다. 그리고 백만 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간 그 뒤의 경제 제재도 마찬가지였다.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현재의 점령 상황을 승인했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미영 연합군이 유엔의 평화유지군으로 대체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다. 혁명가들은, 유엔으로 포장한 점령의 재조정이 아니라, 제국주의 군대와 그들의 하수인들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철수를 지지한다.

 

노동계급은, 제국주의 동맹자들과 함께 그 동안 이라크를 지배해 왔던 이슬람지도자들, 족장들, 독재자들의 억압체제를 갈아엎고 현 점령자들을 몰아낼 만한, 사회적 힘과 객관적인 이해관계 모두를 갖추고 있는 유일한 계급이다. 이라크의 제국주의 침략자들의 군사적 패배는 최소한 당분간이라도 유사한 학살 모험을 실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중동 지역 인민의 민족적이고 사회적인 해방은 인근 여러 나라 노동 계급의 국제적인 개입이 있어야 가능하다.

 

제국주의 점령은 정부와 석유 토지 등을 최대치로 얻기 위해 벌이는 각 종교와 민족적 종파들 사이의 갈등을 내전의 화염으로 이끌고 있다. 쿠르드족의 쁘띠부르주아 정당들의 지도자들은 민족적 권리를 위한 모든 투쟁을, 미국 그리고 그 꼭두각시 정권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종속시켜 왔다. 쿠르드족과 시아파 부르주아 지도자들이 그들의 요구 사항을 제기하기 위해 인민들의 정당한 불만들을 이용하는 한편, 수니파 아랍 지도자들은 그들 나름의 소망에 기초하여 행동한다. 이들 중 어떤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끝없이 지속되는 가난의 고통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노동 계급은 직시해야 한다. 현재 빈발하고 있는 종파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인명 살상으로부터 노동계급이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산자들과 노동계급이 현재의 난국을 타개할 유일한 길은 혁명을 통해 이라크의 자본가들과 지주들의 자산을 몰수하고, 중동 지역에 연속적으로 터져나가는 혁명의 불을 붙이는 것이다.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성원들의 필요에 의해 생산이 결정되는, 공동소유의 계획 경제를 건설하는 것을 통해서, 노동자 국가는 그들의 삶의 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종파적인 경쟁과 민족적 억압을 일소할 기초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중동지역 사회주의 연방 속에서 제국주의자들이 그어 놓은 국경들은 사라질 수 있고, 전례 없는 경제적 발전의 과실들을 누리면서 중동지역의 인민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레온 트로츠키는 1927년에 있었던 재앙적인 중국 혁명의 패배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적 발전이 뒤처진 나라들 특히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 국가들에서는 연속 혁명의 이론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민주주의와 민족 해방이라는 과제를 얻기 위한 완전하고 진정한 해결책은, 농민들보다도 억압된 인민의 지도자로서 노동계급의 독재를 통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연속혁명>

 

노동 계급 내에 뿌리를 내린 혁명 정당의 지도가 있어야 권력을 향한 노동계급의 투쟁은 성공할 수 있다. 그 혁명 정당은 모든 종교적, 인종적, 성적, 민족적 억압에 대항해 투쟁할 것이고, 종교와 정치의 확고한 분리 정책을 택할 것이다. 베일을 다시 착용하는 것과 이슬람 헌법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용감한 이라크 여성들은, 의심할 바 없이 그 혁명 정당의 주축이 될 것이며 사회주의 미래의 가장 전투적인 투사가 될 것이다.

 

혁명적인 노동자 정당은 노동 계급 자체의 조직적 독립을 유지하면서, 점령에 맞서 싸우는 모든 세력들과 군사적 동맹을 맺을 것이다. 혁명 정당은 현존하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주택과 식량 보장 정책을 방어하고, 모든 사유화 정책에 반대한다. 혁명 정당은 단순히 점령 당국과 그들의 하수인들의 행동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고통을 강요하는 제국주의 감옥에 대한 노동계급의 혁명적 해결책을 지지해야 한다고 호소할 것이다.

 

수많은 인민의 가난과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파괴, 인종차별, 성적 차별, 폭정과 전쟁을 야기하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를 끝장내는 것이야말로 21세기에 인류가 당면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라크의 역사는 중동 지역의 사회적 민족적 해방이라는 과제가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오늘날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초강대국이다. 여전히 그 라이벌 국가들보다 훨씬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라크의 수렁은 그 내리막길을 향한 걸음을 재촉하게 할 것이다. 그들의 반동적 이데올로기 공세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서의 점령자들에 대한 저항군의 강력한 공격들은 세계의 피억압 인민들에게 그들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의 수렁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는 동안, 워싱턴의 제국주의 분파들은 미국이라는 괴물 국가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어찌하면 개선할 수 있을지 기회를 엿보고 있다. 몇몇 미국 외교 기관의 최고위 인사들은 미국을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부시의 무모한 ‘선제공격’ 정책에 대해 심히 우려하고 있다. 1960년대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의 국방장관이었고 그 시절의 전쟁 범죄자였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최근에 미국의 핵정책에 대한 우려를 표현했다. 그는 미국의 핵정책을 ‘부도덕, 불법, 군사적으로 불필요한 그리고 대단히 위험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미국은 ‘선제 사용 금지’ 정책을, 나의 7년의 임기 동안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도, 한 번도 승인한 적이 없다.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이익이라면, 상대가 핵을 가지고 있건 그렇지 않건 단 한 사람 즉, 대통령이 핵을 선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왔다.”

<Foreign Policy>, 2005년 5-6월

 

맥나마라는 또한 차세대 전술적 핵무기 실험에 대한 미국의 계획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비핵국가에게 말하건대 ‘재래식 무기의 세계 최강대국인 우리 미국은 핵무기를 지속적으로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잘 무장된 적과 대면하고 있는 너희 나라들은 단 하나의 핵무기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세계 자본주의 경쟁의 종점은 제국주의 핵전쟁이다. 이러한 악몽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회주의 혁명뿐이다. 이 혁명은 이윤을 지상의 가치로 여기는 야만으로부터 자본주의에서 개발된 산업 기술의 막대한 잠재된 생산력을 해방시킬 것이고, 나아가 국제적인 계획 경제를 건설할 것이다. 공동 소유의 세계 경제는 배고픔과 가난을 수년 내에 해결할 수 있다. 우리가 사회주의를 건설해내지 못한다면, 90년 전 독일의 위대한 혁명가였던 로자 룩셈부르크가 다음과 같이 통찰했던 것처럼, 인류 문명은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삶의 조건을 프롤레타리아가 견딜 수 없다는 사정 때문에서만 사회주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만약 프롤레타리아가 자기 계급의 역사적 의무를 성취하지 못한다면, 우리 인류 모두가 역사의 무덤에 묻힐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사회주의는 더욱 절실한 것이다.”

<우리의 강령과 정치적 상황>,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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