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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스탈린주의자와의 대화

 


논쟁의 배경과 개요:

2010년 5월 창립한 사회주의노동자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는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을 목표로 이른바 ‘단일안’을 채택한 2011년 9월 까지 강령초안 제출, 토론, 논쟁 등 강령 수립 작업을 진행하였다. 3개의 강령안이 제출되었고, 그 중 ‘4인터내셔널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강령초안(4인터안)’은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 방어’와 ‘스탈린주의 반대’ 등으로 특징되는 트로츠키주의를 대변하였다.

2011 년 5월 26일 ‘국제건달’이라는 필명의 동지가 <최근 사노위 강령토론에 부쳐-이행기강령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글로 대체로 스탈린주의적 시각에서 트로츠키주의적 입장을 비판하는 글을 제출하였고, 그에 ‘4인터’가 답하면서 논쟁이 시작되었다.

여기서는 ‘4인터’가 제출한 글들만 정리한다. 논쟁에 참여한 모든 글은 사노위(http://swc.jinbo.net) 2011년 5월 26일부터 12월까지의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차례>


국제건달 동지(5월 26일)에 답하며: 국제건달 동지가 왜곡하고 있는 것들: 6월 3일

국제건달의 비판(6월 8일)에 대한 답변: 8월 15일

1. ‘제4인터내셔널을 재건하자’는 뜻

2. 이행강령과 혁명전통

3. 일국사회주의론

4. 인민전선 전술/ 스페인/ 독일

5. 독선과 종교와 과학

6. 모스크바 재판과 숙청

7. “열심히 공부하고 실천하는” 노사과연, 노정협, 다함께

8. “북의 핵무장, 부르주아 평화주의, 사회평화주의 논란에 대하여”

9. 우리는 NPA 유형의 당을 추구할 것인가?

‘점삼’과 ‘방해노선’에 대한 답변: 8월 18일

‘점삼’에게

‘방해노선’이 제기하는 흥미로운 문제 두 가지

국제건달(8월 22일)에 대한 4인터의 답변: 8월 29일

1. 클리프주의와 스탈린주의가 만나는 지점

2. 이행강령에 대한 스탈린주의적 이해

3. 일국사회주의론, 인민전선전술

4. 노동자국가와 자본가국가 사이의 체제모순은 계급모순의 가장 격렬한 발현태이다

5. NPA 유형의 정당 추구

6. 모스크바재판/ 숙청/ 흐루시초프의 ‘비밀연설’

흐루시초프의 비밀연설과 스탈린주의: 12월 3일

 

 

 

국제건달 동지(5월 26일)에 답하며: 국제건달 동지가 왜곡하고 있는 것들

며칠 전 ‘국제건달’이라는 필자가 <최근 사노위 강령토론에 부쳐-이행기강령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글을 사노위 자유게시판과 내부게시판에 게재하였다. 강령 초안 제출자가 아닌 동지가 장문의, 그리고 논쟁적인 의견서를 제출한 것은 종전에 없던 일인데 이는 매우 반길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논 쟁을 한다는 것은 수고로우면서 한편으로는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서로에게 대단히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논쟁에 임하는 태도가 진지하지 않다면 그 논쟁에서 즐거움과 보람 따위는 없을 것이며, 서로를 피곤하게만 하고 아무런 이득도 없는 말싸움만이 있게 될 것이다.

그 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국제건달 동지가 과연 진지하게 논쟁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심각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미 국제건달 동지의 글에 대한 짧은 댓글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대상(여기서는 4인터안)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편견(주로 노정협, 노사과연 동지들이 트로츠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것)에 근거하여 마음대로 규정하고, 심지어 자명한 사실조차도 왜곡하고 있는데 이런 식의 태도는 정치적으로 무익할 뿐더러 4인터안을 제출한 동지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국제건달 동지가 진정으로 건설적인 토론을 하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점들에 대해 답변을 해야 한다.


1.

결 국 트로츠키가 얘기하는 것은 자본주의는 쇠퇴기에 들어섰고, 항상적인 위기이며, 이것이 사회주의 혁명의 객관적 조건이 무르익은 준혁명적 상황이고, 이행기이며, 이러한 이행기에는 낡은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의 틀이 아니라 대중이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인식하도록 다리가 될 이행강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4인터의 주된 이론가들은 현실에 눈을 감은 채 30년대나 40년대만이 아니라 60년대까지도 자본주의의 쇠퇴와 위기와 준혁명 상태로만 규정하는 과오가 있었다.

이 러한 쇠퇴기론은 결국 과학적 분석에 기반하지 않은 영구위기론으로 시도 때도 없이 혁명적 선동이나 하는 주관주의로 귀결된다.이러한 영구위기론은 걸핏하면 자본주의 혹은 제국주의는 전쟁을 필연으로 한다면서 전쟁과 혁명의 시대를 운운한다.


국제건달 동지의 이와 같은 비판을 보면, 마치 우리 4인터안이, 그리고 트로츠키가 “시도때도 없이” 언제나 혁명적인 시기라고 주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이렇게 선동한 적이 있었던가. 국제건달 동지의 말대로 “혁명에 의해 숨통이 끊어지지 않는 한” 자본주의는 어떻게든 연명할 것이다. 근로인민에게 죽음의 고통을 안겨다주면서. 우리가, 아니면 트로츠키나 60년대 4인터의 이론가들이 과연 이런 식의 파국론, 혁명기에 걸맞는 전면적 공세를 주장한 적이 있었던가. 있다면 인용을 하면 될 것이다.

그 리고 국제건달 동지는 “영구위기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전혀 사용한 바 없는 단어로 우리를 “영구위기론”자로 규정하는 것은 아마 우리를 모종의 파국론자, 초좌익주의자로 낙인찍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은데, 그러한 의도 하에 우리의 강령을 제멋대로 재단하는 것에 결연히 반대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국제건달 동지가 지칭하는 대로 “영구위기론”자일 것이다.왜냐하면 우리는 레닌(트로츠키 말고!)이 지적한대로, 이 제국주의 시대를 쇠퇴하는 자본주의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국제건달 동지는 “레닌이 독점자본주의 혹은 제국주의의 필연으로서 식민지의 분할과 재분할을 위한 제국주의전쟁이 필연이라고 논증한 것은 올바르”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국제건달 동지는 레닌이 제국주의 시대를 생산력 쇠퇴의 시대라고 말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설마 레닌은 트로츠키주의 편향으로 타락(?)한 것인가?

 

2.

5인안이나 2인안이 역사적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에서 국가자본주의라든지 혹은 퇴보한 노동자국가라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주되는 내용이 트로츠키의 이행강령을 거의 베끼고 있기 때문에 이행강령의 내용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마치 우리의 강령이 구체적 현실을 외면하고 트로츠키 이행강령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리고 트로츠키의 이행강령만 보면 4인터안은 ‘안 봐도 비디오’라는 식이라는 태도가 엿보인다(그래서 정말로 4인터안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 같다).

맞다. 사실 우리는 베꼈다. 이행강령(자꾸 “이행기 강령”이라는 표현을 쓰시는데, “이행강령”이 맞다)을 관통하는 맑스-레닌주의의 정수가 4인터안에 스며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베끼지 않았다. 구체적인 현실이 그때와 다르므로, 그리고 우리는 일단 남한에서 어떻게 자본가 국가를 타도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으므로. 3인안을 지지하시는 듯해 물어보는데, 남한 사회의 변혁을 위한 구체적인 분석과 고민이 어느 안에 더 풍부하게 담겨 있다고 보는가.

 

3.

국제건달 동지의 글을 보면서 드는 생각 중 하나는, 마치 4인터안과 5인안 제출자들이 이행강령을 베껴썼고, 이 이행강령은 원저자인 트로츠키에게 배타적 책임(?)이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혹시 이러한 의혹을 품고 있을 동지들을 위하여 나는 다음 논문을 추천한다.


이행 요구들:코민테른에서 제4인터내셔널까지

코민테른 4차 대회의 문건들 일부만 살펴보자.


“3. 각국 공산당의 강령은 이행 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필요성을 명확히 그리고 결연히 확립해야한다. 다만 필요한 단서 조항으로 이 요구들이 시간과 장소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해야 한다.

4. 일반 강령에 모든 이행적 부분적 요구들의 이론적 기초를 명시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강령에 이행 요구들을 포함시키는 것을 기회주의라고 규정한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부분적 요구들로 기본적 혁명적 임무를 대체하거나 미화하려한다. 이 두 경향 모두를 제 4차 대회는 결연히 비난한다.

5. 일반 강령은 각국 공산당의 이행 요구들의 기본적 역사적 유형들을 각국의 경제적 정치적 구조의 기본적 차이에 입각하여 명확히 설명해야한다. 영국과 인도는 성격이 극단인 두 부류의 국가들을 대표한다.”

“세계 자본주의는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임무를 완수했다. 그리고 … 현대의 역사 발전 뿐 아니라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과 화해할 수 없이 충돌하고 있다. 이 근본적 모순은 최근의 제국주의 전쟁에 반영되었다….

자본주의는 망하는 순간까지 경기 파동을 겪을 것이다.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과 세계 사회주의혁명만이 현대자본주의에 의해 야기되는 영원한 파국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

“지금 자본주의는 사망 직전의 단말마적 고통을 겪고 있다. 자본주의의 붕괴는 불가피하다.”


이것이 ‘트로츠키’라는 이름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과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은 안 드시는지.

 

4.

트로츠키는 세계혁명이냐 일국사회주의냐를 기계적으로 대립시키고 선택을 강요한다. 분명한 것은 PT국제주의이고 일국의 실천은 세계혁명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트로츠키처럼 세계혁명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는 없다든지 일국사회주의는 배신이고 잘못된 것이다라고 주장하면 이상하다.

그런데 세계혁명이 도래할 그날을 기다리면서 일국에서 혁명 혹은 권력장악을 하지 말아야 할까? 일국에서 권력을 장악한 후 혁명권력이 세계혁명을 기다리면서 혁명적 조치 즉 사회주의 건설을 하지 말아야 할까?


마치 트로츠키가 한 나라에서(그리고 다른 나라가 여전히 자본주의인 상황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투쟁하는 것에 반대했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일국에서의 혁명을 위해 투쟁하고 그 성과들을 방어하는 것에 반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것은 전형적인 스탈린주의의 역사왜곡이며 동시에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가 비판받는 주된 이유는 그것이 소련의 안전을 위한다는 구실 하에 다른 나라의 혁명을 제국주의자들에게 팔아넘기는 흥정을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배신적 거래행위를 반대하는 것이지 일국에서의 혁명, 그리고 혁명으로 쟁취한 국가의 방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줄기차게 소련과 그 외 탈자본주의 국가들을 무조건 방어할 것을 주장했다. 그런데 다음 대목에서 충격적인 얘기가 나온다.

 

5.

국가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수정트로츠키주의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제4인터의 정통 트로츠키주의자들도 역사적 사회주의를 퇴보한 노동자국가 또는 기형적 노동자 국가라고 규정하고 그 실천을 폄하하면서 현실사회주의를 방어하자고 한 것이 아니라 혁명적 패배주의를 주장하였다. 베트남과 중국혁명의 승리의 소식에 접할 때, 인민들의 해방전쟁의 승리에 심장이 뛰어야 정상인데도 현실을 바로보지 못하고 탁상머리로만 궁리하면서 혁명적 패배를 운운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의 과오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지난번 댓글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국제건달 동지가 강령 초안을 숙독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지적 게으름과 본능적인(듯한) 트로츠키 혐오가 결합하여, 4인터안 제출자 일동은 짓지도 않은 죄에 책임을 져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쯤 되면 우리의 관계가 모스크바 재판에서의 검사와 피고 사이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국제건달 동지가 우리를 기소, 구형할 권한이 없다는 점을 빼고.

생 각난 김에, 그리고 3인안을 지지하시는 듯해서 한 가지 따져 묻고 싶은 것이 있다. 3인안은 국제건달 동지의 표현에 의하면 “현실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 대하여 핵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 약소국인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똑같이 요구하는 것이니까 괜찮다고? 외투를 입은 사람의 옷을 한꺼풀 벗기면 그 사람은 아마 다른 옷을 입고 있을 테니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팬티바람으로 있는 사람이 옷을 한꺼풀 벗는다는 것은 곧 알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입장을 취할 때 아무리 북한을 방어하겠다고 주장한다 한들, 그것은 “네가 얼어죽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벗어!”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그리고 핵무장에 대한 입장을 놓고 보았을 때, 사노위 3개 강령 초안 가운데 어떤 것이 “현실을 바로보”고 “현실사회주의를 방어”하는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국제건달 동지의 고견을 듣고 싶다.

 

6.

따 지고 보면 좌익공산주의든 트로츠키주의든 역사적 사회주의에 대한 반감과 비판만 제출했지, 스탈린주의를 넘어서는 혹은 역사적 사회주의의 실천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적 사회주의의 상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여준 적이 없다. 기껏해야 지도력의 무능, 지도자의 품성 그리고 타락하고 기생적인 관료주의만 강조했을 뿐이다.


“지도력의 무능” 문제는 혁명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여기에 “기껏해야”라는 말을 감히 달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스탈린주의 비판을 지도자의 품성,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이런 것은 스탈린주의자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가령 흐루시초프)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참주선동이다.

우리가 스탈린주의를 문제 삼는 것은 그것이 개인의 취향이나, 행정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병폐의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탈린주의가 그 이전의 멘셰비즘, 사민주의가 수행하는 역할과 근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한 스탈린주의는 지금도 세계노동계급운동의 주요한 조류이며 지금도 남한 운동진영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영향력은 우로는 민노당에서부터 좌로는 노사과연, 노정협 등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러한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현 시기 혁명가의 주된 임무가 될 것이다. 만약 1917년 10월에 멘셰비즘이 러시아 노동계급의 다수를 장악하고 있었다면 1917년 10월은 우리에게 가슴 벅찬 승리의 기억이 아닌, 피로 얼룩진 비극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매우 컸을 것이다. 반대로 스페인 내전기에 스탈린주의, 무정부주의, 각종 기회주의 사상이 아닌 볼셰비키-레닌주의가 스페인 근로대중을 지도하였다면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반성해야 할 것은 기회주의 조류와의 투쟁에 있어서 불철저함이지 민주집중제가 아니다(국제건달 동지의 민주집중제에 대한 인식이 사민주의, 반공주의자들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는 데 놀랐다는 점도 덧붙인다.)

이 상의 문제제기는 본격적인 강령논쟁에 앞서 국제건달 동지가 가지고 있는 오해(물론 이 오해들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를 해소하기 위해서, 그리고 국제건달 동지의 글에서 우리의 강령이 왜곡된 형태로 언급된 것에 대한 교정 차원에서 제기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보다 건전하고 유익한 강령 토론이 아래로부터 전조직적으로 활성화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2011년 6월 3일

4인터

 


국제건달의 비판(6월8일)에 대한 답변: 8월 15일


지난 6월 초 ‘국제건달 동지의 <최근 사노위 강령토론에 부쳐-이행기강령을 중심으로>에 답하며’에 대해, 국제건달 동지(이하 호칭 생략)는 ‘4인터 동지들의 반론에 대한 짧은 답변’이라는 글을 게시한 바 있다. 6월 15일 제4인터내셔널의 역사와 이행 요구들: 코민테른에서 제4인터내셔널까지를 소개하며 구체적 답변을 추후에 하기로 약속했으나, 그간의 여러 사정으로 지금까지 미루어졌다.

이 답변 내용에 국제건달 동지의 강령초안에 대한 최근의 문제제기와 관련된 내용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국제건달이 6월 8일 사노위 게시판에 올린 글에 대해 답변하는 것이 이 글의 일차적 목적이다.

 

1. ‘제4인터내셔널을 재건하자’는 뜻

사노위에 제출된 강령안 중 하나인 ‘4인터안’의 정식명칭은 ‘제4인터내셔널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 강령안(초안)’이다. 약간 생경한 명칭을 고수한 까닭은 그 명칭이 강령의 줄기를 설명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4인터안 해설과 3인안과 5인안 비판’에서 그 뜻을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우 리는 1938년에 트로츠키의 지도 아래 창건된 제4차 인터내셔널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한다. 제4인터내셔널 전통을 계승한다고 하는 것은, 요약하면 1917년 10월 혁명을 계승하자는 것이다. 첫째로 10월 혁명의 사회 물질적 성과를 방어 즉, 소련 퇴보한 노동자국가 방어 노선. 둘째는 10월 혁명의 이론적 자산을 방어 즉, 스탈린주의에 대한 투쟁”


이것에 대해 국제건달은 토니 클리프의 ‘트로츠키 사후의 트로츠키주의’라는 책에서 여러 문장을 인용하며, 제4인터내셔널이라는 이름에 극좌적이고 공상적인 주관주의의 인상을 결부시키려 한다. 인용하는 내용들은 2차 대전 이후 제4인터내셔널 국제서기국이나, 이후의 통합서기국의 문서들로 보인다.

오해의 우려 때문에 우리는 강령안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제4인터내셔널은 2차 대전 이후 물리적으로 해산되었다. 그러나 제4인터내셔널 강령의 대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올바르다.”


왜 그렇게 판단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길고 복잡하다. 그 설명을 위해서 제4인터내셔널의 역사를 게시한 바 있다. 만델: 카멜레온 중도주의자도 2차 대전 이후 제4인터내셔널이 정치적/물리적으로 어떻게 파괴되어갔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관련문서이다.

다 시 확인하면, 우리가 강령안에 제4인터내셔널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해서, 그것이 제4인터내셔널을 표방하는 모든 정치경향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강령안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했지만, 우리가 계승하고자 하는 정치적 입장의 핵심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1938년의 이행강령에서 계승한 맑스/레닌/트로츠키로 이어지는 혁명전통과 핵심정신


2차 대전 이후 스탈린주의 정당에 대한 장기 입당 전술(파블로주의)에 대한 거부

노 동자혁명이 아닌 반제국주의 해방투쟁을 통해 성립되었지만, 소련과의 관계를 통해 소련처럼 ‘사회주의적이지만,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국가 형태인 동유럽/북한/중국/쿠바/베트남 등을 기형적 노동자국가로 인식하고, 제국주의의 자본주의 복귀 책동에 맞선 군사적 방어와 스탈린관료집단을 타도하고 노동자민주주의를 수립하는 정치혁명의 지지


  *                *                *


스탈린주의자와 국가자본주의론자가 트로츠키의 정치사상을 비판하는 방식은 참 닮았다. 스탈린주의자는 트로츠키주의를 주장하는 세력 내에 국가자본주의론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자본주의론이 곧 트로츠키주의인 것처럼 호도하려 한다. 한편, 국제건달이 인용한 ‘트로츠키 사후의 트로츠키주의’의 저자 토니 클리프는 한국전쟁을 소련 제국주의와 미 제국주의 사이의 패권전쟁으로 규정, 중립을 선언하면서, 소련방어노선을 부정하고 제4인터내셔널을 탈퇴하였다. 그는 트로츠키 사후 기회주의로 전락한 경향이 있지만(제2인터내셔널, 제3인터내셔널이 모두 그런 과정을 밟았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로츠키의 혁명전통을 계승한 다른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눈감은 채, 그 기회주의가 전부인 것처럼 만들어 자신이 트로츠키주의의 유일한(또는 가장 유력한) 계승자라는 눈속임을 한다.

 

2. 이행강령과 혁명전통

이 문제에 대해, 국제건달은 이렇게 말한다.


“이 점에 대하여는 이행강령에 나타난 정세관(쇠퇴기 자본주의론), 혁명관(혁명을 무장력의 대립으로 사고하는 점 등), 강령관(최소강령은 당면한 투쟁에서 대중의 절박하고 비타협적인 요구로 대중을 전면적인 계급투쟁으로 이끌어내어 최대강령으로 도약하기 위한 고리의 성격으로 제기되었음에도 무슨 가교를 운운하며 최소와 최대 요구를 늘어놓는다든지, 혁명적 격변기에 나타나는 전술이나 조직형태를 무슨 예행연습 운운하며 늘어놓는 것 등)은 맑스주의적 방법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참으로 혼란스럽고 천박하다는 점에 대하여는 지난 글에서 자세히 밝힌 바 있으므로 생략”–모든 강조는 인용자


이전 글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트로츠키처럼 아무리 이중권력의 상황이라도, “노동자 농민 위원회의 직접 통제 하에 노동자와 농민의 군사훈련 및 무장을 실시하라. 노동자 조직이 선출한 근로인민을 지휘관으로 훈련시키기 위해 군사학교를 창설하라. 공장, 광산, 농장 등과 긴밀히 연결된 인민의 민병대로 상비군을 대체하라.”는 별로 현실성도 없는 슬로건으로 초점을 흐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혁명정당을 추구하고 있다. 러시아혁명과 그 밖의 수많은 혁명적 상황이 증명해 왔듯이 혁명정당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시기는 바로 그 “혁명적 격변기”이다. 따라서 ‘그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강령적 문제이다. 모든 시기가 “혁명적 격변기”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부분적 일시적 안정을 일반화해서도 안 된다.

국제건달 동지는 ‘공장위원회, 기간산업과 기업 등의 배상 없는 몰수, 정당방위대, 민병대 등’ 주로 “혁명적 격변기”에 제기될 요구들에 대해서 질색한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첨예화된 전쟁과 혁명의 시기인 제국주의 시기라고 해서, ‘모든 나라가, 늘’ 들썩거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분적 안정을 절대화시켜 ‘지금 현재의 노동자들이 외치는(외칠만한)’ 최소강령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는 사고는 문제가 있다.

특히 국제건달은 ‘이행강령(1938)’의 ‘제국주의와 전쟁에 대한 투쟁’ 장에서 제기하는 다음과 같은 요구들에 질겁한다.


● 노동자 농민 위원회의 직접 통제 하에 노동자와 농민의 군사훈련 및 무장을 실시하 라. ● 노동자 조직이 선출한 근로인민을 지휘관으로 훈련시키기 위해 군사학교를 창설하라. ● 공장, 광산, 농장 등과 긴밀히 연결된 인민의 민병대로 상비군을 대체하라.


“아무리 이중권력의 상황”이라도 이런 슬로건들은 “별로 현실성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역사적 상황들은 위와 같은 요구가 “현실성”만이 아니라, 사활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증언한다. 열거해보자.


러시아혁명 이후 제국주의와 그 하수인들에 맞선 내전 시기, 중국에서 장개석 쿠데타에 맞선 상황, 중국과 조선에서 일제에 맞선 해방투쟁, 스페인 내전, 베트남 전쟁,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쿠데타, 칠레 아옌데 집권 이후와 피노체트 쿠데타, 미제의 이라크 침략과 현재,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나토 침략에 대응한 리비아…등등


국제건달의 이행강령 비판은 일관성이 있다. 이 동지에게 트로츠키의 이행강령은 “참으로 혼란스럽고 천박한” 것이다. 하지만 이 동지(그리고 레닌까지는 긍정하지만 트로츠키는 한사코 거부하는 동지들)가 놓치는 것이 있다. 즉, 이행강령과 그 정신은 트로츠키의 발명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행강령은 ‘제국주의 전쟁, 제2인터내셔널의 파산’이라는 인류의 역사적 실천 총화를 통해 혁명적 이론으로 확립된 것이었다.

레 닌과 트로츠키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것에 대해서 이 동지들은 레닌의 입장에 대해서는 유독 침묵하는 버릇이 있다. 레닌주의자를 자처하니 차마 레닌을 “혼란스럽고 천박하다”고 깔 수는 없고, 그렇지만 자신들의 정치와는 맞지 않는 내용이니 결국 언급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일까. 그러면서 레닌의 입장이 무엇인지는 무시한 채 트로츠키에 대한 마녀사냥에 돌입한다. 이행요구, 뒤에서 얘기할 세계혁명에 대한 입장은 이러한 정치적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경우에 속한다.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지난번에 이행 요구들:코민테른에서 제4인터내셔널까지를 읽어달라고 권했던 것이다. 그 중에서 몇 구절 소개한다.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공장위원회의 투쟁은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를 당면한 일반 목표로 설정한다. …개개 공장위원회의 활동이 진전되면 곧 산업의 하위 분야 전체 그리고 산업 전체를 노동자들이 통제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온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원자재 공급과 재정을 관리하려고 나설 경우 부르주아 계급과 정부는 노동계급에 대한 가장 강력한 강압 조치들을 취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생산 통제를 위한 투쟁은 곧이어 국가권력 장악 투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코민테른 2차 대회

“12…. 예를 들어 모든 중요한 파업은 철저히 준비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처음부터 노동자들은 파업파괴자들을 제압하고 부르주아 국가가 지원하는 각종 우익 조직들의 도발 책동을 분쇄하기 위해 특별 조직을 수립해야 한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들은 …파업 대체인력을 제공할 뿐 아니라 노동계급 조직들을 분쇄하고 지도자들을 살해하는 것을 통해 모든 노동자 활동을 파괴하고 억압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특별 파업방위대와 특별 정당방위대의 조직은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문제이다.”–적색노조인터내셔널 강령

“노 동계급이 자신의 기본적 필요를 위해 투쟁할 것을 촉구하는 전투적 강령을 제시하여 공산주의자들은 후진적이며 동요하는 대중에게 혁명의 길을 제시할 수 있다.…자본주의에서 노동계급의 장기적인 지위 개선은 불가능하다. 이 인식이 공산당의 모든 선동, 선전 및 정치활동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노동계급 독재체제 수립 때까지 당면한 실제적 요구 투쟁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는 현재 급격히 쇠퇴하면서 노동자들에게 배부른 노예의 삶조차 보장할 수 없다. 그런데도 사민주의자들은 계속해서 파산한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낡아빠진 평화로운 개혁을 강령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사민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최소 강령으로 후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명확히 반동적인 사기술임이 드러나고 있다. 공산당은 허물어져 가는 자본주의의 기초를 강화시키고 개선시키는 데 봉사하는 최소 강령을 제시하지 않는다. 공산당의 주요 목적은 자본주의 타도이다. 그러나 이 목적을 위해 공산당은 노동계급의 당면한 욕구를 표현하는 요구들을 제시해야한다. 공산당은 대중 캠페인을 조직하여 이 요구들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한다. 이 요구들이 자본주의의 유지와 부합하든 안하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코민테른 3차대회,

“4. 일반 강령에 모든 이행적 부분적 요구들의 이론적 기초를 명시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강령에 이행 요구들을 포함시키는 것을 기회주의라고 규정한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부분적 요구들로 기본적 혁명적 임무를 대체하거나 미화하려한다. 이 두 경향 모두를 제 4차 대회는 결연히 비난한다.”–코민테른 4차대회

“세 계 자본주의는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임무를 완수했다. 그리고 …현대의 역사 발전 뿐 아니라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과 화해할 수 없이 충돌하고 있다. 이 근본적 모순은 최근의 제국주의 전쟁에 반영되었다. …자본주의는 망하는 순간까지 경기 파동을 겪을 것이다.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과 세계 사회주의혁명만이 현대자본주의에 의해 야기되는 영원한 파국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 …“지금 자본주의는 사망 직전의 단말마적 고통을 겪고 있다. 자본주의의 붕괴는 불가피하다.”–코민테른 4차대회

“이 제 1848년 맑스와 엥겔스가 세운 기반을 바탕으로 지금의 사회민주주의 강령을 볼셰비키 강령으로 대체하는 것이 시급한 임무가 되었다.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을 위한 즉각적 요구를 담고 있는 소위 최소 강령과 사회주의 목표를 담은 최대 강령 사이의 분리에 기초한 사회민주주의 강령을 볼셰비키 강령으로 대체해야한다.”–로자 룩셈부르크, 독일공산당 창립대회 연설

 

3. 일국사회주의론

국제건달은 이렇게 말한다.


“트로츠키가 세계동시혁명과 일국사회주의를 기계적으로 대립시키면서, 세계혁명이 성공하지 못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는 없다면서, 세계혁명의 구체적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세계혁명을 선동한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트로츠키의 이런 행동이야 말로 참주선동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동지처럼 남의 주장을 바꾸어 공격하는 것을 허수아비 공격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식의 이야기는 거의 100년 가까이 묵은(정확히는 1924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끝없이 재탕되어온)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관련 논쟁 중 하나인 소련 중국 북한 등 노동자국가의 사회성격 논쟁에 자세히 나와 있으므로 참고하길 바란다. 국제건달 동지는 그 논쟁에서 ‘국제주의’ 입장으로 읽으시면 된다.


레닌의 입장도 “세계혁명이 성공하지 못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는 없다”가 아니었던가? 이 점에 대해 레닌 자신이 어떻게 말했는지를 살펴보자.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가 멸망할 것이라는 점은 절대적 진실이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레닌, <전집>, 제15권, 132쪽, 러시아어(구)판)

세계 제국주의는 승리를 거두며 전진하는 사회주의 혁명과 공존할 수 없다. (앞의 책, 175쪽)

만약 우리가 봉기한 다른 나라 노동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을 때까지 버틸 수 없다면, 우리는 멸망할 것이다. (앞의 책, 187쪽)

세 계혁명의 지원이 없다면 노동자혁명의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혁명 이후는 물론이고 심지어 혁명 이전에도, 우리는 혁명이 즉시 또는 적어도 빠른 시일 내에 다른 후진국들과 좀 더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일어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확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비에트 체제를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국제혁명을 위해서도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레닌, <전집>, 제18권 제1부, 321쪽)


심지어 스탈린도 1924년까지 다음과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최종적 승리에 이를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이는 불가능하다. (스탈린, <레닌과 레닌주의>, 40쪽 이하, 러시아어판, 1924)


레닌과 1924년 이전의 스탈린, 이들 모두 “참주선동”의 공범인가?

일국사회주의론의 해악은 단지 학술적인 것만이 아니다. 그 이론에 기초하여 주변 국가의 계급투쟁을 소련 방어 투쟁으로만 한정하려 했고, 그로 인해 그 투쟁들을 패배시켰으며 궁극적으로 소련 자신마저 몰락하게 했다. 일국사회주의론으로 소위 ‘민족자본가’와의 계급동맹 즉, 인민전선을 추구했고, 2단계 혁명론인 멘셰비키주의를 볼셰비키주의로 포장하여 부활시켰으며, 덜 공격적인(?) 제국주의와 화해정책을 추구하여 결국 세계 노동계급의 정치적 무장해제를 불러온 것이다. 그 상징적 사건 중 하나는 1943년 영/미/프 제국주의 연합군에게 코민테른 해체를 선물로 바친 것이다.

자세한 이해를 위해 날조를 일삼는 스탈린 일당 재판(再版)을 추천한다.

 

4. 인민전선 전술/ 스페인/ 독일


“파시스트 히틀러의 공격으로부터 혁명의 성과를 방어한 것은 말로만 방어를 운운한 트로츠키가 아니라 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소련공산당과 인민이 아니었던가?

스 페인 내전에서 파시스트와 싸운 주력부대는 트로츠키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 6만 명 이상의 의용대(그 중의 절반이 공산당원)로 제5연대를 이끈 공산당(-트로츠키의 주장대로라면 스탈린주의자들)이 아니었던가? 4만 명에 달하는 국제여단을 조직한 것 역시 공산당(스탈린주의당)이 아니었던가? 탱크를 비롯한 온갖 무기와 군대를 파견한 유일한 나라는 스탈린이 독재하는 소련이 아니었던가?”–국제건달


먼저 첫 문장은 우리에게 그리고 국제건달 스스로 착시를 일으키는 문장이다. 마치 “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소련공산당”이 “인민”과 같은 일심동체인 것처럼, 그리고 전자가 “파시스트 히틀러의 공격으로부터 혁명의 성과를 방어”하기에 충분한 것처럼.

이 퇴보한/기형적인 노동자국가 문제는 관료화된 노동조합과 꽤 비슷한 문제이므로 그것으로 바꾸어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다. 예를 들어 자본가와 자본가 국가로부터 자신의 노동조합이 탄압받고 있을 때, 노동자들은 그 노동조합의 관료화와 관계없이 노동조합 방어를 위해 싸운다(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 “관료가 장악하고 있으므로 우리 것이 아냐, 그 따위 것은 파괴되어도 상관없어.”라는 태도는 국가자본주의론의 입장과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노동자들이 관료를 지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동조합을 제대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관료를 끌어내려야 한다. 퇴보한/기형적인 노동자국가의 관료집단과 인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제국주의 침략과 자본주의 복귀라는 위협 속에서, 당장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 노동계급과 인민은, 어쩔 수 없이 그 관료집단을 그저 “이를 악물고 참아내는” 것이다.

둘, 스페인에서 소련의 물질적 인적 지원이 큰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기도 했다.

독일의 침략 위협에 맞서 영국, 프랑스 제국주의와 소련은 협약을 맺었다. 부르주아적 요구를 넘어서는 요구를 억제했다. 스페인에서도 민주주의 요구를 넘어서는 사회 혁명적 요구는 억제되었다. 전투의 구체적 성과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노동계급과 농민의 사기는 급격히 저하되었다. 노동계급 지도부 일부는 민주주의를 넘어 사회혁명을 요구하고 선동했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스페인공산당은 소련에서 제공받은 무기로 ‘민주주의를 넘어 사회혁명을 요구하는 정치집단’을 무장해제했고 일부는 살해했다.

그것이 스페인 혁명이 패배한 핵심적 이유였다. 그런 점에서 스페인 혁명은 이번 강령논쟁에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인, ‘정치가 무장에 우선한다.’라는 명제를 잘 설명해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인민전선 정책으로 인한 패배는 스페인에서 그치지 않는다. 1920년대 중국, 1930년대 프랑스, 1960년대의 인도네시아, 1970년대의 칠레 등등에서 반복되었다. 각각의 사건들에 대해 소련이나 중국 스탈린관료집단이 한 역할은 같다. ‘인적 물적 지원을 했다. 사상적으로는 무장해제시켰다.’

물론, 국제건달 말처럼 “제국주의자들 상호간의 모순을 이용해 그들을 분열시켜 혁명을 방어”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당장의 방어에 급급해, 있지도 않은 ‘혁명적 민족자본가’나, 존재하지 않는 ‘덜 공격적이고 평화공존이 가능한 제국주의’라는 환상을 불어넣는 것은 치명적이다. 정치적 무장해제는 군사적 무장해제보다 훨씬 위험하다. 스탈린 관료집단은 당장의 제국주의 침략위협으로 정치적 공황에 빠져서, 그런 환상에 의존했고 그것을 10월 혁명의 권위로 유포하고 강요했다.


  *                *                *


“히 틀러가 득세했을 때 공산당의 집회나 모임은 백주에 살인적 테러가 공공연하게 계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입장처럼 소수인 공산당이 개량주의자인 다수의 사민주의당을 비난하고 배척하면서 혁명적 대의에 충실해야 했을까 아니면 잠시 대립을 멈추고 노동대중의 다수가 속해있는 사민주의 개량주의자들과 손잡고 히틀러와 싸워야 했을까? 파시스트가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에서 사민주의 개량주의당은 물론 진보적 민주주의자들과 연합해서 인민전선을 성사시켜 파시스트의 집권을 막았어야 하지 않았을까?”–국제건달


이 대목은 뭔가 사실관계를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1927년 중국의 심각한 패배 이후 스탈린은 좌로 급선회했다. 사민주의를 사회파시즘이라고 규정하며 극단적 초좌익 주장을 펼쳤다. 국제건달 말처럼 “파시스트가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에서 사민주의 개량주의당은 물론 진보적 민주주의자들과 연합해서 인민전선을 성사시켜 파시스트의 집권을 막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탈린 관료집단은 1928년 이후를 ‘자본주의가 즉시 그리고 최종적으로 붕괴하는 새로운 시기(‘3기’)‘라고 규정하고, 사민당과의 반파시즘공동전선(부르주아와의 동맹이 아니라, 한시적이며, 파시즘에 대항한다는 한정적 요구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인민전선과는 다름)을 거부했다. 그리고 히틀러가 집권했다.

 

5. 독선과 종교와 과학

국제건달은 뒤에서 계몽주의자가 된다.


" 누구에게나 신앙의 자유는 있겠지만 우리는 길거리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믿으면 천당간다”든지, 자기 교회만이 바른 믿음으로 이끌 수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불쾌하거나 황당함을 느끼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자신이 옳다는 믿음을 넘어 자신만이 옳다는 독선이고 권위주의적(권위의 독점 혹은 권위에 대한 집착)이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에도 대꾸해야 하는지 멈칫했지만, 혹시나 이런 식의 은근슬쩍 이미지 흐리기에 홀릴 독자들이 있을지 몰라 대답한다.

먼저 국제건달에게 묻자. 동지는 맑스주의에 대해 확신하는가? 맑스주의만이 이 사회의 문제를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가? 혹시나 그렇다면, 그것은 종교인가? 맑스주의라는 독선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종 교가 반동적 사상인 까닭은 그 확신에 있지 않다. 확신 때문에 종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 믿음이 반동적인 까닭은 그 확신이 과학적 검증에 기초하지 않은 맹목적 확신이기 때문이다. 또는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특정한 신념(국제건달이 이야기하는 북의 ‘위대한 수령론’을 포함해서)을 물리적 폭력으로 강요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과학을 하자고 했다. 우리는 맹목을 강요할 힘이 없다. 사실관계에 입각한 논리적 검증만이 유일한 무기이다. 그런 탓인지 강령 논의를 거치면서 ‘과학’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어떤 정치적 입장이 문제가 있다면 사실 관계와 논리적 정합성을 통해 그 문제를 입증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독선이니, 종교니, 광신자니’ 하는 촌스러운 마타도어는 그만 두시라.

레닌주의를 고수하는 것이 ‘독선’이라면 우리는 끝까지 독선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론이 실천 속에서 그릇된 것으로 판명된다면 우리는 당연하게도 이를 포기할 용의가 있다. 예컨대 만약 북한이나 중국이 앞으로 계속해서 이런 사회 정치 경제를 안정적으로 지속해나간다면, 정치혁명/자본주의 반혁명의 갈림길에 선 기형적 노동자 국가라고 했던 규정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트로츠키는 파시스트 제국주의의 앞잡이, 첩자’라는 이미 오래전에 파산한 거짓말에 대한 철석같은 독선은 언제쯤 누그러지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6. 모스크바 재판과 숙청

국제건달은 모스크바 재판과 숙청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1938 년 부하린 등의 반혁명(스탈린 제거를 위한 쿠데타 음모 사건) 재판은 미, 영 등 수많은 서방 세계 외교관들에게 공개된 재판이었고, 그들마저 참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재판이었다고 인정한 재판이었다. 유명한 트로츠키주의자이고 역사학자인 아이작 도이처는 당시 소련의 수십 개 도시의 군부지도자들과 당지도자들이 쿠데타를 준비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타락한 노동자 국가의 원흉인 독재자를 제거하려 는 것은 트로츠키의 원래 신념이 아니었던가? 신념대로 행동하고서 왜 누명을 쓴 것처럼 얘기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트로츠키는 정적이자 독재자인 스탈린 일당을 제거하고 싶어했고, 히틀러의 케쉬타포 역시 소련 지도부를 와해시키거나 혼란을 조성하려는 동일한 목적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에 대한 트로츠키주의의 태도는 ‘사회주의적인 것을 방어한다. 동시에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것을 타도한다.’이다. 전자는 혁명으로 수립된 사회주의적인 생산관계를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그 위에 기생하며 노동자민주주의를 옥죄는 관료집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료집단의 타도와 노동자민주주의 수립’을 의미하는 ‘정치혁명’이 “트로츠키의 신념”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떻게? “쿠데타”로?

트로츠키를 포함하여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혁명을 말할 때는 ‘대체로’ 대중의 지지를 통한 대중혁명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트로츠키는 자신의 신념이 쿠데타나 테러 방식으로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대중혁명이 아닌 쿠데타를 통해 관료집단을 타도하고 권력을 장악한다면, 그 집단은 혁명가가 아니라 좀 더 독한 관료집단이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국제건달이 “공정한 재판”이라고 주장하는 그 재판에서 “쿠데타” 음모가 어떤 증거들로 입증되었을까? 스탈린만 남긴 채 혁명 1세대의 볼셰비키 중앙위원이 모두 쿠데타와 연루된 혁명 파괴자였다는 것인가? 그런 당이 그 위대한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것은 역사의 가장 규모 큰 농담이었던 것인가?

백 번 천 번 양보하여 그들이 대중을 동원한 노동자혁명이 아니라, 쿠데타 음모를 꾸몄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 당사자만 숙청할 일이지, 부인/남편 그리고 어린 자식들까지 죽여야 할 까닭은 무엇인가?

1956 년 러시아공산당 제 20차 당 대회에서 흐루시초프는 모스크바 재판들과 이 재판들의 기초가 된 것으로 주장된 “자백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반면, 국제건달은 그 모스크바 재판을 “미, 영 등 수많은 서방 세계 외교관들에게 공개된 재판이었고, 그들마저 참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재판이었다고 인정한 재판이었다.”라고 말한다. 둘 중 누가 옳은가?

동지 말대로 서방 측(다시 말해 제국주의 세력들)은 대숙청을 지지했다. 왜냐하면 대숙청은 서방이 그토록 증오하고 두려워했던 볼셰비키당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제국주의자들은 계급적 본능으로 이 사건의 본질을 직시했던 것이다. 심지어 백군 망명자들도 대숙청을 지지했다. 이따위 쓰레기들의 증언으로 범죄적 행위를 공정한 것으로 포장하려는 시도가 부끄럽지는 않은지.

 

7. “열심히 공부하고 실천하는” 노사과연, 노정협, 다함께


“남 한 사회에서 맑스와 레닌의 고전을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실천하는 동지들은 동지들이 기회주의 세력이라고 매도하는 노사과연과 노정협이 아니던가? 그들은 맑스레닌을 공부할 때 동지들은 트로츠키를 공부하는 것이 다르고… 남한에서 대중적으로 사회주의를 가장 열심히 선전하는 동지들은 동지들이 반동이라고 일컫는 국가자본주의자들인 다함께가 아니던가? 노무현 탄핵 때 수많은 좌파들이 자본가계급의 수장인 노무현을 구하려고 탄핵무효를 외쳤을 때 민중탄핵을 주장한 것은 제국주의와 자본가들에게 붙어먹었다는 스탈린주의자인 채만수 선생이 아니었던가? 전 세계에서 제국주의 전쟁반대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것은 국가자본주의 반동들인 SWP와 다함께가 아닌가? 국가자본주의론이 정치적인 태도로는 잘못되었더라도, 사적 소유가 없고 계획경제라고 하더라도 세계시장과의 관계에서 가치법칙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국가자본주의론의 주장은 역사적 사회주의의 몰락을 해명하는 소중한 통찰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국제건달


우리가 그들을 비판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주관적 충성심, 열정에 대하여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된 사상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것을 매도라고 받아들인다면 정치적으로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레닌이 노동운동진영의 각종 기회주의자들은 물론이요, 심지어 로자 룩셈부르크, 판네쾨크 같은 혁명적 지조를 가진 자들에게도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로자가 레닌의 비난에 대해 그것을 ‘일방적 매도’로 간주하고 비(非)레닌주의적 조직론을 고수했다면, 그리하여 독일공산당의 창건을 포기했다면 그녀가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위대한 투사로 기억될 수 있었을까?

그 리고 노사과연도 노정협도 다함께도 가끔 옳은 주장을 한다. 아니, 사실 상당히 옳은 주장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고집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며, 사실 지난 운동의 역사 속에서 기회주의자로 판명된 이들이 그러했다. 카우츠키 혹은 플레하노프가 어찌됐든 상당부분 맑스주의적 입장(옳은 입장)을 견지했으니 레닌이 이들을 적당히 봐주면서 넘어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또한 그것이 올바른 동지애의 표현이라 할 수 있을까?

덧붙여, 트로츠키주의를 국가자본주의론과 동일시하여 무차별적으로 비난하다가 별안간 국가자본주의론의 “소중한 통찰” 운운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8. “북의 핵무장, 부르주아 평화주의, 사회평화주의 논란에 대하여”


흐루시초프가 평화공존을 주장했을 때, 모택동은 물론 스탈린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를 막론하고 평화공존론을 제국주의자와 타협을 추구하고 굴복하는 혁명의 대의를 배반한 기회주의로 비난하였다. 이것이 과연 정당한 비판이었던가? …군사적 대결을 완화하고 어느 체제가 진정으로 인민을 행복하게 하는 체제인지를 경쟁하자고 호소하면서, 서방 인민들에게 제국주의자들의 전쟁 책동을 폭로하여 지배계급과의 투쟁으로 나서게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이러한 비난은 체제간의 모순과 계급간의 모순을 바르게 구분하지 못한 채 제국주의자와 똑같은 주장을 하면서도 그것이 무슨 노동자계급의 관점인양 혁명적 관점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 소련은 핵무기가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니라 체제 내의 모순을 풀 수 없어서 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의 군사력은 체제간의 전쟁이나 인민의 무장으로 해제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체제 내의 계급투쟁으로 해결되는 것이다.--국제건달


냉전을 노동계급의 눈이 아닌, 부르주아 계급의 눈으로 보고 있다. 제국주의와 노동자 국가 간의 대결을 ‘체제대결’이라는 반동 부르주아 이데올로그의 용어로 표현하여 그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 제국주의와 노동자국가 간의 적대는 ‘계급투쟁’이다. 동지는 ‘체제모순’과 ‘계급모순’이 서로 별개인 것처럼 말한다. ‘체제’ 혹은 ‘국가’는 마치 계급으로부터 동떨어진 양, 혹은 ‘체제’나 ‘국가’ 자체는 어느 계급의 것도 아닌 중립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反맑스-레닌주의 국가관이다.

국제건달은 ‘체제모순’이라는 부르주아 용어를 쓰면서 노동자 국가와 제국주의 국가 간 대결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냉전의 본질을 ‘계급모순’이 아닌 ‘체제 경쟁, 체제 모순’으로 규정하면서, 마치 둘 사이의 모순이 화해 가능한 비적대적 모순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스탈린관료집단은 양측의 평화공존이 가능하다고 인식하였는데 그러한 인식은 노동관료의 세계관과 상통한다. 바로 09년 평택에서 정갑득 이하 금속노조 관료들이 그러했고, 지난해 현대차 이경훈 일당이 그러했던 것처럼 노동조합의 관료들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양보를 통한 평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화해 불가능한 적대적 모순 관계이듯이, 노동자국가와 제국주의 국가의 모순도 “군사적 대결을 완화하고 어느 체제가 진정으로 인민을 행복하게 하는 체제인지를 경쟁하자”는 순박하기 짝이 없는 호소로는 사라지지 않는 적대적 모순 관계이다. 러시아혁명 이후의 계급투쟁은, 노동현장이 아니라 국경을 마주하는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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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에 대하여도 주권국가의 자위권 혹은 방어적 무장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 무장이 핵이었을 때, 그 핵은 사용될 수 있고 그 경우 수십만의 남북한 인민들이 희생될 수 있다는 것 역시 상식이다. 이 경우 체제의 대결과 긴장을 강요하는 제국주의자의 논리가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의 비핵화(결국 북과 남과 미제을 비롯한 모든 핵의 반대)와 긴장완화를 주장하면서 제국주의자의 무장해제 운동(반전반핵 운동 등)을 벌이는 것이 근로인민의 이해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 동지들은 한사코 말한다. ‘다른 건 다 괜찮지만 핵만큼은 안 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약소국이 어떤 수단으로 1000조를 국방예산에 쏟아붓는 초강대국에 맞설 수 있을까. 이라크와 리비아 침략은 제국주의에 대한 평화주의적 환상이 귀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하는 ‘[4인터안]강령토론 몇 가지 문답’ 중 관련 내용이다.)

물론 핵무기는 끔찍하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더 끔찍할뿐더러, 그 자본주의적 야만이 핵무기를 도입하고 핵전쟁의 공포에 인류를 몰아넣는 원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그 본성으로 인해 핵무기를 비롯한 끔찍한 살인무기들을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 자본주의와 핵무기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노동계급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자본주의의 야만이 끔찍하지만 참아내든가, 아니면 자본주의를 타도하든가 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는 단호히 후자를 선택한다. 왜냐 하면 자본주의의 야만은 끝없이 상승 발전하며 종국엔 인류 전체를 멸망시키는 길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 당시 맥아더와 트루먼은 한반도와 중국 국경 지대에 원자폭탄 투여 계획을 검토했다. 그것도 수십 발을. 국경지대를 수십 발의 원폭으로 폐허로 만들고 띠 형태의 방사능 오염지대가 되면 수십 년간 한반도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소련이 1949년 8월 핵개발에 성공했고, 핵공격을 하게 되면 유럽의 동맹국은 물론 미국본토도 소련의 핵공격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그 계획을 포기했다.

미국은 지금 미국을 제외한 상위 10개국이 쓰는 군사비보다 많은 군사비를 쓰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 맞서 재래식 무기로 방어하는 것이 가능할까? 2003년 이라크와 지금 리비아에서 보는 것처럼, 재래식 무기로만 방어하자는 정책은 제국주의로 하여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침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틈만 나면 군사적 침략을 도모하고 핵공격을 마다않을 제국주의 앞에서 노동자국가를 재래식 무기로만 방어하라는 정치적 입장은, 노동자국가의 운명을 제국주의의 처분에 맡기겠다는 입장으로 귀결된다.

 

9. 우리는 NPA 유형의 당을 추구할 것인가?

국제건달은 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NPA)과 같은 형태의 당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즘 제4인터의 유인물이나 제4인터의 주력이었던 LCR의 NPA로의 변신을 보면 매우 유연하고 pt국제주의에도 충실하다.


국제건달이 그토록 칭찬하는 NPA와 그 주축 중 하나이며 파블로-만델 주도 제4인터내셔널통합서기국의 핵심조직인 LCR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폐기하고 공공연하게 부르주아 연립정부에 입각할 의사를 밝히고, 결정적으로 1991년 소련이 최후의 갈림길에 섰을 때, 옐친 도당을 지지한 바 있는 반공주의적인 기회주의 집단이다.

그들이 “국제주의에 충실”한지는 모르겠으나, 프롤레타리아트에 충실하지 않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또한 국제건달 말처럼, ‘반자본주의’를 표방하면 그 구체적 정치 내용에 관계없이 모든 조직과 인자가 하나로 모여서 정당을 만들자는 것은, 제2인터내셔널로의 회귀이며 레닌주의의 폐기이다.



2011년 8월 15일

4인터

 

 

‘점삼’과 ‘방해노선’에 대한 답변: 8월 18일


국제건달과의 논쟁 와중에 ‘점삼’과 ‘방해노선’이라는 필명에게 답한 글이다.

 

‘점삼’에게


“그렇다고 해서 현존하는 노동자국가의 유지와 재생산에 복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오류임”


현존 노동자국가의 유지에 복무하지 않으려는 것은 오류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다음 중 누가 그런 오류를 범할까? ①국가자본주의론자 ②트로츠키주의자 ③스탈린주의관료집단

1991년, 소련의 유지와 재생산에 복무하려고 하지 않고 자본주의 복귀를 주도한 자들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 즉, 관료집단 내에서 나왔다.

자본주의 부활을 주도한 옐친은 1968년부터 소련의 잘 나가는 관료였고, 모스크바 시장을 역임했다. 푸틴 의 경우, 할아버지는 레닌 시절부터의 당중앙의 요리사이고, 아버지는 2차 대전 참전용사인 혁명가 집안 출신이고, 자신 역시 KGB에서 15년 동안 근무한 자였다. 이렇듯, 1991년 소련 노동자국가의 숨통을 끊은 자들은 관료집단에서 나왔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트로츠키의 <배반당한 혁명>은 바로 그 점을 논증한 것이다. 왜 관료집단으로부터 박해 받고 ‘제국주의와 결탁한 반혁명분자’로 여겨지던 외부의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니라, 그 내부의 중심에 있던 관료집단이 “노동자국가의 유지와 재생산에 복무하지 않으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숨통을 끊는 주역이 되었을까?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방해노선’이 제기하는 흥미로운 문제 두 가지

 

방해노선은 짧은 글에서 흥미로운 두 가지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한다.


1. “소련이 파시즘의 위협 하에 놓이고 실제 침략을 당하고 있을 때 트로츠키는 관료주의 타도라는 이름으로 국가와 당을 타도하자고 외쳤다. 적들의 면전에서 파쇼에 이로운 이적행위를 노골적으로 자행했던 것이다.”

복잡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관료집단을 끌어내려야 하는데 동쪽에서 독일제국주의 군대가 침략을 감행하였다. 이 ‘진퇴양난’의 상황을 혁명가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비 슷한 상황이 1917년에 있었다. 코르닐로프가 임시정부에 대항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레닌이 국외로 도피할 정도로 볼셰비키를 혹독하게 탄압하던 임시정부였다. 볼셰비키는 두 반동세력의 싸움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사태를 방관하지 않았다. 볼셰비키는 임시정부에 대해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보내지 않으면서 코르닐로프 쿠데타군에 맞서 임시정부를 군사적으로 방어했다. 그리고 쿠데타기도를 저지시킨 몇 달 뒤 볼셰비키는 단호하게 그 임시정부를 끌어내렸다.

제국주의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도 관료집단은 끌어내려져야 한다(졌어야 했다).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들에서 보는 것처럼 관료집단들은 反제국주의/反자본주의 전선에서 노동자국가를 방어하는 데에 매우 취약하다.

그리고 혁명가라면 노조 내의 노사협조주의적 관료들을 끌어내리고 사회주의 지도부를 세우기 위하여 분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한편 우리는 언제나 민주노조를 사수해야 한다고 외친다. 여기서 민주노조 사수는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관료들의 지위를 보장해주자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들이 민주노조운동을 약화시키고 있음을 폭로하고 조합원 대중들을 이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차단하고, 이들을 불신임하게끔 만들어 이들 관료들을 끌어내려야 한다.

혹시 이런 행위가 이적행위 즉, 노조말살 책동에 동조하는 사측의 앞잡이짓인가? 하다못해 비지회 내의 비리에 대해 비판하고 지도부를 규탄하면 이 역시 경찰의 앞잡이인가? (이 문제를 ‘경찰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 하는 경우라면’ 경찰의 앞잡이가 맞다) 만약에 지금 당장 이 자본가 국가가 금속노조의 지도부에 대하여 체포, 수배령을 내린다면 우리는 두 괘씸한 놈들 사이에서 중립을 취할 것이 아니라, 노조 관료들을 군사적으로 방어해야 한다. 앞서 국제건달 비판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노동관료에 대해 우리가 취하는 태도는 노조와 동일하게 노동자국가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

 

2. “중국혁명을 스탈린이 말아먹었는데 중국혁명의 지도자는 마오는 왜 소련이 중국혁명에 지대한 도움을 주었다 하나?”

사물의 양면성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를 “사회주의적이며, 사회주의적이지 않다.”라고 얘기했다. 국가자본주의론은 후자를 일면적으로 과장하며, ‘자본가가 없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사라졌어도 노동자민주주의가 파괴됐으므로 그것은 자본주의이다’라고 주장한다. 한편 스탈린주의는 전자를 일면적으로 과장하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사라졌으므로 그것은 사회주의이다.’라고 주장한다.

모든 사물이 그렇지만,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는 대단히 모순적인 사회이다.


-사회주의적인 생산관계이지만, 거의 전(前)자본주의적 수준의 생산력

-프롤레타리아트 자신마저 억압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프랑스 부르주아 혁명 이후 등장한 나폴레옹 제정이나 자본가계급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보이는 히틀러 파시스트 정권처럼)

-사적소유를 철폐한 생산관계에 기생하며, 사적 특권을 누리는 관료집단

-10월 혁명을 계승했거나 그 성과 위에 존재하지만, 그 성과를 날마다 갉아먹고 있음 등등


이러한 모순들을 이해해야 한다. 맑스의 제자로서 당연하게도 우리는 형식논리가 아니라,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사물을 분석해야 한다.

1927 년 스탈린관료집단의 잘못된 국민당 정책으로 인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중국 공산주의 운동은 궤멸직전까지 붕괴되었다. 1949년 마오의 공산당은 국민당과의 내전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1920년대를 재앙으로 이끌었던 인민전선 노선을 그대로 추구했지만, ‘신민주주의’ 노선은 1920년대와 달리 2차 대전 이후라는 특수한 역관계 그리고 협력할 자본가계급이 사라졌다는 조건 속에서 재앙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동유럽, 북한, 중국, 베트남, 쿠바 등 기형적 노동자국가들은 식민지 인민들의 반제해방 투쟁과 10월 혁명의 성과인 소련 노동자국가의 존재와 지원 그리고 2차 대전으로 인한 제국주의 세력의 급격한 약화라는 조건 속에서 수립되었다.

마오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랬을 개연성은 무지 높다. 스탈린관료집단(마오 자신을 포함해서)의 “말아먹음”과 “도움 줌”은 위에서 설명한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의 양면성 그리고 당시의 특수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2011년 8월 18일

4인터

 


국제건달(8월 22일)에 대한 4인터의 답변: 8월 29일


지난 8월 15일 제출한 ‘국제건달의 비판(6월8일)에 대한 답변’에 대해 국제건달 동지는 ‘볼키동지가 8.15.에 올린 글에 대한 반론(8월 22일)’을 제출하였다. 이 글은 그 글에 대한 반론이다.

차례와 같이 전개되지만, 6. 모스크바재판/ 숙청/ 흐루시초프의 ‘비밀연설’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양이 많다. 요약 수준으로 발췌하면서 검토할 생각이다.

 

1. 클리프주의와 스탈린주의가 만나는 지점

2. 이행강령에 대한 스탈린주의적 이해

3. 일국사회주의론, 인민전선전술

4. 노동자국가와 자본가국가 사이의 체제모순은 계급모순의 가장 격렬한 발현태이다

5. NPA 유형의 정당 추구

6. 모스크바재판/ 숙청/ 흐루시초프의 ‘비밀연설’

 

1. 클리프주의와 스탈린주의가 만나는 지점

국제건달이 인용한 토니 클리프의 ‘트로츠키 사후의 트로츠키주의’의 부제는 ‘국제사회주의경향의 기원’이다. 부제가 말하듯, 이 책은 토니 클리프가 제4인터내셔널 조직만이 아니라 ‘강령’에서도 이탈하며 그 변명을 늘어놓은 책이다. 트로츠키 사후 제4인터내셔널 국제서기국이나 이후 통합서기국의 ‘문제성’ 발언들이나, 트로츠키의 예언 중 ‘꼭 들어맞지’ 않은 것들을 트로츠키주의 ‘강령’ 이탈의 구실로 인용한다.

국 제건달은 사노위 내 ‘제4인터내셔널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 강령초안’을 비판하면서, 그 책에서 인용한 내용들을 비판의 근거로 든 바 있다. 지난 번 글에서 우리는 강령안 제목으로 ‘제4인터내셔널’이라는 표현을 쓰는 까닭이 무엇인지, 그리고 ‘모든’ ‘제4인터내셔널’과 ‘모든’ ‘트로츠키주의’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자 국제건달은 그 글에서 “망상의 극치를 보이며 대중을 오도하던 시도 때도 없는 파국론과 전면공세론(국제건달)”의 예가 될 트로츠키 인용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참으로 비겁하고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답하면 어떻게 건설적인 토론이나 논쟁이 되겠는가? 아마도 볼키 동지와 필자와의 차이는 필자라면 이렇게 쪽팔리는 변명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얼렁뚱땅 논점을 회피하면서 대중을 기망하는 것을 황색논법이라고 한다.”


하며 언성을 높인다. 맞상대하기 꺼려지는 거칠고 원색적인 표현들에 대해서 눈감는다 치더라도, 과연 토니 클리프가 인용한 트로츠키의 이른바 “근거 없는” 예측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저렇게 막말을 할 일인지, 과연 그 구절들이 “망상의 극치를 보이며 대중을 오도하던 시도 때도 없는 파국론과 전면공세론”이라고 규정할 내용인지 독자들과 같이 검토해 보기로 하자.

국제건달이 그 증거라고 생각하는 첫 번째 인용문은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이 미국 트로츠키주의 운동 10주년과 제4인터내셔널 창건을 기념하는 기념식장에 트로츠키가 보낸 연설문의 끝부분이다.


“크렘린 도당들이 볼셰비키 당을 질식시키고 최초의 노동자국가를 희화화시키는 데에 10년이 걸렸습니다. 코민테른이 그들의 강령을 파괴하고 코민테른을 무용지물로 만들기까지 10년이 걸렸습니다. 10년입니다. 오직 10년입니다. 다음 10년 동안 제4인터내셔널 강령은 수백만을 이끄는 지침이 될 것이고, 이 혁명적 수백만은 세계를 격동시킬 방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1938. 10. 18. 트로츠키 ‘제4인터내셔널의 창건’, 미국사회주의노동자당


토니 클리프가 이 구절들을 인용하는 의도는 ‘트로츠키의 예측은 틀린 것이 많았다. 그러나 그의 대의는 옳다. 그러므로 문구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트로츠키주의의 핵심을 보존하자.’라고 주장하기 위함이다. “문구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를 내세우기 위해, 트로츠키의 예측 중 ‘꼭 맞아떨어지지 않은’ 것을 그 사례로 인용하는 것이다. 물론, 토니 클리프가 저 “문구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를 결론으로 끌어내는 이유는, “보존해야 할 트로츠키주의의 핵심”인 ‘소련방어노선’도 ‘집착하지 말아야 할 문구’에 얼렁뚱땅 넣어버리려는 의도에서였다는 것을 많은 독자들이 알고 계실 거라 믿는다. 그리고 “보존해야 할 트로츠키주의의 핵심”을 ‘집착할 필요 없는 문구’로 전락시켜 트로츠키주의를 희화화시키면서도, 한편으로 트로츠키의 후광은 후광대로 누리겠다는 발상이라는 것도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이 구절에 국제건달 동지도 애착을 보인다. “망상의 극치를 보이며 대중을 오도하던 시도 때도 없는 파국론과 전면공세론”의 증거라고. 그리고 이 구절을 4인터의 지난 답변(8월15일)에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쪽팔리는 변명”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얼렁뚱땅 논점을 회피하면서 대중을 기망하는” “황색논법”이라고 퍼부어대셨다.

클리프가 “근거없는” 예측의 증거로 인용하고, 국제건달이 “망상의 극치를 보이며 대중을 오도하던 시도 때도 없는 파국론과 전면공세론”의 증거로 재인용하는 또 다른 구절은 트로츠키가 1938년 10월 10일 발표한 ‘임박한 전쟁의 성격’이라는 글에서이다.


“파시즘과 더불어 제2인터와 제3인터 소속정당들이 이런 반발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될 것이다. 그들의 붕괴는 공공연한 혁명운동이 전개되기 위한 필수조건일 것이고 그런 혁명운동은 제4인터를 중심으로 구체화될 것이다. 제4인터의 단련된 간부들이 노동 대중을 이끌고 대공세에 나설 것이다.”–1938년, 10월 10일, ‘임박한 전쟁의 성격’


이 글에서 트로츠키는 역사의 전개 속에서 제2인터내셔널과 제3인터내셔널이 어떻게 파산되어갔는지를 그리고 제2인터내셔널과 제3인터내셔널이 각각 해당 시기에 혁명전통을 계승 복구하며 등장했듯이, 이제는 그 역사적 책무가 제4인터내셔널에 있다는 것을 논증한다.

물론 트로츠키는 무오류의 예언가가 아니다. 그는 세계대전 후 실제로 벌어진 상황보다 낙관적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두 글이 작성된 1938년은 첨예화된 자본주의 모순으로 전세계가 요동치는 때였다. 경제 대공황, 히틀러의 등장에 이어 세계대전이라는 참화로 돌입하기 직전이었다. 또한 1938년은 스탈린집단이 국내외에서 더 이상 혁명적 집단이 아님이 확실해지고 있던 때였다. 심지어 “당시 제국주의 세력들도 이 전망을 공유하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며칠 전인 1939년 8월 25일 베를린 주재 프랑스 대사는 히틀러에게, “이 전쟁의 결과 단 한 명의 진정한 승리자만 존재할 것입니다. 그는 바로 트로츠키입니다.”(‘이행강령 해설’ 중에서)라고 말할 때였다.

그 1938년 제4인터내셔널 창건을 기념하는 연설문에서 “제4인터내셔널의 강령은 수많은 대중의 지침이 될 것이며 수많은 혁명대중은 전 세계를 휩쓸 방법을 알게 될 것”이라는 선포나, “혁명운동은 (제2인터나 제3인터 소속 정당들이 아니라) 제4인터를 중심으로 구체화될 것이다.”라는 언명이 과연 “근거 없는” 예측일까? 또는 “망상의 극치”이거나 “시도 때도 없는 파국론과 전면공세론”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일까?

한 편으로 트로츠키의 권위에 기대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소련방어노선’이라는 ‘대중적이지 않고 거북하기 짝이 없는 노선’으로부터 해방될 구실을 찾고자 하는 토니 클리프나, 트로츠키주의를 자신의 치부를 가장 아프게 찌르는 불구대천의 적으로 여기는 스탈린관료집단이라는 반(反)노동계급적 비과학은 각자의 이유로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2. 이행강령에 대한 스탈린주의적 이해

국제건달은 말한다.


“일상적 시기에 대응하는 최소강령의 의의를 무시하기 때문에 이행강령이 일상적 시기에는 과도한 방법론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트로츠키의 발명품이다. … 그리고 볼키 동지는 “이행강령과 그 정신은 트로츠키의 발명품이 아니라는 것이다.”면서 코민테른 2,3,4차 대회나 로자도 이런 주장을 했다는 반론을 편다. … 이처럼 맑스만이 아니라 레닌과 로자는 바로 그 혁명적 격변기의 상황에서조차 일상적 시기에 대응하는 최소강령의 중요성을 핵심적 방법론으로 주장하고 있음에도, 볼키 동지는 트로츠키가 최소강령의 방법론을 부정하는 이행기강령이라는 방법론의 창시자라는 영예를 한사코 부정하면서 레닌과 로자를 재앙적 방법론의 공범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물귀신 작전도 황색논법의 일종이 아닐까?”


국제건달은 이행강령이 “일상적 시기에 대응하는 최소강령의 의의를 무시”한다고 말한다. “일상적 시기에 대응하는 최소강령의 중요성을 핵심적 방법론으로 주장”하는(?) 맑스 레닌 로자와 달리, 트로츠키가 유일하게 “재앙적 방법론”을 정립한 맑스주의의 이단아임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논리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글본의 번역이 개판이어서” 국제건달이 손수 “다시 번역” 소개한 이행강령 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제4인터는 낡은 최소요구들의 강령이 최소한 핵심적인 적절함을 가지고 있는 한에서는 버리지 않는다. 민주적 권리와 노동자들의 사회적 성과를 끈질기게 방어한다.”


이 구절이면 맑스, 레닌, 로자와 같이 인용해도 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지난 번 글에서, 이행강령이 맑스/엥겔스-레닌-트로츠키로 이어지는 맑스주의 과학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것을 4차까지의 코민테른 대회, 레닌, 로자 등의 말을 인용하며 설명한 바 있다. 그럼에도 자신이 ‘손수’ 번역한 구절까지 무시하며, 바로 ‘그 구절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트로츠키와 그 이행강령이 ‘자신이 생각하는 혁명계보’에서 벗어나 “참으로 혼란스럽고 천박”하며 “재앙적”이라고 주장한다.

국제건달은 레닌을 인용하면서 트로츠키의 창조물(?)인 이행강령이 레닌주의와 상관없음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국제건달이 인용하고 있는 문서 <당강령에 대한 재검토>(“현장권력 쟁취”가 이행강령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던 노정협이, 어느 순간 이행강령을 맹렬하게 비난하면서 번역 게재한 글이기도 하다)에서 레닌이 “최소강령의 의의를 무시”한다고 비판하는 대상은 이행강령이 아니라 부하린의 입장이었다. 부하린은 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도 레닌과 트로츠키에 맞서 ‘중단 없는 혁명적 공세’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 레닌과 트로츠키의 주도 하에 작성된 결의문은 이행요구를 포함하고 있었다. 레닌이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초좌익적 입장에서 최소강령의 의의를 완전히 무시하는, 결국은 이행요구 역시 초좌익적으로 거부하는 부하린의 입장이었던 것인데, 국제건달은 이를 이행강령에 대한 비난으로 바꿔치기하고 있다.

이 정도 시점에서 우리는 이제 인정해야 한다: ‘레닌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즉, 트로츠키로 이어지는 레닌과 트로츠키에 대한 적대자로서의 레닌. ‘후자의 레닌’은 그 사상을 계승할 유일한 사제(司祭)로 스탈린을 남겼다. 그 사상의 해석권한은 오로지 사제(司祭) 스탈린만이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레닌과 트로츠키가 실제로 어떤 말을 했건 간에, 트로츠키가 한 말은 거의 무조건 ‘레닌(후자의, 스탈린주의 필터로 걸러진)’의 반대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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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등록금 투쟁은 이행강령의 적용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국제건달 말처럼 “좌파는 과도한 주장과 행동으로 대중 속에서 고립되지 않으면서 나아가 반동들의 반격의 틈을 주지 않으면서 투쟁을 심화발전시키는 것이 초점”이라면, 아마도 우리는 다수가 외치는 ‘반값 등록금’을 우리의 요구로 배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노위는 현 투쟁의 과제로 ‘무상교육’을 제기했다. 그것은 “이러한 일상적 작업을 올바르고 실질적인 즉, 혁명적 전망 안에서 수행한다.”라는 이행강령 정신의 적용일 것이다. 무엇이 옳은가?

 

3. 일국사회주의론/ 인민전선 전술

국제건달은 지난 6월 8일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트로츠키가 세계동시혁명과 일국사회주의를 기계적으로 대립시키면서, 세계혁명이 성공하지 못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는 없다면서, 세계혁명의 구체적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세계혁명을 선동한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트로츠키의 이런 행동이야 말로 참주선동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동지처럼 남의 주장을 바꾸어 공격하는 것을 허수아비 공격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것에 대해 국제건달이 (그리고 오랫동안 많은 스탈린주의자들이) 문제 삼는 ‘세계혁명이 성공하지 못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는 없다’라는 입장은 트로츠키만이 아니라, 레닌 그리고 심지어 스탈린도 주장한 당시의 상식이었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자 명백한 사실을 피할 수 없다는 듯이 “레닌도 10월 혁명 후 세계혁명 혹은 서방 주요국에서의 혁명이 없다면 혁명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다.”라고 한 발 물러선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이내 “트로츠키처럼 세계혁명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는 없다…라고 주장하면 이상하다.”라는 서로 앞뒤 안 맞는 얘기를 한다. 같은 얘기도 트로츠키가 하면 불륜이 된다.

스탈린관료집단의 일국사회주의론을 방어하기 위해 급기야 논점은 다음처럼 희화화된다.


“세계혁명이 도래할 그날을 기다리면서 일국에서 혁명 혹은 권력장악을 하지 말아야 할까? 일국에서 권력을 장악한 후 혁명권력이 세계혁명을 기다리면서 혁명적 조치 즉 사회주의 건설을 하지 말아야 할까?”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다. 너무 찬란해서 쟁점의 가치도 없다. 또한 국제건달은 트로츠키가 ‘세계 동시혁명(세계 모든 나라가 같은 시기에 일제히 혁명에 돌입하기)’같은, 손이 오그라들 것 같은 수준의 주장을 한 것처럼 왜곡한다. 트로츠키의 주장이 국제건달이 소개하는 수준의 것이라면, 스탈린관료집단이 그토록 무자비하게 탄압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처럼 쟁점이 유치한 것이었다면, 탄압할 가치도 논쟁 가치도 없다. 그저 내버려두면 된다.

이렇듯 유치한 논리를 펴며 끝끝내 일국사회주의론을 방어하겠다는 국제건달 동지를 보며, 그가 가르쳐 준 몇몇 표현이 떠오른다. “쪽팔리는 변명”,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얼렁뚱땅 논점을 회피하면서 대중을 기망하는” “황색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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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건달은 6월 8일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트로츠키처럼 세계혁명을 운운하면서 전체 제국주의를 적으로 삼지 않고, 제국주의자들 상호간의 모순을 이용해 그들을 분열시켜 혁명을 방어한 것이 제국주의자와 붙어먹은 기회주의이고 혁명에 대한 배신이라고만 비난되어야 할 일일까?

히 틀러가 득세했을 때 공산당의 집회나 모임은 백주에 살인적 테러가 공공연하게 계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입장처럼 소수인 공산당이 개량주의자인 다수의 사민주의당을 비난하고 배척하면서 혁명적 대의에 충실해야 했을까 아니면 잠시 대립을 멈추고 노동대중의 다수가 속해있는 사민주의 개량주의자들과 손잡고 히틀러와 싸워야 했을까? 파시스트가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에서 사민주의 개량주의당은 물론 진보적 민주주의자들과 연합해서 인민전선을 성사시켜 파시스트의 집권을 막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분명 당시의 코민테른에 속한 당들의 실천이 이러저러한 과오도 있었겟지만, 트로츠키의 주장대로 과연 그들이 제국주의자나 자본가들에게 혁명의 대의를 팔아먹은 배반자이고 기회주의자들이었을까?”


사실을 거꾸로 알고 있는 듯하여―마치 트로츠키 진영이 ‘사회파시즘론’을 주장하면서 독일 사민주의세력과의 공동전선을 회피하고, 스탈린진영이 사민주의 세력과 공동전선을 추구했던 것처럼―‘8월 15일 글(4인터)’에서 사실관계를 바로잡은 바 있었다.

그러자 국제건달은 트로츠키 공격 도구로 활용했던(6월 8일) 그 ‘사회파시즘론’을 이제 너그럽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사회파시즘론의 뿌리는 깊다.”는 둥, “사민당과 공산당 사이에는 서로 지독한 불신이 있었다.”는 둥 상황논리를 펴더니, “이런 상황에서 사민당에 대한 증오가 사회파시즘론이 나왔던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 아닌가?”라는 관용정신으로 결론 맺는다.

왜 같은 대상에 대해 갑자기 너그러워지는가? 왜, 이렇게 180도 다른 결론을, 납득할 만한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내리는가?

“쪽팔리는 변명”,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얼렁뚱땅 논점을 회피하면서 대중을 기망하는” “황색논법” 등 국제건달 동지의 그 거친 말들은 또 한 번 되돌려져야 한다.


  *                *                *


그러면서 국제건달은 우리를 점잖게 타이른다.


“당 은 때로는 좌편향을 때로는 우편향을 보이고, 즉 과오와 오판이 있지만 이를 반성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스탈린 관료집단이 우편향을 보였다가 좌편향을 보였다는 사실은 그들의 무능력과 오판에 대한 비판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사실만으로 배신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공산당과 코민테른이 진정으로 배신자들이라면 왜 인민전선을 만들고 파시스트와 싸울까? 지나친 혐오감과 불신은 올바른 인식에 해롭다.”


물론 당은 때로는 좌우편향을 보이며 성장한다. 그리고 국제건달 말처럼 완벽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고 해서 “무능력과 오판에 대한 비판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사실만으로 배신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좌우편향을 보이는 지도부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곧 성장할 테니 고통과 혼란을 조금만 더 참아가며 지도부로 인정해 달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당 내부와 외부의 대안을 허용하여 비판을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 편향을 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민주주의를 보장해야 한다.

스탈린관료집단을 우리가 배신자라고 규정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좌우편향 때문이 아니다. 노동자민주주의를 질식시켰기 때문이다. 혁명적 대안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좌우편향을 보이며 각종 혁명적 기회를 말아먹고 파괴시킨 스탈린관료집단은 자신을 비판하는 혁명세력을 ‘인민의 적’이라고 규정하며 박멸했다. 박멸하고 다시 말아먹었다. 혁명적 대안을 논쟁이 아니라, 물리적 폭력으로 제압했다. 그리하여 스탈린관료집단과 좌익반대파 사이에는 피의 강물이 흘렀다. 국제건달 말처럼 단순히 “무능력과 오판”을 이유로 “진정(한) 배신자”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국제건달 동지, 별일 없었는데 너무 열을 낸다는 듯이 “지나친 혐오감과 불신은 올바른 인식에 해롭다”라는 식의 점잖은 척하는 충고는 넣어두시라.

사물의 양면성을 살펴야 한다고 줄곧 이야기해 왔다.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와 스탈린관료집단도 형식논리가 아니라 대립물의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계속 설명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한 측면만을 강조하며, 스탈린관료집단에 대해 “지나친 혐오감과 불신”을 거두라는 투이다.

예컨대 한진중공업 채길용 지도부는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배신적 행위를 일삼았다. 그 밖에 많은 노동관료들이 민주노조운동의 외피를 두르고 실질적으로 노조를 사측의 노무관리팀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조차도 자본에게 별로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완전히 파괴당할 위험에 놓이게 된다면, 채길용 같은 “배신자”들도 머뭇거리면서라도 투쟁의 전선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배신자”가 아니게 되는가?

또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지도부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들은 자신의 청춘을 노동운동 등 진보적 운동에 바쳐왔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대의에 크게(?) 어긋난 삶을 산 것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이런 제안은 어떤가? ‘그들이 좌우편향을 극복하면서 성장하기를 기다리자.’ ‘그들은 지금 노동운동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앞으로도 “진정으로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다.’

 

4. 노동자국가와 자본가국가 사이의 체제모순은 계급모순의 가장 격렬한 발현태이다.

체제모순과 계급모순이 다른 것이라는 인식의 잘못과, “군사적 대결을 완화하고 어느 체제가 진정으로 인민을 행복하게 하는 체제인지를 경쟁하자”는 순진한 “호소”로 “체제의 대결과 긴장이 격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착각을 비판하자, 국제건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필자의 주장이 왜 “국제건달은 ‘체제모순’이라는 부르주아 용어를 쓰면서 노동자 국가와 제국주의 국가 간 대결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냉전의 본질을 ‘계급모순’이 아닌 ‘체제 경쟁, 체제 모순’으로 규정하면서, 마치 둘 사이의 모순이 화해 가능한 비적대적 모순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고 왜곡될 수 있는지 필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그렇게 비판하는가 하면, 동지가 다음처럼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군사적 대결을 완화하고 어느 체제가 진정으로 인민을 행복하게 하는 체제인지를 경쟁하자고 호소하면서, 서방 인민들에게 제국주의자들의 전쟁 책동을 폭로하여 지배계급과의 투쟁으로 나서게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체제의 대결과 긴장이 격화될수록 매카시즘이 판을 치고 좌파가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승만과 같은 극단적인 반공의 시절에 좌파는 전멸하지 않았던가? 결국 이러한 비난은 체제간의 모순과 계급간의 모순을 바르게 구분하지 못한 채 제국주의자와 똑같은 주장을 하면서도 그것이 무슨 노동자계급의 관점인양 혁명적 관점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6월 8일


“체제의 대결과 긴장이 격화”되는 것은 “군사적 대결을 완화하고 어느 체제가 진정으로 인민을 행복하게 하는 체제인지를 경쟁하자고 호소”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계급적 모순은 그런 주관적인 호소와 전혀 무관하게 작동한다. 자본주의 쇠퇴기로 표현되는 이 제국주의 체제가 마치 평화적 경쟁 호소로 “체제의 대결과 긴장 격화”가 완화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

그리고 체제 간의 모순은 계급 간의 모순이 국가 대 국가 또는 체제 대 체제 형태로 표현된 것이다. 사회주의적 사회체제와 자본주의적 사회체제 사이의 모순은 계급적 모순이 아니므로 ‘평화적 경쟁’ 호소로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스탈린관료집단이 품고 있던(있는)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이자 위험한 환상이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프롤레타리아 대 부르주아의 계급 모순은, 국제적으로는 체제모순으로 표현되는 것이고, 현대사에서 그 모순은 가장 격렬한 형태로 분출되었다.

 

5. NPA 유형 정당 추구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자신이 하지 않은 주장을 했다며 덮어씌운다고 국제건달은 억울해 한다.


“필자는 지난번 글에서…NPA 유형의 당을 만들자는 주장은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볼키 동지는 …필자가 마치 반자본주의를 표방한 것으로 둔갑시키고 NPA 유형의 당이나 만들자고 주장한 것처럼 왜곡하는 것으로, 참으로 악의적인 수준 낮은 황색선동의 전형이라고 하겠다.”


물론 국제건달이 직접적으로 “NPA 유형의 당을 만들자는 주장은 한 적이 없다.” 우리 역시 그렇게 비판하지는 않았다. “국제건달은 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NPA)과 같은 형태의 당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추측’했다. 그렇게 추측한 까닭은 국제건달이 NPA 형태의 정당에 대해 호의적 표현을 여러 차례 해 왔기 때문이다. 6월 8일 글에서도 NPA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했지만, 5월 26일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그 호의를 밝혔다.


“제4인터의 주력이었던 LCR의 NPA로의 변신을 보면 매우 유연하고 pt국제주의에도 충실하다.”–6월 8일

“혁 명적 언사가 난무하면서 대중정당의 문제의식이 사라져버린 것은 슬픈 일이다. 프랑스에서 LCR(공산주의혁명동맹)이 NPA(반자본신당)로 폭을 넓힌 문제의식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언사가 멋지다고 혁명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들은 좀 더 유연할 필요가 있다. 나는 부르주아 독재의 철폐를 염원하고 자본의 독재에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남한의 모든 사회주의자들-스탈린주의자들부터 트로츠키주의자들까지-이 함께할 수 있는 그런 강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그 강령이 맑스와 레닌의 고전은 안 읽었지만 자본의 폭압에 대해 이를 가는 모든 선진 활동가와 대중들에게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고 그들도 참여할 수 있는 강령이 되면 좋겠다.”–5월 26일


이 정도 얘기이면, 그 정도 ‘추측’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악의적이고 수준 낮은 황색선동”일까? 물론 정말 오해라면 ‘추측’을 철회할 용의가 있다. 다만, 오해의 여지가 없어져야 할 것이다.

 

6. 모스크바 재판/ 숙청/ 흐루시초프의 ‘비밀연설’



2011년 8월 29일

4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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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Joshua Lee 2013.01.06 02:44

    읽기 위해 퍼갑니다. 헌데 사노위가 제 4 인터네셔널의 강령을 일부 채택했다고요?

     

    그리고 노건투에 대한 강령을 얼마 전에 읽어보았는데 제 판단이 옳은지 여쭈어보고자 합니다. 노건투에서는 클리프주의적 성격이 짙은 것처럼 보였어요. 현실사회주의국가들을 관료들이 돈과 생산수단을 쥐고 있다는 이유에서 국가자본주의로 매도하며 북조선을 해방시키자고 주쟁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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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3.01.24 09:40

    오늘에서야 댓글을 발견했네요


    사실 사회주의를 내거는 조직들의 강령은 겹치는 내용이 상당히 있습니다.


    노건투는 국가자본주의론의 관점으로 그 나라들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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