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임시대의원 대회에 부쳐
: 노동운동 내부 친자본 경향을 탄핵하자!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이 7월 23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했다. 이른바 ‘노사정 대표자회의 합의안’을 승인해 달라는 것이다.
작년 1월 28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김명환 지도부가 추진하던 ‘경사노위’ 참여를 저지한 바 있다. 그럼에도 김명환 지도부는 또다시, 자본가들과 슬그머니 만나 이번 안을 합의했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서 노동과 자본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 명분이다.
위원장의 ‘소신’
이번 ‘합의안’은 대의원대회보다 훨씬 소수가 참여하는 중앙집행위원회를 통해 조용히 승인받으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았다. 소식을 전해 듣고 분노한 일군의 선진노동자들이 회의가 열리는 민주노총에 달려들어갔다. ‘합의안’의 실체를 따져묻고, 김명환 지도부를 규탄하고 폭로했다. 이렇게 하여 노동운동 내에 반대 여론이 들끓게 되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자, 지난 4월 말 ‘노사정 대화’를 의결하고, 실무 보고를 받던 중앙집행위는 ‘합의안’을 부결했다.
그러나 자본가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소신’을 가진 김명환 위원장은 이번에도 굽히지 않았다. 승산은 낮아 보이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심정으로, 23일 임시대의원대회에 안건을 상정한 것이다. 대의원들이 혹시나, 교묘하고 복잡한 문안들에 현혹되어 길을 잃고, 뜨거운 분노를 덜 느낄 온라인 대회에서는 ‘합의안’을 통과시킬지도 모른다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자본가 계급의 ‘대화’ 이유
늘 그렇듯, 이른바 ‘합의안’에는 자본가 정부, 단체와의 ‘대화’를 통해 노동자의 이해가 관철될 수도 있다는 ‘환상’만 있을 뿐 실질적 내용은 없다. 실질적 내용은커녕, 민주노총 김명환 지도부가 자본가 들과 만나 ‘희망 어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최저임금위원회는 7월 12일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최저임금 인상을 결정했다.
사실 자본가 계급은 그 ‘대화’라는 것을 통해, 김명환 지도부가 말하는 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의 무엇인가를 모색할 생각이 없다. 다만 민주노총 등 노동자 단체로 하여금, 자본가와 더불어 ‘공동의 이익’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노예의 환상’을 갖도록 하고, 그들이 다시 그 ‘노예의 환상’을 노동자계급 전체에 퍼뜨려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을 ‘노예 의식’에 취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일부를 ‘대화’에 초대하는 유일한 이유이다. 노예의 자격으로서만 ‘대화’가 허락된다.
이번 ‘노사정대표자회의’ 이전, 지난 이십여 년간 ‘노사정위원회’,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등의 자리가 줄곧 있었지만, 노동자의 처지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던 것이 바로 그 까닭이다. 그 사이 ‘산업재해, 고용불안, 실질임금 하락’ 등 노동계급의 고통은 여전하거나 오히려 악화된 이유가 또한 그것이다.
2020년 5월 20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노사정대표자회의
‘사회적 합의’라는 노예의 목줄
김명환 위원장이 경사노위 참여를 추진하던 2019년 1월 우리는 입장문을 발표하였다. 그 글에서 우리는, 이른바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의 노예의 목줄을 사이에 두고, 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 내 하수인이 어떤 거래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산업재해, 실업과 가난, 불평등과 차별, 지옥 경쟁, 학살과 전쟁 등은 이윤을 지상 최대의 가치로 삼는 자본주의 때문에 발생한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짜내는 데에 혈안이 된 자본가계급과 죽기 직전까지 이윤을 짜 바쳐야 하는 노동계급의 이해는 화해불가능하다. 그러나 자본가 입장에서 이 적대 관계는 은폐되어야 한다. 착취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자본가계급은 착취 구조에 대드는 노동계급의 저항과 도전을 경찰, 사법기관, 군대 등 폭력기구를 통해 잔인하게 응징한다. 다른 한편, 독점하고 있는 언론과 교육을 통해, 일방적 착취에 기초한 이 적대적 사회가 마치 ‘노사 합의로 운영’되며, 그로써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상생’이 가능한 것처럼 선전하고 교육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둘 사이에서 접착제 역할을 할 노동계급 일부의 적극적 협조가 필요하다. 자본가 계급은 노동계급 내 상층 일부를 직위, 재물 등으로 매수하여 노동인민의 계급의식을 흐리는 도구로 이용한다. 노동계급 내 일부는 자본으로부터 알량한 몇 조각 떡고물을 받아먹고는, 그 작업에 협조하는 하수인이 된다.”―「경사노위에 대한 우리의 입장: 지배계급의 올무, 경사노위 참여를 반대하자!」
김명환 위원장은 ‘우연한, 개인’이 아니다
자본가 계급의 마름 문재인 정부로서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대통령 옆자리에 서서 사진 찍기를 감사해 하는 김명환 집행부라는 호시기를 놓치기 싫을 것이다. 그런데 김명환은 우연히 등장한 개인이 아니다. 한 줌 사료에 눈멀어 노예의 목줄이 기꺼이 되고자 하는 ‘노동계급 내 자본가계급 하수인’ 무리는 노동계급 상층에 늘 있었다. 이들은, 끊이지 않는 처절한 투쟁이 자본가와 노동자의 적대적 이해관계로 인한 필연이라는 각성을 ‘적폐’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보도 하나를 소개한다. <레디앙>은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2017년 8월 25일 열린, “보기 드물게 자리가 가득 찰 정도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참가”했다는 집담회를 보도했다. 그 집담회의 사회는 당시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한석호였고, 금속노조 경기본부 조직국장 조건준이 대표로 발제했다. 기사에 따르면, 그 집담회는 기존의 노동조합이 “조합원에 제한된 이익을 추구”하며 “대항폭력으로 투쟁”하는 것이 노조의 “퇴행”과 “적폐”이고, “노동시민의 보편적 권리”를 “반폭력”적 태도로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을 공유했다. 이 집담회는 “산별, 지역, 정파의 틀을 넘어선 ‘자유로운 활동가의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지향”하며 “대안노조”의 씨앗이 될 것을 제안했다. 그 기사는, 집담회 4개월 뒤인 그 해 12월에 있을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와 그 이후, 자신들의 논의가 어떻게 실천적으로 관철될지를 주목한다고 마무리한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다
김명환 위원장이 지금 “소신껏” 자행하는 오늘의 배신은 이전 배신이 단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7년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당선되어 2019년 ‘경사노위’를 추진하다가 저지된 김명환은, 철도노조 위원장이던 2013년에는 철도파업을 직권조인으로 말아먹은 바 있다(「철도파업과 반민영화 투쟁 승리를 위하여(2014년 1월 22일), 「철도파업평가와 이후의 반민영화 투쟁 과제(2014년 1월 24일)」 참조).
2013년 12월 30일, 새누리당 김태흠, 김무성 민주당 박기춘, 이윤석이
국회소위 구성 각서로 철도파업을 종식시켰다고 자랑하는 모습
당시 ‘안녕들 하십니까 운동’과 결합하며 상당한 열기로 파업이 지속되던 12월 30일 밤, 그는 「현장투쟁으로 전환하며 조합원께 드리는 글」을 전격적으로 발표하고 파업 종료와 현장 복귀를 명령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민주당 박기춘과 만나 국회소위를 구성하기로 약속하였고, 그것이 “향후 지속적인 투쟁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같은 글에서 인정하는 바, 여전히 진행 중인 “징계와 고소고발, 손배가압류, 조합원과 조합원 가족들에게 악랄한 압박공세”에 대해서는 어떤 약속도 없는 상황이었다. 도대체가 앞뒤가 안 맞는 유체이탈의 화법이었다.
하지만 20일이 넘게 진행된 철도 파업과 ‘안녕들 하십니까 운동’을 국회소위 구성 외에 아무런 약속도 없는 각서 쪽지 하나와 바꾼 그의 직권조인은 응징되지 않았다. 좌익노동을 자처하는 여러 단체들은 철도노조 지도부의 ‘비민주성, 협상지상주의, 실수와 오류’ 등을 비판했지만, ‘직권조인과 배신’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 단체들은 차라리, ‘원 없이 싸운 철도파업의 영웅, 기록적으로 투쟁한 자신감 자체가 성과, 신출귀몰의 지도부’ 등의 찬사를 더 많이 언급하였다.
한 달 남짓의 구속 후 석방된 김명환에겐 이제 약간의 비판마저 제기되지 않았다. 노동투쟁의 대표적 인물이 되었고, 그 기세로 2017년엔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거뜬히 당선되었다. 이런 긍정적 보상이 계속 이어지자, 그의 배신은 “소신”이 되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라는 격언은 노동운동 내에 현실이 되었다. 배신행위가 배신행위로 규정되어 단죄되지 않고 용인되며 심지어 떠받들어지는 지금까지의 과정은 한국 노동운동 기강의 심각한 쇠락을 보여주는 것이다.
위기의 본질과 노동계급의 대안
자본가 계급이 떠들어대는 지금의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위기이다. ‘이윤의 위기’일 뿐이다. 즉, 인민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의미의 위기가 아니라, 자신들의 ‘사적 이윤 추구가 수월하지 않다는 의미의 위기’일 뿐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역사에서 늘 그러했던 것처럼, 자본가 계급은 자신들의 ‘이윤 위기’를 노동자와 식민지 인민의 희생을 통해 헤쳐나가려 한다. ‘인플레를 통한 실질임금의 삭감, 대량해고, 폭압과 전쟁’ 등이 그 수단이다.
노동계급으로서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유일한 길은 계급적으로 각성하는 것이다. 즉, ‘지금의 위기는 인류의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 위기라는 것, 이 고통은 끊임없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 자본가 계급은 문제의 원인이지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결코 없다는 것, 오직 노동계급이 일궈낼 사회주의만이 유일한 해결 대안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번 임시대대의 진짜 안건
노동운동 내부의 친자본 고름을 긁어내는 것은 그 각성의 첫걸음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의 이번 임시대대의 안건은 ‘민주노총 내부에 똬리를 튼 친자본 경향을 대표하는, 김명환 탄핵’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2020년 7월 22일
볼셰비키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