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연락처 :
bolle1917@gmail.com


제국주의의 뿌리와 결과

‘전쟁과 혁명’ 시대의 본질적 연속


 

0320.jpg



지금 일어나고 있는 국제 사건에 대한 마르크스적 분석에서 ‘제국주의’ 개념은 중심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많은 자칭 혁명가들은 이 현상의 본질과 역사적 발전과 그 기원에 대해 단지 모호하게 언급할 뿐이다. 프랑스, 영국 그리고 다른 식민제국들 소유였던 나라들이 2차 대전 이후 독립했을 때 제국주의는 끝났다고 여기며,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그 용어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뜻을 잃어버린 좌익적 상투어일 뿐이라고 외면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전쟁 후의 이른바 ‘탈식민화’는 막대한 약탈과 노예화 그리고 토착 인민에 대한 학살을 통해 구축된 세계 질서의 구조적 불평등을, 화장으로 살짝 감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식민제국들은 주변에서 중심으로 부가 이전되도록 만든 경제 질서에 해외 식민지들을 강제로 끌어들였다. 이전의 속국들이 형식적으로 정치적 독립을 얻었지만, 지배와 억압이라는 상호 관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중동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근래의 대규모 군사 침략에 응하여, 저명한 부르주아 학자 다수는 세계 제국주의가 사회 진보를 가져온다는 생각을 단지 인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2003년 이라크 침략을 준비하면서, 워싱턴포스트의 신보수주의 평론가 찰스 크라우트해머는 “인민들이 지금 밀실에서 나와 세계 제국에 나타나고 있다(뉴욕타임스, 2002년 3월 31일).”라고 썼다. 제국의 혜택을 옹호하는 자들은 영국 신보수주의 역사가 폴 존슨에서부터 전 미국 안보의 수장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이전에 하버드대학의 이른바 ‘인권’ 교수였고 한때 캐나다 여당인 자유당 당수였던 마이클 이그나티에프에까지 이른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라는 용어를, 이윤 최대화라는 지상명령으로 움직이는 사회체제가 일국과 세계의 사회 불평등을 끝없이 심화 확장한 결과 등장한, 성숙한 세계 자본주의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한다.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 스위스의 금융기관]의 「2015년 세계 부(富) 보고서」에 따르면,

“불평등은 2008년 금융위기로 심화되었고,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해 부자 나라들의 주식가치와 금융자산의 상승은 몇몇 부자 나라들과 부자들의 자산을 더 부풀렸고,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상위 1%의 부자들은 세계 자산의 절반 이상을, 상위 10%는 87.7%를 소유하고 있다.”


더 장기적으로 살핀 2001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연구는 세계 자본주의 2백 년 동안 빈국과 부국 사이의 격차 증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820년 경, 이 (서유럽, 북미, 호주 그리고 일본의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 그룹의 소득은 나머지 나라들의 2배가량이었다. 그런데 1998년 이 격차는 7 대 1이 되었다. (지금 세계 지배자인) 미국과 (가장 가난한 지역인) 아프리카 사이의 격차는 20 대 1이다. 그리고 이 격차는 여전히 커지고 있다.”—앵거스 매디슨, 「세계 경제, 백년의 조망」


유엔개발계획도 2년 전에 비슷한 지적을 한 바 있다.

“세계 불평등이 지난 2백 년 동안 꾸준히 커지고 있다. 세계 소득의 (국가 간) 분배에 대한 장기적 추세 분석을 보면, 가장 부자 나라와 가장 가난한 나라 사이의 차이가 1820년에 3 대 1, 1913년에 11 대 1, 1950년에 35 대 1, 1974년에 44 대 1, 그리고 1992년에는 72 대 1이 되었다.”—『인간개발보고서』 1999


영국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19세기 산업혁명이 식민지 속국에 대한 유럽 선진 자본주의 열강들의 기술적 우위를 얼마나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켰는지를 묘사한다.

“기술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표현되는 이 격차의 핵심 요인이다. 프랑스혁명 백 년 이후 군사 장비의 기술적 열세 때문에 가난하고 후진적인 나라들은 쉽게 지고 (엄청나게 큰 땅이 아니라면) 정복된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히 확인되었다. 이 사실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략은 프랑스와 이집트의 맘루크 군대 모두에 상흔을 남겼다.…그러나 같은 세기 중반 무렵, 전쟁에 영향을 미친 산업혁명은…고성능 폭약, 기관총, 그리고 증기 운송수단 등을 통해 그 균형을 더 무너뜨려 이른바 ‘선진’ 세계가 우위에 서게 만들었다.”—『제국의 시대』 1875-1914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역사가이자 제국주의 옹호자인 니얼 퍼거슨은 영국 식민주의가 “자유시장과 법질서, 투자보호 그리고 덜 부패한 정부를 세계 약 1/4 지역에 가져왔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는 “제국이 세계의 복지를 증대했고, 다른 말로 말하면 좋은 일이었다.”라고 결론 내린다(『제국: 어떻게 영국은 세계를 현대화했나』). 하지만 그는 영국 제국의 보물이었던 인도에서 “영국 지배 아래에서 평균 인도인들은 그다지 부유해지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1757년과 1947년 사이 영국의 1인당 GDP는 실질적으로 347% 증가한 반면, 인도는 고작 14%이었다. 인도의 산업화로 생긴 막대한 이윤은, 인도인 투자가와 기업인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관리회사나 은행 또는 주주들에게 넘어갔다. 19세기에 강요된 자유무역으로 인도의 토착 생산자들은 유럽과의 험난한 경쟁에 직면해야 했다. 한편 독립한 미국은 맹아기의 산업을 높은 관세장벽으로 보호하고 있었다.”—같은 책


그는 또한 영국의 자유무역 정책이 1876~78년과 1899~1900년 사이 인도의 혹독했던 흉년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강제 고용된 인도 노동자들은 영국 제국 경제에 값싼 노동을 제공했다.”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그는 차, 면, 고무, 설탕 농장에서 일하는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1세기 전 아프리카 노예들과 거의 차이가 없는” 노동조건 속에서 일했다고 묘사한다. 제국이 영국 지배계급에게 “좋은 일”이었던 반면, 그 식민 종속국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하다.

 

제국주의: 불균등 결합 발전

세계 먹이사슬의 위와 아래 사이 불평등의 지속적 증가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모든 단계에서 소위 ‘발전’은 제국주의 본국 투자가들의 우선순위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식민지 장악은 천연자원과 본국 상품의 판매 시장이라는 측면에서 가치 있는 것이다. 차관과 (공공 노동과 공무원, 군인들에게 지불하기 위한) 정부 채권의 형태로, 또는 광산 개발과 (해외 소비자를 위한) 농장 건설로, 또는 수출 경제 촉진을 위해 필요한 철도, 항구, 통신망의 건설 등으로, 식민지는 짭짤한 투자처가 된다. 본국에서 생산된 값싼 공산품의 수입은 토착 수공업자들을 파산시킨다. 농장 건설 과정에서 농민들은 자신들이 일궈왔던 농토에서 쫓겨난다. 이 둘은 모두 가난한 도시 노동자층을 형성한다.

전통적인 토착 지배자들은 대체로 기생적 지주층으로 남아 있으면서, 토착 자본은 상업과 대부업으로 편입되는 경향이 있다. 한편으로는 지출을 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안정을 위해, 식민 지배자들은 종종, 필연적으로 전자본주의 후진성으로 응결된, 이 토착 엘리트들과 동맹을 맺는다.

보통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서구에서부터 세계 전체로 자본주의 사회 관계가 확산되면서, 식민 지역의 발전은 왜곡되고 지체되는 한편 식민지 본국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위대한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이 ‘불균등 결합발전’ 현상을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묘사했다.

“자본주의는 각각 심각한 내적 모순을 지닌, 다른 발전 단계에 있는 인류의 다양한 부위를 발견한다. 도달한 수준이 매우 다르고, 다양한 시기를 거치는 동안 인류의 서로 다른 부위에서 나타나는 발전 속도상의 현저한 불균등성은 자본주의의 출발점 구실을 한다. 자본주의는 대물림된 불균등성에 대한 지배력을 천천히 넓혀 가는데, 독자적인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여 이를 깨뜨리고 개조한다. 이전 경제체제와 대조적으로, 자본주의는 선천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경제적 확장을 추구한다. 새로운 영토로 침투하고, 경제적 차이를 극복하며, 자급자족적인 지역적이고 일국적인 경제를 금융적 관계망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 ・ ・

“제국주의는 보편성, 침투성, 기동성, 그리고 제국주의의 추진력인 금융자본을 아주 빠른 속도로 구성하는 덕분에 이 두 경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제국주의는 비할 데 없이 더 빠르게, 더 철저히 개별 국가와 대륙을 하나의 실체로 잇는다. 그러면서 서로 긴밀하고 불가결한 의존관계에 이르게 하고, 그 경제 방식, 사회 형태, 발전 수준을 더욱 동일하게 만든다. 동시에 대단히 적대적인 방식으로, 호랑이가 달려들 듯, 후진국과 후진지역을 급습하는 방식으로 이 ‘목표’를 달성한다. 그 결과인 세계경제의 통합과 평준화는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그리고 발작적으로 탈이 난다.”―『레닌 이후 제3인터내셔널』

제국 건설에 종사한 19세기 종교사상가들은 ‘저개발’이 낳는 이 기괴한 불균형을 기독교 윤리, 계몽 그리고 현대성을 무지몽매한 이교도들에게 전파하는 ‘백인들의 책무’로 인한 부산물 정도로 다루었다. ‘열등한 인종’을 복속시키기 시작한 빅토리아 시대의 식민지 개척자들 대부분을 추동한 이 뻔뻔한 인종주의와 이해타산은 1893년 세실 로즈[Cecil Rhodes(1853~1902) 영국 식민지 정치가]의 사병이 창을 들고 맞섰던 1,500명의 마타벨레[Matabele: 아프리카 남부 지역 원주민] 전사들을 기관총으로 학살한 사건을 기념하는 풍자시 구절구절에 반영되어 있다.

“전진! 용사들이여, 이교도의 땅을 향해

기도서를 주머니에 넣고, 손에는 라이플을

큰 사업이 펼쳐질 땅을 향해 거룩한 물결을 타고

맥심 기관총으로 평화의 복음을 전하라

비참한 원주민들에게 말하라, 그들은 죄인이라고.

이교도 사원을 영혼 시장으로 만들자.

그들이 만약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또 다른 설교를 베풀자, 맥심 기관총으로.”


(상당한 양의 금 매장지를 차지하기 위한) 로즈의 마타벨레 지구 점령은 1차 대전 이전 아프리카 약탈 과정에서 있었던 흔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19세기의 식민제국은 먼 일이 되었지만, ‘자유무역’ ‘인권’ ‘개발’ 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세계에 대한 복속과 약탈은 여전하다. 합리화 방식은 달라졌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국제금융기구 IMF와 세계은행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도구로 종종 대표되는)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다국적기업과 거대한 금융기관들이 오직 자신의 이익에 따라 방대한 지역 인민의 경제적 사회적 삶을 결정한다.

 

현대 제국주의: 독점과 금융자본

제국이 자본주의가 개발되기 한참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은 종종 현대 ‘제국주의’의 성격에 대해 혼란을 일으킨다. 1939년 트로츠키는 이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노예노동에 기초한 로마의 ‘제국주의’, 봉건적 토지 소유관계에 기초한 제국주의, 상업자본과 산업자본의 제국주의, 짜르 왕정의 제국주의 등이 역사적으로 존재했었다. 권력, 권위, 재력을 확대하려는 경향은 의심의 여지없이 소련 관료집단의 원동력이다. 이것은 ‘제국주의’라는 용어를 가장 넓게 규정짓는 요소이다.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왕정, 과두정, 지배계층, 중세 신분계급 등은 모두 이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특히 마르크스주의 서적에서는 제국주의가 금융자본의 팽창정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제국주의라는 용어는 이제 매우 정확히 규정된 경제적 내용을 가지고 있다.”―『맑스주의를 옹호하며』 중, 「소련의 사회성격에 대해서 다시 또다시」


1938년 제4인터내셔널 창립 문서인 『이행강령』에서 트로츠키는 현대 “제국주의는 금융자본의 지배를 의미한다.”라고 간명하게 지적했다. 이것은 22년 전 레닌의 정식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제국주의, 혹은 금융자본의 지배란 곧 그러한 [화폐자본, 산업자본 또는 생산자본의] 분리가 상당한 정도에 이른 자본주의의 최고단계이다. 다른 모든 형태의 자본에 대한 금융자본의 우위는 곧 금리생활자와 금융과두제의 지배를 의미하며, 금융적으로 ‘강력한’ 몇몇 국가가 나머지 다른 모든 국가 위에 우뚝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제국주의론』, 1916년


레닌이 말하는 ‘금융자본’은 은행과 금융자본이 산업자본과 결합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에 본부를 둔 다국적 기업과 거대 은행의 형태를 취한다.

“생산의 집적, 이로부터 생겨나는 독점체, 은행과 산업의 합병 혹은 유착, 이러한 과정이 바로 금융자본의 발생사이며 금융자본이라는 개념의 내용이다.”―같은 책


1800년대 초 자본주의는, 보통 한 종류만 생산하고 개인 소유주가 운영하는,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들이 지배했다. 그러나 수십 년 사이에, 보다 잘 나가는 기업들이 덜 성공적인 경쟁자들을 흡수하여 큰 기업체들이 형성되었다. 그 기업들에 소유주들은 직접 개입하지 않고 월급 관리자들이 일상적 결정을 처리했다.

레닌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 독일 사회민주주의자인 루돌프 힐퍼딩은 ‘금융자본’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20세기 초 독일의 자본 집중과 경제 전체를 지휘하는 가장 큰 은행들의 역할을 묘사하였다.

“끊임없이 증가하는 산업자본은 그 자본을 사용하는 산업자본가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소유주들을 대표하는 은행을 통해서만 그 자본을 가져다 쓸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은행은 끊임없이 증가하는 산업 분야에 자본을 투자한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그들은 점점 거대한 산업자본가가 된다. 나는 은행자본 즉, 화폐 형태의 자본이 이러한 방식으로 산업자본으로 실질적으로 전화한 것을 금융자본이라고 부른다.”―『금융자본론』, 1910년


힐퍼딩의 연구는 영국 경제학자 J.A. 홉슨에 영향 받았다. 홉슨은 경제 선진국가의 거대한 산업콘체른, 트러스트, 카르텔 그리고 신디케이트의 수중으로 부가 집중되는 것을 통해 19세기 후반 자본주의 제국주의 충동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1902년 『제국주의론』을 통해 홉슨은 미국이 영국에 대한 제국주의 경쟁자로 빠르게 변하는 모습을 통해 “제국주의정치 정책”과 독점 성장 사이의 관련성을 설명했다.

“미국과 같은 나라의 생산력이 국내 시장의 수요를 능가할 정도로 급속히 증대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무역에 정통해 있는 사람들이라면 미국의 모든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다음과 같은 사실, 즉 발달도(發達度)가 높은 산업에 관한 한 미국은 19세기 말에 이 같은 상태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 할 것이다. 미국의 제조업은 자본의 포화(飽和)상태에 있었으며 그 이상 자본을 흡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들은 차례차례 경쟁의 소모로부터 벗어나 운전자본의 양적 제한에 의해 다소간 이익을 누릴 평화를 보장해 주는 기업 ‘연합’ 속에서 피난처를 찾고자 하였다. 석유·철강·설탕·철도·은행 등 산업계와 금융계의 거물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소비 방법보다 더 많이 소비시키는 법을 찾아내든지 아니면 국내 영역 밖의 시장을 강탈하든지 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었다...

제조업과 투자를 위한 해외시장에 대한 이같은 돌연한 요구야말로 미국 공화당에 의해 정치적 정책과 실천으로서 제국주의가 채택된 명백한 이유이다. 공화당에는 산업계와 금융계의 거물들이 참가하고 있었으며, 공화당 또한 그들에게 속해 있었던 것이다.”


그 시대 미국의 독점자본가들의 이름인, 모건, 멜론, 카네기, 록펠러 등은 가문의 이름이 되었다. 이 ‘악덕 자본가’들의 도를 넘는 전횡은 인민의 격렬한 저항을 낳았고, 그로 인해 독점기업 통제를 목적으로 한 셔먼 반독점법(Sherman Act)이 1890년에 만들어졌지만 그 법은 수십 년 동안 책 속에만 존재했다. 1948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 윌리엄 더글러스는 판결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경제를 통제하는 힘은 산업 독점가들이 아니라 인민이 뽑은 대표들의 손에 있어야 한다. 산업의 힘은 분산되어야 한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 흩어져 인민의 부는 소수의 변덕이나 정치적 편견과 감정에 의존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이 사악한 사람이 아니고 존경받을 만하고 사회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여기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셔먼 반독점법의 철학이고 명령이다. 권력이 사사로운 몇몇의 손에 집중되는 것에 대한 적대적 인식에 기초하여 만들어졌다. 오직 인민의 정부만이 그것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연방대법원은 자본주의 발전의 본성적 경향을 되돌릴 수 없었다. 독점과 과점의 성장은 ‘자유 시장’ 경쟁 논리의 필연적 귀결이다. 보다 자본화된 (또는 더 성공적인) 생산자, 보다 선진적인 (즉,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을 도입한 생산자는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고, 그로써 경쟁자보다 싼값에 팔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덜 생산적인 기업은 시장에서 쫓겨난다.

“중소자본가들의 크고 작은 시체 위에는 더욱 더 적은 수의 거대하고 강력한 자본가들이 우뚝 선다. 결국 ‘정직한’ ‘민주적’, ‘진보적’ 경쟁은 되돌이킬 수 없이 ‘해로운’, ‘기생적인’, ‘반동적인’ 독점을 탄생시킨다. 1880년대에 독점은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1900년대 초에 명확한 모습을 갖추었다.…

“독점이 경쟁을 제거하면서 자본주의 사회는 썩기 시작했다. 경쟁은 자본주의의 창조적 원동력이었으며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사회지배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는 방편이었다. 이와 똑같은 의미에서 경쟁의 배제는 주주들을 사회의 기생충으로 변모시켰다. 경쟁은 어느 정도의 자유, 자유로운 분위기, 민주주의, 상업적 국제주의 체제를 필요로 했다. 그런데 독점은 될 수 있으면 권위주의적인 정부, 관세 장벽, ‘자기 자신의’ 원자재 공급원이자 상품판매처인 식민지를 필요로 한다. 독점자본이 사회를 해체하는 막판에 파시즘이 등장한다.”—트로츠키, 「우리 시대의 맑스주의」, 1939년


레닌은 독점화 경향을 제국주의 경제의 뿌리로 여겼다.

“제국주의를 가능한 한 간결하게 정의한다면, 자본주의의 독점단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금융자본이란 독점적 산업가단체의 자본과 융합하고 있는 소수 독점적 거대은행의 은행자본이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세계의 분할이란 어떤 자본주의 열강에 의해서도 장악되지 않은 영토까지 아무 장해 없이 확장될 수 있었던 식민지 정책으로부터 모든 분할이 완료된 영토를 독점적으로 점유하려는 식민지 정책으로의 이행이기 때문이다.”―『제국주의론』


선진 자본주의 각 나라의 경쟁을 축소시킨 독점의 성장은, 천연자원, 투자 기회, 시장 확보를 둘러싸고 그들 사이의 국제적 경쟁을 심화시켰다. 20세기 초 이 경쟁은 (각각의 잠재적 교전국 자본가들을 위한 엄청난 단기 수요를 창출한) 군비경쟁을 낳았고 결국 1차 대전이 발발했다.


제국주의 시기: 전쟁과 혁명의 시대

이전 시대의 경쟁 체제로부터 제국주의 세계 질서는 탄생했다. 레닌은 그 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주의 최근 단계의 시대는 곧, 자본가단체들 간에 세계의 경제적 분할을 토대로 하여 일정한 관계가 성장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와 아울러, 또 이와 관련하여 정치적 동맹체 사이, 국가들 사이에서도 세계의 영토적 분할, 식민지 획득을 위한 투쟁, 즉 ‘세력권을 확장하기 위한 투쟁’을 토대로 하여 일정한 관계가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같은 책

이 책은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에 쓰였다. 이 최초의 제국주의 상호 갈등이, 단지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만이 아니라, 사실 핵심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의 지리・정치적 경쟁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안 정치인은 레닌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세계의 부와 교역을 남들보다 많이 차지하기 위해 몰두해 왔다. 우리는 영토를 차지하려 했고, 광대하고 눈부신 소유물을 도전 받지 않고 즐기려 했다. 주로 폭력으로 획득되고, 대체로 폭력으로 유지되며, 우리가 보기엔 문제없지만 남들의 눈에는 부적절해 보이는 것이었다.”—『제국의 기획』, 존 다윈, 2009


당시 강력했던 사회주의인터내셔널[제2인터내셔널]은 국제적 전쟁 반대 운동을 벌이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실제로는 “세계 부와 교역”을 재분할하기 위한 싸움에 뛰어든 자기 나라 지배자들을 지지하고 말았다. ‘조국 방어’라는 구호 아래, 인터내셔널 대부분의 지부 지도자들은 그 지배자들의 보다 많은 소유를 위해 죽고 죽이라고 추종자들에게 요구했다.

이 사회애국주의적 배신행위로 마르크스주의 국제주의 강령에 헌신하던 레닌 등은 화들짝 놀랐고, 그들은 세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혁명의 정치적 조건들을 재검토해야 했다. 그들은 곧, 1차 대전은 자본주의가 진보적 성격을 상실하고, ‘전쟁과 혁명’을 본질로 하는 반동적 제국주의 시대로 새롭게 접어든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결론지었다.

제국주의에 대한 레닌의 분석은 본질적으로 정당하지만, 1916년에는 예측할 수 없었던 의미 있는 변화들이 존재한다. 영국 마르크스주의자 톰 켐프는 이렇게 지적한다.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레닌은 학술논문을 썼던 것이 아니다. 그가 쓴 것은 전쟁을 낳은 힘의 본질과 더불어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를 국제 사회주의 운동에 설명하는 실천적 소책자였다.…레닌이 제국주의론을 쓸 당시, 그는 그 주제에 대한 최종적 언명을 생각했던 것이 아니다. 독자들은 그의 주장이 조심스럽고 조건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제국주의 이론 연구」, 1972년

 

냉전에서 ‘워싱턴 콘센서스’까지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20여 년 동안, 세계 자본주의는 1914년보다 더욱 보호무역주의적이고 자급자족적 성격을 띠었다. 유럽의 식민제국 해체를 주도한 미국이, 소련의 세력 확장과 중국 혁명으로 인한 도전에 맞서 이른바 ‘자유진영’의 단결을 추구하면서, 이러한 추세는 2차 대전 이후 바뀌었다. 미국 정책 기획자들은 미국 동맹국들에게 보호무역주의를 취하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주문했고 그들을 새로운 자본주의 세계 질서로 끌어들이기 위해 양보하려 했다. ‘미국 시대’의 처음 몇 년 동안, 미국은 미국의 우위를 인정하는 ‘자유 시장’의 형식적 평등에 기댔다. 미국의 지배 아래에서 신식민주의는 식민지 직접 통치를 대체했고 경제 종속은 유엔, 세계은행, IMF, FTA 협약 같은 다국적 기구들로 은폐되었다.

냉전 시기 소련은 ‘제3세계’에 대한 제국주의 영향력을 제한하고 다른 한편 그에 대한 저항을 낳는 대항세력 역할을 했다. 이는 중국, 한반도, 인도차이나(그리고 곧이어 카스트로가 지도한 쿠바로 이어지는)의 스탈린주의 봉기 성공으로 극적으로 표현되었다.

소련과 그 영향권 내 ‘다른 나라’들의 존재는 인도와 브라질 등의 자본주의 지배자들이 일정한 경제적 독립을 성취하는 것을 용이하게 했다. 1956년 수에즈 운하를 장악한 가말 압델 나세르에 대한 소련의 지원은 중동 전역에서 석유 시설 국유화 시대를 열었다.

이 시기 동안 많은 나라들의 민족 자본가들은 수입 대체를 통한 산업화를 추구했고 또 다른 나라들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모델로 한 생산자 카르텔을 만들려 했다. 1991년 퇴보한 노동자국가 소련의 붕괴는 이른바 ‘남반부’에서 그와 같은 전략을 쓸 여지를 현저히 줄여버렸다.

1980년대에 이자율이 가파르게 상승하자 많은 반식민지 나라들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빌려다 쓴 빚에 대한 채무불이행을 피하기 위해 IMF로 향했다. IMF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농민과 국내 제조업자에 대한 보조금 삭감, 관세 인하, 사기업과 여러 국가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구조조정계획’을 동원하여 외국투자를 용이하게 했다.

‘워싱턴 콘센서스’라고 칭하는 이 긴축정책은 경비를 줄이고 수출을 늘려서 성장을 이루는 방법으로 홍보되었다. 그 결과는 전혀 달랐다. 삶의 조건이 저하되었고 다국적기업의 시장 침투는 증가하고 개발도상국 나라들은 점점 더 세계 시장에 의존하게 되었다. 2001년 우리는 IMF의 ‘개발’ 계획이 어떠한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IMF 개발계획은 빈곤을 심화하고, 제국주의의 신식민지 개입을 깊게 만든다. 그 계획이 적용되면 대부분, 의료 교육 전력 통신 등이 사유화되어 사회서비스가 축소된다. 그 계획은 개별 국가의 통수권을 제한하는 한편, 금융자본과 그들의 현지 하수인들에게는 짭짤한 이윤의 기회를 주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이미 IMF의 ‘거시경제 안정화’를 겪어 본 멕시코, 브라질, 남한, 태국 등 수천만 노동자들은 그 ‘반(反)빈곤 계획’에 아무런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다.”—「이윤에 혈안이 된 제국주의 세계 질서 Imperialist World Order: Misery for Profit」, <1917> 23호


수십 년 동안 실시된 수출 지향적인 ‘현대화’ 계획으로 인해, 인류 전체의 1/3인 25억 명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 10억 이상의 인류는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비슷한 수가 깨끗한 식수를 얻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 제국주의 질서에서 억압하는 자와 억압당하는 자

빅토리아 여왕의 식민제국 시기는 사라졌으나, 제국주의 나라들이 자기 나라의 경제 문제를 약한 나라들의 희생을 통해 해결하기 위해, 시장과 천연자원을 획득하고 영향권을 넓히려는 경쟁은 여전하다. 심지어 (예를 들면, 노르웨이, 뉴질랜드 또는 룩셈부르크 등) 소규모의 선진자본주의 나라들도 열강들과 그들의 다국적 기구가 조성한 경제 ‘게임’에 뛰어들어 제 몫을 챙기는 똘마니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 체제의 하위 파트너들은, 수출금지 등 주역들의 지침을 잘 따르고 원정 군사비용의 일부를 나누면서, 떡고물을 챙기고 있다.

현대 제국주의에도 금융자본 수중으로 집중되는 독점화 경향이 계속되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은 2011년에 중요한 연구를 발표했다.

“각 열강들이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와 더불어, 국제 소유 구조에 대한 첫 번째 조사를 내놓는다. 우리는 다국적기업이 막대한 양을 소유하고 있고, 소유된 많은 양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소수의 금융기구의 중심부로 흘러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세계 기업 통제 네트워크」


보통의 경우, 거친 폭력보다는 시장을 통해 제국주의 나라들과 주변의 신식민지 나라들의 관계가 작동되지만, 군사적 불균형은 지금의 세계질서 유지의 결정적 힘이다. ‘자유세계’의 지도자로서, 미국은 지구 어디이든 걸리적거리는 정권을 군사 개입으로 갈아치운다. 몇몇 경우, (1953년 이란, 1973년 칠레, 1980년대의 니카라과와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현지 동맹자 그리고 하수인들을 통해 작업한다. 어떤 경우엔, (2001년 아프가니스탄이나 2003년 이라크처럼) 미국 군대가 직접 개입한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러한 침략을 감추기 위한 ‘인도주의적’ 변명들엔, 심지어 성조기를 흔들어 대며 늘 믿을 준비가 된 미국의 전통적 지지층마저도, 점점 더 회의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더불어 많은 미국인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실패한 전쟁이나 리비아의 ‘성공한’ 작전들이나 모두 전략적으로 중요한 에너지 자원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 정복은 세계 패권국으로서의 미국의 지위 하락을 멈추려는 소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워싱턴이 자금을 대고 지원한 우크라이나, 리비아, 시리아의 최근 ‘정권 교체’ 작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러시아, 이란, 중국을 겨냥한 군사/경제적 압력과 무력시위를 섞은 위협은 그들로 하여금 제국주의 강압에 맞서기 위한 느슨한 방어 연대를 맺게 하였다. 제국주의 상호 갈등은 여태까지 잠잠하지만, 독일과 일본이 재무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캐나다와 덴마크, 네덜란드 같은 작은 규모의 제국주의 나라들이 그 대열에 가세하고 있어서 조만간 군사적 대결이 있을 수 있음을 예견케 한다.

레닌은 그 정치적 측면을 언급하면서, “억압하는 나라와 억압당하는 나라로 분할되고 그것이 제국주의의 본질을 구성한다(「혁명적 프롤레타리아와 민족자결권」).”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현지 정권이 어떤 성격이냐에 관계없이, 반식민지 나라들이 제국주의 세력에 공격당할 때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억압하는 편에 맞서서 억압당하는 편에 서야 하는 이유이다. 반면, 제국주의 국가끼리의 갈등에서 우리는 둘 모두의 패배 편에 선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 정의의 핵심은, 오랜 기간에 걸쳐, 보다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로 보다 뒤쳐진 반(半)식민지 나라의 잉여가치가 빨리는 관계를 의미한다. 대부, 직접 투자, 증권투자, 토지 임대, 특허사용료, 이전가격 조작 등 가치를 이전하는 기법은 다양하지만, 그들 모두는 후진국들 위에 걸터앉아서 선진국 자본가들의 이해를 추구한다.

신식민지 나라들은 제국주의 열강들이 만들어 놓은 조건 아래에서 세계 경제에 참여한다.

“저개발국은 반드시 그 나라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즉, 낮은 가치로) 생산할 수 있는 특정한, 그리고/또는 (예를 들어 천연자원처럼) 그 나라에 특화된, 상품 생산에 집중한다. 이런 종류의 수출 상품은 그 나라들의 일반적으로 낮은 수준의 생산성을 상쇄하는 특별한 지역적 이점(좋은 기후, 풍부한 특정 천연자원, 이로운 지역적 위치 등)을 반영할 것이다. 어떤 수출 부문에서 저개발국의 이러한 압도적 이점은 유리한 투자 기회를 노리는 외국자본을 끌어들인다. 그로 인해 당연히 수출 부문은, 침투한 외국자본이 가장 주목하는 지점이다. 그로 인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더 개발된 나라와의 무역거래는 값싼 수입상품과 경쟁할 수 없는 전통 산업을 붕괴시킨다. 둘째, 극단적으로 특화된 [경제] 환경을 조성한다. 가장 성과를 내는 수출 부문의 외국자본의 지배로 저개발국의 경제 발전은 크게 왜곡된다.…”—머레이 스미스, 『보이지 않는 괴물Invisible Leviathan』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처럼 값비싼 석유 자산을 가지고 있는 상대국들은 석유독점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얻는 이윤 중 상당량을 할당받는다. 이로 인해 석유부국의 지배자들은 정치적 자율권을 어느 정도 가진다. 그러나 그들의 궁극적 생존은 결국 제국주의 상전의 손에 달려 있다.

 

주변부의 산업화: ‘세계 상품 사슬’

1867년 출간된, 자본론 첫째 권에서 칼 마르크스는 산업혁명으로 조성된 “국제 노동 분업은 지구 일부분을 주로 농업생산지로 만들어 주로 공업 지대가 된 다른 지역에 공급한다.”라고 썼다. 지난 백 년 동안 실제로 그랬지만, 다국적 기업들이, 제국주의 나라 임금의 아주 일부분만 지불해도 되는 다른 나라로 생산기지를 옮기면서, 최근 몇 십 년 동안 크게 달라졌다. 1980년대, 개발도상국의 공업 생산품은 수출의 대략 20%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2000년 경 그 수치는 70%가 되었다(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2002 무역/개발 보고서」). 1980년, 소위 ‘선진국’에 세계 공업노동자의 절반이 있었지만, 지금은 1/5밖에 되지 않는다.

2003년 보고서에 당시 모건스탠리의 수석 경제학자였던 스테판 로치는 “오늘날 해외생산기지는 이전에는 결코 볼 수 없을 정도로 낮은 단가와 높은 수준의 상품과 노동을 제공한다.”라고 적었다.

“중국과 인도의 임금은 미국이나 여타 선진국의 비슷한 수준의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의 10%에서 25% 사이이다. 결과적으로 개발도상국의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자들에게 상품생산을 맡기는 것은 선진국 기업들의 생존수단으로 그 긴급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외주화, 보호무역 그리고 세계 노동거래」, 2003년 11월 11일


“세계 생산 체계” 내에서 부품을 생산하거나 최종 조립에 다른 나라 노동자들을 대체 투입하는 것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근본적인 불평등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소유와 통제권은 제국주의 본국 기업들이 강고히 쥐고 있다. 그러나 신식민지 나라들의 초과착취 노동사용이 점점 증가하면서 ‘주변부’의 사회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한 공급 사슬 단절 위험에 유럽, 북미, 일본 자본가들은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다.

다른 한편, ‘선진국’들의 탈공업화로 조직노동자의 힘이 약해졌다.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에게, 만약 임금과 노동조건에 순순히 양보하지 않으면 직장을 잃을 수 있다고, 위협한다. 제국주의 나라의 숙련 그리고 미숙련 노동자들은 세계경제 질서 내에서 누렸던 특권이 전만 같지 못하다는 것을 날카롭게 느끼고 있다. 그러한 각성은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이해를 지배자들의 이해에 일치시켰던 국수주의와 사회적 편견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전통적으로 안정적이었던 자신들의 기지를 갉아먹으면서, ‘세계 지배자’인 자본가들은 세계 인구 압도적 다수가 이미 근본적으로 억압적이고 부정의하다고 여기는 사회질서 안에 새로운 갈등 요소를 끌어들이고 있다.

 

사회주의적 세계화, 인류의 미래

제국주의 본국의 거대자본가들인 극소수의 부를 극대화하라는 것이 제국주의 시대 경제개발을 이끄는 지상명령이다. 자본 축적 논리에 어긋나는 것은 배제된다. 요즘 들어, 단기적 이윤추구는 단지 불평등을 가속할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의존하고 있는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현대화니 지속가능한 발전이니 하는 허황된 언사들이 넘실대지만, 정복자와 노예판매상이 설치던 그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윤추구는 사회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증가시켰다는 것을 자본주의 역사가 보여준다. 바로 이것이 “빈곤 종식”이나 여타의 이로운 결과를 만들겠다는 반복적인 국제 선언들이 결코 실현되지는 않는 이유이다.

세계 자본주의는 부자나라의 기생충 엘리트의 이익을 위해 가난한 나라의 부를 체계적으로 뽑아가도록 설계되었고 그렇게 작동한다. 제국주의 세계질서의 핵심인 이 관계는 혁명 투쟁의 연쇄를 통해서만 끝장낼 수 있다. 노동계급과 그 동맹자들은 그 혁명 투쟁을 통해, 지금의 국제 먹이사슬을 전복하고, 국제적 생산체계와 통신 그리고 운송수단을 몰수하고, 이성과 사회주의 계획에 기초한 세계경제를 건설할 것이다.


4 February 2017
Roots &Fruits of Imperialism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0 여성/소수자 해방운동 메갈리아와 여성해방에 대한 우리의 입장 17 볼셰비키 2016.07.30 14184
199 제국주의와 전쟁 제국주의에 대한 <뿌리>의 기회주의적 인식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4.10.02 10470
198 여성/소수자 해방운동 (IBT) 자본주의와 동성애 억압(15호, 1995) 4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10147
197 여성/소수자 해방운동 (IBT) 박탈당한 아일랜드 여성의 선택권: 요구에 의한 무료 낙태를 즉각 허용하라!(31호, 2009)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9156
196 여성/소수자 해방운동 (IBT) 반동적인 낙태반대 운동을 분쇄하자!: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여성해방을!(7호, 1990년 겨울)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8835
195 여성/소수자 해방운동 (IBT) 맑스주의, 페미니즘, 여성 해방(19호, 1997)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8292
194 제국주의와 전쟁 중국은 자본주의가 아니며, 제국주의도 아니다 21 file 볼셰비키 2016.08.20 7989
193 '좌익조직'들에 대한 분석/평가 국가보안법과 ‘전진’의 배신 행위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7925
192 '좌익조직'들에 대한 분석/평가 노동자연대의 계급전선 교란 볼셰비키 2016.06.14 7659
191 선거전술 남한 17대 대선에 대한 국제볼셰비키그룹(IBT)의 입장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6488
190 여성/소수자 해방운동 (IBT) 사랑과 결혼: 동성애, 자본주의 그리고 평등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4.12.10 6285
189 '좌익조직'들에 대한 분석/평가 (IBT) 남한 <국제사회주의자(IS)>에게 보내는 편지 -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1.20 6254
188 스탈린주의 흐루쇼프의 비밀연설과 스탈린주의 2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6187
187 여성/소수자 해방운동 ‘맑시즘 2012’ 참관기 2: ‘맑시즘,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해방’ 볼셰비키-레닌주의자 2012.12.24 5762
186 노동운동과 혁명정당 『레닌과 전위당』 옮긴이 후기 볼셰비키 2016.03.02 574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 Next
/ 14