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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후기




1923년 불가리아, 독일 등에서 공산주의 운동은 거대한 패배를 경험한다. 불가리아에서 공산당은 노동계급을 지도하는 대중정당이었다. 4월 총선 승리로 스탐불리스키가 이끄는 농민당 정부가 들어서자 6월에 우익정당들의 지원을 받은 짠코프가 쿠데타를 일으켜 농민당 정부를 전복한다. 그런데 불가리아 공산당은 도시 부르주아지와 농촌 부르주아지, 양대 자본가계급 진영 간의 투쟁에서 노동계급이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며 중립을 지켰다. 결국 쿠데타 세력은 승리했고 공산당도 탄압을 받게 되었다. 곧 코민테른이 이 입장을 비판하지만 불가리아 공산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코민테른의 정보부족을 탓했다. 이 절호의 혁명적 기회를 날려버린 뒤 지노비예프가 이끄는 코민테른은 불가리아 지도부를 교체하고 짠코프에 맞서기로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때늦은 무리한 봉기를 지시한다. 쿠데타가 있고 3개월 뒤 불가리아 공산당은 실수를 만회하기위한 무모한 행동에 나섰고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엉성한 봉기는 금세 진압되었다.

19213월 혁명적 정세가 아닌 상황에서 독일 공산당은 소수의 선도적 투쟁을 통해 노동계급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고자 공세에 나섰다. 공산당은 총파업을 호소하고 실업자들을 동원해 강제로 공장 문을 닫게 하려는 등 무모한 행동을 벌였다. 3월 행동이 파탄난 뒤 독일 공산당의 세는 급격히 쇠퇴했다. 이후 당 지도부는 우경화했다. 이제 1923년 프랑스의 루르 점령으로 혁명적 정세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독일 공산당은 변화된 정세에 대응하지 못하고 대중적 혁명운동의 구심으로 이미 등장한 공장위원회를 통한 혁명적 선전에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작센 주정부에 들어가 연립정부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무장봉기를 계획했다 막판에 급히 취소했다.

불가리아 당은 1902년 분열한 사회민주당 좌파(‘테스냐키로 불렸다)로 코민테른 창립 당시 분열 없이 그대로 가입했다. 1차대전이 발발했을 때도 볼셰비키당과 마찬가지로 사회배외주의에 대항했던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진 당이었다. 독일 공산당은 서유럽에서 가장 거대한 공산당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혁명이라는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했다. 10월 혁명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지만 10월 혁명의 교훈은 소화하지 못한 것이다. 10월 혁명을 연구해야 할 필요가 현실에서 충격적으로 입증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로츠키는 당시 자신의 옛 연설과 글을 모아 출판한 것에 대한 서문으로 10월 혁명의 교훈을 집필한다.

10월 혁명의 교훈은 반트로츠키 캠페인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다. 1923년 스탈린,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이른바 ‘3두마차는 반트로츠키 캠페인을 시작하며 레닌을 우상화하고 트로츠키와 대립시키고자 했다. 또한 멘셰비키 또는 멘셰비키와 볼셰비키를 화해시키고자 했던 트로츠키의 과거 행적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3두마차는 레닌주의에 반대하는 트로츠키주의의 원죄로 연속혁명론을 공격했다. 트로츠키가 혁명의 단계를 뛰어넘고 농민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0월 혁명은 연속혁명론의 올바름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이는 혁명이냐 아니냐의 문제였고 트로츠키는 10월 혁명의 노선을 왜곡하려는 시도에 맞서 투쟁했다. 3두마차의 2,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는 10월 혁명 당시 당내 우파로서 봉기에 반대했다.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당이 봉기하기로 결정하자 멘셰비키 신문에 이를 폭로하기까지 했다. 당내 우파가 무장 봉기를 반대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봉기를 앞두고 당에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 뿐 아니라 ‘4월 테제에 반대하는, 다시 말해 연속혁명론에 반대하는 노선의 문제였다. 이들은 충실한 노동자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정식의 추종자들이었고 노동계급 독재로 나아가는 것을 반대했다.

1917년에 볼셰비키는 인민전선에 대해 투쟁했다. 이는 ‘10명의 자본가 장관을 타도하자라는 구호로 표현되었다. 선거에서 협정을 맺을 때도 부르주아 임시정부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멘셰비키 국제파(임시정부 입각에 반대했다)나 사회혁명당 내 입각반대파와의 일시적 제휴를 결정하기도 했다. 또한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에게 자본가 세력과의 단절을 요구하며 소비에트를 통해 권력을 잡을 것을 요구했다. 1917년 볼셰비키의 정책은 이후의 표현으로 계급 대 계급에 기초해 있었다.

그러나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는 부르주아와의 연립정부에 매달렸다. 볼셰비키 당내 우파의 태도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을 포기하고 혁명의 ‘1단계를 달성하기 위해 부르주아에게 압력을 가하는 정책, 노동자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정식의 필연적 결과였다. 레닌은 이 정식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다... 지금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만을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시대에 뒤처져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는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에 반대하여 소부르주아 진영으로 실제로 넘어간 꼴이며, 그런 사람은 혁명 이전의 볼셰비키골동품 보관소(‘옛 볼셰비키들의 보관소라고 불러도 무방하다)에 위탁되어야”(전술에 관한 편지)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1917년에 극복하게 된 이 노선을 되살리며 3두마차는 볼셰비키의 혁명적 전통을 갖다버리고 있었다.

10월 혁명의 교훈에 대해 탁월한 트로츠키 전기 작가 아이작 도이처는 비무장의 예언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트로츠키는 1917년에 당이 겪은 두 가지 주요 위기를 설명했다. 4월에 레닌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경로를 정하자고 당을 아직 설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당의 우파, 즉 레닌이 옛 볼셰비키라고 부른 이들의 저항을 이겨내야 했을 때와 10월봉기 직전에 그 우파가 봉기에 난색을 보였을 때가 그 두 위기의 시점이었다. 트로츠키는 지도자들 가운데 일부의 망설임과 실수가 볼셰비키의 성취에 흠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당은 갈등과 의견차를 지니고 있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그러나 볼셰비키는 다음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필요해서 혁명을 추구하는 당에도 전진을 방해하는 보수세력이 있다. 특히 당이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여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렇다. 트로츠키의 칼끝은 처음에는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혁명의 방해자들에게 겨눠졌고, 이어 1917년에 레닌의 정책에 반대했던 리코프와 칼리닌을 비롯한 보수파의 지도자들에게도 겨눠졌다. 사실 트로츠키는 3인연합이 볼셰비키의 주의주장에 대한 유일한 정통적 해석자로서 말할 권리가 있는지, 더 나아가 보수파가 레닌주의의 전통을 순수한 형태로 대표하는 체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그의 글에 들어있는 암시적이면서도 분명한 의미는 그 전통이 결코 사람들이 믿게 된 것처럼 간단하지도 고정불변하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보수파는 낡은 슬로건과 부적절한 추억에 매달려 있다는 이유로 레닌이 포기했던 옛 볼셰비즘을 대표했다. 반면 트로츠키의 태도는 당이 승리했던 1917년의 볼셰비즘과 완벽하게 조화되는 것이었다.”


* * *


10월 혁명을 옹호하며1932년 러시아 혁명 15주년을 맞이해 덴마크에서 행한 강연이다. 터키 프린키포 섬에 유폐되어 있던 트로츠키는 덴마크 사회민주당 학생들의 초청으로 코펜하겐에서 강연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10월 혁명과 10월 혁명을 가능케 한 혁명 노선을 방어하기 위해 과학적 원리, 역사를 유물론으로 파악하는 방법에서 출발해 10월 혁명을 쿠데타로 폄하하는 자들에 맞서 혁명이란 것의 의미, 러시아 사회가 가진 모순, 그리고 볼셰비키당 등 10월 혁명을 가능하게 한 조건을 설명한다. 그리고 소련의 관료적 퇴보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소련이 이룩한 업적을 통해 10월 혁명을 옹호하고 정당성을 확인한다. 그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 소련의 부분적인 실패와 약점을 감추지 않고 과장하지도 않는다. 이 강연은 10월 혁명을 이해하는데 있어 필요한 요소들을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유일하게 건강한 노동자국가를 건설했던 러시아 혁명은 그 과정을 통해 기회주의와 혁명 사상이 무엇인지를 입증했다. 오늘날에도 10월 혁명의 교훈을 소화하는 것이 혁명 노선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남아있다. 러시아 혁명을 계승한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경향들이 존재하지만 10월 혁명의 노선으로부터는 멀리 떨어져있다.

혁명의 민주주의 단계를 주장하며 사회주의 선전, 노동자 정부를 주장하는 것은 때이른 것이며 1단계를 완수할 때까지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 등의 민주주의 투쟁에 몰두해야 한다‘, ‘극반동에 맞서기 위해 자유부르주아지에 표를 던져야 한다. 극반동을 패배시키려는 대중의 열망에 공감해야 한다.’는 등 10월 혁명의 노선에서 벗어나 있으며 심지어 계급의 선을 넘나들면서도 레닌을 들먹거리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펴지고 있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아 발간되는 이 책이 10월 혁명의 교훈을 온전히 소화하려는 진지한 계급의식적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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